• 최종편집 2025-01-16(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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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507] 망월폐견(望月吠犬)보다는 민관군 콜라보가 더 따뜻하게 만들어①
    [시큐리티팩트=김희철 컬럼니스트] 최근 어느 인터넷 블러그에 나온 푸념은 다음과 같다. 요즘 세상 돌아가는 꼴이 망월폐견(望月吠犬)이다. 달 보고 짖는 개들이란 뜻이다. 도둑을 지키랬더니 둥근 달을 짖어 대니 그놈의 개가 도둑은 안 잡고 자기 키워 주고 밥 주던 주인은 나 몰라라 시끄럽게 짖어댄다. 그러니 요즘 짖어대는 놈들은 다 개들이다. 아니 개보다 못한 놈들이다. 개는 주인을 물지 않는데 이 개놈들은 너도나도 경쟁적으로 주인 물어뜯으려 염병질 한다. 돌아버린 미친개들이다. 일견폐(一犬吠, 한 마리의 개가 달을 보고 짖으니), 이견폐(二犬吠, 두 번째의 개도 달을 보고 짖는구나), 만견종차일견폐(萬犬從此一犬吠, 만 마리의 개가 한 마리의 개를 따라 모두 짖는구나), 한마디 더 하면 주인이 뭔 일인가 하고 문을 열고 밖을 보니 하늘에 둥근달만 훤하더라......! 정치권 실세가 한번 짖으니 그 졸개들이 따라 짖고 검·경찰·공수처 등이 왕왕 짖어 댄다. 달이 떠오르는 것은 당연한데 이걸 보고 왜 떴냐고 일부 사람들은 지랄을 떤다. 자유민주주의의 삼권분립은 꼬리를 감추었나? 그런데 진짜로 지금 세상은 서로 못잡아먹어서 안달이 난 상태이고, 지저분하며 치열한 약육강식의 지옥같은 상황이다. 한편, 연말연시 길거리에는 어김없이 구세군 냄비 앞에서 도움은 베풀기를 청하는 종소리가 청아하게 울리고, 익명의 기부가들은 주변의 가난하고 약한 사람들을 위해 많은 봉사와 도움을 주고 있다. 또 연말인 12월29일, 무안공항에서 179명이 사망한 제주항공기 사고가 발생했지만, 평범한 국민들은 안타까워하며 이에 대한 조의와 기부금이 줄을 잇고 있다. 그래서 아직 살맛은 조금 남아있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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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
    2025-01-14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506] 누가 뭐래도 우리는 소중한 친구들⑦
    [시큐리티팩트=김희철 칼럼니스트] 초정약수에서 나와 복귀 중에 날이 저물자 청주시 강서동 부근에 예약된 식당에 모두 모였다. 사실 사관학교를 졸업하며 임관한 후에 보수교육 기간을 제외하고 이렇게 같은 중대출신 동기들 부부가 자리를 함께한 것은 아마도 처음인 것 같았다. 모두들 술잔을 기울이며 즐거워했고, 생도 시절의 추억을 회상하는 이야기 꽃을 피웠다. 이후 부모산 기슭에 새롭게 신축한 대대 독신자 숙소(BOQ)로 자리를 옮기자, 초급장교 시절 근무했던 곳의 열악한 독신자 숙소(BOQ)를 비교하며 군대도 많이 발전하고 좋아진 것 같다는 덕담도 늘어놓았다. 다행히도 식구별로 각 방을 배치할 수 있었고 피곤해서 먼저 잠든 가족들을 제외하고, 동기들은 중앙 거실에 모여 맥주 한잔씩 돌리며 그날 관광여행의 뒷풀이를 했다. 다음날인 일요일 아침, 각 방의 짐을 모두 챙겨 각자의 차에 올랐다. 그런데 한 동기가 난감한 듯 필자에게 양해를 구했다. 함께 온 아이가 그 방의 주인인 독신자가 사용하던 요에 밤새 실례를 한 모양이었다. 그 친구 가족은 급하게 손질하여 빨래걸이에 널어 말리며 미안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우리는 다음 관광지인 청주의 명품 무심천변에 즐비한 아침 해장국집으로 향했다. 안개가 피어오르는 무심천은 장관이었고 밤늦게까지 회포를 풀었던 까닭에 얼큰한 해장국은 분위기를 더했다. 아침 해장국 후에 아직도 많이 남은 충북 명승지를 한두군데 더 갈려고 했는데, 동기들은 일요일에는 차가 많이 밀린다며 일찍 출발하자는 의견이 많아 아쉬움을 남긴 채 바로 등을 돌려 각자의 집으로 향했다. 지금은 12.3계엄사태로 곡해받는 육사의 이미지이지만, 생도시절 같은 중대에서 2년간 함께 생활하며 졸업했고, 필자가 대형 교통사고로 병상에 누워 있을 때에 더 많은 위문과 격려를 보내주었으며, 군생활을 마치고 전역한 후에도 가끔씩 부부동반으로 모여 우정을 나누고 있는 문무 8중대 동기들이 너무도 소중했다. 공자의 논어에 기록된 동지형(同志型) 인간상이 현실로 구현됐고, ‘유붕이자원방래(有朋而自遠方來), 불역락호(不亦樂乎)’의 의미처럼 감사하고 행복한 추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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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
    2025-01-13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505] 누가 뭐래도 우리는 소중한 친구들⑥
    [시큐리티팩트=김희철 컬럼니스트] 운보의 집 관광을 마친 동기들과 가족들을 그곳에서 근거리이고 좌구산 구녀성 하단에 위치하며 탄산수로 유명한 초정약수로 안내했다. 그리고 함께한 방문자들에게 목욕까지 강권했다. 초정약수는 청주시 동쪽 10여km 지점인 내수읍에 위치하며 라듐 성분이 다량 함유된 천연탄산수이다. 세계 광천학계에서는 초정약수를 세계 3대 광천의 하나로 꼽는다. 지하 100m의 석회암층에서 솟아오르는 이 무균 단순탄산천은, 용출량(1일 약 8,500ℓ)도 풍부하며, 이를 가공하여 상품화하기까지에 이를 만큼 널리 알려진 약수로서 부강약수(세종시 부강리 소재)와 함께 국내 제일의 약수로 꼽힌다. 발견된 시기는 600여 년 전으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과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등에 세종대왕이 이곳에 60일 동안 머물며 눈병을 고쳤고, 세조도 이 곳 약수로 심한 피부병을 고쳤다는 기록도 있어 유명해졌다. 목욕탕물이 탄산수인 까닭에 탕 바닥에서부터 탄산 거품이 부글부글 올라오자 동기생과 아이들은 신기한 눈으로 바라보며 입수하기를 주저했다. 필자가 먼저 들어가 동기들을 유인하자 입수한 동기중 일부는 여린 살갗 부분이 약간 따가운 느낌이 든다고도 했다. 마침 어떤 동기가 탄산수탕 속에 들어가자마자 “앗 따갑다!”라고 비명을 질렀다. 이에 즉각적으로 필자는 그를 쏘아보며 “나쁜 짓을 한 사람은 그곳이 따가운데 너 혹시...?”라고 질문을 하자, 그는 정색하며 극구 아니라고 부인하여 탄산수탕속에 몸을 담근 동기들은 한바탕 웃어제끼며 폭소가 터졌다.(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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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
    2025-01-10
  • [김희철의 CrisisM] 두매리 고지 전투의 ‘안병섭 육군 이등상사’를 1월의 6‧25남침전쟁영웅로 선정
    [시큐리티팩트=김희철 칼럼니스트] 국가보훈부는 6‧25남침전쟁 당시, 경기도 연천군 두매리 고지 전투에서 특공조를 이끌고 적 기관총 진지에 수류탄을 투척하여 고지 점령에 기여한 안병섭 대한민국 육군 이등상사(전투당시 일등중사)를 ‘2025년 1월의 6‧25남침전쟁영웅’으로 선정했다. 1924년 2월6일, 경기도 파주시 장단면에서 출생한 안병섭 이등상사는 1949년 10월18일 자원입대하였다. 이후 국군 제1사단에 배치되어 38도선에서 경계 임무 중 6‧25남침전쟁이 발발했다. 1951년 10월29일, 국군 제1사단 12연대장은 임진강에서 중공군의 공격이 임박했음을 알고 두매리 고지 일대의 방어를 위해 2대대 5중대를 배치했다. 두매리 고지는 임진강 북안 대덕산 동쪽에 있는 해발 140미터(m)의 요지로, 적의 활동을 감시하기에 적합하고 향후 공세의 발판이 될 수 있는 중요한 지형이었다. 12월28일 오후 4시, 중공군 제188사단 523연대는 박격포 지원 아래 두매리 고지에 기습공격을 감행, 3일에 걸쳐 고지를 뺏고 빼앗기는 치열한 공방전에도 불구하고 아군은 적의 압도적인 파상공세에 12월 30일 고지를 넘겨주고 물러나야 했다. 제1사단 12연대는 다음 해 1월 3일, 고지 탈환을 위해 반격에 나섰으나 중공군의 완강한 저항에 부딪혀 고전했다. 사단장 박임항 준장은 예비대로 대기 중이던 제15연대에 탈환 임무를 부여했다. 제15연대 9중대 2소대 선임하사관으로 공격부대의 선두에 선 안병섭 이등상사는 4명의 특공조를 편성하여 적 기관총 진지에 수류탄을 던져 파괴하는 전공을 세웠다. 이 과정에서 부상을 입었지만 그의 활약으로 15연대는 기세를 몰아 공격에 나섰고, 두매리 고지에 이어 122고지, 148고지를 연이어 탈환할 수 있었다. 안병섭 이등상사는 이후에도 임진강 방어전과 지리산 지구 무장공비 토벌 작전, 연천군 왕징면 일대 전투에 투입되어 많은 전공을 세웠지만, 1952년 11월28일 야간 수색 작전 중 적의 기습으로 가슴에 총탄을 맞고 전사했다. 정부는 그의 공적을 기려 이등상사로 1계급 특진과 충무무공훈장(1952년)을 수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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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RISIS M
    2025-01-08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504] 누가 뭐래도 우리는 소중한 친구들⑤
    [시큐리티팩트=김희철 컬럼니스트] 1913년 서울에서 태어난 운보 김기창 화백은 초등학교 1학년 때 장티푸스로 청각을 잃었지만, 불굴의 의지와 자기혁신으로 ‘청록산수’ ‘바보산수’ 등 한국화의 독보적 경지를 개척하며 20세기 한국의 대표적 화가로 활동했다. 어린 시절인 초등학교 때 청각을 잃은 운보의 고통은 육체적인 것에만 그치지 않았다. 일제 강점기에 활동했던 데 따른 친일시비, 동족상잔의 비극인 6·25남침전쟁이 갈라놓은 형제간 이산 등 우리 현대사의 아픔, 그것의 현장 집합체이었다. 이런 역경을 그 특유의 바보스럽고 천진한 웃음으로, 때론 야생마 같은 광기로 털어버리며, 자기보다 어려운 이들에 대한 사랑과 예술로 승화시킨 것이 화가로 뿐만 아니라 운보 생애의 위대함이었다. 운보는 1930년 이당 김은호 문하에 든 지 6개월 만에 조선미술전람회(선전)에 입상하며 천재성을 인정받은 이래 ‘청록산수’와 1980년대 말 봉걸레로 그린 초대형 추상화 ‘심상예술’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새로운 작품세계를 보여왔다. 천주교로 개종한 운보 김기창 화백은 ‘최후의 만찬’ 등 예수님의 일대기를 특이하게도 화풍뿐만 아니라 외모나 복장, 배경을 모두 조선조의 것으로 바꿔 그려서 신선한 충격을 주기도 했다. 그의 이 같은 예술적 성취의 뒤안에는 역시 탁월한 한국화가였던 부인 박래현(1976년 작고)의 동지애(同志愛)적 내조가 있었다. 또한 운보는 30만 청각 장애인들에게 희망의 빛이었고, 대부였다. 그는 1980년 한국농아복지회를 설립, 목공 도예 등 기술을 가르치고 취업을 알선했으며 해외에서 열리는 청각장애인 스포츠대회 등에 참가비를 부담하기도 했었다. 역경을 예술로 승화시킨 김 화백의 ‘운보의 집’을 방문한 동기들 뿐 만 아니라, 생도 시절 훈육관이었으며 인접 사단장으로 근무하던 선 장군이 전화로 부탁하여 안내했던 그의 지인(대학시절 그림 전공자)들 모두도 김 화백의 특유의 바보스럽고 천진한 웃음, 때론 야생마 같은 광기가 표출되는 심오한 그림과 주변 풍광에 감탄하였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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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
    2025-01-06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503] 누가 뭐래도 우리는 소중한 친구들④
    [시큐리티팩트=김희철 컬럼니스트] 간신히 친구 부부들의 숙소가 해결돼었고, 금상첨화(錦上添花)로 필자가 근무했던 청주시와 청원군이 포함된 충절의 고장 충청북도에는 명승지가 즐비하여 안내할 곳은 많다는 것은 천만다행이었다. 한반도의 중앙을 동서로 관통하는 소백산맥을 넘어갈 수 있는 대표적인 고개인 죽령, 조령(이화령)과 추풍령이 있고, 청풍명월의 명성답게 충주호, 대청호, 쌍곡, 속리산 법주사, 단양팔경, 상당산성, 초정약수, 운보의 집 등에 많은 관광객들이 사계절 내내 즐겨 찾고 있다. 토요일 오후에 도착한 동기들을 우선 청주 시내 구경을 시킨 뒤에 인근의 상당산성을 거쳐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 촬영지였던 운보의 집과 초정약수로 안내했다. 특히 방문한 동기 부부들이 ‘운보의 집’을 찾았을 때 노환에 힘들어하며 아무말도 못했으나 휠체어에 몸을 싣고 산책하던 운보 김기창 화백을 만난 것은 큰 행운이었다. 왜냐면 한국화단의 거목 운보 김기창 화백은 동기들과의 만남이 있은 뒤 얼마 되지않은 2001년 1월23일 향년 88세로 충북 청원군(현 청주시 내수읍) 자택 ‘운보의 집’에서 숙환으로 별세했기 때문이었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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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
    2025-01-03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502] 누가 뭐래도 우리는 소중한 친구들③
    [시큐리티팩트=김희철 칼럼니스트] 사관학교에서 2년간 함께 생활하고 졸업시에도 같은 중대였던 동기들이 필자 대대로 부부동반으로 격려 방문하겠다는 연락은 참으로 감사한 소식이었으나 걱정이 앞섰다. 뜻을 같이하고 지향점이 같은 친구가 멀리서 찾아오면 이 또한 얼마나 기쁘고 행복하겠지만 그들이 1박 할 숙소 등 사전 준비가 마땅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한편, 필자가 위수지역 개념이 철저한 최전방에서 근무를 오래하다보니 휴일에도 비상시에 긴급 출동을 대비해서 부대 근처의 위수지역에서만 생활해야 하는 상황은 답답함과 지루함 및 안타까움을 느끼게 만들었다. 그래서 교통이 편리한 후방지역인 청주에 근무하는 대대 간부들에게 휴일 당직근무체제를 확고하게 유지한 가운데, 기타 간부들은 위수지역을 벗어나 서울 지역 등에 갈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반드시 비상 발령시에는 시간내 복귀할 수 있는 대책을 강구한 후의 위수지역 이탈을 묵시적으로 허락했었다. 때마침 필자의 특별한 노력으로 사전 계획에도 없던 대대 독신자 숙소(BOQ)를 신축하여 깨끗한 숙소가 준비되어있었다. ([김희철의 직업군인이야기(224)] 전투지휘검열도 끝나자 더 바빠진 청원대대(상) 참조) 필자는 독신자 간부들에게 동기들이 방문하는 토요일에 방을 제공하고 모두 고향에 다녀올 수 있도록 양해를 구했는데, 오히려 편하게 다녀올 수 있어서 모두들 좋아했다. 덕분에 방문객들의 숙소는 해결됐다.(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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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
    2025-01-02
  • [김희철의 CrisisM] 인구절벽 시대에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땅에 태어났다(하)
    [시큐리티팩트=김희철 컬럼니스트] 국민교육헌장은 이러한 긍정적인 측면에도 불구하고 내용이 반공과 민족중흥이라는 집권세력의 통치이념을 사회적 이상으로 삼고 그 실현을 지표로 삼았다는 이유로 비판을 받게 된다. 일부 정치인들은 국민교육헌장이 일본의 메이지시대에 제정한 군국주의적 ‘교육칙어’와 이념이 매우 유사하다는 이유로 이의 철폐를 요구하기도 했다. 그리고 국민교육헌장은 문민정부가 들어서면서 독재정권을 정당화하는데 사용됐다는 의식이 확산됨에 따라 1994년부터 기념식행사를 개최하지 않았으며, 이후 군사정권의 권위주의 잔재라는 미명 아래 초, 중, 고등학교 교과서에서 삭제되더니 급기야 2003년에는 대통령령 제18143호에 의거해 선포된지 35년 만에 폐지됐다. 구시대의 잔재로 전락한 것이다. 그러나 많은 선현들이 교육은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라 하지 않는가. 하지만 현재의 교육은 중심을 잡지 못하고 몹시 흔들린다. 학교 교육은 붕괴됐으며 가정교육 또한 엉망이 됐다. 얼마 전에 학생이 학교에서 체벌을 받은 데 대해 교사를 경찰에 고발하고, 부모는 교사의 멱살을 잡는 사건까지 벌어졌으니 오래 전에 학교를 다닌 사람들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교사들은 땅에 떨어진 교권에 대해 토로하고 학생들은 인권침해를 호소한다. 교육환경이 엄청나게 변했으나 우리의 교육계는 변화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갈팡질팡하고 있다. 더구나 가장 깨끗해야 할 교육계까지 썩었다는 말이 나오고 있으니 한심하다. 이는 국민들이 교육에 대한 확고한 이념이나 지표가 없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교육은 국가의 미래를 위해 가장 중요한 정책적 요소이다. 비록 국민교육헌장이 권위주의적, 국수주의적이라는 비판을 받고는 있지만 우리나라가 중진국으로 진입할 때 국민들의 의식 개혁에 나름대로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것에 대해서는 재론할 여지가 없다. 60~90세대들 중 필자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은 우둔한 탓에 아직도 국민교육헌장의 어느 부분이 비민주적인 내용인지 알지 못하고 있다. 또한 모름지기 국민교육이란 국민이 행복하고 나라가 부강해야 하는 것을 기본 조건으로 해야 한다고 굳게 믿고 있다. 따라서 몇 십 년 전만 하더라도 세계 최빈국이었던 우리나라가 오늘날 세계 경제대국으로 우뚝서게 된 것은 국민교육헌장이 국민들의 의식개혁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기 때문이라고 분명히 말하고 싶다. 항간에 “우리의 교육에는 철학이 없다”는 말이 종종 들린다. 요즘처럼 사회가 혼돈스럽고 교육계가 엉망으로 비틀거리고 있는 상황에서는 우리 국민들에게 시대상황에 적합한 교육이념이 절실하게 필요한 때이다. 그래서 국민교육헌장에 나온 문구처럼 ‘인류공영에 이바지’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우리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자유와 권리에 따르는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 가치관을 갖도록 해야 한다.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급속도로 바뀌어 간다. 특히 출산율의 급감에 따른 인구절벽 시대가 도래해 군에 입대할 청년들 마져도 부족한 안보위기를 초래하게 될 상황에서 혼인 외 관계에서 태어난 신생아가 1만900명으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이들을 포함해서 이 땅에 태어난 많은 사람들에게 국민교육헌장은 반드시 기억할 가치가 있다. 이제는 정말 국민교육에 대한 시대에 부합된 새로운 국민교육헌장이 나와 우리사회가 걸어가야 할 올바른 방향을 제시해야할 때가 아닌가 생각된다. 더불어 급변하는 산업화 사회를 정신없이 달려온 세대의 한 사람으로서 단지 “구시대 역사의 잔재로 간주되고 있는 국민교육헌장에 대한 정당한 재평가”가 이뤄지기를 간절히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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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RISIS M
    2024-12-31
  • [김희철의 CrisisM] 백마고지를 사수한 이성덕 육군 중위, 12월의 6‧25남침전쟁 영웅
    [시큐리티팩트=김희철 칼럼니스트] 국가보훈부는 6‧25남침전쟁 당시 강원도 철원군 백마고지에서 수차례 적의 공격을 막아낸 이성덕 대한민국 육군 중위(당시 소위)를 ‘2024년 12월의 6‧25남침전쟁영웅’으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1929년 1월 출생한 이성덕 중위는 육군갑종사관후보생 제9기로 군사교육을 받고 1952년 1월5일 육군소위로 임관, 국군 제9사단 30연대 3대대에 배속되어 11중대의 소대장으로 복무했다. 백마고지(395고지)는 강원도 철원 서북방 12km 지점 고암산과 효성산이 교차해 남쪽으로 흐르는 능선의 끝자락에 위치한 야산으로, ‘철의 삼각지(철원, 김화, 평강)’ 중에서도 철원평야를 내려다 볼 수 있는 전략적 요충지이자 물자 보급로로 국군에게 매우 중요한 지형이었다. 1952년 10월6일, 첫 전투가 개시되고 395고지를 지키던 제30연대는 다음날까지 중공군의 공격을 4차례나 막아냈다. 특히, 이성덕 중위는 중공군이 395고지로 남하하기 위해 반드시 건너야 하는 395고지의 북쪽 전초진지인 ‘화랑고지’를 지키고 있었다. 중공군은 화랑고지를 점령하기 위해 대규모 병력을 집중시켰으나, 이성덕 중위가 소속된 11중대는 중공군의 거듭된 공격을 막아냈다. 중공군은 후퇴하던 일부 병력을 화랑고지 공격에 투입하며 10월7일부터 다시 공격에 나섰다. 이에 탄약과 식수조차 부족한 상황에서 고지를 사수하던 제11중대는 포위되었고, 이성덕 중위는 소대원들을 독려하며 적의 공격을 막던 중 머리에 포탄 파편을 맞아 전사했다. 이후로도 일진일퇴의 치열한 전투가 이어지면서 한때 화랑고지를 포함해 395고지를 적에게 내주기도 했으나, 제28연대가 10월 15일 395고지를 되찾은 데 이어 제29연대가 화랑고지 선상의 전초진지를 확보하면서 백마고지 전투에서 승리했다. 백마고지 전투는 395고지를 놓고 열흘 동안 12번에 걸친 공방전이 벌어지고, 고지 주인이 7번이나 바뀔 만큼 6·25남침전쟁에서 가장 치열한 전투 중 하나이며 중공군이 패배를 자인한 전투이기도 하다. 전투 후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없이 돌가루와 흙더미만 남아있는 모습이 마치 백마가 누워있는 모습과 흡사하다고 하여 ‘백마고지’로 불리게 되었다. 정부는 백마고지 전투에서 활약한 이성덕 중위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1계급 특진(소위→중위)을 비롯해 을지무공훈장(1952년)과 화랑무공훈장(1954년)을 추서하였다.
    • 소통시대
    • CRISIS M
    2024-12-29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500] 누가 뭐래도 우리는 소중한 친구들①
    [시큐리티팩트=김희철 컬럼니스트] 2500년전에 20장 1만1,500글자로 작성된 고전이 지금은 중국을 넘어 전 세계인의 교양 필독서가 되었다. 그렇게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등 모든 영역에서 인간들의 표상을 정위치에서 잡아주는 것이 논어(論語)의 위력이고 존재 이유이다. 논어에서 107번이나 언급하고 있는 단어가 군자(君子)이다. 여기서 군자라 함은 삶의 표본이요, 우리가 살아가는 교양과 품격을 갖춘 인간상을 말한다. 의지만 있으면 온갖 어려운 역경을 극복하며 새로운 가치와 진리를 배우고자 하는 학습자이다. 따라서 이 시대가 원하고 미래지향적인 관점에서 추구해야 할 유형별 군자의 인간상을 정리했는데 그중에 두 번째는, 동지형(同志型) 인간으로 ‘유붕이자원방래(有朋而自遠方來)하면, 불역락호(不亦樂乎)아라’했다. 뜻을 같이하고 지향점이 같은 친구가 멀리서 찾아오면 이 또한 기쁨이 아니겠는가? 즉, “술과 밥을 먹는 친구가 아니라, 내가 곤궁한 처지에 있을 때 함께 해줄 수 있는 동지가 있다면 얼마나 행복한 일이겠는가?”라는 행간의 숨은 의미이다. 필자의 육군사관학교 생도시절에는 생도대가 지금과 달리 16개 중대로 편성되었는데 매년 소속 중대가 바뀌었다. 하지만 3, 4학년은 같은 중대에서 생활했다. 그래서 2년간 함께한 졸업 당시 중대의 동기들은 타 중대의 동기들보다도 유난히 돈독한 우정을 나눌 수 있었다.(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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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
    2024-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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