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일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에서 개최된 한국방위산업학회 주관 ‘방위사업청장 초청 조찬 포럼’에서 왕정홍 청장의 강연이 끝난 후 참석자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김한경 기자]
채우석 방산학회장, “정부가 원가 업무에서 손 떼는 방안 모색해야” 주장
왕 청장, 개인 의견 전제로 “회계 법인에 원가 업무 맡길 수도 있어” 밝혀
[시큐리티팩트=김한경 안보전문기자] 한국방위산업학회는 16일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에서 왕정홍 방위사업청장 초청 조찬 포럼을 개최했다. 왕 청장은 ‘업체, 현장 중심 방산업계 경영개선 방안’이란 주제로 부임 이후 추진해온 제도 개선 내용을 설명했다.
왕 청장은 조찬 강연에서 “부임 후 최초로 업계와 소통하는 자리가 있었는데, 대기업조차 자신이 처한 문제를 조심스럽게 개진했고, 중소기업은 아예 자기 얘기를 꺼내지 못하는 모습을 보았다”면서 “이래서는 방위산업이 발전할 수 없다고 느껴 ‘다파고’ 행사를 기획하게 됐다”고 말했다.
수출업체 방문 상담을 의미하는 ‘다파고(DAPA-GO)’는 방사청(DAPA)이 산업현장에 직접 찾아가(GO) 업계 애로사항에 속 시원히 답하고, 우리 기업이 해외에서 무엇이든 다 팔고 다닐 수 있게 지원하겠다는 중의적 의미를 가진 용어다.
그는 “다파고 행사에 가면 업체가 부담을 느끼지 않도록 가급적 편안한 분위기를 만든다”고 했다. 그러면 행사가 끝나갈 무렵 업체 대표들이 속에 있는 얘기를 털어놓는다는 것이다. 왕 청장은 “당장 해결은 어렵겠지만 업체의 어려움이 무엇인지 정확히 파악하고 청장이 직접 어떻게 하겠다는 답을 주는 소통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45년 간 아무도 손대지 못한 원가 문제의 해답을 찾기 위해 노력 중”이라면서 “방사청과 업체가 같이 고민해야 함으로 업체 인원(5명)도 연구 T/F에 포함시켰다”며 “좋은 의견이 있으면 개진해 달라”고 주문했다. 금년도 상반기 내에 올바른 방법을 찾아서 하반기에 시범 운용한 후 확실히 개선하겠다는 의지도 표명했다.
방위산업의 일자리 창출과 관련해서도 왕 청장은 “업체 물량이 언제쯤 소진돼 생산라인이 멈출 수 있다는 기초 현황조사도 그동안 이뤄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현황이 있어야 향후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방사청이 추가 물량 확보 등을 고민할 것 아니냐”며 “업체도 방사청의 현황조사에 적극 호응해 달라”고 당부했다.
질문 시간에 채우석 방산학회장은 “원가 업무에서 정부가 완전히 손을 떼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말하자, 왕 청장은 “우리는 110명이 원가업무를 하는데 이스라엘은 7명이 필요한 것만 찾아 점검하는 식”이라며, 개인 의견을 전제로 “110명이 110억 정도 쓰는데 이 정도 돈이면 회계 법인에 업무를 맡길 수도 있다”며 T/F에서 검토하겠다는 취지로 답했다.
업무 파악 후 방산업계와 원활히 소통하며 제기된 이슈 적극 해결해 호평
이어 김용환 KIST 안보기술개발단장이 “과기정통부와 산자부에 연구개발 예산이 많은데 방사청이 협력을 강화해 사용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얘기하자, 왕 청장은 “국방 연구개발 예산이 많이 부족해 과기정통부와 산자부 예산을 끌어오기 위해 노력 중이며 조만간 과기정통부 차관을 만날 예정”이라고 말했다.
왕 청장의 강연과 답변을 들은 포럼 참석자들은 이구동성으로 “왕 청장이 과거 누구도 하지 못한 일들을 하고 있다”면서 “현재 추진 중인 일들이 제대로 자리 잡으려면 관련 법 제·개정이 관건인데, 시간이 걸리니 왕 청장이 현 정부 내내 청장을 맡아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왕 청장은 지난해 8월 감사원 사무총장을 마치고 방사청장에 임명됐다. 방위사업에 문외한이었지만 빠른 시간 내에 업무를 파악한 후 방산업계와 원활히 소통하면서 제기된 이슈들을 적극적으로 해결해 나가고 있어 호평을 얻고 있다.
먼저 지난해 11월 19일 수출기업의 애로사항을 신속히 도와주는 원스톱 서비스 창구인 ‘방산수출진흥센터’를 개설했다. 그리고 “청장부터 센터의 일원이 돼 매주 수출기업을 직접 찾아가 상담을 실시하고, 현장의 어려움을 최우선적으로 해결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추진 중인 ‘다파고’ 행사는 현재까지 5개월 간 19개 업체를 대상으로 실시됐다. 이 행사에서 업체가 제기한 이슈는 7일 이내로 검토 의견과 제도개선 추진계획을 답하게 되어 있다. 따라서 현장에서 청장이 바로 해결책을 내놓거나 면밀히 검토해 1주 이내로 답을 주되 법령을 바꿔야 하는 이슈들은 빠른 시간 내에 검토하여 제·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달 15일 왕 청장은 16차 다파고 행사 장소인 경남 창원시 S&T중공업을 방문했다. 이날 안규백 국회 국방위원장이 주최한 ‘방위산업 발전방향 세미나’가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렸고, 국방부장관과 육·해·공군참모총장들도 세미나에 참석했다. 장관에 이어 계획된 방사청장의 축사는 차장이 대독했다.
왕 청장은 의례적인 세미나 참석보다는 자신이 직접 수출업체의 애로사항을 듣고 해결해 주는 다파고 행사가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한 것으로 보인다. 이런 관심이 바탕이 되어 전례가 없던 초스피드의 원스톱 서비스가 만들어졌다.
금년 들어 다양한 혁신방안 계속 발표해 변화 조짐...전시행정 될 가능성도
왕 청장은 감사원에서만 30여년 가까이 근무해 방위사업이 직면한 문제의 본질을 빠른 시간 내에 파악했고, 공무원 조직의 속성을 잘 알아 업무 추진력도 뛰어나다는 평을 듣는다. 그는 부임 이후 방산업체 CEO 간담회, 방산정책 심포지움 및 세미나 등을 통해 여러 문제들을 식별한 후 직접 업체를 찾아 현장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면밀히 진단했다.
그 결과 짧은 시간 내에 상당한 제도적 검토가 이루어졌다. 방위사업청은 금년 들어 방위산업 발전을 도모하는 다양한 혁신방안들을 계속 발표하고 있다. 왕 청장 부임 이전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변화의 조짐이 서서히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지난해 8월 왕 청장이 부임할 당시만 해도 방산업계의 분위기는 싸늘했다. 장기간 지속된 방산비리 수사로 방산업계와 방사청이 모두 위축된 상황에서 감사원 사무총장 출신이 방사청장에 임명됐기 때문이다. 더구나 왕 청장은 취임 일성으로 방위사업의 투명성을 강조해 우려의 시선은 더욱 커졌다.
그러나 방산비리 수사 여파와 수출 부진으로 지난해 말 방산업계 실적이 적자로 돌아서자 이대로 방위산업을 방치하면 안 된다는 위기감이 대두되면서 방위산업을 살려야 한다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이런 상황을 정확히 인식한 왕 청장은 지난해 말부터 업계가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두 팔을 걷어 붙였다.
방위사업에 밝은 한 전문가는 “왕 청장은 현 정부 실세인데다 감사원 출신으로 공무원 조직의 속성을 잘 알고 있어 업무 추진이 힘을 받는다”면서 “박근혜 정부 당시 장명진 청장은 연구원 출신이라서 업무 추진에 한계가 많았고, 전임 전제국 청장은 공무원 조직을 움직일 힘이 없었다”고 언급했다.
한편, 일각에서는 “지금까지 왕 청장이 잘 하고 있지만 결국은 관련 법규가 통과되지 않으면 중요한 것들은 하나도 제대로 할 수 없다”면서 “법 제·개정이 국회에서 막힐 경우 전시행정으로 흐를 가능성도 있다”며 우려를 표명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