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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철의 CrisisM] 이승만, 안중근, 천안함 트리플 추모(상)
[시큐리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3월26일은 ‘이승만 건국 정신 계승 국민대회’가 열린 이승만 전 대통령 탄신일이며, ‘안중근 장군 순국 114주기 추모제’와 1‘4주기 천안함 46용사 추모식’이 열리는 회한의 트리플 추모일이었다. 회한의 트리플 추모일 나흘 앞선 지난 22일, 해군 제2함대사령부에서 열린 제9회 서해수호의 날 기념식이 열렸고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동시에 참석했다. 윤 대통령과 한 위원장은 이 자리에서 “국가를 위협하는 세력에 잘 맞서서 대응해야 한다”며 “어떠한 위협도 응징해야 한다”는 취지로 대화를 나눴고 “이렇게 명백하게 도발과 공격을 받았는데도 자폭이라느니 왜곡, 조작, 선동해서 희생자를 모욕하는 일이 있다”라고 강조했다. 한 위원장은 “영웅들을 이렇게 모욕하고, 조작하고 선동하고 왜곡하는 세력들이 계속 그런 일을 하고 있다. 반드시 막아 내야겠다”며 “저희가 잘하겠다”고 말했다. 행사를 마친 윤 대통령은 차에 탑승하기 전 한 위원장과 악수하며 한 위원장의 어깨를 두드려주었던 이날 만남은 다른 의미에서 주목받았는데, 내달 총선을 앞두고 당과 대통령실의 갈등이 고조되면서 4·10 총선에 악재로 작용할 것이라는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침 이 같은 시기에 윤 대통령과 한 위원장이 만나면서 갈등이 봉합 국면에 접어든 상징적 장면으로 대통령실 관계자는 “당정 간 갈등이 있다고 하는데 그렇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장면이다”라고 대통령실은 밝혔다. ■ ‘부활한’ 천안함에 오른 영웅들…“이제 피격당하지 않을 것” ‘제14주기 천안함 46용사 추모식’이 열린 26일 2함대사령부에서 천안함 폭침 사건 당시 생존장병들과 전사자의 유가족 등은 신형 호위함으로 다시 태어난 ‘천안함(FFG-Ⅱ, 2800톤급)’에 오르며 “많이 좋아졌어. 이 배라면 서해 나가서 두 번 다시 피격당하지 않을 것 같아. 다행이야”라며 반겼다. 또 다른 유가족은 "벌써 14년이 지났지만 단 하루도 천안함 사건과 내 아들을 잊은 날이 없다"라며 "이름을 이어간 천안함 장병은 물론이고 국군 모두가 다시는 다치지 않았으면 좋겠다"라고 밝혔고, 또한 유족회장은 “새 국회에선 천안함 괴담 방지 특별법을 마련하라”고 강조했다. 호위함 천안함은 '천안'을 함명으로 사용한 해군의 세 번째 함정이다. 천안함은 초계함(PCC, 1000톤급)보다 크기와 무장, 방어능력을 대폭 증가했다. 천안함은 길이 122m, 폭 14m, 높이 35m 크기에 최고속력은 30노트(시속 55㎞)이며, 해상작전헬기 1대를 탑재할 수 있다. 주요 무장으론 5인치 함포와 함대함유도탄, 한국형 수직발사체계(KVLS)로 발사하는 함대지유도탄·장거리 대잠어뢰(홍상어)·유도탄방어유도탄 등이 탑재돼 있다.(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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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철의 CrisisM] 22대 총선 전쟁에 투입된 별들의 실체③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국민의힘 ‘용인시병’에서 단수 공천된 고석 후보는 1960년 서울시 성북구에서 태어났으나 아버지가 군 전역 후 고향이었던 전남 무안으로 이사해 함평 학다리고교를 나왔다. 육사(39기) 생도시절 공부를 잘했던 고 후보는 육사 교수요원으로 발탁되어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에서 위탁교육을 받았고, 1991년 제33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이후 군법무관으로 주로 국방부, 합동참모본부 등에서 복무했으며, 군 내부에서는 방위산업과 정부 계약에서 빈틈없이 탁월한 업무처리를 하여 강직하다는 평이 주류였다. 1998년에는 원용수 준위가 6백여만원의 뇌물을 받은 병무비리 사건에서 병무비리 청탁자 명단을 찾아내어 병무비리를 밝혀냈다. 더불어 해묵은 병무비리들을 파헤쳐 군 내부의 기강을 바로 잡은 것으로 주목 받았는데 당시 진보정권의 미움을 받아 한직에서만 머물게 했다. 보수정권이 들어선 2008년 11월 방위사업청 법무지원팀장으로 근무하며 준장으로 진급해 육사 동기생 중 첫 번째로 별을 달았다. 이때 당시 대전지검 논산지청장으로 있던 윤석열(사법연수원 23기) 대통령이 직접 영전을 축하했었다. 이후 2009년부터 육본 법무실장을 거쳐 국방부 고등군사법원장을 역임했다. 전역 후 2013년 법무법인(유) 화우 변호사로, 2015년부터는 법무법인(유) 세종에서 파트너변호사로 근무했다. 2022년 6월 ‘용인시병’ 당협위원장 공모에 신청하면서 윤석열 대통령과 사법연수원 동기였던 인연이 알려져 관심이 집중되었다. 이후 2023년 6월 지역 대학교수와 전문가들이 공감대를 형성하여 ‘수지새미래연구원’을 창립해 원장으로 추대되었다. 2023년 8월 당협위원장으로 내정되었으며 2024년 2월16일 열린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회의 결과 발표에서 단수공천이 확정됐다. ‘용인시병’지역은 민주당에서 문재인 정권의 국방부 대변인을 지냈고 윤석열 대통령 저격수 역할을 한 부승찬(제주생, 공사43기) 후보가 당내 경선 승리하며 확정되어 ‘육사 대 공사, 장군 대 소령의 경쟁’이 주목받고 있다. ‘용인시을’ 후보로 공천받은 이상철 후보는 용인시 백암면에서 태어나 백암중, 수원 유신고교(11회)를 졸업하고 1990년 한양대 졸업과 함께 학군사관 28기로 임관하였다. 중령~준장까지 10년 이상의 기간 동안 오직 제2작전사령부 지역에서 근무한 후방지역 작전 전문가이다. 제5보병사단장에 취임하여 문재인 정부의 최대 국정과제 중 하나인 화살머리고지 유해 발굴을 잘 마무리하여 2021년 임기제로 중장 진급과 함께 군사안보지원사령관으로 보직되었다. 하지만 2022년 5월 윤석열 정부 출범 후 첫 대장급 인사에서 문재인 정부 수혜 인사로 분류되어 보직대기 상태가 되었고 지상작전사령부 참모장으로 재직하다가 2023년 전역했다. 이후 2024년 1월 국민의힘에 22대 총선 국방안보분야 인재로 영입되어 ‘용인시을’ 전략공천 후보가 됐다. 본선 상대는 해당 지역구 현직인 민주당 김민기 의원의 불출마에 따라 공천된 손명수 전 국토부 2차관이다. 영주시·영양군·봉화군·울진군 지역구의 임종득 후보는 경북 영주시 출신으로 대구 청구고교를 졸업하고 육사 42기로 임관해 전략/정책 분야 참모를 맡은 전략통 군인으로 2019년 소장으로 전역하였다. 올드 도미니언 대학교 국제관계학 석사, 경남대학교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은 학구파이다. 2009년 대령 시절 육사 2학년이었던 아들(68기)과 함께 공수 강하훈련을 했던 일화도 있다. 2022년 8월, 건강 문제로 직에서 물러난 신인호 국가안보실 제2차장의 후임으로 임명되었고 퇴임한 2023년 10월부터 차기 총선준비를 했다. 같은 영주시 출신 정치인 장욱현 전 영주시장, 장윤석 전 국회의원 등과 경쟁해 결국 공천을 따냈다. 사실상 국민의힘 공천이 곧 당선인 경북 지역이기 때문에 큰 이변이 없다면 제22대 국회의원이 될 가능성이 높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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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철의 CrisisM] 네덜란드군은 6·25남침전쟁의 숨은 영웅⑧
[시큐리티팩트=김희철] 별고지 전투는 1952년 2월 18일 네덜란드 대대가 평강 남방 10km 지점에 위치한 중공군의 전초진지인 별고지(430고지)를 공격해포로를 포획하고 방어시설을 파괴하라는 명령을 받고 각종 가용 지원화력의 엄호하에 공격을 전개한 전투이다. 그해 2월 5일 미 제2사단 제 38연대 예비로 전환한 네덜란드 대대는 철원 동쪽의 하리동에 집결했고, 2월 10일~15일간 적 유인 작전인 유엔군 ‘Calm Up’ 작전이 실패하자 네덜란드 대대는 사단장으로부터 중공군 주요 전초진지인 별고지를 기습 공격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이때 별고지는 2개 소대규모 중공군이 배치돼있었고, 고지 후방에는 중대규모의 증원 병력도 있었다. 이들은 후방 472고지 일대에 구축한 강력한 지원기지로부터 화력지원까지 받고 있었다. 네덜란드 대대는 3개 포병대대, 4.2인치 중박격포 2개 중대, 전차 2개 중대, 부상자 및 탄약운반을 위한 노무자 70명과 화염방사기, 방탄복까지 지원받았다. 적진 항공정찰을 통해 전투 계획을 수립한 대대장은 2월 17일 대대 간부들을 집합시켜경사지에서의 신속한 이동을 강조하며 작전명령을 내렸다. 2월 18일 04시 B중대가 출발했다. 05시 엄호소대가 주저항선을 통과해지시된 무명고지를 점령하며, 06시 15분 후속하던 주공인 2개 소대가 공격개시선으로 진출해 모든 공격준비를 완료하자 06시 45분부터 예정된 공격준비사격이 별고지 일대에 집중됐다. 드디어 07시 B중대는 일제히 공격을 개시했고, 포병의 오폭으로 잠시 공격이 일시 정지되기도 했지만. 우일선 소대는 경미하게 저항하는 적을 격퇴하고 별고지를 점령했다. 07시 30분경 472고지 방면으로 철수하는 적을 포병과 전차가 집중포격 실시해 많은 적을 사살했으며 09시경 연대장 지시에 따라 벙커 3개와 다량의 포탄 및 지뢰 등을 폭파하고 화력 엄호를 받으며 저항선으로 복귀하며 전투를 종료했다. 이번 별고지 전투로 5명이 전사하고29명이 부상당한 네덜란드 대대는중공군 1개 중대 이상을 완전 섬멸시키는 대성과를 올렸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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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철의 CrisisM] 네덜란드군는 6·25남침전쟁의 숨은 영웅⑦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횡성전투를 마친 네덜란드대대는 미 제2사단의 일부로 중동부지역 대암산~도솔산 부근 전선에 투입되었다. 대우산 전투는 방어선 전방의 감제고지인 대우산을 점령하기 위해 조공 부대로서 북한군 제27사단이 점령하고 있던 그 남쪽의 1120고지(대머리산)을 공격하여 탈취한 전투이다. 1951년 7월15일 네덜란드대대 1개월 간 부대 재정비 후 미 제38연대에 배속되어 양구 북쪽의 도솔산으로 이동하여 7월25일까지 적의 중대규모의 병력이 배치되어 있으며 다수의 지뢰가 매설되어 있는 1120고지를 정찰했다. 7월26일 07시30분경 네덜란드대대 공격부대인 C중대 주저항선 전방의 만정곡으로 이동하여 공격 개시하여 10시30분경 돌격선 진출하였지만 안개가 걷히며 중대가 적에게 노출되고 적이 C중대를 향해 기관총사격을 집중했다. 시간이 경과할수록 사상자가 증가하고 위험해지자 고지 중간지점으로 철수함. 이때 좌전방으로 우회 공격한 일부 병력이 고참병들의 투혼으로 1120고지로 진출해 적의 진지 일부를 탈취했으나, 적의 역습으로 다시 철수할 수 밖에 없었다. 오후 C중대 재정비 후 재공격 준비했으나, 오히려 적에게 발견되어 역습당하였고, 점점 부상자가 속출하게 되어 어두운 밤이지만 연막과 야간을 이용해 철수했다. 이후 7월29일 미군 1개 대대가 공격 주도하고 네덜란드대대는 조공으로 미군에 대한 화력을 지원했는 데 결국 대우산 점령했다. 내덜란드대대는 대우산의 방어력을 보강하기 위해 경기관총으로 증강된 소대규모를 1120고지로 투입되었으나 8월6일즈음 전선이 소강상태로 접어들자, 대대는 사단예비가 되어 소양강변의 관대리로 이동하며 전투를 마감했다. 대우산 전투에서 네덜란드대대는 전사 11명과 부상 31명, 실종 1명 등의 인명손실이 발생했다.(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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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철의 CrisisM] 네덜란드군은 6·25남침전쟁의 숨은 영웅⑥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중공군의 2월 공세로 인해 전방의 아군부대들이 철수를 단행하자 이들에 대한 엄호임무를 부여받은 네덜란드 대대가 1951년 2월12일부터 13일까지 횡성 일원에서 중공군의 기습에 대응하는 방어전투를 전개했다. 리지웨이 미 제8군사령관이 반격의 여건을 만들기 위해 시도한 ‘썬더볼트 작전’의 일환으로 공격하던 미 제2사단이 1951년 1월23일 원주를 탈환하자 사단 예비로 있던 네덜란드 대대는 제38연대로 배속되어 원주로 진출했다. 네덜란드 대대는 2월 2일 원주 북서쪽 섬강 부근 송호리와 상장포 일대로 진출해 패잔병 소탕작전을 수행한 뒤, 홍천을 탈환하기 위해 2월 4일 사단의 명령에 따라 횡성으로 이동해 후천에 배치되어 한국군 사단의 후방 엄호를 담당했다. 1951년 2월 11일 중공군 제40군, 제66군이 서북쪽, 북한군 제5군단이 동북쪽에서 아군의 정면과 측면 공격, 일부 병력 연대 후방으로 침투해 유엔군의 주보급로를 차단하는 중공군의 네 번째 공세인 2월 공세가 단행됐다. 이때 군단장이 전 부대에 철수명령을 하달했고, 전 부대가 네덜란드 대대가 방어중인 횡성으로 몰려들자 네덜란드 대대 A중대는 본래의 위치인 횡성교로 복귀하라는 명령을 받고 서쪽으로 이동했으며, 오후 15시 30분경 네덜란드 대대가 배치된 지역에 적의 박격포 공격이 집중되어, 본부중대 기능이 마비됐다. 16시경 미 제187공수여단 G중대와 전차소대로 구성된 구원부대가 한국군 1개 보병대대와 함께 돌진해 적에게 포위된 4000여 명의 병력과 합세해 작전을 전개했다. 헌데 19시10분경 중공군이 한국군으로 위장하고 후방으로 침투해 아군의 철수를 엄호하고 있던 네덜란드 대대 화기중대와 대대본부를 공격했다. 이때 대대장은 수류탄 폭발로 전사했고 이러한 상황에서도 21시 30분경 화기중대장이 임시로 대대를 지휘해 끝까지 철수부대를 엄호했다. 다음날인 2월 12일 22시경 사단의 지시에 따라 한국군과 미군 철수 뒤 엄호하던 네덜란드 대대 A중대는 횡성 후방의 뒷네물 강변에, 이틑날 01시 네덜란드 대대 B중대도 뒷네물강 남쪽에, 04시경에는 원주비행장에 도착해 용맹한 네덜란드군의 명성을 드높이며 횡성전투는 종료됐다. 횡성전투로 대대장과 군목, 인사장교 등 17명 전사, 37명 부상, 차량 15대와 다수의 공용화기를 잃는 피해를 입었으나 아군의 철수 엄호작전을 완벽히 수행했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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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393) 교통사고 위기극복의 여정㉘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구안보협업연구소장] 하지만 영관영어반에서 만난 선배중에는 광주 출신의 한국인이지만 한국인임을 부정하고 중국인 공산주의자로 행세를 한 정율성처럼 표리부동(表裏不同)한 자도 있었다. 정율성이 북한과 중국에서 보였던 불손하고 이율배반(二律背反)적이지만 화려한 작곡가로서의 삶처럼 그 선배도 생도시절부터 뛰어난 지혜와 지휘생도 활약으로 후배 생도들의 존경심을 받아왔고 필자에게는 목발 및 지팡이를 짚고 있다고 해서 DJ라는 별칭을 즐겨 불러 주었다. 또한 그는 명석한 지능으로 영어 수업도 우수한 성적을 계속 유지했다. 마치 탁월한 음악적 재능을 지닌 정율성처럼 그의 모습은 수업시간에 뛰어난 영어 회화능력으로 교관들의 칭찬을 받아 학생장교들의 모범이 되기도 했다. 일과후 독신자 숙소에서도 타 선배들처럼 잦은 출타를 하거나 만취되는 일도 없이 착실한 학생장교로 돋보였고 필자는 친절하게 학업을 도와주는 그가 고맙고 존경스럽기까지 했고 대령으로 일차 진급 못한 것이 이상할 정도였다. 영관영어반 과정이 중반을 넘어 종반으로 접어들 무렵에 그는 매우 힘든 표정으로 정색을 하며 필자에게 도움을 청했다. 동생이 사업을 하는 데 급전이 필요하고 진행상 곧 회수 가능해 일주일 뒤면 갚을 수 있다는 말이었다. 필자는 현금이 있으면 두말할 필요도 없이 도와드리고 싶었다. 그러나 필자도 교통사고 후에 많은 출혈이 있었고 저축한 돈도 별로 없어 죄송했다. 선배의 계속 독촉에 못이겨 현재 들고 있는 적금을 해약하면 요구한 금액의 반정도를 제공할 수 있다고 했더니 그거라도 빨리 주면 바로 해결하고 일주일 뒤에 갚겠다고 다짐했다. 하는 수 없이 통장을 들고 은행을 찾아 적금을 해약한 후에 그 선배에게 전달했다. 물론 일주일 뒤에 갚는다고 해서 가족에게는 비밀로 했다. 그후 일주일이 지났지만 선배에게 갚아달라는 말을 할 수 없었다. 일단 돈을 주고나니 빌려준 사람이 을이 되어 있었고, 그는 여유롭게 생활하며 빌린 돈 이야기는 꺼내지 않았다. 결국 교육 종료 직전에 그 선배에게 아직까지도 가족에게 말을 안했으니 빌린 돈을 갚아주어야 통장을 다시 만들 수 있다고 독촉했다. 그 선배는 다음주로 다시 미루며 걱정하지 말라고 말을 던졌는데, 30년이 지난 지금까지 소식이 없고 생도시절부터 탁월한 모습으로 존경을 했던 인연은 악연으로 끝났다. 가짜 한국인 정율성처럼 이율배반(二律背反)적인 그의 언행에 현혹된 필자가 부끄러웠고, 이후에는 잘 아는 지인들과의 관계에서 금전 문제가 생길 때에는 여유가 있어 대출이 아닌 무상으로 제공하거나 아니면 조심스럽게 거절하는 것이 돈도 잃지 않고 더구나 사람도 더 잃지 않는 길이라는 교훈을 영관영어반 교육과정에서 얻었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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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철의 CrisisM] 4월의 6‧25전쟁영웅 고길훈 해병소장
-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국가보훈부는 6‧25남침전쟁에서 해병대 최초의 전투인 군산‧장항‧이리지구 전투에서 지연작전을 통해 적의 호남지역 우회기동을 성공적으로 저지하고, 국군 최초로 한강을 건너 연희고지(현 서울특별시 연희동)에서 적을 섬멸하는 등 서울탈환작전에서 결정적인 공훈을 세운 고길훈 대한민국 해병 소장(당시 소령)을 ‘2024년 4월의 6‧25전쟁영웅’으로 선정했다. 1922년 7월, 함경남도 영흥(永興) 출생의 고길훈 소장은 1944년 도쿄 메이지대 문과를 졸업하고 광복 후 귀국해 1946년 5월 11일 해군에 입대한 후 그해 10월 소위로 임관했다. 1949년 4월 15일 해병대 창설에 참여해 초기 해병대의 체제 정립에 기여했으며 경상남도 진주와 제주도 지역의 공비토벌 작전에서 큰 공훈을 세웠다. 1950년 7월 초, 충청남도 천안을 점령한 북한군 제6사단 13연대가 호남지역으로 남하하자 고길훈 소장(당시 소령)의 부대는 7월16일 군산에 상륙해 충청남도 서천군 장항 방면으로 진출하려던 적을 저지했고, 7월18일부터 19일까지 전라북도 군산, 이리(현 익산) 방면 공격을 성공적으로 저지함으로써 해병대 최초 전투에서 승리했다. 이 전투에서는 정부미 13,000가마 보존, 주요 물자 반출 작전 수행, 적 사살 62명, 부상 311명, 포로 5명을 생포하는 등 전과를 올렸다. 1950년 9월, 해병대 1대대장이었던 고길훈 소장은 인천상륙작전에 참전한 후 국군 최초로 한강을 건너 적의 서울 사수 최후 방어선인 연희고지에서 적을 섬멸하는 등 서울탈환작전 성공에 결정적인 공훈을 세웠다. 이 연희고지 전투는 많은 희생을 치루면서도 감행하는 불굴의 해병대 정신을 알려주는 전례로 널리 알려졌다. 이에 해병대는 연희(104)고지에 전적비를 세우고 매년 9월 서울 수복을 축하하는 행사를 열고 있다. 이후 동해안 전략도서확보작전과 강원도 양구 부근의 김일성고지전투, 월산령지구전투 등 수많은 전투에 참전했고, 정전 이후 해병대 부사령관 및 사령관을 역임하며 해병대 발전에 큰 공적을 남겼다. 그는 1963년 12월 해병 소장으로 예편했다. 정부는 그의 공적을 기려 을지무공훈장(1952, 1954), 충무무공훈장(1953), 화랑무공훈장(1954)을 수여했다. 1981년 2월 향년 60세로 별세한 고길훈 소장은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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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철의 CrisisM] 4월의 6‧25전쟁영웅 고길훈 해병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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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399)] 오만감이 불러온 또다른 위기의 적신호②
-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사단장은 필자에게 돌발 질문을 던졌는데 그의 눈길은 전입신고를 진행하는 인사참모에 가있었고 ‘이렇게 몸이 불편한 자를 실제 전투력을 발휘할 대대장 자원으로 왜 받아드렸냐?’하고 질책하는 눈빛이었다. 곤혹스런 표정으로 궁색한 변명을 찾고 있는 필자 옆에 서있던 인사참모는 정색하며 “사단장님, 김 중령은 내년 2월에 대대장으로 취임할 예정이며 그동안 건강회복이 가능합니다. 게다가 이런 우수한 자원을 사단에서 평가단 등 특별 참모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에 사단으로 볼때는 오히려 좋습니다”라며 필자가 대답할 기회를 주지않았다. 불안해하는 사단장의 질문에 제대로 답변도 못한 채 전입신고는 끝났다. 이후에 사단장이 별도로 인사참모에게 필자의 자력카드상에 교통사고로 인한 병원 입원기록이 누락된 사실을 확인하라고 지시했고, 인사참모는 전부대에 확인한 결과 ‘교통사고 직후 필자가 근무했던 부대의 전 사단장이 완치가 가능하다는 의사의 의견을 듣고 한직인 부대대장으로 보직을 조정하여 장기 휴가처리’를 했기 때문이라고 보고했다 전언에 따르면 그러한 배려는 당시 사단장(이영대 장군 학군4기)이 취임전인 수방사 참모장 시절에는 작전장교로, 사단장 재임 전체기간 동안은 사단작전보좌관으로 근무하면서 필자의 능력과 인품을 특별하게 인정하여 취해진 조치였다고 설명했다. 전입신고간에 벌어진 에피소드 덕분에 사단장과 참모들의 관심이 높아졌고 위기가 오히려 호기가 되어 배려해주는 선배, 동료 및 후배들이 고마울 뿐이었다. 다시만난 김종선, 신규식, 김영철 육사 선배와 김현석 참모장까지 개별적으로 불러 격려했고 환영 회식도 일주일 동안 계속되었다.(다음편 걔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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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399)] 오만감이 불러온 또다른 위기의 적신호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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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철의 CrisisM] 이승만, 안중근, 천안함 트리플 추모(하)
-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한국주니어자유연맹은 자유민주주의와 건국 정신을 기리기 위한 ‘건국 대통령의 날’ 재정을 촉구하기도 했던 1부 행사 중에 특별한 이벤트도 있었다. 김현우 한국주니어자유연맹 부위원장이 단상으로 나와 “바른 역사관의 정립은 진일보한 역사 발전의 동력을 만드는 일”이라며 “이승만 대통령의 건국 정신을 상기하고 계승하고자 하는 ‘건국 대통령의 날’ 재정을 정부와 온 국민이 동참해 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영화 '건국전쟁'의 관람 소감을 밝히는 시간도 가졌다. 대학생 유지예(20·여) 씨는 “건국전쟁의 논리적이고 명확한 정보로 저의 역사적 지식과 사고를 한 단계 높일 수 있었다”며 “국민의 자유를 염원한 이승만 대통령의 모습에 감동받았다”고 말했다. ■ 이승만 대통령이 휘두른 독단의 칼에 민족 대표자들의 자존심에 상처가 났지만 1950년대 시점에서 재해석 필요 이영훈 이승만학당 교장이 좌장을 맡은 2부 국민대토론회에서는 ‘이승만 건국정신과 건국절 제정의 의미’라는 주제로 김용삼 월간조선 전 편집장이 발제를 맡았고 김은구 투르스포럼 대표, 김다인 이화연대 박사과정 학생이 토론을 벌였습니다. 토론자로는 유광호 자유민주연구학회장과 김은구 트루스포럼 대표, 김다인 이화여대 한국학과 박사과정생이 참여했다. 이영훈 이승만학당 교장은 모두발언을 통해 “이승만 대통령은 ‘내각 책임제인지 대통령 중심제인지’와 ‘미국에 순응할지 맞설지’, ‘공산 세력과 평화통일은 가능한지’에 대해 스스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또한 그는 “그가 휘두른 독단의 칼에 민족의 대표자를 자부한 수많은 자들의 자존심에 상처가 났지만 그의 권위주의는 1950년대 시점에서 재해석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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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철의 CrisisM] 이승만, 안중근, 천안함 트리플 추모(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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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철의 CrisisM] 이승만, 안중근, 천안함 트리플 추모(중)
-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장흥군은 26일 장동면 해동사에서 김성 장흥군수, 왕윤채 장흥군의회 의장을 비롯한 지역 기관단체, 죽산 안씨 문중 관계자 등 5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안중근 의사 순국 114주기 추모제’와 ‘추모역사관’ 개관식을 개최했다. 전통제례로 시작한 추모제는 안중근 의사 약사보고, 유언 낭독, 추모 공연, 헌화 분향의 순으로 진행됐고 이와 함께 ‘안중근 의사 문화관광자원 개발사업’의 일환으로 추진한 ‘추모역사관’ 개관식을 함께 열었다. 안중근(安重根:1879∼1910)장군이 1909년 10월26일 하얼빈에서 조선 침략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뒤 여순감옥에서 1910년 3월26일 순국했다. “일신상의 이익을 얻으면 의로움을 생각하고, 나라가 위태함에 처하면 목숨을 바친다”라는 뜻의 ‘견리사의 견위수명(見利思義 見危授命)’은 ‘논어’에 제시된 것이나 안 장군의 옥중에서 휘호한 유묵으로 더 알려져 있다. 일반적으로 안 장군을 ‘의사’로 호칭하나 ‘장군’으로 불리워야 한다. 왜냐면 당시 고종황제가 지원했던 조직인 ‘대한의군’의 참모중장이였기 때문이다. 한편 ‘추모역사관’ 개관식을 주관한 김성 장흥군수는 “안중근 장군이 보여준 나라 사랑 정신과 세계 평화의 꿈이 해동사를 통해 널리 알려질 것”이라며, “앞으로 추모역사관 야외에 조형물과 편의시설을 보강해 지역의 역사·문화 공간으로 활용하겠다”고 말했다. ■ 한국자유총연맹, ‘이승만 건국 정신 계승 국민대회’ 개최 한국자유총연맹은 트리플 추모일인 26일 오후 서울 남산 자유센터에서 강석호 총재와 김황식 이승만기념재단 이사장, 권정달 전 한국자유총연맹 총재, 권영해 대한민국통일건국회 회장, 임동진 목사(배우)를 포함한 300여 명이 참석해 ‘이승만 건국 정신 계승 국민대회’를 개최하고 '이승만의 날'을 제정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번 대회는 연맹의 이승만 기념사업보고, ‘이승만의날 제정’ 결의문 채택, 영화 '건국전쟁' 관람 소감 발표 순으로 구성된 1부와 '국민 대토론회'로 이뤄진 2부로 진행됐다. 강석호 한국자유총연맹 회장은 1부 기념사를 통해 “대부분 선진국에서는 국부를 존경하고 건국 정신을 국가 발전의 원동력으로 삼는다”며 “공산주의의 온갖 방해 공작에 맞서 이 땅에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확립 시켜준 자랑스러운 건국 대통령을 우리가 잊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반성하게 된다”고 밝혔다. 이어 “이승만 건국 대통령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지금과는 다른 '헬조선'에서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며 “이 전 대통령의 혁명적 건국 정신이 있었기에 오늘의 자유와 번영을 함께 누리고 있다”고 강조했다. 김황식 재단법인 이승만대통령 기념재단 이사장은 “바야흐로 이승만 재평가 열풍으로 오랜기간 가려왔던 역사적 진실이 서서히 밝혀지고 있다"며 "이런 흐름이 국가 정체성 확립을 위한 지속성과 확장성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기념관이 세워져야 한다”고 제언했다. 그러면서 “이를 통해 대한민국의 설계자이자 민주주의의 초석을 세운 이 전 대통령의 진면목이 더욱 드러낼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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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철의 CrisisM] 이승만, 안중근, 천안함 트리플 추모(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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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철의 CrisisM] 22대 총선 전쟁에 투입된 별들의 실체⑦
-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민주당 강원 ‘속초·인제·고성·양양’지역구 단수공천받은 김도균 후보는 강원도 속초에서 태어나 속초고교(30회)를 졸업후 육사44기로 임관하여 국방부 국방정책실에서 대북(군사)정책 관련 업무를 주로 수행하여 군 내·외부에서 최고의 대북 및 안보전문가로 평가 받았다. 2017년 문재인 정부 출범시 국정기획자문위원회 국방전문위원으로 파견되어 국방정책 전반에 대한 국정과제 작성작업을 추진했고 청와대 안보실 국방개혁비서관으로 임명되어 ‘국방개혁 2.0’추진업무를 수행하였다. ‘남북장성급군사회담’ 및 ‘남북군사실무회담’, ‘남북고위급회담’ 등 다양한 대북협상임무에 관여했으며, 특히 2018년 4월 체결된 판문점 선언의 군사분야 후속조치를 위해 ‘남북장성급군사회담 수석대표’로 내정되어 ‘9.19 남북군사합의’를 이끌어내는 데 핵심적 역할을 담당하였다. ‘판문점선언’과 ‘평양선언’, 그리고 ‘9·19군사합의’의 체결 및 후속조치를 이행하는데 크게 기여하여 2020년 5월 중장으로 진급하며 수도방위사령관으로 보직됐다. 전역 후 고향인 강원도 속초에 정착하며 ‘설악원 희망 포럼’을 조직하여 지역사회 발전을 위한 다양한 봉사활동을 전개하다가 2023년 6월 더불어민주당에 입당하여 속초·인제·고성·양양 출마를 공식화했다. 경상남도 김해시 갑 선거구의 민주당 민홍철(3선) 후보는 1961년 김해에서 태어났으며 김해고등학교를 3년 장학생으로 다녔다. 이후 부산대 법학과(80학번)에 입학했는데 군사정권이 출범에 따라 휴교령이 내려지자 고시공부를 시작했고 1984년 군법무관 임용시험에 합격했다. 이후 각급 부대에서 검찰관, 송무장교, 군판사, 법무참모를 지냈으며, 육본에서 법제과장, 고등검찰부장, 법무과장 등을 거쳐 준장 진급 후 육본 법무감, 국방부 고등군사법원장을 지냈다. 2008년 2월 전역 후 변호사로 일하며 정치에 입문해 2009년부터 3년간 한나라당 당적을 가졌었다. 그러나 참여정부 시절 군 사법제도 개혁 과정에서 인연을 맺었던 문재인이 혁신과 통합 추진위원으로 동참할 것을 권유하자 탈당하고 민주통합당에 입당했다.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통합당 후보로 경상남도 김해시 갑 선거구에 출마해 현역 새누리당 국회의원 김정권 후보를 꺾어 당시 경남의 유일한 민주통합당 당선자가 됐다. 이후 20대 총선에도 같은 지역구에서 재선에 성공했다. 당일에 열린 김해시장 재선거 및 시의원 보궐선거 또한 전부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당선되면서 김해시가 사실상 민주당의 텃밭이 되었고 현재 3선 국회의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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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철의 CrisisM] 22대 총선 전쟁에 투입된 별들의 실체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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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철의 CrisisM] 22대 총선 전쟁에 투입된 별들의 실체⑥
-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민주당 ‘남양주시을’ 지역 공천받은 김병주 후보는 경북 예천에서 태어나 강릉고교를 졸업하고, 육사 40기로 임관해 2포병단장, 30사단장, 미사일사령관, 3군단장을 거쳐 육군 대장으로 진급했다. 독실한 불자였지만, 의외로 알자회 출신에 이를 갈았다고 한다. 알자회 회원인 전임자 임호영이 쫓겨난 뒤 받은 보직이 한미연합사 부사령관이다. 2020년 1월, 더불어민주당 인재영입 3호 인사로 입당해 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비례대표 후보로 배정받았으며 당선됐다. 이낙연 신임 당대표에 의해 안보분야 대변인으로 임명되었다가 이재명의 열린캠프에 국방안보위원장으로 합류했다. 2022년 3월, 국방위에서 대통령 집무실의 용산 이전 건을 두고 전혀 안보 공백에 대한 계획이 없었던 것에 대해서 굉장히 격앙된 모습으로 질문하며 비판했다. 육사 동기인 이종섭이 국방부장관 인사청문회 때 둘이 알자회 퇴출을 강력하게 주장 한 동지이기도 했지만, 대통령실 이전과 관련된 비행금지구역 재조정에 관하여 사적인 인연과 관계없이 매섭게 몰아쳤다. 2023년 1월, 북한 무인기 영공 침범 사건 사건에서 다양한 정부와 국방부의 실책을 비판했으나 정부여당은 북한 도발의 원인을 김 의원이 주도하여 체결한 9.19 군사합의 때문이고, 북한이 합의를 깨고 도발을 해올 때마다 훈련부족을 야기한 안보불안 합의의 책임자라며 공격을 받았다. 7월 장마 직후 해병대 일병 사망 후 수사 외압, 육사 홍범도 흉상 철거 논란과 대통령실 국정감사에서 미국의 도청사건 비판, 본인이 연합사부사령관으로 재직하던 시절에도 한미일 해상훈련이 진행된 바 있지만 국회의원이 되어서 한미일 군사훈련을 비판하고 있는 건 이중잣대라는 등이 제기되면서 육사 출신으로 계속 질책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에 대해 연부회(한미연합사 부사령관 모임)는 “가정의 상황을 들며 현실을 왜곡해 여론을 호도하는 것은 군 출신 정치인으로서 지켜야 할 선을 어기는 행동”이라며 “더는 안보를 해치는 언행을 해선 안 된다”며 “김 의원의 발언으로 많은 군인이 큰 수치감을 느꼈다”고 밝혔다. 연부회 제명 등 육사총동창회, 성우회에서도 김 의원 관련 논의가 진행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김 의원은 현재 더불어민주당 국방안보특별위원장, 제2정책조정위원장을 맡고 있다. 지난 9월 이재명 당대표가 단식투쟁을 실시하자 이재명의 오른편에서 자리를 지키며 신임을 얻어 제22대 총선 ‘남양주시을’ 후보로 안착했다.(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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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철의 CrisisM] 22대 총선 전쟁에 투입된 별들의 실체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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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398)] 오만감이 불러온 또다른 위기의 적신호①
-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월요일 아침 사단장실에서 전입신고가 있었다. DJ라는 별명을 얻은 필자는 차마 지팡이를 짚고 전입신고는 할 수 없어서 지팡이는 비서실에 놓고 약간의 통증은 있었지만 절뚝거리며 사단장 앞에 섰다. 인사참모의 구령에 맞추어 절뚝거리며 신고한 필자를 바라보며 불안감을 감추진 못한 사단장 이상신 장군(갑종197기)은 불쑥 질문을 던졌다. “김중령은 이렇게 불편한 몸으로 현장에서 뛰어야 할 대대장직을 수행할 수 있겠나?”라는 질문과 함께 자력카드를 훑어보면서 추가 의문의 한마디를 추가했다. “교통사고로 5개월간 병원에 입원했는데 왜 자력카드에는 입원 기록이 없지?” 일정주기가 지나면 전후방으로 교류해야만 하는 인사규정에 따라 필자는 전방부대에서 오랫동안 근무해 2군으로 배치됐다. 보직을 검토하던 군사령부 인사처에서 해안사단보다는 바다 없는 내륙사단이 교통사고 후유증에 따른 불편한 몸으로 대대장 근무하기가 용이할 것이라고 판단하여 37사단으로 보직명령 조치를 했다. 하지만, 신고를 받는 사단장이 ‘내륙사단이라도 절뚝거리는 몸의 대대장이 임무를 잘 수행할 수 있을까?’하는 의문을 가지는 것은 당연하다.(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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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398)] 오만감이 불러온 또다른 위기의 적신호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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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철의 CrisisM] 22대 총선 전쟁에 투입된 별들의 실체⑤
-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더불어민주당의 공천을 받은 장성출신은 모두 4명으로 예비역 대장 황기철․김병주, 중장 김도균, 준장 민홍철 후보이다. 경남 창원시진해구에 공천받은 황기철 후보는 경남 창원에서 태어나 진해고교를 졸업하고, 해사 32기로 임관해 제2함대사령관, 방위사업청 함정사업부장을 거쳐 해군작전사령관에 임명되어 해군의 전비 태세 재정비에 전력을 기울였고, 아덴만 여명 작전도 지휘했었다. 해군참모차장 재직 시절인 19대 총선을 앞두고 제주 민군복합항 건설이 정치적 쟁점으로 떠오르자, 건설 필요성을 강력히 역설하여 반대 여론을 극복, 돌파하는 데 공헌했으며 참모총장을 역임했다. 세월호 참사 당시 현장구조지휘본부장을 맡아, 해군참모총장으로서 통영함에 두 차례나 출동지시를 내렸으나 출동은 불명확한 이유로 취소되었고, 국회 긴급현안질의에서 김광진 의원이 정홍원 총리에게 그 이유를 묻자 총리는 '장비보안' 때문이라고 답변했다. 이에 김 의원은 해군 측은 통영함이 출동 가능한 상태라고 판단하여 준비를 했었고, 장비문제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고 반박했다. 통영함 관련 비리 사건으로 감사원에서 인사 처리를 요구했다. 이에 2014년 12월, 본인이 사의를 밝혔으나 반려되었다가 결국 2015년 2월에 물러났고, 합수단에 소환되었다가 3월 구속 수감되었다. 이후 그해 10월, 1심 재판부는 관련 혐의들에 대하여 무죄 판결을 내린 덕분에 석방되었다. 결국 대법원에서도 원심 판결과 동일하게 무죄를 선고함에 따라 무죄가 확정되었다. 그러나 합수단과 국회 그리고 언론 등은 재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무죄 추정의 원칙은 적용하지 않았다. 마치 방산 비리의 원흉인양 황 제독의 명예를 바닥으로 몰아붙였고, 구치소에서는 일반 수감자(잡범)와 함께 수용하여 얼굴에 멍자국이 있는 등 구타(?)를 당한 정황까지 있었다. 당시의 충격으로 실망하며 중국에 체류하였다가 민주당에 입당했다. 2020년 12월 문재인 정부는 황기철을 국가보훈처장으로 내정하였고, 이번 22대 총선에서 민주당 공천이 확정됐다.(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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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철의 CrisisM] 22대 총선 전쟁에 투입된 별들의 실체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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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철의 CrisisM] 22대 총선 전쟁에 투입된 별들의 실체④
-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21대 총선 후보중에 의무복무 대상자가 아닌 여성으로서 당당하게 육군소장까지 진급한 강선영 장군도 있지만, 출마하고자 첫날 등록한 후보 중 16.5%가 군 복무를 하지 않은 것으로 집계됐다. 중앙선관위가 후보등록 첫날인 21일, 공개한 후보자의 병역 신고 내역에 따르면 후보 311명 가운데 비대상자인 여성 32명을 제외한 279명 중 46명(16.5%)이 병역면제 등을 받은 것으로 파악됐다. 정당별로는 더불어민주당의 병역 면제자가 20명으로 가장 많았고, 국민의힘 18명, 녹색정의당·개혁신당·진보당 각 2명, 소나무당·한국농어민당 각 1명 순이었다. 민주당과 녹색정의당 등 범야권 소속 병역면제자들은 민주화운동 등에 따른 수형을 사유로 면제된 경우가 많다. 송영길(광주 서구갑)·정태호(관악을)·이학영(경기 군포) 후보 등이다. 질병과 신체장애 등을 이유로 평시 군 복무에서 제외된 후보들은 국민의힘 강성만(서울 금천) 후보는 부동시, 장석환(경기 고양을) 후보는 부정맥, 민주당 이정헌(서울 광진갑) 후보는 근시로, 이재한(충북 영동괴산) 후보는 디스크로 전시근로역 판정을 받았다. 국민의힘 윤용근(경기 성남시), 녹색정의당 김영진(부산 중구영도구) 후보 등은 생계 곤란으로 소집면제됐다. 국민의미래 비례대표로 공천된 강선영 후보는 숙명여대 행정학과를 졸업후 여군사관 35기로 임관하여 1993년 육군항공학교에 입교해, 회전익 조종사 95기를 1등으로 졸업하였다. 항공 병과 출신 여군 최초의 정조종사, 최초 항공대대장, 최초항공단장 등 여러 가지 '최초'의 이력을 가지고 있다. 특히 매우 희귀하게도 특전사 제707특수임무대대 역사상 최초의 여성 팀장을 역임했으며, 여군특전중대장, 그리고 특전사 최초의 여군 장교 강하조장(168차)이기도 하다. 항공사에서도 최초로 여군 대형수송헬기인 시누크 헬기 (CH-47) 조종사, 최초 헬기부대 중대장 등을 역임했다. 그랬기에 자신의 군 생활 동안에 거둔 성취에 자부심이 남달랐다는 후문이다. 2017년 12월 인사에서 여군 전투병과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임기제 진급이 아닌 정상으로 준장 진급하여 항공작전사령부 역사상 최초의 첫 여성 참모장으로 취임했다. 2019년 여군 전투병과 출신으로는 최초로 소장으로 진급하여 육군항공작전사령관을 역임후 퇴역했다. 창군 이래 최초의 여성 전투부대 사령관이다. 2024년 2월 국민의힘에 영입되어 입당하면서 정계에 입문하여 비례위성정당 국민의미래 비례대표 국회의원 후보로 최종 공천되었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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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철의 CrisisM] 22대 총선 전쟁에 투입된 별들의 실체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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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철의 CrisisM] 22대 총선 전쟁에 투입된 별들의 실체②
-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국민의힘 지역구 후보로 먼저 강원도 춘천·철원·화천·양구을에서 공천받은 한기호 국방위원장(3선)은 철원출신으로 김화중학교를 나온 뒤 서울 한양공고를 다녔다. 육사 31기로 임관하여 2사단장, 육본정보작전부장, 5군단장, 육군 교육사령관을 역임하는 등 작전분야에 정통했으며 육군중장으로 전역하였다. 한 후보는 현역 위관시절 탁월한 지휘력과 업무추진력이 돋보여 당시 사단장 박세직 장군의 조카 사위가 되었다. 전역 후 바로 철원·화천·양구 지역에 출마하여 18, 19, 21대 국회의원을 역임하여 장성출신으로는 드물게 4선째 도전 중이다. 충남 논산시·계룡시·금산군 선거구에서 공천받은 박성규 후보는 1952년 충청남도 논산시 태어나 논산대건고등학교를 졸업하고 3사10기로 임관해 군 시절의 경력 대부분을 기계화보병 부대 지휘관으로 역임한 기동전 분야의 전문가다. 2011년 10월부터 육군3사관학교 출신 최초로 제1야전군사령관에 역임했으며, 전역후 여주대학 특수전과 석좌교수로 재직하다가 20대 대선을 앞두고 윤석열 전 검찰총장 지지를 선언하며 국민캠프에 합류했다. 지역 경선에서 예비후보인 박찬주(육사37기, 전 2작사령관), 신인섭(육사41기, 전 사이버사령부 단장) 등을 꺽고 승리했지만, 본선 상대는 민주당의 황명선 전 논산시장이다. 남양주시 갑구에서 경선에 승리한 유낙준 후보는 1956년 경기 남양주에서 태어나 해사 33기로 임관해 합참 전략기획본부과장, 해병대 6여단장, 한미연합사 연습처장, 해병 1사단장을 거쳐 2010년에 해병대사령관 겸 초대 서북도서방위사령관을 지냈다. 재직중 해병대 소장들한테 ‘유사령관이 여권 실세에게 수억원을 주겠다는 각서를 썼다’는 음해 투서로 곤욕을 치뤘으나 군검찰은 소문은 사실이 아니라고 밝히며 두 소장을 구속했다. 전역후 경운대 군사학과 초빙교수로 활동했다. 2015년 12월 남양주시 갑 지역구에서 ‘민생사령관’이란 슬로건을 내세우며 새누리당 예비후보로 경선에 나섰으나 여론조사 경선에서 심장수 후보에게 패해 출마하지 못했다. 이번 제22대 총선에선 남양주시 갑구 국민의힘 당내경선을 통해 심장수 전 당협위원장을 제치고 본선 진출에 성공했다. 심장수 전 당협위원장이 지역에서 20년 가까운 시간동안 당협위원장을 맡아 활동해온 점을 감안하면 이변으로 보여진다. 하지만 남양주시 갑구는 평내호평 지구의 압도적인 민주당 세로 국민의힘의 험지로 간주되어 왔는데, 이번 총선에서 과연 유낙준 후보가 2004년 열린우리당 최재성 후보가 당선된 이래 20년만에 처음으로 남양주시 갑구에서 국민의힘 깃발을 꽂을 수 있을지가 주목된다(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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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철의 CrisisM] 22대 총선 전쟁에 투입된 별들의 실체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