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2-08-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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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역군인 검색결과

  • 김유근 군인공제회이사장, 회한의 사직 메일(하)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군인공제회 김유근 이사장은 셋번째 사임 이유로 “최근 민감한 정치적 이슈에 이사장으로서 회사업무에 전념하지 못하는 모습이 임직원 여러분에게 떳떳하지 못하며, 이런 상황이 오래가는 것이 맞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소회를 피력했다. 사임 이유에 앞서 그는 “그동안 진심으로 고마웠습니다. 그리고 정말 미안합니다. 경제가 어려워 모두가 더 합심해야 하는 준엄한 시기에 이사장이 예고 없이 사임하게 되어 죄송한 마음입니다”라며 회한을 표현했다. 그리고 “1년 반, 짧은 기간에 공제회가 놀라울 정도로 변화했습니다. 어려운 경제여건 속에서도 여러분 스스로 극복한 지혜와 능력이며 결단이었습니다. 여러분들의 고민과 열정으로 만든 것입니다. 이사장이 중도에 그만두는 상황에도 공제회가 동요 없이 차분하게 업무에 전념하는 분위기가 유지되기를 희망합니다”라는 당부의 말도 잊지 않았다. 김유근 이사장은 재직기간에 군인공제회가 그동안의 당기순이익이 년 평균 800여억에서 작년에 예년 평균 4배, 3,500억원 달성 신화를 시스템으로 탄탄하게 구축한 것은 누가 뭐라해도 직원들의 사업능력이 대내외적으로 검증된 것으로 여기며 매우 자랑스러워했다. 그는 사람은 바뀌어도 공제회는 시스템적으로 흔들림 없이 전진해야 냉혹한 경쟁현실 속에서 살아 남아 100년 기업으로 나갈 수 있다며, 임직원 모두가 지금처럼 언제나 파이팅하되 무엇보다 건강이 제일이니 '여러분의 건강과 체력이 회사의 힘이다'라고 강조했다.
    • 전역군인
    • 종합
    2022-07-29
  • 김유근 군인공제회이사장, 회한의 사직 메일(상)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지난 27일 아침 군인공제회 산하 전 직원은 한통의 가슴을 울리는 이메일을 충격적으로 받았다. “임직원 여러분 ! 여러분과 함께 회사에 헌신하고 있는 ...”라고 시작된 이메일은 다름아닌 현재 군인공제회 이사장인 김유근 예비역 중장의 사임 인사 글이었다. 김유근 이사장은 충북 청주출생으로 육군사관학교 36기로 졸업하며 소위로 임관하여 장군진급 후에 육군본부 전력기획처장, 8사단장, 합동참모본부 작전기획부장, 제8군단장, 육군 참모차장, 합참 합동참모차장을 역임한 후 육군중장으로 전역하였다. 이후 국방부 주한미군기지이전사업단 단장을 잠시 거친 후인 2019년 2월 문재인 정부의 국가안보실 제1차장으로 재직했으며 2021년 2월부터 제15대 군인공제회 이사장으로 근무했다. 김 이사장은 사임 인사 글을 통해 다음과 같이 사임하는 소회를 피력했다. “사임하는 이유는 첫째, 새정부가 출범하고 새로운 군수뇌부가 갖추어졌습니다. 새로운 군수뇌부를 중심으로 확고한 지휘체계가 수립되어야 합니다. 공제회는 국방부의 지도, 감독을 받는 기관입니다. 신임장관에게 '지휘부담이 되지 말아야 한다'는 것과 '새 술은 새 그릇에 담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적절한 시기에 정리해야겠다고 생각해왔습니다. 지금이 때가 된 듯 합니다. 둘째, 자리 연연하는 모습 보이지 않으려고 합니다. 상황이 변했는데 3년 임기를 끝까지 하려는 것 그건 욕심이고 바른 선택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간 군과 공직생활을 명예롭게 했기에 이 정도에서 잘 마치려고 합니다. 오히려 1년 반이지만 여기서 봉직하는 기회를 갖게 된 것은 개인적으로 큰 혜택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편 계속)
    • 전역군인
    • 종합
    2022-07-28

소통시대 검색결과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241)] 혈연, 지연 및 학연보다도 근무연이 더 결정적인 역할⑤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앞서 언급한 대로 인맥은 처음부터 혈연 및 지연이나 학연보다도 같이 근무했던 인연이 더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마찬가지로 훗날 연대장을 성공적으로 마친 양 대령이 육군본부의 중요보직인 무기체계과장 근무시에 대대장을 끝낸 황종수 중령도 발탁되어 함께 근무하게 됐다. 이후 철학적 혜안에 따른 논리성에 야전성을 겸비한 황 중령은 본인의 주특기 기획직능에 부합된 적재 적소의 무기체계 및 전력분야에서 견고한 자리를 구축하며 맹활약을 하였다. 그는 대령도 필자보다 먼저 진급했고 양치규 장군의 뒤를 이어 그 분야의 최고 전문가로 육군발전에 큰 족적을 남겼다. 또한 필자도 역대 작전보좌관 전임자들이자 같은 시기에 같은 부대에서 근무했던 김봉환(육사34기), 신현돈(육사35기) 선배의 후배사랑을 듬뿍 받았으며, 필자의 후임자였던 김왕경(육사38기), 장혁(육사39기)들까지도 좋은 인맥으로 남았고 덕분에 모두 장군의 반열에 오르는 희열도 맛보았다. 무능과 유능 그리고 탁월하다는 평가 차이의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좋은 인맥이고, 이렇게 형성된 인연은 앞길의 안내자이자 스승이며 멘토역할도 하게 된다. 따라서 혈연이나 지연 및 학연보다도 같이 근무했던 인연이 더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에 매사에 최선을 다해 인정받아야 함을 또한번 느끼게 한다.
    • 소통시대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
    2022-08-09
  • [김희철의 전쟁사(196)] 6·25남침전쟁후 국가재건의 선구자 위트컴 장군㉞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故 위트컴 장군 부부가 영면하고 있는 ‘유엔기념공원’은 1951년 1월 유엔군사령부가 부산시 남구 대연동 13만4000㎡의 넓은 부지에 전사자의 공동묘지로 조성했으며, 1955년 유엔총회가 세계 유일의 유엔묘지로 의결했다. 6.25남침전쟁 당시 참전국은 유엔군으로 파병한 16개국과 장비, 물자, 의료를 지원한 나라까지 67개국이었다. 이 사실은 안재철 월드피스자유연합 이사장의 노력으로 2010년 9월 기네스북에 세계 최고의 파병 및 지원기록으로 등재됐다. 이 전쟁에서 자유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참전한 유엔군의 피해는 전사 3만 5737명, 부상 11만 5068명, 실종 1554명으로 총 15만 2359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특히 유엔군 중 아이젠하워 대통령, 클라크 유엔군 총사령관, 밴플리트 8군사령관, 해리스 해병 1항공사단장 등 미군 고위장성들의 아들 142명이 참전했다. 그들 중 35명이 전사, 실종 혹은 부상을 당했다.([김희철의 전쟁사](37) ‘보훈의 달, 잊혀가는 영웅들과 지도자의 자세’ 참조) 현재 부산에 있는 재한유엔기념공원(UNMCK)에는 처음에 16개 파병국의 1만1000위가 봉안돼 있었으나 대부분 자국으로 송환되고 일부 유해만 남아 있다. 현재 이곳에는 영국 885명을 비롯, 터키 462명, 캐나다 378명, 호주 281명, 네델란드 117명, 프랑스 44명, 미국 36명, 뉴질랜드 34명, 남아공 11명 등 11개국 2311구의 유해가 안장돼 전쟁이 끝난 후까지도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이 땅에 잠들어 있다. (다음편 계속)
    • 소통시대
    • 군대를 말한다
    2022-08-08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240)] 혈연, 지연 및 학연보다도 근무연이 더 결정적인 역할④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결국 양 대령은 황종수 소령을 연대 작전과장으로 받았고 황 소령은 보직 걱정을 하다가 오히려 좋은 기회를 포착하고 그의 잠재능력을 충분하게 발휘하며 탁월함을 인정받게 된다. 육군사관학교 교관 경험이 말해주듯 철학적 혜안에 따른 논리성에 야전성을 겸비한 황 소령은 각종 지휘관 회의나 전술토의에서 해당 연대안을 발표할 때마다 타 부대와 비교될 정도로 돋보이기 시작했다. 특히 연대장 근무의 성패를 좌우하기 때문에 가장 중요시하는 연대전술훈련 평가에 임해서 황 소령은 대박을 터뜨렸다. 사전 철저한 지형 정찰을 통해 판단한 지역을 이용, 전차를 동반한 특수임무부대가 기습적으로 임진강을 도섭하여 상대방의 지휘소를 급습하며 포위 격멸시키는 완벽한 승리를 쟁취하는 성과를 올렸다. 처음에 연대 작전과장 후임자를 선발할 때 경력이 문제이고 게다가 야전 경험도 부족하며 특히 주특기가 작전직능이 아닌 기획직능이기 때문에 더 더욱 고민이라던 양 대령의 우려는 기우(杞憂)로 끝났다. 반면에 황 소령은 양 대령과 좋은 인맥을 쌓게 되었다. (다음편 계속)
    • 소통시대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
    2022-08-05
  • [김희철의 전쟁사(195)] 6·25남침전쟁후 국가재건의 선구자 위트컴 장군㉝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한묘숙 여사는 북한 조국평통일위원장 허담의 초청으로 1990년 6월 북한땅을 처음 방문한 뒤, 이중간첩으로 오인받아 김포공항으로 귀국하자 국가안전기획부(현 국정원)의 조사를 받으면서도 장진호 전투의 미군 유해발굴을 위해 끝까지 노력했었다. 허나 건강이 악화되어 서울에서 거주해온 한묘숙 여사(위트컴 희망재단 이사장)가 입원 치료 중 2017년 1월1일 오후 9시 향년 90세로 별세했다. 故 한묘숙 여사는 부산대학교가 설립 초기 장전캠퍼스 부지 제공과 공사 등 국립 부산대학교의 터전을 마련하는 데 크게 공헌하며 도움을 준 故 위트컴 前 유엔군 군수사령관의 미망인이다. 대학측은 그 공적을 기리고 감사의 마음을 담아 유족과 협의를 거쳐 당시 전호환 총장을 장례위원장으로 하는 장례위원회를 구성해 한 여사의 장례를 부산대학교장(葬)으로 치르기로 했다. 이에 따라 부산대는 故 한묘숙 여사의 빈소를 양산부산대학교병원 장례식장 4분향소에 마련했다. 이와 별도로 장전캠퍼스 대학본부동 1층에도 분향소를 설치해 고인을 추모했다. 故 한묘숙 여사의 유족으로는 자녀 민태정, 자부 민옥린, 손자/녀 민경동/민영동이 있으며, 부산대 전자공학과 김재호 교수가 양자로서 빈소를 지켰다. 4일 오전 10시 부산대학교 내 10.16기념관에서 거행된 故 한묘숙 여사의 영결식은 개식, 고인에 대한 묵념, 약력보고와 추모영상 상영 및 부산대 총장의 조사와 추도사 및 추모곡 순으로 엄수됐다. 영결식에는 부산시장을 비롯한 주요 기관장들과 부산대 전임 총장단, 주한 미국대사와 부산 미국영사, 주한 미8군 사령관과 주한 미해군 사령관 및 유엔평화기념관장과 메리놀병원장, 위트컴 희망재단 관련 인사 등이 참석했다. 故 한묘숙 여사는 10.16기념관에서 영결식을 거행한 뒤 오후 3시경 부산시 남구 대연동에 위치한 ‘유엔기념공원묘지’ 내 故 위트컴 장군 묘역에 함께 안장되었고 이곳에 유일하게 잠들어 있는 민간인 신분의 한국 여인이다.(다음편 계속)
    • 소통시대
    • 군대를 말한다
    2022-08-04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239)] 혈연, 지연 및 학연보다도 근무연이 더 결정적인 역할③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때마침 사단으로 전입오게 된 동기생 황종수 소령(육사37기)은 11사단에서 중대장을 마치고 육군사관학교 교관요원으로 선발되어 후배를 가르치다가 야전으로 나오게 되었다. 헌데 중령 진급에 유력한 자리인 타 연대 작전과장엔 이미 모두 예정된 대기자들이 있었고 당시 공석이 된 양 대령 연대의 작전과장 자리도 유경험자를 원하기 때문에 보직을 받기가 몹시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필자는 주저하지 않고 양 대령에게 동기생인 황 소령을 추천했으나 그는 몹시 곤란한 표정으로 경력이 문제이고 게다가 육사 교관을 수행하여 야전 경험도 부족하며, 특히 주특기가 작전직능이 아닌 기획직능이기 때문에 더 더욱 고민이라며 쉽게 대답을 안했다. 필자는 양 대령 연대를 찾아갔다. 그리고 필자의 사단 작전장교 시절에 목격했던 황 소령의 중대장 근무 시에 탁월했던 야전성을 설명했다. 당시 황 대위는 11사단 중대장으로 연대전술훈련 평가를 위해 연대의 최전방 중대로 100km가까운 행군을 하여 필자의 아파트 옆에 있던 공터에 주둔지를 형성하고 있었다. 마침 퇴근하던 필자는 훈련에 참여한 병사에게 중대장이 누구냐고 물어보니 동기생인 황종수 대위라고 하여 아파트에서 커피를 타가지고 중대장 텐트를 찾았다. 텐트안에 있던 황 대위는 기습적인 방문에 놀람과 동시에 어쩔 줄 모르며 반가워했다. 그때 필자는 이미 중대장 근무도 마치고 사단 작전장교로 보직받아 숙달되어 가던 차이라 위탁교육을 받고 늦게 중대장직을 수행하는 동기생을 격려하겠다는 단순한 마음이었다. 헌데 숙영지 편성을 보고 깜작 놀랐다. 필자가 중대장 시절에 편성했던 모습과는 몇단계 향상된 배치와 경계 태세를 유지하고 있었고, 그는 훈련에 임해서 상대 연대와 공격, 방어 전투에서 창의적으로 대처하여 완승을 거둔 체험담을 이야기했다. 생도시절 철학을 전공했던 그답게 입담도 좋았지만 순간적인 기지를 발휘한 상황조치로 상대방은 허를 찔렸고 상급자로부터는 극찬을 받았다는 성공담도 늘어놓았다. 짧은 만남을 뒤로 한 채 아파트로 돌아오면서 탁월하게 맹활약하는 동기생이 너무도 자랑스러웠고 필자도 더 열심히 잘해야겠다는 각오를 다지는 계기도 되었다. 다음날 새벽에 출근하다가 황 대위의 숙영지를 보니 아무도 없었다. 연대전술훈련 평가를 위해 이미 야간에 타지역으로 이동했는데 그들이 떠난 자리를 보고 또한번 놀랐다. 전장정리를 철저히 하여 티끌만한 흔적도 남지 않았다. 역시 자랑스럽고 탁월한 동기생 황종수 대위였다. (다음편 계속)
    • 소통시대
    • 군대를 말한다
    2022-08-03
  • [김희철의 전쟁사(194)] 6·25남침전쟁후 국가재건의 선구자 위트컴 장군㉜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2012년 국제신문에 위트컴 장군을 조명하는 기획시리즈 기사가 보도된 이후 부산시가 그해 10월24일 유엔의날 기념행사에 맞춰 부산시민의 감사 뜻을 담은 감사패를 故 위트컴 장군 부인 한묘숙 여사에게 전달했다. 오늘의 부산은 세계와 무역하며 해운과 수산의 중심지로 역할하고 있다. 또한 일본과 중국을 비롯한 서방국가들과도 유용한 교류의 관문이며 오랜 기간 시행된 국제영화제 행사 등 수많은 국제 교류 역사가 배어 있는 곳이기도 하다. 열린 세계인의 마음과 인류애를 바탕으로 상생하는 협력과 선행의 표상인 故 위트컴 장군의 모습은 세계시민의 역할을 자부하는 부산시민들에게 인류공영에 어떻게 이바지하는지를 잘 알려주고 있다. 따라서 부산시민들은 자신들의 DNA가 위트컴 장군과 너무도 일치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위트컴 장군, 그는 영원한 한국인, 부산인이다”라고 추앙하며 자랑스러워한다. (다음편 계속)
    • 소통시대
    • 군대를 말한다
    2022-08-02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238)] 혈연, 지연 및 학연보다도 근무연이 더 결정적인 역할②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그해 가을 무렵에 접어들자 양 대령 연대의 중요하고 핵심적 역할을 할 참모인 작전과장이 보직을 마치고 떠나게 되어 후임자를 찾고 있었다. 연대 작전과장은 작전 업무뿐만 아니라 부대운용의 모든 분야를 총괄하기 때문에 부대의 성패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해당 지휘관이 작전분야의 경험이 있는 장교를 선택하는 것은 당연한 이유이다. 그래서 통상 작전과장을 보직 받기 전에 정보과장 등의 타 참모 임무를 수행하다가 능력을 인정받으면 작전과장으로 영전하면서 그해의 중령 진급 선발에도 유력한 대상이 된다. 당시 사단으로 전입 예정자 중 소령급 장교에는 동기생도 포함되어 있었으나 양 대령도 출신을 떠나 작전분야에서 근무 경력이 있는 유능하고 탁월한 장교가 작전과장으로 보직되길 원했다. 허나 주변을 아무리 물색하고 사단으로 전입 예정인 대상자 중에 양 대령이 원하는 조건에 해당되는 자원이 없다고 판단하여 선택을 고민하고 있었다.(다음편 계속)
    • 소통시대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
    2022-08-01
  • 김유근 군인공제회이사장, 회한의 사직 메일(하)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군인공제회 김유근 이사장은 셋번째 사임 이유로 “최근 민감한 정치적 이슈에 이사장으로서 회사업무에 전념하지 못하는 모습이 임직원 여러분에게 떳떳하지 못하며, 이런 상황이 오래가는 것이 맞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소회를 피력했다. 사임 이유에 앞서 그는 “그동안 진심으로 고마웠습니다. 그리고 정말 미안합니다. 경제가 어려워 모두가 더 합심해야 하는 준엄한 시기에 이사장이 예고 없이 사임하게 되어 죄송한 마음입니다”라며 회한을 표현했다. 그리고 “1년 반, 짧은 기간에 공제회가 놀라울 정도로 변화했습니다. 어려운 경제여건 속에서도 여러분 스스로 극복한 지혜와 능력이며 결단이었습니다. 여러분들의 고민과 열정으로 만든 것입니다. 이사장이 중도에 그만두는 상황에도 공제회가 동요 없이 차분하게 업무에 전념하는 분위기가 유지되기를 희망합니다”라는 당부의 말도 잊지 않았다. 김유근 이사장은 재직기간에 군인공제회가 그동안의 당기순이익이 년 평균 800여억에서 작년에 예년 평균 4배, 3,500억원 달성 신화를 시스템으로 탄탄하게 구축한 것은 누가 뭐라해도 직원들의 사업능력이 대내외적으로 검증된 것으로 여기며 매우 자랑스러워했다. 그는 사람은 바뀌어도 공제회는 시스템적으로 흔들림 없이 전진해야 냉혹한 경쟁현실 속에서 살아 남아 100년 기업으로 나갈 수 있다며, 임직원 모두가 지금처럼 언제나 파이팅하되 무엇보다 건강이 제일이니 '여러분의 건강과 체력이 회사의 힘이다'라고 강조했다.
    • 전역군인
    • 종합
    2022-07-29
  • [김희철의 전쟁사(193)] 6·25남침전쟁후 국가재건의 선구자 위트컴 장군㉛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위트컴 장군이 1982년 7월12일 서울 용산의 병원에서 영면했을 때 동아일보는 ‘한국전쟁 고아의 아버지 위트컴 장군 영면하다’라는 부음 기사를 썼다. 故 위트컴 장군은 전역 후에도 미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한국에 남아 한국의 재건과 전쟁고아의 성장뿐 아니라 중국과 아시아지역 의료시설 확충과 북한 땅에서 돌아오지 못하고 있는 미군 장진호 전투 전사자의 유해를 찾아오는 일을 여생의 임무라고 믿고 실천했다. 이를 위해 1960년대에는 고령에도 서울을 근거지로 베트남 캄보디아 중국을 돌며 이곳의 낙후된 의료시설을 보고 ‘위트컴 희망재단’을 설립했다. 또한, 그는 스스로 한국인임을 자처하고 한국 여성인 한묘숙 여사와 결혼했다. 한 여사는 이후 위트컴 장군의 유지에 따라 북한을 25차례나 방문해 미군 장진호 전투 전사자의 유해를 찾았다. 그는 죽어서도 미국에 돌아가지 않고 한국에 묻히기를 원해 별세한 뒤 현재 부산시 대연동 유엔기념공원에 안치됐다. 장군급으로서는 유일하다. 한편 부산대 김재호 교수는 故 위트컴 장군의 미망인이 서울 용산에 계신 것을 알고 한묘숙 여사를 찾았고, 추모사업회를 만들어 매년 7월12일 유엔기념공원에서 추모식을 열어왔다. (다음편 계속)
    • 소통시대
    • 군대를 말한다
    2022-07-28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237)] 혈연, 지연 및 학연보다도 근무연이 더 결정적인 역할①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무적태풍부대로 전입온 지 5개월 정도 지날 즈음에 반갑고도 존경하는 선배가 예하 연대장으로 부임했다. 사단사령부의 작전보좌관직을 수행하던 필자는 새롭게 취임한 양치규 대령(육사29기)을 승리부대 중대장 근무시에 직속상관인 대대장으로 모셨기 때문에 특별히 관심을 가지며 도움이 되도록 노력했다. ([김희철의 직업군인이야기(60)] 실전 같은 부대 검열 및 훈련평가는 승리의 첩경:‘경쟁자가 깨닫게 해준 교훈과 대대장의 리더십이 이끌어 낸 승리’ 참조) 일반 사회에서 능력을 인정받는 것은 학력과 경력도 중요하지만 숨길 수 없는 사실은 당사자의 인맥이 크게 좌우한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군생활도 마찬가지이다. 헌데 그 인맥은 처음부터 혈연이나 지연 및 학연에 의해 형성되는 것보다도 같이 근무했던 인연이 더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같이 근무하여 쌓인 좋은 인연은 그 당시에 상급자로부터 무능하다고 평가받지 않았기 때문에 신뢰와 함께 인맥으로 연결된다고 볼 수 있다. 그렇게 맺어진 인맥으로 상급자는 진로를 안내해주거나 멘토 역할도 하지만 평가 및 진급시에도 측면에서 힘을 발휘할 수도 있다. 또한 경험 즉 경력도 무시할 수 없다. 당시 사단사령부의 작전보좌관으로 근무하던 필자도 수방사령부 작전장교로 근무했다는 경력이 무능과 유능 그리고 탁월하다고 평가하는 측면에서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다음편 계속)
    • 소통시대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
    2022-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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