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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36) 대한민국 지뢰 잔혹사를 돌파한 어벤저스들
    ▲ 목함지뢰 3발 폭발, 수색 중인 부사관 2명에게 중상 입힌 DMZ 지뢰도발 현장 [방송화면 캡처]2015년 북한군이 불법매설한 목함지뢰 밟은 우리 부사관 2명 중상 6·25전쟁 이후 지뢰매설 추정치, DMZ 남측 127만말 북측 80만발 2001년부터 민간인 지뢰사고는 40건, 군 사고는 26건이 발생, 휴전 후 4000명 피해 [시큐리티팩트=김희철 칼럼니스트] 대한민국은 6.25전쟁 이후 수십년 동안 '지뢰 잔혹사'를 겪어왔다. 그 가슴 아픈 역사를 정면돌파해온 숨은 어벤저스들을 소개한다. 2015년 북한군이 군사분계선을 불법으로 침범해 서부전선 DMZ 철책 통문에 의도적으로 매설한 목함지뢰에 의해 DMZ수색작전 중 우리 부사관 2명에게 중상을 입힌 사건이 발생했다. 사실 軍은 북한의 도발에 의해 피해도 입지만 기존 매설된 지뢰를 제거하면서도 많은 인명 손실을 겪는다. 최근 국제 민간기구 ‘국제지뢰금지운동’(ICBL)도 DMZ의 경우 1㎡당 2.3개꼴의 지뢰가 매설돼, 세계 최고 수준의 지뢰 밀도라는 분석을 내놓았다. DMZ 전 지역은 6·25전쟁 이후 출입이 통제된 미확인 지대로 지뢰 매설량을 추정하는 것은 제한된다는 것이 국방부의 공식 입장이다. 하지만 한국지뢰제거연구소는 각종 군 자료를 토대로 남측에는 127만말, 북측에는 80만발, 합계 약 200만발의 지뢰가 묻힌 것으로 추정했다. 또 남한 지역에만 DMZ에 52만발, 민통선 이북에 74만발, 민통선 이남에 1만발이 설치된 것으로 봤다. 문제는 전체 지뢰지대 중 미확인지대가 94.8%나 된다는 것이다. 특히 DMZ 내부의 경우 기확인지대가 2.7%뿐으로 사실상 모든 지역이 미확인지대다. 철책선 순찰로 옆에는 ‘들어가면 죽는다’, ‘미확인지뢰지대’ 등의 경고판이 곳곳에 있다. 국방부는 대인지뢰 90만발로는 M2, M3, M14, M16A1 등을, 대전차지뢰는 M6, M7, M15 등을 DMZ에 묻은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대부분이 6·25전쟁부터 1980년대까지 묻은 냉전의 산물이다. 약 40만발 묻힌 발목지뢰로 불리는 ‘M14’는 플라스틱 재질로 무게가 9.4g에 불과해 폭우가 오면 유실되곤 한다. 밟으면 발목을 앗아 간다. M16A1은 밟으면 공중으로 도약해 폭발하기 때문에 여러 사람이 피해를 입는다. DMZ수색작전 중 우리 부사관 2명에게 중상을 입힌 북한의 대표 지뢰인 ‘목함지뢰’는 폭약의 파괴력이 M14의 7배다. 나무 상자에 TNT폭약을 넣었기 때문에 홍수가 나면 물에 떠서 유실되곤 한다. 2001년부터 2016년까지 민간인 지뢰사고는 40건, 군 사고는 26건이 발생했다. 휴전 후부터 따지면 4000명이 넘게 피해를 입은 것으로 추정된다. ▲ 전방지피와 지뢰제거 공병팀의 시범모습[사진제공=국방부] 1982년 GP장 시절 인근부대 지뢰제거 중 폭발로 간부 순직 및 병사 실명 1987년 지뢰제거에 솔선수범(率先垂範) 하다 순직한 故 강병식 대령 1982년부터 필자가 근무했던 승리부대는 GP현대화 및 추진철책 공사 위해 많은 부대가 DMZ에 투입됐다. GP장근무를 하면서도 GP현대화공사장 확장과 진입로 개척을 위해 주변 지뢰 제거작업을 했다. 어느날 인접 GP에서 유승한 중위(학군19기)와 한황진 중위(육사37기)가 진입로 개척을 위해 불도저까지 동원하여 지뢰 제거 및 도로 확장공사를 하고 있었다. 유중위는 안전을 책임지는 선탑자로서 불도저에 타서 운전병을 통제하였고, 한중위는 소대원들을 데리고 주변 경계를 하였다. 불도저의 삽날이 땅을 파고 들어가는 순간 ‘꽝’하는 소리와 함께 대전차 지뢰가 터져 삽날1/3이 파편이 되어 흩어졌고 도져는 부서진 삽날을 들어 올린채 지뢰지대로 점점 더 들어갔다. 지뢰폭발로 흩어진 파편은 운전병의 양눈을 파고들었고 선탑자 유중위와 한중이도 온몸에 파편이 박혔다. 다행이 모두 방탄조끼를 입고 있었기 때문에 치명상은 아니였지만 안면이 피범벅이 되었다. 선탑자 유중위는 양눈에서 피가 흐르는 운전병 대신 불도저를 급정거 시키고, 상급부대에 사고 보고를 했다. 아찔한 순간이 었다. 사전 지뢰탐지를 했지만 깊히 밖혀 있던 지뢰를 찾지 못한 탓에 사고가 발생했고 의무후송을 간 운전병은 실명하고 두명의 중위는 얼굴이 곰보가 되어 있었다. 필자가 GP장을 마치고 DMZ추진철책 설치를 위한 지뢰지대 개척 작업시에는 소대원들 모두 머리카락과 손톱을 깍아 유서와 함께 편지봉투에 넣어 소대에 보관하고 DMZ로 투입했었다. 인접 사단에서 중대장 근무를 하던 이충원 육사동기는 지뢰제거 작전시 지뢰폭발로 중상을 입어 장기간 입원치료를 받았고, 훗날 유신사무관으로 나가 통일부에 근무하기도 했는데 그 트라우마가 아직도 남아 있다고 한다. ▲ 전방 민통선 이북에서 지뢰제거중인 국군장병 모습[사진제공=국방부] 1987년 필자가 사단작전장교 근무시절 당시의 전초(GP담당)대대장 고(故) 강병식대령(육사31기)은 GP주변 지뢰제거 임무를 부여받고 맨 선두에 서서 지뢰제거를 하다가 M16A1 대인지뢰 폭발로 두다리가 절단되어 순직했다. 바로 뒤에 있던 중대장과 소대장도 부상을 당해 후송되어 간신히 회복되었으나 트라우마 때문에 군생활을 다하지 못하고 조기 전역했다. 지휘관은 가장 어려운 순간에 맨 앞에서 “나를 따르라(Follow me..!)”하는 솔선수범(率先垂範)을 보이는 위치이다. 강 대령은 대대장으로서 임무를 다하기 위해 부하들에게 지뢰제거의 선두를 맡길 수도 있었는데 너무도 부하들을 사랑한 나머지 모범을 보였고, 안중근 장군의 유묵처럼 ‘견위수명(見危授命, 위기를 보면 목숨을 바친다)’을 실천하다 순직했다. 필자가 DMZ추진철책 설치를 위한 지뢰지대 개척 작업 임무를 수행하다가 상급부대 명령에 의해 대대본부 작전항공장교 보직을 받고 소대장직을 인계한 후 얼마되지 않아서 그 소대의 선임하사도 지뢰폭발로 운명을 달리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죽음의 공포와 싸우는 군인들의 위국헌신(爲國獻身)하는 자세는 지금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우리국민들은 생사의 갈림길에서 두려움을 감수하면서 국가를 위해 임무를 완수하는 군인들과 운명을 달리한 순직자들에게 감사하고 추모하며 보답을 해주어야 할 의무가 있다. 국군통수권자인 대통령은 국가를 위해 순직한 이들을 최우선적으로 배려해야 한다. 그러나 현 대통령은 지난 11월 ‘연평도 포격도발8주기 추모식’과 이번 3월 ‘서해수호의 날’ 기념식에는 참석하지 않았다. 또한 현충일 천안함-연평해전 유족들을 청와대로 초청해놓고 김정은 사진 테이블에 올려놓아 제2연평해전에서 전사한 한상국 상사의 아내 김한나 씨 등 가족들을 울먹이게 만들었다. ▲ 2019년 ‘518민주화운동기념식’에서 문대통령이 기념사하는 모습[동영상캡쳐] 하지만 문대통령은 ‘518민주화운동기념식’에 참석하여 장시간의 기념사까지 하였다. 우리나라의 민주화를 위해 희생한 영혼들을 위로하고 추모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국가의 안위를 위해 죽음의 공포 속에서 목숨을 잃은 장병들을 국가통수권자가 간과했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문대통령은 국군의날 기념식 및 사관학교 졸업식에서 "평화를 만들어가는 근간은 도발을 용납하지 않는 군사력과 안보태세"이고 "이기는 군대가 돼야 한다"면서 북한 핵과 미사일 위협에 대한 대응능력을 확보해야 한다는 점을 거듭해서 강조했다. 대통령의 기념사처럼 “국가다운 국가, 싸워 이기는 군대”를 만들어야 한다. 따라서 정부는 나라를 위해 생사의 기로에서 주저함 없이 임무를 수행하다 희생한 전몰장병들과 그 가족들을 최우선으로 끝까지 책임지기를 간절히 기대한다. 정부의 배려와는 무관하게, 국가와 국민들을 위해 현재 이 시각에도 견위수명(見危授命)하는 우리의 자랑스런 국군장병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육군본부 정책실장(2011년 소장진급), 청와대 국가안보실 위기관리비서관(2013년 전역), 군인공제회 관리부문 부이사장(2014~‘17년), 현재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한국열린사이버대학 교수 주요 저서 : 충북지역전사(우리문화사, 2000), 비겁한 평화는 없다(알에이치코리아,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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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6-14
  • [김희철의 Crisis M] 섀너핸 미 국방장관 대행의 방한이 남기고 간 ‘잔해(殘骸)’
    ▲ 패트릭 섀너핸 미국방장관 대행과 정경두 국방장관이 열병하며 대화를 나누는 모습 [사진제공=국방부] 北, 외세추종의 종착점은 파멸이라며 ‘민족공조’ 강조 한미, ‘불변의 한미동맹’을 아시아 평화의 중심축 역설 문 대통령의 '두 바퀴 평화론'의 미래 주목돼 [시큐리티팩트=김희철 칼럼니스트] 지난 3일 ‘한·미 국방장관회담’이 끝나자 북한은 5일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을 통해서 “남한 당국이 남북관계 개선에 있어 미국 등 외세 눈치를 보고 있다”고 비난하며 “외세추종은 민족의 이익을 해치는 길이고, 그의 종착점은 파멸이기 때문에 온갖 화난의 근원인 ‘외세의존병’을 털어버리고 ‘민족공조’에 나설 것”이라며 거듭 압박했다. 대남 선전매체 ‘메아리’도 남북 간 합의가 제대로 이행되지 않는 이유가 "말로만 '남북선언들을 이행할 확고한 의지가 있다'고 떠들고 실지 행동에서는 그 누구의 눈치만 보며 뒷걸음질을 치고 있는 남조선 당국의 우유부단한 태도"라고 주장했다. ▲ 평양 시내 모습과 노동신문[사진제공=연합뉴스] 다른 선전매체인 ‘우리민족끼리’는 최근 한국군이 진행한 을지태극연습에 대해 "명백히 우리 겨레와 국제사회의 평화 염원에 찬물을 끼얹고 조선반도 정세 긴장을 몰아오는 무분별하고 위험천만한 도발 행위"라고 비난했다. 올해 북한은 각종 매체를 통해 남한 당국에 민족공조를 촉구하고 있으며, 계속된 압박에도 한미 국방장관회담 등에서 남측이 “대북제재 이행 등 한미공조를 지속”하자 불만을 드러낸 것으로 분석된다. ▲ 6월 2일 싱가포르, ‘18차 아시아 안보회의(일명 샹그릴라 대화)’ 참석을 계기로 ‘제12차 한미일 국방장관회의를 개최’하여 정경두, 패트릭 섀너핸 국방장관, 이와야 타케시 일본 방위대신이 북한정세, 지역안보, 3국 안보협력 등에 대해 논의 하였다. [사진제공=국방부] 한편, 방한을 마치고 4일 일본에 도착한 패트릭 섀너핸 미국 국방장관 대행은 아베 신조 일본 총리를 만났다. NHK방송 보도에 따르면 섀너핸 대행은 이 자리에서 북한이 지난달 미사일을 발사한 것을 바탕으로 ‘아시아 안보회의’에서 북한 비핵화를 위한 일본을 포함한 관계국들의 대응 등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제재 결의를 완전하게 이행하기 위해 협력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이어 그는 "미국은 (북한에 의한) 일본인 납치문제의 해결을 계속해서 지원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한 섀너핸 대행와 아베 총리는 미국과 일본이 함께 추진하는 '인도ㆍ태평양 구상’의 실현을 위해 협력을 강화해 나가기로 했다. 섀너핸 대행은 "미·일 동맹은 전에 없을 정도로 굳건하다"며 " 앞으로도 미·일 동맹의 억지력과 대처력을 강화하고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을 반드시 실현시키겠다"고 말했다. 美 강경한 기류인 ‘先 비핵화, 後 제재완화'에 文 '두 바퀴 평화론' 멈짓멈짓 방한한 패트릭 섀너핸 미 국방장관 대행은 3일 오후 문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북한의 비핵화 방안과 관련해 온도 차를 보였다. 섀너핸 대행은 '先 비핵화, 後 제재완화'라는 기존 미국의 입장을 고수했다. 문 대통령은 대북제재 유지 속에서도 그와는 별도로 이산가족 상봉과 식량지원 등 인도적 지원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이 접견자리에서 "대화를 통한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항구적인 평화구축을 위해서는 한미동맹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굳건한 한미동맹을 통해 한반도 평화프로세스가 성공할 수 있도록 뒷받침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고 고민정 청와대 대변인이 서면 브리핑을 통해 전했다. 고 대변인은 또 "문 대통령과 섀너핸 대행은 비핵화 목표 달성에 의미있는 진전이 있을 때까지 대북제재가 유지돼야 한다는 원칙을 재확인했다"고 밝혔다. 앞서 북한의 비난 방송 압박에 따라 대북제재 완화 움직임을 보이던 청와대가 남북관계 발전이 북미관계 개선이라는 선순환 관계로 이어진다는 기존 문 대통령의 '두 바퀴 평화론'을 재확인 하면서 미국의 강경한 기류에 보조를 맞췄다는 분석이다. ▲ 정경두 국방부 장관과 박한기 합참의장이 패트릭 섀너핸 미국 국방부 장관 대행과 3일 오전 서울 용산 국방부에서 한미 국방장관 회담에 앞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국방부] “미래연합사령관의 한국군 합참의장 겸직과 한미연합사를 국방부 영내로 이전하는 검토안” 포기 한미연합사의 평택 이전은 미군이 자동개입하는 ‘인계철선’무력화 등 유사시 수도권 방어에 부정적 영향 대통령 접견 전인 3일 오전에 진행된 한·미 국방장관 회담에서 한미연합군사령부를 경기 평택시 ‘캠프 험프리스’로 이전하기로 합의한 것은 기존의 ‘서울 용산 국방부 부지 내 이전’ 방침을 뒤집었다는 측면에서 주목된다. 국방부는 한·미 연합작전 수행에 필요한 의사소통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한미연합사를 국방부 영내로 이전하는 방안을 지난해까지 강력히 추진했다. 하지만 지난해 11월 새로 부임한 로버트 에이브럼스 한미연합사령관이 금년 1월 국방부 내 건물들을 둘러본 뒤 캠프 험프리스 이전 방안을 국방부에 강도 높게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방부는 이날 회담 후 “한미연합사 작전 효율성과 연합방위태세를 높일 것이라는 데 공감했다”고 평택 이전 배경을 설명했다. 한미연합사의 국방부 영내 이전이 작전 효율성과 연합방위태세 강화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을 인정한 셈이다. 국방부 영내 이전이 졸속으로 추진됐다는 논란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군 관계자는 “한미연합사 미국 측 참모들은 주한미군사령부와 유엔군사령부 참모 역할을 함께 수행하는데 국방부 영내에 사령부를 두면 미국 측 인원들은 근무지가 서울과 평택으로 나뉘는 문제가 있다”며 불가피성을 강조했다. 주한미군 사정에 밝은 군 소식통은 “국방부 영내로 이전하면 적지 않은 시간과 비용을 들여 지하벙커와 지휘통제자동화시스템(C4I) 등을 설치해야 하는 문제가 있어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며 “미군의 핵심 보안시설이 한국 측에 노출될 위험을 피하려는 의도도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을 담당할 미래연합군사령부의 수장을 정하는 것은 한·미 군 당국이 오래 전부터 고심했던 대목이다. 전작권이 한국군에 전환되면 지휘체계는 한국군 대장이 연합군사령관을 맡고 미군 대장인 주한미군사령관(현재의 한미연합사령관)이 부사령관을 맡는 미래연합사 체제로 바뀐다. 당초 한·미 국방부는 미래연합사령관을 한국군 합참의장이 겸직하는 방안을 검토하여 19-1차 동맹연습시에는 적용하여 훈련했고 ’19-2차 동맹연습’에서도 적용하여 추진하려 했으나, 합참의장의 임무가 과중해질 수 있다는 미국 측의 우려를 반영, 합참의장과 별도 직위로 분리하기로 결정했다. 군 관계자는 “합참의장은 평시에 통합방위사령관과 전시에는 대통령과 국방부 장관을 보좌하며 계엄사령관 역할을 수행하고 전시 군사외교도 진행해야 하는 등 업무가 매우 많은 직위”라며 “전작권까지 수행하는 것은 어렵다는 판단이 있었다”고 말했다. 미래연합사 체제로 바뀌면 현재의 한미연합사 부사령관(한국군 대장) 직위는 없어지는데, 이때 남게 되는 대장 자리 1석을 미래연합군사령관에게 배정하게 된다. 또한 일각에서는 한미연합사의 캠프 험프리스 이전이 유사시 수도권 방어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미군이 서울에 존재함으로써 북한의 도발을 억제하는 무력시위 효과가 사라질 수 있는 것이다. 미군이 있어야 북한 공격 시 미군이 자동개입하는 ‘인계철선’이 평택 이전 시엔 서울에서 작동하지 않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평시에는 서울의 국방부·합참과 차량으로 1시간30여분 떨어진 캠프 험프리스의 한·미연합사 간에 유기적인 의사소통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점도 문제로 꼽힌다. 국방부 관계자는 “합참이나 국방부와 연계하는 것은 C4I로 대체할 수 있다. 공간적으로 떨어져 있다고 해서 지휘 통솔에 공백이 생기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미 국방 당국이 서울 용산 미군기지 반환에 따라 한미연합군사령부(연합사)를 경기 평택 캠프 험프리스로 이전하기로 하면서 용산공원 조성사업도 본격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 지난 4월1일 (현지시간) 미 국방부 본청에서 미국 국방부 장관 대행과 회담하는 정경두 장관(워싱턴=연합뉴스) 전작권 전환의 첫 번째 조건인 한국군 핵심군사능력을 확보해도 전환은 불투명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대한 한국군의 필수대응능력’과 ‘한반도 및 지역 안보환경’이 관건 지난 4월1일(현지시간) 미 국방부 청사(펜타곤)에서 열린 패트릭 섀너핸 미국 국방부 장관 대행과의 회담에서 정경두 국방부 장관은 모두발언을 통해 "최근에는 전작권 전환의 첫 번째 조건인 한국군 핵심군사능력에 대한 한미 공동평가를 위해 매월 박한기 한국 합참의장과 로버트 에이브럼스 장군(주한미군사령관 겸 한미연합사령관)이 특별상설군사위원회를 개최하고 있다"고 밝혔다. 당시 한국군 합동참모본부에 따르면 박 의장과 에이브럼스 사령관은 3월 처음으로 ‘특별상설군사위원회’를 열고 앞으로 매달 이 위원회를 통해 전작권 전환 이후 연합작전을 주도할 한국군의 핵심군사능력을 평가하기로 했다. 군의 한 소식통은 "기존 상설군사위원회(PMC)는 반기(6개월)에 한 차례 열렸지만, SPMC는 PMC가 열리는 달과, 전구(戰區)급 한미 연합 연습이 실시되는 달을 제외하고 매달 열릴 것"이라며 "한국군의 연합작전 주도 능력 등을 평가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미는 2014년 제46차 안보협의회의(SCM)에서 '조건에 기초한 전작권 전환' 원칙에 합의하면서 ▲ 한미연합방위를 주도할 수 있는 한국군의 핵심군사능력 확보 ▲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대한 우리 군의 초기 필수대응능력 구비 ▲ 전작권 전환에 부합하는 한반도 및 지역 안보환경 등 3가지를 전작권 전환 조건으로 제시했다. 이중 한미 군 당국이 가장 중시하는 조건은 '한미연합방위를 주도할 수 있는 한국군의 핵심군사능력'이다. 한 단계의 검증이 1년을 초과할 수 있기 때문에 검증 이전평가(Pre-IOC)생략한 가운데 한미는 우선 올해 8~9월로 예상되는 전구급 한미 연합 지휘소훈련(19-2차 동맹연습)을 통해 한국군 주도의 연합작전 수행능력을 평가하는 최초작전운용능력(IOC) 검증을 실시하기로 했다. 최초작전운용능력(IOC)에 이어 2020년에 완전운용능력(FOC) 검증과 2021년에 완전임무수행능력(FMC)까지 마치면 문재인 정부 임기 마지막 해인 2022년에 전작권 전환이 가능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다만, 합참작전을 주도하는 한국군의 핵심군사능력 이외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대한 한국군의 필수대응능력과 한반도 및 지역 안보환경도 전작권 전환조건에 포함돼 있기 때문에 단계별 검증 절차를 마쳤다고 반드시 전작권 전환이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나머지 두 조건은 한반도 비핵화 및 평화체제 구축과 연계돼 있다. 따라서 문 대통령 임기 내 전작권 전환은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남북 및 북미 간의 외교적 노력이 결실을 봐야 가능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며 임기내 전작권 전환은 오리무중(五里霧中)이다. 섀너핸 대행의 방한이 남긴 잔해(殘骸),우리 검토안이 백지화? 우리의 전작권전환을 위한 준비중 미래연합사령관을 한국군 합참의장이 겸직하는 방안과 한미연합사를 국방부 영내로 이전하는 안은 이번 섀너핸 대행의 방한으로 인해 모두 백지화로 결정됐다. 이런 상태에서 국방부 발표대로 연합사 작전 효율성과 연합방위태세를 높이기 위해 한미연합사가 평택으로 이전하면 주한미군의 핵심 기능은 모두 캠프 험프리스에 집중된다. 그렇지만 미군이 서울에 존재함으로써 북한의 도발을 억제하는 무력시위 효과가 사라져 북한 공격 시 미군이 자동개입하는 ‘인계철선’의 역할이 무력화될 수밖에 없는 상태가 됐다. 하지만 한반도의 안정과 국민의 행복을 위해 자신의지를 감추는 군과 정부의 노력은 정말로 눈물나게 만든다. 국방부 장관이나 합참의장은 직속 상관인 국군통수권자인 대통령의 지시에 복종해야한다. 허나 그속에서도 튼튼한 안보테세 유지를 위해 머리를 짜내며 애를 쓰고 있지만 일부 軍 선배들로부터 많은 질타를 듣고 있다. 게다가 섀너핸 대행의 “한미동맹에 대한 철통 같은 믿음을 갖고, 튼튼한 한미연합방위태세의 유지하는 것은 한반도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외교 공간을 확보하는 데 기여하는 것이다”라는 언급에 우리 대통령도 장관도 의장도 그대로 수용해야하는 우리의 정치/외교적인 현실이 너무도 안타깝다. “위기(危機)는 또다른 기회(機會)이다” 섀너핸 대행의 방한의 잔해는 씁슬한 미소를 짓게하지만 전화위복(轉禍爲福)으로 바꿔야 한다. 상하 좌우 옆에서 들려오는 불편한 외침 속에서도 위기(危機)를 호기(好機)로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孤軍奮鬪)하고 있는 우리 軍 현역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육군본부 정책실장(2011년 소장진급), 청와대 국가안보실 위기관리비서관(2013년 전역), 군인공제회 관리부문 부이사장(2014~‘17년), 현재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한국열린사이버대학 교수 주요 저서 : 충북지역전사(우리문화사, 2000), 비겁한 평화는 없다(알에이치코리아,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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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6-10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35) 호국보훈의 길에도 통하는 미스트롯을 키운 힘
    ▲ 미스트롯에서 맹활약한 가수 송가인 및 홍자[동영상 캡처] ‘미스트롯’의 최고 시청률은 송가인과 홍자간 '선의경쟁'의 힘 참군인 동기인 고(故) 한황진 중령과의 애틋한 경쟁 생각나게 해 고(故) 이현부 중장과 한 중령 헬기사고로 함께 순직해 6월 호국보훈의 달 맞아 대의를 위한 희생의 길 다짐 [시큐리티팩트=김희철 칼럼니스트] 최근 급부상한 연애인이 미스트롯 우승자인 ‘송가인’이다. 치열한 예선전에서 기존가수인 ‘숙행’과 ‘김양’ 등의 오랜 연애인 경험을 활용한 경쟁이 경연을 재미있게 만들었고, 절대 극한의 절정은 준결승전에서 ‘홍자’와 ‘송가인’의 맞대결 경쟁(競爭)을 유도하여 극적인 긴장과 희열을 느끼게 만들었다. 필자가 GP장 근무시에도 당시의 전성수 대대장은 GP장의 선의경쟁(善意競爭)을 유도하여 자발적인 노력으로 부대발전에 기여하게 했었다. 겨울이 다되어 연말 우수부대 선발 시기가 되었다. 어느날 야간 경계작전을 마치고 아침 마도로스(GP장) 지휘보고까지 끝냈다. 소대원들의 취침상태와 오전 경계근무자를 배치를 확인한 후 오침에 들어가려는 순간 전화벨이 울렸다. 방금 지휘보고를 드렸던 대대장이었다. “김중위 오늘도 수고했어 자네들 때문에 내가 발을 주~욱 벗고 잘 수 있네…”하면서 “우측 중대의 한황진 중위(육사 37기, 동기)는 GP의 경계진지에 보조 장비를 설치해 경계효과를 높이고 있던데 한번 참고해서 잘해봐...”라고 뜬금없는 소리를 하며 전화를 끊었다. 대대장의 말이 귓전을 맴돌아 깊은 잠을 잘 수 없었다. 점심시간이 되어 침상에서 나왔다. 바로 우측 중대의 한중위에게 전화를 걸었다. “ 야, 어떻게 했길래 대대장이 극찬을 하며 너에게 배우라고 하냐?” 한중위는 껄껄걸 웃으면서 “웃기지 마라, 대대장님이 어제 자기 GP에 들어 오셔서는 좌측의 김희철이는 ‘이런거 저런거’ 등 색다르게 운용하여 GP원들의 사기도 높이고 경계 효과도 극대화 시킨다며 너에게 전화해서 알아보라”고 하더라 대대장의 치열한 선의경쟁(善意競爭) 유도에 우리 둘은 걸려든 것이었다. 하지만 즐거웠다. 전화를 통하며 한중위와의 우정은 더욱 돈독 해졌다. 당시 우측의 선봉 GP장이었던 고(故) 한황진 중령은 육사를 3등으로 졸업하고, 럭비부 주장까지 할 정도로 실력과 리더십이 뛰어난 군인이었다. ▲ 대전 현충원에 안장된 한황진 중령 묘비[사진제공=김희철] 필자가 태풍부대 작전보좌관으로 근무하던 꼭 27년 전, 1992년 2월 14일에 경북 선산 일대 야산에서 군용헬기 추락사고가 발생했다. 평소 존경하던 7군단장 고(故) 이현부 중장과 사랑하는 동기생 한황진 중령을 떠나보낸 날이다. 이들은 전술토의 참가를 위해 헬기를 타고 이동 중 경북 선산 일대 야산에서 헬기가 추락해 탑승한 이현부 군단장 등 7명(작전참모 대령 허정봉, 군수참모 대령 이원일, 감찰참모 대령 노영건, 비서실장 소령 한황진, 전속부관 중위 서상권, 헬기승무원 상병 조규상)이 동시에 순직했다. 故 이현부 장군은 육사 졸업시 학업성적과 리더십이 가장 우수한 생도가 받는 대표화랑상을 수상했고, 군사전술과 작전지휘 능력과 리더십을 포함한 인품이 탁월하다는 정평을 얻어 군단장직책에도 동기생 중에 가장 빨리 보직됐으나, 그만 취임 두 달 만에 사고를 당했다. 이들의 죽음은 당시 그들을 군생활의 멘토로 삼고 있던 필자에게는 대단히 충격적이고 안타까운 일이었다. 또한 “추락 당시 수행원 모두가 이 장군을 끝까지 보호하려 장군을 감싸고 있었다”라는 사고수습자가 전해준 증언은 많은 이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하고 숙연케 했다. 이 장군과 한 중령의 사망소식에 많은 장병의 조문이 있었으며, 전역한 병사들까지도 수많은 애도를 표해왔다. ‘시졸여애자고 가여지구사(視卒如愛子故 可與之俱死)’, 즉 “장수가 병사들을 사랑하는 아들 돌보듯 한다면 가히 생사를 같이할 수 있다”는 손자병법 지형편을 확인하게 하는 대목이다. 이들은 죽어서도 함께 했다. 대전 현충원의 묘비 번호를 1048번부터 1052번까지 나란히 부여 받고 안장되었고, 사랑하는 동기생 故 한 중령은 새로운 군번인 묘비번호 ‘1-203-1051번’을 부여 받았다. 故 이현부 장군과 한황진 중령은 국가를 위해 순국했다. 이들은 군에서 선후배들의 존경과 신뢰를 한없이 받았고 모범적 근무를 통해 군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그러기에 이들의 순국은 남을 위한 희생이었다. 자신의 목숨보다 조국을 더욱 뜨겁게 사랑했던 삶은 오늘날까지 많은 이에게 깊은 감동을 준다. 필자는 대대장의 각별한 사랑을 나누어 받았던 한중령과 추억이 많았다. 임관해서 최초 임지인 승리부대의 전입 동기였고 가장 늦게까지 오랫동안 같이 근무한 전우이기도 했다. 한중령은 동기들 중에 너무도 뛰어나 수경사 육사교수부 등 주요부서에서 차출되었지만 자신마저 야전을 떠나 생활여건이 좋은 곳으로 가면 누가 전방을 지키냐며 야전을 고수했던 참군인 이었다. 필자는 매년 2월14일이 되면 대전 현충원을 찾아 군생활을 하면서 한중령이 못한 것을 내가 대신해서 군발전에 기여하겠다는 각오를 다지기도 했었다. 이러한 선의경쟁(善意競爭) 파트너가 있어 좀더 최선을 다할 수 있었고 그 덕에 능력도 부족한 필자가 장성의 반열에 오르게 된 것이라고 생각도 해본다. 6월 호국보훈의 달을 보내면서, 선의경쟁의 파트너로 나를 책찍질하게 만든 故 한황진중령을 비롯한 옛 전우들의 숭고한 뜻을 되새기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책무를 다하는 수많은 군인들처럼 대의를 위한 희생의 길을 다시 한번 더 조용히 다짐해 본다. 육군본부 정책실장(2011년 소장진급), 청와대 국가안보실 위기관리비서관(2013년 전역), 군인공제회 관리부문 부이사장(2014~‘17년), 현재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한국열린사이버대학 교수 주요 저서 : 충북지역전사(우리문화사, 2000), 비겁한 평화는 없다(알에이치코리아, 2016)
    • 소통시대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
    2019-06-05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34) 독수리를 간첩으로 오인한 부하를 격려하는 목민관(牧民官)이 필요
    ▲ 필자가 근무하던 DMZ내 GP를 위문 방문한 당시 연대장(예비역 대장 박세환), 대대장(중령 전성수)과 기념 촬영한 모습이 게재된 당시의 전우신문[사진제공=김희철] 힘이 됐던 박세환 대장의 GOP수칙, “충성, 효도, 영웅!” 리더의 약속 이행이 조직 사기 높여 독수리를 오인 관측해 전 GOP부대가 투입 소동, 연대장은 오히려 격려 적극적 실패'를 격려하는 리더가 조직의 '창의성' 키워 [시큐리티팩트=김희철 칼럼니스트] GP장 근무 시절 연대장은 박세환 대장(前 재향군인회장)이었다. 그분은 체구가 크셔서 짚차로 이동하실 때에 차가 한쪽으로 기울여져서 멀리서도 알아 볼 수 있었다. GP투입 후 GP 현대화 공사로 소대원들은 경계근무에 공사 지원까지 힘들게 근무하여 거의 지쳐 있었다. 때마침 군사령관이 현대화 공사 GP 중 한 곳을 지도방문하여 격려한다는 연락이 왔고, 소대는 VIP 방문을 대비해 각 진지와 교통호 보강 공사, 생활관 환경 조성 작업 등에 불철주야 전력투구했는데, 방문 당일 기상 악화로 연기가 반복되다가 결국 취소되고 말았다. 소대원들은 실망했지만 최종 VIP 방문 예정일에 위 사진처럼 연대장이 대신 GP를 격려 방문하여 그나마도 대리 만족을 느낄 수 있었다. 박 연대장은 대대장 시절부터 GOP부대를 지휘할 때에는 “경계잘해 충성하고, 무사고로 효도하며, 간첩잡아 영웅되자!”라는 구호를 강조 했었다. 당시 철책을 담당한 모든 부대는 연대장의 구호를 매일 복창하여 각오를 다지며 이를 생활화 했다. ▲ 동부전선의 현대화 된 GP와 통문 모습 (사진제공=국방부) 그러던 중 어느날, 야간 근무를 마치고 오전 오침을 하고 있는데, 관측병이 긴급 보고를 하여 눈을 비벼 뜨며 전망대에 올랐다. 보고장소를 쌍안경으로 확인하니 새까만 복장의 미상 한명이 북쪽에서 안보이는 산 계곡에 앉아 있었고 고개를 좌우로 돌리며 사방을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연대장의 구호처럼 “간첩잡아 충성할 기회”를 포착했다 싶어 바로 상급부대에 보고를 하고 소대원들을 전원 투입 후 일부 분대는 의명 현장으로 투입할 준비를 한 상태에서 계속 관측하였다. 발견된 지점은 군사분계선(MDL) 남쪽으로 야간에 월남하여 귀순하려는 탈북자 또는 침투한 간첩으로 판단했다. 경계강화 지시가 하달되어 GOP 전부대는 전원투입하고 상급부대 수색조도 비무장지대(DMZ)로 투입할려고 GOP 통문에 대기하는 와중에 그 물체는 시야에서 사라졌다. 필자는 빨리 투입 못한 작전조가 답답했는데, 바로 그때 관측된 지점 하늘로 날개 펼친 모습이 2미터가 넘는 새까만 독수리가 날아 오르는 모습이 포착되었다. 덩치 큰 독수리가 앉아 있던 모습을 사람으로 잘 못 판단한 것이었다. 난감했지만 즉각 상급부대로 수정 보고하고 일련의 긴급상황은 종료되었다. 하지만 야간 근무 후 피곤함을 풀기위해 오전 취침 중에 긴급 투입된 소대원과 인접 다른 부대원들에게는 죄송했고 상급부대 상황근무 선배들의 정확히 판단해 보고하라는 쓴 소리도 들었다. 하지만 GP를 방문한 연대장은 오인 보고 상황에 대해 핀잔 보다는 보고 시기를 놓치지 않은 것을 칭찬을 하면서, 덕분에 훈련 한번 잘했다며 독수리를 오인 보고한 병사를 질타하지 말고 격려해줄 것을 지시하셨다. 사실 먼 거리에 떨어져 있는 독수리의 모습은 완벽히 사람이었고 필자가 확인했을 때에도 똑 같이 보였기 때문이었고 이를 배려해주신 연대장이 감사했다. ▲ 비무장지대(DMZ)를 찾아 온 독수리가 숲과 전신주에 앉아 휴식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연합뉴스] 에디슨은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며 줄기차게 도전할 것을 강조하고 실천하여 인류 과학역사 발전에 큰 족적을 남기는 발명왕이 됐다. 만약 관측병의 보고를 묵살하거나 오인에 대해 질책을 했다면 아마도 다른 병사들도 보아도 못 본 척 할 수 있었을 것이다. 軍도 마찬가지이지만 사회의 CEO나 리더들도 부하가 최선을 다했지만 성과가 미흡할 때에 조치를 잘해야 한다. 그래야 다른 부하 직원들도 자신의 맡은 일에 대해 창의적이고 적극인 도전적 자세로 임할 수 있다. 작금에 공무원들에게 “철밥통 공무원 호봉제를 깨고, 직무급제도 도입”을 추진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청백리로 훌륭하게 근무하시는 분들도 많지만 일부의 공직자들은 자리에 연연하여 복지부동(伏地不動) 하는 자세로 국민들에게 피로감을 가중시키고 있다는 것도 사실이다. 공무원들을 포함한 정치인 등 CEO나 사회 리더들도 이 이런 이기적이고 나태한 관행과 태도를 과감히 버리고, 국민들과 해당 조직을 위해 어려운 일도 적극적으로 도전하는 목민관(牧民官)자세가 된다면 더 잘살고 행복한 국가가 되는 길이 펼쳐질 것이라고 기대해 본다. 육군본부 정책실장(2011년 소장진급), 청와대 국가안보실 위기관리비서관(2013년 전역), 군인공제회 관리부문 부이사장(2014~‘17년), 현재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한국열린사이버대학 교수 주요 저서 : 충북지역전사(우리문화사, 2000), 비겁한 평화는 없다(알에이치코리아,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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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
    2019-05-29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33) 김정은에게 공포 심어줄 대북 심리전의 추억
    ▲ 중동부전선 DMZ내 아군 GP에서 북한군을 혼란시키기 위한 시각 심리전 연출모습[사진제공=김희철]‘대북 심리전’은 피 흘리지않고 적을 굴복시키는 최선의 전투기술 김정은이 제일 두려워하는 비대칭 전력 시각심리전 벌이고 북한 병사와 '체제 우월성' 논쟁 전광판 심리전은 북한 민심 흔드는 효과만점 작전 [시큐리티팩트=김희철 칼럼니스트] 손자병법 모공(謀攻)편에 ‘부전이굴인지병 선지선자야(不戰而屈人之兵 善之善者也)’는 “싸우지 않고 적을 온전히 굴복시키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는 뜻이다. 6.25남침전쟁시 중공군들의 심리전은 대단했다. 꽹과리와 징, 북, 나팔 등으로 자기 부대의 규모와 주공 방향을 감추었고 배후에서 불어댈 때에는 방어하는 UN군이 포위된 것으로 착각하게 심리적으로 압박하여 전의를 상실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80년대 당시의 DMZ에서는 관측보고 위주의 아군GP운용을 했으나, GP에서 전시효과를 통해 북한군들을 당황하게 만드는 일종의 심리전도 전개하였다. 그날도 위 사진같이 관측장교와 모의하여 중요인물이 GP를 방문한 것처럼 시각심리전을 구사하자, 적 민경초소에서는 군관이 나와 쌍안경으로 관측하고 예하 병력들을 증강 배치하는 등 헛고생하는 모습을 보며 희열도 느꼈다. 2018년 4.27남북 정상회담전인 4월23일부로 대북 확성기 방송 등 모든 대북 심리전이 중단 되었지만, 필자가 GP장 재직시에는 대북 확성기 방송을 비롯하여 전광판, 대면 및 전단작전 등 각종 대북 심리전을 모두 구사하는 시기였다. 이중 가장 효과가 좋은 것은 단연코 대북 전광판 심리전이었다. 2004년 남북합의에 의해 중단하기 전까지는 대북전광판 심리전을 전개했었다. 영상을 송출하기 보다는 6개의 대형 전광판 안에 글자들을 조합하여 대북 시각방송을 하는 장비였다. 6~8미터 높이의 글자라 1~3Km거리에서도 보일 뿐만 아니라 야간에도 적 민경초소에서 10km 이상 떨어진 후방의 민간인들에게 까지도 숙지 가능토록 만들었다. 또한 전력난에 시달리는 북한 주민들에겐 밤에도 환하게 반짝거리는 대북 전광판은 날아가는 총탄보다 더 무서운 마음속의 엄청난 충격으로 다가 올 수 있었다. 게다가 일기예보, 국제적 뉴스나 북한내에서 벌어진 사고 등의 상황을 알려주는 것은 일상을 통해 남측의 우월성을 인식하는 효과도 컸다. 훗날, 한·일 월드컵 속보까지 북한 주민들에게 중계해주는 역할을 수행하자 대북 심리전은 최상의 성과를 거두었다. 이는 탈북자 증가로 이어졌다. 북한 주민들은 DMZ를 통해 귀순한 북한 병사 또는 민간인들의 증언을 담은 대북 전광판 정보를 신뢰하여 동요됐다. 야간에 남쪽으로 탈출시에는 대북 확성기 소리와 함께 방향을 정확히 판단할 수 있는 등대역할도 했다는 것이었다. 지금이라도 전광판 심리전을 재개하면 확성기 방송과 함께 커다란 시너지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대면작전은 초기에는 상호 GP간의 거리가 약 840미터정도 이격되어 육성은 잘 들리지 않아 사진 같이 깔대기를 통해 북한 적공조(심리전)요원과 대화를 했지만 당시 아군은 메가폰을 활용했다. 북한 적공조(심리전)요원은 주로 전문화 된 군관으로 편성되었다. 우리 상급부대 지침은 아군도 GP장이 직접 대응하라는 것이었다. 그 날도 필자가 GP방문자로 시각심리전을 펼치자 북한 민경초소의 적공조요원이 깔대기에 대고 대면작전을 걸어왔다. “어~이, 철수친구, 오늘 높은 군관이 방문했나 보구나?”하며 돼지 뒷다리를 들고 나와 자기들은 항상 고기 반찬을 해먹는다고 자랑을 했다. 우리측 작전요원의 이름은 ‘철수’였고, 적공조 요원의 가칭은 ‘칠복’이었다. 필자도 대응 했다. “칠복이 우린 사령관이 오셔서 소고기, 초쿄파이 등 많은 것을 위문해주시고 가셨어 …”하며, “요즈음은 돼지 고기보다 소고기를 매일 먹어서 돼지고기 생각은 별로 없는데 칠복이는 모처럼 맛있게 잘 먹어”라고 응수하였다. 하루에 두세번 대면작전을 하면 그 대화 내용을 정리하여 상급부대로 보고했다. 한달 정도의 기간이 지나자 국방부 정보본부에서 연락이 왔다고 했다. 대면작전을 통해 북한군의 현 실태를 알 수 있었고 이를 종합하여 중요 정보를 생산할 수 있어 표창을 한다는 것이었다. 결국 상급부대 과장이 장관 표창을, 필자는 연대장 표창을 수상하는 성과도 올렸다. 총탄이 날아가고 피흘리는 전투 없이도 적과 싸워 승리하는 것이 심리전이다. 대북 심리전은 김정은이 가장 두려워하는 남측의 비대칭 전력이다. 대북 심리전을 통해 북한과 비교할 수 없게 발전한 우리의 자유롭고 풍요로운 경제상황을 알려주어, 최전방에 배치된 북한 병사들 뿐만 아니라 그 후방의 주민들에게 까지 자유대한에 대한 동경심을 유발시켜 남쪽으로 귀순케 하고 북한군 내부의 동요까지도 조성할 수 있다. 최근에는 공식적으로는 남북간에 심리전을 중단하자고 합의되어 이러한 아까운 기회를 놓쳤지만, 비공식적으로는 사이버 심리전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그러나 변함없는 야욕을 갖고 행동해왔던 북한의 과거 태도를 볼 때 대북 심리전이 재개 될 가능성은 항상 존재한다. 언제라도 재개할 수 있는 준비를 갖추어야 한다 . 심리전은 손자가 모공(謀攻)편에 ‘부전이굴인지병 선지선자야(不戰而屈人之兵 善之善者也)’라고 강조했던 것처럼 “싸우지 않고 적을 온전히 굴복시키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기 때문이다. 육군본부 정책실장(2011년 소장진급), 청와대 국가안보실 위기관리비서관(2013년 전역), 군인공제회 관리부문 부이사장(2014~‘17년), 현재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한국열린사이버대학 교수 주요 저서 : 충북지역전사(우리문화사, 2000), 비겁한 평화는 없다(알에이치코리아,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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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5-24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32) DMZ지뢰밭에서 ‘캡틴큐’ 찾던 아찔한 악몽의 순간
    ▲ 중동부전선 DMZ내 태극기 걸려있는 아군 GP와 840m 북한군 GP인 인공기가 걸려있는 민경초소 [사진제공=연합뉴스] ‘본립도생(本立道生)’은 기본이 서면 도(道)가 생긴다는 뜻 GP주변 지뢰밭에 캡틴큐 양주를 찾으러 들어갔었던 아찔한 순간의 악몽 기무부대는 동전의 양면(兩面)성 같이 꼭 있어야 할 필요악(必要惡) [시큐리티팩트=김희철 칼럼니스트] 논어 학이편에 ‘군자무본 본립이도생 (君子務本 本立而道生)’이란 말이 있다. “군자는 기본에 힘쓴다. 기본이 서면 도(道)가 생긴다”라는 뜻으로 기본적인 원칙 준수를 강조한 명언이다. 공자의 제자 유자는 “군자는 먼저 자신의 근본적인 직무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다. 근본적인 직무인 기본이 서면 도(道)가 생긴다. 기본을 지키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에 대해 얘기하면 설득력이 없다”고 강조했다. 새로운 GP장으로 취임하여 소대 실상을 파악해보니 간부부터 분대장, 막내 이등병까지도 그동안의 타성에 젖어 규정을 지키기 보다는 관행에 의한 순간의 융통성이 만연되어 있었다. 전방 GOP부대는 항상 실탄을 휴대하여 생활하며 생활관 밖을 나갈 때에는 반드시 3인조행동으로 이동하도록 규정화 되어있다. 이는 근접하여 눈앞에서 대치하고있는 북한군이 도발할 때에 즉각 조치하기 위한 것이다. 또한 전방 GOP부대는 금주가 가장 근본적인 원칙이었다. 특히 북한군 민경초소와 840미터 밖에 떨어지지 않은 GP안에서도 당연히 적용되는 것 이었다. 필자는 대원들에게 기본 원칙과 규정을 준수하도록 지시했으며 그 중에서도 음주는 특별히 엄금한다고 강조했다. 일부의 대원들이 은밀히 음주했다는 정보도 들었기 때문에 과거의 관행과 타성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꼭 집어서 언급했다. GP에 부임한지도 어느덧 한 달 정도 지나갈 즈음, 일주일에 두번씩 추진되는 부식차에 연대 기무부대장이 예고도 없이 갑자기 GP로 들어온다는 연락을 받았다. 통상 하루전에 다음날 GP를 방문하는 인원을 사전에 통보하는 데 필자가 처음 GP에 들어올 때와 같이 불시에 들어오는 상황이라 걱정 되었다. 오전 취침이 끝나고 점심을 마친 뒤에 분대장이 인솔하는 도로 정찰 및 경계조가 GP투입로 상에 배치되었다. GOP통문이 열리고 출발한 5/4톤 트럭이 먼지를 내면서 통로를 따라 GP통문 앞에 도착했다. GP통문을 열고 맞이한 트럭에서 내린 기무부대장은 “부식과 전달한 문서 및 편지들은 선임하사관이 확인해서 인수하고 GP장은 자기와 같이 울타리 순찰을 하자”고 필자에게 제안했다. ▲ DMZ내 아군 GP의 통로에서 작업중인 용사들과 ‘90년대 전후로 유행하던 국산 양주인 ‘캡틴큐’ [사진제공 =국방부/연합뉴스] GP에는 교통호를 따라 대원들의 진지와 순찰로가 구축되어 있고, 순찰로 앞에는 2중 철책으로 울타리가 설치되어 있으며, 그 밖에는 적의 침투를 거부하기 위해 M16 및 폭풍(발목)지뢰로 장애물지대를 형성해 놓은 상태였다. 기무부대장은 물자 및 부식 인수 확인을 선임하사관에게 맡긴 필자를 데리고 거침없이 울타리 순찰로를 따라 앞장서서 걷기 시작했다. 필자는 통문밖의 도로 경계조와 부식 인수조, 상황실 및 관측소의 배치된 대원들까지 염두에 두고 각 무전기 교신에 촉각을 세우며 따라갔다. 동측 교통로상의 한 진지에 멈춰 서서 기무부대장은 미소를 띄우며 낮은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김중위, 갑자기 불려와 GP장으로 취임하여 고생이 많지…?”하며 어깨를 두드려 주면서 아찔하고도 충격적인 사항을 전달했다. 기무부대장이 멈춰 선 진지는 바로 몇일 전에 휴가 복귀한 분대장과 이야기를 했던 장소였다. 그 날은 전반야 근무시간이었다. 막 잠이 들려는 순간 전령이 방문을 노크했다. 선임하사관이 잠깐 나오시라고 건의했다고 해서 식당에 가보니 분대장과 최선임 병장들이 닭도리탕과 켑틴큐를 식탁위에 차려놓고 필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외로운 고도(孤島)에서 회식을 준비하고 GP장을 부른 것은 고마운 일이나 금주를 엄중히 지시했는데, 선임하사관까지 함께하고 있으니 어이가 없고 당황스러웠다. 그 자리에서 야단치면 선임하사관의 위상이 손상될 까봐 잠시 멈칫 하다가 “이자리는 선임하사관이 주관하시요 …”하고 인상을 쓰며 난 방으로 돌아왔다. 잠시 후, 휴가 복귀한 분대장과 선임하사관이 방문을 두드렸다. 그들은 회식자리를 해산했고 술자리를 준비한 것이 죄송하다며 용서를 빌었다. 필자는 선임하사관에게는 전반야 근무 통제를 철저히 하라고 지시하고, 분대장을 데리고 교통호로 나갔다. 바로 기무부대장과 함께 서있는 그 진지 앞이었다. ‘캡틴큐’를 몰래 휴대하여 휴가복귀한 분대장에게 전 GP장 해임 과정과 GOP부대의 음주 엄금 규정 등을 다시 한 번 강조한 뒤, 몰래 가지고 온 캡틴큐 2병을 울타리 밖 지뢰지대로 던지라고 지시했다. 여기까지는 기무부대장이 잘했다고 격려했다. 그 다음이 문제였다. 고참 병장 한명이 다음날 아침 통문/도로순찰 시 그 ‘캡틴큐’를 찾으러 울타리 밖 지뢰지대로 들어갔었다고 했다. 분명하게 아침에 도로정찰 출발하는 분대원들도 확인하고 통문도 잠갔는데 언제 그 고참병장은 지뢰밭에 들어갔었는지 의문스러웠다. 또 술병을 찾다가 지뢰를 밟아 폭발 사고라도 당했으면, 그 ‘캡틴큐’ 때문에 아까운 소대원도 잃어버릴 뻔한 아찔한 악몽의 순간이었다. 기무부대장은 진지 앞 지뢰지대를 가리키며 “김중위의 규정을 준수하자고 지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반드시 현장을 확인 또 확인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또한 이것 때문에 소대원들을 더이상 문책하지 말고, 기무부대장 말을 참고로 실태를 직시하면서 아무도 과신하지 말고 현장을 직접 확인하라고 강조했다. 부식차와 기무부대장이 통문 밖으로 나가고 도로 정찰 및 경계조가 복귀한 뒤, 분대장을 포함한 3명이 콜라작전(GP밖 150미터 아래지역 지하 수원지에서 물을 끌어올리기 위해 중간 벨브와 모터를 작동시키는 작업)으로 내려간다고 보고를 했다. 과거에는 물지게를 지고 물을 퍼왔으나 당시는 그래도 전기모터를 이용하는 등으로 편리해 졌다. 그래도 기무부대장 말 때문인지 작전을 내려간 대원들이 또 무슨 짓을 할지도 걱정이 되었다. 이 상황에서는 기무부대장이 어떻게 그 사실을 알게 되었는지가 중요하지 않았다. 오랜 관행과 타성을 타파하려는 노력도 필자가 안보고 있는 상황에서는 헛수고가 될 수 있다는 현실을 알게 됐고, 그 것을 내게 코치해준 기무부대가 고맙기도 한 필요악(必要惡)이라는 현실도 깨달았다. 돌이켜 보면 필자에게도 아찔한 순간이었다. 만약 선임하사관과 분대장의 음주유혹에 넘어 갔다면 급하게 GP장을 교체시키도록 조치한 기무부대장도, 필자를 대타로 투입시킨 대대장에게도 실망스런 일이 되었을 것이다. 당황스러운 돌발상황에도 원칙에 충실하고자 했던 필자의 대응방식이 '최악'을 '차선'으로 변화시킬 수 있었던 셈이다. 이처럼 본립도생(本立道生: 기본이 서면 도(道)가 생긴다)은 인간사의 기본이다. 역사를 돌이켜 볼 때 정치, 경제, 사회 등에는 항상 문제가 있었다. 많은 지도층 인사들이 본인은 기본을 지키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에 대해 ‘내로남불’식으로 얘기하였고 지금도 외치고 있지만, 설득력이 없다. 타인보다 내가 먼저 ‘본립도생(本立道生)’을 명심하고 실천할 것을 유자는 강조했기 때문이다. 육군본부 정책실장(2011년 소장진급), 청와대 국가안보실 위기관리비서관(2013년 전역), 군인공제회 관리부문 부이사장(2014~‘17년), 현재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한국열린사이버대학 교수 주요 저서 : 충북지역전사(우리문화사, 2000), 비겁한 평화는 없다(알에이치코리아,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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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5-16
  • [직업군인사용설명서] (31) DMZ의 선장인 GP장이 기무부대와 동거하는 방식
    ▲ 중동부전선 GP에서 근무했던 필자와 당시 안개바다 DMZ를 스케치한 삽화 [사진제공=김희철] 새임지에서 ‘수처작주 입처개진(隨處作主 立處皆眞)’자세로 근무 GP는 마치 하이얀 안개바다 DMZ(비무장지대)에 둥둥 떠다니는 돗단배 인생은 정답도 비밀도 공짜도 없는 정비공(正祕空)…… [시큐리티팩트=김희철 칼럼니스트] 당나라의 선승(禪僧) 임제의현(臨濟義玄)의 ‘임제록’에 나오는 ‘수처작주 입처개진(隨處作主 立處皆眞)’은 “어느 곳에서든지 주인일 수 있다면, 그가 서는 곳은 모두 참된 곳이다”라는 뜻으로 수행하는 자의 확고한 주체성을 강조한 말이다. 망망대해 한가운데 인적 없는 외딴 섬에 버려진 신세가 된 기분으로 직속상관을 내쫓은 GP대원들과의 생활은 시작되었다. 선임하사관부터 말단 이등병까지 소대원들과 지원배속된 포병 관측장교, 위생병들 모두가 긴장도 되지만 호기심 어린 눈빛을 필자에게 쏟아 붓고 있었다. 그래도 북한 병사들이 경계근무하는 민경초소와 840미터 떨어진 최전방 휴전선 감시초소(GP : guard post)를 담당하는 책임자로서 오히려 필자가 더 긴장을 했을지도 모른다. GP대원들에게 책을 잡히지 않으면서도 그들의 생명을 책임져야 하고, 바로 근접해 있는 북한군의 도발시 즉각 응징할 수 있는 태세를 상시 유지한다는 각오를 다지면서 사관학교 가입교시 기초군사훈련 때의 순수한 군인정신을 되새겨 보았다. GP에 투입된 첫날밤이 되었다. 전반야는 선임하사가 후반애는 소대장이 야간 경계근무를 책임지고 지휘감독을 한다. 취임 첫 날 오후에 첫 인사말로 “GP대원들에게 직속상관을 내쫓은 배신자들”이라고 호되게 나무란 뒤라 GP장실 쪽침대에 누워 잠을 청했으나 시끄럽게 들려오는 대남방송과 긴장감에 어느덧 후반야가 되어 한잠도 못 자고 선임하사와 근무교대를 했다. 후반야 투입조의 군장 검사를 마치고 근무투입시킨 뒤에 철모를 굳게 눌러쓰고 GP를 한바퀴 돌며 순찰을 했다. 대원들은 타성이 붙어 있었다. 적이 침투하는 것을 감시해서 잡겠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적을 쫓아내는 형태의 근무를 하고 있었다. 며칠 뒤 관측장교에게서 “전 GP장은 군복도 안입고 체육복차림으로 야간 순찰을 종종 했다”고 전해 들었다. 대원들은 군복에 단독군장을 하고 실탄과 수류탄까지 무겁게 지참해서 근무를 서고 있는데 GP장은 추리닝복장으로 순찰돌면서 근무자세가 나쁘다고 혼을 냈으니 자기 상관인 GP장을 쫓아낸 상황도 이해가 되었다. 그런데 DMZ(비무장지대)내에 타부대와 완전히 고립된 고도인 GP에서 일어난 일련의 상황들을 어떻게 상급 기무부대장이 알 수 있었는지 의문이 생겼다. 같은 GP내에 같이 근무하는 포병관측장교 신병래중위(ROTC19기)에게서 그 내막을 알 수 있었다. 부식 추진을 위해 GP로 들어오는 중대 행정보급관이나 함께 온 기무부대원이 GP에 근무하는 위생병이나 포병 등 지원배속 부대원들과 잠시 외딴 곳에서 무언가를 이야기하는 것을 봤다는 것이다. 아마도 그때 GP장의 활동 사항을 보고했을 것이라는 추측이었다. 이해는 되었다. 상급 지휘관들은 초급장교인 소대장에게 홀로 떨어져 있는 GP를 맡겨 놓았지만 걱정이 될 것이다. 그래서 최전방 GP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반드시 확인 또 확인을 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하지만 확실하게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하급 지휘자를 신뢰 못하는 상급자들도 서운했고 그러한 정보원들을 데리고 대치한 적들과 상대해서 전투지휘를 한다는 것도 이율배반적인 것이었다. 지휘관(선장captain)은 “어항 속의 금붕어”로 모든 사람이 주목하고 있고, 안개바다 DMZ의 마도로스 선장인 GP장도 GP내에 있는 부하들 뿐만 아니라 숨겨 놓은 정보원에 의해 일거수 일투족을 관찰 받는 위치였다. 어느덧 새벽이 되었다. 동녁에서 붉은 태양이 고개를 내밀기 전에 GP내에 있는 높은 관측소에서 주변을 둘러보았을 때 장관이었다. 새벽 안개가 망망대해가 되어 있었다. 인접 GP의 모습은 마치 하이얀 안개바다 DMZ에 둥둥 떠다니는 돗단배 였다. 야간 군무를 끝낸 대원들의 안전검사를 끝내고 주간 근무로 전환하고 대대장에게 아침 지휘보고를 했다. 합동통화로 인접 GP장의 지휘보고도 모두 들을 수 있었다. “충성..! 한탄강 마도로스 하나, 둘, 셋 이상 없습니다. 등등…..” ‘마도로스’는 GP장을 뜻하고 ‘하나, 둘, 셋’은 인원, 장비, 물자를 의미하는 용어였다.. ▲ 중동부전선 아군GP와 대치하고 있는 MDL넘어 북한 경계지대와 산악들 [사진제공 =국방부] 하급 지휘자를 신뢰 못하는 상급자들과 믿을 수 없는 이중간첩, 배신자들인 정보원들을 데리고 대치한 적들과 상대해서 전투지휘를 한다는 이율배반적인 상황 속에서도 필자는 최전방 GP를 책임지는 주인이고 확고한 주체성을 가져야 할 육군중위였다. 문득 임제스님의 ‘수처작주 입처개진(隨處作主 立處皆眞)’란 설법 말씀이 떠올랐다. 또한 최근 술자리에서 건배사로 ‘정비공(正祕空)’이 많이 활용된다고 한다. 사회생활과 사람관계에 있어 “정답도 비밀도 공짜도 없다”는 뜻이다. 軍생활 속의 지휘관도 마찬가지이지만 “인생은 정비공(正祕空)이다”라는 것이 진리임에는 틀림이 없다. 육군본부 정책실장(2011년 소장진급), 청와대 국가안보실 위기관리비서관(2013년 전역), 군인공제회 관리부문 부이사장(2014~‘17년), 현재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한국열린사이버대학 교수 주요 저서 : 충북지역전사(우리문화사, 2000), 비겁한 평화는 없다(알에이치코리아,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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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
    2019-05-10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 (30) GOP부대의 ‘노루’ 트라우마와 GP의 '배신자들'
    ▲ 엄동설한의 추위와 싸우며 동부전선 GP에서 경계근무중인 국군용사들 [사진제공=국방부] 전방 부대근무시 노루에 얽힌 신비한 징크스와 트라우마 직속 상관을 내쫓은 GP부대원들과의 동거는 '위기 상황' 군 생활에서 危機를 好機로 전환시키는 지혜는 필수 덕목 [시큐리티팩트=김희철 칼럼니스트] 軍간부는 통상 1~2년 단위로 보직이 바뀐다. 일반 사회보다 보직이동이 빠른 편이다. 수평이동도 있지만 승진 또는 강등일때 희비가 엇갈리기도 한다. 대성산에서 근무한지 1년이 다되어 갈 즈음 필자가 소속된 연대가 전방 GOP연대와 교대하기 위해 전방으로 이동했고 대대는 DMZ작전을 전담하는 전초대대로 개편되어 철책선 지역에 배치됐다. 기존 GP소대들까지도 그대로 인수받아 전초대대는 일반 대대보다 훨씬 규모가 커졌다. 전성수 대대장(갑종출신)은 사단에서 최전방 작전을 담당하는 가장 중요한 대대를 책임지게 되어 의욕이 넘쳐났다. 부대가 새로운 임무를 맡게 되자 필자도 곧 GP장으로 투입될 것이라 예상하고 있었다. 대성산 앞에는 광활한 평야가 펼쳐있고 그곳에 거주하는 민촌, 재건촌 주민들은 민통선 내에 있지만 자유롭게 농업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알부자들이었다. 그곳에서 수색작전을 하다보면 간혹 넓은 들판에 한가롭게 뛰어노는 노루/고라니들과 마주치기도 한다. 펄떡 펄떡 뛰어가는 노루/고라니들은 꼭 곡예를 하는 듯 멋져 보였다. 어느날 수색에서 복귀한 인접 소대가 다쳐 쓰러져 있는 노루를 잡아온 적이 있었다. 마침 지나가던 대대장은 잡아온 노루를 보고 노발대발하며 그 소대장을 꾸짖고 놓아주라고 했으나 그 노루는 곧 죽고 말았다. 바로 그때 요란한 총소리가 한발 울렸다. 작전 후 복귀한 소대에서 총기 안전검사 중 오발을 한 것이었다. 업친데 덮친 격으로 약간 경사진 차고에서 정차되어 있던 5분대기조 차량이 기어가 풀리며 스스로 움직이다가 막사를 들이 받고서 멈추는 사고까지 발생했다. 인명사고는 없었지만 그후로는 노루를 보면 사고위험을 알리는 징크스 트라우마가 되었다. ▲ 민간인통제선 안에 있는 들판을 뛰노는 고라니(노루) [동영상 캡쳐] 부대 이동후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무렵, 중대장이 대대장 호출이라며 가보라고 말했다. 중대장의 아쉬워하는 눈빛을 보면서, 아마도 전방에 급한 일이 있어 GP로 투입될 수도 있겠다싶어 단독군장으로 복장을 갖추고 대대장실의 문을 두드렸다. “어...! 김중위 왜 단독군장으로 들어 왔어? 편한 복장으로 오지...”하면서 대대장은 미소를 지었다. 예상대로였다. GP장 중 한명이 소대 지휘에 문제가 발생하여 지금 바로 GP장을 교체할 필요가 있다는 기무부대의 조언이 있었던 것이다. 이에 따른 연대장의 지시를 받은 대대장은 필자를 교대하는 GP장으로 보내기 위해 호출한 것이었다. GP를 담당한 다른 중대로 보직을 이동하기 위해 그동안 정들었던 중대장에게 전출신고를 하고, 기존 GP장을 안전하게 복귀시키라는 임무를 받은 기무부대장의 짚차에 올랐다. 산길을 털털거리며 약 한시간 가까이 이동했다. 산 능선을 따라 형성된 산길에서 바라보는 주변은 모두 깍아지른 듯한 절벽이었다. 드디어 GOP철책 통문을 통과하여 GP에 도착했다. 아무런 예고 없이 기무부대장이 적과 마주한 DMZ내 GP를 방문하자 기존 GP장은 무척 놀란 모습이었다. 이동하는 짚차 안에서 기무부대장은 불시에 교체 투입하는 이유를 설명해주었다. 기존 GP장의 성격이 괴팍하여 욕설과 폭력이 난무하고 소대원들이 도저히 못 견디겠다고 소원수리를 하였고 심지어는 탈영하여 북으로 갈 생각까지 할 정도였다고 한다. 기무부대장은 기존 GP장에게 연대장 면담이 있기 때문에 임시로 대리 GP장을 긴급히 배치하고 연대본부로 이동한다며 GOP통문 밖 후방으로 함께 나갔다. 당장은 명목상으로 대리 GP장이었지만 직속상관을 내쫓은 소대원들과 함께 앞으로 적과 대치한 가운데 작전을 수행한다고 생각하니 소대원들이 괘씸하기도 했다. 전임자가 실질적으로는 보직해임되어 GP밖을 나간 뒤에 전 소대원들을 집합시켰다. 그리고 첫 한마디를 내뱉었다. “너희들은 자신의 아버지를 쫓아낸 배은망덕한 놈들이다”라며 후임인 필자는 “보다 더 엄격하게 규정을 준수할 것이며, 명령을 불복종하는 대원들에게는 가차없는 처벌을 내릴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그리고 이 배신자들을 단결되고 강한 나의 부하로 육성하고, 새로운 위기(危機)를 최선(最善)의 노력으로 호기(好機)로 만들어 앞으로 부여될 임무를 완벽히 수행해야 하겠다는 각오도 다졌다. 때마침 들려오는 북한의 대남 방송과 사람들의 발길이 끊어진 DMZ 자연속에 살고 있는 짐승들의 울음소리와 바람소리만이 필자를 반기면서 DMZ내의 외로운 GP장 근무는 시작되었다. 육군본부 정책실장(2011년 소장진급), 청와대 국가안보실 위기관리비서관(2013년 전역), 군인공제회 관리부문 부이사장(2014~‘17년), 현재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한국열린사이버대학 교수 주요 저서 : 충북지역전사(우리문화사, 2000), 비겁한 평화는 없다(알에이치코리아,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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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4-30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 (29) 취준생들에게 들려주는 '작은 성공담'의 교훈
    ▲ 엄동설한의 추위 싸우며 동계훈련 중인 국군용사들 [사진제공=국방부] 동계 간부교육시 지독한 감기(危機)로 각종 회식에 불참, 교육 평가는 1등 인간사의 어려움, '처신'하기에 따라 좋은 결실을 맺는 호기(好機)로 전환 대대장을 기만했던 '완벽한 매복'으로 포상휴가를 떠난 분대원들 '작은 성공담' 통해 깨달은 '바른 직업(군인)관'...正直, 誠實, 最善 [시큐리티팩트=김희철 칼럼니스트] 일일신우일신(日日新又日新)은 사서삼경의 하나인 대학(大學)에 나오는 문구로서 학문이 하루하루가 다르게 날마다 진보함을 가리키는 말이다. 각 군의 부대도 동계에 간부교육을 통해 진보한다. 대성산(1175고지)은 주변의 적근산, 복주산, 화악산과 더불어 한겨울에 항상 최저점의 기온을 기록해 뉴스에 자주 등장한다. 따라서 전방부대들의 동계 작전준비는 유사시 적 도발 및 남침에 대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장병들이 안전하게 겨울을 보내기 위한 준비에도 많은 신경을 쓴다. 보온을 위해 창문에 문풍지와 비닐을 추가로 설치하고 눈 내린 도로가 얼면 식량보급 등 이동에 문제가 생겨 고립될 우려가 있어 격오지를 포함한 높은 고지는 헬기로 미리 식량과 연료를 수송하여 저장해 놓는다. 기온이 내려가 입술과 코에 고드름이 달리고 소변을 보면 얼음이 되어 떨어지는 한겨울 동안은 생존이 가장 중요하다. 반면 교육훈련과 작전에는 지장이 많다. 그래서 병사들은 경계근무와 눈 덮힌 도로 제설작업이 하루의 중요한 일과가 된다. 이 기회를 이용해서 각 부대는 제대별로 간부교육에 집중하게 된다. 마찬가지로 그해 겨울에도 사단은 장교와 부사관들을 사단 교육대에 집합시켜 부족하고 취약한 부분에 대한 재교육과 새롭게 변경되는 교리, 규정, 방침 등을 가르치고 지휘관의 의도와 방침을 숙지 시킨다. 긴장했던 소대장근무에서 벗어난 탓인지 간부교육에 입소했을 때, 필자는 지독한 감기에 걸려 고생했다. 매일 주간교육 후 야간이 되면 오랜만에 만나는 선후배나 동기들과 소주를 기울이며 회포를 풀 수 있는 기회가 많았지만, 고열에 기침까지 심해 즐거운 모임에 참석할 수 없었다. 어느 조직이나 경쟁은 존재하고, 일주간의 간부교육도 마지막날 평가가 있었다. 마지막날 시험이 있었는데 뜻하지 않게 1등을 했다. 아마도 남보다 성적이 조금 좋았던 것은 감기 때문에 매일 저녁 회식을 참석 못했던 덕택인 것 같았다. 일주일간의 간부교육을 마치고 복귀하자 새로이 취임한 대대장은 부대 명예를 높혔다며 바로 포상휴가를 출발하라고 해서 소대에 들려 중대장에게 신고하고 전방 배치 후 첫 휴가를 나갈 수 있었다. 모처럼의 자유를 만끽하고 소대로 돌아오자 생활관이 텅 비어 있었다. 1개 분대 전원이 자취를 감추었기 때문이다. 필자는 그 이유를 알고 '감동'과 '기쁨'을 만끽했다. DMZ 매복작전 오인사격 후, 매복시 철저한 교리 및 규정 준수가 강조되어 수시로 점검이 나왔다. 사실 GOP후방 FEBA지역에서의 매복작전은 침투한 적을 잡기 보다는 훈련에 가깝고 실탄도 장전하지 않고 공포탄만 장전해서 근무를 한다. 왜냐면 6~70년보다 무장공비의 활동이 급격히 감소되었고, 오히려 야간에 활동하던 아군 및 민간인에게 오발하는 사고가 종종 발생했기 때문이다. 필자가 포상휴가를 떠난 뒤, 상급부대 계획에 의해 종심지역(deep area) 매복작전을 우리 소대에서 나갔고 대리근무 중인 선임하사가 군장검사 후 분대장이 인솔하여 매복진지에 배치했는데 그날 대대장이 직접 매복실태를 확인하기 위해 현장을 급습하였다. 대대장이 매복 지점에 도착하여 주변을 둘러보았는데 아무도 없었다. “이놈들 매복작전을 지시했더니 정확한 지점도 모르고 어디 구석에 들어가서 쉬고 있겠구만…ㅊㅊ”하며 “소대장이 휴가를 가버려 군기가 해이해진 모양이군, 복귀 후 문책을 해야 겠다”고 중얼거리며 그 자리를 떠나려는 순간 바로 옆 숲에서 분대장이 불쑥 일어난 것이었다. 대대장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날이 어두워져 짚차 해트라이트로 비추어 찾았는데도 완벽한 위장으로 매복작전중인 병사들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진지 3개소와 크레모아 설치도 완벽했고 특히 배치된 화기까지도 위장이 되어있었다고 했다. 대대장은 “용장(勇將)밑에 약졸(弱卒)은 없어 그 소대장에 그 소대원들이다”며 극찬을 했고 매복 복귀후 분대원 전원이 포상휴가를 간 것이었다. 직업군인으로 취업을 하려는 취준생들은 자신의 존재가치는 자기가 자리를 비웠을 때에 그 진가가 발휘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그래서 남들이 안볼 때 더 잘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성실(誠實)한 근무자세이다. 이처럼 군 생활에서 겪었던 '작은 성공담'들은 3가지 교훈을 깨닫게 해준다. 필자는 3가지를 인생관과 직업관으로 살고 있다. 취준생들에게 참고가 됐으면 한다. 그 첫째는 정직(正直)이다. 정직한 것은 거짓말을 안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작은 욕심에 큰 것을 잃어 버리는 실수(小貪大失)를 하면 안된다. 안중근 장군도 견리사의 견위수명(見利思義 見危授命)이라고 했다. 둘째는 바로 성실(誠實)이다, 대해불기청탁(大海不忌淸濁)이라는 명언처럼 모든 것을 품어 안을 수 있어야 한다. 특히 타인이 안볼 때, 남들이 귀찮아 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고 더 잘할 수 있는 자세가 필요하다. 셋째로는 최선(最善)이다. 좋은 여건과 충분한 지원이 가능할 때에는 누구나 임무를 완수할 수 있다. 그러나 많은 전투로 손실이 생겨 소대원들이 부족하고 장비도 망가진 상황에서 중대장이 공격을 지시할 때에도 소대장은 불비한 조건에서도 임무를 완수해야 한다. 그것이 최선이다. 즉, 도전정신으로 임하면 위기(危機)는 호기(好機)가 되기 때문이다. 육군본부 정책실장(2011년 소장진급), 청와대 국가안보실 위기관리비서관(2013년 전역), 군인공제회 관리부문 부이사장(2014~‘17년), 현재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한국열린사이버대학 교수 주요 저서 : 충북지역전사(우리문화사, 2000), 비겁한 평화는 없다(알에이치코리아,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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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4-19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28) 전두환 시대의 비사, 독도법 실패가 부른 비극
    ▲ DMZ내 아군 GP 및 북한군 민경초소 근무모습 [사진제공=국방부/동영상 캡쳐] 사기는 충천했으나 '독도법' 실패로 아군끼리 오인 사격하는 사고 발생 군내 사고사 감소 추세, 사회 부적응 등으로 인한 자살사고는 증가 야전 지휘관들의 고충, 신세대 병사들과 함께 외나무다리 건너는 심정 [시큐리티팩트=김희철 칼럼니스트] “삶(生)이란 소(牛)가 외나무다리(一)를 건너가는 것이며, 인생길은 아슬아슬하고 위태롭게 건너가는 고해(苦海)의 길이다”라고 어느 스님이 말했다. 군대를 경험한 직업군인 관련 칼럼을 쓰면서 지난 40년 군생활을 돌이켜보면 그 스님의 명언이 진리로 다가왔다. 1981년 늦가을, 전방 GOP부대의 DMZ(비무장지대)내에서 대형 사건이 발생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필자가 그 부대로 부임하기 1년 전에 북한군이 DMZ 아군지역인 442고지에 침투해 은거하다가 아군 수색조에게 발견되어 교전 후 북으로 도주한 사건이 있었다. 그 때 침투했던 적 1명을 사살하는 작전 성공으로 부대 전체의 사기가 고양된 적이 있어 GOP부대는 적을 잡겠다는 의욕이 한층 고무되어 있는 상태였다. 그날은 본부에서 DMZ 침투가 예상되는 GP앞의 지역에 공세적으로 근접하여 매복지점을 선정 계획했고 각 소대는 계획된 매복지점으로 투입토록 했는데, B소대는 원래 계획된 지점이 아닌 적들이 GP사이로 침투할 것이라 판단한 지점에 실제 매복진지를 배치하였다. 한편 A소대는 GP에 잠깐 들려 준비물을 재확인하고 다소 늦게 계획된 매복로로 투입하고 있었다. 잠시 후 해가 서쪽으로 떨어지고 어둠이 짙게 깔리기 시작할 무렵, 북한의 대남방송만 시끄럽게 떠들어대는 DMZ에서 요란한 총소리와 폭발음이 들려왔다. 본부에서는 B매복작전조로부터 “침투하는 적을 발견 교전 중”이라는 보고가 들어오자 “드디어 침투하는 적을 잡았다”라는 환호성을 올리며 기뻐했다. 그런데 바로 이어서 다른 매복작전조에서 “매복진지로 투입 중, 적의 기습을 받아 대응사격 중”이라는 보고를 접수하였다. ▲ 1980년대 DMZ 매복작전 시 '오인'으로 아군 간에 교전했던 상황도 아군 매복조끼리 오인으로 인해 교전하였고, 아까운 수명의 사상자도 발생한 것이었다. 물론 계획된 매복지점에 배치하지 않은 B소대와 지정된 시간을 준수하지 않고 지연 투입한 A소대도 잘못은 있지만, 후일담을 들어보면 각개 병사들은 긴급 상황에서 교육훈련 받은대로 전투행동을 잘했다는 칭찬도 들려왔다. 그후, 사관학교 선배였던 중대장은 보직해임됐고 대대장, 연대장도 징계를 받았으며 아까운 순직자의 장례도 모두 치루었다. 헌데 그 사건의 후유증은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사고 원인 분석결과 가장 먼저 야간 독도법 능력이 문제로 대두되었다. B소대 매복조가 매복지점을 잘못 찾아갔기 때문이다. 따라서 야간 사격 등 야간 전술훈련이 강화되었다. 그리고 아무리 그날 취약요소가 발견되더라도 복수의 매복조를 같은 통로로 투입하는 것은 배제하도록 통제하였다. ▲ 야간 사격하는 우리 장병모습 [사진제공=국방부] GOP부대 뿐만 아니라 후방의 예비부대에서도 매일 밤 야간 교육은 강화되었고 간부들의 야간 독도법 평가도 군단부터 제대별로 시행되면서 고난의 행군이 계속된 그해 겨울밤은 유난히도 더 춥고 바람도 모질게 불었다. 군 간부로 병사들을 교육훈련 시켜야 하는 책무가 있어 야간교육을 시키는 고단함을 토로했지만, 사실 군에서 순직한 아들을 둔 부모의 마음은 사고 후유증에 힘들어하는 군간부 보다 훨씬 더 아프거나 힘들다. 하지만 관공서와 언론가의 통계 데이터를 보면 최근에는 군대만큼 20대에게 안전한 곳은 대한민국 땅에 없다고 군 간부들은 주장한다 서울시가 2014년 발간한 '서울시민의 건강과 주요 사망원인' 통계에 따르면, 2013년 사망자는 모두 4만 2063명으로 2008년 이후 5년 연속 증가했다. 특히 20대 서울시민 155만 명의 0.055%인 861명이 암 및 교통사고 등으로 사망했고 그 중 51%가 자살로 생을 마감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통계를 군대와 비교해보면 2000년대로 접어들면서, 군대에서는 서울시보다 1/2 낮은 수준인, 20대 병사 50만 명의 0.022%인 124명이 사망했다. ▲ 국방부가 통계청 ‘e나라지표’를 통해 공개한 ‘1993~2013년 발생한 군 사망사고 현황’ 자료를 분석한 결과 한국전쟁 이후 군대에서 사망자 수를 표로 보면, 전쟁 직후에는 군대내 연간 사망자가 약 3000 명에 가까운 선이었으나 유신 및 군사정권을 거치며 1000여명 내외로 감소했다. 그후 2000년대 들어 연간 군 사망자 수는 100명대로 떨어졌다. 이때부터 노무현 정부 중반까지 사망 장병 수는 꾸준히 감소세를 보였다. 2005년 현역복무 병사의 0.022%인 124명까지 줄었던 군내 사망자 수는 이후 2006년과 2008년, 2011년에 소폭 증가하며 들쑥날쑥하는 추세를 보였다. 2006년에는 128명, 2008년에는 134명으로 사망자가 늘었다. 2011년에는 총 143명의 장병이 사망함에 따라 2003~2004년 수준으로 회귀하기도 있다. 2013년의 경우 사망 장병 수는 117명이며 차량(15건)·함정(21건)·화재(7건) 사고를 제외하면 대부분 자살(79)로 인한 사망으로 처리됐다. 최근 전체 군 사망자 수가 더 이상 크게 줄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자살률 증가에서 찾을 수 있다. 반면 화재, 폭발, 추락, 익사, 차량 및 항공·함정 사고로 인한 사망 장병 수는 계속해서 줄어들었다. 2013년 총 사망자 가운데 안전사고로 목숨을 잃은 장병 수는 37명으로 나타나 전체의 30% 수준으로 떨어졌다. 1993년 안전사고로 인한 군 사망자 비율이 59%였던 때와 비교하면 절반 수준이다. 훈련장비가 발달하고 장병 보호를 위한 안전장치가 강화됨에 따라 안전사고가 크게 줄어든 것이다. 2000년대 들어 군내 자살률이 증가한 데는 군대 문화가 사회발전을 따라가지 못하면서 군대 부적응자가 양산된 탓이라는 분석이 많다. 특히 신세대 장병들이 군대라는 단절된 공간에 적응하지 못하는 경향이 강해졌다. 이런 분위기를 반영하듯 최근에는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찬반 논란이 불거지며 징병제도 자체가 위협을 받고있다. 이러한 사회 및 국민적 요구가 높아가고 입대하는 장정들의 마인드와 성향도 다양하게 변화되었다. 게다가 팽배한 개인주의와 일부 ‘마마보이형’의 나약함까지 지휘부담으로 가중되어 간부들의 고충은 심화되고 있다. 과거 군대 경험자들은 “지금 군대는 군대가 아니라 보육원이라 걱정이다. 강하게 키워야 승리하는 부대가 된다”며 한탄하기도 했다. 4차 산업혁명과 4세대 전쟁으로 변화무쌍한 시대 속에서 입대하는 장정들이나 그 부모들 그리고 그들을 책임져야 할 군 간부들 모두 고해(苦海)의 인생길을 가고 있다. “삶(生)은 소(牛)가 외나무다리(一)를 건너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육군본부 정책실장(2011년 소장진급), 청와대 국가안보실 위기관리비서관(2013년 전역), 군인공제회 관리부문 부이사장(2014~‘17년), 현재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한국열린사이버대학 교수 주요 저서 : 충북지역전사(우리문화사, 2000), 비겁한 평화는 없다(알에이치코리아,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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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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