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2-22(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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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좌측 12월14일 흥남항에서 철수 대기중인 군수물자와 미 3, 7사단을 주력으로 배치한 흥남방어선, 우측 24일 철수직전 90상륙지원단 ‘비고르’호와 폭파팀에 의해 흥남항의 모든 군수물자 및 항구를 폭파시키는 장면 [자료제공=생명의 항해]

 

흥남에 미 3/7사단과 국군 수도사단/해병1연대, 방어선 구축하고 적과 대치

중공군은 북한군을 앞세우고 연합전선을 펼치며 대규모 공세

북한 피난민들은 흥남항 주변으로 몰려들어, 유엔군 철수 조차도 지연

[시큐리티팩트=김희철 칼럼니스트] 한국전에서 전세를 뒤엎는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시킨 주력부대인 미 해병 1사단과 육군 7사단은 영하 30도인 극한지 장진호 전투에서 미군 역사상 전무후무한 대패 참패를 겪었다.

장진호 전투의 주력부대들이 흥남 집결지로 철수완료한 12월 11일, 맥아더 유엔사령관은 흥남항 인근의 연포비행장에서 10군단장 알몬드 소장이 수립한 ‘흥남철수 작전계획’을 승인했다. 이에 따라 그동안 전투에서 가장 피해를 많이 본 미 해병 1사단과 7사단 31연대전투단, 영국 해병 41코만도가 가장 먼저인 15일 흥남항을 떠났다.

한편 중공군은 9병단의 20, 27군 예하 5개 사단 규모로 함흥 북쪽에서 공격했다. 북쪽은 동·서쪽 평야지대에 비해 산악지대여서 유엔군의 공중폭격과 함포사격을 피해 숨기가 용이했기 때문이었다. 반면에 평야지대인 함흥 동쪽은 북한 인민군들이 맡아 돌파하고자 간헐적으로 공격을 시도하고 있었다.

이를 막아내고 철수작전을 보장하기위한 흥남 교두보 선에는 위의 상황도와 같이 미 3, 7사단과 국군 수도사단, 해병1연대(-)가 방어선을 구축하고 적과 대치하고 있었다. 이러한 엄호를 받으며 연포비행장에서는 12월 14일부터 항공기를 이용하여 부상자 228명과 기타 인원 3,891명, 탄약 772.2톤과 차량 439톤을 포함한 약 2,100톤의 화물을 17일까지 393회 걸친 출격으로 수송하였다.

흥남항 주변의 해상에는 소련군이 설치한 것으로 추정되는 세계 해전사상 가장 많은 기뢰가 설치되어 있었다. 최종적으로 흥남항의 모든 군수물자와 항구를 폭파시켰던 제 90상륙지원단의 소해전단에서 흥남항 남·북부 양쪽 16km해협을 이용하여 선박 출입이 가능하도록 기뢰제거 작업을 하였고, 이곳에 함포지원사격이 가능하도록 순양함과 구축함을 근접 배치하여 적의 접근을 차단하였다.

12월 16일 트루먼 대통령은 중공군의 한반도 침략 규모가 대규모임에 따라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고 군사력을 대규모로 증강하고자 ‘동원령’도 발표했다. 대국민 연설을 통해 “공산주의자들의 손에서 한반도와 세계를 구하는 일에 적극적으로 동참해 줄 것”을 호소했으며 국방예산도 전쟁발발전의 135억 달러에서 500억 달러까지 증액 시켰다.

특별하게도 이날 중공군은 함흥 북쪽에서 북한 인민군들을 앞세우고 연합전선을 펼치며 대규모 공세를 가해왔다. 유엔군의 방어가 철저하자 중공군의 피해를 줄이고자 북한 인민군이 앞장서도록 유도한 것이었다. 그러나 미 3사단과 24시간 연속된 함포지원사격과 공군 전폭기에 의해 중공·북한군의 연합공격은 무위로 끝났다.

하지만 그날 미 10군단 지휘부를 함흥에서 흥남으로 이동하고 방어선을 ‘통제선-1’로 축소했다. 이것은 유엔군의 철수가 계획대로 빠르게 진행된 결과였다. 동시에 북한의 피란민들은 흥남항 주변으로 대규모 몰려들어 유엔군 철수 조차도 지연시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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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좌측 낚시배와 거룻배까지 동원한 배를 타고 흥남항을 떠나는 북한 피란민들 모습과 우측 흥남철수 작전일정과 철수방향/이동로 [자료제공=생명의 항해]

 

 
‘통제선-1’로 축소따라 ‘연포비행장’ 폐쇄, 유일한 탈출로는 흥남항

이승만대통령 지시 받은 함흥시 대표,“유엔군이 북한주민을 구출해줘라”요청

인류애 돋보인 흥남철수작전 최종철수시간은 X-mas 전날인 12월 24일 11시

12월 17일 새벽 흥남항 북측 해변을 방어했던 국군 수도사단은 미해군 상륙선(LST)에 탑승해 묵호항으로 출항했다. 태백산맥 줄기에서 준동하는 북한 패잔병들을 진압하기 위해 상륙장소를 부산이 아닌 묵호항으로 바꾼 것이었다.

이어 방어선을 ‘통제선-1’로 축소됨에 따라 그동안 철수작전의 중추적 역할을 했던 ‘연포비행장’이 폐쇄되었다. 이제 군인이건 피란민이건 흥남항을 탈출할 방법은 바다를 통해 동해로 가는 길밖에 없었다.

당시 흥남부두에는 군인뿐만 아니라 피란민 10만명이 몰려 있었다. 흥남이 고향이며 고문이자 통역을 맡았던 현봉학 박사(전쟁 후 버지니아 의대 병리학교수, 미국·한국 임상병리학회 회원, 한국 보건부장관 고문, 미 의학회 편집위원 등을 역임, 한미양국 의학계에 큰 공헌을 하여 미국 병리학의 최대 공로상인 '이스라엘 데이비슨 상’을 받음)는 알몬드 장군에게 피란민의 수송을 건의했으나 “군인들과 장비를 철수하는 것이 우선이라 피란민을 태울 여력은 없다”며 이를 거절당했다.

다급해진 현봉학박사는 미 10군단 참모부장 겸 탑재참모였던 미 해병 포니 대령을 찾아가 “피란민을 구해 달라”고 읍소했다. 포니 대령은 현봉학 박사의 간절한 부탁에 못이겨 함정탑재의 기술적 대안을 제시하며 상관인 알몬드 소장을 설득하여 피란민 10만명을 무사히 구하게 되었다고 전해졌다.

그러나 ‘생명의 항해’ 저자인 안재철 월드피스자유연합 이사장은 “당시 유엔군 측의 자료 조사를 통해 미 10군단 지휘부는 인본주의와 인류애적인 차원에서 고민하여 처음부터 가능한 한 최대한의 피란민 수송하기 위한 방법을 마련했던 역사적인 자료를 찾을 수 있었다”고 했다.

특히 피란민을 구해 달라는 공식적인 요청은 함흥시 대표 이우춘(부시장), 모화복(남구청장), 김일성(함남 청년회 의장, 동명이인) 3명이 12월12일 미 3사단장을 방문해서 “유엔군이 북한주민을 구출해주거나, 자기들을 떠나지 말고 지켜달라”고 하며 이승만대통령이 “피난민 수송을 해줄 것을 유엔군을 방문해서 부탁하라”는 지시했다는 것이었다.

함흥시 주민 대표자들의 공식적인 요청을 받은 10군단은 이에 응했고 이는 안 이사장의 조사노력에 따라 미 10군단장이 발송한 보고자료인 ‘극동군 사령부 수신메세지(무선) 12월14일자’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한편 12월18일에 흥남방어선은 ’통제선-2’로 축소되었고 다음날에는 10군단 지휘본부가 90상륙지원단의 기함인 마운트 맥킨리 호로 이동하였다. 그때부터 흥남철수작전의 공식적인 지휘권은 90상륙지원단장 제임스 도일 해군제독에게 인계되었고 미 7사단은 21일 부산으로 출항하였다.

이로써 미 3사단 병력만이 흥남부두에 남아있는 산더미 같은 군수물자와 구출을 애원하는 피란민을 관리 및 통제하고 있었고 곧 흥남항의 외곽 ‘통제선-3’으로 방어선을 축소하였다.

중공군은 19일에 이어 북한군 2개 사단을 선두로 공격을 시도하였으나 지상화력과 함포,항공지원으로 저지당했다. 또한 장진호전투에서 전력상 손실을 입은 데다 더 이상의 보급 지원이 없는 상태였기 때문에 통제선 전면에서 포격으로 응사하는 소극적인 도발을 할 뿐이었다.

12월 22~23일, 주로 포병부대 등의 중장비와 중화기, 탄약 등 군수물자들을 선적하였고 이제 흥남항을 지키던 미 3사단이 배에 승선하기 전에 부두에 남아 있는 피란민을 총괄 지원하는 일이 10군단 참모부와 90상륙지원단의 가장 중요한 현안이 되었다.

미 10군단 참모부장 겸 탑재참모였던 미 해병 포니 대령 등 참모진은 인도주의적 사명감으로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군함과 화물선, 미 해군용선계약 관계에 있던 빅토리급 상선 메러디스, 헌터, 모르맥문 호 3척과 미 해군 상륙선(LST) 2척에 마지막 남은 피란민을 수송하기로 했다.

이때 공산군의 산발적인 공격으로 피란민들이 배를 타는 동안 후방을 방어하던 미 3사단 병사들의 희생이 많았다.

마지막으로 미 3사단은 24일 11시부터 7개지점에서 상류장갑차(LVT)에 승선하기 시작했다. 모든 병사들이 철수 완료하였지만 보급품을 수송할 선박이 부족하여 흥남항에 남아있는 400여톤의 다이너마이트와 227톤의 폭탄, 200드럼의 휘발유는 미해군 수중폭파팀과 공병에 의해 폭파 폐기시켰다.

그후 마운트 맥켄리호에 승선해있던 10군단장 알몬드소장과 제임스 도일 소장은 16시32분에 흥남항에서 출발함으로써 유엔군 10만 5천명과 35만톤의 군수물자, 1만7,500대의 차량이 안전하게 철수하는 흥남철수작전은 성공리에 마무리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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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철의 전쟁사](19) 인본주의와 인류애의 표상이 된 흥남철수와 ‘메러디스 빅토리’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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