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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520] 취임후 2년 동안 지속된 전술토의·시범을 급양관리로 완성②
[시큐리티팩트=김희철 칼럼니스트] 부대 주둔지 울타리는 블록담으로 설치되었는데 큰 대로변의 울타리는 블록 담장위에 원형철조망까지 설치되어 형태가 제대로 갖춰진 모습이었지만, 예비군 교장이 있는 산쪽의 노후된 울타리는 너무 오래되어 무너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전임 대대장이 담벽에 2미터 단위로 나무로 버팀목을 대어 울타리 전도를 간신히 방지한 상태로 지탱했었고, 이미 상급부대에 울타리 담벽 보강공사를 건의했지만 예산 부족으로 방치된 채 해를 계속 넘기고 있었다. 어느날 장마 폭우가 쏟아져 결국에는 산쪽 울타리 담벽 일부가 무너졌다. 마침 충청도 전체가 장마로 피해를 많이 입은 상태가 되어 군부대 피해도 파악했는데 이를 기회로 삼았다. 주임원사와 상이하여 산쪽 노후된 울타리 담벽에 받쳐놓았던 나무들을 제거하자 나머지 울타리도 모두 전도되었고, 폭우로 피해가 발생했다고 상급부대에 보고했다. 위기는 기회가 되었다. 상급부대 울타리 보강을 역대 대대장들이 수차례 건의했지만 예산반영이 안되었는데 장마폭우로 붕괴됐다고 보고하자 행정관서 및 군부대에서 울타리 신축 예산이 바로 책정되어 산쪽 울타리 담벽을 깨끗하게 보강할 수 있었다. 이로써 수명의 전임 대대장들에 걸쳐 10여년동안 개선되지 않았던 숙원사업이 달성되어 병사들의 그동안의 장마폭우 때마다 치루던 고생을 덜 수 있었고, 급양관리시범을 위한 대대 환경개선에도 도움이 되었다. 한편 노후된 부대 환경 개선을 위해 나무껍질과 적벽돌을 활용해 카페식 분위기를 조성한 식당을 확인하며 극찬했던 신임사단장 업무보고 때문에 아마도 필자 부대가 급양관리시범을 맡게 된 결정적이 사유가 되었고, ([김희철의 직업군인이야기(236)] “신임사단장 업무보고, ‘때의 흐름을 잘 알아서 타야’ 실천” 참조) 추가로 취사장에서 배출되는 오폐수 처리를 위해 브레옥잠 정화조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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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514] 망월폐견(望月吠犬)보다는 민관군 콜라보가 더 따뜻하게 만들어⑧
[시큐리티팩트=김희철 칼럼니스트] 상당산성 서쪽 끝자락 율량동에 있었던 ‘성심양로원’이 지금은 없어졌고 청주교구의 건물만 남아있지만, 필자가 청원대대장으로 근무할 때에는 경로수녀회 최상살 수녀님이 원장으로 봉사하던 곳으로 많은 무의탁 노인들의 마지막 여생을 보내고 있었다. 오송에 위치해 뇌성마비 환자들과 무연고 걸인들을 모아 생활하고 있던 ‘믿음의 집’과 마찬가지로 ‘성심양로원’도 대대에서 군기 위반자들이 발생하면 늘 군기교육 과정으로 보내어 봉사하게 했었고, 대대원들도 일손이 부족한 양로원에 수시로 방문하여 봉사활동을 했던 곳이었다. ([김희철의 직업군인이야기(232)] ‘난득호도(難得糊塗)’를 강권한 노마지지(老馬之智) 참조) 한편 필자의 고향인 평택에서 중학교 교사로 정년퇴직한 뒤에 집에서 소일하며 지내는 아버지가 불쑥 부대를 찾아오셨다. 우리 집은 동족상잔 비극인 6‧25남침전쟁시에 미군이 약 2만명의 희생을 감수하며 중공군을 지연시킨 장진호 전투 덕분에 20만명이 피난할 수 있었던 흥남철수로 온 식구가 자유대한의 품에 안겼던 월남가족이다. 마침 휴일이라 부친을 모시고 동네 목욕탕을 갔다. ‘믿음의 집’과 ‘성심양노원’을 수시로 방문하여 노인들과 환자들을 대상으로 봉사활동을 했지만 진정 가까운 부친에게는 소홀했던 필자가 한편 부끄럽기도 했었다. 그래서 평택의 시골집에서는 목욕을 자주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오래간만에 아버지 등을 밀어드리고 싶었다. 돌아가신 할머니는 다리에 피부병이 있었는데 부친도 마찬가지로 다리에 피부병을 앓고 계셨고, 본인이 참지 못하고 심하게 긁으셔서 일부는 피가 난 상처도 있었다. 필자가 그곳을 뜨거운 물로 씻겨드리자 너무도 좋아하셨다. 한참 등을 밀어드리고 있는데 갑자기 누가 다가왔다. 목욕탕 안이라 모두 옷을 벗고 있었는데 그는 완전한 복장 차림의 목욕탕 주인이었다. 그는 난처한 표정으로 “손님, 다른 손님들에게서 항의가 들어와 죄송하게 되었습니다. 어르신을 모시고 즉시 나가시는 것이 좋겠습니다”라고 공손하게 말을 전했다. 주인의 말을 들은 필자는 미안하기도 했지만 아버지는 전염병이 아니라 유전이라고 양해를 구했다. 하지만 계속된 주인의 요구에 어쩔 수 없이 급하게 아버지를 모시고 집으로 복귀했다. 아쉽지만 짧게라도 함께 목욕하며 등을 밀어 드린 것이 작은 보람이었고, 아마도 그때가 10여 년 전에 작고하신 아버지와 함께한 마지막 목욕이었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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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513] 망월폐견(望月吠犬)보다는 민관군 콜라보가 더 따뜻하게 만들어⑦
[시큐리티팩트=김희철 컬럼니스트] 부모산은 충북 청주시 흥덕구 비하동과 지동동에 걸쳐 있는 산으로 해발 232m의 작은 산이다. 본래 이산은 아양산, 악양산 등으로 불리웠다. 임진왜란 때 의병장 박춘무가 복대에서 의병을 일으켜 청주성과 아양산(부모산)을 탈환하여 그곳에 주둔하고 있었다. 그러나 박춘무에게 패전했던 왜병이 아양산에는 물이 없다는 것을 알고 산 주위를 포위하고 보급로를 차단했다. 작전이 보름 이상 길어지자 그 안에 갇힌 의병들은 굶어 죽는 사람이 속출하게 되었는데, 의병장 박춘무의 꿈속에 지팡이를 짚은 백발노인이 나타나 소나무를 가리키며 일어나라고 소리치자, 박춘무는 꿈에서 깨어나 군사들에게 소나무를 뽑게 했다. 소나무를 뽑자 식수는 물론 말에게 목욕시키고도 남을 만큼의 물이 솟아났다. 이것을 알게 된 왜병들이 물러났고 이때부터 부모산이라 부르게 되었으며, 이 우물을 모유정이라고 불렀다. 옛 문헌의 기록에 따르면 부모산성은 고을 서쪽 15리에 있고 석축산성으로 둘레는 2,427척, 성 안에 큰 연못이 있어 가물 때는 기우제를 지낸 연화사가 있었다. 이 산성은 오랜 세월에 많이 허물어져 옛 모습을 찾아보기 어려우나 둘레가 1,220m 나 되는 비교적 큰 산성으로 동서남북에 성문이 있었던 흔적만이 남아있다. 현재 성 안에 우물자리인 모유정 주변 참나무에는 주술신앙의 흔적인 금줄이 매어져 있다. 성 안에서 백제계의 토기조각, 통일신라시대의 토기 기와조각, 고려시대의 청자 파편 등이 발견되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 이 산성은 백제 초기에 당이산 토성과 함께 청주의 동서를 지키는 외곽방어 시설로 축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 후 통일신라 및 후삼국 시대에 기능을 발휘하였고 특히 고려시대에 몽고군이 침입했을 때 피난성의 구실을 한 유서 깊은 부모산성이다. 청주를 대표하는 상당산성과 부모산성이 함께 청주 시내를 동서로 감싸고 있고, 상당산성 서쪽 끝자락 시내에 경로수녀회가 임진왜란 때 부모산의 모유정처럼 간절하게 운영하는 성심양로원이 있었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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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512] 망월폐견(望月吠犬)보다는 민관군 콜라보가 더 따뜻하게 만들어⑥
[시큐리티팩트=김희철 칼럼니스트] 뿐만 아니라, 책임지역 내의 낭성면 지파출소의 예비군 무기고는 너무 허술했다. 이대로 방치했다가는 불순분자에 의해 피탈이 우려되고 지역 주민들도 불안하게 생각한다며 시급히 보강할 필요가 있었다 해당 예비군 중대장도 그동안 몇 번이고 반복해서 재신축을 상급부대에 건의했으나 연대 및 사단에 확인한 결과 예산 반영이 어렵다는 이유로 제대로 진척이 안되었다 이러한 상황을 고(故) 변종석 청원군수에게 자세히 설명하며 도움을 청하자 변 군수는 주저없이 군의회 의장이 낭성면 출신이니 의장과 협의해 함께 추진하자는 의견을 내놓았다. 이야기를 들은 의장은 깜짝 놀라며 “그러면 빨리 군수에게 건의해서 무기고 신축 예산을 의회로 제출하면 바로 심의해서 통과시키겠다”는 대답을 얻었다. 당시 예비군 무기고 신축 예산(약 2000만원)을 군청에서 받아내는 것은 타부대에서는 엄두도 못내는 사항이었지만, 군을 아끼고 사랑하는 변 군수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부대의 애로사항을 해결한 덕택에 낭성면 지파출소 무기고의 취약점이 보강되어 상급부대 회의시에 민관군 통합작전을 위한 효율적인 콜라보 조치로 전파되기도 했다. 또한 사단에서 개최할 ‘국군의 날’ 행사와 동계를 대비해 연병장 복토 및 정비 공사를 앞두고 모래가 많이 필요한데 미호천 모래를 채취하여 활용하려면 통제하는 정부기관의 승인이 필요했다. 육사 동기생인 사단 공병대대장은 효율적으로 민관군통합작전을 잘하는 청원대대가 청원군청에 직접 협조를 해달라는 부탁을 해왔다. 필자는 즉시 군청으로 향했고, 청원군수 집무실에서 사단의 애로사항 설명을 들은 변 군수는 사단에서 필요한 양만큼 미호천 모래 채취를 허용하라는 지시를 바로 내렸다. 다음날 사단 공병대대장은 애로사항이 해결되었다며 고마움의 전화를 보내왔다. 민관군통합작전을 위해서라면 아낌없이 협조할 것이라 믿음을 주었던 고(故) 변종석 군수의 애군심(愛軍心)을 사단에서도 인정한다는 생각에 너무도 감사했고 든든했다. 사단에서도 협조를 못하는 사항을 필자가 해결할 수도 있었던 따뜻한 민관군 콜라보의 성과에 대한 뿌듯하고 흐뭇한 미소가 가슴을 가득 채웠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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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511] 망월폐견(望月吠犬)보다는 민관군 콜라보가 더 따뜻하게 만들어⑤
[시큐리티팩트=김희철 칼럼니스트] 국군의 날 행사에 참석한 변종석 청원군수와 군의회 의장은 필자가 대대장으로 취임하여 시행한 예비군 교장 시범에 삼성 장군인 군단장을 비롯한 많은 장군들을 포함한 200여명의 타부대 주요직위자들이 시범참석을 위해 말단 대대까지 최초 방문한 것 등은 청원군을 빛낸 것이라고 극찬하며 덕담을 했다. 또한 국군의 날 행사 참석자들이 그동안 시범 등을 위해 고생한 대대원들에게 무한한 격려를 보내주어 대대 장병들은 보람을 느끼며 어깨에 힘을 주었다. 그래서인지 대대원들은 지역 유지들의 적극적인 지원에 대한 감사함을 표하며 국군의 날을 자축하기 위해 태권도, 총검술 시범, 파티 등을 함께 준비했었고, 참석자들과 행사를 준비한 모두는 매우 즐거워했다. 기념식 및 시범 관람 행사를 마치고 나무껍질로 내부 인테리어한 부대 식당에서 간단한 다과회 파티를 개최했다. 그동안 지역 기관장 및 유지들이 대대를 한두번 방문한 것도 아니다. 하지만 매번 부대 출입할 때마다 정문 앞의 교통 상황이 매우 위험하다는 것을 그들은 느끼고 있었다. 나무껍질로 내부 인테리어한 다과회 파티장에서 재향군인회장은 한진희 경찰서장에게 부대 정문 앞의 대로에 차량 소통이 많고 과속도 하고있어 매우 위험하여 사고예방 조치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역설했고, 참석한 지역 유지들도 입을 모아 대책으로 교통신호등 추가 설치의 필요성을 자연스럽게 의견을 개진했다. 이런 의견을 접한 군의회 의장과 경찰서장은 건설교통부와 협조하여 대대 위병소 앞에 교통신호등을 추가 설치하기로 약속했다. 얼마뒤에 건설교통부와 협조한 신호등 설치가 실제로 현실화되어 부대를 출입하는 방문객들이 보다 안전한 혜택을 누리는 따뜻한 민관군 콜라보가 구현됐다.(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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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510] 망월폐견(望月吠犬)보다는 민관군 콜라보가 더 따뜻하게 만들어④
[시큐리티팩트=김희철 컬럼니스트] 국군은 국민의 군대로서 국가를 방위하고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며 조국통일에 이바지 함을 그 ‘이념’으로 한다. 또한 ‘대한민국의 자유와 독립을 보전하고 국토를 방위하며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고 나아가 국제 평화의 유지에 이바지 함’이 ‘국군의 사명’으로 군인복무기본법(구 군인복무규율)에 명기되어 있다. 그러나 필자가 37년간의 군생활 동안을 돌이켜보면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라는 국군의 사명을 이행하는 노력보다는 오히려 근무하던 부대가 위치했던 지역의 지자체, 관공서 및 주민들로부터 적극적인 지원과 도움을 더 많이 받았다. 필자는 지역 유지들의 도움과 적극적인 지원에 대한 감사함을 표하려고 대대원들과 함께 태권도, 총검술 시범, 파티 등을 준비한 국군의 날 기념행사에 그들을 초청해서 약간의 보람을 느낄 수 있게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준비했던 국군의 날 행사를 통해 뜻밖의 ‘부대 앞 신호등 설치’라는 또 하나의 민관군 콜라보 성과를 올려 민관군이 함께하는 보다 따뜻한 세상을 만들 수 있었다. 지금은 없어지고 청주대대로 통합된 청원대대는 당시에 청주시 톨게이트에서 시내 진입시에 가로수 터널을 통과해 강서동 고개를 넘어 내리막길 남쪽에 바로 위치했다. 그곳은 인적이 드문 곳이라 차량들은 과속을 많이 했고, 대대의 정문으로 진입하려면 언덕을 넘어오는 차량을 주시하며 조심하며 좌회전하고, 또 정문 앞에서 정지하여 출입자 신원 확인도 해야하기 때문에 항상 교통사고 위험이 내재된 상태였다. 필자는 국군의 날 행사에 지역 기관장 및 유지들을 포함해 당시 친 형처럼 각별하게 지냈던 경찰서장 한진희 총경(전 서울경찰청장)도 초청했었다. 물론 교통사고 위험이 있는 대대 정문 앞에는 간부를 사전에 배치해 초청 손님들의 사고 위험을 예방하는 조치도 했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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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439] 준비 시간도 부족해 더 긴장했던 초도 업무보고의 반전④
-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민관군 통합작전이 중요시되는 향토사단은 사단장이 타부대를 방문할 때 지역 기관장들이 참석하는 사례가 많이 있었다. 이번에는 상급부대에서 업무보고시에 해당 지역 기관장들을 초청하지 말라는 지침이 있었다. 그래서 사단장 업무보고 있다는 사항을 지역 기관장들에게 전파하지 않았고 초대도 안했는데 청원군수와 의회의장이 불쑥 찾아와 난처하게 됐다. 상급부대 지침으로 필자가 곤란하게 됐다고 청원군수에게 복귀할 것을 권했지만, 사단장을 이렇게 개별적으로 만날 기회가 없다며 그들은 막무가내로 대대 현관 앞에서 기다렸다. 승용차에서 내리는 사단장의 표정을 유심히 살폈는데 역시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표정이었다. 연대장과 필자가 사단장에게 인사를 하자마자 청원군수와 의장은 한발 앞서 나서며 “사단장님, 기관장들을 초대하지 말라는 지시를 하셨다면서요. 하지만 사단장님께서 우리 지역에 오시는데 군수가 인사를 안드리면 실례가 되고 제 마음이 편치 않아서 이렇게 떼를 써서 나왔습니다. 대대장에게 뭐라고 하지 마세요..”라는 넉살에 대대막사 현관앞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할 수 없이 막사로 들어가 차라도 한잔하고 가시라고 권했지만 청원군수와 의장은 인사드렸으면 됐고 더있으면 업무보고에 방해된다며 바로 부대를 빠져 나갔다. 나중에 확인된 사항이지만 청원군수는 사단장에게 개별적으로 전화하여 업무보고 후에 사단장을 모시고 식사대접까지 했다고 전해졌다.(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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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439] 준비 시간도 부족해 더 긴장했던 초도 업무보고의 반전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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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438] 준비 시간도 부족해 더 긴장했던 초도 업무보고의 반전③
-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성실한 사람은 그냥 평범할 뿐이다.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으려면 ‘4성(전문·적시·창의·현장성)’을 가지고 업무를 추진하라고 전 연합사 부사령관을 역임한 이성출 대장(육사30기)에게 가르침을 받았고 지금도 잊지 않고 있다. 4성중 현장에 적용가능한 창의성이 타인들과 차별화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그래서 그동안 타부대에서 업무보고한 내용보다는 적시적이며 창의성 있는 분석 결과에 따른 앞으로의 지휘방향을 제시하는 것이 중요했다. 특히 동원분야의 전문가인 사단장에게 인정을 받으려면 전방사단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작전적 측면보다는 향토사단에 부합된 예비군 관련 내용들을 분석하여 발전시키는 방안에 착안했고, 급하게 확인된 예비군 총기번호 오류의 발견은 매우 고무적인 효과를 올릴 수 있었다. 또한 현역 4개중대와 예비군 23개 중대로 예하대가 많다보니 상황전파가 매우 어려운 상황이라 당시에 사회에서 막 유행하고 있던 ‘151전화사서함’ 시스템을 최초로 도입했다. 평시와 유사시 그리고 훈련시에 주기적으로 ‘151전화사서함’에 상황전파 및 지시사항을 입력하면 원거리에 떨어져 있는 예비군 중대장도 출근해서 비밀번호를 입력 후에 ‘151전화사서함’을 듣고 숙지하여 조치하도록 시스템을 구축했다. 특히 매일 아침에 필자가 중요사항을 직접 전화사서함에 입력하여 예하 예비군 중대장들이 대대장 목소리를 듣고 부대운영에 반영하도록 유도하였고 원거리 다수의 예비군 중대장들이 지휘주목을 하기에도 용이했다. 지금은 부대개편으로 해체되었지만 당시 청주시 강서동 가로수길에 위치한 청원대대에 드디어 사단장이 초도업무보고를 받기 위해 방문했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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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438] 준비 시간도 부족해 더 긴장했던 초도 업무보고의 반전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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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철의 CrisisM] 백선엽장군기념재단, '전쟁철학과 한미동맹’ 국제학술회의 개최(상)
-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백선엽장군기념재단은 지난 24일 오후 2시 서울 세종대로 한국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20층)에서 ‘백선엽 장군의 전쟁철학과 한미동맹’이란 주제로 제1회 국제학술회의를 개최했다. 이날 학술회의는 6·25남침전쟁 발발 74주년을 맞이하는 올해 사단장으로 전쟁을 시작해 육군참모총장으로 정전까지 전쟁의 현장에서 보여준 고(故) 백선엽장군의 전쟁철학과 현재까지 면면히 이어지고 있는 한미동맹의 역사적 뿌리를 재조명하는 의미있는 시간이었다. 회의에는 정운찬 전 국무총리, 권영해 전 국방장관, 이순진·최윤희 전 합참의장, 김상기 전 육군총장, 민병돈 전 육사교장 등 예비역 장성과 한미연합사단 부사단장 김정혁 준장 및 현역 장교, 학군후보생, 그리고 재단을 적극 지원하는 이기수 전 고려대 총장을 비롯한 후원인사 및 시민 등 200여명이 참석해 성황을 이루었다. 이날 회의는 가장 먼저 백선엽기념재단 이사장인 김관진 전 국방부장관의 기조사를 시작으로 한기호(4선, 육사31기)·인요한 국회의원과 백선엽 장군의 장녀 백남희 여사의 축사 순으로 진행됐다. 한기호 국회의원은 “그동안 백선엽 장군님을 비롯해 많은 부분의 역사가 왜곡돼 알려진 것에 대한 죄책감을 느낀다”며 말문을 열었다. 그는 “역사를 돌이켜 볼 때 청산리전투의 영웅인 김좌진 장군은 공산당에 의해 암살당했고 그나마 생존한 이범석 장군은 독립운동을 하다가 해방후에 귀국해서 국방부장관 및 총리를 역임하며 숙군정책을 통해 군내 좌익세력을 척결했기 때문에 우리 군이 6·25남침전쟁에서 전투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따라서 “친일파로 곡해하며 폄하시킨 백선엽 장군과 추가로 김종오 장군 등을 포함한 전쟁영웅들에 대한 재조명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백선엽장군기념재단 명예이사장 백남희여사는 축사를 통해 부하사랑에 각별했던 백선엽장군의 사례를 제시하며 백 장군의 뜻을 이어받아 현재 생존한 ‘참전용사들의 소원들어주기’ 사업을 추진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또한 뒤늦게 축사를 한 인요한 국회의원은 “세계 전쟁사를 볼 때 지휘관의 이름을 딴 작전은 지리산 공비토벌 작전에 투입해 남부군 이현상 등을 제압한 ‘백 야전전투사령부’가 유일하다”며 “장진호 전투에 참전했던 본인의 외삼촌도 참전 유엔군 후손 돕기운동을 주도한 백 장군을 존경하며 왜곡된 역사를 바로 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노동일 파이낸셜뉴스 주필이 사회를 맡아 6·25남침전쟁 중의 백선엽 장군과 미군, 전장리더십과 한미동맹, 한미동맹은 강해지고 있는가? 등 3가지 주제로 발표 및 토의가 진행됐는데, 그동안 공개되지 않았던 백 장군의 많은 에피소드가 가슴을 울렸다.(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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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철의 CrisisM] 백선엽장군기념재단, '전쟁철학과 한미동맹’ 국제학술회의 개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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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437] 준비 시간도 부족해 더 긴장했던 초도 업무보고의 반전②
- [시큐리티펙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업무보고서 초안을 거의 완성시킨 상태에서 보고연습을 하고 있는데 군수장교 역할을 겸직하고 있는 현역 중대장이 대대장실 문을 노크했다. 대대는 간편이기 때문에 각 중대장들을 현역으로 편성된 10명의 중대원들만 갖고 있고 나머지 요원들은 모두 동원되는 예비군으로 편성된다. 따라서 중대장들이 부족한 대대참모 역할을 겸직하고 있고 통합 중대장이 현역병 전체를 지휘했다. 군수장교는 사단의 지시에 의해 대대에 보유하고 있는 진공포장된 M16 총기탁본을 세밀하게 대조확인결과 중복된 총번 24정 발견을 발견했다는 보고를 했다. 필자는 업무보고 연습을 일단 중지하고 주임원사와 모든 간부들에게 대대가 보유한 진공포장된 탁본을 모두 확인하도록 지시했다. 그때부터 14시간동안 무기고를 열고 진공포장된 총기들의 탁본을 일일 확인하자 대대가 보유한 총기 4100정 중 259정이 동일하게 중복된 오류 총기번호임을 발견했다. 전산에 입력된 자료에는 동일한 총번 앞에 *표로 표시하여 구분해 놓은 것도 확인이 되었고, 동일한 총기박스는 대부분 타부대에서 인계된 무기였음을 발견했는데 주로 대부분이 국내에서 제작된 총기와 미군에게 인수받은 총기가 번호가 중복됨을 확인할 수 있었다. 부대 실태를 파악해서 분석 결과에 따라 앞으로 지휘방향을 제시하는 업무보고서에 긴급하게 포함시켰다. 연대에도 이렇게 확인한 진공포장 M16의 총기번호 오류를 보고할 시간도 없었다. 바로 다음날이 계획된 사단장 초도업무보고일이기 때문이었다.(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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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437] 준비 시간도 부족해 더 긴장했던 초도 업무보고의 반전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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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436] 준비 시간도 부족해 더 긴장했던 초도 업무보고의 반전 ①
-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군사령관 조성태(육사20기) 대장이 주관한 군사령부 전술토의에 이어 향토사단 대대의 연초 가장 중요한 예비군 교장 사열이 성공적으로 끝나자 바로 사단장 초도 업무보고가 기다리고 있었다. 취임후 첫 업무보고도 하기 전에 사단장 이상신 장군을 이미 여러번 만나 보고를 한 상태라 첫 보고는 아니지만 그래도 부대의 실태를 파악한 후에 대대장직을 어떻게 수행할 것인가를 초도 업무보고를 통해 밝히고 사단장의 추가 지침을 받아야 하는 관례상의 과정이었다. 먼저 전입와서 이미 부대를 잘 파악하고 있는 부대대장과 주임원사를 통해 예하 예비군 중대장들의 특성을 전해 듣고 본인이 직접 예비군 중대 사무실 23개소를 모두 방문하고 실태를 확인한 후에 사단장 초도 업무보고를 준비했다. 본인이 직접 방문하며 확인해보니 대대본부 막사뿐만 아니라 예하부대에도 많은 문제점들을 식별할 수 있었고 이들을 해결할 방도를 보고서에 담았다. 군사령부 전술토의와 예비군 교장 사열 준비에 혼신을 다해 고생한 대대원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어짜피 예정된 업무라 가능한 대대원들에게는 덜 수고하도록 필자와 참모들만에게만 임무를 주어 고민하며 열심히 준비했지만 아무래도 대대원들도 막사 주변 정리 등에 애를 많이 썼다.(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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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436] 준비 시간도 부족해 더 긴장했던 초도 업무보고의 반전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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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철의 CrisisM] 故 김웅수 육군 소장, 7월의 6‧25전쟁영웅으로 선정
-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국가보훈부는 1953년 6월29일부터 7월11일까지 강원도 철원군에서 벌어진 ‘화살머리고지(281고지)전투‘에서 탁월한 지휘력으로 중공군의 맹렬한 공격을 끝까지 막아내어 적의 의도를 좌절시킨 김웅수 대한민국 육군 소장(당시 준장)을 ‘2024년 7월의 6‧25전쟁영웅’으로 선정했다. 1923년 출생한 김웅수 소장은 1946년 군사경비대 군사영어학교 졸업 후 육군 소위로 임관하였다. 6‧25남침전쟁이 교착상태에 빠져있던 1952년 6월 제2군단 참모장을 거쳐 1953년 5월 국군 제2사단장으로 부임하였다. 1953년 6월, 적은 휴전에 반대하는 우리 정부를 압박하고 휴전협정이 조인될 때까지 최대한 많은 땅을 빼앗기 위해 ‘중공군 6월 공세 제2단계 작전’을 감행했다. 이때 중부전선 철원평야 ‘철의 삼각지’에서도 중요한 전략적 거점인 백마고지와 화살머리고지를 확보하려는 중공군의 공세가 거셌다. 그중 화살머리고지는 아군이 1951년 10월 ‘코만도 작전’에서 획득한 고지로 백마고지와 함께 임진강의 지류인 역곡천의 북안에 위치한 요충지로, 국군 제2사단은 1952년 12월 29일 철원지역에 투입되어 1953년 6월29일과 30일에 걸쳐 중공군 제73사단이 화살머리고지 2개 전초진지를 공격하자 치열한 공방전 끝에 이들을 격퇴하였다. 이 전투에서 약 400여 명의 인명 손실을 입고 물러간 중공군 제73사단은 1953년 7월6일, 1개 대대 병력으로 재차 공격에 나섰다. 7월11일까지 뺏고 뺏기는 치열한 전투를 벌인 끝에 아군은 화살머리고지를 사수하는 데 성공하였다. 휴전 조인을 앞두고 국군 제2사단이 거둔 마지막 승전이었던 이 전투에서 김웅수 소장은 초반에 적에게 빼앗긴 전초 진지를 탈환하기 위해 거듭 공격에 나섰음에도 실패하자 전략을 바꿨다. 좁은 공간에 소수 병력을 나누어 투입하는 대신 각 연대에 2개 중대씩 차출한 뒤 적의 진지에 대한 정면공격과 함께 후방에 대한 동시 기습작전을 펼쳤다. 또한 적이 예상하지 못하도록 심야에 공격함으로써 결국 적을 몰아내고 승리로 이끌었다. 이 전투의 공로로 대한민국 정부는 그에게 태극무공훈장(1954년)을 수여하였다. 1961년 육군 소장으로 전역한 김웅수 소장은 이후 미국 가톨릭대학교와 건양대학교 등에서 교수로 역임하였으며, 2018년 2월 향년 95세로 별세해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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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철의 CrisisM] 故 김웅수 육군 소장, 7월의 6‧25전쟁영웅으로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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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435] ‘김정일 얼굴이 그려진 샌드백’과 동굴 수색을 추가한 예비군교장 사열⑤
-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드디어 사단장이 부대를 방문하며 그해 예비군 교육을 위해 교장 준비 사열이 시작됐다. 사단장 이상신 장군은 갑종 197기로 수방사령부 동원처장 근무시에 장군으로 진급한 동원분야의 대가였다. 전체적인 예비군 교장 개선 사항을 필자가 보고했으나 현장에서는 과목별 담당교관인 예비군 중대장들이 직접 보고했다. 물론 사단장 옆에서 필자가 추가 설명도 간간이 병행했다. 하지만 과목별 교장을 직접 만든 해당 예비군 중대장들이 자신있게 사단장에게 보고하는 것을 옆에서 보면서 부대대장 이완목 소령이 얼마나 혹독하게 사전 훈련시켰는가를 느낄 수 있었다. 또한 타부대에 비해 유독 많이 설치된 간판과 샌드백, 섬건너뛰기 등 보조물들과 블록 및 폐타이어를 이용한 계단식 강의장 좌석 등 정성어린 훈련준비를 한 현장의 흔적들도 사단장을 흡족하게 만들었다. 이것은 당시 동원장교였던 장석우 대위의 치밀하고 철저한 준비와 주임원사와 예비군 중대장들을 비롯한 전 대대원이 휴일까지 반납하며 최선을 다한 노력의 결실이고 그 덕분에 청원대대를 더욱 빛나게 만들었다. 추후 실제 예비군 훈련시 교장별 이동코스에 설치된 ‘김정일 얼굴이 그려진 샌드백’을 한 대 치고 지나가던 예비군이 “야! 니놈 때문에 우리가 이렇게 훈련받느라 고생한다!”라고 외치자 함께 훈련받던 예비군들이 한바탕 웃는 모습을 보면서 대적관도 덩달아 확고해지는 보람도 느꼈다. 과목별로 보고를 받던 사단장은 직접 준비한 예비군 중대장들의 어깨를 두드리며 격려했다. 또한 사열을 마치고 대대장실에서 차를 마시며 필자에게 수고했다고 격려금도 주었고, 수행한 동원참모에게 이미 사열을 받은 대대들도 다시 이곳을 견학해서 교장 준비 상태를 참고해 추가 발전시키도록 지시했다. 대대의 연초 가장 중요한 예비군 교장 사열이 성공적으로 끝나자 그냥 조용하게 지나갈 수가 없었다. 사단장이 복귀하자 주임원사는 발빠르게 거창한 대대 회식을 준비했다. 지팡이를 짚은 DJ 대대장인 필자도 그동안 고생해서 첫 성과를 올린 부하들의 격려는 당연히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날은 어쩔 수 없이 필자도 대대장 취임후 첫 번째로 취할 정도의 과음을 했지만, 휴일까지 반납했던 대대원들과 함께 즐겁고 보람을 느끼며 하나가 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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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435] ‘김정일 얼굴이 그려진 샌드백’과 동굴 수색을 추가한 예비군교장 사열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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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철의 CrisisM]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6·25전쟁 이야기’ 독후감 시상식과 북콘서트③
-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작가 장삼열 한미안보연구회 사무총장은 북콘서트에서 “호국보훈의 달을 맞이해 전쟁을 모르는 세대가 우리 6·25전쟁만큼은 바르게 알게 됐으면 합니다”며 발간 배경 및 목적을 다음과 같이 밝혔다. “대한민국의 미래는 밝다. 하지만 동존상잔의 비극이었고 아직도 끝나지 않은 전쟁을 학교에서는 왜곡 축소하여 미흡한 실정이다. 그래서 이러한 사실들을 다음 세대에 알리기 위해 그동안의 연구 결과를 삽화와 사진 등과 함께 쉽게 대화체로 풀어낸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6·25전쟁 이야기’를 4년동안 준비해 지난 1월에 출간했다”고 말했다. 전쟁사를 전공한 정치학 박사이자 예비역 대령인 장삼열 한미안보연구회 사무총장(68)은 1979년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해 소위로 임관한 뒤 줄곧 전쟁사 연구에 매진해왔다. 육군대학에서 전쟁사 교관과 육군군사연구소 한국전쟁연구과장을 거쳐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에서 국방사부장을 지냈다. 또한 작가는 6·25남침전쟁을 직접 겪진 못했지만 1994년 소말리아 내전에 7개월, 2006년 이라크 전쟁에서 1년 1개월 등 해외 전쟁에 파견돼 참전한 경험이 6·25전쟁사 연구에 큰 도움을 줬다며 눈앞에서 총알이 날라다니는 모습에 익숙해지자 전쟁이 무엇인지 체감했다고 했다. 책은 6·25남침전쟁의 발발부터 휴전협상과 한미상호방위조약까지 이어지는 1129일간의 전쟁을 인천상륙작전 등 개별 전투를 중심으로 생생하게 묘사했다. 학도병 등 어린 나이에도 총을 잡은 참전용사들의 이야기부터 유엔군의 도움과 보훈의 필요성도 빼먹지 않고 조명했다. 작가는 “미래 세대가 6·25남침전쟁을 올바르게 알고 나라를 위해 희생과 헌신한 분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됐으면 좋겠다”며 북콘서트를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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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철의 CrisisM]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6·25전쟁 이야기’ 독후감 시상식과 북콘서트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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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434] ‘김정일 얼굴이 그려진 샌드백’과 동굴 수색을 추가한 예비군교장 사열④
-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과목별 교장간에 이동코스가 긴 곳은 예비군들이 지루하고 짜증을 낼 수도 있어 중간에 섬 건너뛰기를 설치하여 흥미를 유발시키고, 다른 코스에는 김정일 얼굴을 그려 넣은 샌드백을 주먹으로 한 대 치고 지나가며 스트레스를 풀 수 있도록 착안했다 또한 급경사를 오르는 구간에는 ‘유머가 그려진 간판’을 설치하여 지나가면서 미소를 띄울 수 있도록도 만들었다. 그리고 사로에 설치한 북한군 모습의 표적들을 군데 군데 설치하여 이곳이 훈련장임을 느끼게 하는 분위기를 조성했다. 이렇게 준비하여 그동안 칭찬을 들었으나 반면에 “기존에 설치된 교장 위치가 지그제그로 되어 혼선을 빚는 역행군 이동이라 생각되니 순환식으로 바꿔라”는 사전 지도방문한 부연대장의 지적도 있었다. 이에 사열을 며칠 앞두고 휴일을 반납하며 예비군 중대장들과 함께 추가 작업하여 완벽한 순환식 훈련장으로 탈바꿈시킬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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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434] ‘김정일 얼굴이 그려진 샌드백’과 동굴 수색을 추가한 예비군교장 사열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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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철의 CrisisM]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6·25전쟁 이야기’ 독후감 시상식과 북콘서트②
-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독후감 공모전 시상식을 마치고 대상을 받은 최지효 학생은 소감 발표에서 “이책을 통해 나라가 어떻게 지켜졌는 지를 분명히 알게 되면서 나라사랑 마음이 깊어졌으며, 저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나라를 빛내는 역할을 하겠다”고 다짐했다. 또한 초등부 금상인 김세진 학생은 심사위원 및 참석자들을 일일이 호명하며 본인을 뽑아준 것에 감사드린다고 말해 행사장을 웃음바다로 만들며, “저의 꿈도 장차 국방과학연구원으로 자유를 수호하는 인물이 되는 것입니다”라고 당선 소감을 발표했다. 이날 1부는 국민의례에 이어 김병관 한미안보연구회 회장의 환영사, 현인택 전 통일부 장관과 김재창 명예회장의 축사에 이어 공모전 시상식으로 축제분위기가 이어졌고, 2부에서는 테너 지명훈과 싱어송라이터 이유진의 축가와 ‘할들육(할아버지가 들려주는 6·25전쟁 이야기)’관련 퀴즈로 시작된 작가 장삼열 박사의 북콘서트가 진행됐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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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철의 CrisisM]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6·25전쟁 이야기’ 독후감 시상식과 북콘서트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