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8(목)
 

오늘날 우리가 당면한 국제적 이슈 중 하나는 ‘중국과 어떠한 관계를 설정해야 하는가’이다. 즉 한·중 관계는 우리의 노력 여하에 따라 갈등보다 상생의 우호관계로 발전할 수 있으며, 이를 위해선 중국을 제대로 아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시큐리티팩트는 이런 취지에서 중국 공산당과 중국 군대를 알아보는 [숨은 중국 알기] 시리즈를 시작한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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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6월 11일 중국 법원이 부패 혐의로 기소된 저우융캉(周永康) 전 중국 공산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에게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사진은 2012년 3월 9일 전국인민대표회의에 참석했을 때 모습. [사진=연합뉴스]

 

[시큐리티팩트=임방순 인천대 외래교수] 필자가 중국 근무 시 실수한 적이 있었다. 중국인들 앞에서 ‘중국 좋다, 중국 최고다’라는 얘기만 해야 하는데, 중국인들이 감추고 싶고 부끄러워  하는 고위층의 부정부패에 대해 언급한 것이다. 잠시 어색한 시간이 흐른 후, 한반도 전문가인 한 중국 연구원이 목소리를 높였다.

 

“그래, 우리 고위층의 부정부패는 문제가 작지 않다. 그런데 한국 고위층은 모두 청백리들이냐? 당신이 중국의 부정부패가 구조화됐느니, 방치했다간 공산당과 나라에 위기가 닥친다느니 하고 말할 정도는 아닌 것 같은데” 라고. 이 연구원은 “남 참견 말고 너나 잘하라”는 의미였다. 그러나 내 얘기는 당시 후진타오(胡錦濤) 총서기의 언급이었다.

 

후진타오에 이어서 시진핑(習近平) 총서기는 2013년 집권 초기부터 부정부패 척결을 추진했다. 이른바 “호랑이든 파리든 모두 때려잡겠다”라고 기염을 토했다. 필자는 “때려잡는 것은 일부분일 테고, 완전히 탈바꿈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부정부패는 중국 문화의 일부분이기 때문이었다.

 

중국의 전통과 사회 풍토를 볼 때, 부정부패는 이권과 꽌시(關係)의 결합체이고, 또한 부정부패의 물증인 뇌물도 선물과 구분이 모호하다. 어디까지가 부정부패인지 그 기준 또한 일정하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시진핑 총서기의 부정부패 척결 운동은 정적 제거가 주목적이 아닌가 하는 세간의 의문도 있다.

 

오늘은 중국 고위층의 부정부패라는 애매하고 모호한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이 현상은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우선 중국의 오랜 역사 속에서 전통 문화의 일부분으로 자리 잡았다는 점이다. 게다가 최근에는 개혁개방에 의해 경제가 급속히 발전하면서 이권이 확대됐고, 이 이권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더욱 부정부패는 구조화됐다는 점이다.

 

이권이 있는 곳에 부정부패가 싹트기 마련이다. 그리고 우리의 부정부패 유형이 ‘정경유착’이라면 중국은 ‘정경일체’라는 차이가 있다. 공산당 일당 독재체제에서 당 고위층은 정치권력과 경제적인 이권을 동시에 추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첫째, 중국인들은 돈을 밝힌다. 좋게 말하면 경제관념이 분명하다. 새해 인사도 “부자 되십시오(恭喜發財)”이다. 일반 서민들의 집안에는 보통 재물신을 모셔놓고 있다. 중국 속담에 “돈이 있다면 귀신에게 맷돌을 갈게 할 수 있다(有錢能使鬼推磨)”라는 말이 있다. 옛날에는 맷돌 가는 게 중노동이었나 보다. 어느 중국인은 스스럼없이 자기는 공자님이나 부처님보다 ‘인민폐’를 숭상한다고 말했다. 무척 솔직한 사람이었다.

 

필자가 중국 대표단을 수행하여 우리나라 이곳저곳을 다닐 때였다. 그들의 관심은 한국 군인들의 월급은 얼마이며, 전역 후에 연금으로 생활이 가능한지, 그리고 승용차와 주택을 보면서 저 차는 얼마이고 저 집은 얼마면 살 수 있는지 등 돈과 관련된 것이 대부분이었다. 현금 친화적인 사람들이었다.

 

둘째, 중국인들은 꽌시라는 인간관계로 경제공동체를 형성한다. 꽌시는 일종의 ‘이너 서클’이다. 우리가 통상적으로 사용하는 인맥보다 더욱 긴밀하고 직접적인 관계로 청탁과 이권 제공, 그에 상응한 보상 등을 주고받으며 서로가 깊숙하게 얽혀져 있다. 물론 상호 신뢰가 있어야 가능하다. 그리고 중국에서는 선물을 주고받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꽌시를 통한 이권과 보상의 순환은 바로 선물로 포장돼 주고받는다.

 

이 단계에서는 대가를 바라는 뇌물임에 틀림없다. 고위층이든 일반 백성이든 계층을 가리지 않고 이렇게 꽌시로 형성된 ‘이너 서클’은 자기들만의 생태계를 형성한다. 기득권층인 것이다. 이들의 행동은 법률을 위반하는 것이 아니지만 그렇다고 법률에 부합되는 것도 아니다. 합법과 불법의 사이인 비법(非法)의 영역에서 이루어진다. 쉽게 말하면 교묘히 법망을 피해간다는 의미이다.
 
중국은 권력이 집중화된 중앙정부의 주도하에 경제개혁이 추진됐으나 시장에 개입하는 공권력을 제약하는 행정제도와 법적 체계가 완비되지 않았다. 그리고 인치(人治)가 법치 위에 군림하는 기풍이 만연된 사회였다. 이런 토대위에 급속한 경제발전에 수반된 이권은 먼저 보는 사람이 임자였다.

 

대표적인 예로 에너지 수요가 급증하자 저우용캉(周永康)은 석유공급망을 장악하여 이른바 ‘석유방(幇)’을 형성하고 막대한 이익을 챙겼다. 이 때 그의 직책은 중국공산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 겸 중앙정법위원회 서기였다. 즉 최고 권력자 9명 중 한명이었으며 동시에 모든 공안, 정보, 법률기관의 수장이었다. 이권을 먼저 보고 장악할 수 있는 위치였다. 이와 유사한 사례는 부동산 개발, 국영기업의 민영화, 산업단지 개발 등에서 많다.
 
중국 권력층의 부정부패는 다른 나라와 달리 특이한 점이 있다. 이를 주도하는 세력은 역설적으로 공산 중국을 세운 혁명원로 2세들이다. 이들을 홍색귀족 또는 홍얼다이(紅二代), 그리고 태자당(太子黨)이라고도 한다. 앞서 예로 든 저우용캉은 홍색귀족들과 두터운 꽌시를 형성하고 있었다.

 

미국 블룸버그통신이 2012년 12월 26일 보도한 ‘중국 8대 원로집안’에 대한 특집 기사에 의하면, 8개 원로 등 중국 인구의 0.4%가 중국 전체 부를 70% 소유하고 있다고 한다. 심지어 시진핑 총서기의 친누나도 이 그룹에 해당한다. 큰 누나인 치차오차오(齊橋橋)와 매형인 덩자구이(鄧家貴)는 시진핑 주석이 최고 권력층인 상무위원에 오른 2007년부터 막대한 재산을 형성했다고 보도하고 있다. 시진핑이 타도대상으로 삼은 '호랑이' 부정부패일 수 있다.

 

중국에서는 지난 2008년 5월 쓰촨성 대지진 당시 지진 피해자들의 절망이 분노로 표출된 바 있다. 학교 붕괴로 자녀를 잃은 학부모들이 시 교육청을 찾아가 관리들이 뇌물을 받고 부실 공사를 방관했다며 격렬히 항의한 것이다. 그리고 1만여 명이 숨진 지역에서는 공무원들이 구호물자를 빼돌리다가 주민들에게 적발돼 이재민 수천 명이 시위를 벌였다. 시진핑이 언급한 '파리'에 해당하는 부정부패 사례다.

 

중국은 급격히 증대되고 구조화되는 부정부패의 문제점을 모르지 않으며, 방치할 경우 국가와 당이 위험해 질 수 있다는 점도 잘 알고 있다. 특히 후진타오와 시진핑 시대에는 부정부패를 척결하고자 관련 법을 제정했고 관련 기구를 설치하여 고위층과 말단 공무원 가리지 않고 처벌하고 있으며, 청렴 캠페인도 병행하고 있다.

 

예를 들면 돈세탁방지법(2007년), 행정감찰법(2010년), 형법 개정(2015년), 반부정당경쟁법 개정(2018년) 등 관련 법규를 제·개정했고, 국가예방부패국 설치(2007년), 공직자비리 제보 사이트 개설(2013년) 등 기구도 설치했다. 군대의 경우 선물이나 현금 수수 금지, 음주가 포함된 만찬 금지 등을 포함한 작풍건설 10대 지침(2012년)을 반포했고, 베이징 시에서는 업무 차 방문한 정부 관계자에게 연회대신 뷔페 형식의 식사 제공 등을 포함한 행동강령도 제정했다.

 

그리고 시진핑 시대에 들어서는 부정부패 혐의로 숙청중인 중앙부처 국장급 이상 고위 간부만 2만 7천명에 이르고 있다. 이런 시진핑의 노력은 어떤 결과를 보였을까? 중국에서는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그리고 민간사회 관계를 풍자한 말이 있다. “위에 정책이 있다면 아래는 대책이 있다(上有政策 下有對策).” 중앙정부의 지시가 지방이나 민간사회에 통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예를 하나 들어보자. 2021년 4월 중국 인터넷 언론 보도에 따르면 ,22년간 부정부패 단속업무를 해오던 헤이롱장(黑龍江)성 감찰국 공무원 류슈펀(柳淑芬)은 안다(安達) 시장으로 발령받은 후 6년간 119명으로부터 900만 위안(약 15억원)에 달하는 뇌물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부정부패에 누구라도 쉽게 합류할 수 있는 사회 분위기인 것이다.

 

독일 베를린에 본부를 둔 비정부기구인 국제투명성기구(TI)가 평가한 각국의 부패인식지수(CPI)를 보면 다음과 같다. 중국은 2014년 36점(100위)에서 2016년 40점(79위), 2017년에는 41점(77위)를 보여줬고, 2018년에는 39점(80위), 2019년 41점(80위)를 나타내고 있다. 그리고 작년 2020년에는 42점(78위)에 그치고 있다. 이 수치를 보면 시진핑 총서기가 부정부패 척결을 추진한 2013년 이후 중국의 부정부패는 크게 개선되었다고 볼 수 없다.

 

중국인들은 이러 이유를 “한 치마 속 두 다리(一條裙子內的兩腿)”라고 표현한다. 정치권력과 경제적 이권은 한 몸이라는 의미로 정경일체를 말하는 것이다. 고위층의 부정부패를 견제하고 감시해서 처벌할 수 있는 제도가 미흡하다는 것이다. 중국 내부에서도 독립된 사정기구, 민간 감시기구, 언론의 활성화 해법이 제시되고 있지만 공산당 1당 독재체제에서 수용하기 어려운 제도들이다.

 

또 다른 문제도 있다. 중국 내부에서는 시진핑의 부패척결에 대해 찬성하고 환호하지만 주로 정적 제거의 수단으로 사용되는 것에 대해서는 냉소적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저우용캉(周永康)과 보시라이(薄熙來) 처벌이다. 그들은 시진핑이 총서기로 선출되는 것을 반대했고, 후에 시진핑 제거 모의가 있었다는 사실도 전해진다.

 

중국 역사상 전성기 중 하나로 청나라의 강건성세(康乾盛世)를 들 수 있다. 강건성세를 열은 4대 황제 강희제는 6세에 황제가 돼 대신들의 부정부패를 보다 못해 할머니에게 물었다. “제국을 통치하기 위해서 도대체 부정부패를 어떻게 척결해야 합니까? 청태종 홍타이지(皇太極)의 부인인 효장문 황후의 답변은 “부정부패를 없앨 수 없으니 함께 가야 한다”고 답했다.

 

이처럼 모두가 부정부패와 함께하는 문화에 몸담고 있는 상황이어서 선별적으로 부정부패를 척결했다고 본다. 게다가 부정부패 척결이 정치적 목적으로 활용돼 ‘내편은 봐주고 남에게는 혹독한 것이 아니었다’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오늘날의 중국도 청나라와 다르지 않아 부정부패와 함께 갈 것이다.

 

임방순 인천대 외래교수 프로필 ▶ 미래문제연구원 초빙연구위원,  前 駐중국 한국대사관 육군무관, 대만 지휘참모대 졸업


김한경 총괄 에디터 겸 연구소장 기자 khopes58@securityfact.co.kr 이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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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 중국 알기 (15)] 중국 문화의 일부분 된 고위층의 ‘부정부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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