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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한경 칼럼]기무사의 정치적 중립 다짐, ‘정권’ 대신 ‘국가’에 충성해야
    이석구 기무사령관, 25일 국립서울현충원서 ‘정치적 중립’ 선포식국가안보와 정권안위 혼동한 ‘과거 관행’ 탈피가 향후 과제기무부대원등 정보기관은 ‘정치적 일탈’의 개념에 대해 교육해야(안보팩트=김한경 방산/사이버 총괄 에디터 겸 연구소장)국군기무사령부는 25일 오후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이석구 사령관(육군 중장)과 서울지역 기무부대원 6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정치적 중립 준수를 다짐하는 선포식을 열었다. 선포식의 하이라이트는 청계산에서 떠온 물에 손을 씻는 ‘세심(洗心) 의식’과 이 사령관이 직접 쓴 정치적 중립 준수 서약서에 손을 얹고 읽는 장면이었다. ‘DSC(기무사의 영문 약자) Promise(약속)’라고 명명된 서약서에는 ‘잘못된 관행 개선’과 ‘정치적 중립 준수’ 그리고 “국가와 국민에게만 충성하겠다”는 다짐이 들어있었다.국군기무사령부는 충성 부대로 알려져 있고, 부대 구호도 ‘충성’이다. 그런데 그들의 충성 대상이 그동안 어디를 향하고 있었는지가 중요하다. 어제의 선포식은 국군기무사령부의 충성 방향이 그들이 다짐했던 국가와 국민이 아니라 정권에 맞춰져 있었다는 사실을 자인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 선포식이야말로 기무사의 정치적 성향을 보여주는 행사라고 지적한다. 익명을 요구한 예비역 장성은 “영하 15도의 날씨에 세심의식 같은 행사를 벌이기보다는 기무사령관이 직을 걸고 청와대의 부당한 지시에 따르지 않는 결기를 국민에게 보여주어야 한다”고 꼬집었다. 하지만 “지금이라도 과거의 잘못을 인정하고 새로운 방향으로 가겠다는 확고한 의지를 표현한 것이니 앞으로 정말 달라지는지 기대해 보겠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미국의 경우 정보기관장이 자신을 임명한 정권의 영향을 받지 않도록 법적으로 임기를 보장한다. 또한 정치화된 정보를 생산하는 것이 정보원의 가장 큰 치욕이라고 가르치는 등 정치적 일탈 행위를 예방하고자 노력한다.반면 한국은 정권과 연계된 사람이 정보기관장에 임명되는 경우가 많고, 한 정권 내에서도 2-3차례 정보기관장이 바뀐다. 정보기관장이 정권이 아닌 국가와 국민에게 충성하기 어려운 이유이다.게다가 무엇이 정치적 일탈 행위인지를 정보기관에서 가르치지 않는다. 군 정보기관 사정에 밝은 전직 관계자는 “기무부대원들은 그동안 국가안보와 정권안위를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었다”고 말한다. 우리나라도 하루빨리 미국처럼 정보기관장의 임기를 법적으로 보장하고 정치적 일탈 행위를 예방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나가야 한다. 그것만이 정권이 아니라 국가와 국민을 위해 충성하는 정보기관을 만들 수 있다. 코미 전 미국 FBI 국장이 이미 당선된 트럼프 대통령의 후보시절 문제를 수사하다가 대통령에게 해임당하고도 법적으로 당당히 맞서는 모습은 국가와 국민을 위한 정보기관의 진정한 역할이 무엇인지 새삼 느끼게 한다. <김한경>안보팩트 방산/사이버 총괄 에디터 겸 연구소장 광운대 방위사업학과 외래교수 (공학박사) 광운대 방위사업연구소 초빙연구위원 한국안보협업연구소 사이버안보센터장 한국방위산업학회/사이버군협회 이사 前 美 조지타운대 비즈니스스쿨 객원연구원
    • 소통시대
    2018-01-26
  • [강철군의 아우성] 故 최규식 경무관, 평창올림픽을 향한 무언의 외침
    ▲ 금강산 지역 남북 합동문화행사와 마식령 스키장 남북 스키선수 공동훈련 점검 남측 선발대 단장인 이주태 통일부 교류협력국장이 23일 오전 동해선 육로를 통해 금강산 지역으로 방북하기 위해 강원도 고성 동해선 남북출입국사무소에 도착해 북으로 출경하고 있다. 북한의 평창동계올림픽 참가 두고 미 NBC '불량국가의 올림픽 야망' 특집 방송 준비 19일 김신조 등 북한 무장공비와 총격전서 숨진 고 최규식 경무관 50주기 추모식 거행돼 김신조 목사, "북한의 속성은 50년전 그대로인데 북한에 동조하는 한국인 늘어" 지적 고 최규식 경무관, 북한의 선전선동에 흔들리지 말라고 당부할지도 몰라 (시큐리티팩트=강철군 전문기자) 미 NBC방송은 지난 21일(현지시간) 간판 앵커인 레스터 홀트가 마식령 스키장을 단독 현장 취재한 예고편을 공개했다. 현장 취재내용은 23일 '불량국가의 올림픽 야망(Rogue Nation's Olympic Ambitions)'이라는 제목으로 보도될 예정이다. 홀트가 진행하는 NBC저녁 뉴스는 미전역에서 평균 900만명 이상이 시청하는 인기 프로그램이다. 한편 북한은 현송월을 단장으로 하는 예술단 사전 점검단을 한국에 보낸 21일 '국가 핵 무력 완성의 역사적 대업을 실현'이라는 우표첩도 발행했다. 우표첩은 주체의 핵강국 건설사에 영원불변할 업적이라는 것을 감명 깊은 화폭들로 펼쳐 보여주고 있다고 했다. 평창올림픽 참가와 핵미사일 개발 문제는 전혀 별개의 사안이라는 것을 강조하려는 것으로 보여진다. 미국과 북한에서 동계올림픽 관련 톱뉴스를 보도하고 상호 점검단이 교차 방문 중인 가운데, 지난 19일 오전, 서울 지방경찰청 이주민 청장을 비롯한 보훈단체 및 고교생 100여명이 서울 종로구 청운동 자하문고개 현충탑 앞에 모여 고 최규식 경무관과 정종수 경사의 제 50주기 추모식을 조용히 거행했다. 최경무관과 정경사는 1968년 1월 21일 종로경찰서 근무중 청와대를 습격하기 위해 침투한 김신조 등 북한 무장공비 31명과 교전 중에 순직했다. 김신조 일당이 남파됐던 1968년은 1년 내내 한반도에서 전쟁 기운이 감돌던 시기였다. 박 대통령을 암살하기 위해 북한이 김신조 등 31명을 보낸 1.21사태를 시작으로 1월 23일엔 미국 해군함 푸에블로호를 원산 앞 공해상 바다에서 초계정 4척과 미그기 2대로 나포했고, 그해 11월에는 경북 울진과 강원도 삼척에 북한 특수부대원 120명을 침투시켜 금년 동계올림픽이 열리는 평창 진부면의 평범한 가족과 함께 9살 소년 이승복도 살해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당시 한국의 상태에 대해 김신조목사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1968년만 해도 북한의 국내총생산(GDP)이 한국보다 많았고, 군도 더 앞서 있었다. 휴전선 경계 시스템도 북측과 달리 남쪽은 허술했다. 본인은 1.21사태 이전에 두번이나 휴전선을 통해 한국에 내려와 정찰작전을 수행하고 돌아갔다. 그때 한국군에는 '유격'이라는 단어도 없었다. 방첩대에서 조사를 받으면서 내가 북한에서 받았던 훈련과 전술을 알려줬다. 예비군도 그 때문에 창설된 것이다." 사실 그해 4월 1일 예비군이 창설됐고 육군 병사의복무기간도 2년 6개월에서 3년으로 늘어났다. 또 모든 성인에게 12자리 숫자가 부여되는 주민등록증이 처음으로 그해 11월에 발급되어 지금과같은 한국의 민관군 방위체제가 새로이 만들어지는 계기가 되었다. 김신조 목사는 최근 모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강산이 5번 바뀌는 50년이 지난 지금의 남북 관계를 비교하면 북한의 속성은 50년전이나 지금이나 변한 것이 하나도 없는데 북한을 바라보는 한국 사람들의 생각만 너무 많이 바뀌었다.우리 국민의 안보 의식이 180도 바뀌었다. 사고방식이 달라졌다. 1.21사태 당시에는 6.25남침전쟁을 직접 겪었던 사람들이 많았고 늘 북한의 위협과 도발 속에 살았다. 그런 고난 속에서 나라를 지켰고 한국이 여기까지 왔다. 요즘 사람들은 그걸 모른다. 북한 정권에 대한 적개심이 없다. 오히려 북한에 동조하는 사람들만 늘고 있다." 김신조 목사는 평창 동계올림픽에 북한이 선수단과 예술단을 보내는 것은 북 체제를 선전하기 위해 오는 것이라고 본다. 오래 전부터 동계올림픽을 통해 북한의 체제의 존재감을 전세계에 선전하려는 계획이 서 있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박수치고 환호하게 되면 북한은 대한민국을 자신들이 장악했다고 선전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한국이 북한 전술을 너무나 모르는 것 같다"고 꼬집으며, 현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해 "북한 문제를 많이 연구하고 분석한 전문가들 이야기를 듣고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어는 정부든 내 정권에서 이걸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을 머리에서 빼야 한다. 다음 대로 넘긴다고 생각하고 접근해야 한다. 서두르면 실수를 하게 된다. 북한은 절대 선의를 선의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원칙대로 해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도 조급하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남북이 함께하는 동계올림픽의 성공적인 개최로 세계 평화에 기여하고 이것을 계기로 효율적인 남북대화도 계속되어야 한다. 하지만 그들의 선전선동에 부화뇌동(附和雷同)해서는 안된다. 그들의 변함없는 핵위협에 대응하여 한미동맹을 유지한 가운데 비핵화가 달성될 때까지 올림픽 후 대북제재를 통한 압박을 지속할 준비도 철저히 해야 한다. ▲ 1.21사태시 무장공비 침투를 저지하다 순직한 최규식 경무관의 동상 고 최규식 경무관은 자하문 현충탑에 올라서서 다음과 같은 무언의 외침을 보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1968년 나는 대통령을 저격 가능한 500m 거리에서 "우리는 방첩대원이다."라고 속이며 밀고 들어오는 김신조 일당과 대치중에 적의 자동소총과 수류탄에 운명을 달리했지만 대통령을 지켜냈다. 현재의 김신조목사가 강조한 말들을 귀담아 듣고 자유대한을 지켜야한다. 필요할 때마다 빠졌다 들어갔다 하는 것이 공산주의 전략이다. 지금도 대남 적화전략은 똑 같다. 절대로 속지말라 후손들이여 ... " 끝.
    • 소통시대
    • 종합
    2018-01-23
  • 새해를 여는 동해 바다에서 비상한 FA-50 전투기
    ▲ 공군은 2018년 새해를 맞아 FA-50 편대의 신년 초계비행을 통해 영공방위태세를 점검했다고 밝혔다. 2018년 새해가 떠오른 1월 1일 동해상공에서 비행 중인 국산전투기 FA-50의 모습. (사진=공군 제공)
    • 소통시대
    2018-01-19
  • 평창 동계올림픽 성황 봉송하는 한국전쟁 참전용사
    ▲ 19일 오후 경기 파주 파평면 율곡습지공원에서 한국전 당시 캐나다 참전용사의 아이스하키 경기를 재현하기 위해 열린 2018 임진클래식에서 캐나다 한국전쟁 참전용사 클로드 샤를랜드가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성화봉송을 하고 있다. 임진클래식은 한국전 당시 캐나다 군인들로 구성된 두 팀이 친목도모와 고향의 향수를 달래기 위해 임진강 근처에서 개최했던 아이스하키 경기다.
    • 소통시대
    2018-01-19
  • 한국전쟁 당시 거제 포로수용소의 피난민 가족
    ▲ 한국전쟁의 역사 교육장으로 활용되고 있는 경남 거제시 포로수용소의 미공개 사진 80여 점이 지난 2017냔 12월 13일부터 2018년 1월 12일까지 거제문화예술회관에서 전시되고 있다. 사진은 피난민 가족이 무기 소지 여부를 검사받고 있는 가운데 바로 옆 앉아 있는 헌병이 포로 등록카드를 작성하고 있는 모습(1951.7.19. NARA). 2017.12.15. (사진=거제시청 제공)
    • 소통시대
    2018-01-19
  • [전문가 칼럼] 미국의 국방개혁은 어떻게 성공했나
    ▲ 미군훈련사진 (출처:미8군 플리커) (안보팩트=최영진 / 칼럼니스트, 중앙대 교수) 문재인 정부의 강력한 국방개혁 표방, 국방부 주요 보직의 민간인 배치 등 눈길 문재인 정부는 강력한 국방개혁을 표방하고 나섰다. 송영무 국방부 장관은 국방개혁의 목표를 “공룡같은 군대를 표범처럼 날렵한 군대로 만들겠다.”고 비유적으로 표현했다. 국방부 주요 보직에 민간인을 배치하면서 국방개혁을 추진할 인적 동력도 구축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국방개혁이 쉽게 추진될 수 있을거라 믿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현 정부의 개혁의지를 믿지 않아서가 아니다. 우리 군이 달라져야 한다는데 반대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지만 어떤 방향으로, 어떤 방식으로 추진되어야 할지에 대해서는 생각차이가 크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의 ‘국방개혁 307계획’이 입법화에 실패했던 것도 부정적 판단의 근거가 된다. 대통령직속 국방선진화추진위원회를 만들고 국방부에 국방개혁실을 만들어 실장에 민간인을 보직하면서 적극적으로 나섰지만 상급지휘구조개편과 같은 예민한 문제에 걸려 결국 입법화 단계에 까지는 이르지 못한 것이다. 보수정부였던 이었던 이명박 정부에서도 각 군(軍)과 국회의 반대를 넘어서지 못했던 것이다. 1986년 미국의 국방개혁, 합참의장의 권한과 역할 강화해 '강한 미군' 탄생시켜 국방개혁의 성공적 추진을 위해 다른 나라의 사례를 참고할 만하다. 그 대표적 사례가 1986년 미국에서 입법화에 성공한 ‘골드워터-니콜스 국방부 재조직법(Goldwater–Nichols Department of Defense Reorganization Act)’이다. 이법은 1947년 미국에서 국방부와 합동참모부의 탄생을 가능하게 했던 국가안보법 이후 성공적인 개혁법안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의 국방개혁 목표가 합동참모부의 강화를 통한 합동성 강화라는 목표를 우리와 공유하기 있기 때문에 간단히 골드워터-니콜스법의 내용을 살펴보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다. 여기서는 무엇보다 합참의장의 권한과 역할 강화을 대폭 강화시켰다. 합참의장은 합동참모회의(의장ㆍ3군 참모총장ㆍ해병대사령관)의 대표자로서 군사적 지휘권은 없으나, 대통령 및 국방장관에 대해 최고위 군사자문 역할을 수행토록 했다. 합참의장은 통합군사령부의 소요계획 및 예산 등에 관해 국방장관의 자문 역할을 하며, 군의 합동운용을 위한 정책·훈련·교육계획을 수립토록 함은 물론 장관급 장교 임명 시 대통령·국방장관에게 당해 장교 능력 평가서를 제출하도록 했다. 이와 같은 합참의장의 역할 강화를 뒷받침하기 위해 합참부의장(합참차장) 직위를 신설했다. 부의장(차장)은 합참의장과는 다른 군 소속이어야 하며, 대통령이 상원의 건의 및 동의 후 임명하게 했다. 합동참모의 역할도 강화시켰다. 합동참모의 자질 및 독립성을 향상시키기 위해 △합동특기제도 신설, △합동참모 보직의 구체적 수와 보직 명시, △합동근무를 장성 진급을 위한 필수보직으로 명시(합동부서에 근무하지 않으면 장군이 될 수 없음), △합동 보직에 대한 근무 기간 연장(장성 최소 3년· 장교 최소 3년 반), △합동교육소요의 구체화 △기타 보직에 비례하는 합동근무 보직의 진급비율(다른 직위 장교보다 합동직위에 근무한 장교의 진급율이 적어도 같도록) 등을 명시했다. 현장지휘관인 통합군사령관의 권한과 책임도 확대되었다. 통합군사령관에게 구성군 사령관의 임명 및 해임 권한을 부여해 예하부대에 대한 영향력을 증대시켰다. 통합군사령관에게 부대 운용 예산 편성 시 합참의장에 대한 건의할 수 있게 하여 자원 할당에 대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도록 했다. 합참의장의 권한 강화로 문민통제가 약화될 수 있다는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장치도 마련했다. 각 군 장관 및 정책·획득 부차관은 예비역 임용 전역 후 10년이 경과해야 보임할 수 있도로 했고, 국방 서열상 1~4위(국방장관, 부장관, 각군 장관, 정책·획득 부차관)는 민간인을, 5~6위(합참의장, 각군 총장)는 군인을 임용하도록 함으로써 문민우위 체제를 유지토록 했다. 이러한 조치가 제대로 추진될 수 있는 진단시스템도 갖추었다. 국방성이 의회에 제출하는 보고서의 규모는 3분의 1로 축소하되, 대통령은 국가정책과 국방정책을 통합하는 국가안보전략에 대한 상세보고서를 매년 의회에 제출해야 하며, 국방장관은 군 구조와 임무 간의 관계에 대한 보고서를 매년 의회에 제출토록 했다. 미 의회는 이러한 정기보고를 통해 국방조직 진단을 제도화하는 시스템을 갖춘 것이다. 이처럼 미 의회는 골드워터-니콜스법을 통해 합참의장의 역할을 대폭 강화했을 뿐만 아니라 통합군사령관의 권한 및 책임을 강화해 전투 중심의 군대를 만들고자 했다. 이러한 미국의 국방개혁은 우리 군이 추진하고 있는 국방개혁의 기본방향과 일치하기 때문에 시사하는 점이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와 미국의 사정은 너무 다르기 때문에 같은 목표를 추구한다고 해도 개혁의 내용과 방법은 다를 수 밖에 없다. 따라서 문제의식은 공유하되 구체적 실행방법은 한국적 상황에 대한 깊은 고민과 충분한 논의를 통해 설정해야 할 것이다. 또 달리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입법화 과정이다. 새로운 변화는 기존 질서와 제도로부터 저항을 받게 마련이다. 미국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국방개혁의 주 대상이었던 국방부와 각 군으로부터 격렬한 반대가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입법화에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다행스럽게 입법화 과정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저서가 출판되었다. 입법화 과정에서 실무책임자였던 제민스 로쳐(James R. Locher III)가 2002년에 발간한 『포토맥 강에서의 승리(Victory on the Potomac: The Goldwater-Nichols Act Unifies the Pentagon. Texas A&M University Military History Series)』는 골드워너-니콜스법이 어떤 과정을 통해 입법화에 성공할 수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생생한 보고서다. 베트남 전쟁 패배 이후 위기의 미군지휘체계, 개혁 통해 '걸프전' 승리의 토대 닦아 1980년 미군은 최악의 상황에 놓여있었다. 베트남 전쟁의 트라우마가 깊게 드려우진 상황에서 이란 인질 구출작전이 실패함으로써 미국의 체면은 바닥으로 떨어졌다. 1982년에는 베이루트의 폭탄테러로 241명의 미 해병이 사망하는 참사가 발생했다. 진상조사에 나섰던 미 의회조사단은 경악했다. 제대로 된 대비는 물론 사후수습도 엉망이었다. 지휘체계는 분산되어 있었고 전체적으로 관리할 전략기획이 부재했다. 한마디로 합참이 제 역할을 못하고 있었다. 1983년 그레나다 침공에서도 이런 문제가 불거지면서 국방개혁의 필요성은 더욱 커졌다. 국방구조개혁의 첫 번째 신호탄을 쏘아올린 이는 당시 합참의장이었던 존스(D. Johns) 장군이었다. 1982년 3월 미 하원 군사위원회 청문회에 나선 그는 합참의 의사결정과정의 문제를 조심스럽게 제기했다. ‘위원회’ 방식으로 운영되는 합참으로는 신속하고 효율적인 의사결정이 어렵다는 지적이었다. 보다 일관된 지휘권의 통합이 절실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각 군의 분파주의 극복할 수 있는 특단의 방안이 필요했다. 합동성을 강화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당시만 해도 국방조직 개혁법안이 입법화에 성공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창군 이래 각 군은 부대운용과 작전에 있어 독자성을 누려왔고, 이를 지지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세계 최강의 군 조직이 반대한다면, 가능할 것 같지 않았다. 특히 당시 와인버거(C. Weinberger) 국방부 장관이 부정적이었다. 자신이 잘 관리하고 있는데 무슨 문제냐는 반응이었다. 국방예산 삭감을 위한 꼼수라는 의혹도 갖고 있었다. 그는 레이건 대통령도과 친밀했기 때문에 백악관의 반대도 예상되었다. 초기 미 의회도 부정적이기는 마찬가지였다. 국방안보문제에 주도권을 갖고 있는 상원은 보수적인 공화당이 지배하고 있었다. 상원의원 대부분이 장교로 복무한 경험이 있었고, 개인적으로 각 군과 친밀한 커넥션을 갖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국방부와 군부의 저항을 이겨내기 어려울 거라는 생각이 일반적이었다. 그럼에도 국방개혁을 염원하는 의회 지도자들과 그 보좌진은 4년하고도 241일간의 고투 끝에 ‘골드워터-니콜스법안’을 통과시키는 역사적 결실을 거두게 된다. 존 메이어 전 합참의원을 비롯한 많은 군사전문가들은 걸프전의 승리를 비롯한 1990년대 이후 미군의 빛나는 성취가 가능했던 것은 이 법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미 국방부와 합참조직을 만들어낸 1947년 국가안보법 이후 최대 성과를 인정받고 있는 것도 이처럼 눈에 보이는 성과를 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에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지만 법안 찬성측과 반대측이 벌였던 치열한 공방전을 요약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법안 내용도 그리 중요하지 않다. 미국과 한국은 너무 다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법안의 입법화과정에서 우리가 배울 교훈을 결코 적지 않다. 무엇보다 군 내부의 개혁적 지도자의 존재이다. 합참조직의 문제를 가장 먼저 제기한 사람은 존스 합참의장이었다. 지휘체계를 일원화하고 합참의장과 통합군사령관의 권능을 강화하자는 주장이었다. 다른 말로 하면 각 군의 독자성과 분파성을 약해시켜야 한다는 것이었다. 공군의 출신의 존슨은 합참의장 4년을 포함 모두 8년간 합참에서 지냈다. 누구보다도 합참의 현실을 잘 아는 인물이었다. 그는 청문회에서 자기 의견을 개진하는 것으로 끝내지 않았다. 보다 체계화 논문을 발표해서 공감을 이끌어냈다. 가장 강력한 저항 거점인 해군에서도 의미있는 파장을 일으켰다. 당시 태평양함대 사령관이 크로우(B. Crowe) 제독이 도움을 주기 시작했다. 220척의 함정과 8백여 대의 항공기, 55개의 기지에 22만 명의 병력을 관장하는 해군 최고의 지휘관이 나선 것이다. 군부 일각의 문제제기를 수용한 의회지도자의 초당적 협력이 개혁의 원동력 이러한 군부 일각의 문제제기를 받아 준 것은 백악관이 아니라 미 의회였다. 하원 군사위원회 니콜스(W. Nicols) 위원장이 먼저 나섰다. 1982년과 83년의 법안상정은 니콜스 의원의 공이다. 이러한 노력이 상원의 무관심과 지능적인 저항에 실패하자, 상원 군사위원회 위원장을 등장한 골드워터(B. Goldwater) 공화당 상원의원이 나섰다. 그는 상원으로서 마지막 임기를 남기고 있었지만, 국방개혁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자신의 마지막 과업을 생각하고 깃발을 들었다. 그는 처음부터 이 문제는 초당적 협력을 통해야만 가능하다고 판단했다. 그의 파트너로 함께 한 이가 넌(S. Nunn) 민주당 상원의원이었다. 이들은 1985년 1월부터 대통령의 재가가 떨어진 그날까지 함께 했다. 그들이 만들어낸 초당적 협력은 지난 50년간 미국 의회를 보여준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기억되고 있다. 이 법이 미 의회 군사위원회가 통과시킨 가장 중요한 법안으로 평가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1958년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국방개혁은 반쪽짜리 성공이었다. 의회가 주도할 때 더 성과가 좋았다는 점에 유념할 필요가 있다. 법안 입법화의 가장 어려운 시간은 1986년 2월부터 시작된 상원 군사위원회의 법안축조심사과정이었다. 반대측을 대표했던 공화당의 워너(J. Warner) 의원은 13개의 수정안을 내며 공세에 나섰다. 이런 상황에서 회의를 주관하던 골드워터 의원은 대화와 타협의 원칙을 고수했다. 골드워터와 넌 의원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충분한 토론을 보장하기로 마음먹었다. 찬반의 입장은 분명했지만 상대편의 발언권을 제한하는 그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가능한 당파적 입장에서 벗어나려 했다. 반대의견을 충분히 토론하게 했고, 그 결과 오히려 찬성측의 주장이 설득력있게 보였다. 저자는 워너의 수정안을 토론하는 과정에서 법안은 더욱 정교해지고 완벽해졌다고 기록하고 있다. 반대측의 전략은 군사위원회에서 10대9 정도로 지더라도 전체회의에서 뒤엎을 수 있을 거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군사위원회의 공개투표 결과는 19대0으로 압도적 찬성이었다. 찬성측도 놀라운 결과였다. 물론 몇 개의 타협책으로 반대측 의원을 설득한 점도 있지만, 예상하지 못한 결과였다. 만장일치의 결과는 대화와 토론을 통해 합의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 빛나는 사례라 할 수 있다. 국회에서의 합의야 말로 이 법의 성공적인 실행에 결정적인 조건이라는 점에 더욱 중요한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우리 기억해야 또 하나의 성공요인은 보좌진이다. 이 책의 저자를 비롯하여 리차드 핀(Richard Finn), 제프리 스미스(Jeffry Smith), 아치 배럿(Archie Barrett)과 같은 보좌관들이 수행한 역할이다. 골드워트와 넌 의원이 지휘관이라면 이들은 탁월한 전사들이었다. 조사보고서와 법안을 실제 작성한 것은 이들이었다. 이들 없었다면 청문회나 법안축조심의 과정에서 효과적인 대응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이 책의 저자 제임스 로쳐은 미 육사 출신으로 미 상원 군사위원회 보좌관(staffer)으로 입법화 작업의 실무책임을 맡았다. 반대진영에서 이 법안을 ‘로쳐 법안’으로 부를 정도로 그의 역할은 결정적이었다. 반대측에서 이들을 실제적인 공격 목표로 삼았던 것도 이들이 담당한 역할이 그만큼 컸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4년 241일의 고투끝에 이루어진 미군 상층 지휘구조 개편, 개혁적 군 지도자들이 산파 역할 1986년 10월1일 레이건 대통령의 재가가 떨어졌다. 말 그대로 4년하고 241일간의 고투가 성공적으로 끝난 것이다. 상층지휘구조개편에만 이 정도의 시간이 걸린 것이다. 빛나는 성취를 이룩한 인간의 의지와 노력, 그 열정에 경외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사실 미국의 국방개혁은 상층지휘구조개편에 주력했기 때문에 우리가 추구하는 국방개혁보다 제한적인 목표를 추구했지만, 거의 3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의회지도부의 일관적 개혁의지가 무엇보다 중요했음을 발견할 수 있다. 그들의 결의가 있었기에 보좌진 또한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견딜 수 있었다. 그러나 사실 더욱 중요한 것은 군의 문제를 직시하고 변화를 추구했던 개혁적 군 지도자들이 존재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존스 합참의장의 문제제기가 없었다면 의원들은 무엇이 문제인지도 몰랐을 것이다. 해군 내부의 문제를 솔직하게 얘기해줄 수 있는 크로우 제독과 같은 이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우리에게도 이런 멋진 일이 있기를 기대해 본다.
    • 소통시대
    2018-01-17
  • [강철군의 아우성] 김관진 암살론과 라이언 일병 구하기
    ▲ 지난 5월 17일 김관진 전 청와대 안보실장인 지난 5월 17일 대통령 취임후 처음으로 국방부를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을 맞이하면서 인사를 나누고 있다. ⓒ뉴스투데이 (시큐리티팩트=강철군 전문 기자)과거 정권 ‘내치 문제’로 곤경에 처한 김관진 전 국방장관 구하기 필요성 제기북한 김정은 정권이 ‘암살 타깃’으로 공언할 정도의 안보분야의 전문가스필버그에게 두 번째 아카데미 감독상을 안겨준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는 노르망디 상륙작전 중 오마하 해변 전투장면의 생생한 묘사로 전쟁의 공포를 실감나게 재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 영화의 전투장면을 모델로 두고 만든 충무로의 유사 할리우드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도 천만이 넘는 관람객을 끌어 모아 대히트를 했다.김관진 전 국방부 장관은 과거 정권에서의 ‘내치문제’로 인해 최악의 상황에 처해있다. 그러나 북한 정권이 김 전 장관을 ‘암살 타깃’으로 공언했을 정도로 안보분야에서 최고의 능력을 발휘했던 인물이라는 사실을 감안해, ‘라이언 일병 구하기’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1989년 즈음인가(?) 합참 아이솔 막사 구석방에서 갓 대령 진급한 장교가 “818국방개혁”초안 작성을 위해 책상 위에 수북이 쌓여있는 지우개떡 속에 파묻혀 있었다. 그 장교가 김관진 전 장관이다. 김관진은 국방개혁의 매순간 첨병에 서서 불철주야 머리를 짜내었다. 그의 단호하고 정확한 정책판단은 북한에게 공포의 대상이었다는 게 우리 군 관계자들의 공통된 증언이다.그가 국방부 장관이 되었을 때인 2012.10.19일 북한 인권단체가 대북전단을 발표하는 것에 대해 북한군이 “임진각을 타격하겠다.”고 협박하자 김 전 장관은 “원점까지 타격”이라고 일갈했다.그는 북한의 위협에 대해 이렇게 강력 대응했다.“(서부전선의) 1군단 지역에도 이미 경고가 내려갔다. 적 도발에 대한 응징 태세는 완벽히 갖추고 있다. 그 사람들(북측)이 작년에도 ‘삐라를 뿌리면 원점을 포격한다.’고 위협을 했고 (북한이 실제) 그렇게 한다면 (우리는) 그 원점 지역을 포함한 지휘부까지 완전히 격멸하겠다고 했다.”그 후 김관진에 대한 북한 암살론에 대해 국내 언론들의 보도도 이어졌다. 과연 그의 국방통솔력이 얼마나 대단했고 북한 정권이 고질적으로 눈에 가시처럼 여겼을 지 보통사람이라도 짐작할 수 있다.북한의 화형식과 사격훈련 표적 대상이 된 김관진의 무섭고도 슬픈 눈언젠가 시인 김지하는 김관진에 대해 “저토록 무섭고 슬픈 눈을 가진 사람은 처음 본다”며 “그의 눈이 무서운 것은 그 빛이 강하고 깊기 때문이고 슬퍼 보이는 것은 어떤 운명을 품고 있는지 알 수 없는 저 깊은 눈동자 때문”이라고 설명하기도 했다.북한의 무자비한 군사적 타격 협박에 원점까지 완전히 격멸하겠다는 경고를 쏟아낸 무섭고도 슬픈 눈을 가진 김관진 장관을 북한의 카이스트라고 불리는 김책공업종합대학교 교직원과 학생들은 화형식의 제물로 삼았다. 이명박 대통령과 함께 인형을 만들어 끌고 다니며 나무에 매달고 화형식을 하는 모습이 2012년 3월7일 북한 조선중앙TV에 방영되었다.2015년 8월에는 비무장지대(DMZ)에서 지뢰도발을 한 북한군이 이번에는 박근혜 대통령과 함께 김관진 안보실장의 사진으로 만든 표적지에 실탄 사격을 하는 모습을 공개했다.2014년 9월 당시 새누리당 한기호 의원은 “北, 세월호 이후 더 집요해진 ‘南흔들기’…대남비방 倍로 껑충뛰어”라며 친북 사이버 기지 1,784개를 적발하였다고 말했다.우리 민족끼리, 려명, 광명사, 구국전선 등 대남선전 매체를 통해 상반기에만 7,235차례 대남 비방전을 펼쳐 하루에 40건 정도 쏟아낸 셈이라고 밝혔다. 한 의원은 “국군 사이버 사령부가 정치 개입이란 잘못된 과거를 빨리 털어내고 북한의 사이버 심리전과 사이버 공격에 대응한다는 본연의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헌데 북한은 이상하게도 현재 적폐와 국정농단으로 코너에 몰린 박근혜 전 대통령, 이명박 전 대통령 및 김관진 전 장관 등을 대남심리전의 표적으로 삼았다. ‘내치’와 ‘안보’분야에 대해서는 전혀 다른 평가가 나올 수 있는 것이다.北 김정은의 역(逆) 이이제이(以夷制夷)를 경계해야조선중앙TV를 포함한 대남선전 매체에서는 “저 김관진 xx같은 전쟁대결 광신자들 때문에 청와대 안방 주인은 물론이고 이제 남조선 인민들도 큰 변을 당하게 될 것이다”라며 화형식 영상 등을 계속 방송했다. 결국은 북한의 김정은 정권이 제일 두려워하고 겁나는 존재가 현재는 한국사회에서 적폐의 대상이 되어있는 역설적인 현상이 발생한 것이다.송나라 용장 악비는 요나라와 금나라에서 가장 두려워하는 존재였으나 송나라 재상 진회에 의해 처형되었다. 임진왜란 시 왜군의 끝없는 밀정의 활동을 통해 선조를 조정했고, 왕은 첩자들의 농간에 휘둘렸다. 결국 연전연승했던 이순신 장군은 임금의 진군명령을 거역한 죄로 삭탈관직 당해 권율 장군 휘하에서 백의종군했고 “전쟁이 끝나면 이순신을 반드시 죽이겠다”며 선조는 이를 갈았다.북한 인민군 사격훈련의 표적이 되었고 김책대학교 화형식 인형이 되었던 인물은 북한 김정은 집단이 제일 두려워하고 골치 아픈 사람이었다. 지금은 우리 손으로 송나라 악비나 이순신 장군처럼 처단하라고 한다.비록 내치(內治)에 큰 문제가 있을 수 있으나 외치(外治)에서 능력을 발휘했던 사람을 어떻게 해야 좋을 것인가. 단지 北 김정은의 역(逆) 이이제이(以夷制夷)에 놀아나는 어리석음이 아니길 바랄 뿐이다.
    • 소통시대
    • 종합
    2018-01-16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18)‘안일한 불의의 길’보다 ‘험난한 정의의 길’을 택하다
    ▲ 필자(김희철)의 육군사관학교 생도시절 모습 고등학교에서는 전공학과보다 대학교 브랜드가 중요하다‘16년도 어김없이 11월 17일에 대학입시 수능시험이 치루어졌다. 수시로 대학입학이 확정되는 것도 수능점수가 결정적이다. 아무리 내신 성적이 좋아도 수능점수가 나쁘면 대학입학은 어려워진다.나는 말도 많은 58년 개띠로 격동의 세월 현장에 항상 있었다.58년 개띠부터 전국 최초로 중학교 입시도 시험에서 추첨제로 바뀌었고, 고등학교 입시도 소위 뺑뺑이 추천제로 바뀌었다. 오늘날 수학능력평가처럼 그때에도 대학입시 예비고사(연합고사)가 있었다.당시 학생들의 적성과 희망직업에 대한 고려는 고등학교 입시를 담당한 선생님들에게서는 중요하지 않았다. 전국의 많은 고등학교 중에서 소위 SKY대학을 몇 명이나 합격시켰느냐가 고등학교의 수준을 말해주는 척도였다. 명문대학이라면 비인기 학과 또는 농업·예능계열을 가리지 않았다. 조금만 가능성이 있으면 학교에서 권했다. 지원학과 선택에 있어 개인의 특성은 그냥 참고사항일 뿐이었다. 특히 미술과 음악, 체육 분야에 재주가 있고 성적이 조금 높은 학생들에게는 선택권이 없었다.당해 연도에 서울대, 연대, 고대 등에 한명이라도 더 합격시키는 것이 고등학교 선생님, 학생, 그리고 부모들의 목표였다.설명회에 나온 육사 생도 선배의 '군인관'에 홀린 듯 매료돼 그런 시대 풍조에 젖은 학생이었던 나는 고교 3학년 어느 날에 인생을 결정짓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 날의 경험은 수 십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하다. 당시의 느낌과 열정은 바로 직업으로서의 군인에 대한 글을 쓰고자하는 원동력이다. 앞으로 이 글이 청소년과 청년들, 나아가 인생 2막을 준비하는 중·장년층에게도 꿈을 주기를 소망한다. 육군사관학교에서는 매년 생도들을 출신고등학교에 설명회를 가짐으로써 우수한 재원들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운명의 날에도 육사에 입교한 선배 생도가 학교강당을 빌려 오리엔테이션을 하고 있었다. 나는 친구의 손에 끌려 강당 한 귀퉁이에 앉아 선배의 열띤 설명을 들었었다.눈동자가 보일 듯 말듯 눌러 쓴 사관생도 모자 밑의 생도 얼굴에서는 힘차고 차분하게 터져나오는 카랑카랑한 소리를 내는 입만 보일 뿐이었다.그런데, 가슴에 꽉 꽂히는 말이 들렸다.“사관생도 신조...하나, 나는 안일한 불의의 길보다 험난한 정의의 길을 택한다.” 였다. 후배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설명을 끝내고 잠시 쉬고 있는 그 선배에게 조심스럽게 다가갔다.사실 그 때만 하더라도 군인 그것도 육군사관학교 생도 하면 좀 더 근육질에 우락부락하고 키도 크며 만능 스포츠맨 같은 전투적인 사람만이 갈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때문에 그 선배에게 조심스럽게 질문했다.“선배님, 저같은 사람도 사관학교에 갈 수 있어요?” 하고 엉뚱한 질문을 하자 선배생도(육사35기 조정)는 위아래로 나를 훑어보며 못마땅한 듯 툭 말을 던졌다. “자네는 공부 좀 하나?”개인적으로 찾아간 육사 생도 선배는 의외로 냉담한 반응어이가 없었다. 그렇게도 국가를 위해 헌신하는 군인의 길을 강조했던 선배 입에서 의외의 질문을 들었기 때문이다.“아~, 예~, 성적은 조금 괜찮아서 지금 학교 특수반에 포함되어 대입준비를 하고 있습니다.”그러자, 그는 담담하게 말했다. “그래, 우선은 공부를 잘해서 연·고대 수준이 돼야 1차 합격할 수 있고, 그 다음은 체력이 좋아야 한다. 의지만 있으면 자네도 가능해…” 기대하지도 않고 있다는 듯 대답을 하고 떠났다.담임선생님은 특수반(성적 우수학생들만 따로 모아 일과 후에도 보충수업을 시키는 학급)에다 그림도 잘 그리니 서울대학교 미대를 갈 준비를 하라고 조언을 해주셨고 나도 별뜻없이 순종하고 준비를 하고 있는 단계였다.그런데 육사에 입교한 선배 생도의 이 한마디에 선생님의 조언은 점점 희미해졌다. "어차피 한번 살다가는 인생인데 그 선배처럼 직업군인의 길을 걷는다면 얼마나 매력적일까" 이런 상념을 하면서 오리엔테이션에 참가했던 그날 밤은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결국, 편안하고 평범한 삶을 택하는 길보다 험난한 길을 가야겠다고 결심했다.몇 일 뒤, 담임선생님께 육사시험에 응시하겠다고 말씀을 드렸다.인생은 Birth(출생)과 Death(죽음) 사이의 Choice(선택)삶이란 소(牛)가 외나무다리(一)를 건너가는 생(生)이라고 했다. 언제나 누구에게도 아슬아슬하게 외나무다리 고비를 넘어가며 죽음의 문으로 다가간다.지옥의 세계 속에서 희망의 빛을 쫓아 시간을 쪼개며 살아가는 고3 시기는 더 많은 리스크(Risk)와 유혹 그리고 장애가 버티고 있는 과정의 시간이다.육사를 지원하겠다는 말을 들은 담임선생님은 일고의 가치도 없는 이야기라면서 단호하게 반대했다.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을 가면 얼마나 너의 인생이 멋지겠느냐. 실현 예술가로서 명성도 얻으면 삶의 희망이 실현되는 것이다"라고 나를 설득했다. 선생님은 육사지원서 작성은 불가하다고 일방적으로 통보하였다.그러나 세상에 쉬운 일은 하나도 없다고 생각하고 포기하지 않았다. 삼고초려(三顧草廬) 끝에 간신히 조건부 승인을 받았다.선생님은 학업성적 평가 차원에서 육사시험에는 응시하되 합격여부를 떠나서 서울대 미술대학은 반드시 응시하여 시험을 봐야한다는 조건이었다. 아무튼 조건부라도 육사시험원서를 작성할 수 있는 권한을 받아내었다.그 당시 가정 형편은 넉넉한 편이 아니었다.강원도 원주의 고등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계시는 아버지에게 학비가 많이 들어가는 미술대학 뒷바라지를 부탁하는 것도 사실 어려운 상황이었다. 어머니와 여동생은 평택에, 필자는 서울 충정로 셋방에서 세집살림 하기에도 아버님 봉급 가지고는 빠듯한 생활이었기 때문이었다.일단은 육사로 목표를 정했다.여름방학 때 종로의 사관학교입시 전담학원에 등록했다. 마침 그 학원에는 동창생 3명이 사관학교를 목표로 함께 수업을 받게 되었다.드디어 그해 10월 육사시험에 응시했다.안일한 불의의 길보다 험난한 정의의 길을 가기 위해서… - 육군사관학교 졸업(1981년)- 동국대학원 외교국방(석사)- 한남대학교 정책학 (박사과정)- 5군단사령부 작전참모- 3군사령부 감찰참모- 8군단사령부 참모장- 육군훈련소 참모장- 육군대학 교수부장- 육군본부 정책실장- 청와대 국가안보실 위기관리비서관- (현)군인공제회 관리부문부이사장주요 저서 및 연구- ‘충북지역전사’, 우리문화사, 2000.2월(1500부 발간)- ‘동서독 통일과정에서의 군통합에 관한 연구’, 동국대, 1995.6월- ‘지고도 이긴 전쟁’, 합참지, 2002. 1월- ‘ATCIS는 이 시대 영관장교의 개인화기’, 육군지, 2010.9월- ‘소통과 창의는 전승의 지름길’, 국방저널, 2010.11월※편집자주 : 본 칼럼은 전문가의 특정 견해를 밝힌 내용으로 뉴스투데이의 편집방향과는 일치하지 않을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 전역군인
    2018-01-16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17)사관생도의 인턴과정 ‘야전지휘실습’서 깨달은 교훈들
    ▲필자의 4학년 생도 실습때 동행했던 육사 동기생들 ⓒ뉴스투데이 (안보팩트=김희철 기자/발행인) 사관학교 ‘장교 인턴과정’ 야전 지휘실습은 3,4학년 두 차례 실시 사관학교는 국가의 간성을 양성하는 교육기관이다. 그래서 미국 육군사관학교(West -point)는 2000명이 넘는 인원을 선발하여 대위로 진급하면 임관 인원의 50%를 사회로 복귀시켜 공무원 및 기업인 등으로 국가를 위해 봉사하도록 시스템화하였다. 이는 올바른 국가관과 사명감을 지닌 인재들이 군에서보다도 사회 각층에서 맹활약하여 국가를 발전시키는 것이 더 필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고교시절 지방 군사학교에서 교육을 받은 적이 있다고 한다. 미국의 사관학교는 군 장교를 양성하는 개념에서 국가의 일꾼들을 배출하는 일종의 인턴과정으로 전환됨으로써 국가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우리 군도 한번 즈음 제고해볼 가치가 있다. 태릉골 육사는 학년별로 특화된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겨울방학을 끝내고, 신입생도들이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있는 시기에 2학년은 야전부대로 배치되어 분대원으로 병생활을 체험하며, 3학년 때에는 전방부대에서 소대장 지휘실습을 10일~2주간씩 진행한다. 일종의 장교 임관전의 ‘인턴과정’이라 할 수 있다. 4학년은 생도대에서 고급장교가 되기 위한 리더십과 영어 등 다양한 교육을 받고 있으며, 졸업을 앞둔 시기이라 그들이 모여 있는 별도 공간을 속칭 양로원이라 부르기도 한다. 필자의 생도 시절에는 3학년과 4학년 때 야전 지휘실습을 받았다. 3학년 실습 때 인상 깊었던 육사 선배, 예비사단 오뚜기 부대의 All cover 만능 소대장 문맹자 병장도 소대장보다 뛰어난 리더십과 숙달 수준 보여, 인간의 잠재력에 대해 깨달아 육군 부대는 전방(GOP), 예비, 향토, 동원사단 등으로 구분되어 있다. 3학년 지휘실습은 예비사단에서 각 분대까지 배치되어 병 생활을 체험하며 약 2주간 진행되었다. 예비사단은 전방(GOP)사단 후방에 위치하여 GOP 경계근무 보다는 주로 교육훈련 위주로 운용된다. 당시 사단장에게 신고한 뒤 트럭에 나누어 탑승하여 실습 대대에 도착했을 때 가슴은 두근두근 뛰고 있었다. 왜냐면 1년 뒤에 내가 지휘해야할 병사들을 직접 만나본다는 기대감에 설레였기 때문이었다. 보병중대에는 4명의 소대장이 있다. 그중 화기소대장은 선임 장교가 통상 임무를 수행한다. 주로 학군장교가 대부분이고 간혹 단기사관, 삼사, 육사출신 장교가 끼어 있다. 도착한 대대에는 다행이도 2년 선배인 35기가 1명 있었고 그는 우리들을 반갑게 맞이해주었다. 소대장 BOQ에 짐을 풀고 소대에 배치되어 하루 일과를 시작했다. 그 중대는 학군과 삼사 출신 소대장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3학년 야전실습 때 만난 육사 선배 소대장ⓒ뉴스투데이 만나 본 병사들은 오히려 전방(GOP)사단을 선호했다. 전방(GOP)사단은 경계근무 만하고 휴식 시간이 보장되나 예비사단은 365일 계속되는 훈련에 힘들기 때문이었다. 2~6주 동안, 하계나 동계 종합훈련을 나가면 야외에서 텐트 생활을 하며 한여름 폭염과 한겨울 혹한을 이겨내야 하고, 춘추계 진지공사에 투입되면 제대로 씻지도 못하는 것은 더 고역이었다. 배치된 중대 병사들의 가정형편을 파악해 보니 대부분 중학교와 고교졸업자 였고 대학생 출신은 10% 정도였으며, 50% 정도가 홀어머니, 부모이혼, 고아 등의 결손 가정이었다. 게다가 1979년 당시에는 문맹자도 중대내에 있었다. 그래도 병장이 되면 소대장보다도 오히려 리더십이나 교육훈련, 작업에 대한 지식과 숙달정도가 더 뛰어났다. 거기서 인간의 잠재력에 대한 놀라움도 느꼈다. 일과를 마치고 소대장 숙소인 BOQ에 돌아와 타중대에서 실습한 동기들과 다시 모여 많은 이야기 꽃을 피웠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대대에 1명 밖에 없는 육사선배의 근무모습은 All cover하는 활동 영역을 갖고 있는 만능의 맥가이버를 보는 것 같았다. 소대장 보직이지만 대대 교육장교 대리근무를 하면서 작전장교의 업무를 보좌하고 전 대대원이 모여 의식행사를 할 때에는 단상에 올라가 애국가를 지휘하고 또 소대원 교육훈련 시간에는 현장에서 지도 감독도 하였다. 태권도 유단자인 그는 상급부대 측정에 대비해서 전 대대원을 대상으로 품세와 대련 등을 일일이 지도하고 있었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대대 실습기간 마지막 전날에 그 선배는 소대장의 쥐꼬리만한 봉급에도 불구하고 후배들을 모아놓고 저녁을 사주며 “임관해서 야전에 나오면 육사 출신들은 맥가이버가 되어야 한다.” 고 말하며 “육사교육에 버릴 것이 없다. 특히 검도, 유도도 있지만 태권도는 반드시 유단자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분위기가 무르익자 3금으로 음주가 불가능 하지만 선배가 주는 것이니 마셔라하며 따라준 막걸리 한잔의 그 맛과 한마디 조언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었다. 전방(GOP)사단 칠성 부대에서의 야전 지휘실습에서 느낀 ‘병사들의 투지’ 그 병사들, ‘극한(極限) 속의 여유(餘裕)’와 ‘조직 관리’의 중요성 깨닫게 해줘 4학년 소대장 지휘실습은 전방(GOP)사단에서 진행되었다. 이미 3학년 하계 군사훈련 때 소대에서 대대까지 전술훈련과 주요 화기를 다루는 법까지 교육도 받았고 4학년 하훈 때에는 공수훈련까지 받은 상태라 당장이라도 소대장 근무를 할 수 있는 수준이었지만 아직 정식으로 임관한 상태는 아니었다. 전방 지휘실습을 했던 1979년은 아래(표)에서 보는 바와 같이 무장공비가 마지막으로 발악하듯 출몰하는 시기였다. 때마침 칠성부대는 북한 무장공비가 GOP를 뚫고 내려와 아군 경계근무를 무력화 시키고 다시 월북하는 사건이 발생하여 모든 간부 및 병사들이 지쳐있는 상태였다. ▲ 자료출처=2016 국방백서 252쪽 참조 대남 침투도발 양상은 1960년대에 1,011건의 최고점을 찍다가 1970년대 311건으로 감소하여 다음 연도부터는 직접침투 보다는 해안과 타국을 이용한 루트 등 간접침투로 전환하여 국내로 들어와 지금도 암약을 하고 있다. 우리는 사단 및 연대 신고를 하고 백암산 정상의 GOP중대로 배치를 받았다. 화랑대에서 사단까지 이동하여 신고하고 소개받는데 하루가 걸렸고 다시 연대를 거쳐 GOP중대 소초에 도착하니 깜깜한 밤이 되었다. GOP는 산악으로 이루어져 도보로 이동을 하기에 많은 시간도 걸렸고 지치기도 했다. 수 백개의 계단을 오르내리니 무릎 관절도 통증이 왔다. 마침 GOP중대장이 육사 6년 선배님이었다. 백암산 정상의 거친 바람과 친구가 되니 수염도 덥수룩하고 거친 모습에 피곤해 보였다. GOP는 야간 경계근무가 주로 핵심 일과였다. 어두워지기 전에 가진지를 점령했다가 은밀하게 주진지를 점령하여 적의 침투도발을 감시하는 것이다. 심심해 질려고 하면 북한의 대남 방송이 졸음을 깨웠고 전반야에는 선임하사관이, 후반야에는 소대장이 근무실태를 확인 차 순찰을 돈다. 경계근무중에 간혹 중대장과 대대장의 순찰을 접하게 된다. 병사들은 이것을 더 두려워했다. 그들로부터 근무자세 불량을 지적받으면 바로 영창행이기 때문이었다. 얼마전 경계근무에 실패하여 철책을 은밀하게 절단하고 내려와 그 침투조는 남쪽을 정찰하여 정보 수집을 다한 후 다시 강습 돌파로 철책을 뚫고 돌아갔다. 그들과 조우한 우리 병사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말았다. 반면 그 당시 인접 백두산 부대에서는 침투한 3명을 모두 사살하여 비교가 되다보니 칠성부대의 장병들은 그 일부의 실수로 치욕과 수치심에 전체가 침체되어 있었다. 해당 지휘관은 경계 실패의 책임을 지고 보직해임 되었지만 남아 있는 간부 및 병사들도 대책 강구로 두 눈이 벌겋게 충혈되어 피곤에 절어 있었다. 결자해지(結者解之)로 잘못한 자가 그 합당한 벌을 받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로 인해 열심히 최선을 다하는 다른 자들까지 피해를 주는 것은 무언가 겉돌고 있는 모습이었다. 산 정상의 중대 본부 막사 뒤에는 몇 평정도의 평평한 공간이 있었다. 그나마도 다행인 것은 그곳에서 사기가 충천한 무리를 발견할 수 있었다. 군대에서 먹다 남은 밥과 반찬을 잔반이라고 부른다. 심야 근무를 끝내고 막사로 돌아올 때 그 평지 잔반통을 중심으로 모여 있는 산돼지 가족을 만났다. 사람이 가도 도망가지 않는 것을 보니 매우 익숙해져 있는 모습이었다. 씩씩거리며 먹는 모습에서 침체에 빠져있는 장병들과 대조적으로 사기가 충천한 모습이었다. 부대원들은 잔반을 버려야 하는데, 오히려 멧돼지들의 먹이도 나누어주면서 잔반을 처리해줄 수 있는 일거양득(一擧兩得)이라고 생각되었다. 사관학교 4년 동안 가장 많이 듣는 말중에 하나가 ‘극한(極限) 속의 여유(餘裕)’였다. 경계실패의 후유증으로 어려움도 있었지만 그것을 극복해가는 과정에서 칠성부대 장병들의 노력은 눈물겨웠다. 그 와중에 지휘실습 나온 사관생도들에게 관심을 써주는 모습에서 오히려 “극한(極限) 속의 여유(餘裕)”를 찾을 수 있었다. “작전에 실패한 지휘관은 용서할 수 있어도 경계에 실패한 지휘관은 용서할 수 없다.”는 말은 당연한 것이나 군대는 사기를 먹고 사는 동물이다. 실습을 마치고 화랑대로 복귀하면서 대규모의 조직은 혼자만 잘한다고 성공하는 것이 아니라 조직 특히 사람들을 잘 관리하고 책임을 질 줄 알아야 한다고 느끼며, 이 부대가 조속히 수렁에서 빠져나와 사기충천한 부대가 되길 기원했다. 이러한 장교 인턴과정인 야전 지휘실습을 통해 사관생도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어엿한 육군 소위로 성장되어 갔다. - 육군사관학교 졸업(1981년)- 동국대학원 외교국방(석사)- 한남대학교 정책학 (박사과정)- 5군단사령부 작전참모- 3군사령부 감찰참모- 8군단사령부 참모장- 육군훈련소 참모장- 육군대학 교수부장- 육군본부 정책실장- 청와대 국가안보실 위기관리비서관 - 군인공제회 관리부문부이사장 - (현)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주요 저서 및 연구 - ‘충북지역전사’, 우리문화사, 2000.2월(1500부 발간)- ‘동서독 통일과정에서의 군통합에 관한 연구’, 동국대, 1995.6월 - ‘지고도 이긴 전쟁’, 합참지, 2002. 1월- ‘ATCIS는 이 시대 영관장교의 개인화기’, 육군지, 2010.9월- ‘소통과 창의는 전승의 지름길’, 국방저널, 2010.11월- ‘비겁한 평화는 없다’, 알에이치코리아, 2016.12월
    • 전역군인
    2018-01-15
  • [김희철의 Crisis.M] 대북심리전 위력 입증하는 ‘지드래곤’과 ‘사면초가(四面楚歌)’
    ▲ 지난 6월 20일 빌보드의 지드래곤 USB 앨범 보도. (사진 = 빌보드 캡처) ⓒ뉴스투데이 (시큐리티팩트=김희철 발행인) 역발산기개세(力拔山氣蓋世)를 꺽어버린 사면초가(四面楚歌) 진나라 말 전국에서 분기한 영웅호걸 가운데 가장 강력한 자는 항우였다. 그러나 기원전 202년 유방과 마지막 대결을 벌인 해하 전투에서 포위된 항우는 패배를 눈앞에 두게 되었다. 밤이 되자 사방에서 초나라 노래가 들려오고 대부분 초나라 출신인 항우의 병사들은 고향생각에 눈물을 흘리며 전의를 상실했다. 한나라의 심리전인 사면초가(四面楚歌)에 전의를 상실한 초패왕 항우는 애마 추와 연인 우희 죽이고 800여명밖에 되지 않는 잔여 지원군의 도움으로 간신히 적진을 돌파한 후 마지막 28명이 남을 때까지 싸웠으나 끝내 승기를 잡지 못하고 오강(烏江)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 때 그의 나이 31살이었다. 그는 죽기 전 한밤중에 일어나 주연을 베풀고 애마 추와 연인 우미인의 죽음을 슬퍼하면서 다음과 같은 시를 남겼다. 역발산기개세(力拔山氣蓋世)-힘은 산을 뽑고 기운 또한 세상을 덮을 만하나, 시불리혜추불서(時不利兮騅不逝)-때와 운이 불리해 추 또한 달리지 못 한다. 추불서혜가내하(騅不逝兮可奈何)-추가 달리지 못하니 어찌해야 하는가? 우혜우혜내약하(虞兮虞兮奈若何)-우여, 우여 그대를 어떻게 하면 좋단 말이냐? 이처럼 2200년 전에도 사면초가(四面楚歌)심리전은 역발산기개세를 꺽어버렸다. 여진족을 약화시킨 조선시대의 심리전 ‘대 야인 전광판’ 이러한 심리전은 조선 초기에 북방 여진족과의 국경 대립 시에도 적용했다. ‘대 야인 전광판’이란 여진족의 국지적인 무력 도발에 대응하기 위해 평안도-함길도 국경지대에 커다란 판(3m~4m)을 세우고 여진 문자를 익힌 사람을 통사로 임명하여 판에 글귀를 써서 시각 심리전으로 활용했던 것을 말한다. 대표적인 선전 문구는 “조선에 귀순한 야인들은 따뜻한 쌀밥을 먹고 지낸다.”, “귀순한 야인은 높은 자리에 앉을 수 있다.”, ”조선엔 미녀가 많다.“ 등 이었고. 밤이 되면 화톳불을 지펴 야인들이 볼 수 있게 하니 굶주린 야인들에게 조선 쌀밥을 통한 심리전은 탁월한 효과를 보았다. 그래서 그들은 지속적으로 ‘전광판’ 철거를 요구해 왔고 조정에서는 야인들의 노략질이 반복될 때마다 설치와 철거를 반복했다고 전해진다. 진지 고착전에서 UN군에게 전개한 중공군의 징과 굉가리 1950년 북한의 기습 남침으로 6·25전쟁이 발발했다. 국군과 미군을 주체로 하는 국제연합군은 낙동강 방어선으로 밀려났다가 9월 15일 일명 '인천상륙작전'으로 전세를 역전시켰다. 남한 대부분의 영토를 수복한 뒤 38선 이북 압록강·두만강 일대까지 북진했다. UN군이 중국 접경지에 다다르자 중국인민지원군(중공군)이 개입했다. 북한에 중공군의 대규모 병력 파병으로 UN군의 우세가 다시 꺾였다. 양 진영 간 밀고 밀리는 전투 중에 1951년 7월 10일 소련이 휴전회담을 제의했다. 밀고 밀리는 전투란 낮에 UN군이 점령했던 고지를 밤에는 징과 굉가리로 주의를 분산시키며 인해전술로 밀고 올라오는 중공군에게 빼앗기는 상황이 수차례 반복되는 진지 고착전으로 제공권이 없는 중공군에게는 최선의 방책이었고 아군 진지 측후방에서 들려오는 징과 굉가리 소리는 아군 배치를 흔들고 피로를 가중시켜 집중 방어를 못하게 하는 심리전 이었다. 한반도에서 군인·민간인 합쳐 수백만 명의 큰 인명피해를 남긴 6·25 전쟁은 약 2년 동안 계속된 진지 고착전을 끝으로 1953년 7월 27일 판문점에서 UN군 총사령관 클라크(Mark Wayne Clark)와 북한군 최고사령관 김일성, 중공군 사령관 펑더화이(彭德懷)가 정전협정에 서명하면서 비로소 멈췄다. 지드래곤, 북 한의 선군사상을 와해시키며 귀순을 유도하는 한류문화의 대북심리전 2017년 제3국을 경유해 들어온 탈북민은 961명으로 전년에 비해 16.8% 감소했다. 특히 2000년 이후 2016년까지 북한군 귀순은 총 9건이었다. 그러나 올해엔 예년에 비해 3배 증가한 인원이 넘어왔다. 북한에서는 선군 정책으로 군에 먼저 식량.필수품 등이 배급이 되어 민간인 보다 나은 대접을 받기 때문에 귀순이 증가한 것은 이례적인 현상으로 분석하는 전문가도 있다. 이러한 분석은 대북심리전의 효과를 모르기 때문이다. 2016년 1월 다시 시작된 비무장지대(DMZ)에서의 대북확성기방송은 재개된 지 1년 만에 북한군 4명을 포함한 15명의 탈북 귀순자를 유도하는 성과를 올렸다. 특히 한류문화 침투의 성과는 지대했다.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영화 ‘강철비’에서는 주인공 북한 정찰국 소속 군관역의 정우성의 딸이 ‘지 드래곤’의 노래를 좋아한다고 말한 것과 같이 세계적으로 유행하는 한류 문화가 북한의 인민들과 군부대까지도 파고들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5발의 총탄을 맞으면서도 공동경비구역(JSA)으로 귀순한 북한군 총참모부 작전국 상좌의 운전병이었던 오창성 하전사는 걸그룹 소녀시대가 부르는 ‘지(Gee)를 듣고 소녀시대와 한국영화를 좋아한다고 했다. 귀순 병사들을 신문하다보면 대부분이 우리의 심리전을 보고 듣고 귀순을 결심했다는 증언이 많았다. 중국의 병법서인 ‘황석공소서’와 ‘육도삼략’에도 적혀있는 유능제강(柔能制剛)이란 고사성어가 심리전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더 되새기게 했다. 노자의 ‘도덕경’에는 다음과 같이 진정한 의미를 잘 말해주고 있다. “세상에 부드럽고 약하기로는 물보다 더한 것이 없다. 더구나 견고하고 강한 것을 공격하는 데는 이보다 나은 것이 없다. ....(중략)... 부드러운 것은 굳센 것을 이긴다는 것을 천하에 알지 못하는 사람이 없지만 능히 이를 행하지는 못한다.” 노자가 강조한 것처럼 이제 우리는 대북확성기방송을 포함하여 전광판, 전단, 대면작전 등 모든 심리전을 확대시키는 행동으로 통일을 앞당겨야하지 않겠는가..? - 육군사관학교 졸업(1981년)- 동국대학원 외교국방(석사)- 한남대학교 정책학 (박사과정) - 5군단사령부 작전참모- 3군사령부 감찰참모 - 8군단사령부 참모장 - 육군훈련소 참모장- 육군대학 교수부장- 육군본부 정책실장- 청와대 국가안보실 위기관리비서관- 군인공제회 관리부문부이사장- (현)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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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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