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1-11-3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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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격렬한 고지전인 저격능선 전투를 다룬 고전 중국영화 '상감령'과 1957년 7월 당시 김종오 5군단장이 철원 쉬리공원 옆 동산에 세운 '저격능선전투 전적비'  모습 [사진=동영상캡쳐/철원군]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1952년 10월, 미 8군사령관 밴 플리트 장군은 오성산을 점령하기보다는 전초진지 전반에 걸쳐 아군이 주도권을 장악하는 소규모 공격작전이 필요하다고 판단하여 ‘쇼다운(Show Down) 작전’이라고 칭한 대대규모의 병력으로 제한된 목표를 탈취하는 작전을 전개했다


이에 따른 저격능선 전투는 개시 42일만인 11월24일에 끝났다. 엄청난 희생을 치루며 공격한 미9군단 예하 국군 2사단은 저격능선의 고지 셋(A·Y·돌바위) 중 두 곳(80%)을 확보했고, 중공군은 삼각고지를 방어했지만 저격능선에서 패퇴했다.


故 백선엽 장군의 회고록 ‘나를 쏴라’에서 “저격능선에서 중공군은 패배했고 희생도 아군의 2배로 막대했다. 중국이 최고 승리라고 주장하는 것은 자체 선전일 것이다”라고 증언했다.


1957년 7월 김종오 5군단장이 철원 쉬리공원 옆 동산에 ‘저격능선 전투 전적비’를 세웠다. 비문에는 ‘오만한 적 중공군과 용감히 싸운 불멸의 투혼’이라고 단호하게 새겨져 있다. 참전했던 한 노병은 "중공군은 국군의 전투력을 깔보았고 저격능선에서 오만함이 드디어 분쇄됐다”고 말했지만 그의 낯빛이 씁쓸해진다.


국방부 정책기획관을 역임한 김국헌 장군(육사28기)도 ‘다시쓰는 6·25’에서 미9군단의 저격능선 전투는 무모한 공격으로 실패로 끝났으며, 국군 9사단의 백마고지전투가 필사의 방어로 성공한 것과 대조를 이룬다고 평가했다.


중국의 승전 기록은 미군 격퇴, 오성산 방어에 맞추었다. 지하갱도의 고난은 신화의 소재로 “동굴진지는 물이 적어 겨와 풀을 먹으며 버텼고, 그 정신으로 미군을 제압했다”며 ‘상감령 전투’를 고전 영화로도 제작하며 최대 승리라고 주장한다.


한편 중앙일보 박보균 대기자는 ‘화웨이 사태가 점화한 '상감령' 역사기억의 전쟁··· 승자는?’라는 칼럼에서 “중국은 한국군 전과를 깔아뭉갠다. 2사단의 저격능선 공략은 미완성이다. 하지만 중국의 상감령 신화도 절반의 진실이다”라고 분석했다.


또한 “한반도는 기억의 전쟁터이지만 한국은 그런 문화전투에서 부실하다. 보수우파의 그런 기량은 미흡하다. 그 전투에서 밀리면 치명적이다. 가짜 평화론이 득세한다. ‘정의로운 평화’의 요소는 군사력과 안보 의지이다. 그것 없는 평화는 비굴하고 수세적이다”라고 언급했다.


‘상감령’은 역사의 시위이고 북·중 결속의 원동력이다. 한·미동맹의 기억은 소홀해졌고 그로 인한 손실은 결정적이다. 중국은 한국을 얕잡아보며 북한도 한국을 무시한다.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의 시대는 혼돈이 됐고, 조 바이든이 미대통령에 당선된 지금은 새로운 선택의 전환점이다.


결론적으로 박 대기자는 “역사 기억은 리더십에 지혜와 투지를 넣는다. 국민적 단합을 투사한다. 저격능선의 기억은 당당하고 상감령의 위세는 그 앞에서 주춤한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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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철의 전쟁사(101)] 중공군도 승리했다고 선전하는 ‘저격능선전투’의 진실은?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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