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직업군인으로서의 삶은 보람과 고난의 길입니다. 취업난이 심해지면서 남성은 물론이고 여성들도 직업으로서의 군인을 선택하는 경우가 늘고 있습니다. 그 청춘들을 위해 '직업군인 사용설명서'를 작성합니다. 필자가 지난 1974년부터 썼던 17권의 일기장에 담았던 사적인 기록을 최대한 가감없이 전달합니다.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소장으로 전역하기까지 파란만장했던 필자의 경험을 통해 직업군인의 현실과 이상을 발견하길 기원합니다. <편집자 주>
한비자의 고사성어 '老馬之智(노마지지)'는 하찮은 것의 장점을 발견하는 지혜
(시큐리티팩트 = 김희철 안보전문기자)
춘추시대 오패(五覇)의 한 사람이었던 제(齊)나라 환공은 어느 해 봄, 명재상 관중(管仲)과 대부(大夫) 습붕(隰朋)을 대동하고 고죽국(孤竹國:하북성(河北城)내)을 정벌하였다. 그런데 전쟁이 의외로 길어지는 바람에 그해 겨울에야 끝이 났다. 그래서 혹한 속에 지름길을 찾아 귀국하다가 길을 잃고 말았다.
전군(全軍)이 진퇴양난(進退兩難)에 빠져 떨고 있을 때 관중이 말하였다. “이런 때 늙은 말의 지혜가 필요하다[老馬之智可用也(노마지지가용야)].” 즉시 늙은 말 한 마리를 풀어 놓았다. 그리고 전군이 그 뒤를 따라 행군한 지 얼마 안되어 큰길이 나타났다. 《한비자(韓非子)》〈세림(說林)〉 상편에 있는 이야기이다.
소대장으로 부임하고 이틀이 지나자 바로 중대 전술시험(ATT)이 있었다. 아직 소대원도 작전지역도 파악되지 않은 상태라 소대원들이 하는 행동을 그냥 쳐다보면서 따라다녔다.
그때 통제관으로 관찰을 하고 있던 연대 정보주임(소령)이 조용히 나를 불러냈다. “귀관은 지금 뭐하고 있나?”하며 거의 방관 수준으로 소대를 지휘하던 나를 재촉하였다.
연대 정보주임, 겸양의 미덕으로 방관하던 초임 소대장에게 자신의 경험담 들려줘
노선배의 조언 듣고 생각 고쳐먹고 적극적으로 지휘하며 깨달음 얻어
연대 정보주임은 자신의 경험담도 들려주었다. 과거 초급장교 시절 월남전에 참전했는데 부임 첫날 대대장이 지도 한 장을 주면서 “대원을 데리고 매복을 나가라고 해서 당황했지만 헬기를 타고 작전지역에 투입하여 작전을 지휘했다”고 했다.
"부임 첫날이라 잘모르겠지만 자네 소대원이니 방관하지 말고 자네가 직접 지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낮이 뜨거워지며 창피했다. 육사출신으로 기대를 많이 하고 있는데 부응을 못한 것이라 생각되니 후회스러웠다.
사실 출동준비나 군장검사 등은 생도시절 밥먹듯 했던 것이었지만 전입 온지 얼마 안되는 소대장이 아무 것도 모르면서 괜히 힘들게 설치는 것이 아닌가하는 오해를 받기 싫어서 취했던 행동이었다.
그러나 정보주임의 조언을 받고 나서 생각을 고쳐먹었다. 나름의 판단아래 적극적으로 부하들을 지휘하려고 노력했다.
생도시절 군사훈련과 생도대에서 경험했던 요소들이 자동적으로 튀어나왔다. 그리고 어정쩡하게 행동하는 소대원들에게는 호통을 쳤다. 일침을 놓고 지켜보던 연대 정보주임의 입가에 번지는 미소를 느낄 수 있었다.
전역을 앞둔 늙은 선배는 신임 소위에게 자신의 경험담을 통해 작은 교훈을 던져 주었다. 비록 월남전 참전과 군생활을 후회없이 보내왔지만, 경쟁에 뒤져 더 진급할 수는 없어 전역을 앞둔 선배가 물려준 老馬之智(노마지지)의 참 의미를 충분히 감사하며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 육군사관학교 졸업(1981년)
- 동국대학원 외교국방(석사)
- 한남대학교 정책학 (박사과정)
- 5군단사령부 작전참모
- 3군사령부 감찰참모
- 8군단사령부 참모장
- 육군훈련소 참모장
- 육군대학 교수부장
- 육군본부 정책실장
- 청와대 국가안보실 위기관리비서관
- 군인공제회 관리부문부이사장
- 동국대학원 외교국방(석사)
- 한남대학교 정책학 (박사과정)
- 5군단사령부 작전참모
- 3군사령부 감찰참모
- 8군단사령부 참모장
- 육군훈련소 참모장
- 육군대학 교수부장
- 육군본부 정책실장
- 청와대 국가안보실 위기관리비서관
- 군인공제회 관리부문부이사장
- (현)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 (현)시큐리티팩트 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