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1-11-3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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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구군 인제에 있는 7사단 기념비 ‘칠성탑’과 크리스마스고지전투에서 중공군 204사단의 공격을 막아낸 7사단 3연대 9중대장 故 이순호 소령 모습 [사진=양구군/보훈처]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1차 크리스마스고지 전투 다음해인 1952년, 대위로 진급한 이순호는 국군 7사단 3연대 3대대 9중대장으로 보직 받아 강원도 양구군 백석산 전방 ‘크리스마스고지’에서 진지 방어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휴전회담이 계속 진행되던 중, 1차 크리스마스고지 전투에서 패배한 중공군 204사단은 크리스마스고지에 대한 야심을 버리지 못하고 10월 6일 기습 공격했고 6일간의 전투에서 아군은 또 다시 크리스마스고지를 피탈 당하기도 했다.

 

당시 9중대장인 이 대위는 패배에 절치부심(切齒腐心)하며 반드시 재탈환하여 사수하겠다는 투지를 불태우고 있었다.

 

10월13일 저녁 중공군은 치열한 공격준비사격을 퍼부은 후, 재차 9중대 정면과측면에 각각 1개중대를 투입하여 공격해왔다. 적의 공격에 2소대 지역이 함락되면서 중대의 좌측이 뚫리고 말았다. 다급해진 중대는 수류탄과 총검으로 중공군에 맞섰지만, 적의 공세에 밀려 부대가 포위됐고 삽시간에 적과 아군이 한데 엉키는 아수라장이 되었다.

 

이 대위는 한 치의 물러섬도 없이 끝까지 진지를 탈환할 것을 각오하고 화기 소대장에게 분산된 3소대를 수습해서 중대 지휘소로 몰려드는 적을 공격하라고 명령했다. 그리고 자신은 본부요원에게 수류탄 상자를 들게 하고 직접 수류탄을 던지며 총검을 휘두르는 백병전 속으로 뛰어 들었다.

 

이때 투척한 수류탄은 3상자로 그의 옆에서 수류탄 통의 테이프를 입으로 뜯어주던 본부요원의 이빨이 2개나 빠질 정도였다. 이에 공격기세가 꺾인 적들이 무수한 시체들을 버리고 퇴각한 뒤에야, 이 대위는 자신이 전투 중에 부상을 입은 것을 알게 되었다. 적의 총탄이 왼쪽 팔과 우측 정강이 두 곳을 관통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부대원들의 후송 권고를 뿌리치고 압박붕대로 상처의 지혈만을 한 채 절뚝거리며 방어진지 점검에 나섰고 그 모습을 본 장병들은 가슴 깊이 감동을 받았으며 다시 한번 더 전투의지를 불태울 수 있었다.

 

이어 9중대 지역 공격에 실패한 중공군은 증원을 받아 중대 지휘소로 재차 공격을 해왔고 교전은 더욱 치열해졌으며 중대는 또다시 위기에 빠졌다. 이 대위는 중상을 입었지만 중대원들과 함께 수류탄을 던지고 총검을 휘두르는 혈투를 벌이며 끝까지 진지를 지켰으나 그의 가슴에 흉탄이 관통하면서 장렬히 전사했다.

 

결국 이 대위의 장렬한 죽음을 본 9중대원들은 분노에 차 혼신의 힘을 다해 야간 격전을 처절하게 버텨냈고, 이튿날 11중대의 증원을 받아 이순호 대위의 염원대로 핏빛만 가득한 크리스마스고지를 끝까지 사수할 수 있었다.

 

정부는 그의 전공을 기리어 1계급 특진추서와 함께 을지무공훈장을 수여했다. 이순호 소령은 보훈처에서 2018년 ‘7월의 호국인물’로 선정되어 전쟁기념관 호국추모실에서 유가족과 육군 주요 인사가 참석한 가운데 고인을 추모하는 현양 행사도 거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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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철의 전쟁사(103)] 캐롤송도 없이 핏빛만 가득했던 ‘크리스마스고지 전투’(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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