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2-01-2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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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풍전망대에서 바라본 임진강변의 노리고지와 좌측의 베티고지 일부 모습 [사진=김희철]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노리고지 쟁탈전 후에도 1사단은 317·199·박·백두산 고지 등 피아의 전초진지와 주요 감제 고지들을 둘러싼 중공군과의 공방전을 계속했다.

 

특히 적은 ‘53년6월 하순 서울에서 한창 벌어지고 있는 휴전 반대 데모와 들끓는 국민 여론의 기를 꺾어 보자는 정치적 의도를 가지고 서울에서 제일 가까운 국군 1사단 지역 내의 171·박·퀸 고지 등에 격렬한 포격을 앞세운 공격을 가해 왔다.

 

1953년5월3일, 1사단장으로 부임한 김동빈 준장이 전선을 돌아봤더니 171·퀸 고지 등을 맡은 15연대의 방어선이 약간 허술한 것을 발견했다.

 

그런데 미8군 정보에 의하면 적의 공격 방향이 이들 고지 쪽을 향하고 있다고 했다. 김 사단장은 미1군에서 트럭 40 대를 지원 받고 사단 본부 요원들까지 동원시켜 50m 폭의 철조망을 치는 등 15연대의 방어 진지를 재 강화시켰다.

 

6월25일 하오 4시께 작전 회의를 열고 있는데 갑자기 적 포탄 2발이 사단 본부 후방에 떨어졌다. 그때부터 적의 본격적인 포격이 시작됐는 데 김 사단장이 6·25 남침전쟁 동안 당한 포격 중에서 가장 심한 거였다고 회상했다.

 

중공군의 포격은 국군 1사단 쪽만 집중적으로 가해졌는데, 이것은 휴전을 반대하는 한국군의 사기를 꺾고 협정 조인에서 유리한 입장을 차지하려는 공산군 측의 속셈이었다. 이 일대 다른 유엔군 지역엔 전혀 적의 포격이 없었다.

 

당시 1사단 참모장 장춘권 대령(·예비역 육군 소장)은 다음과 같이 증언했다.

 

“우리는 적이 강 건너의 노리와 베티 고지를 공격해 올 것으로 추정하고 모든 포문을 그쪽으로 돌린 채 퀸 고지 쪽의 경계는 소홀히 했지요. 그러나 적은 이날 밤 임진강을 도하하여 퀸 고지로 달러 붙었어요. 완전히 적의 기습을 당한 셈이었지요”

 

어처구니없이 고지를 적에게 빼앗기고 말았는데 이에 대해서는 우리가 반성할 점이 많았다는 설명이다.

 

사실 당시 우리 지휘관들이나 사병들은 서울이 너무 가깝고 충분한 보급을 받고 있으니까 긴장감이 약간 풀려 있었다. 그래서 이 같은 적의 공격을 충분히 예상하고 있었으면서도 방어 태세를 제대로 못 갖췄다.

 

장 참모장이 얼마 전부터 일선 경계를 철저히 하고 철조망을 5중으로 쳐 놓으라고 독려를 했는데, 중공군이 공격한지 1시간만에 퀸 고지가 피탈됐다는 보고를 받고 지프로 달려나가 보니 연대 저항선의 철조망은 겨우 한 겹 뿐이었다.

 

물론 진지 구축에는 시간도 필요했고 또 당시 휴전 기운에 마음이 흔들리기도 했겠지만 방어준비가 미비한 것이 사실이었다. 화가 치민 장 참모장은 대대장을 군법 회의에 돌리라고 고함을 질렀다고 했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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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철의 전쟁사(112)] 구더기 득실한 적의 시체속에서 불사신의 곡예를 보여준 노리고지전투 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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