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1-11-3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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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도 양평군 용문면 신점리에 소재한 ‘용문산지구 전적비’와 중공군 제 5차공세(’51.5.16~5.20)시 공격로와 아군 배치 상황도 [사진=국방부/김희철]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용문산 전투에서 대승한 국군 6사단이 속해있던 호그의 미 9군단은 화천(파로호)쪽으로 진격할 예정이었다. 미 10군단이 반격을 시작하면 중공군은 화천으로 철수하게 될 것인데, 미 9군단이 화천을 점령하게 되면 중공군을 포위망에 가둘 수가 있었다. 


5월20일 호그의 미 9군단이 공격을 시작했고, 23일에는 알몬드의 미 10군단도 반격을 시작했다.


미군은 모르고 있었지만 중공군은 능력을 초과하여 병참선이 신장돼 있었다. 따라서 지역을 쟁취하고 수천 명의 한국군을 격파했으나 그들이 입은 피해 또한 막심했다. 이로 인해 생존자들은 지쳐있었고 탄약과 식량도 거의 바닥난 상태였다.

 

5월20일부터 서부의 미 1, 9군단이 용문산 및 파로호 전투 등에서 연이은 쾌승으로 중공군에게 기습적인 타격을 가했다. 23일부터는 중동부의 미 10군단까지 공세로 전환하자 펑더화이는 전선이 불리함을 인식하게 되었다. 유엔군은 동서해의 제해권과 함께 제공권도 다시 확보했다.


드디어 유엔군은 신속한 반격으로 문산 북방 임진강까지 도달했으며, 5월 말이 되자 유엔군은 중공군의 4월 춘계공세에서 빼앗긴 전선 대부분을 회복하였다. 이로써 유엔군은 거의 현재의 휴전선까지 북진한 유리한 상황에서 협상을 기다릴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중공군이 6차에 걸친 공세를 펼쳤지만 스스로 더 이상 대규모 공세를 치를 능력이 없음을 인식하고 마오쩌둥은 중공군에게 지구전으로 전환할 것을 명령했다.


펑더화이는 이제 지구전에 앞서 38선 부근의 방어를 지상방어에서 지하방어로 전환하지 않으면 안 되었고, 이에 따라 38선 부근에 대규모의 지하방어 시설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한편 미 8군 사령관 밴 플리트 장군은 6월 1일, 한반도를 횡으로 가로지르는 강력한 방어선 구축을 결심했다. 그는 ‘철의 삼각지’ 모두를 점령하려던 계획을 수정하여 삼각형의 저변 두 지점인 철원, 금화 점령을 목표로 하였다.


‘철의 삼각지’는 평강(현재 북한지역)을 꼭지점으로 하고 서측의 철원, 동측의 금화를 삼각형 밑의 두 꼭지점으로 하는 지역으로, 중요한 교통로들이 통과하는 중부전선의 군사적 요충지였다. 공산군과 유엔군 양측 모두에게 중요한 지역이었고 공격하기는 불리하고 방어에는 유리한 곳이었다.


원래 미 8군 사령관 밴 플리트 장군은 원산으로의 상륙작전을 계획하고 있었지만 이 작전은 유엔군 사령관 리지웨이 장군에 의해 거부되었고, 대신 리지웨이와 밴 플리트는 ‘철의 삼각지’를 점령하고 화천 저수지 동쪽의 펀치볼 지대를 공격한다는 새로운 계획을 세웠다. 


이로써 병법의 기본은 속전속결(速戰速決)로 빠르게 싸우고 빠르게 끝내는 것이었으나, 반대로 교착된 중부전선에서의 지루하고 피비린내 나는 고지전의 격전과 답답한 휴전협정 진행이 예고되었다.(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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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철 프로필▶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군인공제회 관리부문 부이사장(2014~‘17년), 청와대 국가안보실 위기관리비서관(2013년 전역), 육군본부 정책실장(2011년 소장진급) / 주요 저서 : 충북지역전사(우리문화사, 2000), 비겁한 평화는 없다 (알에이치코리아,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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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철의 전쟁사(115)] 이승만의 ‘반공포로 석방’과 ‘한미방위조약체결’ ②마오쩌둥, 고지 위주 지구전 전환 명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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