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2-23(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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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은성무공훈장 (U.S.Silver Star Medal)’을 달고 있는 ‘수류탄 돌격 소대장’ 이근식 소위와 우측 당시 작전 상황도[사진=해병대사령부]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국군 3군단은 ‘51년 중공군의 기습적인 제 6차공세(5월공세)로  ‘현리전투’에서 치욕스런 패배를 당했다. 이후, ‘용문산대첩’에서 중공군의 공세를 저지하며 쾌승한 장도영장군의 6사단은 5월 21일부터 양평에서 양평과 춘천을 거쳐 화천 발전소까지 60여 km를 퇴각하는 중공군을 따라 진격했다.


 

이때 38선을 재돌파한 국군 6사단과 해병 1연대, 학도병들은 `화천댐을 확보하라'는 이승만 대통령의 특명에 따라 중공군 3개 사단의 심장부에 일격을 가하며 대승을 올리는데, 그것이 바로 '현대판 살수대첩'으로 불리는 파로호 전투였다.


한편 5월21일 오후 9시 즈음에 국군 1군단 예하 수도사단 1연대 수색중대가 대관령에 도착하여 선점했다. 이후 한신 대령의 1연대의 첫 전투에서 아군 12명 피해에 1,180명의 적을 사살했다. 그리고 백선엽 장군의 1군단은 계속 북진하여 23일에는 현재의 휴전선 일대까지 도달했다. 


5월 말이 되자 유엔군은 중공군의 제 5차공세인 4월 춘계공세를 시작하기 전의 전선이었던 캔사스(KANSAS)선까지 대부분을 회복하였다.

 

하지만 ‘도솔산전투’는 처음에 캔사스(KANSAS)선 일대를 장악하기 위해 미 해병대 1사단의 5연대가 맡았으나 많은 손실만 입고 탈환하지 못했다. 따라서 파로호 전투에서 혁혁하게 공을 세운 국군 해병대 1연대(연대장 대령 김대식)가 6월3일 도솔산 공격 임무를 인수하여 6월4일 첫 공격을 시작하였다.

 

‘무적해병’신화를 만든 ‘도솔산전투'지역은 38선 이북으로 양구군 해안면 칠정리의 도솔산(1,148m)을 중심으로 한 이 일대는 높이 1,000m를 오르내리는 높은 봉우리가 연이어 있으며, 기암절벽과 험하고 깊은 골짜기로 형성되어 있다.


그리고 좌우로 양구와 인제에서 북상하는 도로를 끼고 있으므로 만약 이 지역을 확보하지 못하면 좌우편에서 북상중인 유엔군의 전선부대가 한 걸음도 진격하지 못하게 되므로 전술적으로 매우 중요한 지역이었다.


캔사스선으로 철수한 공산군은 북한강을 중심으로 좌측에는 중공군 9병단이 축차적인 지연전을 실시하며 점령 중이었고, 북한강 우측인 이지역에는 북한 인민군 제5군단 예하의 제12사단 및 제32사단이 펀치볼과 도솔산 일대의 전술적인 이점과 천연적인 지세를 최대한으로 이용하여 견고한 난공불락의 방어진지를 구축하고 있었다.


그중 도솔산 일대에 배치된 북한 인민군은 약 4200명의 병력으로 무수히 많은 지뢰를 매설하고 수류탄과 자동화기를 퍼부으며 완강히 저항했으므로 국군 해병대는 한 걸음도 진격할 수 없었다.


그러나 국군 해병대는 치열한 육박전과 인민군이 예상치 못한 강력한 야간 기습공격을 감행하여 24개 고지를 하나하나 점령하면서 전진하였다. 하나의 고지를 점령하면 적의 공격을 받아 다시 빼앗기고, 또 빼앗는 가운데 불가능하다고 판단되었던 24개 목표 고지를 6월 19일 완전 탈환하는 데 성공하였다. 이 전투의 승리로 피의 능선과 단장의 능선 전투의 발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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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솔산 전투 승리를 축하한 이승만 대통령의 친필 휘호 기념비, ‘무적해병’ [사진=해병대사령부]

 

도솔산 전투의 진짜 영웅, ‘수류탄 돌격 소대장’ 이근식 소위(예비역 대령)

 

국군 해병대 1연대(연대장 대령 김대식)는 1차 목표를 대암산(1,314고지, 목표15)로 정하고 최초 2개대대 병진으로 공격을 개시했다. 첫 공격이 좌절되자 6월5일에는 위 상황도와 같이 3개 대대 병진으로 공격을 계속했다.


해병대의 공격 4일째 되는 날인 6월7일 05:00시에 이근식 소위(해간 3기)는 해병 1연대 1대대 2중대 3소대장으로서 "도솔산"공격 중간목표 중의 제 4목표인 "무명고지"에 대한 공격명령을 중대장 이응덕 중위(해간1기)으로 부터 받았다. 


앞서 최초공격을 하던 1소대장 최영남 소위(해간.3기)가 중상을 입고 후송되어 선임하사관이 소대를 지휘했으나 많은 희생자가 발생해 철수했다. 다시 2개소대로 재공격했으나 역시 유리한 지형을 이용한 적의 소련제 수류탄 투척을 수반한 완강한 저항에 또 실패했다. 


3소대장 이근식 소위는 소대원들을 공격대기 지점으로 인솔하던 중 상공에서 포탄의 날아오는 소리가 들리더니 낙하하기 시작했다. 순간 그는 왼쪽 어깨등에 파편을 맞아 피가 흘렀으나 경상이었다. 다행히 소대원들의 피해는 없었다.


09:00시 소대는 짙은 안개가 사라지고 정상의 적 진지가 희미하게 보이는 돌격선에서 착검을 하고 돌격준비를 완료했다. 정상까지의 거리는 50~60m로 30~40도의 경사를 이루고 있어서 수류탄 투척 거리 밖이다. 적의 진지는 산 정상에 있고 소대는 밑에서 돌과 흙으로 구성된 경사진 능선을 중심으로 기어올라가는 자세로 공격해야 했다. 


2,3소대장의 "돌격 앞으로!"의 명령으로 호각소리와 함께 일제히 돌격을 감행했다. 그 때 돌격 함성과 함께 정상의 적 진지로부터 소련제 수류탄이 위로부터 검은 연기를 뿜으면서 굴러내려와 폭발하였고 동시에 우측의 암벽진지로부터 적의 기관총이 불을 뿜기 시작했다. 


불리한 여건이었으므로 앞으로 나가는 해병의 수보다 쓰러지는 해병의 수가 점점 많아졌다. 적의 목전에서 공격은 돈좌되었다. 이소위는 수차에 걸친 공격 중에 많은 부하 해병들이 전사했다는 데에서 오는 자책감과 강박감에 솟구쳐 오르는 통분을 억누르기 힘들었고 사기가 떨어진 대원들은 소대장의 얼굴 만 보고 있었다. 


순간, 그는 죽음에 대한 공포심도 마비되어 어떤 결심을 한 표정으로 2소대장에게 "김 소위! 내가 저 정상의 적 진지를 분쇄할테니 뒤를 잘 부탁한다"고 했다. 2소대장은 "않돼. 올라가면 죽는 거야!" 하며 극구 그를 말렸다. 


그러나 이소위는 “단지 나의 책임을 다할뿐이다" 라는 무언의 항변을 하면서 뒤쪽에 엎드려 있는 소대원들에게 "산 위에서 무엇이든 움직이면 쏴!"라고 지시하고 안전핀을 뽑은 수류탄 2발을 양손에 쥐고 허리에 수류탄 2발을 차고 포복으로 정상의 적 진지를 향하여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얼마 후 그는 바로 머리위에서 적의 웅성거리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고 철모가 아닌 전투모를 쓰고 있었지만 무아 중에 벌떡 일어나 정상에 우뚝 섰다. 적을 2~3m 거리에서 내려다 보는 위치 였다. 적들은 방심한 채 옆과 앞뒤로 판 호안에서 수류탄을 모아놓고 아군의 공격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적이 주어서 다시 던지는 시간을 주지 않기 위해 양손에 쥐고있던 안전핀을 뺀 수류탄 2발을 미리 격발시켰다. "딱,딱"하고 수류탄의 격발 소리가 적막을 뚫고 들리는 순간 수그려져 있던 적의 머리가 들렸다. 


적의 눈과 그의 눈이 소리 없는 불꽃으로 부딪쳤다. 순간 쌍방은 놀란 나머지 꼼짝도 않했다. 그는 바로 그들 속으로 수류탄 2발을 던지고 엎드렸다. "쾅,쾅" 소리와 함께 허리에 차고 있던 수류탄도 뽑아 격발시키고 좀 멀리 던졌다.


그리고 해병들이 엎드려 있는 쪽으로 마치 수영선수가 다이빙하듯이 붕 떠서 40~50m의 거리를 곤두박질하면서 돌아올 때 2개의 수류탄 폭음이 뒤에서 들렸다. 순간 함성이 들렸다. "우리 소대장님 만세!" "우리 소대장님이 제일이다!" 순식간에 대원들의 두려움이 소멸된 듯 했다. 사기가 되살아난 것이다. 이후 그에게는 "수류탄 돌격 소대장"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어느정도 사기를 회복한 소대원들은 더이상 지체할 수 없이 다시 공격을 계속했다. 그때 이소위는 복부에 적탄을 맞고 그 충격으로 몇바퀴 뒤로 뒹굴었고 순간적으로 움직일 수도 없었다. 


하지만 권총 탄띠의 왼쪽 허리에 차고 있던 탄창(칼빈 소총탄 15발) 2개의 주머니가 그의 복부쪽으로 돌아와 있어서 그 탄창의 맨 위 쪽에 있던 총알탄피 2개를 관통하고 관통력이 약해져서 총알이 회전하면서 그의 전투복을 뚫고 속내의를 뚫고 복부 위에서 기적적으로 멈췄다. 


소대장이 적탄에 맞은 것을 보고 심통한 표정에 잠겨있던 대원들도 그가 "안 죽었어!"하며 손을 흔들어 보이니 다시 함성이 일어났다. "우리 소대장님 만세!" 정말 천우신조였다. 그는 "이제 나는 죽지 않는다'라며 자신감과 확신을 갖게 됐다. 


이후 중대장에게 무전기로 상황보고를 하고 중대본부 지역으로 전원이 재공격준비를 위해 철수 하였다. 중대장도 그들의 전투상황을 70~80m정도  뒤에 있는 고지에서 관측하고 있었기 때문에 아무 질책도 없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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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철의 전쟁사(31)] 도솔산 전투 승리를 축하한 이승만 대통령의 친필 휘호 기념비, ‘무적해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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