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18(목)
 
 
화랑의식.png▲ 육군사관학교 화랑의식에서 퍼레이드 평가하는 모습(김희철 사진제공)
 
 
직업군인으로서의 삶은 보람과 고난의 길입니다. 취업난이 심해지면서 남성은 물론이고 여성들도 직업으로서의 군인을 선택하는 경우가 늘고 있습니다. 그 청춘들을 위해 '직업군인 사용설명서'를 작성합니다. 필자가 지난 1974년부터 썼던 17권의 일기장에 담았던 사적인 기록을 최대한 가감없이 전달합니다.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소장으로 전역하기까지 파란만장했던 필자의 경험을 통해 직업군인의 현실과 이상을 발견하길 기원합니다.  <편집자 주>

(시큐리티팩트 = 김희철 안보전문기자)
 
마음을 녹이는 ‘마음은 언제나 태양’구호로 上下同欲者勝을..
 
손자병법 제3편 모공(謨攻)편에 ‘상하동욕자승(上下同欲者勝)’이란 말이 있다. '상관과 부하의 뜻이 같으면 승리한다' 뜻으로 지휘관을 중심으로 힘을 합쳐야 된다는 것으로 영어로는 A fog cannot be dispelled with a fan. (혼자힘으로 대세를 막을 수 없다) 또는 Many hands make light work. (많은 손이 가벼운 일을 만든다. 백짓장도 맞들면 낫다.)라고도 표현할 수 있다.
 
생도시절 매주 토요일에는 화랑연병장에서 전 생도들이 예복을 입고 화랑의식을 거행한다. 여단장생도의 훈시가 끝나면 중대별로 퍼레이드를 하고 훈육관들에 의해 오와 열과 대형을 평가하여 꼴찌한 중대는 토요일 외박을 박탈당하고 휴일동안 퍼레이드 연습을 했다.
 
그때 중대 선임하사관 생도를 했던 4학년 박종선생도(예비역 중장, 前육사교장, 인사사령관)는 후배들의 사기 앙양을 위해 본인이 ‘마음은 언제나’하고 선창을 하면 중대 전원은 ‘태양’하면서 퍼레이드의 피곤함을 풀었다.
 
구호는 상당한 마력을 지닌다. ‘마음은 언제나 태양’을 외치면 저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를 띄우게 되고 퍼레이드의 발걸음은 가벼워져 경쾌하게 앞으로 뻗어 나갈 수 있었다.
 
필자가 전방 소대장 근무시절에도 이 ‘마음은 언제나 태양!’구호는 잘 활용되었다. 지금도 소/중대원들을 만나면 헤어질 때 이 구호를 종종 외치곤 한다.
  
퍼레이드.png▲ 육군사관생도들의 퍼레이드중 강재구 동상에 경례하는 모습(김희철 사진제공)
 
 
 
통행금지에 걸려 꼼짝없이 긴긴 밤을 ..
 
당시 부대가 민가와 격리되어 일과가 끝나면 독신자 숙소에 모여 선후배 장교들과 저녁을 하며 기우리는 소주잔이 휴식의 전부였다. 모처럼 휴일에 당직 근무를 제외한 소대장들과 1시간 거리의 민가 마을로 걸어 나가서 저녁을 하며 회포를 풀 수 있는 날은 한달에 한번정도 가능했다.
 
그때는 소대 운영비가 별도로 없어서 소대장 봉급은 당연히 소대 운영비로 활용되었고 봉급날이 되면 중대 행정관이 노란 봉투에 봉급을 담아주면, 소대장은 건들어 보지도 못하고 소대 전령에게 주면서 사용하도록 했다.
 
그러다 보니 읍내 마을에 나가면 모든 것은 외상처리가 가능했다. 물론 그 외상은 중대 행정관이 모두 지불하고 노란 봉급봉투에 외상을 모두 빨간 글씨로 적은 후 제외하고 전해주었다.
 
소대장 부임하고 처음 마을에 내려온 날 웃지 못 할 에피소드가 벌어졌다. 저녁을 먹고 인접 맥주집에 들어가 맥주를 시키니 주인 아줌마가 손가락으로 하나, 둘을 표시하는 것이었다. 선배 소대장은 손가락 하나를 표시하자 그것은 한박스였다. 세명이 한박스를 다마셔야 했는데 그 양이 너무도 많아서 걱정이 됐지만 잠시 후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어느 덧 자정이 다되자 식당 주인은 가게문을 닫았다. 내륙인 충청북도를 제외한 전방지역과 해안을 낀 관할 도지역은 바로 통행금지가 시행되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자정이 넘어 밖에 나가면 바로 헌병들이 체포하여 구금을 했다. 민간인들도 모두 집안으로 들어가 마을 거리는 쥐새끼 하나 없는 침묵의 암흑으로 변했고 식당에 들어가 있던 우리도 조용하게 술만 마셔야 했다.
 
결국 맥주 한박스는 주인아줌마의 의도대로 두박스가 되었다.
 
새벽 4시가 되자 통금이 풀렸다.

아직 깜깜한 거리이지만 부지런한 주민들은 그날 농사와 사업을 위해 분주하게 다니는 모습이 하나 둘 씩 늘어갔다. 우리는 밤을 꼬박 새우며 맥주로 배를 채우고 군화끈을 다시 묶었다. 아침 점호전에 중대로 복귀해야 하기 때문이다.
 
마을 입구에 도착하자 ‘진중버스’라고 불리는 신기한 차량이 기다리고 있었고, 가족이 마을에 있어 퇴근했던 중대장과 선임하사관들을 만날 수 있었다. 진중버스는 차량 뒷편 짐칸 입구에 계단을 부착한 트럭 이었다.
 
 

밤새 마신 술의 해독은 아침 점호 후 뜀걸음으로 ..
 
뜀걸음.png▲ 눈 덮힌 산악에서 극한 뜀걸음 훈련 중인 모습 (김희철 그림)
 
 
중대에 도착하자 아침 점호가 진행 중이었고 애국가와 체조를 끝낸 후에는 중대장과 선임하사관을 포함 한 간부들은 해당 소대 앞에서 아침 뜀걸음에 동참했다.

역시 젊음이었다. 밤새 술을 마신 덕택에 선배 소대장은 조금 뛰다가 뒤로 빠졌다. 학군 동기들과 필자는 참아 열외 할 수가 없어 같이 뛰었다. 가쁜 호흡 덕택에 술이 깨는 것을 느낄 수 있었고 소대원들이 외치는 ‘마음은 언제나 태양’구호에 놀란 태양이 산능선 위로 고개를 내밀며 또하루의 일과 시작되었다.
 
어둔 밤을 대낮같이, 산악을 평지같이... 마음은 언제나 태양 ..!
 
김희철.png
 
- 육군사관학교 졸업(1981년)
- 동국대학원 외교국방(석사)
- 한남대학교 정책학 (박사과정)
- 5군단사령부 작전참모
- 3군사령부 감찰참모
- 8군단사령부 참모장
- 육군훈련소 참모장
- 육군대학 교수부장
- 육군본부 정책실장
- 청와대 국가안보실 위기관리비서관
- 군인공제회 관리부문부이사장
- (현)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 (현)시큐리티팩트 발행인
- (현)한국LPG진흥협회 회장
 
1.주요 저서 및 연구 
- ‘충북지역전사’, 우리문화사, 2000.2월(1500부 발간)
- ‘동서독 통일과정에서의 군통합에 관한 연구’, 동국대, 1995.6월
- ‘지고도 이긴 전쟁’, 합참지, 2002. 1월
- ‘ATCIS는 이 시대 영관장교의 개인화기’, 육군지, 2010.9월
- ‘소통과 창의는 전승의 지름길’, 국방저널, 2010.11월
- ‘비겁한 평화는 없다’, 알에이치코리아, 2016.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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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 (22) ‘마음은 언제나 태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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