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9-17(화)
 

오늘날 우리가 당면한 국제적 이슈 중 하나는 ‘중국과 어떠한 관계를 설정해야 하는가’이다. 즉 한·중 관계는 우리의 노력 여하에 따라 갈등보다 상생의 우호관계로 발전할 수 있으며, 이를 위해선 중국을 제대로 아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시큐리티팩트는 이런 취지에서 중국 공산당과 중국 군대를 알아보는 [숨은 중국 알기] 시리즈를 시작한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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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오쩌둥 시대 당시 인민의 양식 먹는다며 추진했던 ‘참새 박멸 운동’ 관련 포스터. [자료=중국 바이두]

 

[시큐리티팩트=임방순 인천대 외래교수] ‘산이 높으면 골도 깊다’라는 말이 있다. 역사적 인물은 태산과 같은 공적도 있지만 어둡고 깊은 골짜기 같은 과오도 있다는 의미이다. 중국 공산혁명을 이끈 마오쩌둥도 예외 없이 공적과 과오를 지니고 있다. 훗날 덩샤오핑은 “마오쩌둥의 공은 70%이고 과오는 30%이다”라고 정의했다.

 

마오쩌둥의 과오를 이야기할 때 대약진 운동 실패를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4천만명으로 추산되는 아사자가 발생됐기 때문이다. 대약진 운동 기간 중에 일어난 ‘참새 박멸’ 이야기는 절대 권력자의 무지와 자기 확신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가를 생생하게 볼 수 있는 사례이다.

 

마오쩌둥은 1957년 어느 날 쓰촨성(四川省)을 시찰했는데, 이때 곡식을 쪼아 먹는 참새를 보았다. 새삼스러운 모습이 아니었지만 어찌된 일인지 마오쩌둥은 식량 부족에 허덕이는 인민들을 떠올리며, “저 나쁜 놈의 새들, 인민들이 먹어야 할 양식을 먹고 있네”라며 참새를 ‘나쁜 새’라고 규정했다. 마오쩌둥의 이 한마디 말에 따라 베이징에 참새섬멸본부가 구성돼 대대적인 ‘참새 박멸’을 준비했다.

 

참새섬멸본부에서는 우선적으로 마오쩌둥이 듣고 싶은 통계를 보고했다. “참새 한 마리가 1년에 약 2.4kg 쌀을 먹는다고 한다면, 쓰촨성에 있는 약 320만 마리 참새는 약 7680만 톤의 쌀을 먹는다. 이 양식은 한사람이 1년에 약 240kg 쌀을 소비할 때 무려 3만2000명이 1년간 먹을 수 있는 분량이다”라는 것이다. 마오쩌둥은 이 통계를 보고받고 이 숫자만 외우고 다녔다.
 
그리고 점차 ‘참새를 박멸해서 인민의 기아 문제를 해결해야지’라는 자기 확신에 빠져 들어갔다. 마오쩌둥 주변의 어느 누구도 참새가 해충을 잡아먹어서 농사에 도움이 된다는 단순한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자기 확신이 점차 강해져 가는 절대 권력자 마오쩌둥이나, 그 주변에서 사실을 은폐했던 당시 고위층이나 모두 참새 박멸로부터 비롯된 대약진 운동이 실패로 끝나서 결국 약 4천만명이 아사한 재앙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드디어 참새박멸 개시 첫날인 1958년 3월 20일이 밝았다. 쓰촨성 주민은 새벽 5시 부터 일제히 일치단결하여 각 지역마다 독극물이 든 과자를 뿌렸고, 포수들을 배치했다. 학생들은 나무로 만든 새총으로 참새를 겨냥하거나 잠자리채를 들고 나와 참새를 마구 포획했다. 누구는 꽹과리, 주전자, 세숫대야 등 소리를 낼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들고 나와 뚜들겨 대면서 고함을 질러대 참새가 앉지 못하도록 했다.

 

지친 참새는 힘없이 떨어지고 말았다. 몽둥이와 빗자루를 든 시민이 이를 주어 담았고 참새 둥지를 파괴하였고, 참새알도 깨트렸다. 절대 권력이 못할 것이 뭐가 있겠는가. ‘참새 박멸’ 쓰촨 방식은 전국적으로 확대되어 갔다. 베이징에서는 4월 19일부터 21일까지 같은 방식으로 총 40만 마리가 없어졌다. 전국적으로는 총 2억1000마리(최대 19.6억 마리라는 통계도 있음)의 참새가 사라졌다고 한다.

 

마오쩌둥은 식량 증산의 기쁜 소식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웬일인지 식량은 더 부족했고 아사자는 매년 더 많이 발생했다.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참새가 사라진 자리는 해충이 들끓었고, 그러자 쌀 생산량은 오히려 줄어들었다. 이 코미디 같은 비극은 마오쩌둥이 실패를 인정할 때까지 계속됐다.

 

마오쩌둥이 대약진 운동의 실패를 인정하고 1962년 주석 직에서 물러나 2선에 있었지만 그가 무너뜨린 생태계는 쉽게 회복되지 않았다. 소련 연해주에서 참새 20만 마리를 구해다 중국에 풀어놔도 메뚜기 등 해충의 창궐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해로운 새’, 참새를 2억1000마리나 잡을 때는 언제이고, ‘이로운 새’, 참새를 소련에서 20만 마리 들여오는 것은 또 무엇인가. 지금 보면 절대 권력자 마오쩌둥이 벌인 한편의 비극에 불과했다.

 

2선에 물러난 마오쩌둥은 가만히 있지 않았다. 최고권력 복귀를 위하여 1965년부터 문화혁명을 전개하였다. 1976년 마오쩌둥이 사망할 때까지 약 10여년간 지속된 이 광풍 속에서 많은 지식인들이 희생됐고, 중국은 이념 과잉으로 사회 전체가 경직되고 정체됐다.


임방순 인천대 외래교수 프로필 ▶ 미래문제연구원 초빙연구위원,  前 駐중국 한국대사관 육군무관, 대만 지휘참모대 졸업 

 

김한경 총괄 에디터 겸 연구소장 기자 khopes58@securityfact.co.kr 이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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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 중국 알기 (7)] 절대 권력자 마오쩌둥, “참새를 박멸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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