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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501] 누가 뭐래도 우리는 소중한 친구들②
[시큐리티팩트=김희철 컬럼니스트] 필자가 대대장 취임전에 대형 교통사고로 병상에 누워 있을 때에도 동기생 중에 3, 4학년을 함께한 졸업중대 동기들이 더 많은 위문과 격려를 보내주었고, 군생활을 마치고 전역한 지금도 가끔씩 부부동반으로 모여 우정을 나누고 있다. 대대장 근무를 하던 당시에 타 동기들은 대부분 모두가 먼저 대대장을 마치고 참모 보직으로 옮겼지만, 필자는 대대장반 교육과정에서의 교통사고 때문에 후유증 재활치료로 2년 가까운 시간을 보내고 뒤늦게 대대장으로 취임했다. 그런데 먼저 대대장을 마치고 여유를 갖게 된 졸업중대 동기들에게서 그들보다 2년 늦게 대대장직을 수행하는 필자의 부대를 부부동반으로 격려 방문하겠다는 연락이 왔다. 사관생도 시절에 3, 4학년을 함께한 졸업중대 동기들의 부대 방문은 ‘유붕이자원방래(有朋而自遠方來), 불역락호(不亦樂乎)’의 깊이 감춰진 의미인 “술과 밥을 먹는 친구가 아니라, 내가 곤궁한 처지에 있을 때 함께 해줄 수 있는 동지가 있다면 얼마나 행복한 일이겠는가?”라는 공자의 논어에 기록된 동지형(同志型) 인간상이 현실로 구현되는 순간이었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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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499] 지휘관은 이율배반(二律背反)적인 직책(하)
[시큐리티팩트=김희철 칼럼니스트] 조영호 사단장의 사고예방 최우선 부대운영 지침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병사 개개인의 신상파악을 보다 정확하게 파악하여 긴밀한 소통을 통해 사고예방에 대처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우선 대대의 60여명밖에 안되는 현역 전병력의 인적사항을 병원관리(兵員管理)용으로 전산화시켰다. 이는 탁월했던 후배 고(故) 김상철 대위(육사38기)의 포대에서 수년전에 활용했었지만, 당시에는 타부대는 아직 적용을 못하고 있던 상태로 사단에서는 필자가 최초로 시행했었다. 나중에는 일반화된 명암관리 프로그램을 활용하여 결손가정 등 필요한 요소을 검색하면 전 대대원중에 해당자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발전시켰다. 그러나 병원관리 데이터를 입력하려면 수시로 대대원들과 면담이나 소원수리함(대대장만 개봉 가능) 등을 통해 소통할 필요가 있었다. 하루는 화장실에 설치된 소원수리함에 한 병사가 면담을 요청하는 문건을 확인했다. 대대장실에서 아담한 키에 다소곳이 마주 앉아서 차를 한잔하던 00일병은 주저하다가 말문을 열였다. “대대장님, 이것을 차마 중대장에게도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라고 시작하자 흠칫 상관의 잘못을 고자질하는 애로사항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귀를 쫑긋 세웠다. 교육대학을 다니다가 입대한 그는 제대후에 초등학교에서 교편을 잡을 예정이었다. 그런데 입대 후에 생활관에서 단체 생활을 하면서 취침시에 모포가 쓸려내려간 동료의 허벅지를 볼 때마다 흥분되고 몸에 이상한 느낌이 든다며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다는 하소연이었다. 그 말을 들은 필자는 난감했다. 하지만 00일병의 입장이 되어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 대대장이 이 사실을 알았으니 그런 이상 징후 치료가 가능한지를 우선 알아보고 조치하겠다며 안심하라고 달래주었다. 그를 생활관으로 돌려보내며 걱정이 됐으나 연대 인사과장에게 먼저 상의를 했다. 다음날 연대인사과 선임하사가 대대를 방문해 00일병을 면담하고 병원 진료를 받게 하겠다며 데리고 갔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병원 치료차 대대를 떠난 병사는 의사 진료 후에 ‘성도착증세’로 확진이 됐고, 바로 전역 조치가 되었다. 한달 뒤에 그의 편지를 받았다. 전역해서 집에서 조용히 보내고 있다는 소식이었고, 말미에 병명 때문에 초등학교에서 교편을 잡을 수 없게 되었다는 원망도 적혀있었다. 지휘관은 휘하에 부하들을 지휘통솔하는 직책이다. 질식사 위험의 부하도 살리는 보람도 있었으나, 후자같은 경우에는 많은 타부하들을 위해 지휘관을 믿고 솔직하게 애로사항을 건의했던 부하를 아쉽게 전역시켜야 하는 아픔을 겪게 만드는 이율배반(二律背反)적인 괴로움을 겪게 만들기도 했다. 어쩔수 없이 대를 위해 소를 희생시키게 만들었지만 지금도 희생양이 된 00일병에게 미안함이 가슴 속에 깊이 자리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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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철의 CrisisM] 인구절벽 시대에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땅에 태어났다(상)
[시큐리티팩트=김희철 칼럼니스트] 최근 배우 정우성과 모델 문가비가 혼외자를 출산한 것이 세간에 관심을 끌고 있다. 통계청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10년 전 출생아 43만7000명의 전반 수준인 약 23만명이 2023년에 태어났고, 이중의 4.7%인 1만900명이 혼인 외 관계에서 태어난 신생아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혼인 외 출생아는 2013년 9300명에서 2020년 6900명까지 줄었다가 2021년 7700명, 2022년 9800명으로 3년 연속 증가했다. 다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평균 혼외 출생율인 41.5%에 비하면 낮은 수준이다. 게다가 계속 이어지는 저출산에 따른 인구절벽의 위기가 국가의 존망을 위협하고 있다. 한편 110년만에 최대로 많이 내린 첫눈으로 세상이 온통 하얗게 변했던 그날 저녁에 어릴적 친구와 소주한잔을 들이키며 건배를 하다가 우리가 철없는 강아지처럼 첫눈을 즐기는 삶을 아직도 영위함에 감사드리며 외친 말이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였다. 하지만 필자를 포함한 60~90세대들이 ‘~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는 암송문을 56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히 떠오르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혼인 외 관계에서 태어난 신생아의 역대 최대를 기록한 2023년의 1만900명를 포함해서 이 땅에 태어난 모든 사람들이 1968년 12월5일 국민교육헌장 선포의 가치를 반드시 기억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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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498] 지휘관은 이율배반(二律背反)적인 직책(중)
[시큐리티팩트=김희철 칼럼니스트] 부대 복귀를 고려해 우선 원거리부터 이동하여 야간순찰을 시작했다. 미원면과 낭성면을 지나 가덕면에 위치한 지파출소 예비군무기고를 향해 가고 있었는데 그날따라 짚차 출입문 틈으로 혹서기 삭풍을 예는 바람이 매섭게 파고들어 발밑의 히타의 온기도 느끼지 못할 정도로 추웠다. 저멀리 가덕면 지팔출소와 예비군 무기고가 시야에 들어오며 경계초소가 보였는데 그 안에 초병이 없었다. 일순간 날이 추워서 경계근무를 안하고 임시 생활관에 들어가 쉬고 있다는 생각이 스치며 경계근무에 소홀한 초병을 어떻게 혼을 내줘야 할지를 생각하며 은근히 부아가 치밀었다. 차를 세우고 경계초소로 들어갔다. 헌데 초병인 상근예비역은 초소 밖을 보며 경계근무를 하는 것이 아니라 초소안에 총을 세워놓고 쪼그리고 앉아서 깡통에 피워놓은 장작불을 쬐고있었다. 기습적인 대대장의 방문에 놀란 초병은 옆에 소총을 집어들면서 급하게 일어서서 ‘필...!’하고 경례를 했다. 경례구호도 제대로 하지못한 초병은 백지장처럼 얼굴이 하얗게 변했고, 그대로 앞으로 쓰러지며 필자의 품에서 잠시 기절을 했다. 필자는 초병을 안은 채 초소 밖으로 나와 찬바람을 맞히며 등을 두드렸다. 잠시후 표정이 정상적으로 돌아온 초병은 말을 할려고 했는데 그때까지도 제대로 정신이 돌아오지 못했는지 더듬거리고 있었다. 초병은 혹한을 견디기 위해 깡통에 피워놓은 장작불에 앞에 쪼그리고 앉아 장시간을 보냈는지 일산화탄소를 흡입하여 거의 중독되기 직전의 상황이었기 때문에 필자의 품으로 쓰러졌고, 간신히 정신을 차린 그는 더듬거리며 죄송하다는 말만 계속했다. 일산화탄소에 중독되어 비틀거리는 초병을 생활관 대기실로 옮기고 그곳에서 대기하던 다른 상근예비역으로 초병근무를 교대시켰다. 비록 후방지역 향토사단이지만 대대장으로 근무하는 필자도 당연히 무기고 경계초소 야간순찰을 돌아야 한다는 생각해 지속 감행했던 결과로 질식사 직전의 부하를 살렸다는 부듯한 보람이 엄동설한 속에서 가슴을 따뜻하게 만드는 순간이었다.<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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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495] 혹한기훈련과 연대전투단훈련으로 호국충절의 고장임을 증명④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고향이 같은 충청북도인 사단장과 군수는 보자마자 너무도 반갑게 인사를 했다. 충북 괴산군 청안면 출신인 사단장은 충북 청원군 북이면 출신의 군수와 이미 알고 지내던 사이였다. 사단장은 청원군수를 만나자마자 군의회 의장과 함께 훈련장을 방문해서 비행장 방어시에 야간 침투하는 적들을 격멸하기 위해 필요한 탐조등 35셋트(630만원 상당)을 구매하여 기부해준 것과 지난번 낭성면 예비군 무기고 신축 예산(약 2000만원) 지원, 그리고 사단에서 필요한 모래를 미호천에서 채취하도록 승인해준 것에 대해 감사함을 표했고, 분위기는 상승고도를 탔다. 덕분에 훈련상황실에서의 현황보고는 부드럽게 마무리가 되었다. 그 두사람은 훈련상황실에서 나와 훈련장 텐트 현장을 함께 순시했다. 모두 시간에 쫒기는 중요 직책이었으나 그들은 할 이야기가 남았는지 현장 순시를 함께하다가 대대장 텐트로 다시 들어가 못다한 환담을 지속했다. 다음날 사단 상황실의 아침 상황보고에서 사단장은 청원대대의 훈련 현장지도시 중대장과 병 1인 다역화와 간부화 훈련 백브리핑에 대한 칭찬의 훈시를 쏟아내며 타부대도 참고해서 훈련에 임하라고 강조했다. 또한 발표한 병사는 포상휴가조치하라고 지시했다는 소문도 들렸고, 얼마뒤에 현장지도 결과가 공문으로 각 부대로 하달되어 대대원들의 사기가 최고로 고조되는 영광도 얻었다. 사단장의 동계 혹한기 훈련 현장지도 결과가 각 부대로 하달되자 연대 및 사단 실무자들과 타 부대장들은 “도대체 어떻게 했길래 사단이 들썩들썩하냐?”고 의문의 전화를 필자에게 계속 날려보냈다. 육본으로 전출간 전임 사단 공병대장과 수방사에서 함께 근무했던 장연석(육사35기) 선배도 소식을 들었다며 축하 전화를 주었다. 과거 최전방 대성산 기슭의 중대장 시절에는 혹한과 폭설 속에서 얼음집을 지어 숙영하며 적응훈련을 했었지만, 향토사단 후방지역인 충청북도는 전방만큼 기온이 떨어지지 않아 제대로 혹한기 훈련을 못했다는 아쉬움이 있었다. 하지만 사단장의 극찬으로 이번 혹한기 훈련도 유종의 미를 거두었다.(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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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철의 CrisisM] 11월의 6‧25남침전쟁영웅, 인천상륙작전의 영웅 ‘발도메로 로페즈 미국 해병 중위’ 선정
[시큐리티팩트 =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국가보훈부는 1950년 9월15일 인천상륙작전에서 고(故) 강재구 소령처럼 살신성인(殺身成仁)의 자세로 자신의 목숨을 던져 전우들을 구한 발도메로 로페즈(Baldomero Lopez) 미국 해병 중위를 ‘2024년 11월의 6‧25전쟁영웅’으로 선정했다. 1925년 8월23일, 미국 플로리다주 탬파에서 태어난 로페즈는 1947년 6월6일 해군사관학교를 졸업한 뒤 해병대 소위로 임관하였다. 1950년 6월 중위로 진급한 그는 6‧25전쟁이 발발하자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파병에 지원했다. 한국에 도착한 로페즈는 미 제1해병사단 5해병연대 1대대 A중대 소대장으로 복무하였으며, 1950년 9월15일 인천상륙작전에 투입되었다. 소대원들과 함께 해안에 상륙한 로페즈 중위는 선두에서 사다리에 올라 해안 방벽을 넘은 후, 전방의 북한군 벙커를 향해 수류탄을 던지던 중 적의 기관총 사격으로 우측 어깨와 가슴에 총탄을 맞고 쓰러지면서 수류탄을 떨어뜨렸다. 바닥을 기어 수류탄을 다시 집어 던지려고 했지만, 부상으로 멀리 던질 수가 없었던 로페즈 중위는 부하들의 생명을 위험에 빠뜨리는 것 대신 자신을 희생하기로 선택했고, 결국 수류탄을 끌어안으며 장렬하게 전사했다. 이러한 공로로 미국 정부는 1951년 8월 30일 미합중국 명예훈장(Medal of Honor)을, 대한민국 정부는 2023년 4월25일 대한민국 최고 무공훈장인 태극무공훈장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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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423] 교통사고 후유증을 극복하며 혹한속에 대대장 취임③
-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향토사단은 새해가 되면 가장 큰 이슈가 봄부터 시작되는 예비군 교육 준비이다. 그중에서도 겨울 동안 혹한 속에 방치되었던 교장을 신년 상급부대의 지침에 따라 새롭게 정비하여 사단장의 교장사열을 받는 것이 한 해의 시작부터 연말까지의 성과를 결정하는 최대의 관심사였다. 하지만 필자는 그동안 작전분야에서만 근무하여 생소한 임무였기 때문에 기존 참모들의 조언대로 시행할 수 밖에 없었다. 게다가 대분분이 필자보다 군 선배인 15명의 지역예비군 중대장과 8개의 직장예비군 중대장을 지휘하는 것도 부담스러웠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는 속담처럼 필자 옆에서 결정적으로 큰 힘이 되어준 고마운 전우가 있었다. 바로 부대대장 고(故) 이완목 소령(삼사14기, 전역후 마포부근에서 오토바이 사고로 운명)이었다. 그는 전역을 앞둔 소령이었지만 필자보다는 약 3년 군선배였다. 이미 청원대대에 부임전에 경기도 일산 부근에서 예비군 관리대대장으로 근무한 경험이 있어 지팡이를 짚고 있는 필자를 대신해서 현장을 발로 뛰어주었다. 또한 예하 23명의 예비군 중대장들을 완전 장악하고 대대의 임무수행에 지휘주목하도록 만들었다. 심지어 사단장 교장 사열을 앞두고는 공휴일에도 직접 교장에 나와 현장을 확인하여 예하 예비군중대장들도 어쩔수 없이 따라나와 교장 보수 및 정비작업을 하게 만들어 결국에는 큰 성과를 얻을 수 있었다. 마치 이완목 부대대장은 필자가 취임할 것을 대비해 사전에 먼저 대대로 부임하여 줄탁동시(啐啄同時)란 말처럼 적시에 천군만마(千軍萬馬)역할을 해주며 청원대대를 빛나게 만든 고마운 선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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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423] 교통사고 후유증을 극복하며 혹한속에 대대장 취임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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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422] 교통사고 후유증을 극복하며 혹한속에 대대장 취임②
- [시큐리티팩트= 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병자년 새해가 되었지만 필자는 아직도 지팡이 신세를 벗어나지 못한 상태에서 대대장 취임식을 했다. 7개월 전 사단 전입 신고시에도 절뚝거리며 신고한 필자를 바라보며 불안감을 감추진 못한 사단장은 “김중령은 이렇게 불편한 몸으로 현장에서 뛰어야 할 대대장직을 수행할 수 있겠나?”라는 질문을 불쑥 던지며 걱정했었다. 이취임식 행사장에서도 동기생들과 청원군수를 비롯한 많은 기관장들이 참석했지만, 그들 또한 이렇게 지팡이를 짚은 불편한 몸으로 현장에서 뛰어야 할 대대장직을 수행할 수 있을지 걱정하는 눈빛이었다. 반면에 우여곡절(迂餘曲折)의 역경을 겪으며 어렵게 대대장으로 취임하는 필자를 축하해주기 위해 고맙게도 먼거리에도 불구하고 참석한 하객들이 강추위가 겹쳐 미끄러운 눈길에 안전한 귀가가 걱정되었다. 아무튼 피로연까지 끝내고 예비군 중대장들을 포함한 모든 하객들이 떠나자, 주임원사는 필자에게 대대장실에 본부 간부들이 모두 집합해 대기하고 있다고 보고했다. 향토사단 대대는 전방 상비사단처럼 많은 인원이 아니라 동원되는 예비군들이 대부분인 간편 인원으로 모두 모아도 대대장실이면 충분했다. 먼저 전임 대대장을 훌륭하게 보필하여 임기를 잘 마치게 한 것과 이번 이취임식 행사 준비를 잘한 노고를 치하했다. 비록 지팡이를 짚고 있는 대대장이지만 앞으로 또 얼마나 피곤하게 만들지 아니면 사기 충천하게 만들지가 궁금하면서도 긴장된 모습의 간부들은 그 다음 말이 어떨게 나올지 귀를 종긋 세우고 있었다. 필자는 취임전에 사단사령부에서 평가단장 및 여러임무를 수행했기에 앞으로 얼마나 많은 임무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지를 잘 알고 있었다. 연초 예비군교장 사열 준비부터 정신교육 VTR촬영, BCTP(전투지휘훈련) 워게임요원 파견, 군사령부 17전투비행장 전술토의 준비 등 취임 직후 약 3개월간은 정신없이 뛰어야 할 상황이었다. 물론 대대간부들도 모두 알고 있는 임무였으나 필자는 모여있는 간부들에게 첫 한마디로 ‘지휘주목’과 ‘복명복창’을 강조했다. 대대가 아닌 사단을 대표해서 임무를 수행해야 할 과제들이 산적해 있어 하나하나 직접 챙기기에는 어려울 것으로 판단해 대대장에게 ‘지휘주목’해서 불필요한 업무가 반복되어 시간을 낭비하는 것을 방지하고, 한번 강조한 사항은 반드시 ‘복명복창’을 통해 신속하고 철저하게 시행하도록 만들기 위한 조치였다. 헌데 첫 마디를 내뱉으면서 필자는 미소를 띄울 수 밖에 없었다. 왜냐면 전방 대성산 기슭에서의 중대장 시절에 새롭게 대대장으로 부임한 강호갑(육사31기) 선배가 취임 후 일성으로 강조했던 것을 똑같이 말하며 상급자에게 배운 것을 그대로 따라하는 필자를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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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422] 교통사고 후유증을 극복하며 혹한속에 대대장 취임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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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421] 교통사고 후유증을 극복하며 혹한속에 대대장 취임①
- 청원대대장 이취임식에서 취임사하는 필자 모습 [사진=김희철] [뉴스투데이=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이취임식이 열린 병자년 2월1일은 이른 봄이었지만 눈도 많이 내렸고 유난히 추웠다. 대대장 취임 전에는 연대본부에서 대기하며 인접 사단에서 개최된 ‘예비군훈련 향상방안’ 군사령부 시범식 토의도 참관했고 인접 대대에서 지휘관을 하는 선배동료들도 방문해 조언도 들었다. 청원 대대를 내실있게 발전시켜온 육사 1년 선배인 김종철(육사36기) 중령의 이임사를 들으니 3년 가까운 제31대 대대장 재임기간 동안의 희노애락(喜怒哀樂)을 겪으며 수고한 순간들이 그려졌다. 필자가 3년 뒤에 이임사에서는 어떤 이야기를 쏟아 낼 수 있을까? 필자는 제32대 대대장 취임사를 하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 역시 쩔뚝거리며 연대장에게 인사하고 단상으로 이동해 집결해있는 대대원들을 바라보았다. 감개무량(感慨無量)한 순간이었다. 중령으로 진급해 사단의 가장 중요한 대대에 취임을 앞두고 대대장반 교육과정을 다니다가 졸업을 1주일 앞두고 대형 교통사고를 당해 큰 수술을 6번씩하고 주변인들에게 걱정을 끼치며 재활치료을 받았다. 그 과정에서 군사영어반, 군수관리학교 군수기능통합관리과정을 이수하는 등의 애틋한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원래 2년전에 무적태풍부대의 군자산 대대장으로 취임 예정이었으나 21개월 미뤘던 취임식을 최전방이 아닌 충북 향토사단에서 했다. 이날의 취임식까지 교통사고, 재활치료 등 그동안 쉽지 않은 과정을 거쳤다. 사실 이렇게 대대장을 시작하게 된 것도 기적에 가까운 행운이었다. 그렇기에 더 열심히 잘하겠다는 다짐을 했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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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421] 교통사고 후유증을 극복하며 혹한속에 대대장 취임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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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철의 CrisisM] ‘국립횡성호국원’ 건립추진으로 강원권 첫 국립묘지 조성예정
-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강원도 횡성군 공근면 덕촌리 일원 39만㎡(11만8천 평)에 2만기 규모의 봉안시설과 부대시설을 조성해 강원권 국가유공자들에게 근거리 안장서비스를 제공할 강원권 첫 국립묘지인 국립횡성호국원 조성사업이 본격화된다. 국가보훈부는 지난 24일 오전11시, 강원도 횡성군청(회의실)에서 강정애 국가보훈부 장관, 김진태 강원도지사, 김명기 횡성군수 등이 참석한 가운데 국립횡성호국원 조성사업의 성공적인 추진을 위한 실시협약을 체결한다고 밝혔다. 이번 협약은 국립횡성호국원 조성사업을 위해 국가보훈부와 강원도, 횡성군이 국가를 위해 희생・공헌한 분을 추모하고 국민의 애국심을 기르는 공간으로 조성하는 데 상호협력을 약속하는 것으로, 국가보훈부는 지역경제 활성화에 기여할 수 있도록 횡성군과 주민 의견을 적극 수렴해 사업을 추진하고, 강원도는 기반 시설 구축과 개별법령상 규제 해제 등에 적극 노력할 예정이다. 또한 횡성군은 인·허가의 신속한 처리와 기반 시설 설치 등에 나설 방침이다. 국립횡성호국원 조성사업은 지난 2022년 12월 부지 발표 이후 주민들의 반대로 제동이 걸렸지만, 이후 지역주민과 지자체, 그리고 국가보훈부가 서로 노력하고 양보해 주민 동의가 이뤄지고, 지난 3월 주민설명회를 개최하는 등 본격적인 사업추진에 들어갔다. 이에 따라 국가보훈부는 내년까지 국립횡성호국원 설계와 인·허가 용역, 토지 보상을 거쳐 오는 2026년 착공에 들어간 뒤 2028년 11월 개원할 예정으로 소요예산은 약 497억원이다. 국립횡성호국원이 조성되면 강원권 내 국립묘지 안장대상자(18000명)의 타 지역(국립묘지) 원거리 안장에 대한 불편함을 해소하고 안장 편의성이 증대돼 강원도 보훈가족의 자긍심을 제고시킬 수 있으며, 수도권 안장대상자까지 안장수요를 적기에 대처할 수 있다. 또한 업무 관련 종사자 채용을 비롯한 시설공사, 안장자의 유족뿐만 아니라 학생과 시민 방문객 증가 등으로 인한 지역경제 활성화와 함께 자라나는 미래세대에게 안보 교육과 나라 사랑 체험의 장으로 활용이 기대된다. 한편, 현재 전국 국립묘지는 국립서울현충원과 국립대전현충원 등 총 12곳으로, 국립횡성호국원은 강원권에 처음 조성되는 국립묘지이자 개원을 기준으로 국립연천현충원(2026년 개원)에 이은 14번째 국립묘지이다. 또한, 국립호국원 중에서는 7번째이다. 강정애 국가보훈부 장관은 “국립횡성호국원이 조성되면, 강원권과 인근 지역에 거주하시는 국가유공자분들의 마지막 가시는 길을 최고의 예우를 갖춰 모실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는 것”이라며 “국립횡성호국원이 국가를 위해 헌신하신 분들께 최고의 예우를 다하는 국립묘지이자 지역주민들의 안식처와 보훈문화를 향유하는 공간이 될 수 있도록 조성에 만전을 기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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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철의 CrisisM] ‘국립횡성호국원’ 건립추진으로 강원권 첫 국립묘지 조성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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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420] 재활치료의 위기를 호기로 만드는 비법⑳
-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필자가 곧 향토사단 대대장으로 취임하여 동원 및 일반 예비군 교육을 주로 하는데 조국통일을 대비한 예비군 제도를 연구하는 것은 의미가 있었고 재수술로 인한 무료할 것 만 같았던 입원 기간은 연구 논문이 육군지에 게재되는 보람을 느끼는 전화위복(轉禍爲福)의 기회가 되었다. 하지만 좋은 일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3년전 1월 중순경 평택 집앞 도로에서 승용차와 트럭이 충돌하는 교통사고가 발생하여 후송된 아버님이 중태였었다. 다행히도 성공적인 수술을 마치고 중환자실로 옮겼고, 4주 동안 무의식(코마) 상태에서 계시다가 회복되어 장기간 치료 후에 다행히 건강을 되찾았었다. 그 사고 덕분에 힘들고 외로우며 급할 때 조건없이 연락해서 만날 수 있는 ‘진정한 벗’을 확인할 기회이기도 했다.([김희철의 직업군인이야기(177)] ‘진정한 벗은 힘들고 급할 때 찾는 친구’ 참조) 그런데 필자도 교통사고후 재활치료의 위기를 노심초사(勞心焦思)하며 한 단계씩 극복하는 성취감에 도취되어 있을 때 신(神)께서는 교만하지 말라며 일침을 가했다. 대대장으로 취임하기 열흘 전인 이번에는 아버님께서 오토바이를 타고 가시다가 또 교통사고를 당해 입원하셨다. 평택 성심병원 중환자실의 아버님은 의식은 뚜렷하셨으나 두개골에 약간 금이 갔고, 쇄골과 늑골이 골절된 상태였다. 인간관계에서 가장 근본은 역시 가족이다. 어머니와 처는 치료와 간병을 도맡아 전담했다. 그리고는 “아버님 걱정말고, 부대로 복귀해 우여곡절 끝에 얻게 된 대대장 취임 준비를 잘해라”며 등을 떠밀었고 필자에게 짐이 되지 않도록 애를 쓰는 모습이 감사하고 안타까웠다. 마침 이제 초등학생이 된 큰아들이 엄마 곁에서 큰 힘이 되어 주었다. 국어사전에 ‘좋은 일에는 흔히 방해되는 일이 많음 또는 그런 일이 많이 생김’이라고 정의된 호사다마(好事多魔)라는 사자성어가 꼭 들어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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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420] 재활치료의 위기를 호기로 만드는 비법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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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철의 CrisisM] 이미륵을 독일 한류스타로 만든 ‘압록강은 흐른다’(하)
-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국가보훈부는 독일 뮌헨 근교 그래펠핑(Gräfelfing)시에 잠들어 있는 ‘압록강은 흐른다’의 작가인 독립유공자 이의경(미륵) 애국지사의 유해를 광복 80주년 계기로 국내 봉환을 본격 추진한다. 강정애 국가보훈부 장관은 10일(현지시간) 독일 그래펠핑시 이의경 지사의 묘소를 페터 쾨슬러(Peter Köstler) 그래펠핑 시장과 함께 참배하고 광복 80주년에 맞춰 한국으로 모시는 구체적인 유해봉환 실무 협의를 진행하기로 했다. 이날 강 장관의 참배에는 페터 쾨슬러(Peter Köstler) 그래펠핑 시장 뿐만 아니라 토마스 엘스터(Thomas Elster) 주뮌헨 대한민국 명예대사, 신순희 독일 이미륵기념사업회 부회장, 그리고 독일 이미륵기념사업회 초대 회장인 고(故) 송준근 전 회장의 자녀(딸) 송세희씨도 함께했다. 강 장관은 이 자리에서 독일 이미륵기념사업회에 ‘2024년 7월의 독립운동가 선정패’를 전달하기도 했다. 강 장관은 이 자리에서 그동안 이의경 지사의 묘역을 관리해 온 그래펠핑시와 독일 이미륵기념사업회에 감사의 인사를 전하면서 “대한민국 정부는 일제강점기, 조국의 국권 회복을 위해 헌신하셨던 이의경 지사님의 유해를 광복 80주년을 계기로 그리던 고국으로 모시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독일에 유일하게 남아 계신 이의경 지사님의 유해봉환을 위해서는 독일 현지 정부와의 협의가 필수적인 만큼, 유해봉환이 원활하게 추진될 수 있도록 그래펠핑시의 관심과 적극적인 지원을 부탁드린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페터 쾨슬러(Peter Köstler) 그래펠핑 시장은 “이의경 지사는 대한민국의 독립을 위해 노력한 애국지사이기도 하지만, 독일에서도 철학, 문학 등을 통해 독일 청년들에게 중요한 영향을 줬던 인물로 독일과 한국 양국 관계에 중요한 인물이다”라고 평가했다. 특히, 페터 쾨슬러 시장은 “그래펠핑시는 2008년 이의경 지사 묘소를 영구 사용 결정하고 직접 관리하고 있으며 시내에 기념 동판 건립 등 박사의 업적을 시민들에게 적극적으로 알리고 있다”고 설명하며 “한국 정부의 이의경 지사 유해 봉환 추진 노력을 알고 있고, 시는 적극적으로 이의경 지사의 유해가 한국으로 무사히 봉환될 수 있도록 협조와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한편, 강정애 장관은 이날 ‘압록강은 흐른다(Der Yalu fließt)’ 등의 작품으로 독일을 현혹시켰던 이의경 지사 묘소 참배 및 그래펠핑 시장 접견을 끝으로 지난 5월 5일부터 5박 7일간 진행한 프랑스와 독일 출장 일정을 마무리하며 다음과 같이 밝혔다. “이번 프랑스와 독일 방문은 전쟁으로 고통받는 대한민국을 위해 목숨을 걸고 싸웠고, 인도주의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참전국과 참전용사, 유족분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하면서 아직도 국내로 봉환하지 못한 애국지사님들의 유해를 봉환하기 위해 현지 정부와 협력 방안을 논의하고 확대하는 뜻깊은 시간이었다” 따라서 “국가보훈부는 앞으로도 유엔 참전용사들의 은혜에 보답하고, 국내·외 독립운동의 역사와 유산을 미래세대에 계승할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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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철의 CrisisM] 이미륵을 독일 한류스타로 만든 ‘압록강은 흐른다’(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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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419] 재활치료의 위기를 호기로 만드는 비법⑲
-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연구소장] 병자년 새해가 되었지만 필자는 아직도 목발 신세를 벗어나지 못한 상태에서 대대장 취임은 한 달여 앞으로 다가왔다. 만약 이대로 취임하면 ‘절름발이 대대장 또는 DJ 대대장’이라는 별명이 계속 따라 붙을 것 같았다. 또한 활동에 많은 제약을 주어 불편하게 만드는 골반쪽의 상단 고정핀을 제거하자는 통합병원 군의관(이진우 대위)의 진단에 따라 새해 초부터 재차 병원에 입원했다. 통합병원 도착 다음날 바로 2시간 동안의 수술을 통해 상단핀을 제거하고 다시 2주간의 회복 기간을 가졌다. 이미 3개월 전에 같은 병원에 입원했던 환자였기 때문인지 만나는 간호장교와 군의관들도 모두 반기며(?) 인사를 해와 병원 생활을 불편없이 익숙하게 할 수 있었고, 짧은 입원 기간이기 때문에 주변의 선후배에게도 알리지 않았으며 가족에게도 면회오지 않도록 당부했다. 하지만 회복 및 재활치료의 무료한 시간이 계속되자 재활위기를 호기로 만를려는 생각을 감출 수가 없었다. 보름간의 골반쪽의 상단 고정핀을 제거 수술치료, 입원 기간에 병실에 앉아 필자는 동국대학원 석사학위 논문인 ‘동서독 통일과정에서의 군통합에 관한 연구– 남북한 적용가능성을 중심으로’에서 예비군분야를 발췌하여 정리한 ‘조국통일을 대비한 예비군제도 비전’이라는 원고를 작성했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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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철의 CrisisM] 이미륵을 독일 한류스타로 만든 ‘압록강은 흐른다’(중)
-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당시 이미륵과 교류를 많이 했던 인물 중에 쿠르트 후버 뮌헨 대학교 교수가 있었는데, 후버 교수는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3년에 당시 유명하던 반 나치 저항활동단체인 백장미단 사건에 관계돼 반 나치 활동 혐의로 체포되어 악명 높은 롤란트 프라이슬러의 인민재판소에서 사형 판결을 받고 단두대에서 처형당했다. 이때 이미륵은 후버 교수를 깊이 이해했으면서도 그의 활동을 상당히 우려스럽게 바라보았다. 결국 그가 처형당하자 이미륵은 이 시대의 가장 고귀한 사람을 잃었다고 탄식했다. 사건 이후 후버 교수의 가족들은 연좌제와 감시에 시달리며 전시 배급도 제대로 못 받았고, 지인들은 연루될까 두려워 이들과 연락을 끊었다. 그러나 이미륵은 자기가 배급받은 물건을 그들에게도 나눠주며 전쟁 끝까지 별 탈이 없도록 돌봐주었다. 그는 후버 교수 외에도 다른 반나치 지식인들과도 교류했는데, 그 중 한 명이 유명한 반나치 운동가이자 언어학자인 프란츠 티어펠더 교수로, 셋은 자주 모여서 나치를 비판하곤 했다. 이렇듯 이미륵은 일본 제국과 나치 독일 양쪽의 지배를 모두 겪으면서도 그에 모두 반대했던 몇 안 되는 지식인이었다. 이 덕분에 2019년 뮌헨에 있는, 후버 교수의 이름을 딴 쿠르트 후버 거리에 이미륵의 기념 동판이 새겨졌다. 바로 옆에는 후버 교수의 동판이 자리한다. 동판에는 이미륵이 생전에 자주 하던 "사랑으로 세상을 보는 사람에게는 가시동산이 장미동산이 되리라"라는 명문을 남겼다. 이미륵은 ‘무던이’, ‘이상한 사투리’, ‘이야기’ 등 소설 이외에도 수필을 비롯하여 한국의 역사·문화·정치에 관한 여러편의 글과 ‘한국문어법(1927년)’ 등을 출간하며 독일에서 동양학의 중요 거두이자 한류스타가 되었다. 1963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독립운동 공적을 인정받아 대통령표창이 추서되었고,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으로도 추서되었다. 1994년에는 정규화 성신여자대학교 독어독문학과 교수가 1966년부터 모아 온 이미륵의 유품 및 자료, 사진 등 300여 점을 국립중앙도서관에 기증했다. (하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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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철의 CrisisM] 이미륵을 독일 한류스타로 만든 ‘압록강은 흐른다’(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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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418] 재활치료의 위기를 호기로 만드는 비법⑱
-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대퇴부 재골절에 따른 재수술과 군수기능통합관리과정까지 약 3개월여 기간 동안 부대를 떠나있다가 복귀했을 때 반기는 또 한명의 선배 장교가 있었다. 그는 사단BCTP계획반장인 112연대 부연대장 구인회 중령(3사14기)으로 사단사령부가 위치한 증평 토박이였고 차기 작전참모를 희망하고 있었다. 그래서 사단BCTP(전투지휘훈련) 평가의 결과가 그의 차후 보직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사단장에 대한 평가도 중요하지만 사단BCTP를 성공적으로 마쳐야 할 추가적인 이유가 생겨 자운대 교육사령부의 BCTP단과 사단사령부를 왕복하며 데이터베이스 입력과 운용요원 교육을 주도하며 열정을 다해 준비했다. 특히 향토사단 BCTP를 처음으로 적용하는 훈련이라 소부대 단위로 분리하여 배치하는 것과 지역 주민을 고려한 포병화력 운용도 어려운 과제였다. 또한 전방 사단의 부대운용보다 상이하고 복잡한 전투 양상으로 주민소개, 유입되는 피난민 조치와 중요시설 방호까지 새롭게 고려할 사항이 많았다. 다행히도 전 부대에서 야전에 최초로 적용된 BCTP(전투지휘훈련)를 총괄하여 진행했던 경험이 큰 도움이 되었다. BCTP요약보고서와 참고책자를 만드는 등 약 한 달간의 준비로 시행된 향토사단 최초의 사단BCTP훈련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고, 어느덧 충용부대에 전입온 지도 6개월이 넘어 새해를 맞이했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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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418] 재활치료의 위기를 호기로 만드는 비법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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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철의 CrisisM] 이미륵을 독일 한류스타로 만든 ‘압록강은 흐른다’
-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2008년 국내에서 최고 시청률을 올리며 방송드라마로 방영된 ‘압록강은 흐른다(Der Yalu fließt)’는 이의경(미륵) 작가의 유년 시절부터 독일 유학에 이르기까지의 체험을 회상 형식으로 서술한 근대화에서 식민지 시대에 이르는 역사적인 변혁기를 배경으로 그려낸 소설이다. 필명 ‘미륵’은 본래 어머니가 지어준 어릴 때의 아명이고 본명은 의경(儀景)이다. 황해도 해주의 부유한 가정에서 세 누이를 둔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해주보통학교를 졸업하던 만 11세 때 6년 연상의 아내를 맞아 1남 1녀를 두었다. 해주보통학교를 졸업했으나 당시 해주군에는 고등보통학교가 없어 강의록으로 독학하여 경성의학전문학교에 진학했다. 경성의학전문학교 재학 중이던 1919년, 3.1운동에 참여한 뒤 그해 5월 외교활동을 독립운동의 행동지침으로 표방한 '대한민국 청년외교단'에 입단했고, 동지 포섭 및 독립운동 자금 모금에 힘을 쏟는 한편, 편집부장을 맡아 기관지 ‘외교시보’ 등 선전물의 발간을 주도했다. 또한 1919년 8월29일 경술국치 기념일에 벌일 만세시위를 위해 ‘경술국치 경고문’ 등 선전물의 인쇄에 대한 책임을 맡았으며,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연계해 중화민국 상하이시에 건의문과 독립운동 자금을 휴대해 납부하는 등의 활동을 했다. 그러나 그해 11월 말 일본 제국 경찰에 활동정보가 노출되면서 핵심 인물들이 체포되자 이미륵 또한 쫓기는 신세가 되어 중국 상해로 망명해 대한적십자대에 들어갔고, 대원으로 간호사를 교육시키는 일을 하면서 대한민국 임시정부 일을 도왔다. 1920년 5월 안중근의 사촌 동생인 안봉근과 요셉 빌헬름 선교사의 도움으로 독일로 건너갔다. 같은 해 6월29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열린 궐석재판에서 ‘다이쇼 8년(1919) 제령 제7호 위반 및 출판법 위반 혐의’로 징역 2년형을 선고받기도 했다. 독일에서 처음에는 뷔르츠부르크 대학교와 하이델베르크 대학교에서 각각 의학을 공부했으나 모두 중퇴하고 1925년 뮌헨 대학교 동물학과에 편입해 졸업했다. 뮌헨 대학교 대학원 재학 중이던 1927년 2월10일, 벨기에 브뤼셀 에그몽 궁전(Egmont Palace)에서 열린 세계피압박민족 반제국주의대회에 김법린·이극로·황우일 등과 함께 한국 대표로 파견돼 21개국 174개 단체 대표단 앞에서 일제 식민통치의 부당함을 성토하고 3.1운동 당시의 기미독립선언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을 통해 일제의 조약을 무효화하고 임시정부를 인정해 달라는 결의안을 발표하는 등 활약했다. 이듬해인 1928년에는 뮌헨 대학교 대학원에서 동물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학위 취득 후 본격적으로 습작활동을 시작하여 1931년 독일 문예지 'Die Dame'에 최초의 단편 ‘어느 날 밤 골목길에서(Nachts in einer koreanischen Gasse)’를 발표했다. 1946년 피퍼출판사(Pipper)에서 독일어로 쓴 자전적 소설이자 자서전인 첫 작품 ‘압록강은 흐른다(Der Yalu fließt)’를 발표하여 초판이 매진될 정도의 반응을 불러일으키면서 독일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수 개 나라에서 번역되었고, 독일 중고등학교 교과서에 수록될 정도로 널리 알려진 작품이다. 당시 '금년 독일어로 쓰인 가장 훌륭한 책'으로 선정되며 평단으로부터 찬사를 받았고 독일의 교과서에도 수록되었다. 이로서 이미륵은 유럽 최초의 한류스타가 됐고, 소설 ‘압록강은 흐른다’는 1960년 전혜린에 의하여 우리말로도 번역되었다. 이후 1947년부터 뮌헨 대학교 동양학부에서 한국어와 동아시아문학사, 일본중세문학 등을 강의했다. 그의 제자로 볼프강 바우어(Wolfgang Leander Bauer) 등이 있는데, 이들은 독일의 주요 동양학자가 되었다. 한국 전쟁을 앞둔 1950년 3월20일에 위암으로 독일 뮌헨 그레펠핑에서 사망했다. 향년 51세였다. 그는 망명 뒤 죽을 때까지 한국 땅을 다시 밟지 못했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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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철의 CrisisM] 이미륵을 독일 한류스타로 만든 ‘압록강은 흐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