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19(금)
 
트럼프1.png▲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6일(현지시간) 유엔본부의 안전보장이사회 회의를 주재한 뒤 뉴욕 롯데팰리스 호텔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북핵 협상 타결에 도달하는 데 2년이건, 3년이건, 혹은 5개월이건 문제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 연합뉴스
 
(시큐리티팩트=송승종 전문기자)

트럼프, 북한 비핵화 관련 “시간 게임 않겠다”며 시간표 소멸 선언

북한 비핵화 시한이 갑자기 사라졌다. 지난달 26일 뉴욕에서 열린 제73차 유엔총회에 참석한 후에 가진 기자회견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과 ‘시간 게임(time game)’을 하지 않겠다며, “2년이건, 3년이건, 5개월이건, 아무 문제도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금은 핵실험도 없고 로켓 시험발사도 없다”고 자랑했다. 이로써 미국 대통령은 지금까지 공개적으로 거론했던 여러 가지 비핵화 시한들을 스스로 부정하고, 이 문제를 원점으로 돌려놓은 셈이 되었다.

금년 5월 14일, 트럼프 행정부는 미 국무부 선임정책기획관(Brian Hook)의 입을 통해 북한 비핵화가 “트럼프 행정부의 첫 임기가 끝나기 전에 가능하다”고 밝혀, 4년간의 첫 번째 임기가 만료되는 ‘2021년 1월 이전’이 비핵화 마감시한임을 처음으로 언급했다. 그보다 앞서 2020년에 미국 대선이 있으니 사실상의 비핵화 완성시한은 ‘2020년’이었던 셈이다.

5월 중순까지만 해도 미국의 북한 비핵화 방식은 △ 先 비핵화, 後 보상, △ CVID(완전하고, 검증가능하고, 불가역적인 핵폐기), △ 생화학무기도 포함, △ 짧은 시간 내에 일괄 타결 등으로 고정되어 있었다. 그런데 5월 22일 백악관에서의 한·미 정상회담에 앞서 트럼프는 “일괄 타결할 필요가 있을까”라며 비핵화 시한에 말꼬리를 흐리기 시작했다.

6월 1일에도 트럼프는 북한 김영철을 백악관에서 만난 자리에서, 비핵화를 하나의 과정(a process)으로 표현하고, “나는 그것이 한 번의 회담으로 될 거라고 말한 적이 없다”고 밝히며 오락가락 행보를 보였다.

금년 7월 4일,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볼턴 국가안보보좌관 사이에 갈등이 표출되었다. 그 무렵 볼턴은 「리비아 모델」과 흡사한 ‘1년 비핵화 시한’을 트럼프 행정부의 공식처럼 반복하고 있었다. 그런데 국무부 대변인은 돌연 “일부 개인들이 그런 시간표를 제시하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국무부에는 그런 시간표가 없다”는 요지로 말했다.

볼턴은 폼페이오가 북한을 3차 방문(7월 5일~7일)하여 1년 이내 북한의 모든 대량살상무기(WMD) 해체 방법을 논의할 것이라고 발언했다. 하지만 정작 국무부는 “그런 시간표를 요구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그 시점부터 ‘북한 비핵화 시한’은 사실상 물 건너 간 것으로 보인다.

마감 시한에서 뒷걸음친 것은 퇴로 만들기 술수 또는 CVID 포기?

아마도 트럼프 대통령이 이처럼 그동안 공식처럼 되었던 마감시한에서 뒷걸음친 것은 미리 협상시한을 정해 놓으면 물러설 퇴로를 스스로 차단하여, 북한의 페이스에 말려들 수도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결정일 수 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트럼프 행정부가 지금쯤 CVID가 불가능하다는 점을 깨닫고 체면을 구기지 않으면서 슬금슬금 물러서는 퇴출전략(exit strategy)을 시작한 것으로 평가한다. 그렇다면 이는 미국이 북한을 파키스탄처럼 사실상의 핵보유국으로 인정할 수밖에 없음을 어쩔 수 없이 인정했다는 의미다.

이것은 건곤일척의 기세로 밀어붙이던 얼마 전까지의 기세에 비하면 초라한 후퇴 내지는 수치스러운 패배에 가깝지만 트럼프는 특유의 궤변으로 그런 멍에를 한사코 거부하고, 또 자신의 과오나 실책은 절대로 시인하지 않기로 작정한 것처럼 보인다.

유엔총회 직후 가진 단독 기자회견에서 그런 뉘앙스를 암시하는 발언들이 쏟아졌다. 우선 그는 많은 전문가들이 “미국이 북한에게 많은 걸 양보했다”는 지적에 “난 김정은과 회담 한 것밖에는 양보한 게 없다”며 펄쩍 뛰었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했다. “우린 많은 역대 대통령들이 결코 하지 못한 일을 했다. 그들은 북한에 대해 아무 것도 하지 못했었다. 우린 (북한과) 좋은 관계를 가지고 있고, 더 중요한 것은 끔찍한 이야기(주: 핵실험이나 미사일 발사 등)들이 더 이상 들리지 않는 것”이라고 힘주어 강조했다. 아울러 그는 “만일 내가 대통령에 당선되지 않았다면 틀림없이 전쟁이 일어났을 것(If I wan’t elected, you whould have had a war)”이라고 가정법까지 구사하며 으스댔다.

그리고 전쟁이 벌어지면 수천 명이 아니라 수백만 명이 사망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한 오바마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임기를 마치고 나오면서 자신에게 북한이 가장 큰 문제라고 털어놨다고 밝혔다. 뿐만 아니라 그는 싱가포르 정상회담을 대성공(a great success)이라고 자평하고, “내가 가진 것은 시간밖에 없다. 서두르지 않아도 된다(I got all the time in the world, I don’t have to rush it)”며 한껏 여유를 부렸다.

트럼프의 찬사 뒤에 숨겨진 한국인의 핵 공포는 미완의 과제로 남을 듯

트럼프가 기자회견에서 발언한 내용을 그의 관점에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 나는 과거 어떤 행정부가 감히 시도조차 해 본 적이 없는 북한 지도자와의 정상회담을 역사상 처음으로 가졌다. △ 그 회담은 엄청난 대성공이었다. △ 만일 내가 대통령에 당선되지 않고, 오바마가 그 자리에 계속 있었더라면 북한과 핵전쟁이 벌어져 수백만 명이 죽었을 것이다. △ 내가 북한에게 많은 걸 양보했다는 비판이 있는데, 난 아무 것도 양보한 게 없다.

그가 말하려는 핵심은 역대 어떤 대통령도 상상하지 못했던 북한과의 정상회담에서 엄청난 성공을 거둬, 그 덕분에 수백만 명의 목숨을 살려준 ‘생명의 은인’이므로, 당연히 그에 대한 ‘찬사와 존경’을 받아야 마땅하다는 것이다.

기자회견에서 트럼프는 최근 김정은에게서 받은 편지를 소개하며 이렇게 말했다. “이는 정말이지 획기적인 편지(a groundbreaking letter)다. 믿을 수 없을 정도다. 역사적인 편지다. 아름다운 걸작이다.” 그는 김정은 위원장(Chairman Kim)이란 존칭을 붙이며, “그 편지에서 북한이 그 일(비핵화)을 해내고 싶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표현했다. 하지만 트럼프는 일말의 불안감을 떨칠 수 없었던지, “내가 잘못 생각했는지 몰라도(I may be wrong)”란 단서를 달았다.

어차피 트럼프 대통령에게 북한 비핵화는 소기의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편리하게 써 먹을 수 있는 도구이자 수단에 불과하다. 북한의 핵무기를 모조리 찾아 없애기(CVID)가 애시 당초 불가능하다는 것도 지금쯤은 알고 있을 터다. 그런 트럼프에게 한국인들의 머리 위에 드리운 ‘핵 인질’의 공포나 ‘핵 그림자’의 두려움은 관심의 대상이 될 리 만무하다.

결론적으로, 원맨쇼가 끝나고 트럼프 행정부가 물러설 무렵이 되면, 북한 비핵화는 원점에서 다시 시작해야 할 것이다. 북한이 여전히 핵과 미사일을 개발하고 있으므로, 오히려 지금보다 한참 뒷걸음 칠 수도 있다.

현재 트럼프가 하는 행동은 핵협상의 성공보다 어떻게 하면 패배의 멍에를 뒤집어쓰지 않고 뒷걸음 칠 것인지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진 것 같다. 따라서 우리가 할 일은 미·북 협상에 대한 기대치를 한껏 낮추어 실망과 충격을 덜 받는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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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대학교 군사학과 교수(美 미주리 주립대 국제정치학박사)
국가보훈처 자문위원
미래군사학회 부회장, 국제정치학회 이사
前 駐제네바 군축담당관 겸 국방무관: 국제군축회의 정부대표
前 駐이라크(바그다드) 다국적군사령부(MNF-I) 한국군 협조단장
前 駐유엔대표부 정무참사관 겸 군사담당관
前 국방부 정책실 미국정책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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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분석] 뉴욕에서 사라진 북한 비핵화 시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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