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3-02-01(수)
 
noname0123.png▲ 미국의 가정주부들이 단기 조립훈련을 받고 특화도구를 사용해 항공기를 조립하는 모습
 
미국, 조립 라인 이용해 노동자의 기술 숙련도와 관계없이 표준화된 제품 대량 생산
 
영국·독일 등, 전통적인 장인 문화 남아 대량생산 방식을 수용하는 속도 매우 더디어

대량생산 방식과 제도, 문화 등 새로운 패러다임도 함께 받아들여 방산 선진국 도약

(시큐리티팩트=김율희 전문기자)

2차 세계대전 이전 미 육군의 군사력은 세계 18위에 불과했다. 그러나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은 기존의 의복, 식량 위주의 군수물자 생산에서 기술을 기반으로 한 무기체계 생산 중심으로 변모해 방위산업 선진국이 되면서 세계 1위의 군사력을 가진 나라가 됐다.

미국의 방위산업 변화는 포디즘(Fordism)에 의한 대량생산(Mass Production) 방식을 도입하면서 시작됐다. 미국은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면서 1940년대의 첨단 무기체계였던 항공기, 전차 등의 생산량에서 독일 등 주축국(Axis Powers)은 물론 영국 등 연합국(Allied Powers)을 압도했다. 

생산량만을 고려했을 때, 1944년 미국의 항공기 생산량은 최고조에 달했으며, 100,000여대에 가까이 생산했다. 반면 주축국이었던 독일의 항공기 생산량은 40,000여대로 미국 항공기 생산량의 40% 수준이었으며, 연합국인 영국의 항공기 생산량도 25,000여대로 미국 항공기 생산량의 25% 수준에 불과했다.

물론 미국의 항공기 생산시설은 전장의 주 무대였던 유럽 대륙을 벗어나 있었기에 비교적 안전했으며, 안정적인 생산이 가능했던 지리적 이점이 작용했다. 하지만 전쟁 중심지에서 벗어나 있고 추축국들이 공격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는 사실만으로 항공기 등 무기의 폭발적인 생산량을 설명하기에는 다소 부족한 면이 있다. 

통계자료에 의하면, 2차 세계대전 초기 미국의 항공기 생산량은 연합국 및 주축국에 비해 저조했다. 1939년부터 1941년까지 참전 이전 기간 동안 미국의 항공기 생산량은 25,000여대였으나, 같은 기간 연합국인 영국은 42,000여대, 러시아는 35,000여대를 생산했고, 주축국인 독일도 40,000여대를 생산함으로써, 연합국과 주축국 모두 미국에 비해 월등히 많은 항공기를 생산하고 있었다.  
    
미국의 항공기 생산이 급증한 원인 중 하나는 생산 패러다임의 변화에서 도출할 수 있다.  존 팍스톤(John Paxton)의 연구에 따르면, 2차 세계대전 참전 이후 미국의 방산업체들은 민간의 대량생산(Mass Production) 방식에 의해 가장 많은 항공기, 전차 등을 생산 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루만(Grumman), 노스 아메리칸(North American)등의 방산업체들은 포드(Ford)사의 대량생산(Mass Production) 방식에 의해 그 당시 가장 기술적으로 진보한 무기체계였던 항공기를 대량으로 생산했다. 대량생산 방식은 2차 세계대전 이전인 1920년대 헨리 포드(Henry Ford)가 T형 포드자동차를 생산하면서 도입한 것으로 포디즘(Fordism)이라고도 한다.

포드사가 도입한 대량생산 방식은 컨베이어벨트 시스템이 도입된 공장에서 조립라인 및 연속 공정기술을 이용하여 노동자의 기술 숙련도와 관계없이 표준화된 제품을 대량 생산하는 기계화된 생산 방식으로 현대 산업기반의 모태가 되었다.
 
한편 영국, 독일 등 1차 산업혁명과 2차 산업혁명에 성공한 유럽 국가들은 대량생산 방식을 수용하는 속도가 매우 더디었다. 대량생산의 개념은 2차 세계대전 이전부터 영국을 비롯한 유럽 국가들에 널리 퍼져있었다. 그러나 유럽의 공장에는 숙련공에 의한 전통적인 장인 생산(Craft Production) 문화가 남아있었기 때문에 비숙련공에 대한 신뢰가 부족했고, 자본가와 노동자 계급간의 임금 갈등, 대공황으로 인한 경제 사정악화 등 문제로 수용 속도가 느렸다.

2차 세계대전 기간에도 미국을 제외한 연합국과 주축국들은 기존의 생산 문화를 유지하며, 미숙하고 불완전한 대량생산 방식에 의해 항공기, 전차 등의 무기를 생산했다. 1차 세계대전 당시 정찰 용도로 활용되던 군 항공기를 전투용, 폭격용 등으로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음을 경험한 이후 세계 각국은 항공기를 신개념 무기로 개발하기 시작했고, 1939년 말 항공산업은 최첨단 산업에 속하게 됐다.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1939년 미국의 군용기 중 전투 가능한 기체는 총 500대였으며, 1941년 영국은 1년에 498대의 폭격기를 생산했다. 각 국이 항공기를 소량으로 생산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 중 하나는 항공기가 복잡한 최첨단 기계였기 때문이다. 일례로 B-24 폭격기의 경우 55만개의 부품과 70만개의 리벳(rivet)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당시 자동차는 1만 5천개 정도의 부품으로 이루어져 있던 때여서, 자동차에 비하면 항공기는 최첨단 기술을 요하는 정교한 기계였다. 따라서 대다수 유럽 국가들은 최첨단 기계인 항공기는 숙련공에 의해 생산되어야 한다는 인식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5년 후인 1944년 미국은 항공기를 22시간마다 1대씩, 1년에 100,000여대 가까이 생산할 수 있었다.

2차 세계대전 중 미국은 항공기 생산방식을 포드의 대량생산 방식으로 혁신했고, 이후 비할 수 없는 항공기 생산량을 기록하게 됐다. 미국은 대량생산을 위해 항공기를 공정별로 분리해 조립하는 이동 컨베이어 벨트를 깔았고, 최소한의 훈련을 받은 비숙련공 근로자들–남녀 불문의 사회초년생, 가정주부 등-은 조립 라인의 지정 장소에서 지정 임무를 부여받아 작업을 수행하도록 구성했다.

그리고 기존 장인 중심의 수작업을 최소화하기 위해 공정의 표준화 체계를 도입했다. 또한 기존 항공기에 사용했던 스패너, 망치 등의 범용 도구들은 항공기 생산의 자동화를 위해 특수하게 설계된 도구들로 대체됐다. 이처럼 미국의 방위산업은 대량생산 방식을 도입하면서 작업환경, 작업방식, 인력구성, 구조, 조직체계 등을 모두 변경했다.

영국1.png▲ 숙련공과 미숙련공이 한 그룹이 되어 항공기를 옮겨가며 조립하는 영국의 모습
 
한편, 영국 정부는 1936년부터 항공산업의 생산능력을 늘리기 위해 대량생산 방식을 도입하고자 생산시설 등에 4백만 파운드를 투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직 구성 등 여러 가지 문제로 인해 대량생산 방식의 정착은 지연됐다. 생산시설의 변경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전의 항공기 작업 방식은 고수됐다.

숙련공들과 미숙련공이 한 그룹을 이루어 각 기체를 옮겨가며 조립하는 형태를 유지해 한 항공기에서 다음 항공기로 옮겨가며 한번에 1∼2대씩 조립했다. 이로 인해 스케줄이 조율되지 않은 상태에서 그룹의 작업이 이루어졌고, 작업시간 관리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또한 수작업과 도제에 의존했고, 범용적으로 사용되는 펑범한 도구를 갖고 작업을 했다.
 
독일의 경우에도 항공기 생산방식은 소량 생산을 하는 배치(batch)식에서 컨베이어 벨트를 활용한 라인(line)형 생산 방식으로 전환되었으나, 전통적인 숙련공인 마이스터(Meister) 위주의 노동량 할당 방식은 변하지 않았다.

마이스터(Meister)는 컨베이어 벨트, 작업 표준, 연속 공정기술 등 새로운 방법을 도입함에 따라 미숙련된 노동력이 유입되어 마이스터(Meister)들의 숙련된 기술이 위협당할 가능성에 대해 저항했다. 마이스터(Meister)는 미숙련공을 마이스터(Meister)로 만들기 위한 견습 시간을 단축시키는데 반대했고, 전시 상황에 맞추어 견습 제도를 변화시키는 데에도 반대했다.

독일.png▲ 마이스터(사진 상단) 주도하에 작업을 하지만 미숙련공은 대기 중인 독일의 모습
 
게다가 방산업체는 마이스터(Meister)들에 의존한 생산방식을 고수했고, 항공기와 같은 최첨단 기계는 마이스터(Meister)에 의한 양질의 마감 과정이 있어야 한다는 신념을 갖고 있었다. 결국 기존의 제작 방식을 고수함으로써 생산방식은 변화되지 않았으며, 전시 상황에서도 이러한 생산 방식은 유지됐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도 미국의 방산업체들은 대량생산 방식을 고수했으며, 무기체계의 생산은 대량생산의 방식으로 변화했다. 또한 대량생산 방식의 표준화를 벤치마킹한 신병 훈련과정 개발 등 국방관련 제도에도 대량생산 방식의 패러다임이 영향력을 미쳤으며, 미국은  무기체계의 생산 체계 및 조직 분야에서 세계 제일의 선도 국가가 됐다. 

미국의 방위산업은 숙련공에 의해서만 수행되던 작업을 미숙련공도 수행할 수 있도록 작업의 개념을 바꾸었고, 컨베이어 벨트를 활용한 라인형으로 작업의 방식을 변경함에 따라 작업의 효율을 증가시켰으며, 새로운 시설에 적합한 기술을 적용한 도구를 보급하여 미숙련공도 숙련도가 높아야 하는 작업을 수행할 수 있도록 표준화 체계를 마련하는 등 기존의 생산방식을 탈피하고 노동 개념, 작업 방식, 기술 적용을 위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과감히 수용했다.

이와 같이 미국의 방위산업은 민수 분야의 대량생산 방식을 1930년대에 국방 분야로 받아들이면서 제도, 문화 등의 새로운 패러다임도 함께 받아들였다. 반면 영국, 독일 등은 기존의 방식과 패러다임을 유지한 채 대량생산 방식만 일부 적용했다. 결국 방위산업에서 대량생산 방식과 패러다임의 변화를 과감히 선택한 미국이 오늘날 세계 제일의 방위산업 선진국이 됐다. 

김율희200.png
 
로봇 Concept Design 전문가(공학박사)
광운대 방위사업연구소 초빙연구위원
‘미래전의 희망, 국방로봇’ 공동 저자
前 방위사업청 주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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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 기획] 미 방위산업 변천사로 본 한국 방위산업의 미래 ② 2차 세계대전과 대량 생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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