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18(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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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대전투단 훈련(RCT) 평가시 수색정찰하는 중대원들 [국방부 자료사진]
줄담배 연기 속에 허무하게 떠나보낸 전우에 대한 안타까움…

[시큐리티팩트=김희철 칼럼니스트]

1981년 늦가을, 겨울 삭풍은 아니지만 산골바람이 옷깃을 여미게 하는 추위가 기승을 부릴 때 중대본부 화목난로 앞에 앉아 계속해서 줄담배를 피워대는 중대장의 손은 떨고 있었다.

지난밤 연대전투훈련 평가(RCT) 준비를 위해 물품을 구입하러 외출 나갔던 김하사가 싸늘한 시체가 되어 돌아왔다.

그날 오후에 평가준비 최종 군장검사가 연대장 주관으로 계획되어 있었으나 다음 대대로 조정되었고, 대대장에게는 사고 수습에 우선하라는 지시가 떨어 졌다.

훈련 평가를 위해서는 사소한 준비가 모두 필요했다. 특히 야간방어를 위해 견인 및 신호줄과 후레쉬 야간 필터, 건전지, 위장크림 등은 보급이 되지만 부족해서 필요수요를 채우기 위해서는 추가 구입이 필요했다.

어제 늦은 오후, 김하사는 내게 와서 우리 소대가 필요한 물품 목록을 달라고 했고 분대장들과 상의해서 군장검사시 추가로 필요한 목록을 넘겨주었다. 그는 목록을 받고 중대행보관이 바쁘기 때문에 자기가 대신 다녀온다며 뜻밖의 외출을 즐거워 했다.

부대에서 한시간 정도 내려가면 주변의 부대원들을 위한 구멍가게가 있다. 사실 없는 것이 없는 만물상이었다. 이미 RCT가 있다는 것을 알고 필요한 품목들을 이미 준비해 놓고 있었다. 물론 간부들이 퇴근하다가 가게에 들려 간단한 안주와 소주 한잔을 즐길 수 있는 휴식처이기도 했다.

물품을 모두 구입한 김하사는 그냥 복귀하기가 서운했는지 소주 한잔을 했고,내무반에 남아있는 동료들 생각에 소주 댓병을 추가로 구입해 등에 지고 부대로 복귀하고 있었다.

어느덧 야간 점호 시간이 되어도 김하사가 복귀를 안하자 대대에서는 걱정이되어 교육관에게 짚차를 내주어 찾아보라고 보냈다.

한편 김하사는 취기가 오린 채 복귀하다가 부대 쪽에서 짚차가 내려오자 음주를 들킬까봐 도로 옆 숲으로 숨었는데 마침 개울물이 흐르고 있어 몸을 숙여 물을 마실려다가 그대로 발목도 차지않는 개울에 얼굴을 박고 정신을 잃었다.

김하사의 복귀가 늦어지자 결국 전대대원을 기상시켜 주변 수색을 나갔다. 헌데 부대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도로가 옆 개울에 그대로 얼굴을 박고 죽어 있는 김하사를 발견했다.

군에서 각개병사들은 거의 매달 상급부대로부터 평가를 받는다. 우선 분대평가가 매분기에 있고 소대, 중대, 연대전술훈련 평가도 매년 있으며, 사단 및 군단급 부대는 지휘관 재임기간 치루는 전투지휘검열로 소대원들은 매번 시험 평가에 시달린다.

게다가 큰 훈련을 앞두고는 사전 예행연습 및 숙달과 준비사열이 더 피로를 가중시킨다. 이번에도 연대장 재임 기간 한번 있는 평가를 잘 받기 위해 준비하는 과정에서 생긴 불상사였다. 

소식을 듣고 달려온 가족 중에는 신혼의 단꿈을 꾸던 아내와 갓 태어난 아기도 있었다. 울고불고하는 가족들 앞에서 중대장은 눈물만 흘리고 있었다.

하지만 군대는 그대로 흘러간다. 직업군인으로 한 개인이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순간의 음주로 발생한 불행은 안타깝지만 조직 전체는 부여된 임무를 계속 수행해야 한다.

대의멸친(大義滅親)이라고 했던가? 장례를 치루고 전우의 허무한 죽음도 뒤로한 채, 연대전술훈련 평가는 시작되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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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본부 정책실장(2011년 소장진급), 청와대 국가안보실 위기관리비서관(2013년 전역), 군인공제회 관리부문 부이사장(2014~‘17년), 현재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한국열린사이버대학 교수

주요 저서 : 충북지역전사(우리문화사, 2000), 비겁한 평화는 없다(알에이치코리아,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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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24) 허무하게 떠나보낸 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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