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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495] 혹한기훈련과 연대전투단훈련으로 호국충절의 고장임을 증명④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고향이 같은 충청북도인 사단장과 군수는 보자마자 너무도 반갑게 인사를 했다. 충북 괴산군 청안면 출신인 사단장은 충북 청원군 북이면 출신의 군수와 이미 알고 지내던 사이였다. 사단장은 청원군수를 만나자마자 군의회 의장과 함께 훈련장을 방문해서 비행장 방어시에 야간 침투하는 적들을 격멸하기 위해 필요한 탐조등 35셋트(630만원 상당)을 구매하여 기부해준 것과 지난번 낭성면 예비군 무기고 신축 예산(약 2000만원) 지원, 그리고 사단에서 필요한 모래를 미호천에서 채취하도록 승인해준 것에 대해 감사함을 표했고, 분위기는 상승고도를 탔다. 덕분에 훈련상황실에서의 현황보고는 부드럽게 마무리가 되었다. 그 두사람은 훈련상황실에서 나와 훈련장 텐트 현장을 함께 순시했다. 모두 시간에 쫒기는 중요 직책이었으나 그들은 할 이야기가 남았는지 현장 순시를 함께하다가 대대장 텐트로 다시 들어가 못다한 환담을 지속했다. 다음날 사단 상황실의 아침 상황보고에서 사단장은 청원대대의 훈련 현장지도시 중대장과 병 1인 다역화와 간부화 훈련 백브리핑에 대한 칭찬의 훈시를 쏟아내며 타부대도 참고해서 훈련에 임하라고 강조했다. 또한 발표한 병사는 포상휴가조치하라고 지시했다는 소문도 들렸고, 얼마뒤에 현장지도 결과가 공문으로 각 부대로 하달되어 대대원들의 사기가 최고로 고조되는 영광도 얻었다. 사단장의 동계 혹한기 훈련 현장지도 결과가 각 부대로 하달되자 연대 및 사단 실무자들과 타 부대장들은 “도대체 어떻게 했길래 사단이 들썩들썩하냐?”고 의문의 전화를 필자에게 계속 날려보냈다. 육본으로 전출간 전임 사단 공병대장과 수방사에서 함께 근무했던 장연석(육사35기) 선배도 소식을 들었다며 축하 전화를 주었다. 과거 최전방 대성산 기슭의 중대장 시절에는 혹한과 폭설 속에서 얼음집을 지어 숙영하며 적응훈련을 했었지만, 향토사단 후방지역인 충청북도는 전방만큼 기온이 떨어지지 않아 제대로 혹한기 훈련을 못했다는 아쉬움이 있었다. 하지만 사단장의 극찬으로 이번 혹한기 훈련도 유종의 미를 거두었다.(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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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철의 CrisisM] 11월의 6‧25남침전쟁영웅, 인천상륙작전의 영웅 ‘발도메로 로페즈 미국 해병 중위’ 선정
[시큐리티팩트 =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국가보훈부는 1950년 9월15일 인천상륙작전에서 고(故) 강재구 소령처럼 살신성인(殺身成仁)의 자세로 자신의 목숨을 던져 전우들을 구한 발도메로 로페즈(Baldomero Lopez) 미국 해병 중위를 ‘2024년 11월의 6‧25전쟁영웅’으로 선정했다. 1925년 8월23일, 미국 플로리다주 탬파에서 태어난 로페즈는 1947년 6월6일 해군사관학교를 졸업한 뒤 해병대 소위로 임관하였다. 1950년 6월 중위로 진급한 그는 6‧25전쟁이 발발하자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파병에 지원했다. 한국에 도착한 로페즈는 미 제1해병사단 5해병연대 1대대 A중대 소대장으로 복무하였으며, 1950년 9월15일 인천상륙작전에 투입되었다. 소대원들과 함께 해안에 상륙한 로페즈 중위는 선두에서 사다리에 올라 해안 방벽을 넘은 후, 전방의 북한군 벙커를 향해 수류탄을 던지던 중 적의 기관총 사격으로 우측 어깨와 가슴에 총탄을 맞고 쓰러지면서 수류탄을 떨어뜨렸다. 바닥을 기어 수류탄을 다시 집어 던지려고 했지만, 부상으로 멀리 던질 수가 없었던 로페즈 중위는 부하들의 생명을 위험에 빠뜨리는 것 대신 자신을 희생하기로 선택했고, 결국 수류탄을 끌어안으며 장렬하게 전사했다. 이러한 공로로 미국 정부는 1951년 8월 30일 미합중국 명예훈장(Medal of Honor)을, 대한민국 정부는 2023년 4월25일 대한민국 최고 무공훈장인 태극무공훈장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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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철의 CrisisM]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6·25전쟁 이야기’ 독후감 시상식과 북콘서트②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독후감 공모전 시상식을 마치고 대상을 받은 최지효 학생은 소감 발표에서 “이책을 통해 나라가 어떻게 지켜졌는 지를 분명히 알게 되면서 나라사랑 마음이 깊어졌으며, 저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나라를 빛내는 역할을 하겠다”고 다짐했다. 또한 초등부 금상인 김세진 학생은 심사위원 및 참석자들을 일일이 호명하며 본인을 뽑아준 것에 감사드린다고 말해 행사장을 웃음바다로 만들며, “저의 꿈도 장차 국방과학연구원으로 자유를 수호하는 인물이 되는 것입니다”라고 당선 소감을 발표했다. 이날 1부는 국민의례에 이어 김병관 한미안보연구회 회장의 환영사, 현인택 전 통일부 장관과 김재창 명예회장의 축사에 이어 공모전 시상식으로 축제분위기가 이어졌고, 2부에서는 테너 지명훈과 싱어송라이터 이유진의 축가와 ‘할들육(할아버지가 들려주는 6·25전쟁 이야기)’관련 퀴즈로 시작된 작가 장삼열 박사의 북콘서트가 진행됐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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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철의 CrisisM] ‘2024 제대군인 고용우수기업 인증제’ 시행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국가보훈부는 27일 “국가안보를 위해 오랜 기간 군에서 복무한 중장기복무 제대군인의 안정적인 일자리 확보와 취업 촉진을 위해 이날부터 오는 7월26일까지 ‘2024 제대군인 고용우수기업 인증’을 위한 신청·접수를 진행한다”라고 밝혔다. ‘제대군인 고용우수기업 인증제’는 중장기복무 제대군인의 일자리 창출은 물론 확보된 일자리에 지속적으로 취업할 수 있는 연결고리를 마련하고, 기업이 제대군인 채용에 적극 나설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지난 2015년부터 시행하고 있는 사업이다. 특히, 국가보훈부는 2021년 ‘제대군인 고용우수기업 인증제’를 법률로 명문화한 뒤, 인증제에 대한 기업의 관심 유도를 위해 행정·재정·법률적 혜택(인센티브)을 확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실제로 현재 제대군인 고용우수 인증기업은 시중은행의 여신지원 시 금리 우대를 비롯해 관세 조사유예, 방위사업청 및 지방자치단체 우수기업 선정 평가 시 가점 부여 등의 우대지원을 받을 수 있다. 신청 희망 기업은 오는 7월26일까지 신청서류(국가보훈부 홈페이지 공지)를 준비하여 한국경영인증원 제대군인 고용 우수기업 인증사무국에 전자우편으로 제출하면 된다. 이미 국가보훈부는 6월20일 ‘인증설명회’를 온라인(ZOOM)으로 개최하며, 제대군인 고용 우수기업 인증제도와 인증기준 등 세부 사항을 추가로 안내할 예정이다. 또한, 신청기업을 대상으로 한국경영인증원에서 서류심사와 현장실사를 통해 제대군인 고용 우수기업 여부를 심사한 후, 그 결과를 토대로 국가보훈부 ‘제대군인 고용 우수기업 인증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9월 인증기업을 발표할 예정이다. 서류심사와 현장실사의 평가지표는 중장기복무 제대군인 고용인 수와 우대채용 현황, 제대군인지원센터 협력 정도, 근속 기간, 근로 만족도, 기업 재무 건전성 등이다. 최종 인증기업에 대해서는 제대군인주간인 10월 둘째 주 국가보훈부 장관 인증패와 인증 현판을 수여할 계획이다. 강정애 국가보훈부 장관은 “제대군인에 대한 사회복귀 지원은 제복근무자로서 국가안보를 위해 헌신한 분들의 자긍심을 높이는 것은 물론, 지금도 국가수호 일선에서 땀 흘리고 있는 현역 군인들이 맡은 바 임무에 전념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는 것”이라며 “국가보훈부는 제2의 인생을 시작하는 제대군인들의 원활한 취업을 위한 고용환경 조성을 위해 관계기관과의 협의를 통해 고용 우수 인증기업에 대한 우대지원제도를 더욱 확대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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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419] 재활치료의 위기를 호기로 만드는 비법⑲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연구소장] 병자년 새해가 되었지만 필자는 아직도 목발 신세를 벗어나지 못한 상태에서 대대장 취임은 한 달여 앞으로 다가왔다. 만약 이대로 취임하면 ‘절름발이 대대장 또는 DJ 대대장’이라는 별명이 계속 따라 붙을 것 같았다. 또한 활동에 많은 제약을 주어 불편하게 만드는 골반쪽의 상단 고정핀을 제거하자는 통합병원 군의관(이진우 대위)의 진단에 따라 새해 초부터 재차 병원에 입원했다. 통합병원 도착 다음날 바로 2시간 동안의 수술을 통해 상단핀을 제거하고 다시 2주간의 회복 기간을 가졌다. 이미 3개월 전에 같은 병원에 입원했던 환자였기 때문인지 만나는 간호장교와 군의관들도 모두 반기며(?) 인사를 해와 병원 생활을 불편없이 익숙하게 할 수 있었고, 짧은 입원 기간이기 때문에 주변의 선후배에게도 알리지 않았으며 가족에게도 면회오지 않도록 당부했다. 하지만 회복 및 재활치료의 무료한 시간이 계속되자 재활위기를 호기로 만를려는 생각을 감출 수가 없었다. 보름간의 골반쪽의 상단 고정핀을 제거 수술치료, 입원 기간에 병실에 앉아 필자는 동국대학원 석사학위 논문인 ‘동서독 통일과정에서의 군통합에 관한 연구– 남북한 적용가능성을 중심으로’에서 예비군분야를 발췌하여 정리한 ‘조국통일을 대비한 예비군제도 비전’이라는 원고를 작성했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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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414] 재활치료의 위기를 호기로 만드는 비법⑭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필자는 유난히도 ‘37’이라는 숫자와 많은 인연을 갖고있다. 육사 37기로 임관했고, 또 37사단의 대대장 자원으로 부임했으며, 전입후에 자만과 교만에 빠져 과신하며 지팡이를 던져버리고 무리하게 다니다가 불융합에 의한 대퇴부 재골절로 다시 수술을 받고 37일동안 입원했다. 바로 전해 4월에 발생한 대형교통사고로 인한 병원치료를 마치고 부대로 복귀했을 때 주변 선배들이 재활 치료 기간이 많이 남아있어 바로 대대장 취임은 어려우니 차라리 6개월간의 ‘군사영어반’에 입교하여 교육을 받으며 재활치료를 한후에 대대장으로 취임하라는 제안에 따라 본의 아니게 영어교육을 받는 혜택을 누렸었다. 이번에도 퇴원을 앞두고 회복할 수 있는 재활치료 시간이 필요했는데 궁여지책(窮餘之策)으로 생각해낸 군수관리학교 8주간의 ‘군수기능통합관리과정 제95-4기’ 교육이 종합행정학교 군사영어반에 이어 최후의 피난처가 되었다. 또한 작전직능의 장교가 군수분야까지 섭력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했다. 당시에 장교들이 전 직능의 임무를 다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야한다는 취지에 따라 잠시동안 공통 주특기로 바뀌었지만, 제95-4기과정에 참석한 학생장교들은 대부분이 군수직능 중령급 장교들로 이미 군수참모 직책을 경험했거나 곧 참모로 부임할 자원들이었다. 따라서 작전직능으로 군수분야 문외한(門外漢)인 필자는 수업을 따라가기가 매우 힘들었고 함께 교육받는 선배들과 수호천사 라파엘이었던 동기 이00중령의 도움이 없었다면 무의미하며 고통스럽고 어려운 시간이 될 수도 있었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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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철의 CrisisM] 故 김웅수 육군 소장, 7월의 6‧25전쟁영웅으로 선정
-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국가보훈부는 1953년 6월29일부터 7월11일까지 강원도 철원군에서 벌어진 ‘화살머리고지(281고지)전투‘에서 탁월한 지휘력으로 중공군의 맹렬한 공격을 끝까지 막아내어 적의 의도를 좌절시킨 김웅수 대한민국 육군 소장(당시 준장)을 ‘2024년 7월의 6‧25전쟁영웅’으로 선정했다. 1923년 출생한 김웅수 소장은 1946년 군사경비대 군사영어학교 졸업 후 육군 소위로 임관하였다. 6‧25남침전쟁이 교착상태에 빠져있던 1952년 6월 제2군단 참모장을 거쳐 1953년 5월 국군 제2사단장으로 부임하였다. 1953년 6월, 적은 휴전에 반대하는 우리 정부를 압박하고 휴전협정이 조인될 때까지 최대한 많은 땅을 빼앗기 위해 ‘중공군 6월 공세 제2단계 작전’을 감행했다. 이때 중부전선 철원평야 ‘철의 삼각지’에서도 중요한 전략적 거점인 백마고지와 화살머리고지를 확보하려는 중공군의 공세가 거셌다. 그중 화살머리고지는 아군이 1951년 10월 ‘코만도 작전’에서 획득한 고지로 백마고지와 함께 임진강의 지류인 역곡천의 북안에 위치한 요충지로, 국군 제2사단은 1952년 12월 29일 철원지역에 투입되어 1953년 6월29일과 30일에 걸쳐 중공군 제73사단이 화살머리고지 2개 전초진지를 공격하자 치열한 공방전 끝에 이들을 격퇴하였다. 이 전투에서 약 400여 명의 인명 손실을 입고 물러간 중공군 제73사단은 1953년 7월6일, 1개 대대 병력으로 재차 공격에 나섰다. 7월11일까지 뺏고 뺏기는 치열한 전투를 벌인 끝에 아군은 화살머리고지를 사수하는 데 성공하였다. 휴전 조인을 앞두고 국군 제2사단이 거둔 마지막 승전이었던 이 전투에서 김웅수 소장은 초반에 적에게 빼앗긴 전초 진지를 탈환하기 위해 거듭 공격에 나섰음에도 실패하자 전략을 바꿨다. 좁은 공간에 소수 병력을 나누어 투입하는 대신 각 연대에 2개 중대씩 차출한 뒤 적의 진지에 대한 정면공격과 함께 후방에 대한 동시 기습작전을 펼쳤다. 또한 적이 예상하지 못하도록 심야에 공격함으로써 결국 적을 몰아내고 승리로 이끌었다. 이 전투의 공로로 대한민국 정부는 그에게 태극무공훈장(1954년)을 수여하였다. 1961년 육군 소장으로 전역한 김웅수 소장은 이후 미국 가톨릭대학교와 건양대학교 등에서 교수로 역임하였으며, 2018년 2월 향년 95세로 별세해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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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철의 CrisisM] 故 김웅수 육군 소장, 7월의 6‧25전쟁영웅으로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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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435] ‘김정일 얼굴이 그려진 샌드백’과 동굴 수색을 추가한 예비군교장 사열⑤
-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드디어 사단장이 부대를 방문하며 그해 예비군 교육을 위해 교장 준비 사열이 시작됐다. 사단장 이상신 장군은 갑종 197기로 수방사령부 동원처장 근무시에 장군으로 진급한 동원분야의 대가였다. 전체적인 예비군 교장 개선 사항을 필자가 보고했으나 현장에서는 과목별 담당교관인 예비군 중대장들이 직접 보고했다. 물론 사단장 옆에서 필자가 추가 설명도 간간이 병행했다. 하지만 과목별 교장을 직접 만든 해당 예비군 중대장들이 자신있게 사단장에게 보고하는 것을 옆에서 보면서 부대대장 이완목 소령이 얼마나 혹독하게 사전 훈련시켰는가를 느낄 수 있었다. 또한 타부대에 비해 유독 많이 설치된 간판과 샌드백, 섬건너뛰기 등 보조물들과 블록 및 폐타이어를 이용한 계단식 강의장 좌석 등 정성어린 훈련준비를 한 현장의 흔적들도 사단장을 흡족하게 만들었다. 이것은 당시 동원장교였던 장석우 대위의 치밀하고 철저한 준비와 주임원사와 예비군 중대장들을 비롯한 전 대대원이 휴일까지 반납하며 최선을 다한 노력의 결실이고 그 덕분에 청원대대를 더욱 빛나게 만들었다. 추후 실제 예비군 훈련시 교장별 이동코스에 설치된 ‘김정일 얼굴이 그려진 샌드백’을 한 대 치고 지나가던 예비군이 “야! 니놈 때문에 우리가 이렇게 훈련받느라 고생한다!”라고 외치자 함께 훈련받던 예비군들이 한바탕 웃는 모습을 보면서 대적관도 덩달아 확고해지는 보람도 느꼈다. 과목별로 보고를 받던 사단장은 직접 준비한 예비군 중대장들의 어깨를 두드리며 격려했다. 또한 사열을 마치고 대대장실에서 차를 마시며 필자에게 수고했다고 격려금도 주었고, 수행한 동원참모에게 이미 사열을 받은 대대들도 다시 이곳을 견학해서 교장 준비 상태를 참고해 추가 발전시키도록 지시했다. 대대의 연초 가장 중요한 예비군 교장 사열이 성공적으로 끝나자 그냥 조용하게 지나갈 수가 없었다. 사단장이 복귀하자 주임원사는 발빠르게 거창한 대대 회식을 준비했다. 지팡이를 짚은 DJ 대대장인 필자도 그동안 고생해서 첫 성과를 올린 부하들의 격려는 당연히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날은 어쩔 수 없이 필자도 대대장 취임후 첫 번째로 취할 정도의 과음을 했지만, 휴일까지 반납했던 대대원들과 함께 즐겁고 보람을 느끼며 하나가 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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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435] ‘김정일 얼굴이 그려진 샌드백’과 동굴 수색을 추가한 예비군교장 사열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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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철의 CrisisM]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6·25전쟁 이야기’ 독후감 시상식과 북콘서트③
-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작가 장삼열 한미안보연구회 사무총장은 북콘서트에서 “호국보훈의 달을 맞이해 전쟁을 모르는 세대가 우리 6·25전쟁만큼은 바르게 알게 됐으면 합니다”며 발간 배경 및 목적을 다음과 같이 밝혔다. “대한민국의 미래는 밝다. 하지만 동존상잔의 비극이었고 아직도 끝나지 않은 전쟁을 학교에서는 왜곡 축소하여 미흡한 실정이다. 그래서 이러한 사실들을 다음 세대에 알리기 위해 그동안의 연구 결과를 삽화와 사진 등과 함께 쉽게 대화체로 풀어낸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6·25전쟁 이야기’를 4년동안 준비해 지난 1월에 출간했다”고 말했다. 전쟁사를 전공한 정치학 박사이자 예비역 대령인 장삼열 한미안보연구회 사무총장(68)은 1979년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해 소위로 임관한 뒤 줄곧 전쟁사 연구에 매진해왔다. 육군대학에서 전쟁사 교관과 육군군사연구소 한국전쟁연구과장을 거쳐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에서 국방사부장을 지냈다. 또한 작가는 6·25남침전쟁을 직접 겪진 못했지만 1994년 소말리아 내전에 7개월, 2006년 이라크 전쟁에서 1년 1개월 등 해외 전쟁에 파견돼 참전한 경험이 6·25전쟁사 연구에 큰 도움을 줬다며 눈앞에서 총알이 날라다니는 모습에 익숙해지자 전쟁이 무엇인지 체감했다고 했다. 책은 6·25남침전쟁의 발발부터 휴전협상과 한미상호방위조약까지 이어지는 1129일간의 전쟁을 인천상륙작전 등 개별 전투를 중심으로 생생하게 묘사했다. 학도병 등 어린 나이에도 총을 잡은 참전용사들의 이야기부터 유엔군의 도움과 보훈의 필요성도 빼먹지 않고 조명했다. 작가는 “미래 세대가 6·25남침전쟁을 올바르게 알고 나라를 위해 희생과 헌신한 분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됐으면 좋겠다”며 북콘서트를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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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철의 CrisisM]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6·25전쟁 이야기’ 독후감 시상식과 북콘서트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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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434] ‘김정일 얼굴이 그려진 샌드백’과 동굴 수색을 추가한 예비군교장 사열④
-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과목별 교장간에 이동코스가 긴 곳은 예비군들이 지루하고 짜증을 낼 수도 있어 중간에 섬 건너뛰기를 설치하여 흥미를 유발시키고, 다른 코스에는 김정일 얼굴을 그려 넣은 샌드백을 주먹으로 한 대 치고 지나가며 스트레스를 풀 수 있도록 착안했다 또한 급경사를 오르는 구간에는 ‘유머가 그려진 간판’을 설치하여 지나가면서 미소를 띄울 수 있도록도 만들었다. 그리고 사로에 설치한 북한군 모습의 표적들을 군데 군데 설치하여 이곳이 훈련장임을 느끼게 하는 분위기를 조성했다. 이렇게 준비하여 그동안 칭찬을 들었으나 반면에 “기존에 설치된 교장 위치가 지그제그로 되어 혼선을 빚는 역행군 이동이라 생각되니 순환식으로 바꿔라”는 사전 지도방문한 부연대장의 지적도 있었다. 이에 사열을 며칠 앞두고 휴일을 반납하며 예비군 중대장들과 함께 추가 작업하여 완벽한 순환식 훈련장으로 탈바꿈시킬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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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434] ‘김정일 얼굴이 그려진 샌드백’과 동굴 수색을 추가한 예비군교장 사열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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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433] ‘김정일 얼굴이 그려진 샌드백’과 동굴 수색을 추가한 예비군교장 사열③
-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마침 대대 예비군 교장에는 현역들의 간이 실거리 사격장에 표적을 설치하는 지점의 연결된 교통호와 감적호(표적을 확인하기 위한 대피호)가 있어 동굴 및 폐광 수색정찰 훈련장을 설치하기에는 최적의 장소였다. 실거리 사격장의 표적을 설치하는 곳의 교통호에 옥산면 중대장이 협조해온 레일과 침목을 설치하였고, 표적 확인 후 실제 사격간에 대피하는 감적호를 약간 개조하여 폐광을 만들었다. 또한 주변 수색지역에 무인포스트도 설치해 흥미를 유발시켰다. 이렇게 준비했지만 “어느 곳, 어느 처지에 다다르더라도 주관을 잃지 않고 자신의 주인이 되라”는 수처작주 입처개진(隨處作主 立處皆眞)이라는 말처럼 필자가 예비군이라면 이 교장에서 훈련받는 느낌이 어떨까(?)하는 생각과 고민을 하면서 타부대와 비교해서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기에는 무엇인가 2% 부족함을 느꼈다. 그래서 부대대장과 머리를 맞대고 상의한 결과 추가 간판과 섬 건너뛰기, 샌드백 등 보조물들과 블록 및 폐타이어를 이용한 계단식 강의장 좌석을 설치하는 등의 정성어린 훈련준비를 가미했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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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433] ‘김정일 얼굴이 그려진 샌드백’과 동굴 수색을 추가한 예비군교장 사열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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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철의 CrisisM]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6·25전쟁 이야기’ 독후감 시상식과 북콘서트①
- [시큐리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한미안보연구회는 지난 15일 오후 2시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이병형홀에서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6·25전쟁 이야기’ 독후감 공모전 시상식과 작가 장삼열 한미안보연구회 사무총장의 북콘서트를 개최했다. 이번 행사에는 통일부 장관을 지낸 현인택 동아일보사 부설 화정평화재단 이사장, 김병관 한미안보연구회 회장(전 한미연합사 부사령관), 김재창 명예회장(전 한미연합사 부사령관, 예비역 대장), 김인철 한국전쟁기념재단 이사장 등 많은 안보 전문가들과 시상자 가족 등 약 200여 명이 참가해 성황을 이뤘다. 독후감 공모전에는 초등학생부터 80세 노인까지와 유엔군 참전용사 후손들을 포함해 120여명이 응모했다. 공정한 심사를 통해 선발된 우수자 시상식에서 국방부 장관상인 대상은 100만원의 포상금과 함께 한미고교 최지효 학생, 초등부는 김세진 학생 등 4명, 중고등부도 4명, 일반부는 78세의 이인수 어르신과 대학생 등 3명, 장병부에서도 35사단 김성인 중령 등 4명이 수상했다. 특히 일반부에서 78세 이인수 어르신이, 유엔군 참전용사의 후손인 튀르키예, 콜롬비아, 에티오피아 등 국적의 유학생들 5명이 특별상을 수상받은 것과 수상자들의 독후감을 행사장 복도에 게시해 독후감 공모전 시상식과 북콘서트 의미의 가치를 높여주었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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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철의 CrisisM]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6·25전쟁 이야기’ 독후감 시상식과 북콘서트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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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432] ‘김정일 얼굴이 그려진 샌드백’과 동굴 수색을 추가한 예비군교장 사열②
-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사실 대대장으로 갓 부임하여 군사령부 전술토의를 준비하면서도 교장사열을 준비하는 인접 대대를 수시로 방문하였고, 이미 사단장 사열을 받고 칭찬을 들었던 타부대의 장점들을 모두 가져와 적용하기로 했다. 심지어는 그동안 책임지고 사열 준비했던 부대대장에게 잘되어 있는 부대를 직접 찾아가 참고하라고도 지시했었다. 그중 타부대에서 극찬을 받았던 대공사격술 교장에 각별히 착안하여 좀 더 발전시키도록 준비했다. 예비군들이 실감나게 리드를 적용해 화망을 구성할 수 있도록 공중으로 연결된 줄에 추를 달아 모형 비행기가 빠르게 내려가도록 만들어 효과를 극대화했다. 타부대의 장점을 베치마킹하여 해당 부대에 맞게 추가 발전시키는 것이 창의의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헌데 교장을 보수하는 예산은 턱없이 부족했고, 모든 장비와 설치물은 해당 교관이 준비하기 위해서는 책임 지역내의 주요 업체와 기관장들의 지원이 절실하게 필요한 실정이었다. 따라서 이 모든 것들은 과목별 담당 교관인 예비군 중대장들이 책임지역내의 주요 기관장들과 관계가 좋았기 때문에 가능했다. 특히 고민 끝에 새롭게 창안한 것은 수색정찰 과목에 동굴 수색을 추가한 교장 준비이다. 이는 충북지역에는 자연동굴과 폐광들이 산재해 있어 침투한 무장공비들이 동굴에 은신하는 것을 색출하고 거부하기 위해서도 필요했다. 이때 부대대장의 뚝심이 발휘되었다. 부대대장은 책임지역내에 청주역이 있는 옥산면 중대장에게 과감하게도 철로 레일과 폐침목을 협조하라고 강권했다. 난처한 표정을 지었던 예비군 중대장은 결국 레일과 폐침목을 협조해 준비했고, 필자의 대대는 동굴 및 폐광 수색정찰 예비군 훈련장을 전군에서 최초로 설치한 부대가 되었다. 이는 예비군교장 사열시에 처음으로 새롭게 조성한 동굴 및 폐광 수색정찰 훈련장을 확인하며 필자의 설명을 듣던 사단장의 입가에 흐뭇한 미소를 띄우게 만들었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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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432] ‘김정일 얼굴이 그려진 샌드백’과 동굴 수색을 추가한 예비군교장 사열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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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431] ‘김정일 얼굴이 그려진 샌드백’과 동굴 수색을 추가한 예비군교장 사열①
-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군사령관 조성태 대장의 군사전략 구상을 구현했던 공군비행장 방어 전술토의가 성공적으로 끝나자 기다렸다는 듯이 연초에 향토사단 부대들의 가장 중요한 업무인 예비군교장 사열이 예정되어 있었다. 그동안 먼저 시행한 인접 대대들의 사단장 사열은 해당 부대의 열정을 다한 노력 결과 매번 사딘징의 칭찬이 계속되었고, 상급부대 지시에 의해 타부대들은 사열한 부대를 방문하여 잘된 사항들을 벤치마킹하기에 바빴다. 특히 예년에 없었던 대공사격술 교장은 인접연대의 사단장 사열시 공중으로 이동하는 표적에 대해 리드를 적용한 대공사격술 훈련을 체험할 수 있도록 착안해 준비한 것은 당시에 대히트였다. 다행히도 청원대대에 부임전에 경기도 일산 부근에서 예비군 관리대대장으로 근무한 경험이 있는 부대대장 이완목 소령(3사14기)이 지팡이를 짚고 있는 필자를 대신해서 현장을 발로 뛰며 공휴일에도 직접 교장에 나와 확인하여 예하 23명의 예비군 중대장들도 동참하며 교장의 보수 및 정비작업을 함께해 어느 정도 준비가 되었다. 헌데 전술토의 다음날 교장을 지도 방문한 부연대장은 과목별 교장은 잘되어 있는데 단계별로 이동하며 훈련을 하기에는 부적절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는 각 교장이 지그재그식으로 배치되어 혼선이 생긴다며 사열을 앞두고 시간이 부족하지만 완벽하게 순환식으로 조정 배치하면 금상첨화(錦上添花)라는 개선책을 제시했다. 그동안 애써 준비했던 부대대장 이 소령도 “2%가 부족한 데 지금 바로 시정하자”고 건의했다. 필자의 생각도 같았다. 바로 4일 뒤인 월요일에 사단장의 교장사열이라 어쩔 수가 없이 전 교장을 순환식으로 재배치 조정 작업에 즉시 투입해야만 했다. 그동안 군사령부 전술토의에 집중했던 대대장이 현장을 확인하고 사열을 완벽하게 준비하기 위해 휴일임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예비군 중대장들을 소집했다. 휴일 이틀 동안 교장에서 간판을 옮기고 좌석을 다시 배치해 조정하는 등 부연대장의 지적을 급하게 개선하는데 온 힘을 쏟았다. 그 결과 공군기지 방어 전술토의 성공적 개최에 이어 기대 이상의 점입가경(漸入佳境)이 되는 성과를 얻었다.(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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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431] ‘김정일 얼굴이 그려진 샌드백’과 동굴 수색을 추가한 예비군교장 사열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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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430] 독불장군 경호실장과 고독한 황태자의 신경전④
-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그러나 박지만에게 또 한번 시련이 찾아왔다. 생도 3학년 시절인 1979년 10월26일에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이 중앙정보부장 김재규가 쏜 총에 맞아 서거했기 때문이다. 박지만은 1981년에 학사학위를 취득하며 육사를 졸업하며 방공포병병과 소위로 임관한 후 대구에 있는 방공포병학교에서 초급장교 군사반 교육(OBC)를 받았다. 장교생활은 당시 수도권의 빌딩 방공포 진지에 배치되어 시작했다. 하지만 복무 중에 교통사고를 당했고, 이 후유증으로 의무복무만 마치고 1986년에 육군 대위로 예편하였다. 이후 육영재단 이사를 지냈으며, 1991년에는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과 친했던 박태준의 주선으로 삼양산업을 인수하였다. 삼양산업은 2000년 코스닥에 상장하면서 상호를 이지(EG)로 변경하였으며, 회장인 박지만은 회사를 내실있게 성장시키며 잘 경영하고 있다. 2004년 12월, 16세 연하의 변호사 서향희와 결혼했다. 서울 워커힐 호텔에서 진행된 결혼식의 주례는 소망교회의 곽선희 원로목사가 맡았으며 결혼식은 하객들을 최소화 한채 조촐하게 치러졌다. 현재 슬하에 4남을 두고 있다. “삶! 모두가 가야할 길이라면 차라리 나만의 길을 걷고 싶다. 화랑대! 너와의 영원한 우정담을 흩어져 나뒹구는 저 낙엽속에 적어 아주 먼 훗날 추억속에 노래하면 아니될까....” 육사 졸업앨범에 박지만이 남겨 놓은 글이다. 하지만 그와 고교 동기이자 절친이었던 전 기무사령관 고(故) 이재수 장군은 박근혜 대통령 탄핵의 여파로 검찰의 수사를 받다가 군의 명예를 지키면서도 자신 때문에 선후배들이 어려워질 것을 우려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이 장군의 장례식장을 끝까지 지켰던 박지만의 슬픔을 가중시켰다. 하지만 ‘차라리 나만의 길을 걷고 싶다’고 남긴 글처럼 비운의 고독한 황태자 박지만은 대통령의 아들이라는 이유로 많은 시련과 아픔을 겪었지만 주변의 모든 유혹을 뿌리친 채 지금도 꼿꼿하게 모범적인 삶을 영위하고 있는 자랑스런 동기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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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430] 독불장군 경호실장과 고독한 황태자의 신경전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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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철의 CrisisM] 제암리 3.1운동 순국선열 6위, 105년 만에 국립묘지에 안장(하)
-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국가보훈부는 올해 3월 유족대표(장손 김연목)와 협의하여 국립묘지 이장을 결정했다. 이는 그동안 국립묘지 이장에 대한 유족 간 의견 일치가 되지 않았으나, 합동 묘소를 국가관리묘역으로 지정하는 절차를 협의하던 중 유족의 의견 일치가 이뤄지며 성사됐다. 이에 따라 국가보훈부는 6월7일 오전, 묘소를 개장해 유골을 수습한 후 함백산 메모리얼 파크에서 화장한 다음 유해를 임시 안치했다. 이후 화성시와 함께 6월8~9일 동안 화성시 독립운동기념관 내에 고주리 순국선열에 대한 추모 제단을 설치하고 시민들이 헌화와 추모의 글을 남길 수 있도록 추모 기간도 운영했다. 추모 기간이 끝나고 6월10일, 화성시 독립운동기념관에서 국가보훈부 장관, 화성시장, 광복회원, 학생 등이 참석한 가운데 고주리 순국선열 합동 봉송식을 거행하고 영현 6위를 국방부 의장병이 국립대전현충원으로 운구하여 독립유공자 제7묘역에 안장했다. 강정애 국가보훈부 장관은 “고주리 여섯 선열의 희생과 조국의 자주독립을 위한 그 숭고한 정신을 영원히 기억하고 계승하기 위해, 늦었지만 유족분들의 뜻에 따라 국립대전현충원으로 모실 수 있게 되어 너무 뜻깊고 다행스럽게 생각한다”면서 “국가보훈부는 국가와 민족을 위해 희생하신 고주리 순국선열들께서 민족의 성역인 국립묘지에서 영면에 드실 수 있도록 정성을 다해 모시겠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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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철의 CrisisM] 제암리 3.1운동 순국선열 6위, 105년 만에 국립묘지에 안장(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