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2-20(화)
 

이 글은 현역대령이 나이가 지긋한 아저씨 3명과 함께 배낭을 메고 DMZ를 따라 걸은 이야기다. 이들은 한 걷기 모임에서 만난 사이로 당시 전역을 앞둔 56세의 안철주 대령과 60대 1명, 70대 2명이다. 2013년 8월 파주 임진각을 출발하여 고성 통일전망대까지 12일 동안 걸으면서 이들이 느낀 6·25 전쟁의 아픈 상처와 평화통일의 염원 그리고 아름다운 산하와 따스한 사람들에 관한 얘기를 시리즈로 연재한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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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를 격려하기 위해 멀리서 달려온 소대장 시절 부사관인 윤현준님(오른쪽 첫 번째)과 함께 32년 전 근무했던 부대를 방문하여 당직사령과 기념사진을 촬영했다. [사진=안철주 박사]

 

[시큐리티팩트=안철주 박사] 8월 24일, 종주를 시작한지 여섯째 날이다. 오늘은 육단리에 위치한 필승회관을 출발하여 사곡리를 지나 용암리에 있는 민통선 출입통제초소인 용암초소를 통과 후 DMZ 종주의 백미(白眉)라고 할 수 있는 대성산 민통선 지역인 말고개, 중고개를 넘어 봉오리에 있는 승리회관까지 약 25㎞ 거리를 걸었다.

 

현재 한반도는 남한과 북한이 군사 분계선(MDL, Military Demarcayion Line) 또는 휴전선이라고 불리는 선으로 나누어져 있다. MDL로부터 남북으로 각각 2㎞ 지역에는 군사 충돌을 방지하기 위한 비무장지대(DMZ)가 설정돼 있고, MDL 남쪽 5∼10㎞에 이르는 공간은 군사작전 등의 목적으로 민간인의 출입을 제한하는 민간인 통제구역이다. 이 지역을 구분하는 경계선을 민간인통제선(이하 민통선)이라고 부른다.

 

오늘 구간에는 단원 중 두 번째로 연장자인 이창조님이 49년 전인 1964년 7월에 37연대 6중대 1소대장으로 부임했던 부대가 있고, 필자가 32년 전인 1981년 7월에 50연대 2대대 통신소대장으로 부임한 부대가 위치하고 있어 종주단에게도 특별한 의미가 있는 지역이다.

 

필승회관을 출발하여 사곡리를 거처 용암초소로 향했다. 도로 좌우측 풍경은 30여년전 모습과 흡사했고, 승리 전망대 5㎞라는 이정표도 보였다. 15사단의 별칭인 승리부대가 떠올라 필자는  가슴이 뛰었다. 15사단은 6·25전쟁에서 혁혁한 공을 세운 전통 있는 부대이다. 1953년 강원도 고성군 351고지에 배치돼 북한군을 상대로 여러 번 승리했고, 이후 이승만 대통령이 ‘싸우면 반드시 승리하는 부대’란 의미로 ‘승리 부대’라는 별칭을 하사했다고 한다.

 

민통선 지역은 민간인도 신분이 확인되면 차량에 탑승한 상태로 출입 및 통과가 가능하다. 하지만 배낭을 메고 걷기 위해서는 별도의 허가가 필요했다. 용암초소에서 출입 허가를 받은 후 말고개를 향해 걸었다. 우리가 걷고 있는 도로에서 DMZ까지 거리는 약 2-3㎞다. 길 좌측에는 삼천봉, 승리 전망대, 천불봉, 승암고개 등 많은 고지가 있고 길 우측에는 대성산이 있으며 그 사이에 재건촌이라는 마을이 있다.

 

재건촌 입구에는 커다란 기념비와 조그만 가게가 있었다. 우리는 가게 앞에 있는 파라솔에 앉아 시원한 음료도 마시고 지역 주민으로부터 여러 가지 이야기도 들으며 휴식을 취했다. 이 기념비에는 1968년 8월 30일 민통선 북방 전략촌 건설계획과 유휴 농지 개발, 식량증산 목적으로 구호주택 50호에 50세대가 입주하여 농경지를 분배(1주택 2헥타르)받아 삶의 터를 마련한 마현 2리의 개척 역사가 기록돼 있었다. 

 

기념비에는 또 “한국전쟁 참화로 지뢰가 뿌려진 황무지에서 우리들 아버지, 어머니는 목숨을 걸고 호미와 삽을 들었고 밤에는 총을 들고 삶의 희망을 지켜왔습니다. 척박한 땅에서 희망을 잃지 않고 눈물과 땀을 뿌렸던 사람들은 마현 2리 역사와 영원히 함께 할 것이고 그 역사를 거울삼아 후손들이 뿌리내리고 희망의 꽃을 피울 것입니다”라며 험난한 세월의 역경을 딛고 일어선 그분들의 숭고한 정신을 전하고자 비를 세웠다고 적혀 있었다.

 

재건촌을 출발하여 5번 국도를 따라 걷기 시작해 말고개 초입에 들어섰다. 말고개는 철원군 근남면과 화천군 상서면을 잇는 해발 690미터의 고개다. 보통 고개 이름에서 말이라는 단어는 큰 고개를 의미한다. 이곳 말고개 역시 고개가 크다는 의미로 붙여진 지명으로 짐작된다. 옛날 근무했던 시절에는 차량이 지나면 흙먼지를 일으키는 도로였으나 지금은 아스팔트로 포장돼 있다. 조금 걷다 보니 승암고개가 보였다.

 

승암고개는 6.25전쟁 당시 그리스군이 치열한 전투를 벌였던 장소다. 1953년 7월 정전 협상이 막바지에 접어들었을 때 중공군은 7월 20일부터 마현리 북쪽에 있는 승암고개로 대규모 공격을 감행했다. 당시 미군에 배속된 그리스 왕립 헬레닉(Hellenic) 대대와 스파르타 대대는 정전 협정이 맺어지기 하루 전인 1953년 7월 26일까지 승암고개를 성공적으로 사수했다.

 

이 전투에서 그리스군은 총알이 떨어진 극한 상황에서 고대 스파르타 전사들의 후예답게 소총에 대검을 장착한 후 용맹스럽게 돌진하여 비록 19명이 전사했지만 육탄전으로 승암고개를 사수했다. 그 당시 그리스는 2차 세계대전으로 국토가 피폐해진데다 1949년까지 자유진영과 공산진영 간 내전이 벌어져 6·25전쟁 참전이 어려운 상황이었다고 한다. 현재 그리스군의 6·25전쟁 참전기념비는 영동고속도로 여주휴게소에 있다.

 

좀 더 걷다 보니 필자가 근무했던 필승대대가 보이면서 1983년 대대에 근무할 때 발생했던 가슴 아픈 사건이 기억났다. 그 때도 비무장지대 안에는 GP가 운영되고 있었다. 당시 우리 부대는 DMZ 출입을 통제하는 통문에서 GP까지 차량이 통행할 도로를 만들고 있었다. 한 여름 어느 날 오후 나는 대대 상황실에서 근무 중 긴급한 상황을 보고받았다. “DMZ에서 지뢰가 폭발하여 다수 인원이 쓰러져 피를 흘리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환자 수송을 위해 긴급 헬기를 요청하고 급하게 지프를 타고 현장으로 이동했다. 현장을 구체적으로 확인해보니 도로개설공사 현장에서 땅을 파던 불도저가 6·25전쟁 시 매설된 것으로 추정되는 대전차 지뢰의 뇌관을 눌러 터진 것으로 확인됐다. 지뢰 파편들이 공사현장 경계 작전을 수행하던 소대장과 병사들을 피범벅으로 만들어 의식을 잃은 채 피를 흘리고 있었다.

 

그들을 들것으로 옮기고 급하게 날아온 헬기에 실어 후송했다. 소대장은 나와 같은 중대에서 생활했던 아주 친한 육사 동기생이었다. 헬기에 실려 후송되는 동기생과 병사들의 모습을 보며 한동안 눈물을 흘렸던 기억이 난다. 다행히 치료를 잘 받아서인지 인명 피해는 없었다. (애석하게도 그 동기생은 그 후 약 10여년이 지난 어느 날 헬기 추락사고로 운명했다.)

 

말고개는 강원도 철원군 근남면과 화천군 상서면을 연결한다. 대성산 동쪽 사면은 마현리이며 남쪽 사면에서는 사동천이 발원하여 북한강으로 흘러 들어가고 북서쪽 사면에서는 한탄강의 지류인 남대천이 발원한다. 대성산은 6·25전쟁 초기 아주 치열하게 전투가 있었던 대표적인 지역이다. 국군은 1951년 6월 9일 대성산지역에서 공격을 시작하였고 대성산 1042고지와 신월동, 865고지를 탈환했다.

 

이후 1951년 6월 14일까지 계속된 전투에서 중공군에게 막대한 피해를 입히면서 승암고개, 삼천봉, 비조봉 일대까지 진출하여 김화지역을 사수했다. 국군이 대성산을 사수함으로써 중공군의 공격로를 차단할 수 있었다. 대성산지구 전투에 대한 장병들의 전공을 높이고 넋을 추모하고자 15사단 8305부대와 화천군이 1983년 10월 1일 대성산지구 전적비를 세웠다.

 

우리 일행이 대성산 중턱의 말고개 정상에 거의 도착 할 때 어제 통화했던 옛 전우인 소대 선임하사의 전화를 받았다. ‘근처에 왔는데 정확한 위치가 어디냐’고 물어본다. 어제 전화를 받고 급하게 일정을 조정하여 이 근처에 왔다는 것이다. 우리는 말고개 정상 근처에서 감격적으로 해후했다. 32년 전 연대본부에서 대대까지 필자를 오토바이로 모시러 왔던 윤현준님이 멀리 일산에서 새벽에 출발해 4륜 차량을 끌고 위문을 온 것이다.

 

종주계획을 수립할 때 대성산 정상에도 올라가보고 싶었다. 하지만 피로도와 시간 때문에 정상에 오르는 것을 계획에서 제외했다. 그런데 지금은 4륜 차량을 이용할 수 있는 상황이 됐다. 부대와 협조한 후 4륜 차량을 타고 대성산 정상에 올라갔다. 눈앞에 전개되는 마현 1,2리 정착촌 마을, 비무장 지대 DMZ와 그 너머 북녘 땅 오성산도 볼 수 있었다.

 

정상에서 내려와 전적비 앞 잔디에 돗자리를 펴고 윤현준님이 준비해온 김밥과 떡, 막걸리로 점심 파티를 하며 회포를 풀었다. 우리의 이런 정경을 본 사람은 가끔 지나가는 차량에 탑승한 군인들 몇 명 뿐이었다. 마침 전적비 주변 환경 미화를 하던 병사들의 도움으로 우리 전체 사진도 찍을 수 있었다.

 

점심 파티 후 우리는 필자가 32년 전에 근무했던 부대를 방문했다. 이미 현대식 건물이 들어서서 옛날 건물은 전혀 볼 수 없었다. 사람 손이 닿는 것은 다 바뀐 것 같았다. 그렇지만 하루에도 몇 번씩 오르내렸던 지형은 그대로 남아 있었고 함께 근무했던 끈끈한 전우애는 변하지 않은 것 같았다. 휴일 부대를 책임지고 있는 당직사령과 기념촬영도 했다.

 

군 전역을 약 1달 정도 앞둔 현 시점에서 뒤돌아보니 내가 초임지에서 윤현준님을 만난 것은 행운이었다. 그는 가식이 없었고 소탈했으며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었다. 그는 ‘군 생활은 이렇게 하는 것’이라는 것을 몸소 실천하며 소대장인 필자에게 커다란 영향을 준 고마운 사람이다.

 

군 생활을 하면서 출신이 다르다는 이유로, 또는 신분이 다르다는 이유로 갈등이 생기기도 하고 문제가 된 경우를 여러 번 목격했다. 그러나 나는 부사관과 갈등이 전혀 없이 30여년 동안 생활해온 것 같다. 어쩌면 처음 부임지에서 그와 생활하면서 신분에 대한 벽이라는 것을 모르면서 인간적 만남을 바탕으로 군 생활을 시작한 덕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4륜 차량의 기동력을 이용하여 중고개를 넘었다. 그리고 봉오리를 지나 49년 전 이창조 소위가 처음 부임하여 근무했던 부대도 잠깐 방문했다. 그 부대는 이외수 문학관이 있는 다목리에 위치하고 있었다.

 

숙소인 봉오리에 있는 필승회관에는 어두워지기 전에 도착했다. 그리고 저녁은 윤현준님의 융숭한 대접을 받았다. 저녁을 먹는 자리에서 DMZ 종주 엠블럼을 감사의 표시로 전했다. 맛있는 저녁 식사를 함께 한 후 아쉬운 작별 인사를 나누었다. 불원천리를 마다않고 달려와 격려해준 윤현준님께 이 지면을 빌려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안철주 심리경영학 박사 프로필 ▶ 예비역 육군대령. 대한민국 걷기지도자로 100㎞ 걷기대회를 7회 완보한 ‘그랜드슬래머’이며, 스페인 순례길인 ‘까미노 데 산티아고’를 완주한 걷기 애호가

 

김한경 총괄 에디터 겸 연구소장 기자 khopes58@securityfact.co.kr 이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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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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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숙

살아가면서 사람과의 관계가 얼마나 중요한지 체험을 많이 하게 되지요... 좋은사람을 만나기 위해서는 우선 내가 올바르고 좋은사람이어야 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지요~
안박사님 주변에 따뜻하고 좋은 분들이 많이계신 이유를 알것같아요~^^

댓글댓글 (0)
자을이

★100세까지 걸을수있는 방법 ★

사람은 며칠만 못 걸어도 우울증에 빠지고
건강도 나빠져 폐인이 된다. 노년이 되면
결국 걸으면 살고 못 걸으면 죽는다.
100세까지 활발하게 걷게 만들어주는
방법이 있다.

★나이가 들수록 고기를 먹어야 한다
보고에 의하면, 한국인의 72.6%는 단백질
섭취가 결핍돼 있다. 단백질은 근육, 피부,
장기, 머리카락, 뇌의 원료가 되기 때문에
단백질이 부족하면 우리 몸의 모든
대사기능이 떨어진다.

또 단백질은 젊음과 정력을 유지하는
성장호르몬, 성호르몬 생성에 관여한다.
여론에는 육류는 피하고 짠 음식도
먹지말라고한다. 그건 잘못 된 보도다

우리몸에 맞춰서 균형있는 음식을 먹어야
장거리에 걷기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꼭
알아야한다. 젊었을때는 모르지만 60세가
넘으면 먹는댜로 힘을 쓴다는 옛 성인의
말씀도있다.

에너지힘을 기르려면 일주일에 한번은
살고기를 삶아서 야채와 함께 드시면
걷기에 도움이 크게 됩니다.

안철주대장님외 제위님들 걷기달인
이 십니다. 100세 인생을 향하여
건강관리 잘 하시면서 걸어 보십시요..
★★★홧팅 입니다★★★^^

댓글댓글 (0)
자을이

역경의 체험걷기 잘 읽었습니다.
마음의신념을 갖고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 하셨습니다.

이 나라를 위해 살신성인의,
정신으로 가신 영령들께 깊은
애도와 추모를 드립니다.
감사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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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역대령의 DMZ 종주기(9)] 민통선 지역 내 6·25전쟁 격전지 걸으며 소대장 근무 시절 소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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