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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희철의 CrisisM]백선엽장군기념재단, 2025년 달력으로 6‧25남침전쟁을 상기시켜(하)
    [시큐리티팩트=김희철 칼럼니스트] 사실 요즈음 많은 신세대 시민들과 어린이들은 74년 전에 발발한 6‧25남침전쟁을 학교 및 가정교육에서 접할 기회가 많지 않다. 아직까지 일부 생존한 90세가 넘어가는 6‧25남침전쟁 참전용사들만이 그때를 회상하며 몸서리 칠뿐이다. 로마의 전략가 베제티우스는 ‘평화를 원하거든 전쟁에 대비하라...!’고 말했다. 이는 전쟁을 원한다는 것이 아니라 강대국에 굴복하기보다는 전쟁에 맞서 방어하라는 의미이다. 굴종은 평화가 아니다. 전쟁은 평화주의자를 노린다. 강력한 군사대비 없이 입으로만 평화를 떠드는 사람은 무책임하다. 전쟁이 발발하여 침략을 당하면 평화고 뭐고 생존 자체가 어렵기 때문이다. ‘처절하고 비참하게 피 흘리는 전쟁보다는 비겁한 평화가 좋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경종을 울리는 말이다. 따라서 남녀노소 모든 국민, 특히 미래의 희망인 어린이들에게 동족상잔의 비극인 6‧25남침전쟁 교육을 더욱 강화해야 전쟁에 대비하여 평화를 지키려는 국민적 안보 공감대가 형성될 수 있다. 그래야 비참하게 피 흘리는 전쟁 발발의 비극을 사전에 막아내 평화를 지키며 행복한 나라를 영위할 수 있다. ■ 백선엽기념재단의 2025년 달력은 국민 안보의식을 고취시키는 계기와 촉매제가 될 것으로 확신 지난 정권에서 육군사관학교에서 조차도 전쟁사 교육이 약화되어 6‧25남침전쟁에 대한 국민적 관심도가 바닥까지 떨어지며 안보의식이 희박한 안타까운 상태가 됐다. 하지만 ‘백선엽장군기념재단’은 북한군의 불법 남침부터 낙동강 방어작전, 유엔군 북진, 중공군 불법 개입 및 휴전에 이르는 6‧25남침전쟁 경과와 백선엽 장군의 애민 사상에 따른 활동과 육군재건 및 현대화를 위한 노력 등을 해당 월별로 표현한 2025년 달력을 제작하여 국민 안보교육에 기여했다. 지난 14일 전쟁기념관 429호실(생전에 백선엽 장군이 사용했던 곳)에 위치한 기념재단 사무실에서 이사회가 열렸다. 김관진 이사장(전 국가안보실장)과 백남희 여사(백선엽 장군의 장녀), 방기봉 회장 등 이사회에 참석자들은 팽준호 사무총장의 2025년 달력 설명을 듣고, 한결같이 6‧25남침전쟁에 대한 충분한 교육자료가 될 수 있는 잘 제작된 교육자료 달력이라며 격려의 박수를 보냈다. 때마침 방위산업공제조합에서 조합 홍보용으로 대량 구매를 결정했고, 방기봉 회장의 협조로 어린이들 교육을 위해 색동회와 한화그룹의 방위산업체에서도 홍보 및 국민 교육용으로 구매해 분배할 것을 검토중이다. 백선엽기념재단의 2025년 달력은 편협된 측면에서 친일논란에 소용돌이에 잘못 전해진 6‧25남침전쟁의 영웅 백선엽 장군의 업적을 기리는 동시에 잊혀져가는 6‧25남침전쟁의 동족상잔 비극이 이 나라에서 다시 재발하지 않도록 국민 안보의식을 고취시키는 계기와 촉매제가 될 것으로 확신한다.
    • 소통시대
    • CRISIS M
    2024-12-10
  • [김희철의 CrisisM] 백선엽장군기념재단, 2025년 달력으로 6‧25남침전쟁을 상기시켜(상)
    [시큐리티팩트=김희철 칼럼니스트] 1950년 6월25일 새벽, 북한군의 불법 기습남침이 있자, 그해 4월22일 취임한 백선엽 장군의 1사단은 문산축선에서 3일간 방어하다가 철수하여 수원, 충북 음성, 경북 함창 일대를 거치며 축차적인 지연전을 실시했고, 결국에는 낙동강 최후 방어선인 다부동지역까지 이동했다. 8월부터 치루어진 한반도 방어의 마지막 보루였던 다부동지구 전투에서 백선엽 장군의 1사단은 북한군 3개 사단의 공격을 저지 격멸하여 인천상륙작전과 반격의 발판을 마련했다. 이후 38도선을 넘어 10월19일 대동강교 동측에 최초 진입하며 평양 탈환의 선봉에 섰다. 그러나 이미 압록강을 건너 한반도에 불법 진입한 중공군이 10월26일 운산전투에서 유엔군과 최초 교전한 이후 인해전술에 밀려 남북통일할 수 있었던 북진이 불가능해짐에 따라 이듬해 1월까지 수원 ~원주~삼척에 이르는 선까지 축차적으로 철수했고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 특히 11월27일부터 12월11일까지 중공군 9병단 7개 사단 12만명의 포위섬멸전에 맞서 미 10군단 1해병사단 약 3만명이 1만7천여명의 희생을 감수하며 치룬 장진호 전투에서 중공군 4만8천여명을 사살하며 포위망을 돌파했고, 중공군의 공격을 지연시킨 덕분에 약 20만명이 자유를 찾아 대한민국으로 피난할 수 있는 흥남철수도 있었다. 그러나 작금의 정치적 논란이 계속되는 사회적 환경에서 동족상잔의 비극이었던 6‧25남침전쟁은 많은 국민들의 기억 속에서 점점 잊혀져가고 있다. 이런 이유중에 하나는 문재인 정부시절에 국민 안보교육이 위축되었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육군사관학교에서 전쟁사 교육이 선택 과목으로 전환되어 졸업생 30% 정도만이 6‧25남침전쟁사 교육을 받는 상태까지 되자 당시의 신원식(현 국가안보실장) 등 여러 국회의원들과 많은 안보전문가들의 맹렬한 비판과 질타가 이어졌다.(하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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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RISIS M
    2024-12-06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497] 지휘관은 이율배반(二律背反)적인 직책(상)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필자가 대대장 근무시에 담당했던 충청북도 청원군은 현재 청주시와 통합되었고 청원대대는 해체되었지만 당시에 필자의 청원대대는 14개 면대와 1개 기동대 그리고 8개 직장중대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 때에는 각 면사무소의 지파출소에 설치된 예비군 무기고에 해당 면대의 상근예비역들이 24시간 경계근무를 하고 있었고 생활 및 근무 환경은 매우 열악했다. 물론 상급부대는 대대장이 지파출소에 설치된 예비군 무기고 경계초소 야간순찰하는 것을 의무적으로 규정하거나 특별히 지시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최전방의 GOP철책에서 근무하는 대대장들은 매일 야간순찰을 다니는 것처럼 비록 후방지역 향토사단이지만 대대장으로 근무하는 필자도 당연히 무기고 경계초소 야간순찰을 돌아야 한다고 판단했다. 따라서 대대장 취임 후에 야간 지파출소 무기고 순찰은 임기를 마칠 때까지 계속 감행했었다. 그러던 중 폭설이 내리며 혹한이 기습했던 겨울 어느날, 그날도 어김없이 새벽 3시에 관사앞에서 대기하던 짚차에 올라 지역 면대 지파출소 예비군 무기고 야간순찰을 위해 출발했다. 운전병의 빙판길 운행도 걱정이었지만 혹한 속에 24시간 경계근무에 임하는 상근예비역들의 열악한 환경과 동계 초병근무에 동상이나 난방에 대한 대비는 잘되어 있는지를 일일이 확인해서 다음날 지역 면대장에게 시정 지시를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병원관리였다. 이렇게 매번 순찰한 덕분에 낭성면대의 예비군 무기고를 새롭게 신축하는 계기도 마련할 수 있었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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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
    2024-12-04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496] 혹한기훈련과 연대전투단훈련으로 호국충절의 고장임을 증명⑤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동계 혹한기훈련이 끝나고 3월로 접어들자 군단장이 연대장들을 비교 평가하는 연대전투단 훈련이 바로 다가왔다. 당시 연대장의 임기중 가장 중요한 훈련이기 때문에 필자는 부하된 도리를 다하는 자세를 견지하고 그동안 소개장, 중대장 등의 군생활에서 네 번에 걸친 연대전투단 훈련 경험을 통해 쌓아온 노하우와 진수를 모두 보일 수 있도록 열심히 뛰어볼 각오를 다졌다. 훈련에 임하는 신현정 연대장의 작전 마인드는 대단히 탁월했다. 부여된 상황에 대한 적시적인 작전 지침은 명쾌했고 단지 예하 부대들이 그 지침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실천하여 구현하는 것이 관건이었다. 하지만 대대원들은 이미 지난 전투지휘검열시에 후방지역 작전 훈련(‘[김희철의 직업군인이야기(225)] 전투지휘검열도 끝나자 더 바빠진 청원대대(하)’ 참조)을 통해 숙달된 상태라 별로 어렵지 않았고, 훈련 결과는 또 대성공이었다. 특히 이번 훈련을 통해서 손자병법의 선승구전(先勝求戰)이란 뜻과 의미을 명확히 알 수 있었다. 이미 군단장과 군단 참모들은 신현정 연대장의 팬이었다. 게다가 평가의 주무를 맡은 군단 작전참모는 필자의 교통사고가 아니였으면 무적태풍부대 군자산 대대장으로 취임해 직속상관인 연대장으로 모셨을 유대우 대령(육사30기)이었다.(‘[김희철의 직업군인이야기(190~192)] 잔인한 4월도 나에게는 축복이었다’ 참조) 무적태풍부대의 군자산에서 상하급자 관계로 맺을 뻔했던 인연 때문에 유 대령이 필자를 아껴주는 모습이 확연하게 표출되는 연대전투단 훈련이었다. 물론 호국충절의 고장답게 연대 책임지역내의 괴산·음성·진천군수와 청주시장이 훈련을 격려하기 위해 현장을 방문했다. 그 중에 청원군수의 위문이 가장 눈에 띄었다. 또한 정답도 비밀도 공짜도 없다는 말처럼 성공적인 연대전투단 훈련종료 후 필자는 훈련 유공으로 군단장 표창을 받았고, 더불어 이번 호국충절의 고향에서 치룬 동계 혹한기훈련과 연대전투단 훈련을 통해 전임 사단장에 이어 신임 사단장에게도 확실하게 신임을 받는 계기도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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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
    2024-12-03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494] 혹한기훈련과 연대전투단훈련으로 호국충절의 고장임을 증명③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조영호 사단장(학군7기)은 예비군 교육훈련과 정신교육강화 분야의 동시 시범 때 만난지 2주일도 안되었지만, 동계 혹한기훈련을 잘하고 있는지 현장지도를 하기 위해 00비행장 주변에 배치된 대대의 숙영지와 훈련장을 또 방문했다. 사실 대부분의 병력이 전시에 동원자원으로 구성된 향토사단은 임무 백브리핑이 매우 중요하다. 현역 병사들이 자신의 개인 임무를 수행함과 동시에 동원되는 소대장 등 간부에게 전투 임무를 전달 및 교육시키는 역할도 수행하기 때문에 ‘병 1인 다역화와 간부화 훈련 브리핑’이 반드시 필요한 전투준비이기도 하다. 훈련장을 방문한 사단장에게 필자가 훈련 진행 전반을 보고한 뒤에 동원되는 소대장에게 백브리핑을 하는 소총병이 ‘병 1인 다역화와 간부화 훈련 브리핑’을 했고, 이어 비행장 외곽을 방어하는 현역 중대장이 자신의 임무를 발표했다. 사단장 앞에서 긴장할 것으로 예상되어 연습을 많이 시켰으나 병 1인 다역화로 소대장에게 전투 임무를 전달 및 교육시키는 역할을 할 병사는 소대 방어지역의 배치와 전투준비 그리고 우발상황 발생시 대처하는 요령까지 자신있게 또박또박 발표를 하자 사단장은 놀란 듯 박수까지 치며 잘한다고 칭찬을 했다. 오히려 중대장이 더 긴장하여 더듬거렸으나 바로 전에 탁월하게 발표한 병사의 백브리핑에 감탄의 여운이 남아있던 사단장은 중대장에게도 칭찬을 가미했다. 그때 변종석 청원군수가 상황실 텐트로 불쑥 들어왔다. 어떻게 알았는지 사단장의 훈련장 현장지도 시간에 맞추어 바쁜 일정의 군수가 사단장을 영접하기 위해 훈련장을 또 찾은 것이다.(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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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
    2024-11-24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493] 혹한기훈련과 연대전투단훈련으로 호국충절의 고장임을 증명②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주둔지에서 비상을 발령해 출동준비태세 훈련을 하고, 각 개인을 군장 상태를 확인한 다음에 30km행군으로 이동하여 숙영지를 편성하고 첫날밤을 보냈다. 이튿날, 2월 초이지만 깜깜한 새벽 기온은 영하 10도 가까이 떨어져 혹한 속에 텐트에서 취침하는 대대원들의 건강 상태가 어떤지 매우 걱정되어 상황실 텐트에서 현장확인차 밖으로 나갈려고 일어섰다. 바로 그때, 불쑥 텐트 출입구 거적을 젖히며 변종석 청원군수가 들어왔다. 변 군수는 대뜸, “대대장님, 민관군 통합작전을 강조하면서, 대대가 이 혹한에 훈련하는 것을 왜 군청에 알리지 않았습니까?”하며 힐책하였다. 그리고는 수행자에게 “여기 담당 면장이 누구냐?”며 “면장은 자기 지역에 우리 대대가 훈련하는 것도 파악 못하고 뭐하는 것이냐?”고 정색을 하며 야단쳤다. 텐트 밖은 새벽별이 초롱초롱한 아직도 어두운 밤인데 갑자기 떨어진 기온에 책임지역 농가들의 피해가 없는지 현장 확인차 다니다가 부대 훈련 간판이 있는 것을 보고 차를 돌려 대대 훈련장으로 기습 방문한 변종석 군수의 목민관적인 자세와 군을 사랑하는 마음에 존경심이 깊어졌다. 필자는 성토하는 변 군수를 간신히 달래며 감사함을 표했다. 다음 일정 때문에 변 군수가 훈련장을 떠나고 얼마 안되어 해당 면장이 위문품으로 떡국을 끓여와 중식에는 혹한에 떨던 대대원들이 포식을 했고, “사전에 알려주시지..., 군수님에게 야단을 맞았다”며 넉두리 했다. 역시 호국충절의 고향다운 청원군임을 확인했다. 그날 밤에도 사진처럼 변종석 청원군수와 군의회 의장이 비행장 방어시에 야간 침투하는 적들을 격멸하기 위해 필요한 탐조등 35셋트(630만원 상당)을 가져와 야전 현장에서 전달식을 했다. 청원군은 과거 임진왜란 때 부모산 및 상당산성 전투와 일제 강점기 의병대장 한봉구 활약 등 애국심이 불타는 호국충절의 고장이다. 이번 동계 혹한기 훈련을 통해서 다시 한번 더 느끼게 됐고, 변 군수의 기습적인 이벤트에 대대원 전체가 즐거운 비명을 질렀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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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
    2024-11-14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492] 혹한기훈련과 연대전투단훈련으로 호국충절의 고장임을 증명 ①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신년 초 대대를 들썩거리게 만들며 바쁘게 준비하여 사단장을 비롯한 300여명에게 예비군 교육훈련과 정신교육강화 분야의 동시 시범을 마치자 늦겨울 혹한 속에 동계 혹한기 훈련이 기다리고 있었다. 1년전 대대장 취임식에서도 혹한과 폭설속에 행사를 치루고 격려차 참석한 하객들이 빙판길을 안전하게 이동해서 무사히 복귀했는지가 걱정이 되어 일일이 전화로 확인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되살아났다. 부하들은 상관의 신뢰와 사랑을 먹고 사는 존재이고 그 결과는 하루아침에 이룩되는 것은 아니다. 성공적으로 치룬 연초 시범 덕분인지 혹한기 훈련은 사전 준비부터 숙달된 참모들이 철저하게 준비하여 혹한 속에서도 내실있게 진행되고 있었다. 유사시에 대대의 주임무는 비행장 방어이기 때문에 전면 방어가 가능하도록 각 중대의 진지는 울타리를 연하여 구축되었다. 하지만 병력 통제와 원활한 훈련 진행을 위해 한곳을 정하여 대대 전체가 모여 숙영하고 있었다. 민가가 많은 향토사단 후방지역 특성을 고려해 과거 전방 GOP부대 근무시 훈련처럼 분침호까지 구축하는 무리였고, 대신에 텐트안의 보온을 위해 핫패드를 많이 준비했다. 특히 비행장을 주타격 목표로 저공침투하는 북한 저격여단을 격퇴하기 위해 야간에 낙하하는 적들을 공중에서 격멸하도록 탐조등을 중대별로 준비해 훈련에 임했으나 전시에 대대전체가 동원되어 실전에 임할 때는 턱없이 부족한 상태였다. 필자가 대대장 취임후 바로 시행했던 군사령부 주관 공군기지방어 전술토의에서 대통령 훈령까지 변경시키도록 획기적으로 발전 방안을 제시해 전투태세를 강화했다. 하지만 야간에 침투하는 적들을 격퇴하기 위한 탐조등 구입 예산이 턱었이 부족한 상태였고, 군청에서 지원이 가능한지 은근히 부탁도 했으나 어려움이 많았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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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
    2024-11-11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491] 눈물의 사단선봉대대와 정비공의 의미⑧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조영호 사단장은 예비군 교육훈련과 정신교육강화 분야의 동시 시범을 마치며 참관자들 앞에서 시범 준비를 한 청원대대를 극찬했다. 동시에 2개의 시범을 보이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사단에 건의하자는 의견을 강하게 필자에게 어필했던 대대 참모들은 성공적으로 행사가 끝나자 희열을 느끼며 보람과 성취감을 만끽했다. 그리고 대대원을 비롯한 사단의 전부대에 청원대대가 확고부동한 최고 수준의 선봉부대임을 재확인시키는 기회가 되었다. 사단장이 복귀하자 신현정 연대장은 수고했다고 격려하며 시범의 대성공 때문에 인접 연대장이 농담처럼 “청원대대장을 업어주라....ㅋ”라는 말을 하였다며, 경쟁의식 속에 몹시도 자신을 견제하는 것을 느꼈다고 즐거운 불평도 했다. 헌데 그 불평의 말을 듣는 순간 필자는 움찔하며 긴장했다. 인접 연대장의 농담이 어떻게 변화되어 필자에게 돌아올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긴 재활치료의 아픔을 이겨내며 성공해도 불안한 것은 정답이 없기 때문인가? 확실히 정답은 없었지만 ‘상하동욕자승(上下同欲者勝)’은 진리였다. 고(故) 이완목 부대대장과 참모들 그리고 23명의 예비군 중대장과 현역 대대원들이 긴 재활치료의 아픔을 이겨내기 위해 쩔뚝거리며 노력하는 부족한 DJ대대장을 믿고 따라와준 열성에 감사할 뿐이었다. 불가능할 것만 같았던 2개 분야의 동시 시범은 사단의 많은 인원이 분야별 시범을 위해 반복해서 타지역으로 이동해서 소집하는 노력을 감소시켰고, 대대원들의 불평을 감안해서 배려해준 해당 참모의 토의 진행으로 동시에 사단의 지침을 명확하게 전파하는 기회도 되었다. 세월은 쏜 살같이 날아간다. 시범이 끝나자 벌써 대대장 취임 1년이 지나가고 있었다. 앞으로의 대대장 근무도 ‘정비공’ 건배사처럼 정답도 비밀도 공짜도 없는 이 세상에서 ‘상하동욕자승(上下同欲者勝)’으로 자랑스럽고 충성스러운 대대원들과 함께 또다시 헤쳐나갈 것이라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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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
    2024-11-07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490] 눈물의 사단선봉대대와 정비공의 의미⑦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왜란 및 병자호란의 후유증은 여러 형태로 나타났다. 많은 사상자와 가옥 파괴 및 수많은 전쟁고아들이 생겨났고, 특히 청군이 철수하면서 끌고 간 50만 명에 달하는 조선 여성의 문제가 심각하였다. 청군이 여자들을 끌고 간 목적이 포로교환 명목의 속가를 받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싸도 25~30냥이었고, 대게 150~250냥이었으며, 비싼 경우에는 1,500냥에 이르기도 하였다. 이런 때문에 청군은 양민보다도 양반집 여자를 더 선호해 포로로 데려갔다고 한다. 일부 비싼 값을 치르고 아내 및 딸들을 찾아온 경우도 있지만, 되돌아온 대부분의 환향녀(還鄕女)들이 순결을 지키지 못한 것은 조상에게 죄를 짓는 일이라 하여 이혼의 문제가 조선 정치 및 사회 문제로 대두되기도 했다. 그 뒤로부터 남의 남자와 잠을 잔 여자를 ‘화냥년’이라 부르게 되었고, ‘호로자식’은 제풀로 자란, 교양이 없는 사람을 욕하는 말로 버릇없는 놈을 지칭하는 말이 되었다. 포로로 끌려간 건 이들의 잘못이 아니라 국방력 강화를 소홀하여 전쟁에서 패배하며 나라와 백성을 제대로 지키지 못한 정치가들의 잘못이었다. 그러나 위로받고 보상을 받아야할 환향녀(還鄕女) 등 희생자들에게 도리어 책임을 떠넘긴 꼴이 되었다. 이처럼 국가안보가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내용이었다.(다음편 계속)
    • 소통시대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
    2024-11-04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489] 눈물의 사단선봉대대와 정비공의 의미⑥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그해 사단에서 처음으로 시행된 예비군 교육훈련과 정신교육강화 분야의 동시 시범은 13시부터 시작됐다. 시범에 참석한 각부대 지휘관 및 참모, 그리고 정훈조교 병사 등 250명을 대상으로 필자의 설명과 VTR 시청 및 해당 참모 주관의 내실있는 토의, 그리고 조영호 사단장의 훈시 후에 약 1시간 30분간의 교장 현장 견학순으로 진행되었다. 특히 정신교육강화 분야의 시범시에 필자가 과거 역사로 인해 현재까지 사용되는 ‘환향녀(還鄕女)’라는 단어를 돌이키며 안보의 중요성을 설명한 것과 북한 김정일 정권의 현상태가 사이비 종교집단과 유사해 현혹되지 말고 철저히 대비하자고 강조한 내용이 효과가 있었다. 왜란 및 호란 때에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포로로 잡혀 일본 및 청나라로 끌려갔다. 이때 포로로 끌려갔다 돌아온 여자를 ‘화냥년’이라고 불렀는데 한자로는‘환향녀(還鄕女,고향에 돌아온 여자)’라는 뜻이다. 이때부터 ‘화냥년’과 ‘후레자식’이란 욕이 유행하게 되었다. 화냥년은 품행이 단정하지 못한 여자란 뜻으로 환향녀에서 나온 말이고, 후레자식은 ‘호로(胡虜:오랑캐 호, 종 노)자식’으로 오랑캐의 포로로 잡혀갔다가 돌아온 여자가 낳은 자식이라는 의미이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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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
    2024-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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