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핵화 실현 의지 확실하지만 미국에 대한 충분한 신뢰가 있어야 가능“ 주장
폼페이오 방북 앞두고 종전선언·경제제재 완화 조치 받아내려는 의도로 보여
(시큐리티팩트=김한경 총괄 에디터)
북미 간의 물밑 협상이 치열한 가운데 이용호 북한 외무상이 29일(현지시간) 뉴욕 유엔총회 연단에서 “일방적인 핵무장 해제는 없다”고 며 밝히면서 미국의 상응 조치를 요구했다.
이 외무상은 이날 유엔총회 일반토의 연설에서 "미국에 대한 신뢰가 없이는 우리 국가의 안전에 대한 확신이 있을 수 없으며, 그런 상태에서 우리가 일방적으로 먼저 핵무장을 해제하는 일은 절대로 있을 수 없다"고 단언했다.
15분 동안 진행된 연설에서 그는 “비핵화를 실현하려는 우리의 의지는 확고부동하다”면서도 “미국이 우리로 하여금 충분한 신뢰감을 가지게 할 때만 실현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이는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강조하면서 종전선언 및 경재제재 완화 등 미국의 상응조치를 요구해 그동안 북한이 견지해온 ‘조건부 비핵화’ 입장을 재확인한 것이다.
이 외무상은 “우리는 핵·미사일 실험 중단 및 핵실험장 폐기 등 중대한 조치를 취했고 핵무기와 핵기술을 이전하지 않을 것을 확약했다”면서도 “미국의 상응한 화답을 보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 “미국은 선 비핵화만 주장하고 이를 강압적으로 실현하기 위해 제재 압박 도수를 더욱 높이고 있으며 종전선언 발표까지 반대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하지만 원색적인 비난은 자제하고 ‘신뢰’라는 단어를 18차례 사용하며 협상의 진전을 기대하는 모양새도 취했다.
이에 따라 10월 초로 예상되는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의 방북을 앞두고 빈손으로 북한에 오지 말라는 신호를 공개적으로 보낸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선물을 들고 오지 않으면 평양에서 순탄한 협의가 진행되기 어렵다는 얘기다.
또 일각에서는 대북제재 해제와 종전선언 이전에는 핵무기 폐기나 반출 같은 본격적인 비핵화 조치는 하지 않겠다는 의미로서 북한이 그간 주장한 ‘동시 행동’보다도 한 발 더 나아가 “미국의 상응조치를 우선하는 요구에 가깝다”는 해석도 나온다.
북한이 미국을 향해 일관되게 요구하는 건 두 가지다. 정치적으로는 종전선언, 경제적으로는 대북제재 해제이다. 종전선언은 북한체제 보장의 출발점이며, 제재 해제는 북한이 과거보다 먹고 살만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돌파구다.
고유환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북한은 북·미 관계 개선의 출발점이자 반드시 통과해야 할 ‘의무통과지점’을 종전선언으로 삼고 있다”며 “이 지점을 통과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메시지”라고 말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폼페이오 장관도 방북을 앞둔 만큼 기존 주장을 재확인하면서 일종의 기싸움을 하는 것"이라며 "엄격한 동시행동은 어려우니 동시성과 순차성이 모두 가미된 방안으로 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북한이 그동안 언급을 자제했던 미국의 핵우산 문제를 건드린 것도 주목할 대목이다. 이용호 외무상은 “(미국은) 조선반도 전쟁 시기 수십 발의 원자탄을 떨구겠다고 공갈한 적이 있는 나라이며 우리의 문턱에 끊임없이 핵 전략자산을 끌어들인 나라”라고 했다.
이날 뉴욕 컬럼비아 대학에서 서면으로 발표된 태형철 김일성 종합대학 총장의 연설문도 미국의 핵우산 포기를 주장했다. 그는 “조선반도의 비핵화란 조선반도에서 미군의 핵위협 제거와 이에 상응해 우리 공화국이 보유한 핵과 관련해 미국의 우려를 제거하는 것”이라고 했다.
미 CBS 방송은 지난달 26일 “종전선언은 불가피하며 어떻게 한미동맹을 강화하고 북한 비핵화를 지속하는데 유리하게 이용할 수 있을지 알아내야 한다”는 데이비드 맥스웰 민주주의수호재단 선임연구원의 발언을 소개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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