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MZ수색과 매복작전, 70년간 보존된 '천연의 보고'를 만끽하는 혜택
침투하는 적을 색출/격멸하여 영토를 지키는 '무거운 임무'
'적'으로 오인한 산짐승과 치열한 신경전으로 긴장했던 추억
고통스러운 악천후, 지휘관의 리더십 통해 '전화위복 (轉禍爲福)' 가능
[시큐리티팩트=김희철 칼럼니스트]
인적이 끊어진 DMZ(비무장지대)를 종횡무진 누빌 수 있는 특권은 세계적 권력자들에게도 없다. 오직 필자가 소속된 부대와 같은 DMZ작전부대에게만 부여되어 있다.
DMZ수색과 매복작전을 담당하는 부대원들은 침투하는 적을 색출하여 격멸하고 대한민국의 영토를 지키는 임무도 있지만 약 70년간 보존되어 온 천연의 보고를 마음껏 누리는 혜택을 갖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소대원들은 항상 발톱을 숨기고 걸려들기만 기다리고 있는 지뢰폭발의 위험과 언제 출몰할지 예측 불가능한 침투조의 기습적인 도발에 대비해야 한다. 이러한 리스크는 일반적인 사고와 달리 자칫 생명을 앗아갈 수 있다. DMZ는 과거와 현재에도 많은 전우들이 발목이 잘리는 등의 부상을 입거나 치명상으로 순직하며 생명을 걸고 지켜온 땅, 천연의 보고이다.
한 겨울이 되면 온 천지가 하이얀 설국과 동토의 땅이 된다. 당시에는 매복작전 투입전 GOP통문지역의 온도가 영하 10도 이하가 되면 작전이 취소가 되었다.
그날도 오후, 눈보라 치고 매서운 바람은 소매 끝을 파고들어 문밖을 나갈 수 없을 지경이었는데도 온도는 영하 7도였다. 할 수 없이 야간 매복작전을 위해 작전조는 오후에 취침을 하고 투입준비를 했다.
우선 동상을 대비하여 전투화 대신 방한화를 준비했고 그 안에는 두꺼운 양말을 두겹씩 신었다. 전투복안에 내복을 껴입고 방한복을 입은 모습은 완전히 눈사람이다. 목도리에 귀마개까지 하고 철모를 쓰니 고개 돌리기도 힘들었다.
그래도 주둔지에서 투입전 즉각조치 사격을 하고 군장검사 후 5/4톤 트럭을 타고 GOP통문으로 향했다. 이동간 노출된 트럭위에서 매서운 겨울바람이 옷사이를 스며들어올 때에는 아무리 두껍게 입은 방한복도 소용이 없었고 대원들의 콧 밑에는 새하얗게 고드름과 서리가 맺혔다.
일몰이 되고 사방이 깜깜해질 무렵, GOP통문에 도착했다. 군장검사를 위해 방한장갑을 벗고 소총 안전검사를 할 때에는 손가락이 떨어져나가는 통증을 느낄 정도였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기대감에 온도를 체크하니 영하 9도였다. 삭풍까지 몰아치는 이 혹한에 에누리 없이 작전에 투입해야 할 기온이었다.
GOP작전 대대장에게 인원장비와 군장검사 결과를 전화로 보고하려고 초소로 들어가는데 그 날 따라 격려하려고 현장에서 대기중이던 대대장 송영근 중령(훗날 기무사령관, 19대 국회의원 역임)이 초소에서 나오며 작전대원들에게 뜨거운 차를 한잔씩 나누어 주었다. 혹한에 생고생을 불평했던 대원들은 대대장의 기습적인 격려에 오히려 감동해서 이번 야간작전에서는 침투한 적을 반드시 잡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드디어 , GOP통문이 열리고 대원들은 두꺼운 동계복장 때문에 끼우뚱거리며 DMZ안에 발을 디뎠다. GOP통문이 닫히는 소리와 함께 대대장과 통문 소대장의 걱정어린 눈빛을 뒤로한 채 한걸음 한걸음 앞으로 나아갔다.
너무도 조용한 침묵 속에 인적이 끊어진 눈 덮힌 DMZ는 우리 작전조를 반겼지만 시끄럽게 떠들어대는 대남방송과 ‘사각 사각’하는 눈 밟는 소리만이 혹한과 친구가 되었다. 약 1시간 가까이 이동하는 동안 방한복 속에서는 땀이 솟기 시작했고 결국 매복진지에 도착 했을 때는 이마에도 땀이 송송 맺혔다.
진지 내의 눈을 치우고 크레모아를 적 침투 방향으로 설치하고 인접 진지와 신호줄을 연결한 뒤, 수류탄을 꺼내 뚜껑을 개봉하여 바로 던질 수 있게 준비를 했다. 깔판을 깔고 진지에 앉으니 바로 이동간 흘렸던 땀이 식으면서 혹한이 옷자락을 스며들기 시작했다.
신기한 일이었다. 앉아있는 무릅에서 열 소모가 그렇게 많은 줄은 전에는 몰랐었다. 땀이 식으면 추위를 느낄 때 무릅덮개로 허벅지와 무릅을 덮으니 꽤나 추위가 반감되었다. 군장 속에 있던 핫패드를 꺼내 배와 등에 붙히고 혹한과 싸우기 시작했다.
좌우에 있는 진지에 신호줄을 당겨 이상유무 확인했다. 온 세상이 하이얀 눈이 덮힌 한 겨울에 몰아치는 삭풍마저 괴롭히지만, 모두들 잘 견디며 두 눈을 부릅뜨고 혹시 침투하는 적을 색출하여 처단하기 위해 얼음 같은 소총의 방아쇠를 당길 수 있도록 얼어가는 손가락을 계속 꼼지락대며 밤을 지새웠다.
침투로만 뜷어지게 바라보다가 고개를 들어보니 삼천평 하늘에는 수많은 별들이 쏟아져 내리고 있었고 춤추는 별들과 박자를 맞추듯 대남방송에서는 노래가 흘러나온다. 지상에선 새하얀 눈꽃들이 하늘에는 반짝이는 별들이 남과 북의 심리전 방송에 장단을 맞추는 통에 추위도 졸음도 적을 잡아야 한다는 긴장감도 잠시 사라지며 시간은 흘러가고 있었다.
그때 우측 진지에서 신호가 왔다. 전방에 미상 물체가 식별되었다. 숨을 죽이며 전방을 주시했다. 시간이 쏜살같이 지나가며 몇 분이 흘렀다. 등에는 아까 이동하며 흘린 땀이 아니라 식은 땀이 흘러내렸다. 신호줄은 내용 전파가 한계가 있다. 옆 진지에서 판단을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할 수 없이 소대장이 직접 가겠다는 신호를 보내고 은밀하게 옆 진지로 이동했다.
소대원이 지목한 곳에 필자가 보기에도 미상 물체가 있는 것 같았다. 그런데 미동도 없다. 만약 그대로 사격을 하면 매복 위치가 노출되어 오히려 침투한 적에게 표적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민하다가 미동이 없는 것도 이상했지만 산짐승일 수도 있다는 판단을 했다. 그래서 옆에 있는 돌을 들어 그곳을 향해 던지고 바로 사격자세를 취했다. 만약 적이면 바로 사격하려고 했는데 돌에 놀라 이동하는 모습을 확인하니 역시 산짐승이었다.
발견해 보고한 대원에게 졸지 않고 근무를 잘했다는 칭찬을 하고 진지에 돌아오니 식은 땀이 추위를 더 압박해 왔다. 가장 심한 것은 발이었다. 그때 즈음이면 완전 동태가 된 것 같았다. 식은 땀 때문에 두꺼운 방한화도 소용이 없었다.
어느덧 추워와 싸우는 시간의 끝이 다가왔다. 일출 한시간 전 즈음 무전기로 대대 상황실에서 신호가 왔다. 철수신호이다. 옆 진지로 신호를 보냈다.
철수 준비도 꽤 복잡하다. 경계병을 배치하고 크레모아와 신호줄을 회수했다. 진지 깔판과 기타 흔적들을 모두 제거하고 인원 장비를 체크했다. 통문으로 복귀하는 발걸음은 가볍다. 비록 침투하는 적이 없어 성과는 없었지만 대원 모두가 무사한 것에 다행이면서도 보람을 느꼈다.
빨리 주둔지로 복귀해서 뜨거운 물에 목욕을 하고 싶은 심정이다. 헌데 GOP 통문에서 문제가 생겼다. 통문 소대장이 아직 도착을 안했다. 대원들은 신경이 날카로워졌다. 통문 앞에서 한시간 가까이 기다리고야 통과했고 통문 소대장은 늦게 나와 미안하다는 말을 연발했다.
땅거미가 걷히고 동녁이 밝아올 무렵 5/4톤 트럭을 타고 복귀할 때에는 기온이 영하 20도 가까이 됐다. 코밑에 달린 고드름도 아랑곳 없이 마음은 포근하다. 삭풍의 혹한 속에 동상의 아픔도 극복하고 임무를 완수한 보람 때문일 것이다.
한 여름 매복작전시에도 갑작스런 소나기와 모기들이 대원들을 괴롭힌다. 하지만 적도 느끼는 것은 마찬가지 상황이다. 이러한 장애물을 아군에게 유리한 상황으로 만드는 것은 지휘관의 리더십이다.
악천후와 기타 리스크도 잘만 이용하면 오히려 성공요인으로 전화위복 (轉禍爲福)시킬 수 있는 조용한 진리를 깨닫게 하는 DMZ매복 작전이었고 '그 날' 하루도 무사히 또 지나갔다.
주요 저서 : 충북지역전사(우리문화사, 2000), 비겁한 평화는 없다(알에이치코리아,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