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시대Home >  소통시대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501] 누가 뭐래도 우리는 소중한 친구들②
[시큐리티팩트=김희철 컬럼니스트] 필자가 대대장 취임전에 대형 교통사고로 병상에 누워 있을 때에도 동기생 중에 3, 4학년을 함께한 졸업중대 동기들이 더 많은 위문과 격려를 보내주었고, 군생활을 마치고 전역한 지금도 가끔씩 부부동반으로 모여 우정을 나누고 있다. 대대장 근무를 하던 당시에 타 동기들은 대부분 모두가 먼저 대대장을 마치고 참모 보직으로 옮겼지만, 필자는 대대장반 교육과정에서의 교통사고 때문에 후유증 재활치료로 2년 가까운 시간을 보내고 뒤늦게 대대장으로 취임했다. 그런데 먼저 대대장을 마치고 여유를 갖게 된 졸업중대 동기들에게서 그들보다 2년 늦게 대대장직을 수행하는 필자의 부대를 부부동반으로 격려 방문하겠다는 연락이 왔다. 사관생도 시절에 3, 4학년을 함께한 졸업중대 동기들의 부대 방문은 ‘유붕이자원방래(有朋而自遠方來), 불역락호(不亦樂乎)’의 깊이 감춰진 의미인 “술과 밥을 먹는 친구가 아니라, 내가 곤궁한 처지에 있을 때 함께 해줄 수 있는 동지가 있다면 얼마나 행복한 일이겠는가?”라는 공자의 논어에 기록된 동지형(同志型) 인간상이 현실로 구현되는 순간이었다. (다음편 계속)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499] 지휘관은 이율배반(二律背反)적인 직책(하)
[시큐리티팩트=김희철 칼럼니스트] 조영호 사단장의 사고예방 최우선 부대운영 지침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병사 개개인의 신상파악을 보다 정확하게 파악하여 긴밀한 소통을 통해 사고예방에 대처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우선 대대의 60여명밖에 안되는 현역 전병력의 인적사항을 병원관리(兵員管理)용으로 전산화시켰다. 이는 탁월했던 후배 고(故) 김상철 대위(육사38기)의 포대에서 수년전에 활용했었지만, 당시에는 타부대는 아직 적용을 못하고 있던 상태로 사단에서는 필자가 최초로 시행했었다. 나중에는 일반화된 명암관리 프로그램을 활용하여 결손가정 등 필요한 요소을 검색하면 전 대대원중에 해당자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발전시켰다. 그러나 병원관리 데이터를 입력하려면 수시로 대대원들과 면담이나 소원수리함(대대장만 개봉 가능) 등을 통해 소통할 필요가 있었다. 하루는 화장실에 설치된 소원수리함에 한 병사가 면담을 요청하는 문건을 확인했다. 대대장실에서 아담한 키에 다소곳이 마주 앉아서 차를 한잔하던 00일병은 주저하다가 말문을 열였다. “대대장님, 이것을 차마 중대장에게도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라고 시작하자 흠칫 상관의 잘못을 고자질하는 애로사항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귀를 쫑긋 세웠다. 교육대학을 다니다가 입대한 그는 제대후에 초등학교에서 교편을 잡을 예정이었다. 그런데 입대 후에 생활관에서 단체 생활을 하면서 취침시에 모포가 쓸려내려간 동료의 허벅지를 볼 때마다 흥분되고 몸에 이상한 느낌이 든다며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다는 하소연이었다. 그 말을 들은 필자는 난감했다. 하지만 00일병의 입장이 되어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 대대장이 이 사실을 알았으니 그런 이상 징후 치료가 가능한지를 우선 알아보고 조치하겠다며 안심하라고 달래주었다. 그를 생활관으로 돌려보내며 걱정이 됐으나 연대 인사과장에게 먼저 상의를 했다. 다음날 연대인사과 선임하사가 대대를 방문해 00일병을 면담하고 병원 진료를 받게 하겠다며 데리고 갔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병원 치료차 대대를 떠난 병사는 의사 진료 후에 ‘성도착증세’로 확진이 됐고, 바로 전역 조치가 되었다. 한달 뒤에 그의 편지를 받았다. 전역해서 집에서 조용히 보내고 있다는 소식이었고, 말미에 병명 때문에 초등학교에서 교편을 잡을 수 없게 되었다는 원망도 적혀있었다. 지휘관은 휘하에 부하들을 지휘통솔하는 직책이다. 질식사 위험의 부하도 살리는 보람도 있었으나, 후자같은 경우에는 많은 타부하들을 위해 지휘관을 믿고 솔직하게 애로사항을 건의했던 부하를 아쉽게 전역시켜야 하는 아픔을 겪게 만드는 이율배반(二律背反)적인 괴로움을 겪게 만들기도 했다. 어쩔수 없이 대를 위해 소를 희생시키게 만들었지만 지금도 희생양이 된 00일병에게 미안함이 가슴 속에 깊이 자리잡고 있다.
-
[김희철의 CrisisM] 인구절벽 시대에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땅에 태어났다(상)
[시큐리티팩트=김희철 칼럼니스트] 최근 배우 정우성과 모델 문가비가 혼외자를 출산한 것이 세간에 관심을 끌고 있다. 통계청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10년 전 출생아 43만7000명의 전반 수준인 약 23만명이 2023년에 태어났고, 이중의 4.7%인 1만900명이 혼인 외 관계에서 태어난 신생아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혼인 외 출생아는 2013년 9300명에서 2020년 6900명까지 줄었다가 2021년 7700명, 2022년 9800명으로 3년 연속 증가했다. 다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평균 혼외 출생율인 41.5%에 비하면 낮은 수준이다. 게다가 계속 이어지는 저출산에 따른 인구절벽의 위기가 국가의 존망을 위협하고 있다. 한편 110년만에 최대로 많이 내린 첫눈으로 세상이 온통 하얗게 변했던 그날 저녁에 어릴적 친구와 소주한잔을 들이키며 건배를 하다가 우리가 철없는 강아지처럼 첫눈을 즐기는 삶을 아직도 영위함에 감사드리며 외친 말이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였다. 하지만 필자를 포함한 60~90세대들이 ‘~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는 암송문을 56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히 떠오르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혼인 외 관계에서 태어난 신생아의 역대 최대를 기록한 2023년의 1만900명를 포함해서 이 땅에 태어난 모든 사람들이 1968년 12월5일 국민교육헌장 선포의 가치를 반드시 기억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다음편 계속>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498] 지휘관은 이율배반(二律背反)적인 직책(중)
[시큐리티팩트=김희철 칼럼니스트] 부대 복귀를 고려해 우선 원거리부터 이동하여 야간순찰을 시작했다. 미원면과 낭성면을 지나 가덕면에 위치한 지파출소 예비군무기고를 향해 가고 있었는데 그날따라 짚차 출입문 틈으로 혹서기 삭풍을 예는 바람이 매섭게 파고들어 발밑의 히타의 온기도 느끼지 못할 정도로 추웠다. 저멀리 가덕면 지팔출소와 예비군 무기고가 시야에 들어오며 경계초소가 보였는데 그 안에 초병이 없었다. 일순간 날이 추워서 경계근무를 안하고 임시 생활관에 들어가 쉬고 있다는 생각이 스치며 경계근무에 소홀한 초병을 어떻게 혼을 내줘야 할지를 생각하며 은근히 부아가 치밀었다. 차를 세우고 경계초소로 들어갔다. 헌데 초병인 상근예비역은 초소 밖을 보며 경계근무를 하는 것이 아니라 초소안에 총을 세워놓고 쪼그리고 앉아서 깡통에 피워놓은 장작불을 쬐고있었다. 기습적인 대대장의 방문에 놀란 초병은 옆에 소총을 집어들면서 급하게 일어서서 ‘필...!’하고 경례를 했다. 경례구호도 제대로 하지못한 초병은 백지장처럼 얼굴이 하얗게 변했고, 그대로 앞으로 쓰러지며 필자의 품에서 잠시 기절을 했다. 필자는 초병을 안은 채 초소 밖으로 나와 찬바람을 맞히며 등을 두드렸다. 잠시후 표정이 정상적으로 돌아온 초병은 말을 할려고 했는데 그때까지도 제대로 정신이 돌아오지 못했는지 더듬거리고 있었다. 초병은 혹한을 견디기 위해 깡통에 피워놓은 장작불에 앞에 쪼그리고 앉아 장시간을 보냈는지 일산화탄소를 흡입하여 거의 중독되기 직전의 상황이었기 때문에 필자의 품으로 쓰러졌고, 간신히 정신을 차린 그는 더듬거리며 죄송하다는 말만 계속했다. 일산화탄소에 중독되어 비틀거리는 초병을 생활관 대기실로 옮기고 그곳에서 대기하던 다른 상근예비역으로 초병근무를 교대시켰다. 비록 후방지역 향토사단이지만 대대장으로 근무하는 필자도 당연히 무기고 경계초소 야간순찰을 돌아야 한다는 생각해 지속 감행했던 결과로 질식사 직전의 부하를 살렸다는 부듯한 보람이 엄동설한 속에서 가슴을 따뜻하게 만드는 순간이었다.<다음편 계속>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495] 혹한기훈련과 연대전투단훈련으로 호국충절의 고장임을 증명④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고향이 같은 충청북도인 사단장과 군수는 보자마자 너무도 반갑게 인사를 했다. 충북 괴산군 청안면 출신인 사단장은 충북 청원군 북이면 출신의 군수와 이미 알고 지내던 사이였다. 사단장은 청원군수를 만나자마자 군의회 의장과 함께 훈련장을 방문해서 비행장 방어시에 야간 침투하는 적들을 격멸하기 위해 필요한 탐조등 35셋트(630만원 상당)을 구매하여 기부해준 것과 지난번 낭성면 예비군 무기고 신축 예산(약 2000만원) 지원, 그리고 사단에서 필요한 모래를 미호천에서 채취하도록 승인해준 것에 대해 감사함을 표했고, 분위기는 상승고도를 탔다. 덕분에 훈련상황실에서의 현황보고는 부드럽게 마무리가 되었다. 그 두사람은 훈련상황실에서 나와 훈련장 텐트 현장을 함께 순시했다. 모두 시간에 쫒기는 중요 직책이었으나 그들은 할 이야기가 남았는지 현장 순시를 함께하다가 대대장 텐트로 다시 들어가 못다한 환담을 지속했다. 다음날 사단 상황실의 아침 상황보고에서 사단장은 청원대대의 훈련 현장지도시 중대장과 병 1인 다역화와 간부화 훈련 백브리핑에 대한 칭찬의 훈시를 쏟아내며 타부대도 참고해서 훈련에 임하라고 강조했다. 또한 발표한 병사는 포상휴가조치하라고 지시했다는 소문도 들렸고, 얼마뒤에 현장지도 결과가 공문으로 각 부대로 하달되어 대대원들의 사기가 최고로 고조되는 영광도 얻었다. 사단장의 동계 혹한기 훈련 현장지도 결과가 각 부대로 하달되자 연대 및 사단 실무자들과 타 부대장들은 “도대체 어떻게 했길래 사단이 들썩들썩하냐?”고 의문의 전화를 필자에게 계속 날려보냈다. 육본으로 전출간 전임 사단 공병대장과 수방사에서 함께 근무했던 장연석(육사35기) 선배도 소식을 들었다며 축하 전화를 주었다. 과거 최전방 대성산 기슭의 중대장 시절에는 혹한과 폭설 속에서 얼음집을 지어 숙영하며 적응훈련을 했었지만, 향토사단 후방지역인 충청북도는 전방만큼 기온이 떨어지지 않아 제대로 혹한기 훈련을 못했다는 아쉬움이 있었다. 하지만 사단장의 극찬으로 이번 혹한기 훈련도 유종의 미를 거두었다.(다음편 계속)
-
[김희철의 CrisisM] 11월의 6‧25남침전쟁영웅, 인천상륙작전의 영웅 ‘발도메로 로페즈 미국 해병 중위’ 선정
[시큐리티팩트 =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국가보훈부는 1950년 9월15일 인천상륙작전에서 고(故) 강재구 소령처럼 살신성인(殺身成仁)의 자세로 자신의 목숨을 던져 전우들을 구한 발도메로 로페즈(Baldomero Lopez) 미국 해병 중위를 ‘2024년 11월의 6‧25전쟁영웅’으로 선정했다. 1925년 8월23일, 미국 플로리다주 탬파에서 태어난 로페즈는 1947년 6월6일 해군사관학교를 졸업한 뒤 해병대 소위로 임관하였다. 1950년 6월 중위로 진급한 그는 6‧25전쟁이 발발하자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파병에 지원했다. 한국에 도착한 로페즈는 미 제1해병사단 5해병연대 1대대 A중대 소대장으로 복무하였으며, 1950년 9월15일 인천상륙작전에 투입되었다. 소대원들과 함께 해안에 상륙한 로페즈 중위는 선두에서 사다리에 올라 해안 방벽을 넘은 후, 전방의 북한군 벙커를 향해 수류탄을 던지던 중 적의 기관총 사격으로 우측 어깨와 가슴에 총탄을 맞고 쓰러지면서 수류탄을 떨어뜨렸다. 바닥을 기어 수류탄을 다시 집어 던지려고 했지만, 부상으로 멀리 던질 수가 없었던 로페즈 중위는 부하들의 생명을 위험에 빠뜨리는 것 대신 자신을 희생하기로 선택했고, 결국 수류탄을 끌어안으며 장렬하게 전사했다. 이러한 공로로 미국 정부는 1951년 8월 30일 미합중국 명예훈장(Medal of Honor)을, 대한민국 정부는 2023년 4월25일 대한민국 최고 무공훈장인 태극무공훈장을 추서했다.
실시간 소통시대 기사
-
-
[유철상의 동서양 전사에서 배우는 교훈] ⑧시저(Julius Caesar)와 나팔소리
- [시큐리티팩트=유철상 칼럼니스트] 시저는 5대1로 열세인 병력을 이끌고 고올(Gaul) 지방으로 반란군 진압 차 출정했다. 어느 날 공격을 위한 배치를 마치고 연락장교를 불러 나팔대와 예비대에 연락용 비둘기를 띄워 즉시 이곳으로 연락하게 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이때 연락장교는 몹시 곤란해 하다가 “각하! 약 5백 명 가량의 예비대는 북방 16km 지점에 있고 나팔대는 정반대 방향인 남방 16km 지점에 있습니다. 그런데 연락을 취할 비둘기는 현재 한 마리밖에 없기 때문에 둘을 동시에 부르시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라고 조용히 자기의 의견을 덧붙였다. 그러자 시저는 주저함이 없이 “아니야, 전투의 승패는 병력 수만으로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병사들의 사기가 문제이다. 나팔대를 불러라. 나팔소리에 병사들의 사기는 충천되고 병사들은 진격하여 승리를 거둘 것이다”라고 대답하였다. 500여 명의 병력보다는 병사들의 사기에 직결되는 나팔소리에 반란군을 완전히 진압하는 데 성공하였다. 군 생활을 할 때 부대훈련 출발 및 복귀 시에 군악대 연주를 들으면 기분이 어떠했습니까? 전장에서 진중방송과 기도비닉과의 관계를 볼 때 어느 쪽이 전투에 유리하다고 생각합니까? ◀유철상 프로필▶ 現시큐리티팩트 칼럼니스트, 군인공제회 대외협력팀장, 육군 군수사령부·훈련소·소말리아·이라크파견부대·9군단 정훈공보참모, 한미연합사령부 공보실장 / 주요저서 : ‘향기로운 삶의 지혜’(2011년, 플래닛 미디어)·
-
- 소통시대
- 군대를 말한다
-
[유철상의 동서양 전사에서 배우는 교훈] ⑧시저(Julius Caesar)와 나팔소리
-
-
[김희철의 Crisis M] AI, 핵개발 등 글로벌 신안보 위협의 대두에 따른 협력적 안보정책 필요
-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지난 14일 조선호텔 2층에서 사단법인 국제안보교류협회가 주관한 ‘신안보위협과 국제평화협력 증진’ 세미나가 열렸다. 특히 이번 '글로벌 신안보 위협'에 대응하여 다자간 안보협력을 도모하고 국제평화협력 증진을 위한 국제학술회의는 한국 뿐 아니라 지구 반대편의 아프리카, 유럽 여러나라의 학자들이 줌(zoom)을 이용한 화상회의로 참석했다. 1993년 북한이 NPT를 탈퇴하면서 시작된 북한의 핵무기 개발과 이를 저지하기 위한 비핵화 노력은 지난 30년 가까이 한반도를 둘러싼 안보위협의 핵심 과제였다. 북한 비핵화를 위한 노력이 가시적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표류하고 있는 동안 우리는 사이버 안보, 드론, AI, 자율살상 무기, 극초음속 무기 등의 증가로 ‘글로벌 신안보 위협’이 대두되고 있는 것을 목격하고 있다. 지난 9월29일 북한이 처음으로 극초음속 미사일 발사에 성공했다고 발표한 것은 한반도에도 이러한 위협이 현실화되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 나토에서 플레트홈 역할을 하여 소통을 통해 신뢰를 쌓아가는 노력이 필요 제1패널에서는 세종연구소 소장 이상현 박사의 사회로 진행했는데 ‘신안보 위협의 대두와 유럽의 협력적 안보정책’을 주제로 프랑스, 스웨덴, 노르웨이, 한국의 전문가들이 열띤 발표와 토의를 했다. 이때 노르웨이 국방대학교의 시거드 히데(Peal Sigurd Hide)박사는 ‘집단적 미래대비 나토와 신흥 군사기술 도전’이라는 주제로 발표를 하여 눈길을 끌었다. 그는 “현재 IT기술의 발달로 빅 데이터, 어플 등을 통해 개인 정보획득이 가능해짐에 따라 자국민 통제에 활용하여 선거에 개입하는 등의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또한 “가짜뉴스의 남발과 이를 적국 등을 포함한 내외부 세력들이 경쟁적으로 활용하면 더 큰 위협이 될 수 있다며 노인들은 알고 있지만 공산 국가의 경험이 없는 젊은이들이 현혹되면 자유민주주의가 흔들리는 등 사회문제가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시거드 히데(Peal Sigurd Hide)박사는 AI와 사이버와 이를 이용한 군사기술 등에 따른 윤리적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도록 나토에서 플레트홈 역할을 하며 소통을 통해 용어와 규범을 제시하여 신뢰를 쌓아가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 소통시대
- CRISIS M
-
[김희철의 Crisis M] AI, 핵개발 등 글로벌 신안보 위협의 대두에 따른 협력적 안보정책 필요
-
-
[김희철의 전쟁사(130)] 김만술 소위의 신화, 베티고지 전투④
-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김만술 소대장이 이끄는 2소대는 18시간 반 동안 도합 증강된 대대 약 800여명의 중공군과 수류탄, 소총사격, 백병전 그리고 4차례의 포병 진내사격을 요청하며, 지옥 같은 사선(死線)에서의 혈전과 격전을 치루어 베티고지를 끝까지 사수하였다. 이렇게 진행된 혈투 속에 뺏고 빼앗기는 접전을 치룬 결과 6중대 2소대의 생존자는 소대장을 포함 단 12명뿐이었다. 7월16일, 날이 밝은 뒤 김만술 소위와 생존한 소대원들은 중앙봉과 동봉 일대에 퍼져 있는 메케한 화약 내음과 피비린내속에서 중공군의 시체와 엉켜 처절한 모습으로 쓰러져 있는 소대원들의 시신을 잡고 몸부림치며 절규했다. 이 때 확인된 중공군의 시체만도 350여구에 달했고 450명을 부상시켰으며 3명을 포로로 생포했다. 반면에 아군은 24명이 전사했다. 김만술 소위와 2소대원은 백병전과 진내사격 등 치열한 혈투속에서 왕성한 책임감과 감투정신으로 베티고지를 몸으로 끝까지 지켜냈다. 1953년 7월 23일에는 베티고지 전투의 유공자 포상행사가 열렸다. 적의 매복사격으로 인한 부상을 무릅쓰고 본부로 뛰어가 전황보고와 통신을 연결한 이강로 하사에게는 충무무공훈장이 수여되었다. 또한 각자의 역할을 다해 전투지휘했던 분대장 김순구 중사와 김흥규 중사는 화랑무공훈장을 받았다. 김만술 소위는 2계급 특진과 함께 한국과 미국의 최고무공훈장인 태극무공훈장 및 십자훈장을 수여 받았다. 이후 베티고지 영웅 김만술 소위는 대위로 전역했고, 그는 전투를 치룬지 28년이란 세월이 흘러간 1991년 60세로 영면하여 사랑하는 부하들의 곁으로 갔다. 그러나 故 김만술 소위의 2소대가 목숨을 바꿔가며 사수했던 베티고지는 1953년 7월 27일 휴전이 되면서 군사분계선(MDL) 북쪽에 포함되었다. 포연속으로 사라져간 전우들의 영령이 알았다면 통탄할 일이었다. 6·25남침전쟁사에서 유례가 없을 정도로 치열한 혈전을 전개했던 ‘36대800의 기적 같은 승리’인 베티고지 전투의 신화는 이렇게도 아쉽게 끝을 맺었다. 하지만 우리 국민들은 이렇게 포연속으로 사라져간 선배전우들이 흘렸던 피의 댓가로 지금의 풍요롭고 자유로운 삶을 누리고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
- 소통시대
- 군대를 말한다
-
[김희철의 전쟁사(130)] 김만술 소위의 신화, 베티고지 전투④
-
-
[유철상의 동서양 전사에서 배우는 교훈] ⑦나폴레옹 장군과 초병
- [시큐리티팩트=유철상 칼럼니스트] “의무를 훌륭하게 이행하지 않고서는 권리를 가질 가치가 없다.” 나폴레옹이 전투 중에 있던 어느 날 밤, 아군의 경계태세를 살피기 위해 적진 가까이에 있는 진지를 순찰하고 있었다. “정지! 누구냐?” 으슥한 곳에서 보초가 명령했다. 나폴레옹은 위엄 있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나다.” 보초가 말했다. “나가 누구냐?” “나폴레옹이다! 너희들이 맡은바 임무를 충실히 하고 있는가 살피기 위해서 나왔다. 어서 나를 통과시켜라!” 그러나 보초는 나폴레옹의 말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움직이면 쏜다!” “보초! 나는 나폴레옹이란 말이다. 어서 총을 내려!” “그런 소리 말고 어서 돌아가십시오! 아무리 지휘관님이라 해도 저의 직속상관의 명령 없이는 통과시킬 수 없습니다.” “정말 안 되겠나?” “예, 절대로 안되겠습니다.” “그렇다면 할 수 없군···.” 결국 나폴레옹은 그냥 자기 막사로 되돌아오고 말았다. 다음날 나폴레옹은 날이 밝기가 무섭게 고집불통이던 그 보초를 불렀다. “부름 받고 왔습니다!” “응, 좋아. 자네 간밤에 나를 통과시켜 주지 않은 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하고 나폴레옹 장군은 물었다. “프랑스를 위해서 싸우는 한 군인으로서 맡은 바 임무를 완수했다고 생각합니다. 간밤에 장군님을 통과시키지 않은 것이 죄라면 그에 대한 벌을 달게 받겠습니다.”라고 그 보초는 대답했다. 그 말을 들은 나폴레옹은 고집스럽고 용기 있는 그 병사의 태도가 마음에 들었다. “하하하··· 좋아! 자네야말로 훌륭한 군인일세. 내 당장 육군소위로 승진시켜주지···” 자신이 옳다고 믿는 바를 끝까지 밀고나가는 용기도 중요하고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이해하고 의무를 다하는 태도도 중요하다. 군인은 다른 어떤 조직과는 달리 명령에 의해서 움직이는 집단이니, 나폴레옹을 대하던 보초병에게 갈등이 왜 없었겠는가? 그러나 자신이 해야 할 의무를 고집스럽게 지켜나갈 수 있었던 것은 자기임무에 대한 확신이 있었기도 하지만 지켜나갈 것은 지켜나가야 한다는 나름대로의 철학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법을 지켜나가는 것과 도덕이나 양심도 중요하지만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 태도가 무엇보다도 소중하다고 하겠다. ◀유철상 프로필▶ 現시큐리티팩트 칼럼니스트, 군인공제회 대외협력팀장, 육군 군수사령부·훈련소·소말리아·이라크파견부대·9군단 정훈공보참모, 한미연합사령부 공보실장 / 주요저서 : ‘향기로운 삶의 지혜’(2011년, 플래닛 미디어)
-
- 소통시대
- 군대를 말한다
-
[유철상의 동서양 전사에서 배우는 교훈] ⑦나폴레옹 장군과 초병
-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151)] 새로운 환경에서의 색다른 추가 과업②
-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구안보협업연구소장] 사령부 참모부에 근무하는 간부들 전원이 청백팀으로 나누어 편성되어 있고, 볼이 두 개나 되는 집단축구 경기라 많은 인원이 참가해야 승리를 얻기 용이한 상황이었다. 처음 참가하는 필자는 운동신경도 둔한 편인데 그 날따라 우리 팀 참가인원이 적어 볼 두 개가 한꺼번에 골대로 몰려올 때에는 방어도 쉽지 않아 많은 점수 차이로 완패를 하였다. 게다가 승부욕이 많은 수방사 부대원들이라 게임 중에 욕설이 난무했고 심지어 골절 환자도 자주 발생했다. 게임이 끝나자 각 팀은 각자 모여 작은 요구르트 한병으로 목을 축였다. 팀을 지휘하는 처장이 참석자들에게 “다른 팀보다 왜 적은 인원이 나오냐?”며 중간 과장급 책임자에게 내일 게임에는 불참자가 없도록 전파하라고 호통을 쳤다. 이어 새로 전입온 필자를 소개했고 운동을 더 잘하라고 독려하며, 포지션별로 책임자에게 불참 인원들이 반드시 참석하도록 확인하라고 강조했다. 덕분에 일과 시간에 각 팀의 담당 과장은 불참자를 사무실로 불러 혼을 내며 다음날 축구에 꼭 참석하라고 독려했다. “살아방패 죽어충성”이라는 수방사 구호가 무색할 정도로 집단축구에서 승리하는 것이 마치 충성하는 것처럼 승부욕에 불타는 근성을 보여준 시간이었다. 이러한 근성 때문에 일부 선배들은 경기 중 과도하게 태클한 후배 장교를 사무실에 불러 예의 없다고 혼을 내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인접 동료들과 상급자들을 쉽게 접하며 친숙해지는 시간을 단축시키는 계기도 되었다. 그런데 작전장교인 필자는 빨리 출근해서 사령관이 주관할 상황회의를 확인해야 한다는 생각에 팀장의 독기서린 강조의 훈시가 귀에 들어오지 않았고 단지 온몸이 땀에 범벅인 채 홀짝인 요구르트의 시원함에 스트레스를 날릴 수 있었다. (다음편 계속)
-
- 소통시대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151)] 새로운 환경에서의 색다른 추가 과업②
-
-
[유철상의 동서양 전사에서 배우는 교훈] ⑥용기와 의로움이 있는 신사 라이트 대위
- [시큐리티팩트=유철상 칼럼니스트] 아프리카 해안을 항해하던 버큰헤드 호의 조난은 백 오십년도 넘은 일이지만 영국 사람들은 이를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다. 1852년 2월 27일 버큰헤드 호는 472명의 군인과 162명의 부녀자 그리고 아이들을 태우고 아프리카 해안을 따라 항해하고 있었다. 새벽 2시, 모든 사람들이 곤히 잠든 시간에 절망적인 일이 벌어졌다. 남아프리카 희망봉 앞바다에서 암초에 부딪혀 바닥에 구멍이 나 바닷물이 솟구쳐 배가 침몰 직전에 이른 것이다. 사방에서 북을 두드렸다. 군인들은 갑판 위에 집합했다. 순식간에 열병식이라도 벌이듯이 갑판에 질서정연하게 집합한 이들에게 “서둘러 부녀자와 아이들을 구하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상어가 우글거리는 밤바다에서 풍랑은 점점 더 거칠어지고, 배는 자꾸만 가라앉아 갔다. 배의 뒷쪽에 보트가 세 척 있었다. 한 척에 탈 수 있는 사람은 60명이니 다 해야 180명밖에 탈 수 없었다. 군인들은 신속히 배 밑으로 달려가 대부분 옷도 제대로 입지 못한 부녀자와 아이들을 끌어올려 갑판 위의 보트에 태워 바다로 띄워 보냈다. 거의 모든 부녀자와 아이들이 구출되었다. 이때 선장은 군인들에게 고함을 질렀다. “그대들도 헤엄칠 수 있는 자들은 모두 바다로 뛰어내려 저 보트에 타라!” 그러나 제91스코틀랜드 연대의 라이트 대위가 그들의 앞을 가로막았다. “진정한 군인이면 내 말을 들어라! 너희들이 바다에 뛰어들어 보트에 매달리면 혼란이 일어난다. 보트는 가라앉고 말 것이다. 국민을 아끼고 지키는 군인이라면 이 자리에 서 있어라!”라고 명령했다. 이 용감한 대위는 꼼짝도 않은 채 그대로 서있었다. 바닷물은 어느새 갑판 위로 올라와 무릎을 적시고 있었으며 남아 있는 보트도 없고 어떤 희망도 없었다. 병사들은 대위의 말을 따랐다. 배가 가라앉는 순간까지 불평하는 군인, 몸부림치는 군인은 한사람도 없었다. 한 생존자는 후에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배는 마지막 순간에 축포를 울리면서 이들 군인과 함께 바닷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고..... 군인은 끝까지 신사여야 한다. 신사는 기사도를 지킬 줄 아는 사람이다. 기사도는 곧 용기와 의협심과 사랑을 말한다. 위험을 외면하지 않고, 적 앞에 비굴하지 않으며, 부하와 전우에게 친절하고, 이웃을 따뜻하게 보호하며···,신사다운 군인은 바로 이런 기사도를 가진 사람이다. 신사는 계급이나 돈과는 상관없다. 가난한 사람도 계급이 낮은 사람도 얼마든지 신사가 될 수 있다. 정직하고, 정중하고 침착한 사람, 그에게 용기와 의로움이 있으면 그는 신사이다. ◀유철상 프로필▶ 現시큐리티팩트 칼럼니스트, 군인공제회 대외협력팀장, 육군 군수사령부·훈련소·소말리아·이라크파견부대·9군단 정훈공보참모, 한미연합사령부 공보실장 / 주요저서 : ‘향기로운 삶의 지혜’(2011년, 플래닛 미디어)·
-
- 소통시대
- 군대를 말한다
-
[유철상의 동서양 전사에서 배우는 교훈] ⑥용기와 의로움이 있는 신사 라이트 대위
-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150)] 새로운 환경에서의 색다른 추가 과업①
-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수방사로 전입와 새로운 환경에서 장교 생활을 시작하자 야전부대와 색다른 추가 과업이 여러 가지가 생겼다. 우선 반드시 매일 수행할 과업중에 하나는 조기 축구였다. 전입 신고를 위해 인사처에서 신상명세서를 작성할 때 인사장교는 사관학교 다닐 때 럭비나 축구 선수였나를 꼭 확인하고는 잠시 뒤에 청색 또는 백색 운동복을 나누어 주었다. 그리고 전입신고 후에 인접 사무실 동료 선배들에게 인사를 할 필요가 없고 매일 아침 운동에 참석하면 모두 볼 수 있다며 바로 다음날 새벽 6시에 연병장으로 무조건 나오라고 강조했다. 근무 첫 날 업무 파악도 잘못한 채 퇴근하여 다음날 업무를 걱정하며 장을 설친 채 새벽에 연병장에 나가자 하나 둘씩 청백의 운동복 차림의 간부들이 모였다. 이상하게도 큰 연병장 엔드라인에 청백팀이 나누어 정렬을 했고 전원 참석 여부를 확인하지 않고 잠시 뒤에 볼을 두 개가 놓인 하프라인에서 심판이 호각을 불자 각 팀은 볼을 차지하기 위해 하프라인으로 뛰어가면서 바로 집단축구가 시작되었다. 새롭게 전입온 장교라고 인사할 겨를도 없이 치열한 경기가 시작되었다. 단지 피아 구별은 청색과 백색의 운동복뿐이었고 누가 상급자이고 하급자인지도 모른 채 정신없이 뛰었다. (다음편 계속)
-
- 소통시대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150)] 새로운 환경에서의 색다른 추가 과업①
-
-
[유철상의 동서양 전사에서 배우는 교훈] ⑤부하의 능력을 인정한 마셜(George C. Marshall)장군
- [시큐리티팩트=유철상 칼럼니스트] 모든 사람은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타인으로부터 인정받고 싶은 욕구를 지니고 있다. 이는 자존심이나 자부심으로 표현되기도 하는데 이것이 훼손되면 정신질환을 일으키기도 한다. 병사들은 업무수행 중 행한 결과에 대해 지휘관으로부터 인정받고 싶어 하며 이는 전투 시에도 마찬가지이다. 관심과 인정이 얼마만큼 강렬하게 요구되는지를 제2차 세계대전 중 미 육군 참모총장을 지낸 마셜(George Catlett Marshall) 장군은 그의 저서 ‘포화 속의 사람(Man against Fire)’에서 생생하게 보여주었다. 전투 중에 포탄 파편에 맞아 나이 어린 중대 연락병이 쓰러져 죽음 직전에 중대장의 품안에 안겼다. 병사는 죽어가면서 중대장에게 속삭였다. “중대장님. 중대원들이 항상 저더러 비겁한 놈이라고··· 하지만 이번만은 저도 용감했다고 인정해 주세요.” “그럼. 너는 용감했다.” 중대장의 대답에 소년병은 얼굴에 웃음을 띠고 죽어 갔다. 부하들은 한 마디의 칭찬, 가볍게 등을 두드려 주는 격려, 표창, 훈장 등으로 자신의 능력이 인정될 때 커다란 만족을 표시하며 그렇지 못할 때에는 인정받을 수 있는 다른 행동을 취하려고 노력한다. 부하의 능력을 인정한 마셜 장군의 부하에 대한 일화이다. ◀유철상 프로필▶ 現시큐리티팩트 칼럼니스트, 군인공제회 대외협력팀장, 육군 군수사령부·훈련소·소말리아·이라크파견부대·9군단 정훈공보참모, 한미연합사령부 공보실장 / 주요저서 : ‘향기로운 삶의 지혜’(2011년, 플래닛 미디어)·
-
- 소통시대
- 군대를 말한다
-
[유철상의 동서양 전사에서 배우는 교훈] ⑤부하의 능력을 인정한 마셜(George C. Marshall)장군
-
-
[김희철의 전쟁사(129)] 김만술 소위의 신화, 베티고지 전투③
- [시큐리티팩트=김희철 칼럼니스트] 베티고지 전투의 영웅 김만술 소위는 앞서 방어한 소대들의 어려웠던 상황을 분석하고 ‘목의 가시’ 같은 ‘서봉’을 기습 공격할 것을 구상했다. 이렇게 함으로써 지금까지 국군이 매번 당하기만 했던 수동적인 입장을 뒤집어 국군의 사기를 드높이는 한편, 중공군에게 매서운 맛을 보여주기 위해 대대장에게서봉에 대한 공격을 건의하여 승인을 받았다. ■ 36대 800 기적의 신화를 만든 전쟁영웅 김만술 소대 그 당시 베티고지에서 발생한 많은 사상자로 인해 병사들은 고지에 오를 때 “오늘은 몇 명이 전사할 것인가?”를 두려워하며 걱정하였고, 상급부대도 “다음에는 어느 소대를 투입할 것인가?”를 놓고 고민할 정도로 피해가 많아 국군의 사기는 땅에 떨어져 있었다. 따라서 특무상사로서 실전 경험이 많았던 김만술 소위는 병사들에게 먼저 “아무리 치열한 포탄낙하와 격전 속에서도 침착하고 민첩하게만 행동하면 죽음을 당하지 않는다”는 자신감을 심어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이를 위해 김만술 소위는 배치되자 곧바로 서봉을 기습 공격하여 적병 5명을 사살하고 8부 능선까지 진출함으로써 우선 소대원들의 사기를 올렸다. 이어 야간에 적의 기습공격에 대비하여 교통호의 모래를 파내는 등 진지를 보강하고, 무선과 유선을 세밀히 점검하며, 시계와 사격방향을 일일이 확인하며 만반의 방어준비를 갖추고 있었다. 이런 상태에서 날이 어두워지기 시작하던 오후 7시경 중공군의 최초 야간공격을 받았다. 아군은 준비된 사격계획에 따라 치열하게 응사하였지만 중공군은 아군의 포화를 뚫고 교통호까지 접근하여 백병전이 시작되었다. 이때 교통호에 뛰어든 적을 김만술 소대장이 선두에서 총검으로 물리치자 공포감에 질렀던 아군 병사들이 일시에 용기를 얻어 용전분투(勇戰奮鬪)한 결과 중공군의 1차 공격을 막아냈다.. 오후 10시즈음이 되자 중공군은 다시 베티고지 중앙봉을 중심으로 좌우측으로 2개 중대 규모의 병력으로 치열한 공격을 재개하였지만, 김만술 소대원들은 상급부대의 화력지원을 받으며 수류탄 투척과 집중사격으로 중공군을 또 물리쳤다. 그러나 적의 사격으로 아군의 무전기가 파괴되었고 이때문에 상급부대 화력지원을 받는데 문제가 생겼다. 자정 즈음에 이강로 하사가 적 매복조의 사격속에서도 통신망 복구를 요청하기 위해 대대본부로 뛰어가 전황보고와 통신 연결을 시도한 노력으로 새벽 2시30분경에 통신이 개통되어 중대 및 대대와 다시 연락을 취할 수 있었다. 또다시 새벽 4시 경에 중국군은 베티고지와 그 좌측 지점에 각각 1개 소대 규모를 투입시켜 공격을 재개하였다. 김만술 소대는 지근거리까지 유인하여 수류탄 투척과 백병전으로 저지하였다. 하지만 아군 진지에 너무도 많은 적들이 소대원들과 혼재된 상태가 되자 김 소위는 중과부적으로 전세가 불리함을 판단하고 소대원을 유개호 속으로 피신시킨 후 진내사격을 요청하여 노출된 중공군을 괴멸시켰다. 철수했던 적은 새벽의 짙은 안개를 이용해 다시 공격을 가해오자 수류탄 투척과 백병전 그리고 진내사격을 통해 이를 또다시 격퇴하는 등 크고 작은 전투가 계속 벌어졌고 오전 7시 반에 날이 밝으면서 중국군은 완전히 퇴각했다.(다음편 계속)
-
- 소통시대
- 군대를 말한다
-
[김희철의 전쟁사(129)] 김만술 소위의 신화, 베티고지 전투③
-
-
[유철상의 동서양 전사에서 배우는 교훈] ④진정한 군인 알렉산더 대왕
- [시큐리티팩트=유철상 칼럼니스트] 20세의 젊은 나이로 마케도니아 왕위를 계승한 알렉산더는 페르시아를 정복할 야망을 꿈꾸어 오던 중 마침내 페르시아 원정의 길에 올랐다. 페르시아의 왕 다리우스도 알렉산더의 공격에 대비하고 있었지만 막강한 알렉산더 군대를 당할 수 없어 패하고 말았다. 다리우스의 막사를 점령하고 피로를 풀던 알렉산더는 다리우스의 비(妃)와 두 공주가 절세의 미인이고 젊음의 혈기가 끓었음에도 “적을 이기는 것보다 나를 이기는 것이 왕자의 면목을 잃지 않는 것”이라 스스로 다짐하며 유혹을 이겨냈다. 야간을 이용하여 후퇴한 다리우스를 기습공격하자는 참모들의 견의에 대하여 “승리를 한밤중에 도둑질하지는 않겠다.” 고 거부한 알렉산더는 뒷날 페르시아 군을 찾아 다시금 패퇴시켰다. 아직도 잡히지 않은 다리우스를 추격하던 알렉산더는 험한 길과 뜨거운 뙤약볕 아래서 물을 찾지 못해 거의 혼절할 만큼의 갈증을 느꼈다. 그 때 노새 등에 물을 싣고 가는 사람들과 마주치자 알렉산더는 그들에게 그 물을 나눠 줄 것을 요청했다. 그들은 “ 이 물로 대왕님을 구할 수 있다면 제 자실들은 다음 차례로 돌리겠습니다”라고 말 한 뒤 투구에 가득 물을 부어 건넸다. 물을 받아든 대왕은 그러나 그 물을 다시 그들의 물동이에 붓도록 명했다. 그 물이 그들 자식들의 목숨을 빼앗는 일일 수도 있겠거니와, 같이 땀 흘리며 갈증에 시달릴 병사들의 모습 때문이었다. 그는 “내가 이 물을 마시고 있는 것을 우리의 군사들이 보면 그들은 목이 더 탈 것이다”라고 말했다. 알렉산더의 명성이 널리 퍼졌을 무렵 그는 나라에 있는 현인(賢人)들을 초청하여 연회를 베풀었다. 많은 사람들이 연회에 참석하였지만 디오게네스는 초청에 응하지 않았다. 대왕의 초청을 거절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지만 디오게네스는 “내게 볼 일이 있으면 본인이 오라”는 식이었다. 대왕으로서의 자존심과 체면의 문제였지만 알렉산더는 어느 날 디오게네스를 방문했다. 통나무 통 속에 살면서 천체와 자연의 연구에 몰두한 디오게네스는 대왕의 방문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일에만 몰두하고 있었다. 대왕이 그에게 필요한 것이 없느냐고 묻자, 그는 “당신이 서서 가리고 있는 햇볕이 내게는 필요하오”라고 말하며 대왕이 빨리 그곳을 떠나줄 것을 재촉했다. 병사들이 칼을 들어 그의 무례함을 탓하려 하였으나 이를 제지한 알렉산더는 “과연 디오게네스답다”고 말하고 그대로 돌아왔다. 페르시아 정복의 먼 길을 달려 온 젊은 알렉산더는 전쟁에서 이겼고 절세의 미인들을 전리품으로 차지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극복했다. 진정 군인다운 모습이 아닐 수 없다. 또 혼절할 만큼의 갈증에도 불구하고 병사들의 갈증을 부채질한다는 마음에서 물을 거부한 그의 모습은 과연 지휘관다운 것이었다. 진정한 충성심은 어디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하며 정의로운 싸움의 의미는 무엇일까를 다시 한번 되새기게 하는 알렉산더 대왕이었다. ◀유철상 프로필▶ 現시큐리티팩트 칼럼니스트, 군인공제회 대외협력팀장, 육군 군수사령부·훈련소·소말리아·이라크파견부대·9군단 정훈공보참모, 한미연합사령부 공보실장 / 주요저서 : ‘향기로운 삶의 지혜’(2011년, 플래닛 미디어)
-
- 소통시대
- 군대를 말한다
-
[유철상의 동서양 전사에서 배우는 교훈] ④진정한 군인 알렉산더 대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