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8(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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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故 윌리엄 해밀턴 쇼 대위(LT. William Hamilton Shaw)의 해군 재직시 모습과 은평평화공원에 건립된 동상 [사진=연합뉴스/은평구]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하얀 피부에 파란 눈을 가진 미국인 중에 생명을 걸고 이 나라를 사랑한 선교사와 그의 자녀들이 있었으며, 한국인은 그들을 기억하고 감사해야한다.


가장 먼저 언더우드(Horace Grant Underwood, 1917-2004) 박사는 연세대를 최초 건립하였고, 한국전쟁 발발로 재입대하여 인천상륙작전에 투입한 뒤 유엔군의 수석통역관으로 정전협정을 이끌어내는 등의 활약을 했다. 이후 한국의 교육 발전에 헌신했으며, 그의 아들 인요한 박사는 순천에서 태어나 현재까지도 세브란스 병원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휴 린튼(Hugh MacIntyre Linton, 1926-1984)은 미 해군 대위로 인천상륙작전에 참전했으며, 휴전 후 선교와 의료 봉사에 매진하여 한국의 결핵 퇴치에 이바지했다.


또한 하워드 마펫(Howaed Moffett, 1917-2013)은 평양 출신으로 한국전쟁 당시 해군 군목으로 참전했으며, 휴전 후 고아와 미망인을 위한 무료 진료를 하는 등 45년간 한국에서 의료 선교에 헌신했다.


특히 윌리엄 E. 쇼(Shaw, William Earl)는 미 감리회 선교사로 1921년 내한하여 서위렴(徐偉廉)이라는 이름으로 평양, 서울, 대전 등에서 1960년까지 선교와 교육에 크게 이바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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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교사 윌리엄 E. 쇼가 창립한 목원대(감리교 대전신학원) 교내 교회 인근에서 2018년 9월20일 열린 윌리엄 해밀턴 쇼 대위 흉상 제막식 [사진=대전지방보훈청]

 

윌리엄의 손자까지 3대가 선교, 군인, 장학사업으로 한국인 도와 


윌리엄 E. 쇼(Shaw, William Earl, 서위렴)는 1890년 8월22일 시카고에서 출생하여, 1916년 오하이오 웨슬리언 대학과 콜럼비아 대학원(1921)을 졸업했다. 선교 사업에 뜻을 두고 한국 선교사가 된 다음 보스턴 신학대학원도 졸업(1927)했다.


평양에서 광성학교 교사로 봉직(1921-1926)하고, 만주와 해주 지방에서 교육과 전도사업(1927-1937)에 몰두했다. 1938년 무어(J. Z. Moore)선교사와 함께 평양요한학교를 설립하여 인재를 배출했으며, 평양소년단(보이스카웃) 단장으로도 봉사했다.


1941년 일제에 의해 강제로 추방되었다가 해방 후인 1947년 다시 내한했다. 1950년 6·25남침전쟁 때에는 미군 군목으로 종군하면서 피난 교역자 구호에 힘썼으며, 특히 한국군 군종 창설에 크게 기여했다. 참고로 그는 제1차 세계대전 때도 군목으로 유럽 전선에 종군했었다.


외아들 해밀턴 쇼가 6·25남침전쟁에서 전사하자 미국 본토에서 5,925명의 신자들이 보내준 14,500불의 헌금으로 쇼 기념교회를 대전에 건립했다. 1955년 목회자들의 수련을 위하여 쉐파트(Shepard) 부인이 헌금한 6,000불을 기초로 목자관을 건립하여 관장으로 봉직했다. 감리교대전신학원(목원대) 창립 이사(1954-1960)로 참여했고, 신약 교수로서 학생들에게 감동을 주었으며 크게 존경을 받았다.


1961년 선교사직에서 은퇴한 뒤, 귀국하여 1967년 10월 5일 캘리포니아 스탠포드 병원에서 별세하자 유해는 그의 유언에 따라 부인이 안고 와서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역(제2묘역 라-6)에 안장됐다.


부인 아데린 H. 쇼(Shaw, Adeline Hamilton,1895-1971) 선교사는 1895년 7월 2일 출생하여 1919년 7월 4일 윌리엄 쇼와 결혼하고, 1921년 내한하여 남편을 내조하면서 숭덕여학교 교사 등으로 1960년까지 교육에 헌신했다. 1971년 5월 8일 캘리포니아에서 별세했으며, 양화진 (제2묘역 라-5) 남편의 묘 옆에 안장됐다.


며느리 조니타 로빈슨 쇼(Shaw,Juanita Robinson)는 1943년 외아들 해밀턴 쇼와 결혼했으며,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로 활동하고 세브란스 병원에 사회사업실(Medical-social)을 개설했다. 서울외국인학교에서 교사로 봉직했으며, 1968년 귀국하여 미국 코네티켓에서 사회봉사 사업을 마치고 은퇴했다.


서위렴의 큰손자 윌리엄 로빈슨(William Robinson)은 1944년에 출생하여 서울외국인학교를 다녔다. 하버드대학에서 박사학위(1977)를 받고, 내한하여 훌브라이트(Fulbright) 장학사업을 추진했고, 한국 대학생을 위한 하버드 대학 법률연구센터와 교류에 힘썼다. 1966년 캐롤 C. 쇼(Carol Cameron Shaw)와 결혼하여 다섯 자녀를 두었다. 1993년 심장 질환으로 버지니아 스프링필드에서 별세했다.(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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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프로필▶ 군인공제회 관리부문 부이사장(2014~‘17년), 청와대 국가안보실 위기관리비서관(2013년 전역), 육군본부 정책실장(2011년 소장진급) / 주요 저서 : 충북지역전사(우리문화사, 2000), 비겁한 평화는 없다 (알에이치코리아,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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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댓글 1

  • 07944
박균명

북한 공산당의 침략을 무찌르고 자유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기꺼이 받치신 미국 선교사님들의 우국충정에 경의를 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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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철의 전쟁사(104)] 3대에 걸친 불멸의 한국사랑 ‘윌리엄 쇼’일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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