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3-06-0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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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희철의 CrisisM] ⑧동티모르 상록수부대의 쓸쓸한 여운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6.25남침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중공군의 4월 춘계공세 시에 국군 6사단의 치욕스런 사창리 전투 패배로 UN군 방어전선이 와해 직전의 위기에 도달했다. 하지만 4월22∼25일간 영국군 글로스터 연대의 설마리전투와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등 영연방 4개국의 가평 전투 선전으로 중공군의 춘계공세를 막아내며 지연시킨 덕택에 시간을 번 국군과 유엔군은 인근에 새로운 방어진지를 구축할 수 있었다. 이후 사창리 전투의 치욕스럽고 쓰라린 패배를 설욕하기 위해 와신상담한 6사단이 바로이어 시도된 중공군의 2차 춘계(5월)공세 시에 필사즉생의 각오로 분전한 용문산과 파로호 전투의 대승으로 전세를 역전시켰다. 2022년 4월22일에도 영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등 영연방 4개국의 가평 전투 참전 71주년 기념식이 22일 경기 가평군에서 열렸다. 이날 기념식에는 이남우 국가보훈처 차관과 김성기 가평군수를 비롯해 영연방 4개국 주한 대사관, 유엔사, 육군 제66사단 관계자 등이 참석했다. 행사는 유엔 기수단 입장, 추모 예배, 헌화 등 순으로 진행됐으며 참전 용사를 추모하는 영국 여왕의 메시지도 낭독됐다. 1951년 4월 중공군의 춘계공세를 막아내며 지연시킨 가평 전투에서 혁혁한 공을 세우며 참전한 호주 왕실 3대대는 현재도 '가평 대대'라는 별칭을 갖고 있으며 캐나다 프린세스 패트리샤 2대대는 지금까지 대대 막사를 '가평 막사'로 부르며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더불어 가평 전투에 참전한 캐나다, 호주 등 연연방부대의 참전용사들은 정전 이후에도 이곳 가평 중고등학교에 장학금을 보내고 학용품을 제공하는 등 70여년 전 가평 전투 인연을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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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RISIS M
    2023-04-12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315)] 통합메트릭스 신화를 만든 정형진 장군⑤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전 부대원들을 한가족처럼 지휘했던 정형진 연대장의 정성에 감동한 참모 및 장병들은 연대장 재임 기간 가장 중요한 평가인 연대전투단훈련 평가(RCT)에 혼연일체(渾然一體)가 되어 밤을 꼬박 지새우며 훈련 준비를 하고 적극적으로 최선을 다했다. 소속이 바뀌어 인접 군단 예하부대로 전환된 불리한 상황속에서도 평가관으로 참여한 군단 간부들은 매번의 훈련상황마다 적극적으로 임하는 연대 장병들에게 박수를 보냈고 기존의 연대들과 비교하게 되었다. 특히 사전에 철저히 준비한 전장정보분석(IPB)과 통합메트릭스에 의한 전투지휘는 새로운 개념을 완벽하게 이해 못했던 군단 평가관들의 혹평과 극찬이 엇갈렸다. 헌데 연대전투단훈련 평가(RCT)중에 뜻하지 않은 기습을 받아 잠시 혼돈 상태가 되는 위기(?)에 봉착했다.(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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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
    2023-04-11
  • [김희철의 CrisisM] ⑦동티모르 상록수부대의 쓸쓸한 여운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국방부의 당시 사고 조사 기록 등에 따르면 2003년 3월6일 오후 4시쯤, 순직 상록수부대원 5명은 동티모르 오에쿠시 본부에서 60∼80㎞ 떨어진 동·서티모르 국경지대인 빠사베(Passabe)에 배치된 파견대로부터 발전기가 고장이 났다는 연락을 받고, 이를 교체해주러 현장으로 향했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열악한 환경 탓에 발전기가 고장 날 경우 냉장고와 전화기가 작동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무전기 배터리 충전조차 할 수 없어 평화유지군 본연의 업무도 어려운 실정이었다. 이들은 폭우 등 기상 악화로 인해 헬기로 운반이 어렵자, 예비 발전기를 차에 싣고 육로를 선택해 이동했다. 지프 2대에 나눠 탄 5명은 에카트 강을 건너던 중, 선행 차량 1대가 강 3분의 2지점에서 원인 모를 고장으로 멈춰 섰다. 5명이 차량을 견인하기 위해 체인 연결 작업을 하는 사이, 상류에 집중된 호우로 강물이 불어나 박진규(당시 35세·육사 46기) 중령, 김정중(당시 22세·운전병) 병장, 최희(당시 22세·통역병) 병장 3명이 순식간에 급류에 휩쓸렸다. 상류에서 떠내려온 통나무를 붙잡으며 급류에 휩쓸린 전우들을 구하러 강물 속으로 뛰어들었던 지원대장 민병조(당시 38세·육사 43기) 중령과 백종훈(당시 23세·운전병) 병장마저도 포함된 5명 모두 희생됐다. 이때 오에쿠시 주민들의 적극적인 도움으로 이 가운데 4명의 시신이 강 하류 일대에서 차례로 수습됐다. 2003년 3월 말 작성된 UN 평화유지군(PKF·Peace Keeping Force) 사령관 문서에는 “사고 당시 지역 주민 수천 명이 강가로 나와, 밤낮으로 실종자 수색에 자발적으로 나서기도 했다”는 기록이 남아있어 당시 상록수부대와 오에쿠시 주민들의 두터운 신뢰 관계를 보여준다. 상록수부대 7진 대원으로 동티모르에 파병된 최영길 예비역 원사는 "보수나 대가를 받을 수도 없는 일이었지만 온 주민들이 다 같이 수색 작업에 참여해, 수십㎞를 떠내려간 실종자들을 빠르게 찾을 수 있었다"면서 "사고 직후 수천 명의 주민들이 현장에서 촛불을 띄우고 꽃을 뿌리며 기도하고, 아이와 어른 할 것 없이 함께 눈물을 흘렸던 기억이 생생하다"고 회상했다. 동티모르 정부는 그해 양국 수교 20주년을 맞아 19년 전 동티모르에서 순직한 장병 5명을 추모하며 호세 라모스 오르타 동티모르 대통령이 순직한 장병 5명을 대신하여 유가족들에게 훈장을 수여했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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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RISIS M
    2023-04-10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314)] 통합메트릭스 신화를 만든 정형진 장군④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정형진 장군과 필자가 근무하던 무적태풍부대에서 근무하던 당시의 상급부대인 3군사령관은 윤용남 장군이었다. 그때 윤 사령관은 한반도 지형에 부합된 새로운 ‘도로견부위주 종심방어’개념과 ‘통합메트릭스’를 활용한 전투지휘를 강조했으며, 총장시절엔 ‘육군발전목표’를 선정해 실천을 강요했다. 마침 국방개혁 시행을 위해 기동군단이 2개로 증가함에 따라 무적태풍부대는 소속이 바뀌어 인접 군단 예하부대로 전환되었다. 헌데 정형진 장군(당시 대령)이 지휘하던 80연대는 새롭게 소속 변경된 군단 통제로 연대전투단훈련 평가(RCT)를 받아 원래 소속된 기존 연대들보다는 불리한 입장이 되었다. 부대가 잘되기 위해서는 해부대의 강약점을 잘 분석하여 약점을 상급부대가 보완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80연대의 연대전투단훈련 평가(RCT)를 앞두고 인접 사단의 36연대에서도 연대전투단훈련 평가(RCT)가 있었다. 하지만 인접 연대의 평가시에 새로운 개념인 적전술 및 통합메트릭스를 활용한 전투지휘가 미흡함이 실수로 부각되어 육대에서 적전술 교관을 지냈던 사단 감찰참모를 연대로 보내 다시 교육하고 인접 연대의 지적 사항을 즉각 전파해 주었다. 헌데 탁월한 정 대령은 상급부대인 군사령관의 의도를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적을 상정한 적이 있는 훈련을 하기 위해서 적전술 교리형판을 이용하여 적의 배치를 추정한 전장정보분석(IPB)에 따라 이것에 상응한 작전계획을 수립했다. 또한 당시에 강조되었고 현재도 잘 활용되고 있는 통합메트릭스를 활용한 전투지휘를 위해 연대 참모들과 연대장이 직접 연구하고 반복된 수정을 통해 완벽하게 작성하여 연대전투단훈련 평가(RCT)에 임했다. 훈련 평가가 끝나고 연대 정보과장은 “연대전투단훈련 평가(RCT)전에 전장정보분석(IPB)과 통합메트릭스의 개념을 숙지하고 작성하느라 며칠 밤을 꼬박 지새웠는지 훈련 전에 거의 녹초가 되었다”고 넋두리를 했다.(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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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
    2023-04-07
  • [김희철의 CrisisM] ⑥동티모르 상록수부대의 쓸쓸한 여운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이날 행사에서 유족 대표로 인사말을 한 고 박진규 중령의 부인 정혜인 씨는 "거의 20년이 지나 처음으로 오에쿠시를 방문했다. 마을 주민들이 지금껏 상록수부대를 기억해주고 고인을 추모해주셔서 감사드린다"며 "같이 먼 곳으로 떠난 5명의 영웅이 오에쿠시 주민들 덕분에 편안히 잠든 것 같아서, 유족들도 평안한 마음으로 한국에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고마움을 전했다. 아르세이노 바노 오에쿠시 특별행정주지사는 "(추모비가 조성된 곳은) 여러분의 집과 같은 곳이자, 동티모르와 오에쿠시, 한국과의 특별한 관계를 의미하고 상징하는 장소이다"라고 밝혔다. 또한 주지사는 "19년간 사랑하는 가족을 보지 못한 것에 대한 슬픔도 잘 알고 있다. 저희 오에쿠시는 상록수부대와의 추억을 항상 품으며, 순직 장병 5명을 영원히 기억할 것"이라고 강조했다.(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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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RISIS M
    2023-04-06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313)] 통합메트릭스 신화를 만든 정형진 장군③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국군 최초의 자주국방 전략증강계획 '율곡'에 참여했던 윤용남 전 합동참모본부 의장(예비역 육군 대장)은 지난 2021년 8월6일 오전 6시에 향년 81세로 별세했다. 윤 전 의장은 1940년 경남 의령 출신으로 1959년 부산고를 나와 1963년 육군사관학교 제19기로 임관했으며, 6사단장과 5군단장, 3군사령관, 육군참모총장(제31대), 합참의장(제27대)을 역임후 1998년에 예편한 우리 군 현대사의 산증인이다. 그는 베트남전에도 참전했으며, 특히 1996년 9월 강원도 강릉에서의 북한군 잠수함이 침투사건 발생시에 김영삼 당시 대통령이 정책통인 김동진 합참의장 대신 대간첩작전 전문가인 윤용남 육군참모총장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한 사람도 빠짐없이 잡아라"며 윤 총장에게 지휘권을 맡긴 일화로도 유명하다. 고인은 군사정권 시절 '하나회' 장교들이 군부를 장악했을 때도 군내에서 '1차 진급'을 달렸다. 사단장 보직이 동기들에 비해 6개월 늦었던 것을 제외하곤 모두 1차 진급을 도맡았을 정도로 야전·전략·정책 등 3개 분야에서 능력을 보였다. 특히 준장 시절이던 1987년 육군본부 군사연구실장으로 재임시에 저술한 '기동전: 어떻게 싸울 것인가'는 미군과 독일군의 교리·전략을 한반도 전장 환경에 접목해 기술한 독자적 연구 결과물로서 독일 육사에서도 교재로 사용됐다. 故 윤용남 장군은 '기동전'을 접목한 군 구조 개편, 실전 교리 개혁, 교육 강화 등을 통해 현재 우리 군 구조·전략·역량 강화에 큰 영향을 끼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예편 뒤에도 변화된 전장 환경에 맞춰 핵·포병전·특수전 등으로 연구 범위를 넓혔고, 우리 군 또한 이 같은 환경에 빠르게 변모할 것을 강조해왔다. 작고전에는 우주전·인공지능(AI)·사이버전 등 미래 전장 환경에 대해서도 많은 관심을 가졌다. "우리의 주적을 분명히 해야 한다"며 정신전력 강화와 변화된 병영 환경 및 교육 등을 강조해온 고인은 '우리는 대한민국의 군인이었다'(2012)를 저술하기도 했다. 육군장으로 치러진 故 윤용남 장군의 장례식장을 찾은 정형진 장군은 연대장 시절에 큰 가르침을 주었고 군생활을 이끌어주었던 고인에게 존경하는 마음으로 정성어린 조문을 했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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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4-05
  • [김희철의 CrisisM] ⑤동티모르 상록수부대의 쓸쓸한 여운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오에쿠시 주지사는 "추모공원 인근에 아직 찾지 못한 김정중 병장의 이름을 딴 도로를 만들어, 이곳을 지나는 누구나 한국군을 기리고, 실종자를 찾을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약속하기도 했다. 추모공원은 2022년 7월에 완성돼, 그해 8월4일 낮 동티모르 주재 한국대사관과 오에쿠시 주지사 등 정부 관계자, 순직 장병 유가족과 당시 상록수 부대장·부대원 등이 참석한 가운데 준공식이 거행됐다. 준공식에는 현지 주민 등 100여 명이 참석해, 추모공원을 가득 채웠다. 사전에 알려진 행사도 아니었지만, 알음알음 소식을 들은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찾아온 것이다. 김영덕 제522평화유지단 상록수부대 7진 단장(예비역 대령)은 "동티모르, 특히 오에쿠시는 상록수부대와 함께 어려움과 즐거움을 같이했던 진정한 친구였다. 마을 어르신들이 나와서 따뜻한 마음으로 환영해주실 때, 마치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가는 것과 같았다"며 감회에 젖었다. 이어 그는 "고인들이 남기신 뜻이 이곳에 깊이 새겨질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다.(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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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4-04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312)] 통합메트릭스 신화를 만든 정형진 장군②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무장공비 침투사건이 빈번하던 14년 전에 장인(故 강철 대령)이 근무했던 80연대장직을 맡은 정형진 장군은 위관 시절에 승리부대 예하 9중대장을 역임했고 그 9중대를 정 대령이 성공적으로 지휘한지 7년만에 필자가 다시 인수하여 9중대장직을 수행한 특이한 인연을 갖고 있다. 정형진 장군은 지난 1974년 육사 30기로 임관하여 중령 시절에 인천 송도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해안지역 대대장을 마치고 주 말레이 겸 인도 국방무관으로 부임했다. 그곳 말레이에서도 최초로 우리나라 장갑차를 해외로 수출하는 등의 많은 성과를 올리며 능력을 인정받아 해외 국방무관 근무자중에 특별하게 1차로 대령으로 진급하여 80연대장으로 부임했다. 전·후방 각급 부대에서 정보분야 참모 직책을 두루 역임하였던 정형진 대령은 연대전투단훈련 평가(RCT)최우수부대를 수상하는 등 성공적인 연대장을 마치면서 사단 참모장직까지 탁월하게 끝내고 결국 장군으로 진급했다. 이어 합참정보융합실장, 국방정보본부 해외정보차장, 육군정보학교장 등 주요보직을 역임한 뒤 육군소장으로 전역했고, 이후 단국대학교에서 후학을 양성하는 교수를 거쳐 2020년 1월부터는 김포대학교 총장까지 역임했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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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4-03
  • [김희철의 CrisisM] ④동티모르 상록수부대의 쓸쓸한 여운
    [시큐리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동티모르 주재 한국대사관은 국가보훈처의 예산을 받아 오에쿠시 시내 시민공원에 세워진 기존 추모비를 재정비한 데 이어, 사고 현장인 에카트 강가에 추모비와 추모공원을 새롭게 마련했다. 사고가 난 지점은 오에쿠시주 시내에서 비포장 도로로 두 시간가량 떨어진 곳이다. 추모비 건립은 전임 이친범(육사 40기) 주동티모르 대사의 추진으로 이뤄졌다. 이 전 대사는 2020년 11월 추모비 제막식에서 "추모탑 제막을 통해 순직한 장병들을 국가가 잊지 않음을 보여줬다. 국가를 위해 헌신한 분들에 대해서는 국가가 끝까지 책임진다는 정부 정책을 실현했다"고 의미를 부여하기도 했다. 이후 김정호(육사36기) 동티모르 대사가 부임하면서, 사고 현장 추모탑 주변을 공원화하는 사업이 추진됐다. 모래사장과 나무 몇 그루가 서 있던 추모비 주변은 1년여 뒤, 추모공원으로 탈바꿈했다. 순직 장병들의 이름과 얼굴, 상록수부대 활동 역사 등을 대리석 판에 새겨, 공원 담벼락에 넣었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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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4-01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311)] 통합메트릭스 신화를 만든 정형진 장군①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1960년대와 70년에는 수많은 간첩사건과 무장공비 침투사건이 발생했다. 이는 북한의 대남적화통일노선에 따라 남한의 혼란을 유도하고 지하조직을 건설하기 위한 시도가 끊이질 않았기 때문이다. 1968년 1.21사태와 10월~11월 울진 삼척지구 무장공비침투사건, 1969년 3월16일에 주문진에 무장공비 침투사건이 발생했다. 이어 6월에는 흑산도에 무장공비 침투사건도 있었다. 이렇게 연달아 북한의 무장공비 침투사건이 발생하자 박정희 정권은 미국에 보복공격을 요청하는 한편 국민의 반공체제 강화에 주력하여 1968년 4월에는 향토예비군을 창설했다. 때를 맞춰 1969년 GOP 경계를 담당했던 무적태풍부대에서도 무장공비 침투사건이 있었고 사단예하 80연대의 작전지역에서 논두렁에서 비트를 파고 숨어있던 무장공비를 연대지원 포병부대 병사들이 발견하여 사살하는 전과도 올렸다. 필자가 근무하던 1993년에 80연대장은 외유내강(外柔內剛)형의 정형진 대령(육사30기)이었다. 그는 필자가 처음으로 군생활을 시작했던 중동부 전선의 승리부대에서 성공적인 중대장 근무를 했는데 7년 뒤에 우연하게도 필자가 그 중대장으로 보직되는 등 유독 인연이 많았던 선배였다. 게다가 정 대령이 지휘한 80연대는 수많은 간첩사건과 무장공비 침투사건이 발생했던 1969년도에 필자의 장인이 연대장으로 재직했던 부대이기도 했다. 필자의 장인 故강철 대령은 평북 정주군 출신으로 해방후에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하며 서북청년회 활동을 했는데 공산당의 폭정이 너무도 가혹해 결국 38선을 넘어 월남했다. 이후 신흥대학(현 경희대학교) 정경학부에서 공부하다가 6사단 7연대에서 병사로 입대했을 때 6.25남침전쟁이 발발했다. 헌데 입대후 얼마되지 않은 시점에 응시했던 보병학교 간부후보생 3기생에 합격 통지서를 받아 종합학교(전시사관학교)1기로 교육받고 소위로 임관하여 11사단에서 일선 소대장, 대대참모, 소총중대장으로 생사의 갈림길인 치열한 전투에 참전하다가 휴전을 맞이했다. 이후 비둘기부대 작전참모로 2년 동안 월남전을 참전하여 대령으로 진급한 장인은 80연대장을 마치고 특전사 작전참모, 육군본부 교육과장직을 수행했다. 마지막 보직인 1사단 부사단장으로 땅굴탐지 작전을 지휘하다가 25년 군생활을 마치고 전역했는데, 2년 뒤에 시추했던 그곳에서 제3땅굴이 발견됐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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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
    2023-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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