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2-23(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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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1년 필동에서 남태령으로 수방사가 이동한 후, 그 자리에 조성된 남산골한옥마을 정문 [사진=김희철]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황당하고 당황스러웠던 필동에서 출발하여 날이 저물고 밤이 깊어진 자정이 다되어서야 잠실에 있는 처가에 도착하자 장모님도 어쩔줄을 모르며 당황했다. 일단 처가에서 하룻밤을 보내기로 했고, 사정을 들은 운전기사는 본인은 차에서 잘 수 있다며 아침에 짐을 보관할 곳으로 이동하자고 배려를 해주었다. 


군인에게 시집와 잦은 부대이동에 따른 많은 이사의 애환을 겪는 아내에게 미안했지만 그 보다도 처가 식구들에게 창피했다.  


장모님도 아내도 어떻게 해야할 지 모르는 난감한 표정으로 필자의 얼굴만 쳐다보는 상황이었다. 우선 이사짐을 임시로 보관할 장소를 찾아야 했다. 


전방 생활만 줄곳 해온 터라 서울에 연고도 없었다. 혹시 주변 부대에 빈 창고가 있나 물색하기 시작했다. 위급한 상황이 되자 우선 상의할 수 있는 곳은 역시 동기생들이었다.  


그중 불연듯 모교인 육군사관학교가 생각에 떠올랐다. 마침 육사에 근무하는 동기를 찾다 보니 육사 동기이자 고등학교 1년 선배인 김인수 소령이 육사본부에 근무하는 것을 알았다. 공수훈련시 창공에서 낙하산이 펴질 때에 불안했던 마음을 날려 보내거나, 천군만마를 얻은 기분이었다. 


당시에는 핸드폰이 없었기에 처갓집 전화는 몇시간 째 필자가 사용하고 있었다.   


다행이 전화가 통화가 되었다. 육사에 다닐 때 타동기들과 같이 있으면 존대말도 못하고 반말도 잘 못하던 어정쩡한 관계였는데 그 때 상황은 고등학교 시절로 돌아갔다. 


“충성, 형님 김희철입니다...”라고 첫 대화부터 완전하게 고교 선후배 관계로 돌아갔다. 사정을 들은 김 선배는 “확인하고 연락해줄게”하며 전화를 끊었다. 


전화를 통하고 걱정하고 있던 아내에게 안심을 시켰다. 잠시 후 김 선배의 전화가 왔다. 


육군사관학교에 아파트 신축 관계로 모델하우스가 있는데 지금은 사용을 안하고 있어서 내일 아침 연락해서 한 채를 비워 놓을 터이니 그곳에 이사짐을 임시로 보관하라는 전달이었다. 


다음날 새벽에 차에서 자던 운전기사와 함께 처갓집에서 아침 식사를 하고 태릉 육군사관학교 아파트 모델하우스로 이사짐차는 출발했고, 한달 뒤에야 정상적으로 필동 군인아파트에 입주할 수 있었다. 


군인이기 떼문에 겪어야 하는 잦은 부대이동에 따른 많은 이사의 애환을 다시 한번 더 즐기는 웃픈 추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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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147)] 직업군인들의 잦은 이동에 따른 웃픈 애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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