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29(수)
 

오늘날 우리가 당면한 국제적 이슈 중 하나는 ‘중국과 어떠한 관계를 설정해야 하는가’이다. 즉 한·중 관계는 우리의 노력 여하에 따라 갈등보다 상생의 우호관계로 발전할 수 있으며, 이를 위해선 중국을 제대로 아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시큐리티팩트는 이런 취지에서 중국 공산당과 중국 군대를 알아보는 [숨은 중국 알기] 시리즈를 시작한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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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4년 7월 18일 한규철 경성대학교 사학과 교수가 국회에서 열린 동북아 역사왜곡대책 특별위원회의 ‘중국의 동북공정 현황과 과제’에 대한 공청회에서 주제발표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시큐리티팩트=임방순 인천대 외래교수] 필자가 중국에 근무하던 시절 업무시간 이외에 개인적으로 만주지방에 자주 갔었다. 안시성, 봉황성 등 고구려 산성을 포함하여 고구려 및 발해 유적지를 다수 찾아보았다. 안시성이라고 추정되는 지역을 갈 때는 그 지역 주민인 것처럼 자연스럽게 행동하여야 한다는 조언에 따라 밀짚모자 쓰고 편안한 복장으로 주위를 살피며 다녔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베이징 부근의 지방도로를 가다가 高麗라는 지명을 만났다. 필자는 근거는 불명확하지만 ‘고구려 군대가 패주하는 당태종을 베이징 부근까지 몰아부쳤다’라는 어디선가 읽은 기억을 떠올리며 반가운 마음에 곧바로 읍사무소에 들러 지명의 유래에 대해 설명을 부탁했다. 그랬더니 “당신 같은 사람이 많이 와서 똑 같이 말한다. 이 지역은 당신네 고구려하고는 아무 관계가 없으니 설명해줄 역사적 사실도 없다”라는 답을 들었다.

 

2002~2004년 당시 현지에서 볼 때에 우리가 알고 있는 중국에 산재한 한국 역사는 중국의 역사가 돼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국에서는 7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만리장성 이북지역은 자신들의 역사에 포함시키지 않았다고 한다. 역사 교과서에서도 고구려와 발해를 한국사로 분류했고, 저우언라이 총리는 하나의 역사를 두 개로 해석해 적용한다는 ‘일사양용(一史兩用)’을 제시했다.

 

즉 고구려는 한국의 역사이자 동시에 중국의 역사라는 것이다. 또 다른 해석은 고구려 수도가 집안(集安)이었던 초기에는 중국의 역사이고, 평양으로 천도한 후기에는 한국의 역사라는 것이다. 아무튼 이때까지도 만주지역에 우리 역사의 흔적은 남아있었다. 그러나 중국이 2002년부터 중앙정부 차원에서 전개한 동북공정 이후에는 달라졌다. 오늘은 동북공정에 대해 이야기하겠다.

 

동북공정은 중국이 시행한 여러 가지 공정 중 하나이다. 목적은 자신들이 선포한 영토 내에서 분리 독립의 움직임을 사전 차단하고 다민족 통일국가로서 중국의 정체성을 확고히 하겠다는 것이다. 이 공정은 중국이 한·중 수교 이후 조선족 사회가 한국과 만나면서 시작된 동요에 대한 대처의 성격이 있다. 1992년 한·중 수교 이후 조선족 사회는 한국에 대한 호기심과 기대, 동경이 어우러져서 한국쏠림 현상이 발생했다.

 

한국방문에 대한 열망을 포함하여 한국방송 청취 열풍도 일었다. 중국 당국은 이런 현상을 방관할 수 없었다. 잠시 동안이지만 한국방송 통제조치가 있었다고 들었다. 한국 관광객들이 백두산 천지에서 공공연히 ‘대한민국 만세’를 외치고, 태극기를 앞세우고 단체 기념촬영을 하는 현상을 중국 당국은 심각하게 인식했다.

 

만주지방을 여행하는 한국인들이 “이 지역은 한국의 고토이고 고구려와 발해의 역사는 우리 역사“라는 속마음을 밝힐 때, 중국 당국은 당혹했고 ”언젠가는 수복해야 한다“라는 다소 허황된 소리가 나올 때마다 중국은 기겁하면서 위기감도 느꼈다고 한다. 중국 소수민족의 하나인 조선족이 분리 독립을 주장하거나 한국과 연대를 추진한다면 이건 중국의 정체성과 안보에 큰 위협인 것이다.

 

조선족의 움직임에 자극을 받아 내몽골이나 티베트, 신장 위구르 등 변방의 주요 소수민족이 동일한 요구를 해온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소수민족은 중국영토의 64%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이때 북한도 한몫 거들었다. 북한은 중국이 동북공정을 추진하고 있던 2002년에 고구려 고분을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재를 신청했다. 중국은 가만히 있지 않았다. 일단 북한 단독 등재를 보류시키고 오히려 2003년 자기들이 단독으로 등재 신청을 했다.

 

이 때 남북한은 한마음으로 중국의 단독 등재를 저지시켰다. 결국 그 다음해인 2004년 고구려 유적은 북한과 중국 공동으로 등재하게 됐다. 북한의 5개 지역 고분 63기는 북한이 담당하고, 중국지역의 53개 유산은 중국이 관리하도록 결정된 것이다. 이 결정에 대해 반쪽이라도 지켜 다행인지, 아니면 반쪽을 잃어 애통한 것인지 의견이 분분했다.

 

이어서 북한은 중국의 동북공정에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다가 2007년 동북공정과 관련된 내용을 수록한 '고구려 이야기'를 발간했다. 그러나 이 책은 중국을 의식해 종전의 입장에서 많이 후퇴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고구려 이야기’는 서문에서 ‘최근 사람들 속에 고구려사에 대한 관심이 높아가고 있는 현실을 반영하여…’라는 식으로 고구려사를 둘러싼 중국과의 갈등을 에둘러 표현했다.

 

반면, 북한 학계가 자랑스러운 역사로 다루어온 고구려의 대 수·당 전쟁 관련 대목은 대폭 축소시켰다. 동북공정이 본격화되기 이전인 2000년 북한 사회과학원이 출간한 ‘고구려사의 제(諸)문제’의 경우 대 수·당 전쟁을 ‘수나라의 침략을 반대한 투쟁’과 ‘당나라의 침략을 반대한 투쟁’으로 직설적으로 표기했으나, ‘고구려 이야기’에서는 살수와 안시성이라고 간접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북한과 달리 우리 국민의 대응은 그야말로 거국적이었다. ‘고구려사를 지키자’라는 민족적인 명분에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한 마음 한 목소리였다. 이러한 국민들의 일치된 외침에 따라 노무현 대통령이 2006년 9월과 10월 당시 원자바오 총리와 후진타오 국가주석에게 시정을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중국도 한국의 일치된 분노를 외면할 수 없어 2007년 ‘한·중 구두 양해사항’을 교환하고 동북공정의 논란을 종식시키기로 하였다.

 

양해사항의 요지는 ‘중국은 이러한 사태에 유념하고, 정치 문제화를 방지하며, 학술 교류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것이었다. 동북공정이 1라운드였다면 2라운드는 최근의 문화공정이다, 우리가 2008년에 ‘강릉 단오제’를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으로 등재하자, 중국인들은 단오가 왜 한국의 문화유산이냐고 이의를 제기했다. 이른바 문화공정이 촉발된 것이다.

 

차이가 있다면 동북공정은 정부차원의 공식 정책이었지만 문화공정은 민간차원의 갈등이다. 그러나 중국의 체제상 순수 민간영역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최근 논란이 되었던 방송 프로그램을 보자. 중국은 2020년 신문과 방송에서 쓰촨(四川)지역의 파오차이(泡菜)를 김치의 표준이라고 주장했고, 한국의 방송 드라마에 중국풍이 일부 도입되는 등 예사롭지 않다.

 

중국이 비록 민간차원이기는 하지만, 한국의 전통문화를 중국문화의 일부로 여기겠다는 소위 문화공정을 시도하는 의도에 대해 전문가들의 시각은 다음과 같다. 최근 K-pop과 드라마 등 K-Culture가 전 세계로 전파되어 가면서 중국인들은 아시아 문화의 중심이 자국에서 한국으로 전환돼 간다는 위기감과 함께 아시아 문화는 전부 중국이 원류라는 과열된 애국심이 결합된 결과란 것이다.

 

중국은 1960년대에 고구려와 발해사를 한국사로 인정했으나, 40년 후인 2000년대에는 중국사로 규정했다. 그러면 지금부터 40년이 지난 후에는 고구려와 발해사가 어떻게 될까? 김치는 한국 음식으로 남아 있을까? 우리 전통문화는 온전히 유지되고 있을까? 걱정이 앞서며, 역사를 지키려는 거국적 노력과 함께 남북한 협력도 필요하다. 학술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임방순 인천대 외래교수 프로필 ▶ 미래문제연구원 초빙연구위원,  前 駐중국 한국대사관 육군무관, 대만 지휘참모대 졸업

 

김한경 총괄 에디터 겸 연구소장 기자 khopes58@securityfact.co.kr 이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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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 중국 알기 (22)] 중국의 동북공정, 문화공정으로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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