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임은 심리학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마음의 창’을 의미한다. ‘프레임’의 저자인 최인철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어떤 프레임이 활성화되면 그 프레임은 특정한 방향으로 세상을 보도록 우리의 마음을 준비시킨다”고 말한다. 따라서 세상을 어떤 프레임으로 접근하느냐에 따라 얻어내는 결과물은 결정적으로 달라진다. 이제 방위산업도 비리 프레임에서 벗어나 새로운 변화를 추구해야 할 때가 도래했다. 이에 ‘방산비리 프레임’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을 모색해 보는 기획 시리즈를 시작한다. <편집자 주>
이재용 부회장, 삼성테크윈과 삼성탈레스를 한화에 매각하고 방위산업에서 손 떼
[시큐리티팩트=김한경 안보전문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2015년 7월 삼성테크윈과 삼성탈레스를 한화그룹에 매각하고 방위산업에서 완전히 손을 뗐다. 그는 당시 방위산업을 더 이상 유지할 필요가 없는 사업 영역으로 판단한 것 같다.
방산업체를 인수한 한화그룹이 한 때 방산 부문에서 수익성이 좋아지자 이재용 부회장이 실수한 것 아니냐는 평가도 일부 있었다. 하지만 그 이후 방산업계에서 벌어진 상황을 보면 이재용 부회장의 판단은 옳았던 것으로 보인다.
이 과정에서 이 부회장이 오히려 힘들었던 점은 방산업체 매각에 따른 경제적 손익을 따지는 것보다 이병철 선대 회장의 유지를 계속 받들지 못하는 상황이었을 것이다.
고 이병철 회장은 ‘사업보국(事業報國)’ 이념에 따라 1977년 삼성정밀공업을 창립했고, 1987년 ‘삼성항공산업주식회사’를 거쳐 2000년 ‘삼성테크윈’으로 사명을 바꾸면서 각종 항공기용 엔진, 광학카메라, K-9 자주포 등 첨단 방산제품을 생산해 국가안보를 지키는데 일조해왔다.
이 회장을 여러 해 모셨던 운전기사는 “우리 회장님은 삼성보다 나라를 더 걱정하신 분”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런 창업주를 가진 ‘삼성그룹’이 손자가 실질적인 그룹 총수가 되면서 방위산업을 포기했다. 그 이면에 담긴 진짜 이유가 과연 무엇일까?
이윤율 3∼5%에 불과한 고비용·저효율 방위산업은 삼성그룹에 매력 없어
방위산업은 실제 이윤율이 3∼5%에 불과한 고비용·저효율 산업이어서 반도체 사업에서 50% 이상의 이윤율을 내기도 하는 삼성그룹의 입장에서는 거의 매력이 없는 분야다.
방산물자는 시장이 가격을 결정하는 일반 제품과 달리 발생한 비용을 기준으로 원가가 책정되고 방위사업법이 보장하는 9% 이윤을 얹어 가격이 결정된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각종 불합리한 제도로 발생하는 손실을 업체가 떠안다보니 이윤율이 떨어진다”고 주장한다.
게다가 “방위산업은 북한의 위협이 부각되는 방향에 따라 진행 중인 사업을 조정하는 사례가 빈번하여 삼성그룹처럼 철저한 계획 하에 사업을 관리하는 기업으로서는 미래 설계에 어려움이 많았을 것”이라고 한국방위산업학회 채우석 회장은 말한다.
또한 첨단 기술을 개발하는 과정은 도전과 실패를 반복하며 수정·보완하는 과정에서 기술력이 발전함에도 개발에 실패하면 페널티를 물리거나 기업의 잘못으로 몰아가기 때문에 첨단기술 개발에 도전하기가 쉽지 않아 글로벌 기술기업이 탄생하기 힘든 상황이다.
사업관리 어렵고 낙후된 방산제도로 인해 글로벌 기술기업 탄생 힘들어
다행이 개발에 성공해 전력화가 되더라도 미국처럼 단계적인 성능 개량을 거의 하지 않아 기술력을 쌓을 기회가 사라지고 추가 물량도 없어 생산 라인 유지가 힘들어진다. 세계 최고를 지향하는 삼성이 낙후된 방산제도의 벽 때문에 얼마나 숨이 막혔을까?
더욱이 정부는 대량생산이 가능한 민간분야 입찰에 적용할 ‘최저가 낙찰제’를 방산물자에 도입했다. 이런 제도 하에서 기업이 손실을 줄이려면 생산 제품이 부실해질 수밖에 없다. 결국 잘못된 제도가 기업의 비리를 조장하는 상황이지만, 모든 책임은 오롯이 기업이 감당할 몫으로 남는다.
일각에서는 이 같은 이유들이 삼성그룹으로 하여금 방위산업을 포기하게 만든 것 같다는 의견이 나온다. 그러나 단지 이윤율이 적고 사업관리 및 기술개발의 어려움, 제도상 문제 등의 이유만으로 선대 회장의 유지를 받들지 못하는 결정을 내리진 않았을 것이란 견해도 제기된다.
‘무리한’ 방산비리 수사로 삼성의 ‘이미지’가 얼룩지는 상황 용납 어려워
이와 관련, 일부 방산 전문가들은 ‘무리한’ 방산비리 수사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생각한다. 그들은 “이미지 관리에 매년 수천억 원씩 투자하고 윤리 경영을 실시하는 삼성그룹이 방산 비리의 대상처럼 잘못 인식되는 것을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다.
사실 민수제품에서 평균 10% 이상의 이윤율을 기록하며 다양한 사업 분야에 진출한 세계적 기업인 삼성그룹이 방산업체를 갖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비리 집단처럼 비춰진다면 방위산업 분야에 굳이 버티고 있을 이유가 없다.
더구나 방산업체는 매년 말 방산 원가를 방위사업청에 의무적으로 신고하고, 회계자료 및 재무제표 등 사업기밀 자료도 제출해야 한다. 방위사업청은 이 자료들을 검토해 허위사실이 발견되면 부정당 업체로 지정해 불이익을 주고 투입 금액도 환수한다. 게다가 이 자료들은 감사원이 다시 점검하고 국정원, 기무사 등 기관에서도 수시로 감사를 할 수 있다.
따라서 국내업체들이 의도적으로 비리를 저지른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상황이다. 반면 해외에서 무기체계를 도입할 경우 방위사업청은 원가가 얼마인지 알아낼 도리가 없다. 우리가 필요해서 구매하는 것이니 한국 정부가 해외기업을 통제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오히려 이들에게 끌려 다닐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언론의 ‘무분별한’ 방산비리 보도로 ‘비리 프레임’ 만들어져 포기 결정한 듯
해외에서 도입하는 무기체계의 원가를 알 수 없으니 로비를 위해 막대한 자금이 풀릴 수 있고, 이 자금은 정·관계 등으로 흘러들어가게 된다. 그럼에도 이 과정에서 문제가 생기면 언론은 ‘해외 무기체계 도입 비리’가 아니라 ‘방산 비리’로 무분별하게 보도하고 있어 국내 방산업체들만 졸지에 비리 집단으로 전락하고 만다.
결과적으로 ‘무리한’ 방산비리 수사와 ‘무분별한’ 언론 보도는 방위사업의 근원적 문제에는 접근도 못한 채, 국내 방산업체에 대한 국민적 인식을 나쁘게 만들고 방산수출 시장에서 이미지를 실추시키는 ‘방산비리 프레임’을 만들었다. 그 결과 삼성그룹마저도 비리 프레임에서 벗어나기 위해 ‘애국심’보다 회사의 ‘이미지’를 선택하는 상황이 된 것 같다.
한국의 방위산업을 시작하고 육성해온 박정희 대통령은 문제가 발생하면 조용하면서도 단호하게 일벌백계하는 방식을 택했고, 이를 위해 국방부 산하에 ‘특명검열단’을 만들었다. 박 대통령이 왜 정부의 공식기구인 감사원·검찰 등을 이용하지 않고 이렇게 방위산업을 관리 감독했을까? 그 이유를 현 시점에서 되돌아 봐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