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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514] 망월폐견(望月吠犬)보다는 민관군 콜라보가 더 따뜻하게 만들어⑧
[시큐리티팩트=김희철 칼럼니스트] 상당산성 서쪽 끝자락 율량동에 있었던 ‘성심양로원’이 지금은 없어졌고 청주교구의 건물만 남아있지만, 필자가 청원대대장으로 근무할 때에는 경로수녀회 최상살 수녀님이 원장으로 봉사하던 곳으로 많은 무의탁 노인들의 마지막 여생을 보내고 있었다. 오송에 위치해 뇌성마비 환자들과 무연고 걸인들을 모아 생활하고 있던 ‘믿음의 집’과 마찬가지로 ‘성심양로원’도 대대에서 군기 위반자들이 발생하면 늘 군기교육 과정으로 보내어 봉사하게 했었고, 대대원들도 일손이 부족한 양로원에 수시로 방문하여 봉사활동을 했던 곳이었다. ([김희철의 직업군인이야기(232)] ‘난득호도(難得糊塗)’를 강권한 노마지지(老馬之智) 참조) 한편 필자의 고향인 평택에서 중학교 교사로 정년퇴직한 뒤에 집에서 소일하며 지내는 아버지가 불쑥 부대를 찾아오셨다. 우리 집은 동족상잔 비극인 6‧25남침전쟁시에 미군이 약 2만명의 희생을 감수하며 중공군을 지연시킨 장진호 전투 덕분에 20만명이 피난할 수 있었던 흥남철수로 온 식구가 자유대한의 품에 안겼던 월남가족이다. 마침 휴일이라 부친을 모시고 동네 목욕탕을 갔다. ‘믿음의 집’과 ‘성심양노원’을 수시로 방문하여 노인들과 환자들을 대상으로 봉사활동을 했지만 진정 가까운 부친에게는 소홀했던 필자가 한편 부끄럽기도 했었다. 그래서 평택의 시골집에서는 목욕을 자주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오래간만에 아버지 등을 밀어드리고 싶었다. 돌아가신 할머니는 다리에 피부병이 있었는데 부친도 마찬가지로 다리에 피부병을 앓고 계셨고, 본인이 참지 못하고 심하게 긁으셔서 일부는 피가 난 상처도 있었다. 필자가 그곳을 뜨거운 물로 씻겨드리자 너무도 좋아하셨다. 한참 등을 밀어드리고 있는데 갑자기 누가 다가왔다. 목욕탕 안이라 모두 옷을 벗고 있었는데 그는 완전한 복장 차림의 목욕탕 주인이었다. 그는 난처한 표정으로 “손님, 다른 손님들에게서 항의가 들어와 죄송하게 되었습니다. 어르신을 모시고 즉시 나가시는 것이 좋겠습니다”라고 공손하게 말을 전했다. 주인의 말을 들은 필자는 미안하기도 했지만 아버지는 전염병이 아니라 유전이라고 양해를 구했다. 하지만 계속된 주인의 요구에 어쩔 수 없이 급하게 아버지를 모시고 집으로 복귀했다. 아쉽지만 짧게라도 함께 목욕하며 등을 밀어 드린 것이 작은 보람이었고, 아마도 그때가 10여 년 전에 작고하신 아버지와 함께한 마지막 목욕이었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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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513] 망월폐견(望月吠犬)보다는 민관군 콜라보가 더 따뜻하게 만들어⑦
[시큐리티팩트=김희철 컬럼니스트] 부모산은 충북 청주시 흥덕구 비하동과 지동동에 걸쳐 있는 산으로 해발 232m의 작은 산이다. 본래 이산은 아양산, 악양산 등으로 불리웠다. 임진왜란 때 의병장 박춘무가 복대에서 의병을 일으켜 청주성과 아양산(부모산)을 탈환하여 그곳에 주둔하고 있었다. 그러나 박춘무에게 패전했던 왜병이 아양산에는 물이 없다는 것을 알고 산 주위를 포위하고 보급로를 차단했다. 작전이 보름 이상 길어지자 그 안에 갇힌 의병들은 굶어 죽는 사람이 속출하게 되었는데, 의병장 박춘무의 꿈속에 지팡이를 짚은 백발노인이 나타나 소나무를 가리키며 일어나라고 소리치자, 박춘무는 꿈에서 깨어나 군사들에게 소나무를 뽑게 했다. 소나무를 뽑자 식수는 물론 말에게 목욕시키고도 남을 만큼의 물이 솟아났다. 이것을 알게 된 왜병들이 물러났고 이때부터 부모산이라 부르게 되었으며, 이 우물을 모유정이라고 불렀다. 옛 문헌의 기록에 따르면 부모산성은 고을 서쪽 15리에 있고 석축산성으로 둘레는 2,427척, 성 안에 큰 연못이 있어 가물 때는 기우제를 지낸 연화사가 있었다. 이 산성은 오랜 세월에 많이 허물어져 옛 모습을 찾아보기 어려우나 둘레가 1,220m 나 되는 비교적 큰 산성으로 동서남북에 성문이 있었던 흔적만이 남아있다. 현재 성 안에 우물자리인 모유정 주변 참나무에는 주술신앙의 흔적인 금줄이 매어져 있다. 성 안에서 백제계의 토기조각, 통일신라시대의 토기 기와조각, 고려시대의 청자 파편 등이 발견되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 이 산성은 백제 초기에 당이산 토성과 함께 청주의 동서를 지키는 외곽방어 시설로 축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 후 통일신라 및 후삼국 시대에 기능을 발휘하였고 특히 고려시대에 몽고군이 침입했을 때 피난성의 구실을 한 유서 깊은 부모산성이다. 청주를 대표하는 상당산성과 부모산성이 함께 청주 시내를 동서로 감싸고 있고, 상당산성 서쪽 끝자락 시내에 경로수녀회가 임진왜란 때 부모산의 모유정처럼 간절하게 운영하는 성심양로원이 있었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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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512] 망월폐견(望月吠犬)보다는 민관군 콜라보가 더 따뜻하게 만들어⑥
[시큐리티팩트=김희철 칼럼니스트] 뿐만 아니라, 책임지역 내의 낭성면 지파출소의 예비군 무기고는 너무 허술했다. 이대로 방치했다가는 불순분자에 의해 피탈이 우려되고 지역 주민들도 불안하게 생각한다며 시급히 보강할 필요가 있었다 해당 예비군 중대장도 그동안 몇 번이고 반복해서 재신축을 상급부대에 건의했으나 연대 및 사단에 확인한 결과 예산 반영이 어렵다는 이유로 제대로 진척이 안되었다 이러한 상황을 고(故) 변종석 청원군수에게 자세히 설명하며 도움을 청하자 변 군수는 주저없이 군의회 의장이 낭성면 출신이니 의장과 협의해 함께 추진하자는 의견을 내놓았다. 이야기를 들은 의장은 깜짝 놀라며 “그러면 빨리 군수에게 건의해서 무기고 신축 예산을 의회로 제출하면 바로 심의해서 통과시키겠다”는 대답을 얻었다. 당시 예비군 무기고 신축 예산(약 2000만원)을 군청에서 받아내는 것은 타부대에서는 엄두도 못내는 사항이었지만, 군을 아끼고 사랑하는 변 군수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부대의 애로사항을 해결한 덕택에 낭성면 지파출소 무기고의 취약점이 보강되어 상급부대 회의시에 민관군 통합작전을 위한 효율적인 콜라보 조치로 전파되기도 했다. 또한 사단에서 개최할 ‘국군의 날’ 행사와 동계를 대비해 연병장 복토 및 정비 공사를 앞두고 모래가 많이 필요한데 미호천 모래를 채취하여 활용하려면 통제하는 정부기관의 승인이 필요했다. 육사 동기생인 사단 공병대대장은 효율적으로 민관군통합작전을 잘하는 청원대대가 청원군청에 직접 협조를 해달라는 부탁을 해왔다. 필자는 즉시 군청으로 향했고, 청원군수 집무실에서 사단의 애로사항 설명을 들은 변 군수는 사단에서 필요한 양만큼 미호천 모래 채취를 허용하라는 지시를 바로 내렸다. 다음날 사단 공병대대장은 애로사항이 해결되었다며 고마움의 전화를 보내왔다. 민관군통합작전을 위해서라면 아낌없이 협조할 것이라 믿음을 주었던 고(故) 변종석 군수의 애군심(愛軍心)을 사단에서도 인정한다는 생각에 너무도 감사했고 든든했다. 사단에서도 협조를 못하는 사항을 필자가 해결할 수도 있었던 따뜻한 민관군 콜라보의 성과에 대한 뿌듯하고 흐뭇한 미소가 가슴을 가득 채웠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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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511] 망월폐견(望月吠犬)보다는 민관군 콜라보가 더 따뜻하게 만들어⑤
[시큐리티팩트=김희철 칼럼니스트] 국군의 날 행사에 참석한 변종석 청원군수와 군의회 의장은 필자가 대대장으로 취임하여 시행한 예비군 교장 시범에 삼성 장군인 군단장을 비롯한 많은 장군들을 포함한 200여명의 타부대 주요직위자들이 시범참석을 위해 말단 대대까지 최초 방문한 것 등은 청원군을 빛낸 것이라고 극찬하며 덕담을 했다. 또한 국군의 날 행사 참석자들이 그동안 시범 등을 위해 고생한 대대원들에게 무한한 격려를 보내주어 대대 장병들은 보람을 느끼며 어깨에 힘을 주었다. 그래서인지 대대원들은 지역 유지들의 적극적인 지원에 대한 감사함을 표하며 국군의 날을 자축하기 위해 태권도, 총검술 시범, 파티 등을 함께 준비했었고, 참석자들과 행사를 준비한 모두는 매우 즐거워했다. 기념식 및 시범 관람 행사를 마치고 나무껍질로 내부 인테리어한 부대 식당에서 간단한 다과회 파티를 개최했다. 그동안 지역 기관장 및 유지들이 대대를 한두번 방문한 것도 아니다. 하지만 매번 부대 출입할 때마다 정문 앞의 교통 상황이 매우 위험하다는 것을 그들은 느끼고 있었다. 나무껍질로 내부 인테리어한 다과회 파티장에서 재향군인회장은 한진희 경찰서장에게 부대 정문 앞의 대로에 차량 소통이 많고 과속도 하고있어 매우 위험하여 사고예방 조치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역설했고, 참석한 지역 유지들도 입을 모아 대책으로 교통신호등 추가 설치의 필요성을 자연스럽게 의견을 개진했다. 이런 의견을 접한 군의회 의장과 경찰서장은 건설교통부와 협조하여 대대 위병소 앞에 교통신호등을 추가 설치하기로 약속했다. 얼마뒤에 건설교통부와 협조한 신호등 설치가 실제로 현실화되어 부대를 출입하는 방문객들이 보다 안전한 혜택을 누리는 따뜻한 민관군 콜라보가 구현됐다.(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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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510] 망월폐견(望月吠犬)보다는 민관군 콜라보가 더 따뜻하게 만들어④
[시큐리티팩트=김희철 컬럼니스트] 국군은 국민의 군대로서 국가를 방위하고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며 조국통일에 이바지 함을 그 ‘이념’으로 한다. 또한 ‘대한민국의 자유와 독립을 보전하고 국토를 방위하며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고 나아가 국제 평화의 유지에 이바지 함’이 ‘국군의 사명’으로 군인복무기본법(구 군인복무규율)에 명기되어 있다. 그러나 필자가 37년간의 군생활 동안을 돌이켜보면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라는 국군의 사명을 이행하는 노력보다는 오히려 근무하던 부대가 위치했던 지역의 지자체, 관공서 및 주민들로부터 적극적인 지원과 도움을 더 많이 받았다. 필자는 지역 유지들의 도움과 적극적인 지원에 대한 감사함을 표하려고 대대원들과 함께 태권도, 총검술 시범, 파티 등을 준비한 국군의 날 기념행사에 그들을 초청해서 약간의 보람을 느낄 수 있게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준비했던 국군의 날 행사를 통해 뜻밖의 ‘부대 앞 신호등 설치’라는 또 하나의 민관군 콜라보 성과를 올려 민관군이 함께하는 보다 따뜻한 세상을 만들 수 있었다. 지금은 없어지고 청주대대로 통합된 청원대대는 당시에 청주시 톨게이트에서 시내 진입시에 가로수 터널을 통과해 강서동 고개를 넘어 내리막길 남쪽에 바로 위치했다. 그곳은 인적이 드문 곳이라 차량들은 과속을 많이 했고, 대대의 정문으로 진입하려면 언덕을 넘어오는 차량을 주시하며 조심하며 좌회전하고, 또 정문 앞에서 정지하여 출입자 신원 확인도 해야하기 때문에 항상 교통사고 위험이 내재된 상태였다. 필자는 국군의 날 행사에 지역 기관장 및 유지들을 포함해 당시 친 형처럼 각별하게 지냈던 경찰서장 한진희 총경(전 서울경찰청장)도 초청했었다. 물론 교통사고 위험이 있는 대대 정문 앞에는 간부를 사전에 배치해 초청 손님들의 사고 위험을 예방하는 조치도 했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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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501] 누가 뭐래도 우리는 소중한 친구들②
[시큐리티팩트=김희철 컬럼니스트] 필자가 대대장 취임전에 대형 교통사고로 병상에 누워 있을 때에도 동기생 중에 3, 4학년을 함께한 졸업중대 동기들이 더 많은 위문과 격려를 보내주었고, 군생활을 마치고 전역한 지금도 가끔씩 부부동반으로 모여 우정을 나누고 있다. 대대장 근무를 하던 당시에 타 동기들은 대부분 모두가 먼저 대대장을 마치고 참모 보직으로 옮겼지만, 필자는 대대장반 교육과정에서의 교통사고 때문에 후유증 재활치료로 2년 가까운 시간을 보내고 뒤늦게 대대장으로 취임했다. 그런데 먼저 대대장을 마치고 여유를 갖게 된 졸업중대 동기들에게서 그들보다 2년 늦게 대대장직을 수행하는 필자의 부대를 부부동반으로 격려 방문하겠다는 연락이 왔다. 사관생도 시절에 3, 4학년을 함께한 졸업중대 동기들의 부대 방문은 ‘유붕이자원방래(有朋而自遠方來), 불역락호(不亦樂乎)’의 깊이 감춰진 의미인 “술과 밥을 먹는 친구가 아니라, 내가 곤궁한 처지에 있을 때 함께 해줄 수 있는 동지가 있다면 얼마나 행복한 일이겠는가?”라는 공자의 논어에 기록된 동지형(同志型) 인간상이 현실로 구현되는 순간이었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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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484] 눈물의 사단선봉대대와 정비공의 의미①
-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맹자가 자연의 법칙을 좇아서 時流(시류) 곧 때의 흐름을 잘 알아서 그 흐름을 타며 살라고 했던 ‘盡其心者 知其性也(진기심자 지기성야)’를 실천해 준비했던 초도업무보고는 신임사단장을 감동시키는 성과를 달성했다. 초도업무보고를 받은 사단장이 사령부로 복귀한 뒤에 들려오는 소문은 연말 선봉대대는 필자의 대대로 이미 결정되었다는 것이었고, 여러 참모들과 사단 작전보좌관의 섣부른 귀뜸을 받았다. 1996년 12월30일에 개최된 ‘연말 주요지휘관회의’시에 선봉대대 뿐만 아니라 3~4개의 분야별 표창이 필자가 지난 11개월 동안 지휘했던 110연대 3(청원)대대로 추가될 것이라는 연락도 받았다. 실제로는 선봉대대에 추가해서 2개인 예비군교육훈련·정신전력 우수부대 표창을 받았다. 대대장 취임전에 교통사고로 죽었다가 살아난 필자에게 너무 많은 복을 내려주신 신(神)에게 감사드렸다. 동원분야의 최고 권위자였던 이상신 장군이 사단장직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연말 주요지휘관회의’ 개최 전에 떠났다. 하지만 그동안의 업무 성과와 초도업무보고를 통해 신임 충용부대 사단장인 조영호 장군(학군7기)에게도 각별한 신뢰를 받는 계기가 되었다. 특히 사단 선봉대대 표창은 육군본부에 보고되어 기록으로 남는다. 이는 나중에 진급 또는 중요한 직책 선발시에 참고가 되는 사항이기 때문에 동기생들보다 늦게 대대장으로 취임한 필자에게는 교통사고의 위기를 극복하고 새롭게 도약할 수도 있는 계기임과 동시에 그동안 고생한 대대원들의 수고를 보답하는 소중한 의미의 표창이었다.(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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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484] 눈물의 사단선봉대대와 정비공의 의미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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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철의 CrisisM] 한미연합사 창설 이래 최초 한국계 사령관으로 금의환향한 춘천 소년(하)
-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한편 홍준표 대구광역시장은 지난 7월11일 오후 2시30분 대구시청을 방문한 주한미군 제19지원사령관 박 준장과 환담했다. 진 H.박(Jin H.Pak) 준장은 홍준표 대구광역시장과의 환담에서 “2012년부터 2015년까지 근무했던 대구에 다시 돌아와 근무할 수 있게 돼 영광이다”고 말했다. 이에 홍준표 대구광역시장은 “최초로 한국계 사령관이 부임한데 대해 한국인으로서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며 “대구에서 근무하는 동안 상호 우호 관계가 증진되고 임무 수행을 원활히 할 수 있도록 필요한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특히 박 장군이 부임한 미 19지원사령부에는 한때 한국계 미국인인 류선 육군중령이 498전투유지지원대대장으로도 근무했었다. 류선 육군중령은 2023년 3월 부임 당시의 인터뷰에서 “한국은 저에게 ‘또 하나의 조국’이기도 하고요. ‘우리의 한미동맹(Our ROK-U.S. alliance)’이 오늘날처럼 강했던 적은 없었습니다. 다시 한국에서 복무하며 한미동맹 강화에 일조하게 된 것을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 그녀는 인터뷰 말미에 “거의 20년 전, 저는 이곳 한국에서 미군에 입대했습니다. 한국에서 제 경력을 시작한 것에 늘 감사하고 있죠. 그리고 지금 저는 멋진 조직을 지휘하기 위해 돌아왔습니다. 한국으로 돌아 온 제가 받은 환대는 정말 각별했죠”라고 언급했다. 이어 “저는 엄격한 환경에서 이뤄지는 한미 연합훈련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현실적인 훈련은 장병들에게 더 큰 효과를 주죠. 저와 저희 대대 장병 모두는 파이트 투나잇(Fight Tonight)의 상시 임전태세를 유지하고자 합니다”라며 완벽한 연합대비태세 유지에 힘을 보태겠다는 각오도 밝혔었다. 미 19지원사령부는 미 육군서 유일하게 전진 배치된 군수야전사령부로 ‘한반도 안보·평화 유지’ 의지를 보여주는 사례이다. 미 19지원사령부에서 다시 근무하게 된 신임 사령관 박 준장도 미국 이민자 집안 출신이 최초로 주한미군 장성급 지휘관으로 부임하는 것이어서 관심이 모아지며, 보다 강력해진 한미연합방위 태세 공고화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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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철의 CrisisM] 한미연합사 창설 이래 최초 한국계 사령관으로 금의환향한 춘천 소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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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483] 신임 사단장을 감동시킨 초도업무보고③
-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조영호 사단장의 사고예방 최우선 부대운영 지침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병사 개개인의 신상파악을 보다 정확하게 파악하여 사고예방에 대처하면서 생활관 환경을 가정처럼 조성하여 편안한 환경을 만드는 것이 최선의 여건조성이라는 판단을 했다. 우선 막사에 병원관리(兵員管理)를 위해 60여명밖에 안되는 전병력의 인적사항을 전산화 시켰다. 이는 필자가 중대장 시절에 38기 후배였던 고(故) 김상철 대위(예비역중령, 전역 후 지병으로 영면)의 포대를 방문했을 때 컴퓨터에 병력들을 전산입력시켜 관리하는 모습을 참고로 벤치마킹해 엑셀프로그램을 활용해 제작했다. 결손가정 등 필요한 요소을 검색하면 전 대대원중에 해당자를 한눈에 볼 수 있어 관리에 용이하도록 만들었다. 이미 탁월한 김 후배가 수년전에 활용했던 프로그램이었지만, 당시에는 타부대는 아직 적용을 못하고 있던 상태로 사단에서는 필자가 최초로 시행했다. 또한 병사들이 기거하는 부대막사와 식당이 노후되어 도색을 새롭게 해도 우중충한 모습을 바꿀 수가 없었다. 고민하다가 필자가 청주에 있는 민간 레스토랑이나 카페를 방문했을 때 나무껍질로 인테리어를 한 것에 착안했다. 제재소에서 나무껍질을 얻어와 식단 벽면의 하단에는 벽돌을 쌓고 그위에 나무껍질로 치장하니 신세대 의식 성향을 따라가는 멋있는 민간 레스토랑이나 카페처럼 아늑한 식당으로 탈바꿈하게 되었다. 더불어 화장실과 휴게실도 이용시에 좀더 편하고 새롭게 환경을 조성했다. 특이하게도 개선작업을 하던 병사들은 자신들이 활용할 공간이라 더욱 열심히 새롭게 아이디어까지 내면서 아름답게 꾸몄다. 선승구전(先勝求戰)이라는 말처럼 신임 사단장의 의도에 충실하게 전투준비와 교육훈련은 철저하게 기본을 유지하면서 사전준비한 병력 전산관리와 식당, 화장실, 휴게실 환경개선 등의 병원관리(兵員管理)를 부각시킨 초도 업무보고는 사단장을 감동시키는 성과를 달성했다. 위의 사진과 같이 현장을 함께 둘러보던 청원군수와 재향군인회장(학군7기)도 감탄하며 새로운 아이디어라며 극찬해 분위기를 띄웠다. 때의 흐름을 잘 알아서 그 흐름을 타고 살라는 맹자의 가르침인 ‘盡其心者 知其性也(진기심자 지기성야)’를 실천한 결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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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483] 신임 사단장을 감동시킨 초도업무보고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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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철의 CrisisM] 한미연합사 창설 이래 최초 한국계 사령관으로 금의환향한 춘천 소년(상)
-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춘천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한국계 미군 장군이 한미연합군사령부가 창설된 지 46년만에 주한미군 제19지원사령관으로 금의환향(錦衣還鄕)해 화제다. 1970년대는 미국이 닉슨 독트린, 베트남 철수 등으로 동아시아 지역에서 미군을 철수, 방위력을 최소화시키는 조치가 연속된 시대였다. 대한민국 역시 1972년 주한 미 육군 7사단의 철수를 경험한 바 있었기 때문에, 유엔사 해체 결의안 통과를 시작으로 주한미군 전체가 철수하는 최악의 안보 공백 시나리오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 와중에 베트남의 적화는 큰 이슈였다. 그때 한미연합사의 모체라 할만한 부대가 창설되었는데, 한미혼성 제1군단이었다. 군단장은 미군, 부군단장은 한국군인 현행 체제와 비슷했고 휘하 미군 사단을 지휘했다. 당시 박정희 정부는 유엔사를 대신해 유사시 한국군과 미군을 총괄 지휘하는 기구의 필요성을 미국 측에 역설했고, 이 결과로 1978년 11월7일 한미연합군사령부가 창설되었다. 초대 사령관은 1976년부터 유엔군사령관 겸 주한미군 사령관으로 재직 중이던 존 베시 미 육군대장이 임명되었고, 한미연합사는 오늘날까지 46년째 이르고 있다. 지난 6월5일 프레드릭 크리스트(Frederick L. Crist) 준장 후임으로 진H 박(Jin H.Pak, 52세, 한국명 박진형) 준장이 대구 남구 캠프헨리에 소재한 주한미군 제19지원사령관으로 부임해 대한민국 남부지역 작전 유지와 지휘, 물자 수송 등을 책임지고 있다. 제19지원사령부 지휘관으로 취임한 박 준장은 1957년 주한미군사령부 및 1978년 한미연합군사령부 창설 이래 최초의 한국계 장성급 사령관이다. 1972년 태어난 그는 춘천에 거주하는 조부모 손에서 유아 시절을 보냈다. 그가 태어난 후 약사였던 아버지가 어머니와 함께 미국 뉴욕으로 이민을 떠나면서 할머니·할아버지와 함께 지내게 됐다. 6살 되던 해인 1978년 부모가 있는 미국으로 떠난 박 사령관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어릴 때 하늘에 비행기가 보이기만 하면 ‘와...! 비행기가 미국으로 간다’고 말했다”며 “언제나 부모님이 보고 싶은 어린아이였고 늘 미국에 가고 싶어 했다”고 당시 기억을 회상했다. 그는 뉴욕에서 성장해서 1994년 미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수송장교로 임관했다. 이후 독일과 보스니아, 아프가니스탄 등 전투지역에 파병돼 활약했고, 한국에선 주한미군의 주축이자 한·미동맹을 상징하는 부대인 미 2사단에서의 근무 경험도 있으며, 2012년 제19지원사령부 예하부대 대대장과 한미연합사령부 기획참모부 연합계획과장을 지내는 등 30년째 미 육군에서 복무 중이다. 금의환향(錦衣還鄕)한 박 사령관은 취임사에서 “여섯살의 나이로 미국으로 이민을 갔을 때, 19지원사령부와 같은 환상적인 부대의 지휘관으로 대한민국에 돌아오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어 “19지원사와 같이 갑시데이(갑시다)”라고 경상도 사투리로 친근감을 표시하며 한국계 미군 장성으로서의 자부심을 강조했다.(하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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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철의 CrisisM] 한미연합사 창설 이래 최초 한국계 사령관으로 금의환향한 춘천 소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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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483] 신임 사단장을 감동시킨 초도업무보고②
-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맹자는 ‘盡心 上(진심 상)’에서 “盡其心者, 知其性也; 知其性, 則知天矣. 存其心, 養其性, 所以事天也. 殀壽不貳, 修身以俟之, 所以立命也(진기심자, 지기성야; 지기성, 즉지천의. 존기심, 양기성, 소이사천야. 요수불이, 수신이사지, 소이립명야)”라고 강조했다. 즉, “그 마음을 다한다면, 그 본성을 알게 된다. 그 본성을 알면, 하늘을 알게 된다. 그 마음을 잘 지니고 그 본성을 잘 기르는 것, 이것이 하늘을 섬기는 방법이다. 일찍 죽느냐 오래 사느냐에는 마음을 두지 않고 몸을 닦으면서 기다리는 것, 이것이 명(命)을 바로 세우는 바탕이다”라는 의미이다. 그런데 맹자의 ‘명(命)’은 운명이나 도덕적 본성으로서 명이 아니라 ‘사태의 흐름이나 추이, 변화’를 가리킨다. 요컨대, 명을 도나 자연, 그 법칙 또는 원리로 이해했다. 따라서 ‘명을 기다린다’고 할 때 그 기다림은 단순히 기다린다는 뜻이 아니라 도에 따라서, 자연의 법칙을 좇아서 산다는 뜻이며, 時流(시류) 곧 때의 흐름을 잘 알아서 그 흐름을 타고 사는 것을 뜻한다. 마치 서퍼들이 파도를 기다렸다가 그 파도를 타며 즐기듯이 살라는 말이다. DJ 대대장을 과감히 받아주어 상승세를 타게했던 사단장 이상신 장군이 떠나고 조영호 장군(학군7기)이 부임한 지 얼마안되어 연대장이 11월 중순에 초도 업무보고를 했다. 그때 신임 사단장 조 장군은 병원관리(兵員管理)를 최우선으로 사고예방을 가장 중요한 부대운영 지침으로 강조했다. 사고가 발생하면 그 부대는 본연의 임무 수행보다는 후속조치를 위해 전력을 다하게 되어 전투력 발휘도 제한되기 때문에 사고예방이 최우선이다. 이를 위해 병원관리(兵員管理)에 최선을 다하라며 배석한 대대장들에게도 명심하라고 강하게 말했다. 군대는 지휘관의 의도를 따르는 것이 모든 임무수행의 핵심이다. 맹자가 자연의 법칙을 좇아서 時流(시류) 곧 때의 흐름을 잘 알아서 그 흐름을 타고 살라고 했던 것처럼 필자가 그동안 지향했던 부대운용의 방향도 전환시켜야 했다. 이 와중에 신임사단장이 초도업무보고를 받으러 12월초즈음에 대대를 방문하겠다는 연락이 왔다.(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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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483] 신임 사단장을 감동시킨 초도업무보고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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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482] 신임 사단장을 감동시킨 초도업무보고 ①
-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지휘관의 꽃은 사단장이라고 한다. 강릉 잠수함 침투사건이 종료되고 장군 진급인사를 발표하자 11월 초에 충용부대 사단장 이취임식이 있었다. 절뚝거리는 DJ 대대장 자원을 잠시 고민은 했지만 과감히 받아준 사단장 이상신 장군(갑종197기) 덕분에 필자의 대대는 사단 전투지휘훈련(BCTP), 대통령 훈령까지 변경시킨 ‘공군기지방어 전술토의’, 점입가경이 된 ‘예비군 훈련장 사열’, 예비군 총기번호 오류 발견으로 상급부대를 뒤집어 놓은 ‘초도 업무보고’와 동원훈련, 전투지휘검열 수검에 따른 ‘예비군훈련장 시범식견학 행사’ 등의 성과로 대대가 사단의 전반기 최우수부대로 선정되는 상승세를 탔었다. 하지만 동원분야의 최고 권위자였던 이상신 장군이 조영호 장군(학군7기)에게 충용부대 사단장직을 물려주고 떠났다. 이상신 사단장의 각별한 신뢰를 받았던 신현정 연대장(삼사9기)도 몹시 아쉬워하며 술을 들이켰다. 바야흐로 학군장교의 전성시대가 시작되었다. 신 연대장도 그동안의 상황과는 다르게 학군장교인 윤경식 1대대장을 대하는 태도가 많이 변했음을 감지할 수 있었다. 물론 임기를 마친 윤 중령은 사단 작전참모를 역임했다. 사실 필자도 대대장 취임후 지난 10개월 동안 절치부심(切齒腐心)하며 쌓아온 입지가 흔들릴 것 같아 걱정이 되었고, 그동안 부족하면서도 절뚝거리는 DJ 대대장 때문에 수많은 고생을 했던 부하들의 노력이 물거품이 되면 어쩌나하는 조바심도 있었다.(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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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482] 신임 사단장을 감동시킨 초도업무보고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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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481] 군을 사랑했던 사나이 변종석 청원군수⑤
-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강릉 잠수함 침투사건에서 대침투작전간 고(故)오영안 준장(제3군단 303기무부대장, 3사4기)을 비롯한 12명의 전우들이 전사했고, 경찰·예비군 2명과 민간인 4명이 무장공비에게 둔기류로 머리를 맞은 뒤 목이 졸려 숨지는 등의 학살을 당했다. 민간인 희생은 작전간 출입금지 지시를 어기고 송이버섯 채취 등을 위해 입산했기 때문이었다. 반면에 청원군청에서는 군이 주관된 을지연습, 화랑훈련 등의 민관관통합작전 훈련시에 주민신고를 적시적으로 실행한 주민에게 군수표창을 우선 수여하는 등 각종 훈련에 적극 임했다. 또한 예비군 무기고(낭성면)가 허술하자 국방예산이 아닌 지역 예산을 투입해 즉각 신축보강했고, 사단에서 필요한 모래채취도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중에서도 민관관통합작전의 빛나는 절정을 찍은 압권은 집중폭우시 깜깜한 이른 새벽에 범람이 우려되었던 미호천 교량 현장에서 약속이나 한 듯이 우연히 만나 똑같은 마음으로 서로가 감탄하며 감사했던 순간이었다. 그 자리에서 범람으로 피해가 발생한 지역의 대민지원 소요를 판단했고, 변 군수는 병력이 적은 대대보다 인원이 많은 사단 기동대대를 투입시키는 것이 좋겠다며 서로 상급부대에 건의하여 조치하자고 협조했었다. 비록 수해복구였지만 적시적이고 효율적인 민관군 통합작전이 이루어졌다. 얼마뒤에 사단으로부터 충북도청에 가서 도지사 표창장을 받으라는 연락이 왔다. 왜나면 이번 집중호우시에 대민 수해복구 지원에 유공이 많다는 이유였다. 도청에 가보니 육사후배인 사단기동대대장도 함께 수상자로 와있었다. 나중에 들린 전언에 따르면 이번 도지사 표창은 사단에서 유공자를 건의한 것이 아니라 미호천 수해현장에서 약속한 듯이 서로 만나 효과적으로 피해복구를 주도했던 변종석 청원군수가 강력하게 도지사에게 사단기동대대장도 함께 표창을 건의해서 이루어진 행사라는 것을 알았다. 지금도 “아니, 대대장님이 폭우가 쏟아지는 이 새벽에 어쩐 일이냐?”고 놀라며 미호천 수해현장에서 약속이나 한 듯이 우연히 만났던 고(故) 변종석 청원군수 입가의 흐뭇한 미소가 눈앞에 아른거리며 가슴을 적셔온다. 고(故) 변종석 청원군수의 애군심(愛軍心) 덕택에 민관군통합작전체계는 더욱 빛을 냈며 공고해졌고, 필자의 대대도 모범적으로 완벽한 민관군통합작전을 수행하는 부대로 굳혀갔다. 다시한번 더 고(故) 변종석 청원군수의 애군심에 감사올리며 그의 명복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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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481] 군을 사랑했던 사나이 변종석 청원군수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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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480] 군을 사랑했던 사나이 변종석 청원군수④
-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한편 대대장 취임후에 시작된 읍면대의 지파출소에 설치된 예비군 무기고의 경계초소 새벽순찰을 매주 다니면서, 특히 낭성면 무기고가 협소하고 허술하며 노후되어 피탈우려도 있고 파출소 직원 및 경계근무자가 관리가 어려운 상태로 파악되어 매우 불안하게 만들었다. 해당 예비군 중대장도 그동안 몇 번이고 반복해서 재신축을 상급부대에 건의했으나 진척이 않되어 관심이 촉구되다고 했다. 연대 및 사단에 확인한 결과 예산 반영이 어렵다는 대답이었다. 할 수 없이 변종석 청원군수에게 애로사항을 이야기하며 도움을 청하자 변 군수는 주저없이 군의회 의장이 낭성면 출신이니 의장과 협의해 함께 추진하자는 의견을 내놓았다. 필자는 바로 군의회 의장을 만나 낭성면 예비군무기고를 이대로 방치했다가는 불순분자에 의해 피탈이 우려되고 지역 주민들도 불안하게 생각한다며 시급히 보강할 필요가 있다고 현실태를 설명했다. 의장은 놀라며 “그러면 빨리 청원군수에게 무기고 신축 예산을 의회로 건의하면 바로 심의해서 통과시키겠다”는 대답을 얻었다. 당시 예비군 무기고 신축 예산(약 2000만원)을 군청에서 받아내는 것은 타부대에서는 엄두도 못내는 사항이었지만, 군을 아끼고 사랑하는 청원군수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부대의 애로사항을 해결한 덕택에 낭성면 지파출소 무기고의 취약점이 신축보강되어 상급부대 회의시에 민관군 통합작전을 위한 효율적인 협업 조치로 전파되기도 했다.(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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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480] 군을 사랑했던 사나이 변종석 청원군수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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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철의 CrisisM] 서울 청계광장에서 '독도히어로즈 페스티벌' 개최
-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일본의 독도 무단 침범을 격퇴한 '독도대첩' 70주년을 맞아 독도의용수비대기념사업회(회장 최완근) 주관으로 지난 3일 오후, 서울 청계광장에서 '독도히어로즈 페스티벌'이 개최됐다. 이날 오후 2시 개최된 독도대첩 70주년 기념식에는 강정애 국가보훈부 장관을 비롯한 기념사업회 회원, 학생, 시민 등 3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기념식 외에도 학생들과 함께하는 기념공연, 독도의용수비대 소개 영상 시청 및 활동상 전시, 독도의용수비대 활동 및 독도 지형 체험, 게임·퀴즈, 독도의용수비대 캐릭터 이름 짓기 등 다양한 부대행사도 진행됐다. 독도대첩은 민간인으로 구성된 33명의 독도의용수비대가 1954년 11월21일 독도를 무단 침범한 일본에 맞서 승리한 전투다. 당시 대원들은 일본 해상보안청의 무장순시함 헤쿠라호와 오키호를 M1소총과 가늠자 없는 박격포 등 열악한 무기로 격퇴했다. 이는 독도의용수비대가 일본과 싸워 가장 크게 승리한 전투로, 일본이 다시는 독도를 불법 침범하지 못하는 계기가 됐다고 보훈부는 설명했다. ‘독도대첩일’은 독도의용수비대가 독도에 무단 침범한 일본과 맞선 전투 중 가장 크게 승리한 1954년 11월21일을 기념하기 위한 것으로, 독도의용수비대기념사업회는 지난 2013년부터 ‘독도대첩일’로 명명했다. 강정애 국가보훈부 장관은 “독도의용수비대원들의 투혼과 헌신이 있었기에 우리는 독도에 대한 영토주권을 확립할 수 있었다”면서 “이번 독도대첩 70주년을 맞아 개최되는 페스티벌을 통해 서른 세분의 독도 영웅분들이 일궈낸 승리의 역사를 국민과 함께 기억·계승하는 의미있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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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철의 CrisisM] 서울 청계광장에서 '독도히어로즈 페스티벌' 개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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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479] 군을 사랑했던 사나이 변종석 청원군수③
-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비록 우의를 입었지만 세차게 쏟아붓는 폭우는 온몸을 적셨고, 물에 빠진 생쥐처럼 비를 흠뻑 맞은 변종석 청원군수도 집중폭우로 인한 피해 현장에서 약속이나 한 듯 우연히 만나 청원군을 아끼는 마음을 서로 같이 한 것에 대한 공감대와 희열을 느끼며 각자의 사무실로 돌아가 후속조치를 시작했다. 이른 아침 필자의 긴급 지휘보고를 받은 연대장은 수해 현장에서 청원군수를 만나 피해복구 지원 대책을 상의한 것을 칭찬하며 즉각 사단에 보고하였다. 사단 기동대대 전원이 기상과 동시에 청원군 미호천 수해지역으로 우선 투입되어 수해복구를 시작했다. 이는 청원군청과 청원대대의 확고한 민관군 통합작전 태세를 증명하는 계기가 되었다. 집중폭우으로 인한 수해복구에 민관군이 혼연일체가 되어 노력한 결과로 부대와 기관 및 지역 주민들은 정상적인 일상으로 돌아온 지 얼마되지 않은 어느날 육사 동기생인 사단 공병대대장 권태환 중령이 급하게 필자를 찾는 전화가 왔다. 예비군 교육 현장을 확인하다가 사무실에 들어와서 권 동기의 전화를 받았을 때 충북도청, 청원군청과의 실무협조가 잘 않되어 도움이 필요하다는 부탁이었다. 그런데 ‘이런 것까지 지역 대대장이 해결할 임무인가?’ 하면서도 왠지 사단에서도 협조를 못하는 사항을 필자가 해결할 수도 있겠다는 뿌듯함에 흐뭇한 미소를 띄웠다. 동시에 군부대를 위해서라면 아낌없이 적극 협조할 것이라 믿음을 주는 변종석 청원군수를 사단에서도 신뢰한다는 생각에 그가 너무도 감사했고 든든했다. 사단 공병대대장의 협조 요구사항은 곧 개최할 ‘국군의 날’ 행사와 동계를 대비해 연병장 복토 및 정비 공사를 앞두고 모래가 많이 필요한데 미호천 모래를 채취하여 활용하려면 정부기관의 승인이 있어야 한다며, 효율적으로 민관군통합작전을 잘하는 대대가 청원군청에 직접 협조를 해달라는 부탁이었다. 필자는 즉시 군청으로 향했고, 집무실에서 사단의 애로사항 설명을 들은 변 군수는 해당 과장을 바로 호출해 이번 집중호우에서도 사단 기동대대원들의 지원으로 피해복구 시간이 단축되었는데 사단에서 필요한 양만큼 모래 채취를 허용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다음날 사단 공병대대장은 애로사항이 해결되었다며 고마움의 전화를 보내왔다.(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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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479] 군을 사랑했던 사나이 변종석 청원군수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