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시대Home >  소통시대
-
[김희철의 CrisisM]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6·25전쟁 이야기’ 독후감 시상식과 북콘서트②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독후감 공모전 시상식을 마치고 대상을 받은 최지효 학생은 소감 발표에서 “이책을 통해 나라가 어떻게 지켜졌는 지를 분명히 알게 되면서 나라사랑 마음이 깊어졌으며, 저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나라를 빛내는 역할을 하겠다”고 다짐했다. 또한 초등부 금상인 김세진 학생은 심사위원 및 참석자들을 일일이 호명하며 본인을 뽑아준 것에 감사드린다고 말해 행사장을 웃음바다로 만들며, “저의 꿈도 장차 국방과학연구원으로 자유를 수호하는 인물이 되는 것입니다”라고 당선 소감을 발표했다. 이날 1부는 국민의례에 이어 김병관 한미안보연구회 회장의 환영사, 현인택 전 통일부 장관과 김재창 명예회장의 축사에 이어 공모전 시상식으로 축제분위기가 이어졌고, 2부에서는 테너 지명훈과 싱어송라이터 이유진의 축가와 ‘할들육(할아버지가 들려주는 6·25전쟁 이야기)’관련 퀴즈로 시작된 작가 장삼열 박사의 북콘서트가 진행됐다. (다음편 계속)
-
[김희철의 CrisisM] ‘2024 제대군인 고용우수기업 인증제’ 시행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국가보훈부는 27일 “국가안보를 위해 오랜 기간 군에서 복무한 중장기복무 제대군인의 안정적인 일자리 확보와 취업 촉진을 위해 이날부터 오는 7월26일까지 ‘2024 제대군인 고용우수기업 인증’을 위한 신청·접수를 진행한다”라고 밝혔다. ‘제대군인 고용우수기업 인증제’는 중장기복무 제대군인의 일자리 창출은 물론 확보된 일자리에 지속적으로 취업할 수 있는 연결고리를 마련하고, 기업이 제대군인 채용에 적극 나설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지난 2015년부터 시행하고 있는 사업이다. 특히, 국가보훈부는 2021년 ‘제대군인 고용우수기업 인증제’를 법률로 명문화한 뒤, 인증제에 대한 기업의 관심 유도를 위해 행정·재정·법률적 혜택(인센티브)을 확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실제로 현재 제대군인 고용우수 인증기업은 시중은행의 여신지원 시 금리 우대를 비롯해 관세 조사유예, 방위사업청 및 지방자치단체 우수기업 선정 평가 시 가점 부여 등의 우대지원을 받을 수 있다. 신청 희망 기업은 오는 7월26일까지 신청서류(국가보훈부 홈페이지 공지)를 준비하여 한국경영인증원 제대군인 고용 우수기업 인증사무국에 전자우편으로 제출하면 된다. 이미 국가보훈부는 6월20일 ‘인증설명회’를 온라인(ZOOM)으로 개최하며, 제대군인 고용 우수기업 인증제도와 인증기준 등 세부 사항을 추가로 안내할 예정이다. 또한, 신청기업을 대상으로 한국경영인증원에서 서류심사와 현장실사를 통해 제대군인 고용 우수기업 여부를 심사한 후, 그 결과를 토대로 국가보훈부 ‘제대군인 고용 우수기업 인증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9월 인증기업을 발표할 예정이다. 서류심사와 현장실사의 평가지표는 중장기복무 제대군인 고용인 수와 우대채용 현황, 제대군인지원센터 협력 정도, 근속 기간, 근로 만족도, 기업 재무 건전성 등이다. 최종 인증기업에 대해서는 제대군인주간인 10월 둘째 주 국가보훈부 장관 인증패와 인증 현판을 수여할 계획이다. 강정애 국가보훈부 장관은 “제대군인에 대한 사회복귀 지원은 제복근무자로서 국가안보를 위해 헌신한 분들의 자긍심을 높이는 것은 물론, 지금도 국가수호 일선에서 땀 흘리고 있는 현역 군인들이 맡은 바 임무에 전념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는 것”이라며 “국가보훈부는 제2의 인생을 시작하는 제대군인들의 원활한 취업을 위한 고용환경 조성을 위해 관계기관과의 협의를 통해 고용 우수 인증기업에 대한 우대지원제도를 더욱 확대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419] 재활치료의 위기를 호기로 만드는 비법⑲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연구소장] 병자년 새해가 되었지만 필자는 아직도 목발 신세를 벗어나지 못한 상태에서 대대장 취임은 한 달여 앞으로 다가왔다. 만약 이대로 취임하면 ‘절름발이 대대장 또는 DJ 대대장’이라는 별명이 계속 따라 붙을 것 같았다. 또한 활동에 많은 제약을 주어 불편하게 만드는 골반쪽의 상단 고정핀을 제거하자는 통합병원 군의관(이진우 대위)의 진단에 따라 새해 초부터 재차 병원에 입원했다. 통합병원 도착 다음날 바로 2시간 동안의 수술을 통해 상단핀을 제거하고 다시 2주간의 회복 기간을 가졌다. 이미 3개월 전에 같은 병원에 입원했던 환자였기 때문인지 만나는 간호장교와 군의관들도 모두 반기며(?) 인사를 해와 병원 생활을 불편없이 익숙하게 할 수 있었고, 짧은 입원 기간이기 때문에 주변의 선후배에게도 알리지 않았으며 가족에게도 면회오지 않도록 당부했다. 하지만 회복 및 재활치료의 무료한 시간이 계속되자 재활위기를 호기로 만를려는 생각을 감출 수가 없었다. 보름간의 골반쪽의 상단 고정핀을 제거 수술치료, 입원 기간에 병실에 앉아 필자는 동국대학원 석사학위 논문인 ‘동서독 통일과정에서의 군통합에 관한 연구– 남북한 적용가능성을 중심으로’에서 예비군분야를 발췌하여 정리한 ‘조국통일을 대비한 예비군제도 비전’이라는 원고를 작성했다. (다음편 계속)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414] 재활치료의 위기를 호기로 만드는 비법⑭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필자는 유난히도 ‘37’이라는 숫자와 많은 인연을 갖고있다. 육사 37기로 임관했고, 또 37사단의 대대장 자원으로 부임했으며, 전입후에 자만과 교만에 빠져 과신하며 지팡이를 던져버리고 무리하게 다니다가 불융합에 의한 대퇴부 재골절로 다시 수술을 받고 37일동안 입원했다. 바로 전해 4월에 발생한 대형교통사고로 인한 병원치료를 마치고 부대로 복귀했을 때 주변 선배들이 재활 치료 기간이 많이 남아있어 바로 대대장 취임은 어려우니 차라리 6개월간의 ‘군사영어반’에 입교하여 교육을 받으며 재활치료를 한후에 대대장으로 취임하라는 제안에 따라 본의 아니게 영어교육을 받는 혜택을 누렸었다. 이번에도 퇴원을 앞두고 회복할 수 있는 재활치료 시간이 필요했는데 궁여지책(窮餘之策)으로 생각해낸 군수관리학교 8주간의 ‘군수기능통합관리과정 제95-4기’ 교육이 종합행정학교 군사영어반에 이어 최후의 피난처가 되었다. 또한 작전직능의 장교가 군수분야까지 섭력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했다. 당시에 장교들이 전 직능의 임무를 다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야한다는 취지에 따라 잠시동안 공통 주특기로 바뀌었지만, 제95-4기과정에 참석한 학생장교들은 대부분이 군수직능 중령급 장교들로 이미 군수참모 직책을 경험했거나 곧 참모로 부임할 자원들이었다. 따라서 작전직능으로 군수분야 문외한(門外漢)인 필자는 수업을 따라가기가 매우 힘들었고 함께 교육받는 선배들과 수호천사 라파엘이었던 동기 이00중령의 도움이 없었다면 무의미하며 고통스럽고 어려운 시간이 될 수도 있었다. (다음편 계속)
-
[김희철의 CrisisM] 국회 안보정책 전쟁에 투입할 22대 당선자들의 이모저모③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이번 총선 결과에 대해 류근일 전 조선일보 주필은 국민의힘이 낙담하며 쇼크에 빠져 있는데 그럴 필요가 전혀 없다고 말했다. 오히려 물려받은 국민의힘 의석수는 5석 늘어나 패배가 아니라며 이재명의 더불어민주당이 오히려 지역과 비례의원 모두 5석이 줄어 과반수 제1당 달성은 실패했다고 강조했다. 이렇게 늘어난 국민의힘 당선자 중에 국방전문가로 먼저 강원도 춘천·철원·화천·양구을의 한기호 국방위원장은 철원출신으로 김화중학교를 나온 뒤 서울 한양공고를 다녔다. 육사 31기로 임관하여 2사단장, 육본정보작전부장, 5군단장, 육군 교육사령관을 역임하는 등 작전분야에 정통했으며 육군중장으로 전역하였다. 한 당선자는 현역 위관시절 탁월한 지휘력과 업무추진력이 돋보여 당시 사단장 박세직 장군의 조카 사위가 되었다. 전역 후 바로 철원·화천·양구 지역에 출마하여 18, 19, 21대 국회의 국방위에서 맹활약을 했으며 장성출신으로는 드물게 4선고지를 점령했다. 영주시·영양군·봉화군·울진군 지역구의 임종득 당선자는 경북 영주 출신으로 대구 청구고교를 졸업하고 육사 42기로 임관해 올드 도미니언 대학교 국제관계학 석사, 경남대학교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은 학구파로 전략과 정책 분야에서 경력을 쌓은 전략통 군인으로 2019년 소장으로 전역하였다. 2022년 8월, 국가안보실 제2차장으로 발탁되어 윤석열 대통령을 보좌했고, 퇴임한 2023년 10월부터 지역구로 내려가 착실하게 차기 총선준비를 하였다. 대구·경북 지역에서는 임 당선자를 포함한 국회의원 25석 모두를 보수가 싹쓸이했다. 한편 더불어민주당 ‘남양주시을’ 지역의 김병주 당선자(2선)은 경북 예천에서 태어나 강릉고교를 졸업하고, 육사 40기 포병장교로 임관해 미사일사령관, 3군단장을 거쳐 육군 대장으로 진급했다. 독실한 불자로 한미연합사 부사령관 재직후 전역했다. 2020년 1월, 더불어민주당 인재영입 3호로 입당해 21대 비례대표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어 이낙연 신임 당대표에 의해 안보분야 대변인으로 임명되었다가 이재명의 열린캠프에 국방안보위원장으로 합류했다. 2022년 3월, 국방위에서 대통령 집무실의 용산 이전 건을 두고 전혀 안보 공백에 대한 계획이 없었던 것에 대해서 굉장히 격앙된 모습으로 질문했다. 육사 동기인 이종섭 국방부장관에게 대통령실 이전과 관련된 비행금지구역 재조정에 관하여 사적인 인연과 관계없이 매섭게 몰아치기도 했다. 2023년 1월, 북한 무인기 영공 침범 사건 사건에서 다양한 정부와 국방부의 실책을 비판했으나 정부여당은 북한 도발의 원인을 김 의원이 주도하여 체결한 9.19 군사합의 때문이고, 북한이 합의를 깨고 도발을 해올 때마다 훈련부족을 야기한 안보불안 합의의 책임자라며 오히려 공격을 받았다. 7월 장마 직후 해병대 일병 사망 후 수사 외압, 육사 홍범도 흉상 철거 논란과 대통령실 국정감사에서 미국의 도청사건, 한미일 군사훈련을 비판 등이 현역 시절과 다른 이중잣대라고 제기되면서 육사 출신들의 질책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지만 현재 더불어민주당에서 중책을 맡으며 이재명 당대표의 신임을 받고 있다. 경상남도 김해시 갑 선거구의 민홍철 당선자는 김해에서 태어나 김해고등학교를 3년 장학생으로 졸업 후 이후 부산대 법학과(80학번)에 입학했는데 군사정권이 출범에 따라 휴교령이 내려지자 고시공부를 시작해 1984년 군법무관 임용시험에 합격했다. 이후 각급 부대에서 검찰관, 송무장교, 군판사, 법무참모와 육본에서 법제·법무과장, 고등검찰부장 등을 거쳐 준장 진급 후 육본 법무감, 국방부 고등군사법원장을 지냈다. 2008년 2월 전역 후 변호사로 일하며 정치에 입문해 2009년부터 3년간 한나라당 당적을 가졌었다. 그러나 참여정부 시절 군 사법제도 개혁 과정에서 인연을 맺었던 문재인이 혁신과 통합 추진위원으로 동참할 것을 권유하자 탈당하고 민주통합당에 입당했다.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통합당 후보로 경상남도 김해시 갑 선거구에 출마해 현역 새누리당 국회의원 김정권 후보를 꺾어 당시 경남의 유일한 민주통합당 당선자가 됐다. 이후 20대 총선에도 같은 지역구에서 재선에 성공했다. 당일에 열린 김해시장 재선거 및 시의원 보궐선거 또한 전부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당선되면서 김해시가 사실상 민주당의 텃밭이 되었고 21대에 이어 이번에도 연속 당선됐다. (다음편 계속)
-
[김희철의 CrisisM] 이승만, 안중근, 천안함 트리플 추모(상)
[시큐리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3월26일은 ‘이승만 건국 정신 계승 국민대회’가 열린 이승만 전 대통령 탄신일이며, ‘안중근 장군 순국 114주기 추모제’와 1‘4주기 천안함 46용사 추모식’이 열리는 회한의 트리플 추모일이었다. 회한의 트리플 추모일 나흘 앞선 지난 22일, 해군 제2함대사령부에서 열린 제9회 서해수호의 날 기념식이 열렸고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동시에 참석했다. 윤 대통령과 한 위원장은 이 자리에서 “국가를 위협하는 세력에 잘 맞서서 대응해야 한다”며 “어떠한 위협도 응징해야 한다”는 취지로 대화를 나눴고 “이렇게 명백하게 도발과 공격을 받았는데도 자폭이라느니 왜곡, 조작, 선동해서 희생자를 모욕하는 일이 있다”라고 강조했다. 한 위원장은 “영웅들을 이렇게 모욕하고, 조작하고 선동하고 왜곡하는 세력들이 계속 그런 일을 하고 있다. 반드시 막아 내야겠다”며 “저희가 잘하겠다”고 말했다. 행사를 마친 윤 대통령은 차에 탑승하기 전 한 위원장과 악수하며 한 위원장의 어깨를 두드려주었던 이날 만남은 다른 의미에서 주목받았는데, 내달 총선을 앞두고 당과 대통령실의 갈등이 고조되면서 4·10 총선에 악재로 작용할 것이라는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침 이 같은 시기에 윤 대통령과 한 위원장이 만나면서 갈등이 봉합 국면에 접어든 상징적 장면으로 대통령실 관계자는 “당정 간 갈등이 있다고 하는데 그렇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장면이다”라고 대통령실은 밝혔다. ■ ‘부활한’ 천안함에 오른 영웅들…“이제 피격당하지 않을 것” ‘제14주기 천안함 46용사 추모식’이 열린 26일 2함대사령부에서 천안함 폭침 사건 당시 생존장병들과 전사자의 유가족 등은 신형 호위함으로 다시 태어난 ‘천안함(FFG-Ⅱ, 2800톤급)’에 오르며 “많이 좋아졌어. 이 배라면 서해 나가서 두 번 다시 피격당하지 않을 것 같아. 다행이야”라며 반겼다. 또 다른 유가족은 "벌써 14년이 지났지만 단 하루도 천안함 사건과 내 아들을 잊은 날이 없다"라며 "이름을 이어간 천안함 장병은 물론이고 국군 모두가 다시는 다치지 않았으면 좋겠다"라고 밝혔고, 또한 유족회장은 “새 국회에선 천안함 괴담 방지 특별법을 마련하라”고 강조했다. 호위함 천안함은 '천안'을 함명으로 사용한 해군의 세 번째 함정이다. 천안함은 초계함(PCC, 1000톤급)보다 크기와 무장, 방어능력을 대폭 증가했다. 천안함은 길이 122m, 폭 14m, 높이 35m 크기에 최고속력은 30노트(시속 55㎞)이며, 해상작전헬기 1대를 탑재할 수 있다. 주요 무장으론 5인치 함포와 함대함유도탄, 한국형 수직발사체계(KVLS)로 발사하는 함대지유도탄·장거리 대잠어뢰(홍상어)·유도탄방어유도탄 등이 탑재돼 있다.(다음편 계속)
실시간 소통시대 기사
-
-
[김희철의 Crisis M] 오리무중인 푸틴의 러시아는 뜨거운 감자인가?
- ▲ 한국국방외교협회가 13일 육군회관에서 주최한 ‘ 2019년 글로벌 군사안보 환경평가와 2020년 전망’ 세미나시 푸틴의 “러시아는 내 주먹만 믿는다”는 뜻의 구호와 하이브리드 전쟁 관련 발표 자료 [자료제공=한국국방외교협회] 수교 30주년을 맞이하는 2020년을 “한·러 상호교류의 해”로 선포 소련시절 향수 부추겨 동북아시아 강대국 위상을 추구 [시큐리티팩트=김희철 칼럼니스트] 우리나라는 1990년 9월30일 러시아와 공식적으로 외교관계를 수립했고, 2020년은 한·러 수교 30주년이 되는 해이다. 2018년 6월22일 문재인 대통령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계기로 수교 30주년을 맞이하는 2020년을 '한·러 상호교류의 해'로 선포하고, 양국 국민간 상호 이해 증진 및 인적 교류 확대를 위해 다양한 수교 기념 행사를 추진하기로 합의했다. 그 중 하나로 ‘무형문화재 제84-1호 고성농요’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공연단체로 초청받아 내년 7월 중 모스크바에서 열리는 2020년 한·러 수교 30주년 기념 ‘제18회 소리의 세계’ 국제행사에 참가할 예정이다. 구소련은 1948년 10월12일 수교한 이래 6·25 남침전쟁시 혈맹으로 북한을 지도 및 지원했고, 중공군 참전에도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수교 70년이 지나가는 현재 북한은 멀어져가는 러시아를 붙잡기 위해 북·러 친선 협조관계를 확대 발전시키겠다고 당과 정부는 몸부림 치고 있다. 가깝고도 먼 나라인 일본의 아베는 2019년 11월 5일 유엔에서 한국 때문에 러시아 및 북한을 모두 잃어버렸다고 한국 정부를 맹비난했다. 이러한 우리나라의 잠재적 위협이되는 러시아와 관련해, 지난 13일 한국국방외교협회가 주최한 ‘2019년 글로벌 군사안보 환경평가와 2020 전망’ 학술세미나에서 국방대 김영준교수가 ‘러시아의 안보군사 전략변화 및 군사혁신 동향’을 주제로 발표했다. 김교수는 푸틴 대통령이 “러시아는 내 주먹만 믿는다”라는 구호를 내걸고 영원한 친구도 적도 없다고 말했다며 “국제정세 변화에 따라 전통적인 군사력 보다는 여론전, 사이버전, 심리전 등을 강화하는 러시아처럼 우리도 하이브리드 전쟁에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푸틴은 히틀러의 침공을 막아내고 승리한 2차 세계대전의 승전일인 ‘빅토리아 데이(전승기념일, 5.9)’에 당시 10대 용사로 선정된 자신의 부친 사진을 직접 들고 시민들과 같이 행진하며 눈물을 보이고 스탈린 생가 복원 사업 등으로 독일 나치에 승리했던 강대국 향수를 이용하여 정권을 유지하며 국민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 이러한 정치공학이 가능한 것은 1941~45년 나치의 침공으로 총 2,000만여명 이상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즉 전국민의 가족 중에 1명은 사망, 1명은 불구, 1명은 화상, 1명은 강간당했다는 것이다. 푸틴은 이런 뼈아픈 역사를 활용, 국민들을 응집시키고 개헌 지지선을 확보하여 장기 집권하고 있다. 또한 푸틴 반대 세력의 준동에 대해서는 미국의 사주를 받은 세력으로 규정하고 과감히 처단하면서 “과거의 소련보다 더 큰 유라시아 연방을 만든 후에 퇴임한다”는 기치를 내걸고 국민들을 선동하고 있다. 이러한 여론전과 심리전은 러시아 국내 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크림반도에서도 합병 주민투표권한 법적 논쟁, 우크라이나 국경 대규모 군사훈련, 지역 긴장조성 및 민간 군사 기업 활동으로 표출되었다. 또 시리아, 터어키 등 주변국에 까지 확대하여 하이브리드 전쟁을 전개하고 있다. 또한 유럽에 위협이 될 수 있는 칼리닌그라드 지역에 핵투발이 가능한 이스칸데르 미사일을 배치하여 440마일 사거리에 있는 유럽국가들을 긴장시키게 만들었다. 이것은 발사할 가능성이 9:1 밖에 안되지만 감언이설과 여론전 및 심리전을 통해 5:5상황으로 만들어 국가간 문제발생시 유리한 협상고지를 점령하는 방법으로 합리화시켜 푸틴이 원하는 방향으로 유인하려는 시도이다. 또한 국방개혁은 통합성과 합동성을 위주로 추진하며, 북극에 방공부대를 10개소나 추가 설치하는 등 군사기지를 증강하여 인접 노르웨이 국가들이 군사훈련으로 대비토록 만드는 등 고도의 심리전으로 주도권을 확보하고 있다. 허나 러시아 내부에서는 1년 의무복무 징병제를 모병제로 전환했으나 최근 모집이 안되어 미충원되는 곤경에 빠져 대안을 강구 중이다. 김박사는 이러한 러시아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동북아에 대한 그들의 인식을 분석했다. 현재 극동지역에서의 러시아 전략적 위상이 취약하고, 역사적으로 극동지역에서는 제한전쟁만 수행했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의 원조없이 소련의 참전이 불가능했다는 점과 유럽 우선주의인 전략, 전통적으로 미 해군에 대한 러시아 해군의 열세 등을 고려시 동북아시아에서는 전통적인 군사전략 보다는 최소위험 최대효과의 안보전략을 구사할 것으로 관망했다. 한편 러시아는 1904년 러일전쟁, 1917~1922년 러시아 내전, 1931년 만주사태 등을 고려시 일본과의 전쟁에 대한 콤플렉스가 있다고 말했다. 먼저 두려움과 불안감을 갖는 콤플렉스 요인으로 2014년과 ‘18년에 'VOSTOK훈련'을 했지만 극동지역의 취약한 군사력, 수도 모스크바와 장거리 떨어진 지형적 특성, 청년들은 모두 모스크바로 떠나고 중국 및 북한노동자들의 이민에 의존해야 하는 인구감소 등이 있다. 또한 러일전쟁시 아시아 국가에게 최초로 패배한 서구 열강이라는 모욕감과 몽골 침략기의 트라우마가 있지만, 서구 유럽 문명을 숭배하는 인종주의와 소련시절 강대국 위상에 대한 향수로 동북아시아 강대국 위상을 추구하고 있다. 김박사는 끝으로 2020년은 한국과 러시아가 수교를 맺은지 30주년이 되는 해이며, 이를 계기로 러시아를 협력과 위협이 되는 국가로 인식하고 융통성있게 대처하는데, 군사적 측면에서 심리전과 여론전 등 하이브리드 하이브리드 전략을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으며 러시아의 사례를 볼때 모병제로의 전환은 신중하게 추진해야한다고 참석자들에게 경종을 울려 주었다. ▲ KIMA에서 주최한 ‘한반도 안보정새 평가 및 전망’ 2019정책세미나에서 발표한 중국·러시아 군용기 KADIZ 및 영공 침범사례 및 현황 [자료제공=KIMA] NATO 동진, MD구축, 중동 문제 등 국제사회 주도권 경쟁에서 갈등과 불신 러시아의 ‘9-브릿지 프로젝트’를 통한 협력사업 추진 필요 적극적인 경제·문화 교류협력을 통해 중·일, 북한 '견제 카드'로 활용해야 그런데 러시아 군용기가 2014년부터우리측 항공식별구역(KADIZ)을 93회나 침범했다. 금년 7월23일에는 중국·러시아 군용기가 연합훈련으로 KADIZ를 침범한 것 뿐만아니라 러시아 군용기(A-50)는 울릉도·독도 영공을 두번씩이나 침범해 비상 출격한 우리 KF-16전투기가 차단비행 및 경고 사격까지 했다. 이때 일본 F-15전투기도 JADIZ내에서 20대나 출격해 대기했다고 한다. 우리 공군은 경고사격만 했지만, 만약 일본은 자국 영공에 타국 전투기가 진입시 격추시켰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렇게 헷갈리는 상황 속에서 러시아 문제에 밝은 한 안보전문가는 러시아 외교에 관련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미국에 대해서는 핵군축, 국제테러에는 협력하지만 NATO의 동진과MD구축, 중동 문제 등 국제사회 주도권 경쟁에서 갈등과 불신이 남아 있다고 말했다. 중국에 대해서 SCO, BRICS에서의 협력 등을 통해 대미 견제를 위한 전략적 수단으로 활용하나 에너지, 무역, 투자 등 경협 증진을 통한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심화시켜 상호 발전을 추진하고 있다. 또한 미일동맹 강화 및 일본의 군사력 증강에 대해 경계하면서 북방영토 문제를 카드로 활용하여 일본의 극동 시베리아 투자 유치 확대를 도모하고 있다. 이를 종합하면 러시아와 북한 관계를 레버리지로 활용하면서 한반도 안정과 평화, 한반도 비핵화를 기조로 한국과의 경제관계 증진 및 남북러 3각 경제협력을 추구하는 것이다. 즉, 남북관계 발전을 환영하고 남북관계 지원자 역할을 자임함과 동시에 한반도 문제해결에 지속적으로 참여할 것이 예상된다고 언급했다. 그는 한국이 1884년 제정러시아 시대 ’조·러 수호통상조약 ‘체결로 조선과 최초 공식적인 접촉이 시작되었고, 앞으로도 미·러, 미·중, 러·북 관계에 따라 한·러 관계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서방의 러시아 제재로 인해 한·러 관계 및 경제협력에도 영향이 있기 때문에 과거 우리의 문제 등에 따라 상호 이해가 매우 중요하며, 특히 청소년과 대학생 대상 교류 프로그램을 발굴하는 등 실질적인 협력관계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지난 2013년 7월 러시아내 '코리아 소사이어티'를 창설한 것처럼 향후에도 한·러 포럼 및 한·러 대화를 활성화 시켜야 한다. 즉 러시아의 관심 분야인 ‘신동방 정책 부응 및 극동개발’에 적극적인 참여하기 위해 9-브릿지(조선, 항만, 북극항로, 가스, 철도, 전력, 일자리, 농업, 수산 등 9개분야의 신북방경제협력 프로젝트)를 통한 협력사업 추진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국방대 김영준교수와 러시아 전문가의 의견을 종합해보면 러시아는 소련시절 강대국 위상을 되찾기 위해 동북아시아를 포함한 전세계적으로 미국 못지 않은 ‘러시아 우선(Russia First) 정책’을 추구하고 있다. 우리는 러시아를 뜨거운 감자처럼 뱉지도 삼키지 못한 채 고민하는 입장이다. 허나 분명한 것은 북한과는 과거의 혈맹관계를 계속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일정 거리간격이 생겼다고 분석되었다. 따라서 우리는 '러시아 수교 30주년'을 계기로 보다 적극적으로 경제와 문화 교류협력을 통해 러시아를 활용할 때, 인접 중·일 국가나 북한에게 유리한 입지를 점령할 수 있는 '견제카드'로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육군본부 정책실장(2011년 소장진급), 청와대 국가안보실 위기관리비서관(2013년 전역), 군인공제회 관리부문 부이사장(2014~‘17년), 현재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한국열린사이버대학 겸임교수 주요 저서 : 충북지역전사(우리문화사, 2000), 비겁한 평화는 없다(알에이치코리아, 2016)
-
- 소통시대
- CRISIS M
-
[김희철의 Crisis M] 오리무중인 푸틴의 러시아는 뜨거운 감자인가?
-
-
[김희철의 Crisis M] 과연 중국은 우리의 우방인가?
- 시진핑의 ‘강군몽(强軍夢)’위한 국방발전 목표, ‘21세기 중엽까지 세계 일류 군대 육성’ 미국보다 4년 먼저 우주군을 창설, ‘묵자호 양자 1’통신위성을 발사 한반도 유사시 중국은 북한요인에 따라 어떤 형태로든 군사개입 중국, ‘이소박대(以小撲大:작지만 큰 것에 대항)식의 군사적 대응’이 필요 [시큐리티팩트=김희철 칼럼니스트]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특보는 지난 4일 국립외교원 외교안보연구소가 개최한 국제회의에서 "만약 북한 비핵화가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주한미군이 철수하면 중국이 한국에 '핵우산'을 제공하고 그 상태로 북한과 협상을 하는 방안은 어떻겠느냐?"는 돌발 질문으로 중국도 우리의 우방인가(?)로 착각하게 만들었다. 또한 4년전인 ‘15년 9월 3일에는 중국의 항일전쟁 승리(전승절) 70주년을 기념하는 중국 역사상 15번째 열병식이 열렸다. 박근혜 당시 대통령도 남한 정부 지도자 가운데 최초로 톈안먼 성루에 올라 ‘중국 인민해방군의 열병식’을 지켜봤다. 박 대통령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사이에 두고 시진핑 주석과 나란히 섰다. 61년 전 중국 건국 5주년 기념 열병식 때 북한의 김일성 주석이 마오쩌둥 주석과 함께했던 자리를 이날엔 박 대통령이 대신한 셈이다.북한의 지도자가 아니라 남한의 대통령이 톈안먼 성루에 오른 것은 급진전한 한중관계를 보여줌과 동시에 냉랭한 북·중관계를 조명한다고 당시 전문가들은 진단했었다. 시진핑 주석은 기념사를 통해 “중국이 평화발전의 길을 걸으며 패권주의를 추구하지 않을 것”이라면서 중국 인민해방군 병력 30만명을 감축하겠다고 선언했다. 전문가들은 중국의 군사력 확대에 대한 주변국의 우려를 중국 정부가 불식하려는 조치로 풀이했다. 그러나 박대통령이 ‘중국 인민해방군 열병식’을 참관한 바로 전해인 2014년에 102회를 필두로 ‘18년까지 464회, 금년에는 중국 군용기는 45회, 러시아는 20회 우리의 KADIZ를 침범했다. 특히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특보가 중국의 '핵우산'을 언급한 금년 7월23일에 중국·러시아 군용기가 연합훈련으로 KADIZ를 침범했고 러시아 군용기(A-50)는 울릉도·독도 영공을 두번씩이나 침범해 비상 출격한 우리 KF-16전투기가 차단비행 및 경고 사격까지 했다. 이때 일본 F-15전투기도 JADIZ내에서 20대나 출격해 대기했다고 한다. 우리 공군은 경고사격만 했지만, 만약 일본은 자국 영공에 타국 전투기가 진입시 격추시켰을지도 모를 일이다 중국이 적인지 우방인지는 지난13일 한국국방외교협회가 주최한 ‘2019년 글로벌 군사안보 환경평가와 2020 전망’ 학술세미나에서 정확히 알 수 있었다. KIDA이창형박사(육사38기)는 세미나에서 ‘최근 중국의 안보군사 전략 변화와 AI를 기반으로 지능화하는 군사혁신 동향’을 주제로 발표하면서 우리나라는 ‘이소박대(以小撲大:작지만 큰 것에 대항)식의 군사적 대응’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박사는 중국의 군사전략 변화를 4단계로 구분했다. 먼저 혁명기부터 70년대까지인 ‘인민전쟁 전략시기’에는 상대적으로 군사·기술적으로 열세인 상황을 고려 게릴라전 위주로 전쟁방식을 채택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1963년에 핵을 개발하고 ‘67년에는 수소탄까지 개발했으며 1979년 ‘중월전쟁’을 계기로 현대적 조건에 걸맞는 형태로 전환하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2단계인 80년대에는 ‘국지전 전략’으로 1985년 중앙군사위에서 소련의 군사적 침략 가능성 약화를 판단하고 제한적 국지전쟁전략을 도입하였다. 3단계는 90년대로 ‘첨단기술 조건 하 국지전 승리 전략’으로 천안문 사태 이후 중국의 국제적 고립과 사회주의권 몰락 및 ‘91년 걸프전의 충격은 기존 군사전략과 중국군의 능력에 대한 위기를 고조시켰다. 따라서 해·공군 및 제2포병 강화에 주력하고 제한된 공간과 자원으로 신속히 전쟁 승리를 확보 후, 정치적 타결을 도모하는 전략을 수립하여 신속대응군에 의한 선제적·공세적 전쟁수행 능력과 첨단과학기술 조건 전장환경에서의 전쟁 수행능력 배양에 주력하였다. 2000년대인 4단계는 ‘정보화 조건 하 국지전 승리 전략’으로 전쟁양상 발전에 따라 ‘적 정보체계의 파괴와 아 정보체계의 보호’가 핵심요소로 대두되는 점을 인식하였다. 가상적을 미국, 일본, 러시아 등 고도의 첨단기술을 보유한 강대국들로 전제하고 필요한 무기체계 역시 치명적인 운용범위를 벗어나 글로벌 레벨로 격상하기 시작했다. 새로운 전쟁양상은 정보력 우위가 해·공군력 우위보다 중요하기 때문에 이를 확보하기 위해 인공위성 정찰 등 우주공간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해커전쟁 등 비전통적 및 비대칭적인 전쟁수행능력을 중시하여 2008년 국방백서에서 21세기 중엽까지 정보화부대 건설과 ‘정보화 전쟁에서 승리’라는 전략적 목표를 제시했다. 또한 2030~2050년 주요국들의 경제력, 군사력, 과학기술력, 정치외교력과 종합국력을 전망하여 중국의 핵심이익을 과거 ‘지리적 경계’위주에서 미래 ‘전략적 경계’인 기존의 4해, 일대일로, 북극항로, 우주 및 사이버 등으로 확장했다. 시진핑의 ‘강군몽(强軍夢)’구현, 국방발전 목표 ‘21세기 세계 일류 군대 육성’ 중국, 유사시 북한 WMD 통제, 북한내 중국인 보호를 목적으로 군사개입 이에 따라 중국의 군사혁신 전망은 시진핑의 ‘강군몽(强軍夢)’구현을 위해 국방발전 목표를 ‘3단계로 21세기 중엽까지 세계 일류 군대 육성’으로 정했다. 1단계는 2020년까지로 군사개혁과 기계화 및 정보화를 통한 중대한 진전이며, 2단계는 2035년까지 군사이론, 조직,인재, 무기장비 등 국방 및 군대 현대화를 실현하는 것이고, 3단계는 2049년까지 세계 일류 군대를 전면적으로 건설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19차 전대회의에서 시진핑은 “군사 지능화의 발전을 가속화하고 사이버 정보체계에 기초한 합동작전 및 전역작전 능력을 향상시켜야 한다”며 인공지능(AI)이 군사분야에 미칠 중대한 파장을 과학적으로 예견했다. 군사이론을 혁신하여 신형 무기장비를 개발하고 ‘지능화 군대’를 추구하며 지능화 군대를 위해 ‘중앙군민융합발전위원회’를 설립해 시진핑을 위원회의 주임으로 임명하여 새로운 모델로 군민융합방식을 전면 전개하고 있다. 이와 같은 군사혁신을 통한 최근 성과로 미국보다 4년 먼저 우주군을 창설하여 ‘북두위성항법 시스템 제3세대’를 건설 배치하고 ‘묵자호 양자 1’통신위성을 발사했으며, ‘J-20 제4세대 스텔스 전투기’, Y-20수송기, 이륭무인기, AG-1600수륙양용항공기 등을 개발했다. 또한 ‘001A 형 자체 항공모함’과 05형 미사일 구축함을 진수했고 ‘99A개량형VT-4주력 탱크’와 VT-5경량탱크도 개발했다. 그러나 이창형 박사는 현재까지는 미군의 합동제를 모방한 군사혁신에 따른 실전능력 검증은 미흡한 상태라고 평가하며 한국 안보에의 함의와 대응방향을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한중관계는 6년 주기로 경제와 안보관계에서 딜레마에 빠지는데 1999년 마늘파동, 2004년 동북공정, 2010년 천안함 사건, 2016년 사드배치에 따른 중국의 보복 등이다. 한반도 유사시 중국은 북한요인에 따라 어떤 형태로든 군사개입을 할 것이라 확신하는데 그 이유는 국경안정, 친중정권 유지, 북한 WMD 통제, 북한내 중국인 보호를 목적으로 국부 또는 전면 개입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를 위해 선양대군구를 북부전구로 개편하여 78.79,80집단군과 칭다오의 북해함대, 공강군을 이용 국경지역 차단, 상륙, 공수작전 및 제주해협 차단작전까지 대한반도 작전의 규모를 확대하고 작전형태를 다양화했다. 중국의 군사력 범위가 확대됨에 따라 미군 전략무기의 한반도 전개범위도 제한되며, 만약 미 전력운용시 충돌이 우려되고 동남중국해 및 대만해협 긴장시에도 충돌 연루 가능성이 있다고 보았다. 실제로 중국어선들이 한국 서해 EEZ에 진입해 불법조업을 할 때 한국경찰능력 부족시에 해군이 지원하거나 미군 해상전력의 한반도 전개시에는 이를 차단하기 위해 새롭게 편성된 북부전구의 북해함대 대응이 예상되는 등 한중 양국의 군사적 충돌요인이 정치적 충돌요인으로 비화될 가능성도 높다고 분석했다. 이박사는 이런한 중국에 대응하는 안보전략 방침으로 “원맹근교(遠盟近交) 외교적으로 중국과 전략적 협력동반자 관계를 유지하고, 군강정탄(軍强政彈) 군을 강하게 키우되 외교정치는 탄력적으로 하며, 공허피장(攻虛避長) 헛점은 공격하고 장점은 피하며, 비검향수(匕劍向首) 장거리 정밀무기를 개발하여 적의 지도부를 지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타국 전투기가 우리 영공 침범시에는 경고사격 뿐만 아니라 격추시켜야 이창형 박사는 특히 금년 7월23일에 중국·러시아 군용기가 연합훈련시 러시아의 전투기가 독도 영공 침범했는데, 이때에는 경고사격 뿐만 아니라 국제법에 따라 격추시켜야 했다. 그래야 ‘앗 뜨거워’하고 또 다시 침범하지 않기 때문이다. 중국은 핵심이익을 확장하기 위한 대응개념으로 ‘인불범아 아불범인 인고범아 아필범인(人不犯我 我不犯人 人若犯我 我必犯人:상대방이 나를 범하지 않으면 나도 상대방을 범하지 않는다. 상대방이 범하면 나도 반드시 범한다)’라고 했다. 우리도 ‘고슴도치, 독침, 독새우 전략’으로 치명적인 응징·보복능력을 확보하고 운용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혔다. 육군본부 정책실장(2011년 소장진급), 청와대 국가안보실 위기관리비서관(2013년 전역), 군인공제회 관리부문 부이사장(2014~‘17년), 현재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한국열린사이버대학 겸임교수 / 주요 저서 : 충북지역전사(우리문화사, 2000), 비겁한 평화는 없다(알에이치코리아, 2016)
-
- 소통시대
- CRISIS M
-
[김희철의 Crisis M] 과연 중국은 우리의 우방인가?
-
-
[김희철의 Crisis M]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은 우리의 적인가?
- ▲ 지난 3일 육군회관에서 열린 ‘2019년 글로벌 군사안보 환경평가와 2020 전망’을 주제로 열린 학술세미나 모습과 이 세미나를 기획하고 준비한 권태환장군(전 주일국방무관) [사진=김희철] 유사시 일본의 전략적 가치를 냉정하게 재고, 안보협력의 극대화 필요 한반도에 전개하는 ‘유엔군의 후방기지’ 보호임무수행을 지속해야 한일 방산협력 채널 구축 및 인적교류 활성화 제안 눈길 ‘가깝고도 먼 나라’인 일본, 미국과의 동맹을 축으로 상호협력 이루어져야 [시큐리티팩트=김희철 칼럼니스트] 한국국방외교협회(해외주재 무관 등 국방외교 역임자들로 구성) 회장 권태환 장군(육사38기)은 국제정책연구원 공동주최로 협회 회원과 국방부 정책실 및 정보본부 담당관, 한일군사문화학회, 일본 군사연구회, 국방대 PKO센터, 김황록 예비역 중장(전 국방부 정보본부장)을 비롯한 예비역들과, 육군사관생도 등 1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2019년 글로벌 군사안보 환경평가와 2020 전망’이란 주제로 지난 13일 학술세미나를 알차게 준비하여 성공적으로 개최했다. 특히 박영준 국방대 교수의 사회로 진행된 세미나의 2부에서는 ‘최근 일본 안보정책 변화와 자위대 동향’을 주제로 김황록 예비역 중장(전 국방부 정보본부장)이 기조연설을 하였고, 권태환장군(전 주일국방무관) 등 한일 군사관계를 경험한 전현직 담당관들이 개인적 견해를 발표하여 참석자들에게 울림을 주었다. 방준영 육사교수는 ‘최근 일본의 안보정책 변화와 한반도 안보’라는 제목으로 방위정책의 기본인 전수방위와 문민통제의 확보, 국가안전보장정책의 체계와 방위계획 대강 등 포괄적인 일본의 안보정책을 소개한 뒤, 미일 방위협력을 위한 가이드 라인을 설명했다. 그리고 한일, 한미일 간 안보협력을 위해서는 “한반도 유사시 일본에 기대할 수 있는 전략적 가치를 냉정하게 재고하면서 안보협력의 실질적 극대화를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일본 육자대와 지참대를 졸업한 장형익 중령(진)은 ‘일본 자위대의 합동성 강화를 위한 개혁동향’이란 제목으로 발표자료를 통해 조직적인 측면에서 ‘통합막료감부’를 중심으로 합동체제를 정비하고 방위성 개혁과 연계한 자위대 상부조직(운용기획국 폐지 등)도 ‘통합막료감부’로 통합하여 일원화시키는 개편을 소개 하였다. 운용적인 측면에서는 ‘통합기동방위력’ 구상을 통해 합동전장 운용개념을 설정하고, ‘다차원 통합 방위력’ 구상으로 개념을 심화시켜 ‘통합임무부대’운용을 통해 합동작전 경험을 축적시키는 개혁동향을 제시했다. 향후 한국군과 일본 자위대의 군사협력증진을 위해서는 미군의 ‘다영역 작전’추진과 연계한 한미일 공조를 강화시키고 GSOMIA, ACSA 등을 통한 군사협력의 제도화와 유지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일본 방위대 안전보장학 석사와 합참대를 졸업한 이준왕 대령(진)은 ‘일본의 상황인식 변화’는 중국의 부상과 북한의 위협이 한반도 문제로만이 아니라 유일한 핵무기 피폭국으로서 두려움을 가지고 있는 일본에 직접적인 군사위협으로 대두 되었다고 말했다. 미국 동아시아 전략변화에 따른 일본의 역할이 확대되는 등 외적 개혁동인과 함께 내적으로는 인구의 감소, 방산산업 생존의 위기, 보통국가다운 국가로서 외형 확보 요구가 육상자위대를 개혁하게 만들었다. 상황인식 변화에 따른 ‘육상자위대 개혁 동향’은 ‘육상총대’와 ‘수륙기동단’을 창설하고 기동작전부대로서 사여단을 개편하는 가운데 공격형 무기체계와 조직들이 확인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개혁동향에 따라 일본은 한반도 유사시 전개하는 ‘유엔군의 후방기지’ 보호임무수행을 지속하고 있으며, 개인적 견해를 전제로 향후 한일관계가 개선되면 낮은 단계로 태평양전쟁시 징용 전사자 유골 수습을 통한 ‘화해와 치유’ 군사위원회를 구성하는 등 상호 신뢰를 증진하면서 국제평화유지활동분야 군사협력방안을 모색과 함께 ‘높은 단계’로 교육사 연락장교 파견, 주일미군 과학화훈련장 및 자위대 훈련장을 한미일 공동이용 추진 등 상호운용성 제고방안을 제시하였다. 일본 해자대 출신의 배준형 해군소령은 원거리 도서방위 및 탈환 전략과 통합방위력 구축 등 ‘일본의 해양전략 변화와 해군력 발전 방향’을, 전 주일 공군무관이었던 김학준 공군대령은 항공자위대의 적 기지 공격능력 확보 등 ‘일본의 항공방위전략 변화와 항공전력’에 대해 발표를 하였다. 현 협회장이자 전 주일 국방무관이었던 권태환장군은 ‘최근 일본의 방위산업 동향 및 향후 전망’으로 방위산업 변천의 시대적 고찰과 방위대강 전력증강 현황 등 일본 방위산업 추진전략을 분석하였다. 또한 앞으로 한일 방산협력 채널 구축 및 인적교류 활성화로 협력 기반을 구축하고 공동 개발 및 생산과 탄약을 비롯한 군수품 상호 지원, 다차원(우주, 사이버, 전자파) 영역 등 군사과학기술 분야까지 전략적 방산협력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국제사회에서는 영원한 적도 우군도 없다. ‘가깝고도 먼 나라’인 일본과 현재는 지소미아 파기 및 연장 등 여러가지 문제로 잦은 충돌이 있지만 한반도를 둘러싼 ‘미·중 신 냉전체제’의 대두 등 자국 중심의 국제안보정세를 고려시 한일 양국은 미국과의 동맹을 축으로 보다 긴밀히 상호 협력해야 할 필요가 있다. 손자는 지피지기 백전불태(知彼知己 百戰不殆)라고 병법에 강조했다. 일본을 정확히 알아야 적이든 친구로 상대할 수 있다. 이번 세미나에서는 “공고한 한미 동맹이 북한이 핵을 포기하게 만드는 첩경”이라고 의견이 모아진 가운데 “일본에 정통한 발표자들의 제언은 현 정부나 관료 및 사업가들에게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를 알려주는 가장 알찬 시간이었다”는 것이 참석자들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육군본부 정책실장(2011년 소장진급), 청와대 국가안보실 위기관리비서관(2013년 전역), 군인공제회 관리부문 부이사장(2014~‘17년), 현재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한국열린사이버대학 겸임교수 주요 저서 : 충북지역전사(우리문화사, 2000), 비겁한 평화는 없다(알에이치코리아, 2016)
-
- 소통시대
- CRISIS M
-
[김희철의 Crisis M]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은 우리의 적인가?
-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50) 중대장 생활의 희비쌍곡선, 시작은 '박격포' 사고난 중대에서
- 배치부대 미정으로 가족을 광주 백일아파트에 두고 먼저 사단사령부로 전입 새로운 곳 원했으나, 과거 근무했던 연대의 안전사고가 잦은 중대로 전임 중대장은 병사의 항문 파열 사고로 보직 해임 [시큐리티팩트=김희철 칼럼니스트] 1984년 12월 고등군사반(OAC)과정이 끝나자 당시의 방침에 따라 다시 대성산으로 원대복귀하게 되었다. 내려오는 눈썹을 부릅뜨며 야전교범과 치열하게 싸워왔던 24주 기간의 고등군사반(OAC)과정을 수료했다. 비록 우수한 성적으로 흰장갑을 끼고 상장을 받는 등수안에는 못 들었지만 불행 중 다행스럽게도 간신히(?) 상층에 포함되는 성적으로 만족해야 했었다. 배치부대가 정해지지 않아 가족을 광주 상무대 백일아파트에 두고 먼저 대성산 사단사령부로 갔다. 사단에 도착하자 인사처 보임장교는 각 연대의 중대장 현황을 분석하여 육사 출신이 가장 적은 인접 연대로 보직을 고려하고 있었다. 필자도 소대장 및 대대교육장교로 같은 연대에서 약 3년을 근무해서 가능하다면 새로운 연대에서 새롭게 도전을 해보고 싶었다. 6개월간 떠나 있다가 원대복귀하니 지형도 잘알고 사단 실무자들도 안면이 있어 생소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소통이 되어 좋았다. 이런 것이 아마도 육군본부에서 중대장은 이미 근무한 지역 부대로 원대복귀 하도록 방침을 정한 이유이기도 했었다. 사단본부 각 사무실을 돌며 인접 연대로 보직을 받게 되었다고 복귀 인사를 하며 지인과 담화를 나눌 때 인사처에서 사단장 전입신고 시간이 되었다고 연락을 받았다. 사단장실 앞에 고등군사반(OAC)과정을 마친 동료들과 새롭게 전입오는 장교들이 신고연습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보임장교가 읽어주는 사단장 신고문에 필자가 가야할 연대가 바뀌어 당황했다. 인사참모가 최초 배치부대를 사단장에게 보고하는 과정에서 고등군사반(OAC) 입교전에 근무했던 연대로 조정되었다고 말했다. 필자는 2대대에서 소대장과 GP장, 1대대에서 교육장교로 근무를 했는데, 같은 연대 3대대 9중대장으로 보직이 바뀌어 있었다. 현재 중대장은 현재 결혼휴가 중이었으나 보직해임 되었다. 그 이유는 얼마전에 박격포 훈련탄에 병사가 항문을 맞아 파열되는 등 안전사고가 잦은 중대였기 때문이었다. 때마침 사단교육장교로 근무하다 소령으로 진급한 장교도 대대작전장교로 같이 보직되는 조치가 취해졌다. 당시에는 다행인지 불행인지 몰랐었지만 대대장은 육사 선배였고 인접 10중대장은 GP장 근무시에 대대장의 치열한 선의경쟁(善意競爭) 유도에 걸려 우정이 더욱 돈독하게 된 동기생 한황진 대위(육사37기. 직업군인 사용설명서(35)’ 호국보훈의 길에도 통하는 미스트롯을 키운 힘’편 참조)였고 이 것은 희비 쌍곡선의 시작이 되었다. 연대에 육사 출신 중대장은 통상 1~3명 있는데, 하필 배치되는 대대에 동기생이 인접 중대장 근무를 하고 있어 평점 등에서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는 등 불리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GP장 근무시에 치열한 선의경쟁을 했던 절친이 먼저 고등군사반(OAC) 교육을 우수하게 마치고 근무하고 있는 부대라 더욱 난감했다. 사단장 신고시에도 안전사고에 대해 언급하며 사단장은 부대관리 철저를 당부하였다. 이어 연대장 신고를 위해 다목리에 있는 연대본부로 향했다. 때마침 연대는 연말 지휘관 회의를 소집하여 1년동안 근무 결과를 평가하여 선봉 및 각분야 우수중대 표창 등 결산을 하고 있었다. 또한 내년 GOP투입을 위해 철저히 준비하여 침투하는 적을 잡자는 것을 다짐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그러나 보직하는 3대대는 GOP가 아닌 후방예비로 정해져 있었다. 회의 후 만찬에서 6개월만에 다시 선배들과 동료들을 만나 자연스럽게 해후하는 시간이 되었다. 그 자리에서 연대의 모참모는 필자에게 “내년 선봉중대는 자네가 될 거야”하며 우스개 소리로 격려도 해주었다. 그러나 GOP연대에서 예비대대의 중대가 선봉이 되는 경우는 거의 없어 기대하지는 않았다. 회의 및 만찬이후 당연히 필자와 한황진 대위는 마을로 내려가 한잔을 더하게 되었다. 그 자리에서 필자는 한대위에게 핀잔을 주었다. “똑바로 근무를 잘하지! 인접 중대에서 안전사고 발생으로 타 연대로 가게 될 나를 니가 있는 대대로 배치하게 만드냐..?”며 소주를 주고 받으니 만취가 되었다. 자정이 다가오자 한대위는 비틀거리는 필자를 부축하여 연대내에 있는 독신자 숙소로 이동했다. 횡설수설하며 오솔길을 걸어 숙소에 거의 도달했는데 밤길에 누가 지나가며 “조심해서 다녀라..!”하는 것이었다. 갑자기 나타난 사람을 향해 한대위는 ‘충성..!’하고 구호를 붙였다. 모질게 전투력 강화에 전념하여 ‘아비규환’이라는 별명으로 호칭되었고, 회의와 만찬을 주관했던 연대장(예비역 중장 이규환, 육사21기) 이었다. 우린 “감사합니다..!”라고 인사를 하며 급하게 숙소로 들어가 원대복귀 첫날을 보냈다. 육군본부 정책실장(2011년 소장진급), 청와대 국가안보실 위기관리비서관(2013년 전역), 군인공제회 관리부문 부이사장(2014~‘17년), 현재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한국열린사이버대학 겸임교수 주요 저서 : 충북지역전사(우리문화사, 2000), 비겁한 평화는 없다(알에이치코리아, 2016)
-
- 소통시대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50) 중대장 생활의 희비쌍곡선, 시작은 '박격포' 사고난 중대에서
-
-
[김희철의 Crisis M] 자유민주주의 쇠락과 신(新)왕조·민족주의 부상
- KIMA 김열수 박사, 자유민주주의 위기 심화와 신(新) 민족주의 부상을 글로벌 위기로 지적 [시큐리티팩트=김희철 칼럼니스트] 한국군사문제연구원 안보전략실장 김열수 박사는 지난 4일 국방컨벤션에서 열린 ‘2019 KIMA(한국군사문제연구원) 국방정책 세미나’에서 “자유민주주의 위기가 심화되고 있고, 민족주의 부상으로 자유주의 질서의 쇠퇴가 가속화되고 있다”는 발표해 걱정과 충격을 주었다. 발표에 앞서 김박사는 “추상성이 상승하여 접근해본 결과 겨울날씨를 전망하게 됐다”며 운을 띠운 뒤 “첫째는 자유민주주의의 위기 심화”라고 했다. 1·2차 세계대전과 탈냉전을 거치면서 자유민주주의가 세계의 표본처럼 보였다. 그러나 지금은 민주주의 국가들의 국내총생산(GDP) 점유율이 절반 이하로 떨어졌고 10년 후에는 1/3로 떨어질 것이라고 국제통화기금(IMF)은 예측했다. 반면에 중국, 러시아, 사우디아라비아 등 자유롭지 않고 권위주의 국가들의 GDP 비중이 급속히 증가하여 자유민주주의 자본을 능가하고 경제적 우위를 점했던 자유민주주의가 경제적 약자의 지위로 내려앉게 될 것이다. 현재도 1인당 소득이 가장 높은 세계 15개국 중 거의 2/3이가 비민주적 국가이다. 따라서 권위주의적 국가들이 번영을 위해 자유민주주의를 선택할 이유가 없어졌다. 개인의 인권과 자유, 기회평등과 공정성을 중시했던 자유주의는 시장이 포화되고 경쟁이 심화되자 권위주의 국가들과 격파가 좁혀졌고 자유주의국가 내에서 빈부의격차는 오히려 더 커지게 되었다. 또한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지도자들은 국민의 선택을 받다(선거)보니 다음 선택을 받기 위해 대중영합적인(Populism) 정책을 펼치는 유혹에 빠져 이래저래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 김 박사는 두번째로 '민족주의 부상과 자유주의 질서의 쇠퇴 가속화'를 지적했다. 2013년 집권한 중국의 시진핑 주석은 ‘위대한 중화민족의 부흥’을 국정목표로 내세웠고, 2017년 집권한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제일주의(America Fitst)를 국정목표로 내세웠다. 프랑스 마크롱 대통령이 민족주의와 애국심의 뚜렷한 차이를 보여주기 위해 “애국심은 민족주의와 정반대”라고 호소했지만, 유럽은 시리아 사태이후 이민자들에 대해 문을 걸어 잠그기 시작했고 미국도 멕시코 국경에 장벽을 설치하기 시작했다. 즉, 新 민족주의가 등장하면서 국제적인 자유민주 질서가 급격히 쇠퇴하고 있다. 이런 인식 결과로 미국은 세계기후변화협약(UNFCCC)에서의 탈퇴, 환태평양경제동반자 협정(TPP) 거부, UNESCO과 이란 핵협정인 포괄적공동행동계획(JCPOA)에서 탈퇴, 중거리핵미사일(INF) 조약파기 등으로 나타냈다. 이와같이 세계는 미국이 주도하는 자유주의 질서의 죽음을 목격하고 있고 이를 학습하는 사회화가 이루어진다면 민주주의의 붕괴 속도는 더 빨라질 것이다. 강대국의 패권경쟁 가속화와 주변국의 고민 심화 이 같은 두 가지현상은 '패권경쟁 가속화와 주변국들의 전략적 고민 심화'로 귀결되고 있다. 중화민족의 부흥과 미국 우선주의 간의 갈등은 이제 전 분야에 걸친 패권 경쟁으로 나타나고 있다. 미국은 이미 태평양사령부를 ‘인도태평양사령부’로 개편(2018.5)했다. 중국도 태평양 방향으로는 ‘도련선 전략(Chain of Islands)’, 인도양 쪽으로는 ‘진주 목걸이 전략(Sting of Pears) 등 반접근/거부(A2/AD)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强軍夢’실현을 위해 ‘신형세하 적극방어 군사전략’과 통합군 형태의 5대 전구로 개편, 그리고 로켓군 창설 등의 국방개혁을 가속화 하고 있다. 특히 경제와 안보를 아우르는 ‘일대일로(一帶一路) 전략(BRI)’은 서남 및 중앙아시아 그리고 아프리카와 유럽을 중국의 영향력 하에 두겠다는 야심찬 프로젝트이다. 이에 2019년 4월 베이징에서 150여 국가 및 90여 국제기구 인원 5천여명이 참석하는 제2차 일대일로(一帶一路) 정상포럼이 개최되었으며 37개국 정상들도 참석했다. 김열수박사는 이러한 한반도 안보정세 평가에 따라 우리의 대응방안3가지 시나리오를 제시했다. 시나리오 A는 미국의 요구에 순응하는 것, 시나리오 B는 갈등과 봉합과정을 거치면서 장기전으로 끌고 가는 것, 시나리오 C는 미국의 요구를 거절하면서 My Way로 가는 것이다. 이중 가장 가능성 높은 것은 B라고 했다. 만약 갈등이 고조되면 투키디데스의 함정(Tuchididdes Trap; 새로운 강대국이 부상하면 기존의 강대국이 이를 두려워하게 되고 이 과정에서 전쟁이 발발한다는 뜻)이 현실화될 가능성도 있어 “역내 각 국가들은 줄서기를 강요당할 것이나 대부분의 국가들은 위험을 회피하는 전략을 추구할 것이다”라고 결론을 맺었다. 자유민주주의는 무려 200년 동안 검증된 세계 표본이 되는 제도 잘못된 민족주의에 담긴 논리의 유희(遊戱) 뿌리치고 비판적 성찰 해야 이와 같이 新 민족주의가 등장하면서 자유민주주의의 쇠락과 더불어 국제사회는 혼돈의 늪으로 빠져들고 있으며 게다가 新 민족주의 못지않은 현존하고 있는 북한 등 왕조국가들도 자유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있다. 이러한 경종을 울려준 김열수박사의 예리한 분석과 대안은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중동의 아랍국가들은 대부분 왕조국가이다. 이 국가들이 민주주의를 선택할 이유가 없는 것은 풍부한 석유 등의 지하자원으로 왕권과 권위를 강화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자유민주주의의 제도적 모순 때문이 아니라 현재 국가지도자들을 포함한 정치권 및 사회지도자들의 운용 실패가 또 하나의 이유가 될 수 있다. 군(軍)의 고위직을 성공적으로 마친 저명한 예비역 장성은 “자유민주주의는 무려 200년 동안 검증된 것으로 제도 자체에는 문제점이 없고 대중영합적인(Populism) 정책 등에 의한 운용에 문제점이 있지만, 민족주의나 왕조주의, 사회주의 등 비민주주의와 비교될 수 없는 표본이 되는 제도이다”라고 강조했다. 이 예비역 장성의 말처럼 단편적인 논리의 유희 (遊戱)에 빠져 자유민주주의를 부정해서는 안되며, 운용의 문제점을 보완할 수 있는 국민들의 현명한 선택이 중요하다. 지금 사회 저변에서 꿈틀거리며 논리의 유희에 젖어있는 민족 및 사회주의자들의 유혹을 인식하고 비판적으로 성찰하는 것이 자유민주주의를 지키는 길이다. 육군본부 정책실장(2011년 소장진급), 청와대 국가안보실 위기관리비서관(2013년 전역), 군인공제회 관리부문 부이사장(2014~‘17년), 현재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한국열린사이버대학 겸임교수 주요 저서 : 충북지역전사(우리문화사, 2000), 비겁한 평화는 없다(알에이치코리아, 2016)
-
- 소통시대
- CRISIS M
-
[김희철의 Crisis M] 자유민주주의 쇠락과 신(新)왕조·민족주의 부상
-
-
[김희철의 Crisis M] 2019 KIMA국방정책 세미나에서의 오싹한 충격
- ▲ 4일 국방컨벤션에서 한반도 안보정세 평가 및 전망이라는 주제로 열린 ‘2019 KIMA(한국군사문제연구원) 국방정책 세미나’에서 사회를 맡은 허남성 박사와 패널 및 김용우 전 육군총장을 비롯한 주요인사들의 기념촬영 모습 [사진제공=김희철] 세종연구소 홍현익, 북한 핵을 포기 못하는 것은 트럼프의 책임, 북 입장 옹호 조화로운 협력 위해 북한 방문한 시진핑, 빨리 한국도 방문하도록 노력필요 한미 방위비분담금 협상위해 주한 미군 중 1만명을 철수시키는 방안제시 북한, 위기조성 위해 추가 핵실험 및 장거리 미사일 발사 실험 시도 추정 예상되는 북미간 12월 실무 및 내년 1월 정상 회담은 트럼트의 대선 신호탄 [시큐리티팩트=김희철 칼럼니스트] 다사다난했던 2019년을 보내는 12월,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특보는 4일 국립외교원 외교안보연구소가 개최한 국제회의에서 "만약 북한 비핵화가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주한미군이 철수하면 중국이 한국에 '핵우산'을 제공하고 그 상태로 북한과 협상을 하는 방안은 어떻겠느냐?"고 돌발 발언을 하여 소름을 끼치게 했다. 같은 날 국방컨벤션에서 김용우 전 육군총장과 김병관, 박정이, 권혁순 전 군사령관 등 40여명의 장성을 비롯한 예비역 장교들과 학자 및 안보전문가 등 150여명이 참석하여 ‘2019 KIMA(한국군사문제연구원) 국방정책 세미나’가 열렸다. 이 세미나에서 주제발표를 한 세종연구소 홍현익 박사도 “제재완화를 하면 북한은 핵을 포기할 것이냐?”라는 플로어의 질문에 아찔한 발언을 서슴없이 했다. 홍박사는 “미국 시민들과 여론은 보수적이라 트럼프의 대북 정책을 동의하지 않을 것이고, 김정은은 미국을 불신하며 쉽게 핵을 포기하지 않고 장기전으로 미국의 다음 정권에서도 유리한 협상을 하려 시도할 것이다.” 라고 답을 했다. 이 발언은 질문에 대한 본질적인 답보다는 북한이 핵을 포기 못하는 것이 오로지 싱가폴 정상회담을 무산시키는 등의 약속을 지키지 않은 미국 트럼프의 책임이라고 발언하여 북한과 정부의 입장을 옹호한 것으로 인식됐다. 또한 “현재 트럼프는 주한 미군은 미국 안보에 도움이 안된다고 생각을 하며 방위비를 올리지 않으면 철수 할 수밖에 없다고 했지만, 미국은 중국 억제를 위해서도 주한 미군 철수가 불가능하다”고 단정 지었다. 따라서 “지금 문재인 정부의 외교적 실패 원인은 미국우선주의 정책을 추진하는 트럼프와 정권유지를 위해 무역제재를 하여 지소미아 종료와 연장을 번복하게 만든 아베 때문이다”라고도 말했다. 그 와중에도 현정부는 평화적인 대화로 해결하기 위해 미국 트럼프와 북한 김정은 사이에서 최선의 노력을 하고 있다며 “만약 미국의 요구하는 방위비분담금 5배 증액이 걸림돌이 되면 2만 8천명의 주한 미군 중 1만명을 철수시켜 분담금을 줄이는 방안을 제시한다”고 강조했다. 더불어 “지난 6월 시진핑 주석이 평양을 국빈 방문하고 최근 중국과 러시아 군용기가 울릉도, 독도, 제주도 지역의 KADIZ를 수차례 무단 진입하여 경고 사격까지 하게 된 상황을 볼 때 중러의 압박은 앞으로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라며 중러 압박 회피와 일본 무역제재 해제를 협상하기 위해서도 현재는 조건부 연장됐지만 한일간의 ‘지소미아 종료’는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리고 문대통령이 6월 30일 청와대 한미 정상회담 뒤 공동기자회견에서 “한국의 신남방정책과 미국의 인도-태평양정책 간 조화로운 협력을 추진하기로 했다”고 밝힌 것과 같이 조화로운 협력을 위해 북한을 방문한 시진핑이 빨리 한국도 방문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도 주장했다. 이 시점에서 북한은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탄핵과정으로 국내정치에서 수세에 몰리고 대선 승리를 위해 북한과의 협상이 필요하다는 점을 알고 있다. 이를 기반으로 김정은이 제시한 최후통첩 시한인 연말이 다가오고 있지만 한미공중훈련 연기보다 몸 값을 올려 비핵화 협상 전에 미국의 양보를 확보하겠다는 적극적인 압박전략을 구사할 것이다. 이는 미국에 비해 500대 1의 군사력 수준을 가진 북한이 오히려 ‘갑’행세를 하고 있는 상태이며, 트럼프가 지난 3일 런던에서 대북 무력사용을 시사한 현 상황에서 “이번 달 안에 북미 협상이 진전 없으면 북한은 위기를 조성시키기 위해 추가 핵실험 및 장거리 미사일 발사 실험을 시도할 것이다”라고 추정했다. 이로 인해 “12월 중에는 정략적인 실무회담이 예상되고 내년 1월에 북미 정상 회담을 이루어 질 것이며, 이는 트럼트의 대선 신호탄이 될 것이다”라는 전망을 발표했다. ▲ 좌측 1주제 ‘2019년 북한 비핵화와 한반도 안보정세평가 전망’을 발표하는 패널들과 우측 2주제 ‘북한/주변국 군사위협 분석/대비’에서 발표하는 이건완 예비역 공군중장(전 공군작전사령관) 모습 [사진제공=김희철] 포필리즘에 빠진 자유 만주주위의 위기가 심화 미국이 ‘인도-태평양정책’ 선포한 상태에서 지소미아 종료는 매우 잘 못된 것 주변국에 전략적인 우위 확보와 작전적 단호한 대응과 확전방지 동시 추구 한국군사문제원 김열수박사는 “포필리즘에 빠진 자유 만주주위의 위기가 심화되고 민족주의 부상과 자유주의 질서의 쇠퇴와 패권 경쟁이 가속화되어 주변국들의 전략적 고민이 심화되고 있다며 대비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한동대 박원곤 박사는 “금년은 외교적으로 중요한 해이기 때문에 미국이 중국에 ‘인도-태평양정책’으로 전면전을 선포한 상태에서 지소미아 종료는 매우 잘 못된 것이라며 주제발표자와 정반대 의견이다”라고 제시했다” 이어 “북미 실무 및 정상회담은 회의적이고 북한은 미국 대선을 고려하여 장기전을 할 것이다”라고 예상했다. 그는 이를 대비하는 원칙으로 “첫째 세계질서 변화를 면밀히 추적하고 판을 읽어야 한다. 둘째 한국은 포괄적 차원의 대전략이 필요하다. 셋째 불확실성 시대에서는 되도록 많은 선택지를 확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2부 ‘2019년 북한·주변국 군사위협 분석·대비’주제에서는 예비역 해·공군 장성들이 “일본·중국·러시아의 영공 및 해상위협 사례와 북한 미사일 개발 현황 등을 분석하여 주변국 대비 전략적인 우위 확보와 작전적 측면에서 단호한 대응과 확전방지를 동시에 추구해야한다”는 대안을 발표했다. 또한 동맹관리 측면에서는 미국의 군사전략 변화에 능동적 대응이 필요하다고 이구동성으로 강조했다. 사회를 맡은 KIMA(한국군사문제연구원) 석좌연구위원 허남성 박사(육사26기)는 “1945년 이래 미국의 극동지역 전략구도는 ‘한국은 일본의 방파제, 일본은 한국의 후방기지’라는 역할이 근본적인 것이다”라고 말했다 방위비 협상에서도 매티스 전 미국국방장관이 “한국은 미국을 지키는 최전선 국가이며 주한 미군도 미국 방위를 위한 것이다”라고 한 말을 참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종합토론시 주제발표자의 발언과 상이한 이견 때문에 플로어에서 웅성거리자 사회자 허박사는 “휴전선은 군사적 경계선 뿐만 아니라 문명과 야만의 경계선이다”라고 운을 띄우며 “왜냐면 경제 번영과 삶의 질을 고려할 때 북한 주민들의 고초를 비교할 수 없다”고 통탄했다. “문명을 보호하기 위해 우리가 할 일은 ‘스스로 지키지 않는 자를 누가 지켜주겠는가?’라고 말한 마키아벨리의 명언을 기억하고 실천해야 한다”며 결언을 맺었다. 이번 ‘2019 KIMA(한국군사문제연구원) 국방정책 세미나’는 현 정치인과 고위관료들을 배제시킨 가운데 형식적이고 과시형 행사를 지양하고, 보수와 진보를 떠나 실제 연구하고 관여한 학자 및 전문가들만으로 발표 및 토론을 진행했다. 이에 따라 패널들도 극과 극을 달리는 정반대 의견을 제시하고 토의하여 매우 수준 높고 내실있는 세미나였다는 참석자들의 평이 있었다. 육군본부 정책실장(2011년 소장진급), 청와대 국가안보실 위기관리비서관(2013년 전역), 군인공제회 관리부문 부이사장(2014~‘17년), 현재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한국열린사이버대학 겸임교수 주요 저서 : 충북지역전사(우리문화사, 2000), 비겁한 평화는 없다(알에이치코리아, 2016)
-
- 소통시대
- CRISIS M
-
[김희철의 Crisis M] 2019 KIMA국방정책 세미나에서의 오싹한 충격
-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49) ‘위·아래 막고 물 퍼내기’ 낚시식 학습방법, 교관 의도를 낚다
- ▲ 초급간부 양성과정인 육군보병학교 마크인 ‘”나를 따르라!”와 고등군사반(OAC) 과정에서 제병협동훈련하는 모습 [사진제공=국방부/동영상 캡처] 고등군사반(OAC) 과정에서 ‘새벽별 보기’식으로 공부해도 성적 안올라 '고추가루'에 의존에서 교관의 농담까지 암기하는 공부법으로 전환 교관의 의도에 맞는 답안 작성, 성적도 상층으로 진입 [시큐리티팩트=김희철 칼럼니스트] 어린 시절에 시냇가에서 고기 잡을 때 물웅덩이를 발견하면 상류쪽에 흙을 쌓아 물을 막고 하류 쪽마저 막은 후에 물을 모두 퍼내면 물이 빠진 웅덩이에서 물고기를 쉽게 건져 올릴 수 있었다. 소위임관시에 교육받는 초등군사반(OBC) 성적은 중위 진급은 거의 가능하게 하지만, 장차 진급 심사시에 그렇게 중요하게 평가되지 않는다. 그러나 대위로 진급하면 필수적으로 이수해야 할 고등군사반(OAC)과정은 영관장교 진급 심사시 절대적인 역할을 한다. 따라서 고등군사반(OAC) 259기 과정에 입교한 동기생 16명을 포함한 20여명의 육사 출신들과 삼사, 학군, 단기사관 출신 104명의 장교들은 대입시험시 ‘4당 5락’이라는 유행어처럼 밤잠을 줄여가며 새벽별 보기식 학습을 하고 있었다. 필자가 근무했던 승리부대는 최전방 산골 오지의 산악부대라 아무래도 후방 부대들 보다는 이러한 과정에 대한 정보가 늦었다. 물론 게으르고 부족한 탓이겠지만 총 24주간 과정의 1/3이 지날 즈음에도 성적은 저조했다. 고등군사반(OAC) 입교전에 대대장과 주변 선배들도, 더구나 오랜 군생활을 이미 경험하셨던 장인도 모두가 1등을 목표로 제시해 주었으나 당시 필자의 상황은 1등은 커녕 1/3수준인 ‘상층’에도 못 들어갈 위험에 놓여있었다. 입교전인 신혼초에 연대의 장용성 군종목사님이 필자 혼자 육사에서 세례 받은 것은 진정한 종교인으로 살 준비가 된 것이 아니라며, 우리 부부를 함께 부대 목욕탕 물에 담그면서 침례세례를 주시고 성경 ‘이사야서 41장 10절’을 명심하며 신앙 생활을 하라고 제시해 주었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느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라는 성경 귀절을 되씹으며 다시 용기를 내어 밤잠을 설치며 졸린 눈을 부릅뜨고 새벽까지 학습을 계속했다. 그래도 성적이 상승하는 변화가 없자, 그때까지 믿었던 선배들의 공부했던 자료인 일명 '고추가루'만을 중심으로 삼았던 그동안의 학습 방법을 바꾸기로 했다. 무식한 전법으로 “막고 푸는 방법”을 택했다. 그 날 교관이 강의하며 강조했던 교리는 조사까지 그리고 농담까지도 모두 기록하며 모두 암기하기로 했다. 단지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라고 한 성귀만을 믿었다. 웅덩이의 위와 아래를 막고 물을 퍼내어 물고기를 잡는 낚시 방법이었다. 선배들의 고추가루를 기초해서 채곡 채곡 쌓아가며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머리 속에 꽉꽉 눌러서 마구 쑤셔 넣기식” 학습으로 전환했다. 물론 이방법은 학습하는 시간이 더 필요했다. 하지만 그 결과는 다음 시험부터 달라졌다. 단지 혼자서 교범을 읽고 숙지하는 것은 나름의 지식을 배양할 수 있었으나 가르치는 교관의 의도를 읽을 수는 없었다. 막고 푸는 식으로 강의 및 토의시 한마디씩 던지는 교관의 모든 발언에는 교범의 행간에 숨어있는 교리를 깨닫게 해 주었다. 수업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웃음을 자아내게 만들었던 농담은 당시 교리를 암기하는 중요한 연상도구가 되었고 이러한 것들은 시험 평가시 강의시 교관이 이야기했던 토시까지도 적어낼 수 있었다. 교육 역시 인간이 가르치고 그 사람이 평가하는 법이다. 따라서 가르치는 교관의 의도에 맞춰서 공부한 시험 답안지는 해당 교관이 요구한 답을 쓸 수 밖에 없었다. 성적은 한단계씩 올라갔고 동료들과 소주잔을 기울일 때에도 대화 속에서 해당 교관의 수준과 의도에 대해서 정보를 공유하게 되었다. 어느덧 과정 종반에 접어들어 전술과목 및 제병협동(보병, 포병, 기갑, 항공, 공병 등 제 병과 통합)작전 등을 배울 때에는 드디어 성적이 상층에 포함 되었다. 육군본부 정책실장(2011년 소장진급), 청와대 국가안보실 위기관리비서관(2013년 전역), 군인공제회 관리부문 부이사장(2014~‘17년), 현재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한국열린사이버대학 겸임교수
-
- 소통시대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49) ‘위·아래 막고 물 퍼내기’ 낚시식 학습방법, 교관 의도를 낚다
-
-
[김희철의 전쟁사](16) 중공군 입장에서 본 한국전쟁(비호산 전투)과 맥아더의 오판
- ▲ 국군 제 6사단 7연대 1대대가 1950년 10월26일 14시, 압록강 초산진에 최초 도착하기 일주일전인 10월19일 이미 중공군 9/13병단 30개 사단 약 38만명은 압록강을 건너고 있었다.사진은 1950년 10월19일, 압록강을 건너는 중공군.[사진제공=국방부] 마오쩌둥, 스탈린 요청받고 1950년 10월 3일 참전 결정 중공군 1950년 10월 19일 압록강 건너 북한 진입 [시큐리티팩트=김희철 칼럼니스트] 6.25남침전쟁이 발발하기 이전부터 중국은 북한과 긴밀하게 협조를 해왔다. 중국은 7월에 미군이 참전하자 동북변방군을 편성해 동북지역으로 파병하였으며, 대만침공을 연기하였다. 1950년 8월말에 인민군의 낙동강 공세가 실패한데 이어, 인천 상륙작전으로 전세가 뒤집어지자 북한은 소련에게 지원을 요청하였다. 스탈린은 소련군의 직접적인 개입은 무리라고 판단하여 마오쩌둥에게 파병을 요청하는 전문을 발송하였고. 마오쩌둥은 10월 1일부터 참전 문제를 논의하였다. 이미 9월 30일에는 중국외상 저우언라이가 ‘UN군이 38선을 넘어온다면 좌시하고만 있지는 않겠다.’는 발언을 하였다. 10월 2일~4일의 회의에서 참전을 확정지었으며 10월 15일에 압록강을 돌파하기로 결정하였다. 이에 따라 10월 8일, 동북변방군이 ‘중국인민지원군’으로 개칭되었고, 사령관으로는 펑더화이가 임명되었다. 중국은 소련에 항공지원을 요청하는 한편 김일성에게 참전을 통보하였다. 12일, 소련의 항공지원이 불가하다는 소식을 듣자 잠시 출병중지 명령을 내렸으나, 13일에 이 결정이 번복되어 소련 공군과는 별개로 참전을 결정하였다 드디어 10월 19일, 중공군이 본격적으로 압록강을 건너 북한으로 진입하기 시작하였고, 중공군은 구성-오로리 선에 방어선을 구축하려 하였다. 하지만 이미 UN군이 오로리로 진격중인 상황이었기에 중공군은 작전을 바꾸어 기습공격으로 나섰다. 맥아더사령관과 참모진은 중공군의 개입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오판 유엔군은 거대한 중공군의 포위망 속으로 걸어들어가 10월 15일의 웨이크 회담에서 맥아더는 “중공군이 개입할 가능성은 거의 없으며, 초반에 개입했다면 전세에 큰 영향을 줬겠지만 지금은 그들을 의식할 필요가 없다. 압록강 인근의 종공군은 기껏해야 10만-12만 5000명 정도에, 실제로 강을 도하한건 5만-6만명 선이다”라고 호언 장담하면서 “중국은 항공 지원이 전혀없는 상태인데 반해, 아군은 한반도내에 기지설치를 완료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만일 중공군이 평양으로 밀고 내려온다면 인류역사상 최대의 유혈사태가 벌어질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물론 이러한 맥아더의 판단이 아주 틀린 것은 아니었다. 당시 중국은 국공내전 이후 국내정세가 많이 혼란스러워진 상태였기 때문에 참전이 어렵다고 생각하고 있던 것이다. 하지만 맥아더는 중공군을 얕잡아 보았고, 크리스마스전까지 전쟁을 끝내겠다며 압록강까지 진격하였다. 중공군이 본격적인 공세를 시작하기 전까지도 “중공군은 지나치게 과대평가 되었고, 공군력과 해군력을 이용하면 중공군을 쉽게 격파할수 있다. 첸놀트가 그랬던 것처럼 말을 타고 다니면서 항공기 500기만 풀어놓으면 된다”는 소리를 늘어놓았다. 그러나 UN군은 오랜 진격으로 지쳐있었고, 분산되어 있었다. UN군은 거대한 중공군의 포위망속으로 걸어들어가는 최악의 실수를 하게되었다. 당시 중공군 포로들이 포획되었고, 정보참모 윌로비에게도 보고되었는데, 윌로비는"그저 중국에 살던 조선인에 불과하다"며 참전 자체를 일축하였다. ▲ 중공군 1차공세와 비호산 전투 상황도[자료제공=이우형교수/국립현충원] 중공군의 1차공세에 따른 청천강선 비호산 전투는 중공군에 대한 첫 승리로 막연한 공포감 해소 국군은 압록강까지 진격하여 압록강변 초산에 태극기를 꽂았지만, 중공군의 기습공격에 철수해야 했고, 상황이 악화되자 UN군 사령부는 방어로 전환하고 청천강선에서 공산군을 저지하기로 결정하였다. 철수명령이 떨어지자 국군 미1기병사단은(8기병연대와 5기병연대) 국군 15연대의 엄호를 받아 철수를 시작하였다. 하지만 철수도중에 15연대가 중공군의 공격을 받아 와해되어 8기병연대는 중공군에 포위됐다. 미 5기병연대가 구출작전에 나서 1대대와 2대대는 탈출에 성공하지만, 3대대는 탈출하지 못했고, 5기병연대의 구축작전도 실패하면서 결국 3대대의 구출은 포기되었다. 3대대는 중공군에 맞섰지만, 병력 대부분이 죽거나 포로가 되었다. 미1군단과 국군 2군단이 청천강으로 철수하고 있었지만, 중공군의 추격을 저지하지 못한다면 방어선의 형성은 매우 어려워지게 된다. 청천강 방어선을 점령하기 위해서는 비호산 일대를 반드시 확보해야만 했다. 비호산은 개천-안추-순천의 도로와 철도를 통제할수 있고, 중공군을 효과적으로 감제할수 있는 중요한 고지였다. 거기다 비호산이 점령된다면 미 8군 전체가 붕괴되어 버릴수도 있었다. 최초 국군 제7사단은 “가능한 한 빠른 시일 내에 덕천-구장동간의 방어진지를 점령하여 산악지대로 침투하는 적을 저지, 격멸하는 동시에 군단의 동측방을 방호하라”는 구두명령을 군단으로부터 전달받았다. 상황이 긴박해지자 제7사단장으로부터 부대가 건재하다는 보고를 받은 군단장은 작전계획을 수정하여 개천 동쪽의 비호산 방어임무를 제7사단에 부여하였다. 그리고 청천강 계곡으로 침투하는 적을 견제하기 위해 1개 연대를 개천(군우리) 북쪽에 배치해 미 제7기병연대와 함께 대비할 것을 명령하였다. 사단은 즉시 연대를 이동시켜 11월 2일 오후에 진지편성을 완료하였다. 이때 제7사단은 약 1만여 명의 병력을 보유하였고 장비는 사단 T/E의 90%를 유지하고 있었다. 반면에 중공군은 제13병단 예하의 제38군단으로서 예하에 제112사단, 제113사단, 제114사단을 둔 약 30,000여 명의 병력으로 편성되었다. 장비는 125㎜ 및 160㎜ 곡사포, 82㎜ 및 120㎜ 박격포, 그리고 기관총과 소총 등을 보유하였으나, 미군 1개 사단 장비의 54% 수준에 지나지 않았고 성능도 낙후되어 있었다. 11월 3일부터 중공군38군단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주진지에 있던 7사단 3연대는 중국군의 파상공격으로 유무선 통신이 모두 두절된 상태에서 3시간에 걸쳐 격전을 전개하였다. 이후로 비호산 정상은 3차례나 주인이 바뀌는 혈전이 벌어졌다. 3연대는 비호산 정상에서 육박전과 혈투 끝에 새벽녘에는 결사대를 편성 육탄공격을 펼쳐 적을 몰아내고 고지를 확보하였다. 1950년 11월 5일 아침 사단장은 제3연대와 예비대인 제8연대를 교대시켰다. 격전을 치른 제3연대는 개천의 조양국민학교에 집결해 부대를 재편성하였다. 그리고 제8연대는 비호산 주봉에서 청천강 남안으로 연결된 북쪽 능선 일대에 편성된 진지를 강화하고 수색대를 파견해 적정 수집활동을 전개하였다. 제5연대는 비호산 남쪽의 535고지-760고지간의 진지를 강화하고 적과 대치하였다. 쌍방 간에 수색전이 전개되던 11월 5일 새벽 3시에 적은 두 번째로 쳐들어왔다. 중국군 제38군단은 개천을 탈취하기 위해 사단 규모의 병력을 투입해 비호산 동쪽의 제5연대를 공격하였다. 덕천-개천간 측방도로를 장악한 적은 비호산 동남쪽 2㎞ 지점에 위치한 535고지의 제5연대 제2대대 진지 정면에 병력을 집중투입 했다. 중국군의 파상적인 공격으로 제2대대 진지에서는 육박전이 전개되었고 결국 적의 인해전술에 밀려 제2대대 진지가 무너졌다. 이는 아군의 방어 진지에 연쇄적인 충격을 주었다. 방어진지가 무너져 흩어진 제5연대는 2㎞ 후방지역으로, 동쪽의 미 제5연대전투단은 1㎞ 후방지역으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비호산 주봉의 제8연대 제2대대도 협상참 계곡으로 밀려 비호산을 상실하게 됨으로써 개천마저 위기에 처하였다. 이에 7사단은 11월 6일 아침 8시부터 30분간의 공격준비사격으로 적의 진지를 초토화시킨 후 제5연대와 제8연대로 고지 남북에서 협공작전을 전개하였다. 남쪽의 제5연대는 신성리에서 미 제5연대 진지를 초월하여 535고지를 공격하였다. 적의 저항이 완강했으나 한번에 격퇴시키고 비호산 진지를 탈환하였다. 중공군은 전선에서 이탈하였으며, 결국 중공군의 1차공세는 여기서 멈추었다 국군 제7사단은 비호산을 중심으로 방어진지를 더욱 강화한 후, 11월 9일과 10일의 이틀간에 걸쳐 미 제1기병사단에 임무를 인계하고 개천으로 이동해서 부대정비에 착수하였다. 이 전투에서 중국군을 격퇴한 국군 제7사단의 승리는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었다. 비호산 전투는 중국군과의 전투에서 최초의 승리라는 의미가 컸다. 그밖에도 초창기 연패로 인해 국군 장병들이 느끼고 있던 중국군에 대한 막연한 공포심을 떨쳐 버릴 수 있었다. 또한 승리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국군 장병들에게 심어주는 계기가 되었다. ▲ 유엔군 B-29기의 대규모 폭격과 중공군 1차공세시 비호산 전투 모습 [사진제공=국방부] 대규모 공습과 국군 7사단의 승리에 도취된 유엔군의 재반격, 중공군의 유인전술에 빠져… UN공군역시 대규모 공습에 나섰고, ‘신의주가 안된다면 다른 도시들을 시험삼아 불태우자’는 극동공군사령관 스트레이트마이어의 끈질긴 요구 끝에 맥아더가 “스트레이트마이어, 그렇게 원한다면 모두 태워버리시오, 강계 외에도 적에게 중요한 시설이라 판단된다면 다른 소도시들도 모조리 시험삼아 불태우고 파괴하시오”라고 지시하였다. 11월 4일-5일간 청진-강계에서 B-29에 의한 소이탄 대량폭격이 이루어졌다. 한국전쟁에서 처음 있는 일이었다. 11월 8일에는 신의주 폭격이 시작되었다. 폭격은 12월 5일까지 개시되었고, 4개 교량이 파괴되었다 11월 6일, 맥아더는 ‘새로운 전쟁이 시작되었다’며 반격작전을 발표하였고, 물자가 확보되는 대로 공세에 나서기로 하였다. 하지만 물자의 보급은 늦어졌고, 11월 15일로 예정되었던 작전은 미루어졌다. 철교를 보수하고 진남포항의 기뢰를 제거한 후에야 보급이 활발해졌다. UN군의 재반격은 11월 24일로 결정되었다. 국군 제 1사단은 박천-태천-용산동 방면에서 위력수색을 가하며 공산군에게 출혈을 강요하고 있었다. 한편 1차 공세후 정비를 마친 중공군은 11월 13일 UN군을 깊숙이 유인해 섬멸한다는 방침을 확정하였고, 한국군 3사단과 더불어 미군 17연대 제 1대대가 압록강변 혜산진을 점령한 21일에는 국군 2군단과 동해안을 목표로 하여 각각 11월 25일, 26일에 공격하기로 결정하였다. 육군본부 정책실장(2011년 소장진급), 청와대 국가안보실 위기관리비서관(2013년 전역), 군인공제회 관리부문 부이사장(2014~‘17년), 현재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한국열린사이버대학 교수 주요 저서 : 충북지역전사(우리문화사, 2000), 비겁한 평화는 없다 (알에이치코리아, 2016)
-
- 소통시대
- 군대를 말한다
-
[김희철의 전쟁사](16) 중공군 입장에서 본 한국전쟁(비호산 전투)과 맥아더의 오판
-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48) 고등군사반의 추억, 치열한 경쟁 속 소주잔의 행복
- 고등군사반(OAC) 입교를 앞두고 치열하게 입교 시험 준비하는 대위들 선배들의 공부자료 지칭하는 '고추가루' 확보해야? [뉴스투데이=김희철 칼럼니스트] 軍에서는 장교로 임관할 때 초등군사반(OBC), 대위 진급하면 고등군사반(OAC), 소령 진급하면 육(해공)군대학 등의 보수교육을 필수로 이수하게 되어있다. 물론 중령, 대령, 장군으로 진급해도 직책에 맞춰서 대대장반, 연대장반, 장군반 교육을 받는다. 이 같은 육(해/공)군대학까지의 교육은 필수과정으로 졸업성적은 진급 및 보직을 검토할 때에 우수하고 능력있는 간부라고 평가받는 결정적인 고려요소가 된다. 필자의 경우, 대대장이 '입교시험' 성적이 졸업성적을 좌우한다며 부대에서의 야근을 불허하며 정시 퇴근해서 입교시험 준비에 전념하도록 배려를 해주었다. 입교 시험은 고등군사반(OAC) 교육후 중대장직 수행을 위한 것이다. 중대급부터 대대 및 연대 전술 교범과 전술 전략의 기본이 되는 ‘작전요무령’을 숙독해야 했다. 장교 임관 후 야전에서 3년 가까이 책과 거리를 두다가 다시 책상에 앉아있기는 무척 힘이 들었다. 또한, 이미 고등군사반(OAC) 교육을 수료하고 현지에서 중대장 근무를 하는 선배들의 시험 준비했던 자료(일명 '고추가루')들을 확보하는 것도 전쟁이었다. 그 선배가 몇등으로 졸업했나를 참고하여 가능하면 우수한 성적을 올린 선배의 고추가루를 얻는 것이 유리하기 때문이었다. 軍 보수교육과정의 졸업 성적은 향후 승진의 중요 변수 입교 대상자의 상관과 가족은 '대입 수험생'처럼 뒷바라지 군사교육과정의 졸업성적이 상중하에서 ‘상(대략 1/3수준)’에 포함되어야 진급 심사시 그나마 경쟁 대상이 된다. 필자도 과거 진급심사위원으로 몇번 참여를 했지만 진급 공석은 적은데 진급 대상자가 너무 많아 우수한 사람을 선발하기 보다는 결격 사유를 찾아 제외시키는 것이 중요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진급심사시 대상자가 상점, 평점, 근무실적 등이 동일할 때에는 결국 군사학교 성적의 우열로 당락이 결정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가족도 본인도 현재의 행복과 만족에 안주하기 보다는 시간과 노력을 쪼개는 희생을 감수했다. 신혼 초, 군인은 적과 잘 싸우고 근무만 잘하면 승승장구하는 줄로만 알았던 필자의 아내는 때늦은 고등군사반 입시수능(?) 준비에 몰두하는 필자를 뒷바라지하면서 훗날 아들들의 진짜 대입 수능준비를 대비한 예행 연습을 미리 했다고 할 수 있다. ‘고등군사반(OAC) 259기’로 육군보병학교에 입교 아내의 행복, 쥐 나오던 관사에서 9평 '백일 아파트'로 이사 드디어 대성산 기슭에서 천연자연의 신선한 공기와 동료 부하들의 땀냄새가 어우러져 신혼을 시작한지 1년 만에 전라도 광주의 상무대로 첫 이사를 했다.쓰러져가는 부대관사에서 교육생 부부들을 위해 준비된 ‘백일아파트’로 입주하게 되었다. 비록 9평밖에 안되는 연탄 아궁이 아파트이지만 쥐가 왔다갔다하는 산간벽지의 낡은 관사 보다는 너무도 좋았고 아내는 “시집 잘 왔네”하며 너스레도 떨었다. 총각장교들은 보병학교인 ‘상무대’ 인근 화정동에 자취방을 마련했다. 자취방 구하는 것도 전쟁이었다. 현재 노량진의 고시 학원가처럼 자취방 주인들은 6개월마다 입교하는 학생장교들을 대상으로 하숙 영업을 하고 있었다. 화정동에 가면 ‘고등군사반(OAC) 1등을 배출’라는 프랭카드가 걸려있는 하숙집도 있었다. 그곳은 역시 출신을 떠나 치열한 경쟁에서 조금이라도 우수한 성적을 얻으려는 장교들의 피튀기는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하지만 좋은 것도 있었다. 사관학교 졸업 후 3년만에 만나는 동기생들과 선배들과의 해후였다. 그동안 야전에서 경험한 짜릿하고 아슬아슬한 위기 극복상황과 보람차고 즐거운 성공 사례들을 주고 받으면서 기울이는 소주 한잔은 치열한 경쟁을 잠시 잊게 하는 청량제였다. 입교시험 성적에 실망, 끝없는 '경쟁사회'에 회의감 들기도... 학교장에게 입교 신고를 하고 조편성이 끝난 뒤에 그동안 준비했던 입교시험을 치루었다. 시험준비 자료인 고추가루를 전해준 선배들의 조언은 입교 성적이 과정 끝까지 지속된다는 것이었다. 1주일 즈음 지난 뒤에 개인의 성적표가 교실 사물함에 꽂혀 있었다. 실망이었다. 꼴찌는 아니지만 1/3선에는 미달이었다. 아차 하는 순간 어떤 동료들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입학 기수를 잘 선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필자가 속한 기수는 육사 출신들이 대거 입교하는 시기라 너무 치열하여 목표한 성적을 올리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예측이었다. 그동안 대대장님의 배려와 가족의 뒷바라지에 미안할 뿐이다. 인생을 이렇게 피튀기면서 살아야 하는가 하는 회의 감도 들었다. 하지만 포기할 수는 없었다. 강의를 더 집중하고 마지막까지 더 치열하게 책과 실습에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다짐만 할 뿐이었다. 한편 이런 경쟁이 없이도 행복해 질 수 있는 사회를 만들 수는 없는지 안타까웠다. 부부동반으로 최근 여행한 북유럽은 '평등한 행복' 누려 소주잔 기울이며 치열하게 경쟁했던 고등군사반 교육과정은 '한국인의 행복' 치열한 경쟁 속 '자기 몫'에 만족하는 태도가 행복의 길... 얼마전 필자의 부부는 북유럽 여행을 다녀왔다.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노르웨이, 스웨덴, 핀란드, 덴마크에서 웅장한 자연과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문화유산들을 관광하는 즐거움을 만끽했다. 헌데 현지 한국인 여성 가이드가 어느 도심에서 안내 중에 버스 창밖을 바라보며 현재 한국의 치열한 입시 및 취업 경쟁에 대해 한마디를 던졌다. “본인은 대사관 직원으로 이곳에 파견 나왔다가 결국 귀국하지 않고 정착하게 되었다”며 “한국과 이곳이 다른 점은 너무도 많은데 넓은 영토에 비해 적은 국민들로 천연자연이 풍부해 국민소득이 높은 것도 중요하지만 사회보장제도가 최상인 복지 국가라는 것이다”라고 했다. 하면서 “방금 창밖에 환경미화원이 거리 청소를 하는데 옆에 왠 청년이 도와주고 있는 모습을 보셨지요?”하며 “누구 일까요?”라고 반문을 했다. 북유럽은 세금이 수익의 40~60%로 과중하지만 국민들은 전여 개의치 않고 있다며 많이 버는 사람이 세금을 많이 내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적게 버는 사람이나 실업자는 오히려 보조금을 받고 있으며, 국민들에게 돌아가는 그밖의 복지혜택도 많다고 했다. 가이드는 "직업에 귀천이 없어 창밖의 환경미화원은 자기 일에 만족하며 아들도 부끄러움 없이 힘든 아버지를 도와주는 모습"이라며 "계급의 고하에 따른 차별이 없이 평등하게 행복을 추구하는 살기 좋은 복지국가"라고 설명했다. 가이드는 더불어 본인의 자식이 대학 입시와 취업 경쟁의 지옥에서 해방되어 행복하다며 미소를 띄웠다. 헌데 그녀는 버스에서 내릴 즈음에 의미 있는 한마디를 더 던졌다. “이 나라에서 한국으로 유학가는 청년이 많이 있는데, 한국에 가면 다시 돌아오지 않고 한국에 정착하는 유학생이 늘어나고 있다”며 '도전을 좋아하는 청년들'이라고 했다. 왜냐면 한국은 치열한 경쟁사회이지만 밤새도록 상점을 열어 편리하며, 여의도 광장에서 통닭과 자장면을 시켜 먹을 수 있는 서비스는 북유럽에서는 상상도 못하기 때문이라며 한국도 경쟁이 치열하지만 좋은 점도 있는 아이러니라고 덧붙였다. 가이드의 말을 들으며 경쟁에서 승리해 승진을 추구하는 한국인의 삶과 주어진 현재에 만족하는 행복을 누리는 북유럽인의 삶중 어느 쪽이 바람직한지에 대한 고민에 빠지기도 했다. 돌이켜 보면, 고등군사반 교육과정은 치열한 경쟁의 연속이었지만 오랜만에 선배 동료들을 만나 회포를 풀 수 있는 행복(幸福)도 있고, 목표한 성적을 한 단계씩 올려가는 즐거움도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생각하니 무한정 평등하지만 무미건조한 북유럽 복지 사회가 그렇게 부럽게 다가오진 않았다. 비록 경쟁은 치열하지만 마음을 비워 복(福)을 받으면 행복(幸福)하다. 왜냐면 “복(福)이라는 글자에는 한사람(ㅡ)이 먹을 수 있는(ㅁ) 밭(田)이 있어 베풀(示) 수 있으면 행복하다”는 뜻이 있기 때문이다. 육군본부 정책실장(2011년 소장진급), 청와대 국가안보실 위기관리비서관(2013년 전역), 군인공제회 관리부문 부이사장(2014~‘17년), 현재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한국열린사이버대학 겸임교수 / 주요 저서 : 충북지역전사(우리문화사, 2000), 비겁한 평화는 없다(알에이치코리아, 2016)
-
- 소통시대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48) 고등군사반의 추억, 치열한 경쟁 속 소주잔의 행복
-
-
[김희철의 전쟁사](15) 미 7사단의 압록강 기념촬영은 맥아더 추락과 더 많은 피를 불러와
- ▲ 좌측 압록강에서 기념 촬영한 미군 지휘관들 외쪽부터 키퍼, 호디스, 알몬드 10군단장, 바 7사단장과 우측 11월21일 미 7사단 17연대가 혜산진 압록강변에 도착하여 성조기를 꽂는 장면 [사진제공=국방부] 11월 21일, 미 제7사단17연대가 만주가 보이는 한반도의 끝인 혜산진에 돌입한 날 [시큐리티팩트=김희철 칼럼니스트] 미 제 7사단(사단장 소장 바)이 17연대(연대장 대령 파월)를 선두로 10월 29일 이원에 상륙하여 320km에 달하는 산악지대를 혹한과 강설을 무릅쓰면서 집요한 적의 저항 속에서 악전고투 끝에 11월 21일 만주가 보이는 한반도의 끝인 혜산진에 돌입하였다. 이와 같은 성과에도 불구하고 서부전선의 미 제 8군이 압록강에 도달하지 못함으로써 이 전쟁은 끝내 종식되지 못하였다. 이후 제 17연대는 11월 30일 한국군 제 3사단 23연대에 혜산진을 인계하고 철수하게 되었거니와 그간 미 제 7사단은 11월 하순에 접어들면서는 기온의 급강하로 11월 23일까지 발생한 동상자만도 142명에 달하였다. 이상과 같이 북한 동북부의 작전은 끝을 보지 못한 채 장기적이고 불리한 새로운 작전에 대비하기 위하여 전선을 정비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미7사단 17연대의 이원-혜산진 진격 과정 미군이 도달하기 전에 혜산진에 먼저 도착한 한국군 23/26연대 국군 7연대가 이미 압록강 초산진을 점령하고 뱃사공이 젓는 나룻배를 타고 압록강을 여기저기 오가며 즐기고 있었던 10월 27일 미 제 7합동기동함대 소속의 LST 7척에 분승한 미 제 7사단의 선두부대인 제 17연대 전투단은 이날 미명 부산항을 출항하였다. 미 제 7사단 선두부대의 수송 선단은 10월 29일 아침 이원에 상륙하였다. 이원에는 지뢰가 매설되어 있지 않았고, 10월 23일 수도사단 제 1기갑연대가 이미 이곳을 점령한 바 있어 아무런 저항없이 무사히 상륙할 수 있었다. 선두 부대인 제 17연대의 본부와 제 1대대가 상륙 즉시 제 49야전 포병대대와 제 13 야전공병대대 A 중대와 함께 신북청-북청-장흥리를 거쳐 초리에 진출하였다. 이날 제 17연대의 전방에 위치한 풍산에는 수도사단 제 1연대가 임무를 교대하기 우하여 준비를 서두르고 있었고, 우측 제 1기갑연대는 성진 일대를 완전히 확보하였다. 반면 전날 원산 상륙을 끝마친 미 제 1해병사단은 원산탈환 이후 원산 지구의 방어 임무를 맡아 온 한국군 제 3사단과 임무를 교대 하였다. 한국군 제 3사단은 다시 함흥 지구의 경비임무를 수행하기 위하여 함흥 일대로 병력을 이동했고 수도 사단의 제 1기갑연대는 성진을 점령하였으며, 제 1연대는 풍산을 점령했다. 이후 제 3사단 18연대는 보전령 일대에서 잔적을 격파한 뒤 백암산을 공격하였다. 11월 12일 풍산에 도착한 미 제 10군단장 아몬드 소장은 서부전선의 청천강 일대와 동부전선의 보전호-장진호 일대에서 중공군이 발견되지 않는다는 종합적 정보보고에 의거하여 미 제 7사단장 바 소장에게 북진하라고 명령하였다. 이에 미 7사단장 바 소장은 제 17연대로 하여금 갑산을 거쳐 혜산진으로 진격케 하여 다음 날인 11월 13일 창평리 일대에 도달했다. 미 17연대는 압록강에서 남으로 흐르는 허천강의 지류로서 수심이 30~40cm 인 웅이강의 북안과 연결된 교량에 이미 적에 의하여 파괴된 것을 확인한 연대장 파월 대령은 연대에 소속된 한국군 공병대로 하여금 빈 드럼통으로 도보교를 가설케 하였다. 11월 14일 미 제 17연대는 전날 한국군 공병대가 가설한 도보교를 이용하여 도하하기 시작하였다. 선두부대가 도하할 무렵 적의 사격이 있었으나, 거리가 멀어 미치지 못하였으므로, 무사히 건너 하저평 일대에 전개하였다. 11월 15일 미 제 17 연대는 전날에 이어 웅이강의 도하 작전을 계속 하여 제 1대대가 최후로 무사히 이를 완료하였다. 다음날 전방의 적은 소집단으로 분산되어 갑산방면으로 철수하고 있다는 항공 관측 보고에 따라 미 제 17연대는 웅이천 북안의 관평리에서 우가리-평인령(1186 고지)를 통과하여 동쪽 갑산도와 서쪽 삼수도의 교차로인 상리에 진출함으로써 이날 13km를 전진하였다. 그리고 전날 보전호의 동단에 진출한 미 제 31연대 3대대 정찰대의 뒤를 따라 이날 본대는 수상리-장진령(1898 고지)-보전호반의 경로를 따라 서북으로 전진하여 보전호 북단 한대리의 보전댐 부근에서 약 200명의 중공군을 격퇴시켰다. 미 제 17연대는 17일 갑산 남쪽 16km 지점인 석우리를 점령하고 18일에 전진을 계속하여 갑산 남쪽 6km지점인 송우리-장평리 일대에 진출하였다. 이어 선두 부대인 제 1대대는 11월 19일 10:30 경에 보, 전, 포 협동작전으로 갑산을 공격, 점령하였다. 특히 미 제 17연대 전차중대는 참호 속에 있는 적을 압살하였으며, 미 제 15대공포대는 40mm 고사포로 교통호의 잔적을 향해 맹열한 사격을 하였다. 그리고 동 연대의 제 1대대는 갑산을 점령한 다음, 계속 혜산진 가도를 따라 적을 추격하여 이날 밤에는 갑산 전방 13km 지점인 판장리에 진출하였다. 이리하여 앞으로 혜산진까지는 37km가 남아 있었다. 한편, 지난 10일 사단의 제 7정찰중대가 파견되었던 슬령 발전소에는 이날 밤 한국군 제 3사단의 전차공격대대의 1개 중대가 도착하여 미 제 32연대의 1개 중대와 교대함으로써 동 1개 중대의 미군은 갑산의 연대 집결지로 이동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날 밤 적의 기습을 받고 한국군 양개 중대가 교전한 끝에 한국군 5명이 부상하였다. 드디어 11월 21일 아침, 미 제 17연대는 아무런 저항을 받지 않은 채, 혜산진 가로를 전진하여 오전 10시에는 혜산진 시가와 압록강에 연한 주변일대를 완전히 점령하였다. 시가는 일주일 전인 13일 동해상의 항공모함에서 출격한 해군 함재기에 의하여 군영과 창고가 파괴되는 등 시가의 85%가 소신되어 있었다. 그리고 시가의 북쪽을 가로지른 압록강의 강폭은 45~70m 정도였는데, 유폭은 불과 2m였다. 강상의 교량은 동 연대가 들어오기 전부터 파괴되어 있었으며, 강의 북쪽 300m 지점의 만주경내에 위치한 장백에는 중공군의 보초와 장교들의 왕래를 역력히 볼 수 있었다. 당시 17연대 대위였던 레이하비씨는 KBS의 ‘6.25 60주년 특별기획 다큐멘터리 한국전쟁’인터뷰에서 “압록강에 도착했습니다. 거기에는 이미 한국부대가 와 있었습니다. 부대장인 대위가 나에게 인사를 건네더군요. 우리 부대가 압록강에 머무르는 동안 아무 일도 발생하지 않았습니다”하여 한국군이 먼저 도달했음을 증언했다. 또한 그는 “중국군은 강 건너에 진을 치고 있었는데 강폭이 좁아 밤에 중국군이 건너다니는 길목도 보였습니다. 우리 부대 안에 중국어를 하는 사람이 있어서 그가 중국군에게 ‘이쪽으로 건너오지 그래’하자 중국군은 ‘네가 이쪽으로 와’라며 밤에 대화를 나눴습니다.”라고 그때 상황을 회상했다. 레이하비 대위의 증언처럼 미군이 도달하기 전에 혜산진에 먼저 도착한 한국군 부대는 두개라는 설이 있다. 그 부대는 10월1일 38도선을 강원도 양양에서 최초 돌파했고 미17사단과 협조된 공격을 한 3사단 23연대와 당시 3사단 소속이었던 26연대(현재는 수도기계화 사단 소속)이고 이 부대들은 부대 명칭을 혜산진 부대로 부르며 자긍심에 차있다. 맥아더, "미 제 7사단이 정곡을 찔렀다(The 7th Division hit the jackpot.)"라는 축전을 보내... 이와 같이 한국군 3사단과 더불어 미군 17연대 제 1대대가 혜산진을 점령하자 전날 갑산에 와 있었던 미 제 10군단장 아몬드 소장은 사단장 바 소장과 연대장 파월 대령을 대동하고 혜산진에 도착하였고, 이어 동경의 맥아더 원수에게 이 사실을 보고하였다. 전날 미 제 7사단 17연대가 혜산진을 점령하였다는 보고를 받은 맥아더 원수는 다음날인 11월 22일 아몬드 소장에게 "네드여! 축하합니다. 진심으로 축복을 드립니다. 그리고 바 소장에게도 미 제 7사단이 정곡을 찔렀다(The 7th Division hit the jackpot.)고 전해주시오"라는 축전을 보내 왔다. 아몬드 소장은 이에 부가하여 사단장 바 소장에게 『불과 20일 전에 이원에 상륙하여 320km 이상의 심산협곡을 적설과 영하의 혹한을 무릅쓰고 집요하게 저항을 반복하는 적을 무찌르고 귀하가 거둔 성과는 청사에 길이 빛날것.』이라는 최상의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한편 지난 20일 "갑산에 집결한 미 제 32연대는 삼수를 거쳐 신갈파진에 진출하여 미 제 17연대의 서측에 배치하라"는 사단장의 명령에 따라 이날 갑산에서 삼수를 통과한 제 32연대가 삼수에서 신갈파진으로 진격을 개시함에 따라 혜산진의 제 17연대도 일부 병력을 신갈파진으로 우회시켜 제 32연대의 우측방을 엄호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 날 미 제 17연대의 수색대는 서쪽으로 11km를 전진하다가 북한군의 강력한 화력을 받았고, 제 32연대 3대대의 특수 임무부대 역시 완강한 저항을 받게 되어 양 부대는 사투에 사투를 거듭한 나머지 28일에야 신갈파진을 점령하는데 성공하였다. ▲ 좌측 10월 24일~11월26일간의 동부전선의 유엔군 진격로와 우측 10월25일 중공군 40군 118사단이 국군 6사단을 기습공격한 것을 시작으로 11월8일까지 진출한 중공군과 유엔군의 접전도 [자료제공=이우형교수] 미 알몬드 10군단장의 압록강 기념 촬영, 맥아더의 추락과 많은 미군의 피를 불러와 장진호전투에서 중공군에 포위된 유엔군 약 1만7천명 사상 피해 하지만 이미 중공군은 서부전선에서 10월25일 국군 6사단을 궤멸시키기 시작하였고 동부전선에서 미17연대가 치열하게 혜산진으로 북진하던 11월8일 개천 -회천-황초령까지 진출하여 미군의 퇴로를 차단하고 있었다. 중공군의 존재를 확인한 유앤군은 작전을 전환하여 10월 26일~12월 13일까지 함남 장진군, 함주군 일대에서 벌어진 장진호전투에서는 많은 미군들의 피를 뿌렸고, 만주 폭격을 시도하려했던 유엔군사령관 맥아더의 경질을 확정짓는 결과를 낳았다. 또한 이 전투는 피난민들이 흥남 부두에 정박한 미국 군함에 타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장면이 단연 압권인 영화 ‘국제시장’의 배경이 되었다. 그렇게 우리에게 각인된 흥남 철수 작전은 아비규환의 필사적 탈출이었다. T R 페렌바크는 책 ‘이런 전쟁(This Kind of War)’에서 흥남 철수에 대해 “덩케르크 철수와는 달랐다. 서둘러 배에 타야 한다는 심리적 압박은 없었다”고 썼다. 군 작전 차원에선 제2차 세계대전 때 독일군의 기습 공세로 전멸 위기에 처했던 연합군이 가까스로 빠져나온 덩케르크처럼 절박한 상황은 아니었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미 군함에 타지 못하면 공산치하를 탈출할 길이 없었던 피난민들의 절박성은 다른 문제였지만 유엔군과 민간인 20만 명의 흥남 철수를 가능하게 한 것은 미 10군단 예하 제1해병사단의 장진호 전투였다. 1950년 말 개마고원에는 유엔군은 7,833명의 비전투 손실을 입었다. 그해겨울은 어느 때보다 더 지독한 추위였다. 옷을 여러 겹 입어도 살을 에는 추위를 막을 수 없던 장병들의 손과 발은 동상으로 하얗게 변했다. 수통의 물도, 캔 속의 전투식량도 얼어버렸다. 수류탄은 불발되기 일쑤였고, 차량은 시동 걸기가 어려웠다. 그런 혹한 속에서 미 해병들은 음산한 나팔 소리와 함께 밀물처럼 밀려오는 중공군에 포위된 상태에서 격렬하게 싸우며 퇴로를 열었다. 남쪽으로 물러서면서도 공격전을 계속했다. 그래서 그 후퇴는 ‘남쪽으로의 공격’이라고 불렸다. 장진호 전투는 미국인들에겐 ‘잊혀진 전쟁’이 된 6·25의 기억을 새삼 되새기게 하는 중요한 상징이다. 워싱턴 한국전쟁기념공원에 ‘자유는 공짜가 아니다(Freedom is Not Free)’라고 새겨진 기념비와 함께 서 있는 조형물도 장진호의 해병 장병들을 형상화한 것이다. 장진호 전투에서 중공군은 6만7천명 중 사상자는 4만 8천명이지만 유엔군 측은 3만명 중 사상자는 약 1만7천명에 달했다. 양쪽의 피해 규모를 볼때는 유엔군의 전술적 승리이지만, 중공군은 전쟁 국면의 전환시켜 본격적인 공세돌입하여 37도선까지 유엔군을 전면 철수시킨 중공군의 전략적 승리라고 볼 수 있다. 장진호 전투는 ‘초신 퓨(Chosin Few)’라고 불린다. 즉 장진(長津·일본어 발음으로 초신)에서 압도적 병력 열세에도 온갖 고난을 이겨내 마침내 ‘선택받은 소수(chosen few)’가 된 영웅들의 전투였지만 미군 지휘관들의 혜산진 기념촬영은 많은 미군들의 희생과 맥아더의 경질 그리고 한국 현 대통령을 배출시킨 흥남철수의 역사적 아이러니가 되었다. 육군본부 정책실장(2011년 소장진급), 청와대 국가안보실 위기관리비서관(2013년 전역), 군인공제회 관리부문 부이사장(2014~‘17년), 현재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한국열린사이버대학 교수 주요 저서 : 충북지역전사(우리문화사, 2000), 비겁한 평화는 없다 (알에이치코리아, 2016)
-
- 소통시대
- 군대를 말한다
-
[김희철의 전쟁사](15) 미 7사단의 압록강 기념촬영은 맥아더 추락과 더 많은 피를 불러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