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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철의 CrisisM]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6·25전쟁 이야기’ 독후감 시상식과 북콘서트②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독후감 공모전 시상식을 마치고 대상을 받은 최지효 학생은 소감 발표에서 “이책을 통해 나라가 어떻게 지켜졌는 지를 분명히 알게 되면서 나라사랑 마음이 깊어졌으며, 저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나라를 빛내는 역할을 하겠다”고 다짐했다. 또한 초등부 금상인 김세진 학생은 심사위원 및 참석자들을 일일이 호명하며 본인을 뽑아준 것에 감사드린다고 말해 행사장을 웃음바다로 만들며, “저의 꿈도 장차 국방과학연구원으로 자유를 수호하는 인물이 되는 것입니다”라고 당선 소감을 발표했다. 이날 1부는 국민의례에 이어 김병관 한미안보연구회 회장의 환영사, 현인택 전 통일부 장관과 김재창 명예회장의 축사에 이어 공모전 시상식으로 축제분위기가 이어졌고, 2부에서는 테너 지명훈과 싱어송라이터 이유진의 축가와 ‘할들육(할아버지가 들려주는 6·25전쟁 이야기)’관련 퀴즈로 시작된 작가 장삼열 박사의 북콘서트가 진행됐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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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철의 CrisisM] ‘2024 제대군인 고용우수기업 인증제’ 시행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국가보훈부는 27일 “국가안보를 위해 오랜 기간 군에서 복무한 중장기복무 제대군인의 안정적인 일자리 확보와 취업 촉진을 위해 이날부터 오는 7월26일까지 ‘2024 제대군인 고용우수기업 인증’을 위한 신청·접수를 진행한다”라고 밝혔다. ‘제대군인 고용우수기업 인증제’는 중장기복무 제대군인의 일자리 창출은 물론 확보된 일자리에 지속적으로 취업할 수 있는 연결고리를 마련하고, 기업이 제대군인 채용에 적극 나설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지난 2015년부터 시행하고 있는 사업이다. 특히, 국가보훈부는 2021년 ‘제대군인 고용우수기업 인증제’를 법률로 명문화한 뒤, 인증제에 대한 기업의 관심 유도를 위해 행정·재정·법률적 혜택(인센티브)을 확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실제로 현재 제대군인 고용우수 인증기업은 시중은행의 여신지원 시 금리 우대를 비롯해 관세 조사유예, 방위사업청 및 지방자치단체 우수기업 선정 평가 시 가점 부여 등의 우대지원을 받을 수 있다. 신청 희망 기업은 오는 7월26일까지 신청서류(국가보훈부 홈페이지 공지)를 준비하여 한국경영인증원 제대군인 고용 우수기업 인증사무국에 전자우편으로 제출하면 된다. 이미 국가보훈부는 6월20일 ‘인증설명회’를 온라인(ZOOM)으로 개최하며, 제대군인 고용 우수기업 인증제도와 인증기준 등 세부 사항을 추가로 안내할 예정이다. 또한, 신청기업을 대상으로 한국경영인증원에서 서류심사와 현장실사를 통해 제대군인 고용 우수기업 여부를 심사한 후, 그 결과를 토대로 국가보훈부 ‘제대군인 고용 우수기업 인증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9월 인증기업을 발표할 예정이다. 서류심사와 현장실사의 평가지표는 중장기복무 제대군인 고용인 수와 우대채용 현황, 제대군인지원센터 협력 정도, 근속 기간, 근로 만족도, 기업 재무 건전성 등이다. 최종 인증기업에 대해서는 제대군인주간인 10월 둘째 주 국가보훈부 장관 인증패와 인증 현판을 수여할 계획이다. 강정애 국가보훈부 장관은 “제대군인에 대한 사회복귀 지원은 제복근무자로서 국가안보를 위해 헌신한 분들의 자긍심을 높이는 것은 물론, 지금도 국가수호 일선에서 땀 흘리고 있는 현역 군인들이 맡은 바 임무에 전념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는 것”이라며 “국가보훈부는 제2의 인생을 시작하는 제대군인들의 원활한 취업을 위한 고용환경 조성을 위해 관계기관과의 협의를 통해 고용 우수 인증기업에 대한 우대지원제도를 더욱 확대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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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419] 재활치료의 위기를 호기로 만드는 비법⑲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연구소장] 병자년 새해가 되었지만 필자는 아직도 목발 신세를 벗어나지 못한 상태에서 대대장 취임은 한 달여 앞으로 다가왔다. 만약 이대로 취임하면 ‘절름발이 대대장 또는 DJ 대대장’이라는 별명이 계속 따라 붙을 것 같았다. 또한 활동에 많은 제약을 주어 불편하게 만드는 골반쪽의 상단 고정핀을 제거하자는 통합병원 군의관(이진우 대위)의 진단에 따라 새해 초부터 재차 병원에 입원했다. 통합병원 도착 다음날 바로 2시간 동안의 수술을 통해 상단핀을 제거하고 다시 2주간의 회복 기간을 가졌다. 이미 3개월 전에 같은 병원에 입원했던 환자였기 때문인지 만나는 간호장교와 군의관들도 모두 반기며(?) 인사를 해와 병원 생활을 불편없이 익숙하게 할 수 있었고, 짧은 입원 기간이기 때문에 주변의 선후배에게도 알리지 않았으며 가족에게도 면회오지 않도록 당부했다. 하지만 회복 및 재활치료의 무료한 시간이 계속되자 재활위기를 호기로 만를려는 생각을 감출 수가 없었다. 보름간의 골반쪽의 상단 고정핀을 제거 수술치료, 입원 기간에 병실에 앉아 필자는 동국대학원 석사학위 논문인 ‘동서독 통일과정에서의 군통합에 관한 연구– 남북한 적용가능성을 중심으로’에서 예비군분야를 발췌하여 정리한 ‘조국통일을 대비한 예비군제도 비전’이라는 원고를 작성했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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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414] 재활치료의 위기를 호기로 만드는 비법⑭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필자는 유난히도 ‘37’이라는 숫자와 많은 인연을 갖고있다. 육사 37기로 임관했고, 또 37사단의 대대장 자원으로 부임했으며, 전입후에 자만과 교만에 빠져 과신하며 지팡이를 던져버리고 무리하게 다니다가 불융합에 의한 대퇴부 재골절로 다시 수술을 받고 37일동안 입원했다. 바로 전해 4월에 발생한 대형교통사고로 인한 병원치료를 마치고 부대로 복귀했을 때 주변 선배들이 재활 치료 기간이 많이 남아있어 바로 대대장 취임은 어려우니 차라리 6개월간의 ‘군사영어반’에 입교하여 교육을 받으며 재활치료를 한후에 대대장으로 취임하라는 제안에 따라 본의 아니게 영어교육을 받는 혜택을 누렸었다. 이번에도 퇴원을 앞두고 회복할 수 있는 재활치료 시간이 필요했는데 궁여지책(窮餘之策)으로 생각해낸 군수관리학교 8주간의 ‘군수기능통합관리과정 제95-4기’ 교육이 종합행정학교 군사영어반에 이어 최후의 피난처가 되었다. 또한 작전직능의 장교가 군수분야까지 섭력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했다. 당시에 장교들이 전 직능의 임무를 다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야한다는 취지에 따라 잠시동안 공통 주특기로 바뀌었지만, 제95-4기과정에 참석한 학생장교들은 대부분이 군수직능 중령급 장교들로 이미 군수참모 직책을 경험했거나 곧 참모로 부임할 자원들이었다. 따라서 작전직능으로 군수분야 문외한(門外漢)인 필자는 수업을 따라가기가 매우 힘들었고 함께 교육받는 선배들과 수호천사 라파엘이었던 동기 이00중령의 도움이 없었다면 무의미하며 고통스럽고 어려운 시간이 될 수도 있었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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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철의 CrisisM] 국회 안보정책 전쟁에 투입할 22대 당선자들의 이모저모③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이번 총선 결과에 대해 류근일 전 조선일보 주필은 국민의힘이 낙담하며 쇼크에 빠져 있는데 그럴 필요가 전혀 없다고 말했다. 오히려 물려받은 국민의힘 의석수는 5석 늘어나 패배가 아니라며 이재명의 더불어민주당이 오히려 지역과 비례의원 모두 5석이 줄어 과반수 제1당 달성은 실패했다고 강조했다. 이렇게 늘어난 국민의힘 당선자 중에 국방전문가로 먼저 강원도 춘천·철원·화천·양구을의 한기호 국방위원장은 철원출신으로 김화중학교를 나온 뒤 서울 한양공고를 다녔다. 육사 31기로 임관하여 2사단장, 육본정보작전부장, 5군단장, 육군 교육사령관을 역임하는 등 작전분야에 정통했으며 육군중장으로 전역하였다. 한 당선자는 현역 위관시절 탁월한 지휘력과 업무추진력이 돋보여 당시 사단장 박세직 장군의 조카 사위가 되었다. 전역 후 바로 철원·화천·양구 지역에 출마하여 18, 19, 21대 국회의 국방위에서 맹활약을 했으며 장성출신으로는 드물게 4선고지를 점령했다. 영주시·영양군·봉화군·울진군 지역구의 임종득 당선자는 경북 영주 출신으로 대구 청구고교를 졸업하고 육사 42기로 임관해 올드 도미니언 대학교 국제관계학 석사, 경남대학교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은 학구파로 전략과 정책 분야에서 경력을 쌓은 전략통 군인으로 2019년 소장으로 전역하였다. 2022년 8월, 국가안보실 제2차장으로 발탁되어 윤석열 대통령을 보좌했고, 퇴임한 2023년 10월부터 지역구로 내려가 착실하게 차기 총선준비를 하였다. 대구·경북 지역에서는 임 당선자를 포함한 국회의원 25석 모두를 보수가 싹쓸이했다. 한편 더불어민주당 ‘남양주시을’ 지역의 김병주 당선자(2선)은 경북 예천에서 태어나 강릉고교를 졸업하고, 육사 40기 포병장교로 임관해 미사일사령관, 3군단장을 거쳐 육군 대장으로 진급했다. 독실한 불자로 한미연합사 부사령관 재직후 전역했다. 2020년 1월, 더불어민주당 인재영입 3호로 입당해 21대 비례대표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어 이낙연 신임 당대표에 의해 안보분야 대변인으로 임명되었다가 이재명의 열린캠프에 국방안보위원장으로 합류했다. 2022년 3월, 국방위에서 대통령 집무실의 용산 이전 건을 두고 전혀 안보 공백에 대한 계획이 없었던 것에 대해서 굉장히 격앙된 모습으로 질문했다. 육사 동기인 이종섭 국방부장관에게 대통령실 이전과 관련된 비행금지구역 재조정에 관하여 사적인 인연과 관계없이 매섭게 몰아치기도 했다. 2023년 1월, 북한 무인기 영공 침범 사건 사건에서 다양한 정부와 국방부의 실책을 비판했으나 정부여당은 북한 도발의 원인을 김 의원이 주도하여 체결한 9.19 군사합의 때문이고, 북한이 합의를 깨고 도발을 해올 때마다 훈련부족을 야기한 안보불안 합의의 책임자라며 오히려 공격을 받았다. 7월 장마 직후 해병대 일병 사망 후 수사 외압, 육사 홍범도 흉상 철거 논란과 대통령실 국정감사에서 미국의 도청사건, 한미일 군사훈련을 비판 등이 현역 시절과 다른 이중잣대라고 제기되면서 육사 출신들의 질책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지만 현재 더불어민주당에서 중책을 맡으며 이재명 당대표의 신임을 받고 있다. 경상남도 김해시 갑 선거구의 민홍철 당선자는 김해에서 태어나 김해고등학교를 3년 장학생으로 졸업 후 이후 부산대 법학과(80학번)에 입학했는데 군사정권이 출범에 따라 휴교령이 내려지자 고시공부를 시작해 1984년 군법무관 임용시험에 합격했다. 이후 각급 부대에서 검찰관, 송무장교, 군판사, 법무참모와 육본에서 법제·법무과장, 고등검찰부장 등을 거쳐 준장 진급 후 육본 법무감, 국방부 고등군사법원장을 지냈다. 2008년 2월 전역 후 변호사로 일하며 정치에 입문해 2009년부터 3년간 한나라당 당적을 가졌었다. 그러나 참여정부 시절 군 사법제도 개혁 과정에서 인연을 맺었던 문재인이 혁신과 통합 추진위원으로 동참할 것을 권유하자 탈당하고 민주통합당에 입당했다.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통합당 후보로 경상남도 김해시 갑 선거구에 출마해 현역 새누리당 국회의원 김정권 후보를 꺾어 당시 경남의 유일한 민주통합당 당선자가 됐다. 이후 20대 총선에도 같은 지역구에서 재선에 성공했다. 당일에 열린 김해시장 재선거 및 시의원 보궐선거 또한 전부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당선되면서 김해시가 사실상 민주당의 텃밭이 되었고 21대에 이어 이번에도 연속 당선됐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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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철의 CrisisM] 이승만, 안중근, 천안함 트리플 추모(상)
[시큐리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3월26일은 ‘이승만 건국 정신 계승 국민대회’가 열린 이승만 전 대통령 탄신일이며, ‘안중근 장군 순국 114주기 추모제’와 1‘4주기 천안함 46용사 추모식’이 열리는 회한의 트리플 추모일이었다. 회한의 트리플 추모일 나흘 앞선 지난 22일, 해군 제2함대사령부에서 열린 제9회 서해수호의 날 기념식이 열렸고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동시에 참석했다. 윤 대통령과 한 위원장은 이 자리에서 “국가를 위협하는 세력에 잘 맞서서 대응해야 한다”며 “어떠한 위협도 응징해야 한다”는 취지로 대화를 나눴고 “이렇게 명백하게 도발과 공격을 받았는데도 자폭이라느니 왜곡, 조작, 선동해서 희생자를 모욕하는 일이 있다”라고 강조했다. 한 위원장은 “영웅들을 이렇게 모욕하고, 조작하고 선동하고 왜곡하는 세력들이 계속 그런 일을 하고 있다. 반드시 막아 내야겠다”며 “저희가 잘하겠다”고 말했다. 행사를 마친 윤 대통령은 차에 탑승하기 전 한 위원장과 악수하며 한 위원장의 어깨를 두드려주었던 이날 만남은 다른 의미에서 주목받았는데, 내달 총선을 앞두고 당과 대통령실의 갈등이 고조되면서 4·10 총선에 악재로 작용할 것이라는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침 이 같은 시기에 윤 대통령과 한 위원장이 만나면서 갈등이 봉합 국면에 접어든 상징적 장면으로 대통령실 관계자는 “당정 간 갈등이 있다고 하는데 그렇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장면이다”라고 대통령실은 밝혔다. ■ ‘부활한’ 천안함에 오른 영웅들…“이제 피격당하지 않을 것” ‘제14주기 천안함 46용사 추모식’이 열린 26일 2함대사령부에서 천안함 폭침 사건 당시 생존장병들과 전사자의 유가족 등은 신형 호위함으로 다시 태어난 ‘천안함(FFG-Ⅱ, 2800톤급)’에 오르며 “많이 좋아졌어. 이 배라면 서해 나가서 두 번 다시 피격당하지 않을 것 같아. 다행이야”라며 반겼다. 또 다른 유가족은 "벌써 14년이 지났지만 단 하루도 천안함 사건과 내 아들을 잊은 날이 없다"라며 "이름을 이어간 천안함 장병은 물론이고 국군 모두가 다시는 다치지 않았으면 좋겠다"라고 밝혔고, 또한 유족회장은 “새 국회에선 천안함 괴담 방지 특별법을 마련하라”고 강조했다. 호위함 천안함은 '천안'을 함명으로 사용한 해군의 세 번째 함정이다. 천안함은 초계함(PCC, 1000톤급)보다 크기와 무장, 방어능력을 대폭 증가했다. 천안함은 길이 122m, 폭 14m, 높이 35m 크기에 최고속력은 30노트(시속 55㎞)이며, 해상작전헬기 1대를 탑재할 수 있다. 주요 무장으론 5인치 함포와 함대함유도탄, 한국형 수직발사체계(KVLS)로 발사하는 함대지유도탄·장거리 대잠어뢰(홍상어)·유도탄방어유도탄 등이 탑재돼 있다.(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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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427] 독불장군 경호실장과 고독한 황태자의 신경전①
- [김희철의 직업군인이야기(214)] 5·16 가신(家臣) 차지철과 고독한 황태자(상) : 2024.05.20 19:13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차지철은 1934년 11월, 경기도 이천에서 아버지 차수찬의 3남 3녀 중 차남으로 출생하였고 한때 경기도 파주에서 잠시 유아기를 보냈고, 이후 서울로 이사하여 서울에서 성장하였고 1953년에 용산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육군사관학교 13기에 지원하였으나 낙방하였고, 1954년 7월에 육군 갑종장교 포병 간부후보생을 통해 육군 소위로 임관한 뒤, 보·포병 병과를 학습하였으며 의외로 미국에서 육군포병학교를 수료하였다. 1959년에 육군 공수특전단에 배치되었다가 1960년에 미국으로 가서 조지아주 포트베닝의 레인저스쿨도 수료하였다. 이듬해인 1961년 공수특전단 예하 중대장의 신분으로 박정희가 주축을 구성한 5.16 군사정변에 적극 가담했다. 쿠데타의 성공 후,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전속부관으로 발탁되며 최고회의 의장 경호실 차장이 되었고, 1962년 3월, 육군 소령 진급에 이어 1962년 5월31일, 육군 중령 특진하여 석 달 뒤인 1962년 8월에 전역했다. 그 해 박정희가 대통령에 취임하자 민주공화당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어 정계에 입문했고, 한양대학교에서 1966년에 석사 학위를, 1970년에 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이어서 계속 공화당 국회의원직을 유지했다. 그 후에는 국회 외무국방위원장까지 지내며 국회에서 나름대로의 영향력을 행사하기도 했다. 1972년 10월 유신이 선포되자, 차지철은 유신정우회 국회의원 후보에 출마하였지만 결국 낙선되었으며, 2년 뒤인 1974년에는 영부인 육영수 저격사건으로 자진 사퇴한 박종규의 후임으로 제3대 대통령 경호실장이 되었다. 이후 대통령 경호를 명분으로 자신의 권한을 넘어서는 각종 월권을 행사하여 주변의 원성을 샀다. 1976년에 이철승을 매수해서 신민당을 어용야당화 시키려는 공작을 했으나 신민당 총재가 이철승이 아닌 김영삼이 선출되자 이철승과 같이 조직폭력배 서방파 두목인 김태촌을 시켜 김영삼을 기습했다. 이에 김영삼은 3층 창문으로 뛰어내려 부상을 당하면서 도망친 뒤 맞불작전으로 본인도 조직폭력배를 고용하여 이철승을 공격하는 신민당 각목 사건이 일어났다. 이후 1979년 10·26사건 현장에 있었던 경호실장 차지철은 김재규의 총격에 의해 박정희 대통령과 함께 운명을 달리한 박 대통령의 5·16가신(家臣)이었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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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427] 독불장군 경호실장과 고독한 황태자의 신경전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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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철의 CrisisM] 제암리 3.1운동 순국선열 6위, 105년 만에 국립묘지에 안장(상)
-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국가보훈부는 1919년 경기도 화성 발안지역에서 일어난 만세운동을 주도한 뒤, 화성 고주리에서 일제에 의해 잔혹하게 살해되어 순국한 독립유공자 김흥열 지사(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 일가 6위의 유해를 순국 105년 만에 국립묘지로 이장했다. 국립묘지 이장 순국선열은 김흥열 지사를 비롯해 동생 김성열, 김세열, 그리고 조카 김흥복, 김주남, 김주업 지사 등 6위(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로, 모두 천도교인들이다. 김흥열은 1919년 4월5일 향남면 발안 장날을 이용하여 안상용, 안진순, 안봉순, 김덕용, 강태성 등과 독립만세시위를 주도하였으며, 동생과 조카 등 온 가족이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당시 만세운동에는 1천여 명이 참여했으며, 일본 경찰과 충돌하는 과정에서 일본인 순사부장이 돌에 맞아 사망한 것을 계기로 일본 경찰과 헌병대가 대량으로 증파된 후 보복적으로 만세운동에 참여했던 군중을 닥치는 대로 체포하고 연행하여 고문을 가했다. 특히, 4월15일 일본군 20여 명이 제암리에 도착 후 기독교인과 천도교인을 제암리 교회에 모이게 하였고, 출입문과 창문을 잠근 채 집중사격을 가했다. 이에 23명이 현장에서 죽임을 당했고 이 사실을 은폐하기 위하여 교회에 불을 질렀다. 일제 군경은 제암리 사건 후, 근처의 고주리로 이동하여 김주업의 결혼식을 위해 모였던 김흥열 등 일가족 6명을 칼로 죽이고 시체를 불태우는 만행을 저질렀다. 사건이 일어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통정대부(정3품)를 지냈던 김흥열의 아버지와 김주업의 새신부까지 죽게 되는 등 멸문의 위기에 처해졌다. 이같은 일제의 만행은 외국인 선교사들의 분노를 사게 하여, 4월17일 캐나다 선교사 스코필드(F. W. Schofield)는 현장으로 달려가 사진을 찍어 ‘수원에서의 잔학행위에 관한 보고서’를 작성하여 본국에 보냈다. 또한 일부 양식있는 일본인들조차 분격케 하여 ‘저팬 애드버타이저(Japan Advertiser)’와 ‘저팬 크로니클(Japan Chronicle)’ 등은 학살사진과 목격자의 증언까지 곁들여 상세히 보도하였다. 이후 고주리 주민들은 불태워진 김흥열 일가 6위의 유해를 수습하여 현재 위치한 팔탄면 공설묘지에 안장하였으며, 그간 유족과 천도교 교인들이 중심이 되어 매년 4월15일 추모제를 거행해 왔다. (하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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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철의 CrisisM] 제암리 3.1운동 순국선열 6위, 105년 만에 국립묘지에 안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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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426] 대대장 취임후 첫 히트작인 군사령부 전술토의(하)
-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조성태(육사20기) 대장은 창군이래 대표적인 정책 및 전략통 장교로 평가받으며 대령 시절에는 이 분야 요직인 육군본부 전략기획과장으로 2차 율곡계획 작성에 참여하며 군사력 건설, 기획 분야의 전문가로 활동했다. 다만 하나회 출신들에 밀려 대령, 준장, 소장 진급은 2차에 걸쳐서야 이루어졌다. 연대장 시절에는 자신의 부대에서 지뢰 사고로 장병 5명이 부상을 당해 하마터면 군 생활을 불명예스럽게 끝낼 뻔하기도 했다. 이후 그의 재능을 눈여겨 봤던 이종구 육군참모총장이 국방장관에 임명되면서 1991년 국방부 정책기획관으로 발탁되었다. 1992년에는 중장 진급과 함께 제1군단장이 되었고, 군단장 재임 1년만에 이전에도 그랬듯 빠르게 국방부 참모로 발탁되어 1993년부터 중장 보직 중 정책통이 맡는 국방부 국방정책실장 직을 역임하고, 1995년에는 대장으로 진급하여 제2군사령관으로 재직한 후 이듬해 전역했다. 군복을 벗은 후 잠시 국방대학교에서 초빙교수로 활동하다가, 율곡사업 시절 상관이었던 임동원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의 추천으로 1999년 김대중 정부의 2번째 국방장관으로 임명되었다. 이듬해 9월에 제주도에서 북한 김일철 인민부력부장과 사상 첫 남북 국방장관회담을 개최했다. 1999년 6월 제1연평해전에서의 성공적 대응으로 군 내외의 찬사를 받았고, 당시 개발이 막 끝난 K-9 자주포를 연평도, 백령도의 해병 부대에 가장 먼저 배치시켰다. 덕분에 2010년 11월23일 벌어진 북한과의연평도 포격전당시 해병대가 반격을 할 수 있었다. 이때 필자는 사단작전참모를 마치고 합동참모본부 민사심리전 참모부의 실무자로 전군 최초로 사이버 심리작전을 시행하는 대북심리작전 개선 계획을 보고하여 조성태 장관의 ‘절대동의’를 받어내는 성과를 달성하며 다시 만났다. 장관직을 떠난 후인 2004년~2007년에는 열린우리당의 공천으로 제17대 국회의 국방위 소속 비례대표로 활동했다. 그러나 당시노무현 정부의 전작권 전환 추진에 반대했고, 2007 남북정상회담을 전후로 공론화된 북방한계선(NLL) 의제화 여부에 대해서도 반대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이것이 그의 마지막 공직 생활이었다. 2021년 8월14일 향년 79세로 사망하여 대전 국립현충원에 안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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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426] 대대장 취임후 첫 히트작인 군사령부 전술토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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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425] 대대장 취임후 첫 히트작인 군사령부 전술토의(중)
-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그 와중에 대전에 위치한 BCTP단으로 열흘 동안 파견되어 사단 BCTP(전투지휘훈련) 워게임요원으로 사단이 우수평가를 받는데 기여했다. 복귀하자마자 다시 연대본부로 합류하여 ‘공군기지 방어 전술토의’ 준비를 했다. 사실은 연대 참모들이 중심이 되어 연대장을 보좌하며 준비하고 있었지만 아무래도 연대 참모들보다 하루라도 더 많이 작전분야에 근무했고 책임지역내에 비행장 경계를 담당하는 예하부대 대대장이었던 필자의 도움이 필요했었다. 결국 상급부대에 준비된 토의 계획의 보고와 실제 전술토의 전날은 연대본부에서 밤을 꼬박 새웠다. 사단장과 군사령부에 성공적으로 계획보고를 마친 연대장은 탁월한 지휘기법의 소유자였다. 연대장은 함께 며칠밤을 설쳐가면서 준비했던 까닭에 필자는 인정받음을 느끼게 했다. 또 칭찬을 아끼지 않는 연대장의 믿음에 송구스럽기까지 했고 더욱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만들었다. BCTP(전투지휘훈련) 워게임요원 파견의 피로도 가시전에 투입되어 연대장이 발표하며 진행하는 전술토의의 리허설까지 했으나, 2군사령관의 일정상 몇 번이나 연기되어 짜증과 스트레스가 쌓여갔다. 그러나 대성공이었다. 공군 비행단장은 전술토의(3월22일)를 통해 개전초기 북한군의 공격양상을 재평가하고 공군의 자체 병력만으로 기지방어가 어렵다는 것을 확신하며 군사령관의 지침에 따라 육군부대의 지원받는 실질적인 합동작전을 수용했다. 또한 후방지역에서 전략적인 작전 수행에 기여하기 위해서 육군부대는 다소 위험이 잔존하더라도 우선적으로 공군기지 방어에 전투력을 집중하여 북한의 초전 공격에 대비하며 우리의 공군력을 보존시켜야 됨을 확실하게 인식했다. 이로써 창군이래 전통을 이어오는 대표적인 전략가로 평가받는 제2군사령관 조성태(육사20기) 대장의 구상이 구현되어 육군 및 공군의 작전 계획을 변경했고, 한반도 내의 전 공군기지에 적용하도록 대통령 훈령도 수정하는 계기가 되었다.(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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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425] 대대장 취임후 첫 히트작인 군사령부 전술토의(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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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424] 대대장 취임후 첫 히트작인 군사령부 전술토의(상)
-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지휘관은 일단 취임식에서 부대기를 인수한 그 순간부터 부대의 성패를 모두 책임진다. 부임초 시간을 쪼개어 예하 23개 예비군 중대를 방문하는 것이 매우 힘들었다. 항간에 혹자는 대대장직을 마칠 때까지 예하부대를 한번씩이라도 모두 방문하면 성공이라는 이야기도 있었다. 헌데 대대장으로 취임했지만 예하부대를 방문하며 업무 파악에 주력하기보다는 BCTP(전투지휘훈련) 워게임요원 파견, 군사령부 ‘공군기지방어 전술토의’ 준비 등 당면한 추가임무들이 폭주해 기본 업무도 하기 어려운 상태가 됐다. 연초에는 일년 동안 진행할 예비군 교육을 위한 예비군 교장 사열 준비가 가장 중요한 임무였지만, 대대 책임지역내에 있는 공군전투비행장에서 다음달 군사령부 전술토의가 계획되어 연대장(신현정 대령, 삼사9기)과 거의 매일 토의준비에 시간을 보냈다. 다행인 것은 예비군 관리대대장으로 근무한 경험이 있는 이완목 부대대장이 주관이 되어 착실하게 부대내에서 교장을 정비하며 사단장의 예비군 교장 사열 준비를 하였고, 반면에 임관후 줄곧 작전분야에서 근무한 필자는 대대가 아니라 연대본부에 들어가 연대장이 발표하고 진행할 전술토의 준비에 매진했다. 사단장과 연대장도 상급부대장인 군사령관이 임석하여 진행할 공군기지 방어 전술토의가 훨씬 더 중요해 모든 관심은 상급부대의 전술토의준비에 집중되었다. 특히 군사령관은 토의 장소를 비행장 안에서 공군들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하도록 강조하여 책임 대대장인 필자는 비행단장을 직접 만나 협조도 구했다. 대대장 취임후 거의 한달 가까이 연대장과 매일 접하며 군사령관이 요구하는 전투비행단 방어지침에 따라 어떻게 준비해서 토의를 진행해야 효과적인 결과를 얻을 수 있을까 고민하고 상의했는데 필자와 마찬가지로 연대장도 작전직능으로 서로 공감하면서 잘 소통이 되었다. 하지만 기본 임무인 연초 예비군 교장 사열 준비도 소홀히 할 수 없었다. 대대보다 먼저 시행한 타부대의 사단장 사열에서 성공적인 평가를 받은 인접 대대를 틈틈이 방문해 벤치마킹하면서 대대내에서 교장사열 준비를 주관하는 부대대장에게 보다 창의적이고 효율적이며 재미있는 교장을 만들도록 지침을 하달하며 분주하게 보냈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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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424] 대대장 취임후 첫 히트작인 군사령부 전술토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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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423] 교통사고 후유증을 극복하며 혹한속에 대대장 취임③
-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향토사단은 새해가 되면 가장 큰 이슈가 봄부터 시작되는 예비군 교육 준비이다. 그중에서도 겨울 동안 혹한 속에 방치되었던 교장을 신년 상급부대의 지침에 따라 새롭게 정비하여 사단장의 교장사열을 받는 것이 한 해의 시작부터 연말까지의 성과를 결정하는 최대의 관심사였다. 하지만 필자는 그동안 작전분야에서만 근무하여 생소한 임무였기 때문에 기존 참모들의 조언대로 시행할 수 밖에 없었다. 게다가 대분분이 필자보다 군 선배인 15명의 지역예비군 중대장과 8개의 직장예비군 중대장을 지휘하는 것도 부담스러웠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는 속담처럼 필자 옆에서 결정적으로 큰 힘이 되어준 고마운 전우가 있었다. 바로 부대대장 고(故) 이완목 소령(삼사14기, 전역후 마포부근에서 오토바이 사고로 운명)이었다. 그는 전역을 앞둔 소령이었지만 필자보다는 약 3년 군선배였다. 이미 청원대대에 부임전에 경기도 일산 부근에서 예비군 관리대대장으로 근무한 경험이 있어 지팡이를 짚고 있는 필자를 대신해서 현장을 발로 뛰어주었다. 또한 예하 23명의 예비군 중대장들을 완전 장악하고 대대의 임무수행에 지휘주목하도록 만들었다. 심지어 사단장 교장 사열을 앞두고는 공휴일에도 직접 교장에 나와 현장을 확인하여 예하 예비군중대장들도 어쩔수 없이 따라나와 교장 보수 및 정비작업을 하게 만들어 결국에는 큰 성과를 얻을 수 있었다. 마치 이완목 부대대장은 필자가 취임할 것을 대비해 사전에 먼저 대대로 부임하여 줄탁동시(啐啄同時)란 말처럼 적시에 천군만마(千軍萬馬)역할을 해주며 청원대대를 빛나게 만든 고마운 선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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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423] 교통사고 후유증을 극복하며 혹한속에 대대장 취임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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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422] 교통사고 후유증을 극복하며 혹한속에 대대장 취임②
- [시큐리티팩트= 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병자년 새해가 되었지만 필자는 아직도 지팡이 신세를 벗어나지 못한 상태에서 대대장 취임식을 했다. 7개월 전 사단 전입 신고시에도 절뚝거리며 신고한 필자를 바라보며 불안감을 감추진 못한 사단장은 “김중령은 이렇게 불편한 몸으로 현장에서 뛰어야 할 대대장직을 수행할 수 있겠나?”라는 질문을 불쑥 던지며 걱정했었다. 이취임식 행사장에서도 동기생들과 청원군수를 비롯한 많은 기관장들이 참석했지만, 그들 또한 이렇게 지팡이를 짚은 불편한 몸으로 현장에서 뛰어야 할 대대장직을 수행할 수 있을지 걱정하는 눈빛이었다. 반면에 우여곡절(迂餘曲折)의 역경을 겪으며 어렵게 대대장으로 취임하는 필자를 축하해주기 위해 고맙게도 먼거리에도 불구하고 참석한 하객들이 강추위가 겹쳐 미끄러운 눈길에 안전한 귀가가 걱정되었다. 아무튼 피로연까지 끝내고 예비군 중대장들을 포함한 모든 하객들이 떠나자, 주임원사는 필자에게 대대장실에 본부 간부들이 모두 집합해 대기하고 있다고 보고했다. 향토사단 대대는 전방 상비사단처럼 많은 인원이 아니라 동원되는 예비군들이 대부분인 간편 인원으로 모두 모아도 대대장실이면 충분했다. 먼저 전임 대대장을 훌륭하게 보필하여 임기를 잘 마치게 한 것과 이번 이취임식 행사 준비를 잘한 노고를 치하했다. 비록 지팡이를 짚고 있는 대대장이지만 앞으로 또 얼마나 피곤하게 만들지 아니면 사기 충천하게 만들지가 궁금하면서도 긴장된 모습의 간부들은 그 다음 말이 어떨게 나올지 귀를 종긋 세우고 있었다. 필자는 취임전에 사단사령부에서 평가단장 및 여러임무를 수행했기에 앞으로 얼마나 많은 임무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지를 잘 알고 있었다. 연초 예비군교장 사열 준비부터 정신교육 VTR촬영, BCTP(전투지휘훈련) 워게임요원 파견, 군사령부 17전투비행장 전술토의 준비 등 취임 직후 약 3개월간은 정신없이 뛰어야 할 상황이었다. 물론 대대간부들도 모두 알고 있는 임무였으나 필자는 모여있는 간부들에게 첫 한마디로 ‘지휘주목’과 ‘복명복창’을 강조했다. 대대가 아닌 사단을 대표해서 임무를 수행해야 할 과제들이 산적해 있어 하나하나 직접 챙기기에는 어려울 것으로 판단해 대대장에게 ‘지휘주목’해서 불필요한 업무가 반복되어 시간을 낭비하는 것을 방지하고, 한번 강조한 사항은 반드시 ‘복명복창’을 통해 신속하고 철저하게 시행하도록 만들기 위한 조치였다. 헌데 첫 마디를 내뱉으면서 필자는 미소를 띄울 수 밖에 없었다. 왜냐면 전방 대성산 기슭에서의 중대장 시절에 새롭게 대대장으로 부임한 강호갑(육사31기) 선배가 취임 후 일성으로 강조했던 것을 똑같이 말하며 상급자에게 배운 것을 그대로 따라하는 필자를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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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422] 교통사고 후유증을 극복하며 혹한속에 대대장 취임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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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421] 교통사고 후유증을 극복하며 혹한속에 대대장 취임①
- 청원대대장 이취임식에서 취임사하는 필자 모습 [사진=김희철] [뉴스투데이=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이취임식이 열린 병자년 2월1일은 이른 봄이었지만 눈도 많이 내렸고 유난히 추웠다. 대대장 취임 전에는 연대본부에서 대기하며 인접 사단에서 개최된 ‘예비군훈련 향상방안’ 군사령부 시범식 토의도 참관했고 인접 대대에서 지휘관을 하는 선배동료들도 방문해 조언도 들었다. 청원 대대를 내실있게 발전시켜온 육사 1년 선배인 김종철(육사36기) 중령의 이임사를 들으니 3년 가까운 제31대 대대장 재임기간 동안의 희노애락(喜怒哀樂)을 겪으며 수고한 순간들이 그려졌다. 필자가 3년 뒤에 이임사에서는 어떤 이야기를 쏟아 낼 수 있을까? 필자는 제32대 대대장 취임사를 하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 역시 쩔뚝거리며 연대장에게 인사하고 단상으로 이동해 집결해있는 대대원들을 바라보았다. 감개무량(感慨無量)한 순간이었다. 중령으로 진급해 사단의 가장 중요한 대대에 취임을 앞두고 대대장반 교육과정을 다니다가 졸업을 1주일 앞두고 대형 교통사고를 당해 큰 수술을 6번씩하고 주변인들에게 걱정을 끼치며 재활치료을 받았다. 그 과정에서 군사영어반, 군수관리학교 군수기능통합관리과정을 이수하는 등의 애틋한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원래 2년전에 무적태풍부대의 군자산 대대장으로 취임 예정이었으나 21개월 미뤘던 취임식을 최전방이 아닌 충북 향토사단에서 했다. 이날의 취임식까지 교통사고, 재활치료 등 그동안 쉽지 않은 과정을 거쳤다. 사실 이렇게 대대장을 시작하게 된 것도 기적에 가까운 행운이었다. 그렇기에 더 열심히 잘하겠다는 다짐을 했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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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421] 교통사고 후유증을 극복하며 혹한속에 대대장 취임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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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철의 CrisisM] ‘국립횡성호국원’ 건립추진으로 강원권 첫 국립묘지 조성예정
-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강원도 횡성군 공근면 덕촌리 일원 39만㎡(11만8천 평)에 2만기 규모의 봉안시설과 부대시설을 조성해 강원권 국가유공자들에게 근거리 안장서비스를 제공할 강원권 첫 국립묘지인 국립횡성호국원 조성사업이 본격화된다. 국가보훈부는 지난 24일 오전11시, 강원도 횡성군청(회의실)에서 강정애 국가보훈부 장관, 김진태 강원도지사, 김명기 횡성군수 등이 참석한 가운데 국립횡성호국원 조성사업의 성공적인 추진을 위한 실시협약을 체결한다고 밝혔다. 이번 협약은 국립횡성호국원 조성사업을 위해 국가보훈부와 강원도, 횡성군이 국가를 위해 희생・공헌한 분을 추모하고 국민의 애국심을 기르는 공간으로 조성하는 데 상호협력을 약속하는 것으로, 국가보훈부는 지역경제 활성화에 기여할 수 있도록 횡성군과 주민 의견을 적극 수렴해 사업을 추진하고, 강원도는 기반 시설 구축과 개별법령상 규제 해제 등에 적극 노력할 예정이다. 또한 횡성군은 인·허가의 신속한 처리와 기반 시설 설치 등에 나설 방침이다. 국립횡성호국원 조성사업은 지난 2022년 12월 부지 발표 이후 주민들의 반대로 제동이 걸렸지만, 이후 지역주민과 지자체, 그리고 국가보훈부가 서로 노력하고 양보해 주민 동의가 이뤄지고, 지난 3월 주민설명회를 개최하는 등 본격적인 사업추진에 들어갔다. 이에 따라 국가보훈부는 내년까지 국립횡성호국원 설계와 인·허가 용역, 토지 보상을 거쳐 오는 2026년 착공에 들어간 뒤 2028년 11월 개원할 예정으로 소요예산은 약 497억원이다. 국립횡성호국원이 조성되면 강원권 내 국립묘지 안장대상자(18000명)의 타 지역(국립묘지) 원거리 안장에 대한 불편함을 해소하고 안장 편의성이 증대돼 강원도 보훈가족의 자긍심을 제고시킬 수 있으며, 수도권 안장대상자까지 안장수요를 적기에 대처할 수 있다. 또한 업무 관련 종사자 채용을 비롯한 시설공사, 안장자의 유족뿐만 아니라 학생과 시민 방문객 증가 등으로 인한 지역경제 활성화와 함께 자라나는 미래세대에게 안보 교육과 나라 사랑 체험의 장으로 활용이 기대된다. 한편, 현재 전국 국립묘지는 국립서울현충원과 국립대전현충원 등 총 12곳으로, 국립횡성호국원은 강원권에 처음 조성되는 국립묘지이자 개원을 기준으로 국립연천현충원(2026년 개원)에 이은 14번째 국립묘지이다. 또한, 국립호국원 중에서는 7번째이다. 강정애 국가보훈부 장관은 “국립횡성호국원이 조성되면, 강원권과 인근 지역에 거주하시는 국가유공자분들의 마지막 가시는 길을 최고의 예우를 갖춰 모실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는 것”이라며 “국립횡성호국원이 국가를 위해 헌신하신 분들께 최고의 예우를 다하는 국립묘지이자 지역주민들의 안식처와 보훈문화를 향유하는 공간이 될 수 있도록 조성에 만전을 기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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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철의 CrisisM] ‘국립횡성호국원’ 건립추진으로 강원권 첫 국립묘지 조성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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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420] 재활치료의 위기를 호기로 만드는 비법⑳
-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필자가 곧 향토사단 대대장으로 취임하여 동원 및 일반 예비군 교육을 주로 하는데 조국통일을 대비한 예비군 제도를 연구하는 것은 의미가 있었고 재수술로 인한 무료할 것 만 같았던 입원 기간은 연구 논문이 육군지에 게재되는 보람을 느끼는 전화위복(轉禍爲福)의 기회가 되었다. 하지만 좋은 일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3년전 1월 중순경 평택 집앞 도로에서 승용차와 트럭이 충돌하는 교통사고가 발생하여 후송된 아버님이 중태였었다. 다행히도 성공적인 수술을 마치고 중환자실로 옮겼고, 4주 동안 무의식(코마) 상태에서 계시다가 회복되어 장기간 치료 후에 다행히 건강을 되찾았었다. 그 사고 덕분에 힘들고 외로우며 급할 때 조건없이 연락해서 만날 수 있는 ‘진정한 벗’을 확인할 기회이기도 했다.([김희철의 직업군인이야기(177)] ‘진정한 벗은 힘들고 급할 때 찾는 친구’ 참조) 그런데 필자도 교통사고후 재활치료의 위기를 노심초사(勞心焦思)하며 한 단계씩 극복하는 성취감에 도취되어 있을 때 신(神)께서는 교만하지 말라며 일침을 가했다. 대대장으로 취임하기 열흘 전인 이번에는 아버님께서 오토바이를 타고 가시다가 또 교통사고를 당해 입원하셨다. 평택 성심병원 중환자실의 아버님은 의식은 뚜렷하셨으나 두개골에 약간 금이 갔고, 쇄골과 늑골이 골절된 상태였다. 인간관계에서 가장 근본은 역시 가족이다. 어머니와 처는 치료와 간병을 도맡아 전담했다. 그리고는 “아버님 걱정말고, 부대로 복귀해 우여곡절 끝에 얻게 된 대대장 취임 준비를 잘해라”며 등을 떠밀었고 필자에게 짐이 되지 않도록 애를 쓰는 모습이 감사하고 안타까웠다. 마침 이제 초등학생이 된 큰아들이 엄마 곁에서 큰 힘이 되어 주었다. 국어사전에 ‘좋은 일에는 흔히 방해되는 일이 많음 또는 그런 일이 많이 생김’이라고 정의된 호사다마(好事多魔)라는 사자성어가 꼭 들어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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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420] 재활치료의 위기를 호기로 만드는 비법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