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10-08(화)
 

오늘날 우리가 당면한 국제적 이슈 중 하나는 ‘중국과 어떠한 관계를 설정해야 하는가’이다. 즉 한·중 관계는 우리의 노력 여하에 따라 갈등보다 상생의 우호관계로 발전할 수 있으며, 이를 위해선 중국을 제대로 아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시큐리티팩트는 이런 취지에서 중국 공산당과 중국 군대를 알아보는 [숨은 중국 알기] 시리즈를 시작한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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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평양에서 북·중 정상회담을 가졌다고 조선중앙TV가 지난 2019년 6월 21일 보도했다. 사진은 중앙TV가 공개한 회담 모습. [사진=연합뉴스]

 

[시큐리티팩트=임방순 인천대 외래교수] 필자가 2003년도 중국에 있을 때, 한 한반도 연구자가 조심스럽게 언급했다. “북조선 친구들 참 골치 아픕니다. 그들은 우리한테 원조를 받아가면서도 오히려 큰 소리를 칩니다. 유류를 더 많이 지원해 달라, 이번에는 왜 현금을 안 주는가 등 요구가 끝이 없습니다. 충분히 주는데도 더 달라고 합니다”라고.

 

그는 정부에 대해서도 한마디 했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정부 당국은 북한을 자극해서는 안 된다며 두둔하고 있습니다. 도대체 누가 갑인지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甲과 乙이 뒤바뀐 중국과 북한 관계에 대해 2007년도에 중국에서 한 권의 책이 발간됐다. 제목은 ‘조선진상(朝鮮眞相)’, 조선의 실제 모습이라는 의미다.

 

이 책은 곧 이어 일본에서 ‘대북조선·중국 기밀파일(對北朝鮮·中國機密ファイル)’이라는 제목으로 번역 출간됐고, 국내에서도 이듬해인 2008년 ‘중국의 대북조선 기밀파일’로 출판됐다. 주요 내용은 “북한을 중국 편으로 계속 남겨놓기 위해서 그들을 비난하지 말라. 비리조차도 문제 삼지 말라”라는 북한에 대한 중국 정책의 감춰진 단면을 드러내고 있다.    

 

책에서는 이 정책을 기조정책(忌朝政策 : 북한문제로 곤란해지지 않도록 북한을 기피하는 정책)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북한이 중국에 아무리 갑질을 해도, 북한을 특별대우하는 이해하기 어려운 경우를 수록하고 있다. 중·북 관계에서 甲과 乙이 뒤바뀌었다면 의문이 뒤따른다. ‘중국이 북한을 특별대우해서 얻는 것은 무엇이고,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고 있는가’이다.

 

우선 중국이 북한에 양보하거나 전폭 지원 및 배려한 대표적 사례를 알아보자. 첫째, 1962년 중국은 북한과 중·북 국경협약(中朝边界条约)을 맺는다. 중국은 이 협약에서 백두산 천지 분할 및 압록강과 두만강의 섬 귀속 문제에 대해 북한의 요구를 상당부분 수용했다. 중국은 북한에 양보한 내용이 밝혀지는 부담 때문에 이 협약을 공개하지 않지만 중국이 영토 문제에서 양보한 보기 드문 사례라고 한다.

 

둘째, 1962년 중국은 대약진 운동의 후유증으로 자국 경제 발전에도 힘이 부쳤다. 그럼에도 이 때 중국의 자원 배분은 북한이 우선이었다. 심지어 북한이 밀을 요구하자 중국은 오스트리아에서 수입해 지원했으며, 북한이 방직공장의 방직추 10만 개를 요구하자 저우언라이(周恩來)는 “조선이 인력을 파견하여 우리 방직공장에서 설비를 해체해서 가져가라”고 했다. 북한이 원하는 것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지원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사례다.

 

셋째, 1960년 소위 ‘조선해방 15주년 기념행사’의 일환으로 중국은 북한과 친선 축구시합을 했다. 이 때 중국 군중들이 북한 심판에게 야유를 보내는 일이 있었는데, 저우언라이는 민감하게 반응했다. 국가체육위원회 간부들을 비판하면서 군중들에게 북한을 비난해서는 안 된다는 심화교육을 시키라고 지시했다. 북한 축구팀이 텐진(天津)으로 이동하자 허롱(賀龍) 당시 부총리도 관계자들에게 “어떠한 불쾌한 사건도 발생하지 않도록 하라”고 강조했다.

 

다음은 중국이 북한을 특별대우한 대표적 사례이다. 1963년 5월 말, 마오쩌둥(毛澤東)은 우한(武漢)에서 김일성에게 “(중국) 동북지역 전체는 조선의 후방기지이다. 장래에 전쟁이 발생하면 이 지역을 김일성 동지에 맡겨 통일지휘를 하도록 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이어 1964년 9월 김일성이 동북지방을 비밀리에 방문하자 덩샤오핑(鄧小平)은 선양(瀋陽)에서 영접하면서 “이 지방은 당신이 통제할 것이고 어떻게 통제할 지 분부만 내리면 된다”라고 마오쩌둥의 의사를 전달했다.

 

김일성은 중국 동북국 제1서기 송런치옹(宋任窮)과 중앙대외연락부 부부장 우슈취엔(伍修權)의 안내를 받으며 몇 주간 이 지역을 시찰했다. 김일성은 중국의 이러한 제안과 이어지는 환대에 만족했고, 중국은 북한의 환심을 살 수 있다면 무엇이든 하겠다는 입장이었다. 

 

필자가 제시한 이 사례들은 최근에 공개됐다. 중국 션즈화(沈志華)가 2017년도에 발간한 ‘최후의 천조(天朝)-모택동·김일성 시대의 중국과 북한’이라는 책에 기술돼 있는 내용들이다. 션즈화는 중국과 러시아에서 해제된 1960년대 비밀문서를 인용하고 있다.

 

중국의 북한에 대한 파격적인 지원과 특별대우는 1960년대 초반 중·소 분쟁이 점차 격화되는 시점에서 이루어졌다는 특징이 있다. 따라서 당시 중국의 목적은 명확했다. 북한이 소련 쪽으로 기울어 반중노선을 채택할 가능성을 사전에 예방하는 것이었다. 즉 북한을 중국 편으로 잔류시키고자 하는 단 하나의 목적이었던 것이다.

 

중국은 어떠한 대가를 치르더라도 북한을 적대세력에게 넘겨줄 수는 없었고,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 하지만 중·소 분쟁이 점차 약화돼 가던 80년대와 종식된 90년대, 그리고 중국과 소련이 관계를 회복한 2000년대에는 이런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다. 오히려 중국은 북한의 극렬한 반대와 반발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한국과 국교를 수립했다.

 

한·중 국교 수립은 소련보다 2년 늦춘 배려는 있었지만 북한에게는 깊은 상처를 주었다. 중국에게 북한이 중요했던 시점은 북한이 소련카드를 들고 있을 때였다. 그렇지 않다면 북한 그 자체는 그저 평범한 변방의 낙후된 주변국 가운데 하나에 불과할 뿐이다.

 

북한은 중국이 1992년 한국과 수교하자 극도로 배신감을 느끼고 연일 비난을 퍼부었지만 덩샤오핑은 의연했다. 북한이 덩샤오핑을 ‘사회주의 배신자’라고 아무리 독설을 퍼부어도 중국에 실질적인 위협이 되지 않기 때문이었다.

 

이런 중국이 약간 움찔한 때가 있었다. 북한이 대만카드를 꺼내들었을 때이다. 북한은 대만과 1997년 1월, 6만 배럴의 대만 저준위 핵폐기물을 황해북도 평산에 있는 폐광산에 옮겨 처리하는 데 합의했고, 1996년에는 대만의 관광 전세기의 북한 운항에 합의했다. 북한의 예상대로 중국은 움직였다. 중국은 당시 고난의 행군으로 고통 받고 있는 북한에게 식량을 원조해 주는 대가로 북한이 대만과 교류하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

 

이와 같이 중국은 소련이든 대만이든 중국에 경쟁적이거나 적대적인 어떠한 세력도 북한에 진출하면 안 된다는 변함없는 원칙이 있다. 최근 중·북관계가 급속히 긴밀해진 시기가 있었다. 양국은 2018년~2019년 2년 사이에 정상회담을 무려 5차례나 개최했다. 이런 배경에는 중·소 분쟁과 동일한 상황이 있었다. 북한이 중국에게 미국카드를 보여주었기 때문이었다.

 

중국은 북한이 미국과 관계를 강화하기 전에 이를 차단하려고 북한에 ‘혈맹이네, 전통 우의이네’ 하면서 선수를 치고 나갔다. 미국이 북한과 협력하는 상황을 방치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시인 것이다. 중국은 이렇게 경쟁세력이나 적대세력 등 외부세력이 북한지역에 진출하지 못하도록 북한에 정성을 들이고 있다.

 

중국이 기울인 정성과 노력의 결과 북한은 중국에게 위협이 될 수 있는 어떠한 외세와도 손잡고 있지 않다. 중국이 북한을 잘 다루고 있는 것이다. 비록 비용은 많이 들었지만 소기의 목적은 달성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북한이 보였던 대중국 외교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북한보다도 중국을 상대할 카드가 더 많다. 이미 바닥에 깔려 있어 누구나 알고 있는 미국카드가 있고, 오른손에는 쿼드(4개국 협의체)카드, 일본카드, 대만카드, 베트남 등 동남아카드를 쥐고 있다. 왼손에도 있다. 호주카드, 인도카드, 러시아카드, G7카드, 나토카드 등이다.

 

이게 전부 다가 아니다. 또 있다. 바로 가장 위력적인 카드인 조커로 ‘국내 한목소리 카드’이다. 이 카드가 기존카드들과 맞아 떨어지면 우리는 중국에 갑질도 가능할 것이다. 우리가 ‘국내 한목소리 카드’를 내세워 중국에 갑질을 해대는 유쾌한 상상을 해본다. 우리는 결코 중국에게 을이 아니기 때문이다.  

 

임방순 인천대 외래교수 프로필 ▶ 미래문제연구원 초빙연구위원,  前 駐중국 한국대사관 육군무관, 대만 지휘참모대 졸업  

김한경 총괄 에디터 겸 연구소장 기자 khopes58@securityfact.co.kr 이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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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 중국 알기 (11)] 중국의 북한 다루기 알면 우리도 '갑질 외교'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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