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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501] 누가 뭐래도 우리는 소중한 친구들②
[시큐리티팩트=김희철 컬럼니스트] 필자가 대대장 취임전에 대형 교통사고로 병상에 누워 있을 때에도 동기생 중에 3, 4학년을 함께한 졸업중대 동기들이 더 많은 위문과 격려를 보내주었고, 군생활을 마치고 전역한 지금도 가끔씩 부부동반으로 모여 우정을 나누고 있다. 대대장 근무를 하던 당시에 타 동기들은 대부분 모두가 먼저 대대장을 마치고 참모 보직으로 옮겼지만, 필자는 대대장반 교육과정에서의 교통사고 때문에 후유증 재활치료로 2년 가까운 시간을 보내고 뒤늦게 대대장으로 취임했다. 그런데 먼저 대대장을 마치고 여유를 갖게 된 졸업중대 동기들에게서 그들보다 2년 늦게 대대장직을 수행하는 필자의 부대를 부부동반으로 격려 방문하겠다는 연락이 왔다. 사관생도 시절에 3, 4학년을 함께한 졸업중대 동기들의 부대 방문은 ‘유붕이자원방래(有朋而自遠方來), 불역락호(不亦樂乎)’의 깊이 감춰진 의미인 “술과 밥을 먹는 친구가 아니라, 내가 곤궁한 처지에 있을 때 함께 해줄 수 있는 동지가 있다면 얼마나 행복한 일이겠는가?”라는 공자의 논어에 기록된 동지형(同志型) 인간상이 현실로 구현되는 순간이었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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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499] 지휘관은 이율배반(二律背反)적인 직책(하)
[시큐리티팩트=김희철 칼럼니스트] 조영호 사단장의 사고예방 최우선 부대운영 지침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병사 개개인의 신상파악을 보다 정확하게 파악하여 긴밀한 소통을 통해 사고예방에 대처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우선 대대의 60여명밖에 안되는 현역 전병력의 인적사항을 병원관리(兵員管理)용으로 전산화시켰다. 이는 탁월했던 후배 고(故) 김상철 대위(육사38기)의 포대에서 수년전에 활용했었지만, 당시에는 타부대는 아직 적용을 못하고 있던 상태로 사단에서는 필자가 최초로 시행했었다. 나중에는 일반화된 명암관리 프로그램을 활용하여 결손가정 등 필요한 요소을 검색하면 전 대대원중에 해당자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발전시켰다. 그러나 병원관리 데이터를 입력하려면 수시로 대대원들과 면담이나 소원수리함(대대장만 개봉 가능) 등을 통해 소통할 필요가 있었다. 하루는 화장실에 설치된 소원수리함에 한 병사가 면담을 요청하는 문건을 확인했다. 대대장실에서 아담한 키에 다소곳이 마주 앉아서 차를 한잔하던 00일병은 주저하다가 말문을 열였다. “대대장님, 이것을 차마 중대장에게도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라고 시작하자 흠칫 상관의 잘못을 고자질하는 애로사항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귀를 쫑긋 세웠다. 교육대학을 다니다가 입대한 그는 제대후에 초등학교에서 교편을 잡을 예정이었다. 그런데 입대 후에 생활관에서 단체 생활을 하면서 취침시에 모포가 쓸려내려간 동료의 허벅지를 볼 때마다 흥분되고 몸에 이상한 느낌이 든다며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다는 하소연이었다. 그 말을 들은 필자는 난감했다. 하지만 00일병의 입장이 되어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 대대장이 이 사실을 알았으니 그런 이상 징후 치료가 가능한지를 우선 알아보고 조치하겠다며 안심하라고 달래주었다. 그를 생활관으로 돌려보내며 걱정이 됐으나 연대 인사과장에게 먼저 상의를 했다. 다음날 연대인사과 선임하사가 대대를 방문해 00일병을 면담하고 병원 진료를 받게 하겠다며 데리고 갔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병원 치료차 대대를 떠난 병사는 의사 진료 후에 ‘성도착증세’로 확진이 됐고, 바로 전역 조치가 되었다. 한달 뒤에 그의 편지를 받았다. 전역해서 집에서 조용히 보내고 있다는 소식이었고, 말미에 병명 때문에 초등학교에서 교편을 잡을 수 없게 되었다는 원망도 적혀있었다. 지휘관은 휘하에 부하들을 지휘통솔하는 직책이다. 질식사 위험의 부하도 살리는 보람도 있었으나, 후자같은 경우에는 많은 타부하들을 위해 지휘관을 믿고 솔직하게 애로사항을 건의했던 부하를 아쉽게 전역시켜야 하는 아픔을 겪게 만드는 이율배반(二律背反)적인 괴로움을 겪게 만들기도 했다. 어쩔수 없이 대를 위해 소를 희생시키게 만들었지만 지금도 희생양이 된 00일병에게 미안함이 가슴 속에 깊이 자리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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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철의 CrisisM] 인구절벽 시대에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땅에 태어났다(상)
[시큐리티팩트=김희철 칼럼니스트] 최근 배우 정우성과 모델 문가비가 혼외자를 출산한 것이 세간에 관심을 끌고 있다. 통계청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10년 전 출생아 43만7000명의 전반 수준인 약 23만명이 2023년에 태어났고, 이중의 4.7%인 1만900명이 혼인 외 관계에서 태어난 신생아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혼인 외 출생아는 2013년 9300명에서 2020년 6900명까지 줄었다가 2021년 7700명, 2022년 9800명으로 3년 연속 증가했다. 다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평균 혼외 출생율인 41.5%에 비하면 낮은 수준이다. 게다가 계속 이어지는 저출산에 따른 인구절벽의 위기가 국가의 존망을 위협하고 있다. 한편 110년만에 최대로 많이 내린 첫눈으로 세상이 온통 하얗게 변했던 그날 저녁에 어릴적 친구와 소주한잔을 들이키며 건배를 하다가 우리가 철없는 강아지처럼 첫눈을 즐기는 삶을 아직도 영위함에 감사드리며 외친 말이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였다. 하지만 필자를 포함한 60~90세대들이 ‘~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는 암송문을 56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히 떠오르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혼인 외 관계에서 태어난 신생아의 역대 최대를 기록한 2023년의 1만900명를 포함해서 이 땅에 태어난 모든 사람들이 1968년 12월5일 국민교육헌장 선포의 가치를 반드시 기억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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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498] 지휘관은 이율배반(二律背反)적인 직책(중)
[시큐리티팩트=김희철 칼럼니스트] 부대 복귀를 고려해 우선 원거리부터 이동하여 야간순찰을 시작했다. 미원면과 낭성면을 지나 가덕면에 위치한 지파출소 예비군무기고를 향해 가고 있었는데 그날따라 짚차 출입문 틈으로 혹서기 삭풍을 예는 바람이 매섭게 파고들어 발밑의 히타의 온기도 느끼지 못할 정도로 추웠다. 저멀리 가덕면 지팔출소와 예비군 무기고가 시야에 들어오며 경계초소가 보였는데 그 안에 초병이 없었다. 일순간 날이 추워서 경계근무를 안하고 임시 생활관에 들어가 쉬고 있다는 생각이 스치며 경계근무에 소홀한 초병을 어떻게 혼을 내줘야 할지를 생각하며 은근히 부아가 치밀었다. 차를 세우고 경계초소로 들어갔다. 헌데 초병인 상근예비역은 초소 밖을 보며 경계근무를 하는 것이 아니라 초소안에 총을 세워놓고 쪼그리고 앉아서 깡통에 피워놓은 장작불을 쬐고있었다. 기습적인 대대장의 방문에 놀란 초병은 옆에 소총을 집어들면서 급하게 일어서서 ‘필...!’하고 경례를 했다. 경례구호도 제대로 하지못한 초병은 백지장처럼 얼굴이 하얗게 변했고, 그대로 앞으로 쓰러지며 필자의 품에서 잠시 기절을 했다. 필자는 초병을 안은 채 초소 밖으로 나와 찬바람을 맞히며 등을 두드렸다. 잠시후 표정이 정상적으로 돌아온 초병은 말을 할려고 했는데 그때까지도 제대로 정신이 돌아오지 못했는지 더듬거리고 있었다. 초병은 혹한을 견디기 위해 깡통에 피워놓은 장작불에 앞에 쪼그리고 앉아 장시간을 보냈는지 일산화탄소를 흡입하여 거의 중독되기 직전의 상황이었기 때문에 필자의 품으로 쓰러졌고, 간신히 정신을 차린 그는 더듬거리며 죄송하다는 말만 계속했다. 일산화탄소에 중독되어 비틀거리는 초병을 생활관 대기실로 옮기고 그곳에서 대기하던 다른 상근예비역으로 초병근무를 교대시켰다. 비록 후방지역 향토사단이지만 대대장으로 근무하는 필자도 당연히 무기고 경계초소 야간순찰을 돌아야 한다는 생각해 지속 감행했던 결과로 질식사 직전의 부하를 살렸다는 부듯한 보람이 엄동설한 속에서 가슴을 따뜻하게 만드는 순간이었다.<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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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495] 혹한기훈련과 연대전투단훈련으로 호국충절의 고장임을 증명④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고향이 같은 충청북도인 사단장과 군수는 보자마자 너무도 반갑게 인사를 했다. 충북 괴산군 청안면 출신인 사단장은 충북 청원군 북이면 출신의 군수와 이미 알고 지내던 사이였다. 사단장은 청원군수를 만나자마자 군의회 의장과 함께 훈련장을 방문해서 비행장 방어시에 야간 침투하는 적들을 격멸하기 위해 필요한 탐조등 35셋트(630만원 상당)을 구매하여 기부해준 것과 지난번 낭성면 예비군 무기고 신축 예산(약 2000만원) 지원, 그리고 사단에서 필요한 모래를 미호천에서 채취하도록 승인해준 것에 대해 감사함을 표했고, 분위기는 상승고도를 탔다. 덕분에 훈련상황실에서의 현황보고는 부드럽게 마무리가 되었다. 그 두사람은 훈련상황실에서 나와 훈련장 텐트 현장을 함께 순시했다. 모두 시간에 쫒기는 중요 직책이었으나 그들은 할 이야기가 남았는지 현장 순시를 함께하다가 대대장 텐트로 다시 들어가 못다한 환담을 지속했다. 다음날 사단 상황실의 아침 상황보고에서 사단장은 청원대대의 훈련 현장지도시 중대장과 병 1인 다역화와 간부화 훈련 백브리핑에 대한 칭찬의 훈시를 쏟아내며 타부대도 참고해서 훈련에 임하라고 강조했다. 또한 발표한 병사는 포상휴가조치하라고 지시했다는 소문도 들렸고, 얼마뒤에 현장지도 결과가 공문으로 각 부대로 하달되어 대대원들의 사기가 최고로 고조되는 영광도 얻었다. 사단장의 동계 혹한기 훈련 현장지도 결과가 각 부대로 하달되자 연대 및 사단 실무자들과 타 부대장들은 “도대체 어떻게 했길래 사단이 들썩들썩하냐?”고 의문의 전화를 필자에게 계속 날려보냈다. 육본으로 전출간 전임 사단 공병대장과 수방사에서 함께 근무했던 장연석(육사35기) 선배도 소식을 들었다며 축하 전화를 주었다. 과거 최전방 대성산 기슭의 중대장 시절에는 혹한과 폭설 속에서 얼음집을 지어 숙영하며 적응훈련을 했었지만, 향토사단 후방지역인 충청북도는 전방만큼 기온이 떨어지지 않아 제대로 혹한기 훈련을 못했다는 아쉬움이 있었다. 하지만 사단장의 극찬으로 이번 혹한기 훈련도 유종의 미를 거두었다.(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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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철의 CrisisM] 11월의 6‧25남침전쟁영웅, 인천상륙작전의 영웅 ‘발도메로 로페즈 미국 해병 중위’ 선정
[시큐리티팩트 =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국가보훈부는 1950년 9월15일 인천상륙작전에서 고(故) 강재구 소령처럼 살신성인(殺身成仁)의 자세로 자신의 목숨을 던져 전우들을 구한 발도메로 로페즈(Baldomero Lopez) 미국 해병 중위를 ‘2024년 11월의 6‧25전쟁영웅’으로 선정했다. 1925년 8월23일, 미국 플로리다주 탬파에서 태어난 로페즈는 1947년 6월6일 해군사관학교를 졸업한 뒤 해병대 소위로 임관하였다. 1950년 6월 중위로 진급한 그는 6‧25전쟁이 발발하자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파병에 지원했다. 한국에 도착한 로페즈는 미 제1해병사단 5해병연대 1대대 A중대 소대장으로 복무하였으며, 1950년 9월15일 인천상륙작전에 투입되었다. 소대원들과 함께 해안에 상륙한 로페즈 중위는 선두에서 사다리에 올라 해안 방벽을 넘은 후, 전방의 북한군 벙커를 향해 수류탄을 던지던 중 적의 기관총 사격으로 우측 어깨와 가슴에 총탄을 맞고 쓰러지면서 수류탄을 떨어뜨렸다. 바닥을 기어 수류탄을 다시 집어 던지려고 했지만, 부상으로 멀리 던질 수가 없었던 로페즈 중위는 부하들의 생명을 위험에 빠뜨리는 것 대신 자신을 희생하기로 선택했고, 결국 수류탄을 끌어안으며 장렬하게 전사했다. 이러한 공로로 미국 정부는 1951년 8월 30일 미합중국 명예훈장(Medal of Honor)을, 대한민국 정부는 2023년 4월25일 대한민국 최고 무공훈장인 태극무공훈장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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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 (30) GOP부대의 ‘노루’ 트라우마와 GP의 '배신자들'
- ▲ 엄동설한의 추위와 싸우며 동부전선 GP에서 경계근무중인 국군용사들 [사진제공=국방부] 전방 부대근무시 노루에 얽힌 신비한 징크스와 트라우마 직속 상관을 내쫓은 GP부대원들과의 동거는 '위기 상황' 군 생활에서 危機를 好機로 전환시키는 지혜는 필수 덕목 [시큐리티팩트=김희철 칼럼니스트] 軍간부는 통상 1~2년 단위로 보직이 바뀐다. 일반 사회보다 보직이동이 빠른 편이다. 수평이동도 있지만 승진 또는 강등일때 희비가 엇갈리기도 한다. 대성산에서 근무한지 1년이 다되어 갈 즈음 필자가 소속된 연대가 전방 GOP연대와 교대하기 위해 전방으로 이동했고 대대는 DMZ작전을 전담하는 전초대대로 개편되어 철책선 지역에 배치됐다. 기존 GP소대들까지도 그대로 인수받아 전초대대는 일반 대대보다 훨씬 규모가 커졌다. 전성수 대대장(갑종출신)은 사단에서 최전방 작전을 담당하는 가장 중요한 대대를 책임지게 되어 의욕이 넘쳐났다. 부대가 새로운 임무를 맡게 되자 필자도 곧 GP장으로 투입될 것이라 예상하고 있었다. 대성산 앞에는 광활한 평야가 펼쳐있고 그곳에 거주하는 민촌, 재건촌 주민들은 민통선 내에 있지만 자유롭게 농업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알부자들이었다. 그곳에서 수색작전을 하다보면 간혹 넓은 들판에 한가롭게 뛰어노는 노루/고라니들과 마주치기도 한다. 펄떡 펄떡 뛰어가는 노루/고라니들은 꼭 곡예를 하는 듯 멋져 보였다. 어느날 수색에서 복귀한 인접 소대가 다쳐 쓰러져 있는 노루를 잡아온 적이 있었다. 마침 지나가던 대대장은 잡아온 노루를 보고 노발대발하며 그 소대장을 꾸짖고 놓아주라고 했으나 그 노루는 곧 죽고 말았다. 바로 그때 요란한 총소리가 한발 울렸다. 작전 후 복귀한 소대에서 총기 안전검사 중 오발을 한 것이었다. 업친데 덮친 격으로 약간 경사진 차고에서 정차되어 있던 5분대기조 차량이 기어가 풀리며 스스로 움직이다가 막사를 들이 받고서 멈추는 사고까지 발생했다. 인명사고는 없었지만 그후로는 노루를 보면 사고위험을 알리는 징크스 트라우마가 되었다. ▲ 민간인통제선 안에 있는 들판을 뛰노는 고라니(노루) [동영상 캡쳐] 부대 이동후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무렵, 중대장이 대대장 호출이라며 가보라고 말했다. 중대장의 아쉬워하는 눈빛을 보면서, 아마도 전방에 급한 일이 있어 GP로 투입될 수도 있겠다싶어 단독군장으로 복장을 갖추고 대대장실의 문을 두드렸다. “어...! 김중위 왜 단독군장으로 들어 왔어? 편한 복장으로 오지...”하면서 대대장은 미소를 지었다. 예상대로였다. GP장 중 한명이 소대 지휘에 문제가 발생하여 지금 바로 GP장을 교체할 필요가 있다는 기무부대의 조언이 있었던 것이다. 이에 따른 연대장의 지시를 받은 대대장은 필자를 교대하는 GP장으로 보내기 위해 호출한 것이었다. GP를 담당한 다른 중대로 보직을 이동하기 위해 그동안 정들었던 중대장에게 전출신고를 하고, 기존 GP장을 안전하게 복귀시키라는 임무를 받은 기무부대장의 짚차에 올랐다. 산길을 털털거리며 약 한시간 가까이 이동했다. 산 능선을 따라 형성된 산길에서 바라보는 주변은 모두 깍아지른 듯한 절벽이었다. 드디어 GOP철책 통문을 통과하여 GP에 도착했다. 아무런 예고 없이 기무부대장이 적과 마주한 DMZ내 GP를 방문하자 기존 GP장은 무척 놀란 모습이었다. 이동하는 짚차 안에서 기무부대장은 불시에 교체 투입하는 이유를 설명해주었다. 기존 GP장의 성격이 괴팍하여 욕설과 폭력이 난무하고 소대원들이 도저히 못 견디겠다고 소원수리를 하였고 심지어는 탈영하여 북으로 갈 생각까지 할 정도였다고 한다. 기무부대장은 기존 GP장에게 연대장 면담이 있기 때문에 임시로 대리 GP장을 긴급히 배치하고 연대본부로 이동한다며 GOP통문 밖 후방으로 함께 나갔다. 당장은 명목상으로 대리 GP장이었지만 직속상관을 내쫓은 소대원들과 함께 앞으로 적과 대치한 가운데 작전을 수행한다고 생각하니 소대원들이 괘씸하기도 했다. 전임자가 실질적으로는 보직해임되어 GP밖을 나간 뒤에 전 소대원들을 집합시켰다. 그리고 첫 한마디를 내뱉었다. “너희들은 자신의 아버지를 쫓아낸 배은망덕한 놈들이다”라며 후임인 필자는 “보다 더 엄격하게 규정을 준수할 것이며, 명령을 불복종하는 대원들에게는 가차없는 처벌을 내릴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그리고 이 배신자들을 단결되고 강한 나의 부하로 육성하고, 새로운 위기(危機)를 최선(最善)의 노력으로 호기(好機)로 만들어 앞으로 부여될 임무를 완벽히 수행해야 하겠다는 각오도 다졌다. 때마침 들려오는 북한의 대남 방송과 사람들의 발길이 끊어진 DMZ 자연속에 살고 있는 짐승들의 울음소리와 바람소리만이 필자를 반기면서 DMZ내의 외로운 GP장 근무는 시작되었다. 육군본부 정책실장(2011년 소장진급), 청와대 국가안보실 위기관리비서관(2013년 전역), 군인공제회 관리부문 부이사장(2014~‘17년), 현재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한국열린사이버대학 교수 주요 저서 : 충북지역전사(우리문화사, 2000), 비겁한 평화는 없다(알에이치코리아,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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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 (30) GOP부대의 ‘노루’ 트라우마와 GP의 '배신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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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 (29) 취준생들에게 들려주는 '작은 성공담'의 교훈
- ▲ 엄동설한의 추위 싸우며 동계훈련 중인 국군용사들 [사진제공=국방부] 동계 간부교육시 지독한 감기(危機)로 각종 회식에 불참, 교육 평가는 1등 인간사의 어려움, '처신'하기에 따라 좋은 결실을 맺는 호기(好機)로 전환 대대장을 기만했던 '완벽한 매복'으로 포상휴가를 떠난 분대원들 '작은 성공담' 통해 깨달은 '바른 직업(군인)관'...正直, 誠實, 最善 [시큐리티팩트=김희철 칼럼니스트] 일일신우일신(日日新又日新)은 사서삼경의 하나인 대학(大學)에 나오는 문구로서 학문이 하루하루가 다르게 날마다 진보함을 가리키는 말이다. 각 군의 부대도 동계에 간부교육을 통해 진보한다. 대성산(1175고지)은 주변의 적근산, 복주산, 화악산과 더불어 한겨울에 항상 최저점의 기온을 기록해 뉴스에 자주 등장한다. 따라서 전방부대들의 동계 작전준비는 유사시 적 도발 및 남침에 대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장병들이 안전하게 겨울을 보내기 위한 준비에도 많은 신경을 쓴다. 보온을 위해 창문에 문풍지와 비닐을 추가로 설치하고 눈 내린 도로가 얼면 식량보급 등 이동에 문제가 생겨 고립될 우려가 있어 격오지를 포함한 높은 고지는 헬기로 미리 식량과 연료를 수송하여 저장해 놓는다. 기온이 내려가 입술과 코에 고드름이 달리고 소변을 보면 얼음이 되어 떨어지는 한겨울 동안은 생존이 가장 중요하다. 반면 교육훈련과 작전에는 지장이 많다. 그래서 병사들은 경계근무와 눈 덮힌 도로 제설작업이 하루의 중요한 일과가 된다. 이 기회를 이용해서 각 부대는 제대별로 간부교육에 집중하게 된다. 마찬가지로 그해 겨울에도 사단은 장교와 부사관들을 사단 교육대에 집합시켜 부족하고 취약한 부분에 대한 재교육과 새롭게 변경되는 교리, 규정, 방침 등을 가르치고 지휘관의 의도와 방침을 숙지 시킨다. 긴장했던 소대장근무에서 벗어난 탓인지 간부교육에 입소했을 때, 필자는 지독한 감기에 걸려 고생했다. 매일 주간교육 후 야간이 되면 오랜만에 만나는 선후배나 동기들과 소주를 기울이며 회포를 풀 수 있는 기회가 많았지만, 고열에 기침까지 심해 즐거운 모임에 참석할 수 없었다. 어느 조직이나 경쟁은 존재하고, 일주간의 간부교육도 마지막날 평가가 있었다. 마지막날 시험이 있었는데 뜻하지 않게 1등을 했다. 아마도 남보다 성적이 조금 좋았던 것은 감기 때문에 매일 저녁 회식을 참석 못했던 덕택인 것 같았다. 일주일간의 간부교육을 마치고 복귀하자 새로이 취임한 대대장은 부대 명예를 높혔다며 바로 포상휴가를 출발하라고 해서 소대에 들려 중대장에게 신고하고 전방 배치 후 첫 휴가를 나갈 수 있었다. 모처럼의 자유를 만끽하고 소대로 돌아오자 생활관이 텅 비어 있었다. 1개 분대 전원이 자취를 감추었기 때문이다. 필자는 그 이유를 알고 '감동'과 '기쁨'을 만끽했다. DMZ 매복작전 오인사격 후, 매복시 철저한 교리 및 규정 준수가 강조되어 수시로 점검이 나왔다. 사실 GOP후방 FEBA지역에서의 매복작전은 침투한 적을 잡기 보다는 훈련에 가깝고 실탄도 장전하지 않고 공포탄만 장전해서 근무를 한다. 왜냐면 6~70년보다 무장공비의 활동이 급격히 감소되었고, 오히려 야간에 활동하던 아군 및 민간인에게 오발하는 사고가 종종 발생했기 때문이다. 필자가 포상휴가를 떠난 뒤, 상급부대 계획에 의해 종심지역(deep area) 매복작전을 우리 소대에서 나갔고 대리근무 중인 선임하사가 군장검사 후 분대장이 인솔하여 매복진지에 배치했는데 그날 대대장이 직접 매복실태를 확인하기 위해 현장을 급습하였다. 대대장이 매복 지점에 도착하여 주변을 둘러보았는데 아무도 없었다. “이놈들 매복작전을 지시했더니 정확한 지점도 모르고 어디 구석에 들어가서 쉬고 있겠구만…ㅊㅊ”하며 “소대장이 휴가를 가버려 군기가 해이해진 모양이군, 복귀 후 문책을 해야 겠다”고 중얼거리며 그 자리를 떠나려는 순간 바로 옆 숲에서 분대장이 불쑥 일어난 것이었다. 대대장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날이 어두워져 짚차 해트라이트로 비추어 찾았는데도 완벽한 위장으로 매복작전중인 병사들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진지 3개소와 크레모아 설치도 완벽했고 특히 배치된 화기까지도 위장이 되어있었다고 했다. 대대장은 “용장(勇將)밑에 약졸(弱卒)은 없어 그 소대장에 그 소대원들이다”며 극찬을 했고 매복 복귀후 분대원 전원이 포상휴가를 간 것이었다. 직업군인으로 취업을 하려는 취준생들은 자신의 존재가치는 자기가 자리를 비웠을 때에 그 진가가 발휘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그래서 남들이 안볼 때 더 잘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성실(誠實)한 근무자세이다. 이처럼 군 생활에서 겪었던 '작은 성공담'들은 3가지 교훈을 깨닫게 해준다. 필자는 3가지를 인생관과 직업관으로 살고 있다. 취준생들에게 참고가 됐으면 한다. 그 첫째는 정직(正直)이다. 정직한 것은 거짓말을 안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작은 욕심에 큰 것을 잃어 버리는 실수(小貪大失)를 하면 안된다. 안중근 장군도 견리사의 견위수명(見利思義 見危授命)이라고 했다. 둘째는 바로 성실(誠實)이다, 대해불기청탁(大海不忌淸濁)이라는 명언처럼 모든 것을 품어 안을 수 있어야 한다. 특히 타인이 안볼 때, 남들이 귀찮아 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고 더 잘할 수 있는 자세가 필요하다. 셋째로는 최선(最善)이다. 좋은 여건과 충분한 지원이 가능할 때에는 누구나 임무를 완수할 수 있다. 그러나 많은 전투로 손실이 생겨 소대원들이 부족하고 장비도 망가진 상황에서 중대장이 공격을 지시할 때에도 소대장은 불비한 조건에서도 임무를 완수해야 한다. 그것이 최선이다. 즉, 도전정신으로 임하면 위기(危機)는 호기(好機)가 되기 때문이다. 육군본부 정책실장(2011년 소장진급), 청와대 국가안보실 위기관리비서관(2013년 전역), 군인공제회 관리부문 부이사장(2014~‘17년), 현재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한국열린사이버대학 교수 주요 저서 : 충북지역전사(우리문화사, 2000), 비겁한 평화는 없다(알에이치코리아,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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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 (29) 취준생들에게 들려주는 '작은 성공담'의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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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28) 전두환 시대의 비사, 독도법 실패가 부른 비극
- ▲ DMZ내 아군 GP 및 북한군 민경초소 근무모습 [사진제공=국방부/동영상 캡쳐] 사기는 충천했으나 '독도법' 실패로 아군끼리 오인 사격하는 사고 발생 군내 사고사 감소 추세, 사회 부적응 등으로 인한 자살사고는 증가 야전 지휘관들의 고충, 신세대 병사들과 함께 외나무다리 건너는 심정 [시큐리티팩트=김희철 칼럼니스트] “삶(生)이란 소(牛)가 외나무다리(一)를 건너가는 것이며, 인생길은 아슬아슬하고 위태롭게 건너가는 고해(苦海)의 길이다”라고 어느 스님이 말했다. 군대를 경험한 직업군인 관련 칼럼을 쓰면서 지난 40년 군생활을 돌이켜보면 그 스님의 명언이 진리로 다가왔다. 1981년 늦가을, 전방 GOP부대의 DMZ(비무장지대)내에서 대형 사건이 발생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필자가 그 부대로 부임하기 1년 전에 북한군이 DMZ 아군지역인 442고지에 침투해 은거하다가 아군 수색조에게 발견되어 교전 후 북으로 도주한 사건이 있었다. 그 때 침투했던 적 1명을 사살하는 작전 성공으로 부대 전체의 사기가 고양된 적이 있어 GOP부대는 적을 잡겠다는 의욕이 한층 고무되어 있는 상태였다. 그날은 본부에서 DMZ 침투가 예상되는 GP앞의 지역에 공세적으로 근접하여 매복지점을 선정 계획했고 각 소대는 계획된 매복지점으로 투입토록 했는데, B소대는 원래 계획된 지점이 아닌 적들이 GP사이로 침투할 것이라 판단한 지점에 실제 매복진지를 배치하였다. 한편 A소대는 GP에 잠깐 들려 준비물을 재확인하고 다소 늦게 계획된 매복로로 투입하고 있었다. 잠시 후 해가 서쪽으로 떨어지고 어둠이 짙게 깔리기 시작할 무렵, 북한의 대남방송만 시끄럽게 떠들어대는 DMZ에서 요란한 총소리와 폭발음이 들려왔다. 본부에서는 B매복작전조로부터 “침투하는 적을 발견 교전 중”이라는 보고가 들어오자 “드디어 침투하는 적을 잡았다”라는 환호성을 올리며 기뻐했다. 그런데 바로 이어서 다른 매복작전조에서 “매복진지로 투입 중, 적의 기습을 받아 대응사격 중”이라는 보고를 접수하였다. ▲ 1980년대 DMZ 매복작전 시 '오인'으로 아군 간에 교전했던 상황도 아군 매복조끼리 오인으로 인해 교전하였고, 아까운 수명의 사상자도 발생한 것이었다. 물론 계획된 매복지점에 배치하지 않은 B소대와 지정된 시간을 준수하지 않고 지연 투입한 A소대도 잘못은 있지만, 후일담을 들어보면 각개 병사들은 긴급 상황에서 교육훈련 받은대로 전투행동을 잘했다는 칭찬도 들려왔다. 그후, 사관학교 선배였던 중대장은 보직해임됐고 대대장, 연대장도 징계를 받았으며 아까운 순직자의 장례도 모두 치루었다. 헌데 그 사건의 후유증은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사고 원인 분석결과 가장 먼저 야간 독도법 능력이 문제로 대두되었다. B소대 매복조가 매복지점을 잘못 찾아갔기 때문이다. 따라서 야간 사격 등 야간 전술훈련이 강화되었다. 그리고 아무리 그날 취약요소가 발견되더라도 복수의 매복조를 같은 통로로 투입하는 것은 배제하도록 통제하였다. ▲ 야간 사격하는 우리 장병모습 [사진제공=국방부] GOP부대 뿐만 아니라 후방의 예비부대에서도 매일 밤 야간 교육은 강화되었고 간부들의 야간 독도법 평가도 군단부터 제대별로 시행되면서 고난의 행군이 계속된 그해 겨울밤은 유난히도 더 춥고 바람도 모질게 불었다. 군 간부로 병사들을 교육훈련 시켜야 하는 책무가 있어 야간교육을 시키는 고단함을 토로했지만, 사실 군에서 순직한 아들을 둔 부모의 마음은 사고 후유증에 힘들어하는 군간부 보다 훨씬 더 아프거나 힘들다. 하지만 관공서와 언론가의 통계 데이터를 보면 최근에는 군대만큼 20대에게 안전한 곳은 대한민국 땅에 없다고 군 간부들은 주장한다 서울시가 2014년 발간한 '서울시민의 건강과 주요 사망원인' 통계에 따르면, 2013년 사망자는 모두 4만 2063명으로 2008년 이후 5년 연속 증가했다. 특히 20대 서울시민 155만 명의 0.055%인 861명이 암 및 교통사고 등으로 사망했고 그 중 51%가 자살로 생을 마감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통계를 군대와 비교해보면 2000년대로 접어들면서, 군대에서는 서울시보다 1/2 낮은 수준인, 20대 병사 50만 명의 0.022%인 124명이 사망했다. ▲ 국방부가 통계청 ‘e나라지표’를 통해 공개한 ‘1993~2013년 발생한 군 사망사고 현황’ 자료를 분석한 결과 한국전쟁 이후 군대에서 사망자 수를 표로 보면, 전쟁 직후에는 군대내 연간 사망자가 약 3000 명에 가까운 선이었으나 유신 및 군사정권을 거치며 1000여명 내외로 감소했다. 그후 2000년대 들어 연간 군 사망자 수는 100명대로 떨어졌다. 이때부터 노무현 정부 중반까지 사망 장병 수는 꾸준히 감소세를 보였다. 2005년 현역복무 병사의 0.022%인 124명까지 줄었던 군내 사망자 수는 이후 2006년과 2008년, 2011년에 소폭 증가하며 들쑥날쑥하는 추세를 보였다. 2006년에는 128명, 2008년에는 134명으로 사망자가 늘었다. 2011년에는 총 143명의 장병이 사망함에 따라 2003~2004년 수준으로 회귀하기도 있다. 2013년의 경우 사망 장병 수는 117명이며 차량(15건)·함정(21건)·화재(7건) 사고를 제외하면 대부분 자살(79)로 인한 사망으로 처리됐다. 최근 전체 군 사망자 수가 더 이상 크게 줄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자살률 증가에서 찾을 수 있다. 반면 화재, 폭발, 추락, 익사, 차량 및 항공·함정 사고로 인한 사망 장병 수는 계속해서 줄어들었다. 2013년 총 사망자 가운데 안전사고로 목숨을 잃은 장병 수는 37명으로 나타나 전체의 30% 수준으로 떨어졌다. 1993년 안전사고로 인한 군 사망자 비율이 59%였던 때와 비교하면 절반 수준이다. 훈련장비가 발달하고 장병 보호를 위한 안전장치가 강화됨에 따라 안전사고가 크게 줄어든 것이다. 2000년대 들어 군내 자살률이 증가한 데는 군대 문화가 사회발전을 따라가지 못하면서 군대 부적응자가 양산된 탓이라는 분석이 많다. 특히 신세대 장병들이 군대라는 단절된 공간에 적응하지 못하는 경향이 강해졌다. 이런 분위기를 반영하듯 최근에는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찬반 논란이 불거지며 징병제도 자체가 위협을 받고있다. 이러한 사회 및 국민적 요구가 높아가고 입대하는 장정들의 마인드와 성향도 다양하게 변화되었다. 게다가 팽배한 개인주의와 일부 ‘마마보이형’의 나약함까지 지휘부담으로 가중되어 간부들의 고충은 심화되고 있다. 과거 군대 경험자들은 “지금 군대는 군대가 아니라 보육원이라 걱정이다. 강하게 키워야 승리하는 부대가 된다”며 한탄하기도 했다. 4차 산업혁명과 4세대 전쟁으로 변화무쌍한 시대 속에서 입대하는 장정들이나 그 부모들 그리고 그들을 책임져야 할 군 간부들 모두 고해(苦海)의 인생길을 가고 있다. “삶(生)은 소(牛)가 외나무다리(一)를 건너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육군본부 정책실장(2011년 소장진급), 청와대 국가안보실 위기관리비서관(2013년 전역), 군인공제회 관리부문 부이사장(2014~‘17년), 현재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한국열린사이버대학 교수 주요 저서 : 충북지역전사(우리문화사, 2000), 비겁한 평화는 없다(알에이치코리아,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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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28) 전두환 시대의 비사, 독도법 실패가 부른 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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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27) '열혈사제'가 불러온 추억, 달콤한 불의와
- ▲ 각종 권모술수가 난무하는 가운데 정의를 구현하는 드라마 ‘해치’와 ‘열혈사제” [동영상 캡처] 급속행군으로 지친 소대간 사격 측정, 부정한 초과탄 사용으로 '성적 조작' 유혹 동기 소대장은 초과탄 불허하는 '정의' 선택해 꼴찌 우리 소대는 '선택권'을 선임하사에게 일임, 아직도 스멀대는 부끄러움 달콤한 불의와 험난한 정의 사이의 고민은 현재진행형..... [시큐리티팩트=김희철 칼럼니스트] 기업이나 부대에서 성과를 고양시키기 위해 CEO(최고경영자)나 지휘관들은 직원이나 부하들에게 선의의 경쟁을 유도한다. 하지만 최근 인기 드라마 ‘해치’, ‘닥터 프리즈너’나 ‘열혈사제’에서 보면 출세와 이익을 위해 권모술수와 불법을 서슴지 않고 행하는 모습도 적지않은 분노와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게 한다. “안일한 불의의 길보다 험난한 정의의 길을 택한다”라는 사관생도신조를 밤낮 외쳐되면서 갖 임관했던 야전 소대장에게도 실리와 명예의 갈림길에서 고민했던 추억이 있다. 나름대로 소대장으로 자리를 굳혀가던 시절, 상급부대에서 사단별로 1개 소대씩 지정하여 격동후 사격 측정한다는 소문이 있었는데, 대대장은 나를 호출하여 사단에서 우리 소대를 지정하였으니 준비를 하라고 지시했다. 남은 시간은 1주일밖에 없었다. 선임하사와 상의한 후 매일 10키로씩 뛰고 사격장에서 사격을 했다. 사격성적도 중요하지만 1시간 안에 전소대원이 낙오자 없이 들어와야 감점을 막을 수 있었기에 체력보강과 건강관리에 신경을 집중했다. 결국 잘 못 뛰는 일부병사들이 낙오할 것 같으면 건강한 병사들과 소대장, 선임하사가 각자 낙오할 병사들의 군장을 나누어 지고 같이 뛰기로 작전도 세웠다. 사격은 평소에 연습했기 때문에 10키로 완전군장 뜀걸음 후 호흡 조절에만 신경을 썼다. ▲ 야전군인들은 완전군장으로 10키로 뜀걸음후 격동후 사격측정을 한다. [사진제공=김희철] 측정 당일 각 사단 대표로 차출된 경쟁자중에 예비사단 소대장은 사관학교 동기였다. 오랜만에 만난 해후도 풀기 전에 통제관은 군장해체를 지시했고 내용물을 일일이 확인한 후, 출발장소에 집합시켜 정정당당한 평가와 수검자세를 강조 했다. 반가운 만남의 즐거움도 잠시, 치열한 경쟁에 돌입했다. 예상대로 10키로 구보에서 낙오자가 발생하자, 나는 낙오병사의 군장까지 추가로 둘러메고 뛰었다. 내가 군장을 추가로 들어주자 비실대는 다른 소대원들에게도 선임하사와 분대장이 가세하였다. 빈 몸으로 뛰는 낙오자를 끌고 뛰는 것은 숨이 턱까지 차오르게 만들었지만 동기생과의 경쟁이라는 생각에 오기가 생겼다. 간신히 목적지에 최종 낙오자 없이 도착하자 난 기진맥진으로 퍼져버렸다. 군장을 벗고 잠시 숨고르기를 할 때 선임하사가 다가왔다. 마침 타 사단 측정 소대 선임하사들도 잘 아는 사이라 정보가 있다고 했다. GOP사단과 예비교육사단과의 경쟁이라 당연히 GOP사단 소대는 연습량이 부족했다. 그래서 인접 사단의 소대는 각개병사에게 초과탄을 몰래 분배하여 성적을 올리려고 하니 이대로 했다가는 우리 소대가 꼴찌할 수도 있다며 우리도 나누어 주자고 건의했다. 용납이 안되는 건의였다. “안일한 불의의 길보다 험난한 정의의 길을 택한다” 라는 사관생도신조가 뇌리를 스쳐갔다. 나도 속물이 되어가는 단계로 접어든 것인가? 몰래 초과탄을 사용해 소속된 부대의 명예를 올릴 것인가? 아니면 나 개인의 정의로운 명분을 세우는 길을 갈 것인가? 갈림길에서 고민하고 있었다. 그때 통제관은 마이크로 휴식 끝 통보를 했고 소대원들은 모두 사선에 올라갔다. 잠시 망설이고 있는 사이에 사격 측정이 시작되었다. 약간의 휴식은 가졌지만 10키로 뛰고 온 상태이라 소대장이 직접 사격을 해봐도 표적에 명중률은 당연히 떨어졌다. 사격측정이 끝나고 성적을 발표했다. 다행히도 꼴찌는 면했다. 헌데 훈련을 많이 한 예비사단 소대가 GOP사단보다도 성적이 더 안 좋았다. 우승한 소대는 사기 왕성하게 군가를 부르며 승리의 쾌재를 불렀다. 우린 지친 몸으로 박수만 쳤다. 대대장도 아무 사고 없이 기본만 해준 우리 소대에게 “수고했다”고 격려 후 안전하게 복귀하라고 당부를 하였다. 우승을 못해서인지 돌아갈 때는 차를 지원해주지 않아 행군으로 부대에 복귀했다. 역시 부대 주둔지가 편했다. 복귀해서 군장을 원위치 시키고 총기 손질 후에 다시 정상 일과로 전환했다. 측정 후 며칠이 지났을 때 선임하사와 나는 측정간 노고를 위로하고자 저녁을 같이 했다. 그때 선임하사는 후일담을 이야기해 주었다. 인접 사단 소대는 초과탄을 많이 쏘아 일등을 했고, 정직하게 측정에 임한 예비 사단 소대장은 상급자로부터 심한 질책을 받고 머리를 박박으로 밀고 반성하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그는 자신은 정직하게 규정대로 했는데 질책한 상급자와 부정을 행한 타 사단이 문제가 있다고 항변도 했다고 한다. 혹시나 해서 “우리 소대도 초과탄으로 부정을 한 것이 아닌가?”라고 물었을 때, 선임하사는 미소만 지으며 “모른 척 하십시오”하고 대답을 회피했다. 필자는 그때 창피함과 고마움이 밀려왔다. 꼴찌한 동기소대장은 안일한 길보다 과감히 험난한 길을 선택했는데, 필자는 좀더 단호하게 못하게 말렸어야 하는데 나의 묵인하에 우리 소대도 부정을 행한 것이다. 반면에 나의 명분은 상실했지만 부대의 창피함은 피할 수 있었다는 것에 위안을 삼았다. 드라마 ‘열혈신부’에서 부장검사, 구청장, 경찰서장, 국회의원이 한 통속이 되어 이익 창출을 위해 온갖 만행을 저지르고 이것을 밝히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열혈신부의 모습을 보면서 부정으로 출세하는 속물들과 필자가 동일시 되는 자괴감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명예를 지킨 동기생에게 존경심도 떠올랐다. 당시 소대원들을 모아 놓고 구차한 변명을 했다. "우리 소대는 사단을 대표했기 때문에 초과탄을 쏘는 부정을 했지만 우리 소대자체 평가시에는 절대 부정은 안된다. 이번 측정을 거울삼아 좀 더 교육훈련에 매진하자"고 다짐을 했다. 끝 육군본부 정책실장(2011년 소장진급), 청와대 국가안보실 위기관리비서관(2013년 전역), 군인공제회 관리부문 부이사장(2014~‘17년), 현재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한국열린사이버대학 교수 주요 저서 : 충북지역전사(우리문화사, 2000), 비겁한 평화는 없다(알에이치코리아,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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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27) '열혈사제'가 불러온 추억, 달콤한 불의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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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 (26) 상급자는 우리의 또다른 적인가..?
- ▲엄동설한의 추위와 졸림과 싸우며 GOP경계근무중인 초병. [사진제공=국방부] 청송감호소 이송 앞둔 연대장 교육은 그들의 '반항'으로 난장판 돼 흉악범죄자들이 떠나간 침상에서 발견된 소녀 기도상과 기도 문구, 깊은 슬픔 느껴 [시큐리티팩트=김희철 칼럼니스트] 손자병법 10.지형편의 ‘視卒如愛子故 可與之俱死(시졸여애자고 가여지구사)는 부하를 사랑하기를 자식과 같이함으로써 생사를 함께할 수 있다’는 뜻이다. 얼마전 2작전사령관을 지냈던 이철휘 대장(학군13기)은 ‘4방향 리더십’을 강조 했었다. 아래는 부하, 좌우 옆으로는 동료, 위로는 상관까지도 관리하는 리더십이다. 직업군인 뿐만 아니라 조직사회에서 살아남으려면 부하에 대한 視卒如愛子(시졸여애자)도 중요하지만 상급자에 대한 진정한 충성심과 관리도 반드시 필요하다. 군생활시 GOP근무 경험했던 남자들은 회식자리에서 과거 경계근무 중 졸린 눈을 부릅뜨고 적 방향 감시보다는 후방으로부터 불시에 다가오는 순찰간부에 더 관심을 갖고 보초근무를 했다는 등 당시 상관의 흉을 안주삼아 소주 한잔 들이키는 경우를 종종 접한다. 하지만 “상급자는 우리의 잘못을 지적하고 혼내 주기만 하는 또다른 적이다?”라는 인식으로 초급장교시절을 시작했을 때, 선배의 따끔한 충고로 근무자세를 바꾸었고 그 덕에 오늘에 까지 이르게 되었다. 부대는 야간에 그 날의 당직사관을 남겨두곤 다른 간부들은 퇴근한다. 당시에는 주번근무제로 월화수목요일 당직을 하면 금토일요일은 다른 간부가 담당을 했었다. 마침 대대장 이취임식 전날 필자가 당직근무로 야간 점호를 취하던 중이었다. 소대별로 각개 병사 건강상태와 취침 준비를 점검하던 중 중대행정병이 내게 다가와 대대장님이 중대 막사에 오셨다는 전달을 해주어 잠시 점호를 중단하고 행정반으로 갔다. 대대장은 이임식 전날이라 각중대를 사모님과 함께 돌아보고 계셨다. 난 지금 점호 중이라고 보고 드리고 다시 돌아가 점호를 계속 취했다. 생도시절 점호는 하루의 일과를 마무리하는 신성한 행사라고 귀따갑게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사실은 점호를 철저히 제대로 못한다는 지적을 받을까 두려웠는지도 모른다. 점호를 마치고 중대 행정반에 돌아오니 대대장님은 복귀하셨고 인접부대의 사관학교 선배인 김형배대위(육사34기)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선배는 행정반의 병사들에게 잠깐 나가 있으라고 지시하시고는 나와 마주 앉았다. “김소위, 방금 대대장님은 이임 전날 그동안 지휘했던 부대에 애착이 있어 돌아보시는 것인데 자네는 상급자의 의도를 모르고 계속 점호를 하면 어떻게 하나?”하면서 “상급자는 무섭고 두려운 존재만은 아니다. 오히려 삼촌이나 아버지 같은 마음으로 상급자를 모셔야 한다네..”하고 충고를 해주었다. 돌이켜 보면 40년 가까운 군생활을 통해 모시던 상급자들의 조언과 도움이 없었으면 업무를 잘한다는 인정을 받거나 진급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부여된 임무가 어렵고 까다로워도 과거 모시던 상급자에게 조언과 협조를 부탁하고 추진하면 완벽히 추진할 수 있었다. 이 모든 것은 소대장 근무시절 인접부대 선배의 따끔한 충고 덕택에 근무자세가 바뀌며 가능했던 일이다. 비록 지금은 자주 뵙지 못하지만 항상 감사한 마음이다. 점호 당일에 필자가 오히려 지적 받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대대장님을 모시고 함께 점호를 취하며 그동안의 노고에 감사하는 식의 행사가 되었으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후회 막급이다. 역시 상급자는 하급자를 지적을 통해 혼을 내며 가르치지만 하급자는 그 지적을 오히려 감사하며 한 발 더 앞으로 다가설 때 상하가 일치되며 上下同欲者勝(상하동욕자승)의 길에 이르는 첩경이 될 것이다. 끝 육군본부 정책실장(2011년 소장진급), 청와대 국가안보실 위기관리비서관(2013년 전역), 군인공제회 관리부문 부이사장(2014~‘17년), 현재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한국열린사이버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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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 (26) 상급자는 우리의 또다른 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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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 (25) 연대전술훈련 평가서 '쉽게' 달성된 '남북통일'
- ▲ 연대전투단 훈련(RCT)평가시 산악침투하는 소대원들 [국방부 자료사진] “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벗이 있어 먼 곳으로부터 오면 또한 즐겁지 아니하냐)” 훈련중에 만난 옛 친구와의 해후, 적군 역할 맡은 소대장이지만 오랫만에 회포 풀어 훈련통제관, 규정위반이지만 "남북통일 됐다"면서 눈감아 줘 [시큐리티팩트=김희철 칼럼니스트] 논어(論語) 맨 첫장 학이(學而)편에 나오는 ‘유붕자원방래 불역낙호(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는 “벗이 있어 먼 곳으로부터 오면 또한 즐겁지 아니하냐”라는 뜻이다. 일주일간의 RCT 중 화악산 방향으로 공격을 마치고 방어 국면으로 전환 되었을 때 우리 소대는 강원도 사창리에 있는 두류산 정상에서 급편방어를 하고 있었다. 화악산까지 공격했을 때 사모님들이 주둔지에 오셔서 전 대대원들에게 저녁을 제공해주었던 따뜻한 고마움이 채 가시기도 전에 부대는 철수 명령을 받고 가을비 내리는 야음을 이용하여 급하게 두류산으로 이동했다. 우의는 걸쳤지만 장거리 이동으로 옷은 모두 젖었고 늦가을 추위는 마치 엄동설한 처럼 피부를 파고 들었다. 뜬 눈으로 덜덜 떨면서 밤을 지새워 방어진지를 구축했다. 날이 밝자 동녁으로 떠오른 태양이 젖은 옷과 마음을 말리고 있는데 두류산 서쪽 하단부에 배치된 3소대장 박정수소위의 전화가 왔다. “김소위 방어진지 편성 완료됐냐? 그러면 3소대 진지쪽으로 순찰 와봐라…”하고 대답도 듣기 전에 전화를 끊어버렸다. 난 무슨 중대한 정보를 교환할 것이 있나해서 통신병과 함께 인접 3소대 협조점으로 내려갔다. 박소위는 나의 손을 잡으며 밤새 고생했는데 진전 정찰을 나가자고 제의했다. 쌍방훈련이기 때문에 상대인 11사단에서 정찰나온 팀을 체포했나? 하는 의구심은 있었지만 방어진지를 넘어 상대연대가 진출해왔을 수도 있는 능선까지 갔다. 마침 그곳은 양지녁에 무덤이 있어 햇볕이 따사하게 내리쬐는 곳이었다. 아니나 다를 까…무덤에 도착하자 숲속에서 11사단 정찰조가 튀어 나왔다. 상황이 묘해지려는 순간 “어..? 용호야..!”하고 반가운 나머지 훈련 평가중이라는 것을 까맣게 잊고 서로 포옹을 했다. 잠시후 무덤 주변으로 각 소대장의 통신병들로 사주경계를 시키고 적군 소대장과 잔디에 털썩 주저앉아 회포를 풀었다. 상대 연대에서 정찰나온 소대장은 마침 육사 동기생이었고 3소대장과는 대구 대륜고교 동창생이라 서로가 잘아는 친구들이었다. 우리 셋은 둘러앉아 건빵을 안주삼아 수통에 담겨있던 소주를 나누어 먹으며 그동안의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런데 해후의 기쁨도 잠깐 때마침 지나가던 훈련통제관에게 들키고 말았다. 통제관 완장을 찬 고참 소령이 피아가 다정하게 담소하는 희안한 광경을 목격하고 “귀관들 지금 뭐하고 있나?”하며 다가왔다. 당황한 우리는 “죄송합니다. 마침 정찰나온 적 소대장과 서로 잘아는 사이고 오랬만에 만나다 보니, 잠시 인사를 나누는 중이고 곧 제위치로 돌아가겠습니다.”하고 복장을 챙겨 일어섰다. 통제관은 살짝 웃으며 “못본 걸로 할 테니 빨리 정위치해서 훈련평가에 임하게..” 하고 돌아서면서 한마디를 남겼다. “적과 아군이 반갑게 만나는 모습을 보니 여기는 남북통일 되었구만 .. ㅎㅎ” 같은 한민족인 남북간 통일도 이처럼 쉽게 풀리길 기대해본다. 끝 육군본부 정책실장(2011년 소장진급), 청와대 국가안보실 위기관리비서관(2013년 전역), 군인공제회 관리부문 부이사장(2014~‘17년), 현재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한국열린사이버대학 교수 주요 저서 : 충북지역전사(우리문화사, 2000), 비겁한 평화는 없다(알에이치코리아,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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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 (25) 연대전술훈련 평가서 '쉽게' 달성된 '남북통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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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24) 허무하게 떠나보낸 전우
- ▲ 연대전투단 훈련(RCT) 평가시 수색정찰하는 중대원들 [국방부 자료사진] 줄담배 연기 속에 허무하게 떠나보낸 전우에 대한 안타까움… [시큐리티팩트=김희철 칼럼니스트] 1981년 늦가을, 겨울 삭풍은 아니지만 산골바람이 옷깃을 여미게 하는 추위가 기승을 부릴 때 중대본부 화목난로 앞에 앉아 계속해서 줄담배를 피워대는 중대장의 손은 떨고 있었다. 지난밤 연대전투훈련 평가(RCT) 준비를 위해 물품을 구입하러 외출 나갔던 김하사가 싸늘한 시체가 되어 돌아왔다. 그날 오후에 평가준비 최종 군장검사가 연대장 주관으로 계획되어 있었으나 다음 대대로 조정되었고, 대대장에게는 사고 수습에 우선하라는 지시가 떨어 졌다. 훈련 평가를 위해서는 사소한 준비가 모두 필요했다. 특히 야간방어를 위해 견인 및 신호줄과 후레쉬 야간 필터, 건전지, 위장크림 등은 보급이 되지만 부족해서 필요수요를 채우기 위해서는 추가 구입이 필요했다. 어제 늦은 오후, 김하사는 내게 와서 우리 소대가 필요한 물품 목록을 달라고 했고 분대장들과 상의해서 군장검사시 추가로 필요한 목록을 넘겨주었다. 그는 목록을 받고 중대행보관이 바쁘기 때문에 자기가 대신 다녀온다며 뜻밖의 외출을 즐거워 했다. 부대에서 한시간 정도 내려가면 주변의 부대원들을 위한 구멍가게가 있다. 사실 없는 것이 없는 만물상이었다. 이미 RCT가 있다는 것을 알고 필요한 품목들을 이미 준비해 놓고 있었다. 물론 간부들이 퇴근하다가 가게에 들려 간단한 안주와 소주 한잔을 즐길 수 있는 휴식처이기도 했다. 물품을 모두 구입한 김하사는 그냥 복귀하기가 서운했는지 소주 한잔을 했고,내무반에 남아있는 동료들 생각에 소주 댓병을 추가로 구입해 등에 지고 부대로 복귀하고 있었다. 어느덧 야간 점호 시간이 되어도 김하사가 복귀를 안하자 대대에서는 걱정이되어 교육관에게 짚차를 내주어 찾아보라고 보냈다. 한편 김하사는 취기가 오린 채 복귀하다가 부대 쪽에서 짚차가 내려오자 음주를 들킬까봐 도로 옆 숲으로 숨었는데 마침 개울물이 흐르고 있어 몸을 숙여 물을 마실려다가 그대로 발목도 차지않는 개울에 얼굴을 박고 정신을 잃었다. 김하사의 복귀가 늦어지자 결국 전대대원을 기상시켜 주변 수색을 나갔다. 헌데 부대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도로가 옆 개울에 그대로 얼굴을 박고 죽어 있는 김하사를 발견했다. 군에서 각개병사들은 거의 매달 상급부대로부터 평가를 받는다. 우선 분대평가가 매분기에 있고 소대, 중대, 연대전술훈련 평가도 매년 있으며, 사단 및 군단급 부대는 지휘관 재임기간 치루는 전투지휘검열로 소대원들은 매번 시험 평가에 시달린다. 게다가 큰 훈련을 앞두고는 사전 예행연습 및 숙달과 준비사열이 더 피로를 가중시킨다. 이번에도 연대장 재임 기간 한번 있는 평가를 잘 받기 위해 준비하는 과정에서 생긴 불상사였다. 소식을 듣고 달려온 가족 중에는 신혼의 단꿈을 꾸던 아내와 갓 태어난 아기도 있었다. 울고불고하는 가족들 앞에서 중대장은 눈물만 흘리고 있었다. 하지만 군대는 그대로 흘러간다. 직업군인으로 한 개인이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순간의 음주로 발생한 불행은 안타깝지만 조직 전체는 부여된 임무를 계속 수행해야 한다. 대의멸친(大義滅親)이라고 했던가? 장례를 치루고 전우의 허무한 죽음도 뒤로한 채, 연대전술훈련 평가는 시작되었다. 끝 육군본부 정책실장(2011년 소장진급), 청와대 국가안보실 위기관리비서관(2013년 전역), 군인공제회 관리부문 부이사장(2014~‘17년), 현재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한국열린사이버대학 교수 주요 저서 : 충북지역전사(우리문화사, 2000), 비겁한 평화는 없다(알에이치코리아,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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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24) 허무하게 떠나보낸 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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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23) '마지막 삼청교육대'의 저리는 슬픔
- ▲ 지난 1994년 2월 15일 삼청교육대 진상규명 위원회 소속 회원들이 국회앞에 몰려가 배상법안 마련 등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사회정화를 명분으로 걸었던 5공화국 초기 삼청교육대, 수많은 희생자 낳아 [시큐리티팩트=김희철 칼럼니스트] 제 5공화국 초기인 1980년에는 사회정화라는 대의명분을 앞세워 ‘계엄포고령 13호’ 위반으로 6만명을 체포했고 그중 4만 3,599명을 삼청교육대에 입소시켰다. 이는 5.16쿠데타 당시의 ‘국토 재건단’과 마찬가지로 우리사회에 만연했던 정치 및 조직폭력배를 일거에 소탕하는 성과를 보였다. 하지만 삼청교육대는 선량하거나 정치적인 희생자들이 포함된 사망자 52명, 후유증 사망자372명과 상해자 2,768명이 발생하는 아픔을 남겼다. 필자가 소대장 근무했던 승리부대도 GOP민간인통제구역 안에 삼청교육대를 운용하며 선의의 피해자들이 포함된 범죄자들에게 정신교육 명목의 유격훈련과 진지공사 등을 시켰다. 사회가 안정되면서 정부는 경범죄자들은 모두 퇴소시키고 ‘81년 겨울이 되자 남아있던 고질적인 범죄 전과자들을 청송감호소로 이동시켜 통합관리하기로 결정하였다. 당시 삼청교육대 입소자들을 총 26개 사단에서 분산해서 운용했기 때문에 승리부대에서도 대상자 약 1500여명중 단계별로 교육 목적이 달성된 대상자들은 모두 퇴소하고 약 40명이 남아 있는 상태였다. 삼청교육대 잔여인원 40명을 청송감호소 입소 전까지 관리 살인, 강간, 폭력 등 흉악범죄자 집단 관리 맡아... 삼청교육대 입소하는 심정 사단에서는 민가와 동 떨어져 있는 우리 대대에서 삼청교육대 잔여 인원을 감호소 입소전까지 관리하도록 판단했고, 명령을 받은 대대장은 필자보고 그들을 맞이할 준비를 하라고 지시했다. 마침 대대에는 각 중대 막사들과 동떨어져 창고로 활용하던 폐 막사가 있었다. 소대원들을 데리고 창고에 보관되어 있던 물품들을 모두 옮기고 부서진 창문들과 침상을 보수하고 보온용 페치카를 정비하는 등 바쁘게 준비를 하고 대대장과 연대장의 사열까지 받았다. 하지만 필자는 그들을 사고없이 순화시켜 감호소로 보내기 위해서는 시설 정비 등 물리적인 준비 보다 소대원들의 절대적인 충성심과 복종심 등 강인한 군인정신으로 무장된 심적 준비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죽음의 순화교육 마지막까지 남아 있는 사람들의 죄질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었다. 살인, 폭력, 강간, 절도, 사기 등 이었다. 이들의 신상카드를 확인하면서 사실 17살에서 53살까지 다양한 연령 층으로 구성된 악마집단과 같은 이들을 어떻게 관리해야 할지 막막할 정도로 마치 내가 삼청교육대에 입소하게 되는 것 같은 심정이었다. 사실 그들을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한 50대 입소자는 부산 도로에 다니는 오토바이는 모두 자신의 것이라며 도둑질과 허풍을 당연하게 여기고, 어떤 40대는 하도 말을 잘해서 전문 사기꾼임을 자연스럽게 느끼게 하며, 얼굴에 칼자국이 있는 한 30대는 말조차 붙이기 험악하게 쌍욕을 입에 달고 다니는 등 각양각색의 골치덩어리들이었다. 탈영자 발생으로 사단 전체에 진돗개 발령, 인간적 대우해주려고 노력했던 필자, '배신감' 느껴 자정쯤 탈영자 복귀해 "길 잃었다"고 해명 마지막 남은 입소자들에게 정상인으로 생활할 수 있게 교육시키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단지 그들이 사고를 저지르지 않고 무사히 감호소로 이송 시키는 것이 목표였고 소대원들에게는 공식적인 대화 이외에는 개인적인 감정이 섞인 대화를 못하도록 통제했다 그들의 하루 일과는 아침 점호 후 내무반 보온을 위해 대성산에 올라 화목을 준비하는 것이 모두였다. 오전에 산에 올라 2미터 정도의 나무를 운반한 후 오후에는 반복된 일과를 진행했고 경계병들에게 철저히 인원 통제해 이탈자를 없도록 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오후, 산에 올라갔던 분대장에게서 무전 연락이 왔다. 하산을 준비하며 인원 체크를 했는데 한명이 이탈했다는 것이었다. 난 즉시 대대장에게 보고를 했고 사단은 전 부대에 ‘진돗개’를 발령하여 수색작전에 돌입했다. 그들을 인간적으로 대우해주며 동료의식을 심어주었는데 심한 배신감을 느꼈다. 잡히기만 하면 엄청 패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탈영자가 어떤 행동을 할지 몰라 수색조에게 실탄을 분배하며 경고를 했는데도 위협을 가하면 사격도 가능하다고 일러주었다. 훈련이 아닌 실제의 대간첩 작전이었다. 톱과 낫을 갖고 있어 수색조를 습격하면 소대원이 다치거나 생명이 위태로울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속이 타면서 수색조들을 지휘하다 보니 날이 어두워 졌고 사단에서는 통제를 제대로 못한 필자에게 호된 질책도 내려왔다. 내무반에 있는 입소자들에게도 그동안의 인간적인 모습이 아닌 경계 소대장으로 각 조별관리를 못한 조장들을 포함해 전체에게 질책을 하고 앞으로 통제가 더 심해질 것이니 각오하라고 경고했다. 1075고지인 대성산은 산이 높고 계곡이 깊어 가도 가도 끝이 없는 첩첩산중이다. 사단 전 병력은 대성산을 중심으로 봉쇄선을 형성하고 주변 도로에는 차량을 이용 계속 순찰을 돌려 벗어나지 못하게 운용하는 등 전체가 제대로 대침투 작전 훈련을 하게 되었다. 자정 가까이 되어 수용소 경계병에게서 연락이 왔다. 탈영자가 복귀하고 있다는 보고였다. 그는 지친 모습에 어깨에는 가느다란 화목을 메고 있었다. 산에서 길을 잃어 겨우 복귀했다며 ‘탈영의혹’을 펄펄뛰며 부인했다. 설명을 들으면서 도망가려고 했지만 끝없는 산속이라 날이 어두워져 그대로 복귀한 것으로 추정되었다. ▲ 삼청교육대 잔여인원이 청송 감호소로 떠난 날, 그들의 침상에선 기도문구와 십자가가 발견됐다. [사진제공=김희철] 청송감호소 이송 앞둔 연대장 교육은 그들의 '반항'으로 난장판 돼 흉악범죄자들이 떠나간 침상에서 발견된 소녀 기도상과 기도 문구, 깊은 슬픔 느껴 불교교리 중 삼법인(三法印)의 하나인 제행무상(諸行無常)은 “이 현실세계의 모든 것은 매순간마다 생멸, 변화하고 있다. 그러나 일체는 무상(無常)한데 사람은 상(常)을 바라는데 모순이 있고 거기에 고(苦)와 오해가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말이다. 시간이 흘러 어느덧 교육생들이 청송 감호소로 이동할 시기가 되었다. 대대장과 회의 결과 그들이 어떤 돌발행동을 할지 모르기 때문에 한시라도 빨리 조용하게 탑승/이동시키는 것에 최대 중점을 두고 생활관에서 한명씩 나오면 헌병이 수갑을 채워 신속히 차량에 태우는 방법을 적용하여 경계병력을 배치시켰다. 간신히 교육생을 다 태우자 마침 도착한 연대장이 정신교육을 시키겠다며 다시 하차를 지시했다. 건의를 했지만 순수한 입장에서 인상을 좋게 해서 보내야 한다는 의견에 우리는 따를 수밖에 없었다. 차에서 내린 그들은 통제가 되질 않았다. 탑승할 때 채웠던 수갑은 모두 해체되어 있었고 고함도 질렀다. “먼저 퇴소한 사람 중에는 자신보다 더 잘못한 것이 많은 사람도 있었는데 자신을 감호소로 왜 보내냐”면서 이동하는 것을 거부하고 바로 퇴소 시키라는 항의가 거의 난동 수준에 이르렀다. 결국 우리 경계병들은 외곽 경계만 하고 있는 상태에서 헌병들이 투입하여 제압을 하고 그들을 모두 탑승시켰으나 이미 출발장은 난장판이 되었다. 순수한 의도의 연대장 정신교육은 이미 물 건너간 상태였고 그들의 난동으로 오히려 연대장 신변이 위험할 뻔했다. 소동이 끝나고 모두 출발하자 우리 소대는 뒷정리를 시작했다. 온갖 흉악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이었지만, 그들이 떠난 자리를 정리하다가 발견한 것은 사무엘이 기도하는 ‘오늘도 무사히’사진과 십자가 카드가 붙어있는 침상이었다. 이때 가슴 속 깊은 곳에서 찡하게 번져오는 슬픔과 아픔을 느꼈다. 제행무상(諸行無常)이라 했듯이 변하지 않는 것은 없는 법인데, 삼천교육대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악마 집단인줄 알았던 그들도 인간이었다. 겉으로는 거친 말투와 상스런 언행으로 주변 사람들을 긴장시켰지만 속으로는 신 앞에 겸손히 무릎 꿇는 순수함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이 출발했던 그날엔 유난히도 하얀 눈이 많이 내려 마지막 삼청교육대의 저리는 슬픔을 위로해 주었다. 육군본부 정책실장(2011년 소장진급), 청와대 국가안보실 위기관리비서관(2013년 전역), 군인공제회 관리부문 부이사장(2014~‘17년), 현재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한국열린사이버대학 교수 주요 저서 : 충북지역전사(우리문화사, 2000), 비겁한 평화는 없다(알에이치코리아,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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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23) '마지막 삼청교육대'의 저리는 슬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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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방순 칼럼] 제2차 북·미 정상회담의 숨겨진 계산은 ‘중국 견제’
- ▲ ‘중국 견제’란 속내를 감추고 김정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이 2월 27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제2차 북·미 정상회담을 가질 예정이다. [일러스트 제공=연합뉴스] 동북아의 전략적 우위 지키려는 미·중 간 패권 경쟁에서 북한의 가치 부각 [시큐리티팩트=임방순 인천대 교수] 제2차 북·미 정상회담이 베트남 하노이에서 2월 27일부터 28일까지 2일간 개최된다. 회담 의제가 확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회담이 성공적일 것이라고 낙관하고 있고, 우리 정부도 진전을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긍정적 희망과는 달리 미국의 한반도 전문가들은 북한으로부터 의미 있는 핵폐기 약속을 받아 내기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좀 더 지켜봐야겠지만 이번 2차 회담도 1차 회담 때와 유사하게 대화 그 자체에 의미가 있을 것 같은 모습이 보인다. 그 이유는 북·미 양측이 공개적으로 서로에게 요구하는 ‘제재 해제 등 상응 조치’와 ‘비핵화 조치’를 넘어서 ‘중국 견제’라는 숨겨진 속셈이 있기 때문이다. 북한과 미국은 마주앉아 대화하면서도 중국과의 관계를 계산중이고 중국 또한 자신의 계산을 하고 있다. 특히 미국은 북한의 핵 위협보다 중국의 도전이라는 근본적 문제에 부심하고 있다. 미국은 동북아에서 중국의 부상을 억제하고 패권을 유지하려 한다. 북한을 이용해 중국을 견제할 수 있다면 미국이 동북아에서 확실한 전략적 우위에 설 수 있으므로 미·중 간 패권경쟁 시대에 북한의 가치는 부각되고 있다. 미국은 자국의 협력과 지원으로 경제 발전을 이루고 국교를 수립한 베트남 사례를 북한에 강조하면서, 핵 폐기 추진과 함께 미·북 간 관계 발전도 도모하고 있다. 양국 간 연락사무소 설치가 거론되는 실질적 이유가 여기에 있다. 북한, 중·소 분쟁 시절 ‘소련 카드’처럼 중국을 적절히 견제할 ‘미국 카드’ 필요 한편, ‘중국은 믿을 수 없는 나라’라고 김일성 시대부터 유훈으로 전해오지만 아직까지 북한은 경제적으로나 국제정치적으로 중국의 도움과 지원이 절실하다. 그럼에도 북한이 자신의 정체성인 자주와 주체를 유지하려면 중국의 영향력을 약화시키면서 점차 벗어날 수 있어야 한다. 즉 중국을 적절히 견제하기 위해 ‘미국 카드’가 필요한 상황인 것이다. 북한은 중·소 분쟁 시절인 5∼60년대 중국을 움직였던 가장 유용한 수단이 ‘소련 카드’였음을 이미 학습했다. 북·중 관계 전문가들은 “당시 중국은 북한이 소련의 세력권으로 편입되는 것을 막기 위해 북한의 모든 요구를 우선적으로 수용했다”고 말했다. 북한은 이러한 ‘중국 카드’를 활용해 당시 소련으로부터도 막대한 지원을 받는 ‘등거리 외교’를 벌였던 것이다. 과거 중·소 분쟁 당시처럼 오늘날 미·중 패권경쟁에서 북한이 중국을 견제하며 많은 지원을 얻어내는 방법은 ‘미국과 관계 개선을 하겠다’는 신호를 중국에 보내는 것이다. 이는 ‘중국이 북한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미국과 협력해 중국에 압력을 가할 수도 있다’는 의미다. 그리고 상황 진전에 따라 ‘중국 카드’를 미국에 사용할 수도 있다. 미국이 북한의 요구를 들어주면 북한은 미국과 관계를 발전시키면서 미국의 중국 견제에 협조할 수 있다고 제안하는 것이다. 북한은 2007년에 이미 김계관 부상을 통해 이런 의도를 미국에 밝혔다. 또 다른 이해 당사국인 중국은 북한이 자국의 통제를 벗어나 미국으로 기울어지지 않도록 회담 전 과정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중국은 북·미 관계가 개선되어 동북아로 미국의 세력이 확장되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 자국의 안보에 직접적인 위협이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북한을 중국의 통제력 하에 두려면 중요하게 대할 수밖에 없다. 김정은 정권 출범 이후 6년간 냉랭했던 북·중 관계가 1차 북·미 정상회담을 전후해 3차례나 정상이 만나는 등 급속히 복원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즉 중국은 국가이익이 걸려있기에 혈맹관계를 강조하며 북한이 미국에 밀착되지 않도록 주력하는 분위기이다. 중·소 분쟁 시절 중국의 입장과 다를 바 없고, 북한의 행태도 그 때와 유사하게 소련 대신 ‘미국 카드’를 중국에 사용하여 효과를 보는 상황이다. 회담 그 자체가 중요하나, 시진핑 의표 찌르는 북·미 경협의 큰 틀 나올 수도 이와 같이 제2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미국은 북한의 비핵화도 중요하지만 점증하는 중국의 도전을 억제하기 위한 북한의 가치에 주목하고 있으므로 ‘겉으로 보이는 부분’과 함께 ‘숨겨져 있는 속내’를 살핀다면 회담 결과를 조심스럽게 유추해 볼 수 있다. 첫째, 이번 회담은 1차 회담과 유사하게 북한 핵 폐기와 제재 해제에 대해선 원칙적이고 추상적인 합의를 하고 3차 회담을 기약할 가능성이 크다. 북·미 양측은 원하는 회담 결과를 얻을 수 없더라도 중국의 도전을 견제해야 하는 미국과 중국을 견제하되 지원도 받아야 하는 북한으로선 중국에 보여줄 상대가 필요해 회담을 하는 그 자체가 중요하다. 둘째, 북한은 2차 정상회담 이후에도 1차 정상회담 당시처럼 김정은 위원장이 중국을 방문해 시진핑 주석과 회담 결과를 공유하며 북·중 우호를 과시할 것이다. 북한은 중국의 도움과 지원이 계속 필요하고, 중국은 북한의 친미 행보를 사전에 차단해야 하는 상호 이해관계가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 핵은 미국과 중국을 상대로 경제적 이익과 체제 보장을 담보할 확실한 수단이기에 이번 회담에서 김정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이 시진핑 주석의 의표를 찌르는 비핵화 조치에 전격 합의하고 북·미 간 경제협력의 큰 틀을 이끌어낼 가능성은 여전히 존재한다. 북한 핵 폐기의 실질적 진전과 한반도 평화가 다가오길 기대해 본다. 인천대 외래교수(북한학 박사) 미래문제연구원 초빙연구위원 경희대 중국학연구소 연구위원 前 駐중국 한국대사관 육군무관 대만 지휘참모대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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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방순 칼럼] 제2차 북·미 정상회담의 숨겨진 계산은 ‘중국 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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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철의 Crisis. M]이재수 전 기무사령관 자결의 3가지 이유
- [시큐리티팩트 = 김희철 안보전문기자] 세월호 유가족 사찰 혐의를 받던 이재수 전 기무사령관이 자신의 구속영장이 기각됐음에도 불구하고 지난 7일 투신자살을 선택했다. 영장이 기각된 후에 극단적인 길을 간 사례는 매우 드물다. 그는 왜 그 길을 가야만 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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