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성산에서 소대장 근무 시절 (김희철 사진촬영)
직업군인으로서의 삶은 보람과 고난의 길입니다. 취업난이 심해지면서 남성은 물론이고 여성들도 직업으로서의 군인을 선택하는 경우가 늘고 있습니다. 그 청춘들을 위해 '직업군인 사용설명서'를 작성합니다. 필자가 지난 1974년부터 썼던 17권의 일기장에 담았던 사적인 기록을 최대한 가감없이 전달합니다.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소장으로 전역하기까지 파란만장했던 필자의 경험을 통해 직업군인의 현실과 이상을 발견하길 기원합니다. <편집자 주>
(시큐리티팩트 = 김희철 안보전문기자)
첫인상이 평생을 좌우하고 선입견을 깰려면 몇배의 노력이 필요
사단 신고를 마치고 명월리 사단본부를 출발하여 실내고개-다목리-덕고개를 거쳐 봉오삼거리에 있는 연대본부에 도착하자 생도 2학년 시절 부사관학교에서 우리를 지도했던 선배가 연대장을 하고 있었다. 연대장실에서 기대어린 일장 훈시를 듣고, 하나 둘씩 각자의 대대로 떠났다.
혼자 남은 필자는 홀로 차에 올라 대성산 동쪽 기슭의 예상동 골짜기에 자리 잡은 대대로 향했다. 선배들이 기습적으로 베풀었던 환영회식을 했던 봉오 삼거리를 벗어나자 민가가 전혀 없었다. 비포장길을 약 1시간 가까이 달려갈 때에는 오로지 2천평 하늘 아래 산새들과 계곡 물소리만이 지나가는 나를 향해 반겨주었다. 막막하기만 한 그곳이 나의 청춘을 불살라야 할 첫 부임지였다.
새까맣고 왜소한 몸집에 촌스러움까지 배어있는 초병이 초라해 보이는 위병소에서 신입 소대장인 것을 눈치 챘는지 ‘승리’ 경례 구호를 크게 외치니 메아리가 퍼져 들려왔다. 위병소를 지나자 짚차는 하늘과 땅만 보이는 산길을 덜덜거리며 올라가 대대본부 앞에 멈추었다.
대대본부 작전과 앞에는 소령 계급장을 단 늙어 보이는 대대작전관이 반갑게 악수를 청해 왔다. 임지에서 매일 부딪혀야할 상급자인지라 약간 긴장하며 소위의 패기를 보이며 경례를 했다. 그런데 잠시 후 폭소가 터져 나왔다.
차에서 더블백과 가방을 내리는데 어설퍼보이고 조잡하기까지한 지뢰탐지기와 급조로 만든 지뢰덧신 군화를 발견하고 작전관은 “이것을 어떻게 가지고 왔냐? 자네가 만든 것인가?”하고 질문을 던졌다.
필자는 초등군사반 교육시절 GOP 전방 근무중 지뢰사고 발생으로 선배 2명이 순직하자 전방 배치를 받는 동기들이 각자 돈을 걷어 만든 것이라고 설명했다.
有備無患(유비무환)이라고 했다. 전방 배치시 어떤 상황이 될지 모르는 불확실성에 대비해 나름대로 대비한 초임 장교의 짐 보따리를 살펴본 작전관은 밝은 미소와 폭소를 터뜨리며 “김소위, 준비물은 대단해. 하지만 너무 걱정 말게... 모든 작전은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고 우리 대대는 지금은 FEBA 대대이기 때문에 지뢰탐지기와 덧신을 착용할 일은 당분간 없네 ..ㅋㅋㅋ”라고 했다.
비록 조잡한 것이었지만 초임장교가 지뢰사고에 대비한 장비를 만들어 임지로 부임했다는 소문은 순식간에 대대로 퍼졌고, 나의 첫인상은 너무 좋게 시작되었다.
말을 잘하는 법은 달변이 아니라 뜻을 명료하게 전달하는 것
대대장은 육사 14년 선배였다. 조용한 학자 같았지만 치밀해 보였다. 동기생들이 이미 대대장 근무를 마치고 사단 참모로 보직되어 동기들보다는 다소 늦은 발걸음을 하고 있었다.
중대장은 단기사관(병사 근무중 우수한 자들을 선발하여 장교로 임관) 출신이었다. 중대 소대장들이 모두가 학군장교(ROTC) 출신이고 그중 한명인 3소대장은 사단에 전입오던 날 선배들의 기습회식 때 봉오삼거리에서 만난 자그마하지만 새까맣게 그을린 모습이 당차 보이던 소위(박정수) 바로 그였다. 중대장은 육사 출신이 중대에 배치된 것을 무척이나 좋아하며 중대원들을 집합시켜 필자를 소개했다.
중대장의 과분할 정도의 소개가 끝나자 인사말을 하라고 자리를 내주었다. 선임 분대장이 정렬을 시킨 뒤 ‘훈시’ 경례를 하고 ‘부대 열중 쉬어’ 구령을 마쳤다. 약간은 긴장이 되었으나 자리에 서서 중대원들을 바라보았다.
뒤편에 있는 소대장과 선임하사관들은 무슨 이야기를 할까하며 뚫어지게 나를 쳐다보았고, 병사들은 그동안 소대장들에게 시달렸는데 산 넘어 산이라고 이번에는 육사 출신이 왔으니 우리는 죽었다하는 표정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필자의 장황한 설명은 필요가 없어 보였다. 그리고 저녁이 다 되어 쉬고 싶은 표정이었다. 아무 말 없이 중대원들 모두와 눈빛을 맞추는 약 3분간의 시간은 꽤 길어 보였고, 그들의 궁금증은 한계에 이르러 지루해 보일 정도가 되었다.
필자는 헛기침을 한번 하고 말문을 열었다. “나는 대한민국 육군소위 김희철이다. 이상!” 너무도 짧은 인사말에 맨붕이 왔었는지 선임분대장이 멍하니 바라만 보고 있었다. “분대장 내 인사말 끝났다.”
내 소개가 필요 없다고 생각했다. 짧은 한마디로 明若觀火(명약관화)하게 인사를 했고 그렇게 나의 소대장 시절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