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3-06-09(금)
 

이 글은 현역대령이 나이가 지긋한 아저씨 3명과 함께 배낭을 메고 DMZ를 따라 걸은 이야기다. 이들은 한 걷기 모임에서 만난 사이로 당시 전역을 앞둔 56세의 안철주 대령과 60대 1명, 70대 2명이다. 2013년 8월 파주 임진각을 출발하여 고성 통일전망대까지 12일 동안 걸으면서 이들이 느낀 6·25 전쟁의 아픈 상처와 평화통일의 염원 그리고 아름다운 산하와 따스한 사람들에 관한 얘기를 시리즈로 연재한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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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28일 종주 간 용대리 지역에서 길을 잘못 들어 고생하다가 냇가 근처 나무 그늘에서 더위를 피해 친구들과 어울리는 분들에게 매운탕과 소주를 대접받았다. [사진=안철주 박사]

 

[시큐리티팩트=안철주 박사] 8월 28일, 종주를 시작한지 10일째다. 오늘은 원통리에 위치한 을지회관을 출발하여 한계리, 남교리를 거쳐 용대리의 설악산림 수련관까지 약 28㎞를 걸었다. 인제군 북면은 면사무소가 있는 원통리의 ‘원통’이란 이름이 더 유명하다. 북면은 동해안으로 접근하는 관문으로 진부령을 넘으면 고성군, 미시령을 넘으면 속초시, 한계령을 넘으면 양양군과 연결된다. 인제에는 향로봉, 서화계곡, 노전평 지구, 백담사, 만해 마을 등이 있다.

 

5시경에 컵라면과 어제 정전택님이 가져온 햇반, 김, 몇 가지 반찬을 곁들여 아침식사를 하고 6시경 숙소를 출발했다. 조금 걷다 보니 원통리 표지석이 보였다. 표지석에는 ‘원산으로 가는 통로’라는 의미로 원통이 정해졌고, 조선시대에 원통역(驛)이 있었다고 적혀 있다. 당시에는 대체로 30리마다 역(驛)을 운용했다. 역은 말을 이용해 국가 교통 및 통신 기능을 수행했던 곳이나, 근대적인 통신 제도와 교통수단의 출현으로 1896년에 사라졌다.

 

하천을 따라 백담사 입구 마을까지 약 5시간 정도 걸었다. 걷는 동안 정자문, 12선녀탕 계곡 입구, 용대초등학교, 백담사 입구를 지나 용대삼거리까지 걸었다. 용대리 지역은 상당히 넓어  도중에 길을 잘못 들어 고생도 했다. 하지만 그 덕분에 냇가 커다란 나무 그늘에서 더위를 피해 친구들과 어울리는 분들에게 매운탕과 소주도 몇 잔 대접받았다.

 

여기저기에 군락을 이루며 아름다운 모습을 자랑하는 설화초(설악초)도 보였다. 식물에 관해 박식한 한 단원이 “이 꽃은 눈이 내린 것처럼 하얗고 잎 색깔도 눈꽃처럼 하얗게 변해 설화초로 불린다”고 설명했다. 설화초의 꽃말은 ‘환영과 축복’인데, 이곳에 오는 사람들을 환영하는 의미로 심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백담사 입구 마을에서 깔끔한 중국집을 찾아 짜장면을 먹은 후 공기 좋은 휴양림 콘도에서 묵는다는 즐거움에 부지런히 걸어서 용대자연휴양림에 도착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안내 데스크에서 예약된 방을 찾았다. 그런데 안내 데스크 근무자는 예약자 명단에 내 이름이 없다고 했다. 예약했다던 지인의 이름도 없어서 순간 아주 당황스러웠다.

 

오늘 묵는 숙소가 예약된 사연은 다음과 같다. 사전 답사를 하면서 숙소를 정하고 예약 했는데, 10일째 숙소는 고성 통일전망대까지 남아있는 거리와 일자를 고려하니 용대리가 적절했다. 그러나 마땅한 숙소를 발견할 수 없어 고민하다가 휴양림에 숙박시설이 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지푸라기도 잡는 심정으로 당시 산림청에 근무하는 지인에게 전화해 사정을 설명하고 도움을 요청했다.

 

지인은 예약이 가능한지 알아보겠다고 했고, 며칠 후 수련관이 예약됐다는 연락과 함께 전화번호도 받았다. 이런 과정을 거쳐 용대리 지역의 숙소 문제가 해결된 것이다. 그런데 예약자 명부에 이름이 없다는 것이다. 지인으로부터 받은 전화번호로 연락해 보니 예약된 숙소는 지금 우리가 있는 진부령 근처가 아니라 미시령 근처라고 했다.

 

이곳 사정을 잘 모르는 필자가 용대리라는 말만 듣고 이곳에 비슷한 시설이 2군데라는 것은  생각하지 못했다. 예약된 숙소는 10㎞ 이상 떨어져 있었고, 대중교통도 없는 상황이었다. 미시령 근처 수련관을 관리하는 분께 우리의 상황을 설명하고 부탁을 드렸더니 고맙게도 차를 몰고 와주셨다. 덕분에 편하게 미시령 옛길 관광도 하며 오후 5시경 숙소인 설악산림 수련관에 도착했다. 콘도 형태로 시설을 갖춘 깔끔한 공간이었다.

 

우리가 오늘 걸은 인제군 일대는 6·25전쟁 시 향로봉 전투와 노전평 전투가 있었던 지역이다. 향로봉 전투는 맹호부대가 1951년 3월 7일부터 그해 7월 9일까지 중공군과 벌인 전투다. 중공군은 중동부지역의 요충인 인제를 확보하기 위해 견고한 진지를 구축하고 부대를 증원하여 설악산과 향로봉 일대를 여러 차례 공격했다. 그러나 맹호부대는 이를 격퇴하고 설악산 및 향로봉을 확보하는데 성공했다.

 

서화 계곡의 노전평 부근에서는 1951년 8월 초순부터 1953년 7월 휴전 성립 직전까지 장기간 고지 쟁탈전이 벌어졌다. 당시 8사단은 인제 서화리 축선과 인접한 고지군을 차지하기 위해 요충지인 노전평을 점령했다. 이 전투에서 8사단은 승리했지만 전사 90명, 부상 536명, 실종 17명 등 피해도 컸다. 노전평 전투에서 전사한 90명 중 한 명일 것으로 추측되는 전사자의 아내가 말한 사연이 문득 생각나 마음이 아팠다.

 

지난 2017년 10월 24일 뉴스1은 ‘66년 만에 가족 품으로 돌아오다’라는 기사를 실었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은 6.25전쟁 중이던 1951년 8월 8사단 10연대 소속으로 노전평 전투에서 전사한 김창헌 일병(1924년생)의 부인 황용녀(94)씨 자택을 방문해 전사자 신분확인 통지서와 유해 수습 시 관을 덮었던 태극기 그리고 발굴된 인식표와 도장 등 유품을 전했다. 고인은 노전평 전투 중 적의 총탄을 맞은 것으로 추정되며 28세의 나이에 전사했다.

 

부인 황씨는 “남편이 자원입대 했을 때 임신 중이었고 남편도 임신한 사실을 알았다”며 “남편은 태중의 아이를 남자로 생각해 ‘김인석’이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전쟁터로 떠났다”고 했다. 남편이 떠나고 10일 후 딸이 태어나자 황씨는 “남편이 소중하게 지어준 아이 이름을 바꿀 수 없어 그대로 쓰기로 했다”고 말했다. 그는 “보따리 장사와 노점상을 하며 홀로 딸을 키웠는데, 이제라도 남편의 유해를 찾아 만나볼 수 있어 너무 감격스럽다”며 눈물을 흘렸다.

 

딸의 얼굴도 보지 못하고 사랑하는 아내와 딸을 남기고 산화한 젊은이, 60여년을 홀로 살며 딸을 키워 할머니가 된 여인, 남편의 얼굴이 아닌 유해를 만나는 것으로라도 감격스러워하는 여인, 딸 바보였을 아버지의 사랑을 받지 못함은 물론 아버지 얼굴조차 모르는 딸…. 그 삶이 어떠했을지 지금 생각해도 가슴이 먹먹해진다.

 

6·25전쟁 시 한국군 사망자(실종자 포함)는 60만 9천여명이라고 한다. 이 분들은 자유와 평화를 수호하기 위해 그리고 후손들에게 자유 대한민국을 남겨주기 위해 목숨을 바치셨다. 우리는 이분들에게 감사해야 하고 경의를 표해야 한다. 그리고 그들의 유족들에게 보답도 해야 한다. 하지만 천안함 전사자를 포함해 국토방위 임무를 수행하다 순국한 분들을 대하는 일부 위정자들의 모습과 태도에 안타까움과 함께 분노가 느껴진다.

 

숙소에 도착한 후 그동안 많이 가벼워진 배낭의 짐을 풀고 땀 냄새가 진동하는 옷부터 빨았다. 관리하는 분이 짤순이를 돌려 빨래의 물기를 빼 주셔서 저녁 햇볕에도 잘 말랐다. 숙소에서 가까운 봉평 메밀 막국수 집에서 저녁을 먹었다. 음식점 건물은 노부부의 큰아들이 부모님을 위해 특별히 설계했다는데, 민박도 받는 방 내부는 깔끔했고 노래방기기도 있었다. 노래를 좋아하는 주인과 함께 어울려 노래를 부르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오늘 숙소 변경 문제로 많이 당황했던 것을 생각하며 내일 묵을 숙소에 전화를 걸어 예약 상태를 다시 확인했다. 집을 떠나온 지 열흘이 지났고, 이제 종주 일정은 2일 남았다. 한 방에서 넷이 묵었지만, 설악산의 맑은 공기를 느끼며 편하게 잠자리에 들었다.


안철주 심리경영학 박사 프로필 ▶ 예비역 육군대령. 대한민국 걷기지도자로 100㎞ 걷기대회를 7회 완보한 ‘그랜드슬래머’이며, 스페인 순례길인 ‘까미노 데 산티아고’를 완주한 걷기 애호가

 

김한경 총괄 에디터 겸 연구소장 기자 khopes58@securityfact.co.kr 이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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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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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숙

인석이 아버지 어머니 사연이 이디 이분들 뿐이겠는지요...ㅠ
안박사님의 종주기를 통해 다시한번 상기하게 되네요
우리 후손들은 전쟁을 겪지말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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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역대령의 DMZ 종주기(13)] 향로봉·노전평 전투 지역 지나며 전사자 부인 사연에 가슴이 먹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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