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1-11-30(화)
 


리지밴플리트.png
▲ 좌측 6·25남침전쟁 중 워커 장군의 순직으로 한국 전선에 부임한 미 8군사령관 리지웨이 장군이 이승만 대통령을 방문한 모습과 우측 맥아더 후임으로 유엔군사령관으로 승진한 리지웨이 장군 모습 [사진=(사)월드피스자유연합‘생명의 항해’]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피비린내 나는 고지전이 계속되는 가운데 유엔군과 공산군측 간에는 포로교환 협상 등 휴전회담 신경전도 지속되었다.


이때 이승만 대통령은 휴전이야말로 한국에 대한 사형집행 영장이자 분단의 고착화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는 그로서는 휴전에 결사반대할 수밖에 없었다. 


소련 스탈린의 사주로 6.25남침전쟁이 발발하자 세계 평화를 위해 미군과 유엔군이 참전했다. 그리고 인천상륙작전으로 전세를 역전시켜 한반도 통일을 눈앞에 바라보기도 했었으나, 중공군의 불법 참전으로 다시 밀려 1.4후퇴시에는 수도 서울을 다시 한 번 내주었다. 


한때 유엔군은 평택과 안성을 잇는 37도선까지 밀렸고, 미국은 한국 정부를 제주도나 사모아로 옮길 것까지도 검토했었다. 


허나 이 대통령은 절대 떠나지 않을 것이며 또한 절대 물러서지 않을 것임을 천명했다. 맥아더의 후임 리지웨이 유엔군사령관은 이승만 대통령의 확고한 의지에 감격하여 “나는 여기에 머물기 위해 왔다”는 말로 더 이상 후퇴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강력하게 밝혔다. 


그 후 38도선을 중심으로 공방전이 계속되었지만, 인명피해만 계속될 뿐 어느 누구도 확실한 승기를 잡을 수 없었다. 


미국 등 유엔 참전국들은 중공군의 개입으로 한반도에서 군사적 승리가 불가능하다는 판단을 내리고 어떻게 하면 명분 있는 휴전을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게 되었다. 


미국을 비롯한 유엔 참전국들도 전쟁이 계속되는 것에 대해 국내 여론이 좋지 않게 형성되고 있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국내 여론의 악화는 정치인들로서는 외면할 수 없는 크나큰 압력이다. 


이러한 미국내 여론의 악화에 따른 휴전을 반대하는 인물은 단 한 사람 이승만 뿐이었다. 이승만 대통령은 1952년 전미 시장(市長) 회의에서의 녹음 연설에서 이렇게 말했다. 


“공산 침략은 우리가 그것을 패퇴시키거나 우리가 패퇴하던가 둘 중 하나이지 그 사이에 타협적인 해결책은 있을 수 없다......90만이나 되는 공산군이 북한에 남게 된다면 그것은 공산 측의 승리”리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미국 등 유엔군이 빠지더라도 한국 단독으로라도 북진통일을 하겠다고 공언했다.


이에 미국 언론은 이승만을 ‘칼을 품고 춤추는 늙은 고집쟁이’라는 등의 말로 비난했다. 휴전을 원하는 것은 유엔군 측만은 아니었고, 대한민국을 제외한 모든 관련 당사국들이 원하는 것이었다. 


사정이 이러했기 때문에 이 대통령은 우방들의 지지를 얻지 못한 것은 물론 전 세계로부터 비난의 화살을 받아야만 했다.


그러나 이승만 대통령은 휴전에 대해 “자유와 공산주의는 반대되는 개념이다. 이 둘은 결합될 수 없고 공산주의와의 타협은 불가능하다. 그것은 물과 기름을 혼합하려는 것과 다름없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판문점에서 시도되고 있는 휴전은 본질적으로 잘못된 것이다. 그 휴전은 세계를 양립할 수 없는 지역으로 갈라놓은 깊은 구조적 균열을 땜질하려는 시도이므로 온전한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다음편 계속)

 


1-7.png

 

◀김희철 프로필▶ 현재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군인공제회 관리부문 부이사장(2014~‘17년), 청와대 국가안보실 위기관리비서관(2013년 전역), 육군본부 정책실장(2011년 소장진급) / 주요 저서 : 충북지역전사(우리문화사, 2000), 비겁한 평화는 없다 (알에이치코리아, 2016)


태그

전체댓글 0

  • 99076
비밀번호 :
메일보내기닫기
기사제목
[김희철의 전쟁사(117)] 이승만의 ‘반공포로 석방’과 ‘한미방위조약체결’ ④미국 언론, 이승만을 ‘칼을 품고 춤추는 늙은 고집쟁이’로 비난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