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10-10(목)
 

오늘날 우리가 당면한 국제적 이슈 중 하나는 ‘중국과 어떠한 관계를 설정해야 하는가’이다. 즉 한·중 관계는 우리의 노력 여하에 따라 갈등보다 상생의 우호관계로 발전할 수 있으며, 이를 위해선 중국을 제대로 아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시큐리티팩트는 이런 취지에서 중국 공산당과 중국 군대를 알아보는 [숨은 중국 알기] 시리즈를 시작한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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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년 7월 11일  ‘중북 안보조약’ 체결 후 김일성과 저우언라이가 조약문을 교환 하는 모습. [사진=중국 바이두 캡처]

 

[시큐리티팩트=임방순 인천대 외래교수] 북한과 중국을 동맹으로 묶어주는 것은 ‘중북 우호협력 및 상호원조조약’(이후 중북 안보조약)이다. 지난 7월 11일은 조약 체결 60주년 기념일이면서 20년 단위의 유효기간이 자동 연장되는 시점이었다. “어느 일방의 폐기 요청이 없으면 자동 연장된다”라는 조약 7조에 따른 것이다. 중국과 북한은 상호 친서교환으로 60주년을 축하하면서 향후 2041년까지 유효기간을 자동 연장시켰다.

 

북한이 핵실험을 강행했을 때 중국에서 북한이 전략적 부담이라고 주장한 일부 학자들이 있었다. 북한을 비난하는 국제사회의 여론에 동참하자니 북한이 반발하고, 북한을 두둔하자니 책임 있는 대국으로서 위상에 손상이 갈 뿐만 아니라, 불량국가를 감싼다는 국제사회의 비판에 대응할 명분이 약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중북 안보조약’을 폐기해야 된다고 주장했지만, 미·중 패권경쟁이 격화되는 상황이어서 이런 소수 의견은 아예 사라져 버렸다.

 

북한 또한 아무리 중북관계가 악화된 경우라도 조약 폐기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언급이 없었다. 이와 같이 중국과 북한은 모두 이 조약이 자국에게 도움이 된다고 판단하고 있다. 오늘은 ‘중북 안보조약’에 대한 이야기로서, 최명해의 ‘중국·북한 동맹관계-불편한 동거의 역사’라는 책에서 주요 개념을 발췌해 인용했음을 밝힌다.

 

최명해는 두 가지 의문점에서 출발하여 중북 안보조약을 설명하고 있다. 첫째는 ‘조약이 왜 1961년에 체결됐는가’이고, 둘째는 ‘조약에 가상적이 불명확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이 조약의 특징인 소위 ‘자동개입 조항’에 대한 해석도 덧붙이고 있다.

 

첫째, 중북 안보조약이 체결된 1961년은 중국군이 북한에서 철수한 1958년 이후부터 3년이 경과한 시점이다. 이 기간은 북한에게 한미상호방위조약에 대응할 동맹체제가 형성되지 않은 안보 공백기였다. 북한은 중국 및 소련과 안보조약이 필요했다. 북한은 6.25전쟁 이전인 1949년부터 중국에게 동맹조약 체결을 요청했지만 중국은 미국을 자극할 우려가 있다면서 북한의 요구를 거부해왔다.

 

그렇지만 중·소 분쟁이 점차 심각해지면서 북한이 소련 쪽으로 기울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중국을 움직였다. 중국 입장에서는 북한의 요구대로 미제의 침략에 함께 맞서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북한이 소련과 손잡고 중국을 위협하는 상황을 사전 방지하는 것이 더욱 시급했다. 즉 북한의 행보를 통제할 필요를 느낀 것이다.

 

조약에는 중국과 북한의 요구가 모두 반영돼 있다. 북한의 요구는 ‘자동개입’ 조항으로 알려진 2조에 담겨있다. 이 조항은 “일방이 어떠한 한 개의 국가 또는 몇 개 국가들의 연합으로부터 무력 침공을 당해 전쟁 상태에 처하게 되는 경우, 체약 상대방은 모든 힘을 다하여 지체 없이 군사적 및 기타 원조를 제공한다”라는 내용이다. 이 조항에 자동개입이란 표현은 없지만, 군사지원의 자동성과 즉응성을 밝히고 있다. 

 

중국의 요구는 3조와 4조에 명시돼 있다. 3조는 “체약 쌍방은 체약 상대방을 반대하는 어떠한 동맹도 체결하지 않으며, 체약 상대방을 반대하는 어떠한 집단과 조직, 어떠한 행동에도 참가하지 않는다”로 소련과 협력하지 말라는 의미다. 4조는 “체약 쌍방은 양국의 공동 이익과 관련되는 일체 중요한 국제 문제들에 대하여 계속 협의한다”로 사전에 중국과 협의하라는 의미다. 6.25전쟁에 끌려들어간 경험 때문에 북한의 행보를 사전 통제할 필요성을 느낀 것이다.

 

강대국이 약소국과 맺은 안보조약 중 자동개입과 관련해 이렇게 강한 표현은 드물다. 강대국은 약소국 문제로 행동이 제한받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국은 소련과 먼저 조약을 체결하고 베이징에 온 김일성에게 ‘북소 안보조약’보다 더 확실한 약속을 해야 북한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일 수 있다고 판단했다.

 

북소 안보조약은 제1조에 “체약국은 ... 평화와 안전의 보장을 목적으로... 전쟁 상태에 처하게 되었을 경우, 지체 없이 군사적 및 기타원조를 제공한다”라고 평화와 안전의 보장이라는 전제조건을 붙이고 있다. 그래서 중국은 이런 전제조건 없이 무력침공을 당하면 자동개입이 되도록 표현한 것이다. 하지만 덩샤오핑은 “북한이 먼저 공격하여 반격을 받을 경우는 제외한다”라고 자동개입에 관해 언급한 바 있다.

 

둘째, 조약에서 설정하고 있는 ‘가상적은 누구인가’이다. 동맹 형성의 전제조건은 공동 위협에 대한 공동 대응인데, 조약상에 가상적은 명시돼 있지 않다. 1950년 2월 14일 체결된 ‘중·소 우호협력조약’에도 “일본국 또는 일본과 침략행위에 있어서 연합하는 다른 국가”로 가상적을 명시했고, 소련이 동구권 국가와 체결한 조약에도 ‘히틀러주의의 침략자’로 명확하다. 중국이 미국을 가상적으로 명시한다면 미국과의 관계에 한계를 설정하는 우를 범하는 것이다.

 

최명해는 조약체결 형식에도 의문을 제시한다. 보통 강대국과 약소국 간의 안보조약은 강대국의 지도자가 약소국 수도에서 약소국에 대한 안보의지를 밝히며 체결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이 조약은 베이징에서 체결됐다. 김일성이 소련과 이와 유사한 ‘북소 안보조약’을 1961년 7월 6일 체결한 다음 귀국길에 중국 베이징을 들러 7월 11일 저우언라이와 체결한 것이다. 평양에서 북한에 대한 안보지원 의지를 대내외에 선포하는 것과는 차이가 있었다.

 

금년도 조약체결 60주년을 기념하면서 김정은과 시진핑 총서기가 주고받은 친서내용을 보면 이러한 관점이 명확하다. 김정은은 친서에서 적대세력의 도전과 방해 책동이 보다 악랄해지고 있다며 ‘적대세력’을 강조했다. 하지만 시진핑은 적대세력이라는 표현 없이 ‘전략적 의사소통’을 강화해 나가자고 제안했다.

 

친서 내용 속에 조약을 체결한 목적이 그대로 드러난다. 북한은 ‘적대세력에 대한 대응’이 목적이었다면 중국은 ‘전략적 의사소통’으로 북한의 행보를 사전 통제하려는 속셈이 담겨 있다. 역대 중북 정상회담에서 중국이 매번 ‘전략적 소통’을 강조하는 것은 이러한 연유가 있기 때문이다.

 

임방순 인천대 외래교수 프로필 ▶ 미래문제연구원 초빙연구위원,  前 駐중국 한국대사관 육군무관, 대만 지휘참모대 졸업

 

김한경 총괄 에디터 겸 연구소장 기자 khopes58@securityfact.co.kr 이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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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야이긴다

머리에 쏙쏙!!. 많이 배우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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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 중국 알기 (19)] 중북 안보조약, 북한의 행보 사전 통제하려는 ‘전략적 소통’이 목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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