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1-11-3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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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시 1사단 참모장이었던 장춘권 대령(예비역 육군 소장)과 태풍전망대에서 본 좌측부터 베티고지와 노리고지, 임진강 모습 [사진=국가보훈처/김희철]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당시 1사단 12연대 3대대 작전관 한효석 중위는 “원래 퀸 고지는 미7사단 1개 중대가 방어를 하고 있다가 중공군에 빼앗겼던 것을 우리 한국군이 다시 탈환해서 2개 중대 병력이 방어하고 있었다”고 증언했다.

 

중공군은 한동안 잠잠하더니 그 사이에 고지 밑으로 땅굴을 파고 들어와 대대 병력을 은폐시켰다가 ‘53년 6월25일 기습을 감행했다. 고지의 아군들은 밤에 중공군이 땅속을 파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렸지만 대단하게 여기질 않았다.

 

기습을 당한 아군은 상당수가 포로가 됐고 중대장도 한 명만 살아 남았다. 199고지의 3대대 관측소(OP)로 올라온 그 중대장은 온몸이 피투성인 채 김자열 대대장을 붙들고 울면서 기습을 받은 당시 상황을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그는 중대 관측소(OP) 참호 속에 있다가 중공군이 올라 오길래 입구를 연락병과 함께 막아 버리고 이틀 동안 숨어 지내다가 다시 옆으로 굴을 뚫고 빠져 나왔다고 했다. 새벽에 호 속에서 뛰어 나와 고지 밑으로 마구 뒹굴어 내려오는데 적의 집중 사격을 받아 연락병은 전사하고 자기만 살았다며 울먹였다.

 

이후부터 1사단은 중공군의 ‘두더지 작전’을 막기 위해 수색을 고지 밑까지 철저히 했다.

 

한편 15연대 전초진지였던 171과 퀸 고지를 중공군에게 뺏긴 뒤에 테일러 미8군사령관이 독전하기 위해 사단사령부로 달려왔다. 테일러 장군은 “퀸 고지를 탈환할 생각은 말고 현 방어선을 지키기만 하라”고 명령했다.

 

따라서 1사단은 탈환전을 단념하고 방어선을 구축해 주 저항선을 지키는데 힘을 기울였다.

 

김동빈 사단장은 중공군들을 기만하기 위해 우선 첫째로 퀸 고지에서 주 저항선에 이어지는 산허리를 잘라 도랑을 깊게 파 지뢰를 매설해 놓았고, 두번째로 야간에는 지프 25대를 동원하여 올라갈 때는 라이트를 켜고 내려 올 때는 끄게 하면서 1백m 간격으로 계속 돌게 하여 우리 방어 진지에 대한 대량 보급을 하는 것처럼 위장했다.

 

마지막으로는 고지마다 1개 분대씩의 병력을 올려 보내 작업을 시켜 후방 진지 공사가 활발한 것처럼 기만해서 감히 적들이 달려들지 못하도록 겁을 줬다.

 

철통 방어준비를 한 것처럼 활동한 위장 및 기만전술에 속아 넘어간 중공군은 공격 방향을 서쪽 11연대 정면으로 바꾸었고, 이때 10배 넘는 적의 공격을 끝까지 방어하며 기적적으로 격퇴시켜 6·25남침전쟁사에 찬란히 기록된 베티고지 영웅 김만술 소위의 무용담이 탄생했다.

 

하지만 퀸 고지를 빼앗기고 얼마 안돼 노리고지도 적의 수중으로 넘어가 버린 채 아쉽게도 휴전협정이 조인되고 말았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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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철의 전쟁사(113)] 구더기 득실한 적의 시체속에서 불사신의 곡예를 보여준 노리고지전투 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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