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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501] 누가 뭐래도 우리는 소중한 친구들②
[시큐리티팩트=김희철 컬럼니스트] 필자가 대대장 취임전에 대형 교통사고로 병상에 누워 있을 때에도 동기생 중에 3, 4학년을 함께한 졸업중대 동기들이 더 많은 위문과 격려를 보내주었고, 군생활을 마치고 전역한 지금도 가끔씩 부부동반으로 모여 우정을 나누고 있다. 대대장 근무를 하던 당시에 타 동기들은 대부분 모두가 먼저 대대장을 마치고 참모 보직으로 옮겼지만, 필자는 대대장반 교육과정에서의 교통사고 때문에 후유증 재활치료로 2년 가까운 시간을 보내고 뒤늦게 대대장으로 취임했다. 그런데 먼저 대대장을 마치고 여유를 갖게 된 졸업중대 동기들에게서 그들보다 2년 늦게 대대장직을 수행하는 필자의 부대를 부부동반으로 격려 방문하겠다는 연락이 왔다. 사관생도 시절에 3, 4학년을 함께한 졸업중대 동기들의 부대 방문은 ‘유붕이자원방래(有朋而自遠方來), 불역락호(不亦樂乎)’의 깊이 감춰진 의미인 “술과 밥을 먹는 친구가 아니라, 내가 곤궁한 처지에 있을 때 함께 해줄 수 있는 동지가 있다면 얼마나 행복한 일이겠는가?”라는 공자의 논어에 기록된 동지형(同志型) 인간상이 현실로 구현되는 순간이었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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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499] 지휘관은 이율배반(二律背反)적인 직책(하)
[시큐리티팩트=김희철 칼럼니스트] 조영호 사단장의 사고예방 최우선 부대운영 지침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병사 개개인의 신상파악을 보다 정확하게 파악하여 긴밀한 소통을 통해 사고예방에 대처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우선 대대의 60여명밖에 안되는 현역 전병력의 인적사항을 병원관리(兵員管理)용으로 전산화시켰다. 이는 탁월했던 후배 고(故) 김상철 대위(육사38기)의 포대에서 수년전에 활용했었지만, 당시에는 타부대는 아직 적용을 못하고 있던 상태로 사단에서는 필자가 최초로 시행했었다. 나중에는 일반화된 명암관리 프로그램을 활용하여 결손가정 등 필요한 요소을 검색하면 전 대대원중에 해당자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발전시켰다. 그러나 병원관리 데이터를 입력하려면 수시로 대대원들과 면담이나 소원수리함(대대장만 개봉 가능) 등을 통해 소통할 필요가 있었다. 하루는 화장실에 설치된 소원수리함에 한 병사가 면담을 요청하는 문건을 확인했다. 대대장실에서 아담한 키에 다소곳이 마주 앉아서 차를 한잔하던 00일병은 주저하다가 말문을 열였다. “대대장님, 이것을 차마 중대장에게도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라고 시작하자 흠칫 상관의 잘못을 고자질하는 애로사항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귀를 쫑긋 세웠다. 교육대학을 다니다가 입대한 그는 제대후에 초등학교에서 교편을 잡을 예정이었다. 그런데 입대 후에 생활관에서 단체 생활을 하면서 취침시에 모포가 쓸려내려간 동료의 허벅지를 볼 때마다 흥분되고 몸에 이상한 느낌이 든다며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다는 하소연이었다. 그 말을 들은 필자는 난감했다. 하지만 00일병의 입장이 되어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 대대장이 이 사실을 알았으니 그런 이상 징후 치료가 가능한지를 우선 알아보고 조치하겠다며 안심하라고 달래주었다. 그를 생활관으로 돌려보내며 걱정이 됐으나 연대 인사과장에게 먼저 상의를 했다. 다음날 연대인사과 선임하사가 대대를 방문해 00일병을 면담하고 병원 진료를 받게 하겠다며 데리고 갔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병원 치료차 대대를 떠난 병사는 의사 진료 후에 ‘성도착증세’로 확진이 됐고, 바로 전역 조치가 되었다. 한달 뒤에 그의 편지를 받았다. 전역해서 집에서 조용히 보내고 있다는 소식이었고, 말미에 병명 때문에 초등학교에서 교편을 잡을 수 없게 되었다는 원망도 적혀있었다. 지휘관은 휘하에 부하들을 지휘통솔하는 직책이다. 질식사 위험의 부하도 살리는 보람도 있었으나, 후자같은 경우에는 많은 타부하들을 위해 지휘관을 믿고 솔직하게 애로사항을 건의했던 부하를 아쉽게 전역시켜야 하는 아픔을 겪게 만드는 이율배반(二律背反)적인 괴로움을 겪게 만들기도 했다. 어쩔수 없이 대를 위해 소를 희생시키게 만들었지만 지금도 희생양이 된 00일병에게 미안함이 가슴 속에 깊이 자리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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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철의 CrisisM] 인구절벽 시대에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땅에 태어났다(상)
[시큐리티팩트=김희철 칼럼니스트] 최근 배우 정우성과 모델 문가비가 혼외자를 출산한 것이 세간에 관심을 끌고 있다. 통계청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10년 전 출생아 43만7000명의 전반 수준인 약 23만명이 2023년에 태어났고, 이중의 4.7%인 1만900명이 혼인 외 관계에서 태어난 신생아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혼인 외 출생아는 2013년 9300명에서 2020년 6900명까지 줄었다가 2021년 7700명, 2022년 9800명으로 3년 연속 증가했다. 다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평균 혼외 출생율인 41.5%에 비하면 낮은 수준이다. 게다가 계속 이어지는 저출산에 따른 인구절벽의 위기가 국가의 존망을 위협하고 있다. 한편 110년만에 최대로 많이 내린 첫눈으로 세상이 온통 하얗게 변했던 그날 저녁에 어릴적 친구와 소주한잔을 들이키며 건배를 하다가 우리가 철없는 강아지처럼 첫눈을 즐기는 삶을 아직도 영위함에 감사드리며 외친 말이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였다. 하지만 필자를 포함한 60~90세대들이 ‘~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는 암송문을 56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히 떠오르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혼인 외 관계에서 태어난 신생아의 역대 최대를 기록한 2023년의 1만900명를 포함해서 이 땅에 태어난 모든 사람들이 1968년 12월5일 국민교육헌장 선포의 가치를 반드시 기억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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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498] 지휘관은 이율배반(二律背反)적인 직책(중)
[시큐리티팩트=김희철 칼럼니스트] 부대 복귀를 고려해 우선 원거리부터 이동하여 야간순찰을 시작했다. 미원면과 낭성면을 지나 가덕면에 위치한 지파출소 예비군무기고를 향해 가고 있었는데 그날따라 짚차 출입문 틈으로 혹서기 삭풍을 예는 바람이 매섭게 파고들어 발밑의 히타의 온기도 느끼지 못할 정도로 추웠다. 저멀리 가덕면 지팔출소와 예비군 무기고가 시야에 들어오며 경계초소가 보였는데 그 안에 초병이 없었다. 일순간 날이 추워서 경계근무를 안하고 임시 생활관에 들어가 쉬고 있다는 생각이 스치며 경계근무에 소홀한 초병을 어떻게 혼을 내줘야 할지를 생각하며 은근히 부아가 치밀었다. 차를 세우고 경계초소로 들어갔다. 헌데 초병인 상근예비역은 초소 밖을 보며 경계근무를 하는 것이 아니라 초소안에 총을 세워놓고 쪼그리고 앉아서 깡통에 피워놓은 장작불을 쬐고있었다. 기습적인 대대장의 방문에 놀란 초병은 옆에 소총을 집어들면서 급하게 일어서서 ‘필...!’하고 경례를 했다. 경례구호도 제대로 하지못한 초병은 백지장처럼 얼굴이 하얗게 변했고, 그대로 앞으로 쓰러지며 필자의 품에서 잠시 기절을 했다. 필자는 초병을 안은 채 초소 밖으로 나와 찬바람을 맞히며 등을 두드렸다. 잠시후 표정이 정상적으로 돌아온 초병은 말을 할려고 했는데 그때까지도 제대로 정신이 돌아오지 못했는지 더듬거리고 있었다. 초병은 혹한을 견디기 위해 깡통에 피워놓은 장작불에 앞에 쪼그리고 앉아 장시간을 보냈는지 일산화탄소를 흡입하여 거의 중독되기 직전의 상황이었기 때문에 필자의 품으로 쓰러졌고, 간신히 정신을 차린 그는 더듬거리며 죄송하다는 말만 계속했다. 일산화탄소에 중독되어 비틀거리는 초병을 생활관 대기실로 옮기고 그곳에서 대기하던 다른 상근예비역으로 초병근무를 교대시켰다. 비록 후방지역 향토사단이지만 대대장으로 근무하는 필자도 당연히 무기고 경계초소 야간순찰을 돌아야 한다는 생각해 지속 감행했던 결과로 질식사 직전의 부하를 살렸다는 부듯한 보람이 엄동설한 속에서 가슴을 따뜻하게 만드는 순간이었다.<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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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495] 혹한기훈련과 연대전투단훈련으로 호국충절의 고장임을 증명④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고향이 같은 충청북도인 사단장과 군수는 보자마자 너무도 반갑게 인사를 했다. 충북 괴산군 청안면 출신인 사단장은 충북 청원군 북이면 출신의 군수와 이미 알고 지내던 사이였다. 사단장은 청원군수를 만나자마자 군의회 의장과 함께 훈련장을 방문해서 비행장 방어시에 야간 침투하는 적들을 격멸하기 위해 필요한 탐조등 35셋트(630만원 상당)을 구매하여 기부해준 것과 지난번 낭성면 예비군 무기고 신축 예산(약 2000만원) 지원, 그리고 사단에서 필요한 모래를 미호천에서 채취하도록 승인해준 것에 대해 감사함을 표했고, 분위기는 상승고도를 탔다. 덕분에 훈련상황실에서의 현황보고는 부드럽게 마무리가 되었다. 그 두사람은 훈련상황실에서 나와 훈련장 텐트 현장을 함께 순시했다. 모두 시간에 쫒기는 중요 직책이었으나 그들은 할 이야기가 남았는지 현장 순시를 함께하다가 대대장 텐트로 다시 들어가 못다한 환담을 지속했다. 다음날 사단 상황실의 아침 상황보고에서 사단장은 청원대대의 훈련 현장지도시 중대장과 병 1인 다역화와 간부화 훈련 백브리핑에 대한 칭찬의 훈시를 쏟아내며 타부대도 참고해서 훈련에 임하라고 강조했다. 또한 발표한 병사는 포상휴가조치하라고 지시했다는 소문도 들렸고, 얼마뒤에 현장지도 결과가 공문으로 각 부대로 하달되어 대대원들의 사기가 최고로 고조되는 영광도 얻었다. 사단장의 동계 혹한기 훈련 현장지도 결과가 각 부대로 하달되자 연대 및 사단 실무자들과 타 부대장들은 “도대체 어떻게 했길래 사단이 들썩들썩하냐?”고 의문의 전화를 필자에게 계속 날려보냈다. 육본으로 전출간 전임 사단 공병대장과 수방사에서 함께 근무했던 장연석(육사35기) 선배도 소식을 들었다며 축하 전화를 주었다. 과거 최전방 대성산 기슭의 중대장 시절에는 혹한과 폭설 속에서 얼음집을 지어 숙영하며 적응훈련을 했었지만, 향토사단 후방지역인 충청북도는 전방만큼 기온이 떨어지지 않아 제대로 혹한기 훈련을 못했다는 아쉬움이 있었다. 하지만 사단장의 극찬으로 이번 혹한기 훈련도 유종의 미를 거두었다.(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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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철의 CrisisM] 11월의 6‧25남침전쟁영웅, 인천상륙작전의 영웅 ‘발도메로 로페즈 미국 해병 중위’ 선정
[시큐리티팩트 =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국가보훈부는 1950년 9월15일 인천상륙작전에서 고(故) 강재구 소령처럼 살신성인(殺身成仁)의 자세로 자신의 목숨을 던져 전우들을 구한 발도메로 로페즈(Baldomero Lopez) 미국 해병 중위를 ‘2024년 11월의 6‧25전쟁영웅’으로 선정했다. 1925년 8월23일, 미국 플로리다주 탬파에서 태어난 로페즈는 1947년 6월6일 해군사관학교를 졸업한 뒤 해병대 소위로 임관하였다. 1950년 6월 중위로 진급한 그는 6‧25전쟁이 발발하자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파병에 지원했다. 한국에 도착한 로페즈는 미 제1해병사단 5해병연대 1대대 A중대 소대장으로 복무하였으며, 1950년 9월15일 인천상륙작전에 투입되었다. 소대원들과 함께 해안에 상륙한 로페즈 중위는 선두에서 사다리에 올라 해안 방벽을 넘은 후, 전방의 북한군 벙커를 향해 수류탄을 던지던 중 적의 기관총 사격으로 우측 어깨와 가슴에 총탄을 맞고 쓰러지면서 수류탄을 떨어뜨렸다. 바닥을 기어 수류탄을 다시 집어 던지려고 했지만, 부상으로 멀리 던질 수가 없었던 로페즈 중위는 부하들의 생명을 위험에 빠뜨리는 것 대신 자신을 희생하기로 선택했고, 결국 수류탄을 끌어안으며 장렬하게 전사했다. 이러한 공로로 미국 정부는 1951년 8월 30일 미합중국 명예훈장(Medal of Honor)을, 대한민국 정부는 2023년 4월25일 대한민국 최고 무공훈장인 태극무공훈장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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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461] 파란만장(波瀾萬丈)했던 '강릉 무장공비 침투사건'②
-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북한인민무력부 정찰국직속 정찰조 3명과 정찰국 해상처의 안내조 및 전투공작원(무장공비), 그리고 잠수함 승조원 등 총 26명으로 상어급 잠수함으로 침투하였다. 강릉시 강동면 안인진리 해상으로 침투 무장공비는 총 26명이라는 설과 25명이라는 설이 분분했으나 나중에 북한에서 발표한 선전물에 전사자로 분류된 것이 확인되어 26명이 맞는 것으로 추측된다. 이들 중 1명(이광수)이 생포됐다. 이광수는 잠수함 탑승자가 26명이었으며 그들 중 김영일이라는 30세 상위가 있었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다른 25명과 달리 김영일의 유류품은 발견되지 않았고 그의 도주 흔적도 찾을 수 없었다. 귀순한 이광수와 발견되지 않은 김영일을 제외한 24명의 시신은 12월30일 북측으로 송환되었다. 그렇게 긴 시간이 흐른 뒤, 북한에서 '강릉의 자폭영웅들'이라며 이들을 영웅화한 선전 기념물을 공개했는데 이 사망자 명단에 김영일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 확인되었다. 즉 북한 당국에서는 전사자로 선전한 김영일을 제외한 대부분은 조국해방전쟁참전렬사묘에 안장되었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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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461] 파란만장(波瀾萬丈)했던 '강릉 무장공비 침투사건'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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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460] 파란만장(波瀾萬丈)했던 '강릉 무장공비 침투사건'①
-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대대가 사단의 전반기 최우수부대로 선정되고 군사령관이 지시한 예비군 훈련장 시범식 견학행사를 마무리하자 필자는 초임장교로 최초 부임할 때부터 그동안 잘 가르쳐주신 당시 지휘관 선배들께 일일이 전화를 걸어 모두가 잘 이끌어준 덕택이라고 감사올리며 함께 보람을 느꼈다. 하지만 사단에서는 상급부대 지침에 의해 부여된 민관군 통합 ‘화생방 방호태세 훈련 시범’을 사단의 전반기 최우수부인 대대가 맡아서 시행하라는 임무가 하달됐다. 계속된 추가 업무로 또 고생하는 대대원들에게 미안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민관군 통합 시범이라 바로 청원군수에게 찾아가 도움을 청했는데, 대대에서 보인 예비군 훈련장 시범식 견학행사에서 많은 장성급 지휘관을 만나며 보람을 느꼈었는지 흔쾌히 함께하겠다며 적극적으로 도와주었다. 또 대성공이었다. 민관군 통합 ‘화생방 방호태세 훈련 시범’을 주관한 사단장과 참석한 연대장, 군단 감찰참모 및 청원군수를 비롯한 기관장 모두들 이구동성으로 흐뭇한 격려와 칭찬을 보내며 잘마무리가 되었다. 연이은 검열과 시범으로 파란만장(波瀾萬丈)했던 8월이 가고 달이 바뀐 1996년 9월18일 새벽에 강릉시 강동면 안인진리 해상에서 당시 68사단 초병과 택시기사 이진규가 50m 해상에서 좌초된 북한 잠수함을 발견하면서 대대적인 소탕작전이 시작된 강릉지역 무장공비 침투사건이 발생했다. 강원도 1군 지역은 무장공비에 대한 대대적인 소탕작전에 돌입하였고, 그날 오후에 북한의 지령에 따라 잠수함 좌초책임을 물어 사살한 것으로 추정되는 승조원 11명의 시체를 발견하였으며, 충북지역인 사단도 경계태세를 강화하였다. 후 11월5일 인제군 연화동에서 특전사 장선용 상사가 마지막으로 정찰조 2명을 사살하여 도주한 잔당들 13명을 교전 끝에 소탕하며 작전을 최종 종결할 때까지 총 49일간 이어졌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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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460] 파란만장(波瀾萬丈)했던 '강릉 무장공비 침투사건'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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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459] 19개의 별이 대대를 방문하게 만든 예비군 훈련장④
-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예비군 훈련장 시범식 견학을 모두 마치자 첫날 행사를 주관한 군단장도 필자의 어깨를 두드리며 수고했다고 격려해주었다. 그때까지 기다리며 함께 했던 방위협의회 의장 변종석 청원군수는 군단장에게 “우리 청원군에 이렇게 많은 장군님들이 오신 것은 처음이며 영광입니다”라고 감사를 표하면서 청원군 마크가 새겨진 선물용 축구공을 참석한 장군 모두에게 전달하며 민관군 통합작전에 기여하자고 다짐하는 보람찬 행사가 됐다. 큰 성과였다. 대대를 방문한 2군 예하 사단장, 연대장, 대대장 및 관련 참모들은 찬사와 함께 질투의 따가운 시선이 필자에게 쇄도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다음날에도 2차 시범식 견학 행사를 하면서 전투지휘검열에 따른 군사령관의 지시사항은 완수했으나 대대원들의 노고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시범식 견학을 완료한 다음달인 9월에 육군본부의 예비군 훈련 불시 점검이 있었는데, 그 결과로 대대가 교육훈련의 획기적인 ‘질’적 수준 향상시킨 것으로 평가되어 육군 교육보 8호(‘96.10.10)에 게재되었으며 필자는 교육사령관 표창을 받았다. 이런 영광을 얻고 보람도 느끼며 사기도 높혀졌지만 반면에 예비군 훈련장 견학 범위가 전군으로 확대되어 1,3군, 수방사, 해병대까지의 예비군 관련 참모들도 대대를 1년 내내 찾아와 견학하며 자문 및 자료을 요구하는 덕택에 대대원들의 고생이 더 늘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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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459] 19개의 별이 대대를 방문하게 만든 예비군 훈련장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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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철의 CrisisM] 박두원 공군 대위, 8월의 6·25남침전쟁 영웅으로 선정
-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국가보훈부는 6‧25남침전쟁 당시 재일학도의용군 출신으로 자원입대하여 1952년 2월부터 8월까지 황해북도 송림시에 위치한 송림제철소 폭격작전을 비롯해 총 89회에 달하는 전투 출격으로 수많은 전공을 세운 박두원 대한민국 공군 대위(당시 중위)를 ‘2024년 8월의 6‧25남침전쟁영웅’으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1926년 7월5일 경북 경주에서 출생한 박두원 대위는 1934년 가족과 함께 일본으로 건너갔다. 해방 조국에서 6‧25남침전쟁이 발발했다는 소식을 접한 그는 자원입대하여 재일학도의용군 제5진의 일원으로 1950년 10월18일 부산에 도착했고, 국군 제2훈련소에서 기초 훈련을 받고 헌병대에 배속됐다. 하지만 공군에서 조종사가 부족하다는 소식을 듣고 박두원 대위는 대구의 공군본부를 직접 찾아가 입대를 청원했다. 1951년 4월1일 육군에서 공군으로 전군하여 조종하사관(일등중사) 신분으로 기초 조종 교육을 받았고, 그해 10월 F-51D 전투기로의 기종 전환 교육을 받았다. 이듬해 1952년 2월1일에 준위로 임관함과 동시에 제1전투비행단 제10전투비행전대 강릉전진부대에 배속되어 2월3일 첫 전투 출격에 나섰으며 같은 해 3월 공군소위로 임관했다. 당시 우리 공군의 강릉전진부대는 전선의 소강상태를 이용하여 전력을 비축하려는 공산군을 무력화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박두원 대위는 F-51D 전투기로 출격하여 적 후방 폭격 임무에 나섰다. 특히 1952년 3월~4월 진행된 송림제철소 폭격작전은 우리 공군이 처음으로 수행한 적 산업시설에 대한 전략 폭격이었다. 그는 80회가 넘는 출격을 기록하며 강릉전진부대의 가장 왕성한 전투기 조종사 중 한 명으로 거듭났다. 1952년 8월2일, 89회째 출격한 박두원 대위는 동부전선의 공산군 주요 보급집결지였던 강원도 간성 일대의 보급품 집적소를 목표로 작전에 돌입하였다. 이날 편대는 전봉희 소령을 편대장으로 한 F-51D 전투기 4대로 편성되었다. 강릉전진기지에서 이륙한 박두원 대위는 강원도 경포대, 주문진을 지나 속초 상공을 지나던 중 갑자기 기체가 폭발하여 낙하산 탈출 후 동해바다에 내렸고 주변의 민간 어선들에 의해 구조되었으나 안타깝게도 이미 전사한 상태였다. 6‧25남침전쟁에 자원한 ‘재일학도의용군’ 중 유일한 공군 조종사였던 박두원 대위는 F-51D 전투기 조종사로서 전사한 17명 가운데 가장 많은 전투 출격 기록을 보유한 대한민국 창공의 영웅이었다. 정부는 수많은 전투에서 공적을 세운 그에게 대위로의 1계급 특진과 을지무공훈장(1952년)을 수여하였으며, 그의 유해는 1958년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되었다. 2014년에는 일본 도쿄 미나토구에 위치한 재일본대한민국민단본부에 ‘재일학도의용군 위령충혼비’가 건립되어 박두원 공군 대위를 포함한 135명의 전사자들을 추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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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철의 CrisisM] 박두원 공군 대위, 8월의 6·25남침전쟁 영웅으로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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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458] 19개의 별이 대대를 방문하게 만든 예비군 훈련장③
-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드디어 8월7일 오후에 첫 시범식 견학이 시작됐다. 9군단장 안성용 중장(육사23기)을 위시해 각 사단장 등 장군 9명(별 19개)을 포함한 100여명이 동시에 대대 예비군 훈련장을 견학 방문했다. 2군사령관 조성태 대장의 지시에 의해 예하 장군들과 연대장, 대대장 및 관련 참모들이 대거 청주시 강서동의 협소한 대대본부에 들이닥치자, 예비군 중대장을 포함한 대대원들은 긴장을 하면서도 영광스런 행사에 눈빛을 반짝이며 손님을 맞이했다. 시범식 견학은 정성어린 훈련 준비로 강도 높은 예비군 교육훈련을 실시하여 “정성어린 준비가 훈련을 몇 배 힘들게 했다”는 예비군들의 반응이 나오도록하라는 조성태 군사령관의 지시사항과 시범 배경을 시작으로 과제별 공통 준비사항과 추가 준비사항을 설명하고 실제 훈련장을 확인하는 순서로 진행됐다. 이때 무료한 대기와 시간 낭비를 방지하기 위한 순환식 교장 배치 및 조편성과 지역 특성에 부합된 대공사격술 교장과 동굴 및 폐광산 정찰 과제 개발은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또한 순환식 교장의 이동로에 보도블럭 및 석분깔기, 계단에 안전로프 설치 그리고 애향심 고취와 흥미유발 위한 이동로 상에 섬뛰기, 샌드백, 타잔 그네타기 및 간판들은 삼림욕장같이 소나무 숲이 우거진 예비군 훈련장의 환경과 조화를 이루며 새로운 시각과 관심을 유도했다. 또한 원거리이며 다수인 예하 예비군 부대에 신속 정확한 상황전파와 의사소통을 위해 152전화사서함 시스템을 활용하고 있음을 추가로 소개했고, 지역 군수와 기관장 및 방위협의회 임원들이 “지극한 정성으로 준비하여 향토애 고취 내용에 고마우며 앞으로 적극 지원하겠다”는 반응을 설명할 때에는 박수도 터져 나왔다.(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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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458] 19개의 별이 대대를 방문하게 만든 예비군 훈련장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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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457] 19개의 별이 대대를 방문하게 만든 예비군 훈련장②
-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거의 1년전, 사단장실에서의 전입 신고시에 사단장은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절뚝거리며 지팡이를 짚고 있는 필자를 향해 “이렇게 불편한 몸으로 현장에서 뛰어야 할 대대장직을 수행할 수 있겠나?”라고 질문하며 불안한 의문을 가졌었다. ([김희철의 직업군인이야기(205)] ‘전입신고 에피소드는 위기를 호기로 전환시켜’ 참조) 하지만 절뚝거리며 지팡이를 짚고 DJ대대장이 취임 6개월만에 사단 참모들과 예하 모든 부대장이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사단의 종합전투력 측정과 작계임무수행태세 최우수부대로 평가를 받았다. 전입신고시에 필자에 대한 사단장의 우려를 말끔하게 씻겨주는 쾌거였다. 그리고 사단장은 그동안의 노고를 치하하기 위해 전반기 지휘관 회의를 끝내고 바로 이어 사단장 공관에서의 격려 만찬을 열었다. 모든 지휘관 참모들이 참석한 만찬자리에서 사단장은 총기번호 오류 발견, 예비군 훈련장의 획기적인 개선, 전화사서함 제도 시행, 장병 신상관리 전산화, 전투지휘검열 기여 등의 예를 들며 필자를 극찬을 해주어 고생했던 대대원들은 물론 신뢰하고 아껴준 사단장과 참모들에게 어떻게 고마움을 표해야 할지 모를 정도였다. 삼국지의 제갈량이 ‘일을 꾸미는 것은 사람이지만 그 일이 이루어지는 것은 하늘에 달려있다’는 의미로 ‘모사재인 성사재천(謀事在人 成事在天)’라고 하늘을 우러러 말했던 것처럼 필자는 전반기 좋은 성과를 신(神)께도 감사드렸다. 그렇지만 좋은 성과와 극찬의 대가도 있었다. 전투지휘검열 결과를 보고 받은 군사령관의 엄명에 의해 8월 초에 2군 예하 예비군 업무 관련 지휘관과 참모들은 모두 필자의 대대 예비군 훈련장을 견학하게 됐다. 그동안에 고생했던 대대원들이 바쁜 일정을 마치고 모처럼의 휴식을 가질 시간도 없이 군사령관 지시 여파로 대대를 방문할 손님들을 맞이하기 위해 1주일 동안 새벽부터 북새통을 이루며 삼림욕장같이 소나무 숲이 우거진 예비군 훈련장을 더 보완 정비했고 위의 사진에서와 같이 설명용 유인물도 추가로 만들어야 했다.(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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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457] 19개의 별이 대대를 방문하게 만든 예비군 훈련장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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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456] 19개의 별이 대대를 방문하게 만든 예비군 훈련장①
-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그해 2월1일 절뚝거리며 지팡이를 짚고 DJ대대장으로 취임해 군사령부 전투지휘검열 수검까지 6개월이 지나가는 동안 참으로 바쁘고도 많은 일들이 있었다.([김희철의 직업군인이야기(212)] ‘절름발이 DJ 대대장의 혹한속 취임식과 천군만마’ 참조) 사단 전투지휘훈련(BCTP) 참가, 대통령 훈령까지 변경시킨 ‘공군기지방어 전술토의’, ‘점입가경이 된 예비군 훈련장 사열’, 예비군 총기번호 오류 발견 보고로 상급부대를 뒤집어 놓은 ‘초도 업무보고’와 2주에 걸친 ‘동원훈련’ 그리고 대대를 더 정신없게 만든 ‘전투지휘검열 수검’ 등 대대장 취임 후 정말 정신없이 바쁘게 달려온 6개월이었다. 7월 초순 전투지휘검열 수검이 끝나자 바로 사단장이 주관한 전반기 지휘관 회의가 개최됐다. 사단 참모들에 의해 전반기 업무를 결산하면서 분야별로 각 부대 평가 결과와 후반기 업무추진 방향도 발표됐고 선발된 전반기 우수대대 시상식이 있었다. 마침 전투지휘검열 직전에 인접부대에서 대형 교통사고가 발생하자 사단 참모부에서 침체된 분위기를 전환시키기 위해 사단장에게 갑자기 필자의 대대 순시를 건의했었다. 결과적으로 “사단장이 청원대대를 방문해 보고받고 완전하게 좋은 기분으로 전환되었다”는 소문이 퍼졌다는 전언도 들려와 대대로서는 평가에 유리한 조건이었다. 왜냐면 손자병법 모공편에 나오는 '윗사람과 아랫사람이 같은 걸 바란다면 이긴다'는 ‘상하동욕자승(上下同欲者勝)’처럼 사단장도 각 부대를 나름대로 평가하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사단참모들은 객관적인 데이터를 기초로 지휘관의 심중을 고려해서 분야별 평가 결과를 발표하기 때문이었다. 교통사고 재활치료의 긴 공백을 메꾸며 빨리 뒤좇아가 위기를 극복하겠다는 필자의 절실함도 있었지만, 대대장 취임 후 지난 6개월 동안 유난히도 고생했던 대대원들의 노고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전반기 대대별 평가에서 좋은 성적을 얻어야만 했다. 역시 그 기대는 어긋나지 않았고 ‘전반기 종합전투력 측정’과 ‘작계임무수행태세’ 최우수부대로 선정되어 2개의 표창장을 받고 대대로 돌아왔다. 이를 반기던 고(故) 이완목 부대대장을 포함한 전 대대원들은 그동안 고생의 성과를 만끽하는 보람을 느끼며 자긍심을 갖게됐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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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456] 19개의 별이 대대를 방문하게 만든 예비군 훈련장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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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철의 CrisisM] ‘6·25남침전쟁 유엔군 참전의 날’ 기념식 개최(하)
-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이날 기념식에선 6·25남침전쟁에 참전하여 혁혁한 공을 세운 유엔참전용사를 비롯해 참전용사 명예 선양과 동맹 강화에 이바지한 8명에게 정부포상이 수여했다. 6·25남침전쟁 당시 전투기 조종사로 참전해 적 진지 한가운데로 직접 비행기를 급강하여 목숨을 바쳐 적의 포병 진지를 파괴한 고 찰스 J. 로링 주니어 미국 공군 소령(참전당시 대위)에게 태극무공훈장을, 6·25전쟁에서 다리와 팔 일부를 잃었음에도 수술 후 복귀하여 현역으로 남아 NATO와 미국 육군본부에서 복무하고, 2022년 미국 워싱턴 디시(D.C.)에 6·25남침전쟁 전사자 명단을 새긴 ‘추모의 벽’ 건립 운동과 건설법안의 미 의회 통과 등을 위해 힘쓴 고 윌리엄 어니스트 웨버 육군 대령(참전당시 대위)에게 을지무공훈장을 각각 추서했다. 또한, 윌리엄 로버트 블랙 캐나다 한국전쟁참전용사협회 오타와 지회장은 21명의 오타와 출신 전사자 이름이 새겨진 추모명비 건립을 위해 대한민국 정부에 3만 불을 모아 기부하는 등 최근 40년 가까이 캐나다 정계와 지역사회에 한국전쟁을 알리면서 참전용사들의 명예와 복지 향상을 위해 노력한 공로로 국민포장을 수여받았다 6·25남침전쟁에는 미국, 영국, 호주, 네덜란드, 캐나다, 프랑스, 뉴질랜드, 필리핀, 튀르키예, 태국, 남아프리카공화국, 그리스, 벨기에, 룩셈부르크, 에티오피아, 콜롬비아 등 16개국이 전투병을 파견했고 스웨덴, 인도, 덴마크, 노르웨이, 이탈리아, 독일 등 6개국은 의료 지원을 했다. 이는 유엔이 세계평화를 위해 유엔군을 창설한 이후 최초의 파병이었으며, 22개국의 연인원 195만7천733명이 유엔군으로 참전해 3만7천902명이 전사·사망하고 10만3천460명이 다쳤으며 3천950명이 실종되고 5천817명이 포로가 됐다. 미국이 가장 많은 178만9천명을 파병했는데 전사·사망 3만3천686명(현역 대통령 및 장성 등 고위직의 아들 142명이 참전해 전사상을 당한 35명을 포함), 부상 9만2천134명을 기록했다. 끝으로, 행사에 참석한 16명의 유엔참전용사 모두에게 대한민국 정부와 국민의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담아 ‘청려장(명아주로 만든 가볍고(250~300g) 단단한 지팡이로 건강과 장수를 상징하며, 통일신라에서 조선시대까지 이어진 어르신께 공경하는 의미)’을 전달하며 행사가 마무리됐다. 1953년 7월27일은 6·25남침전쟁 정전협정이 맺어진 날이기도 하며, 정부는 이 날을 ‘유엔군 참전의 날’로 정해 유엔참전국과 유엔참전용사들의 희생과 공헌을 기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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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철의 CrisisM] ‘6·25남침전쟁 유엔군 참전의 날’ 기념식 개최(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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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455] 대대를 더 정신없게 만든 전투지휘검열⑤
-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필자의 예상은 적중했다. 검열관들은 봉쇄선에 배치된 각개병사들의 신호줄, 무전기, 야전삽 등의 장비와 진지 구축 상태를 확인했고 대대원들은 특별한 지적을 받지 않았다. 시간이 경과해 야간으로 접어들며 석식 추진시에 노출이 않되도록 전장군기 확립에 중점을 두고 직접 확인하였다. 봉쇄선에서 밤을 꼬박 지새우고 여명이 되자 사단 기동대대의 수색조가 대항군을 생포했다는 전갈을 받으며 전투지휘검열의 마지막 단계인 후방지역 작전훈련은 종료되었다. 부대원들이 안전하게 복귀하고 다음날 사단 사령부에서 강평이 있었는데 역시 동원전문가 이상신 장군이 지휘하는 부대답게 그동안 창의적으로 정성을 담아 준비한 충용사단의 예비군 훈련장은 극찬을 받으며 전체적으로 우수한 평가를 받아 잘 마무리가 되었다. 그렇지만 성공적인 강평으로 전투지휘검열이 종료된 것이 끝이 아니었다. 오히려 대대는 전투지휘검열이 끝난 후에 더 바빠지게 됐다. 사단 동원참모인 한동주(삼사14기) 중령의 주효한 판단처럼 전투지휘검열결과 보고를 받은 2군사령관 조성태 대장이 전부대에 지시하여 예비군 업무 관련 지휘관과 참모들은 모두 필자의 대대 예비군 훈련장을 견학하고 즉각 보강하라는 지시를 하달해 대대는 많은 손님을 맞이할 업무가 추가되었기 때문이었다. 대대를 더욱 바쁘게 만들었던 군사령관의 엄명이 하달되자 사단 정훈 공보참모는 필자에게 “어떻게 하면 유명해질 수 있냐?”는 농담까지 걸어왔지만 대대원들에게도 보람찬 일이었다. 한편으로는 필자가 임관하여 최초 배치되었던 승리부대의 초임장교 시절부터 같은 부대에 근무하며 인연을 맺었고, 그동안의 군생활 동안 멘토역할을 지속적으로 해주며 이번 전투지휘검열에서도 이렇게 부대를 빛낼 기회를 만들어준 사단동원참모 한동주 선배가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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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455] 대대를 더 정신없게 만든 전투지휘검열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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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454] 대대를 더 정신없게 만든 전투지휘검열④
-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검열관의 거동수상자 발견 메시지에 따른 주민 신고에 의해 정보분석조와 5분대기조가 출동하여 무장공비의 출현 상황이 조성되어 연대에 비상이 발령됐다. 물론 검열관들은 출동한 정보분석조와 5분대기조의 임무 숙지와 휴대장비의 상태도 점검했다. 발견 지역에서 무장공비역의 대항군들은 총기도발 상황 조성 후 도주하자 추적조가 뒤쫒게 되었고, 이에 사단에서는 전부대로 비상이 확대되었다. 무장공비 역할을 한 대항군들이 은거한 지역에 1, 2, 3봉쇄선과 차단선이 형성되어 대대의 책임지역을 할당받았다. 부여된 임무에 따라 대대의 전병력이 완전무장으로 차량에 탑승하여 작전지역에 전개하며 전투지휘검열의 마지막 단계인 후방지역작전 훈련에 돌입했다. 무장공비역의 대항군을 수색조가 생포해야 훈련이 조기에 끝나지만, 필자는 특공연대 요원인 대항군들이 쉽게 노출되지 않을 것이라 판단하여 투입하는 각개 병사들이 장기 작전 즉 야간 봉쇄선 점령 및 매복으로 전환시에 지참할 장비를 꼼꼼하게 확인한 후에 작전 훈련 평가에 임했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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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454] 대대를 더 정신없게 만든 전투지휘검열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