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1-10-27(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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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동에 위치한 수방사 영내에 있던 “충성은 금석을 뚫는다”는 비석과 1976년 박정희 대통령이 차지철 경호실장(오른쪽 끝), 수방사 복장의 전두환 작전차장보(오른쪽 두 번째)와 경호실 복장의 경호팀과 기념촬영한 모습 (사진=김희철/동아일보)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1연구소장]  육군대학에서 차후 근무지인 수방사 명령을 받을 때 주변 동료들의 부러워하는 눈초리를 느낄 수 있었다. 


멀리서 바라본 잔디는 푹신한 침대같이 편해 보이지만 실제 잔디에 앉아 있으면 벌레와 오물이 득실거리는 불편함을 발견하게 된다. 이처럼 수방사 작전과의 근무는 특이한 카키색 복장으로 특별한 임무를 수행하는 것같이 멋있어 보였지만 만만한 것이 아니었다. 


대통령을 경호하고 수도서울을 방호하는 임무는 대단히 중요하고 자긍심이 넘치는 것이었다. 하지만 중견 간부인 소령이라는 계급은 단지 생도생활 시절의 1학년 생도처럼 최하급자로서 선배들의 매서운 군기와 질타 속에 근무하는 위치로 하향 보직된 기분이었다. 


지난 8년간의 GOP 전방부대 생활을 통해 능력을 인정받고 보람차게 근무하여 자신감이 넘쳤었다. 하지만 기존에 근무하는 많은 장교들이 위관 시절 그곳에서의 근무 경험이 있어 그들만의 기득권을 뛰어넘는 것은 힘들어 보였다. 


필자의 성공적인 야전부대 작전분야 경력이 고려되어 수방사령부로 보직을 받았는데, 이곳의 임무는 북쪽의 적에 대응하며 전투준비를 하는 것에 추가하여 소요진압 및 시가지 전투준비 등 야전부대 근무와 확실히 차이가 있었다.  


대침투작전 및 소요진압 관련 임무를 수행하는 필자에게는 다른 장교들과 달리 추가로 휴대하는 장비가 있었다. 서울 시내의 시위 및 소요발생시 경찰력이 부족할 때 소요진압부대로 출동할 것에 대비하여 경찰의 출동 사항을 항상 감지하는 경찰 무전기였다.  


아마도 지금은 이러한 시스템이 군부대에 적용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노태우 대통령 정권 당시에는 “충성은 금석을 뚫는다”는 수방사 영내에 있는 비석의 문구처럼 5공 시절의 잔재가 지속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 경찰 무전기는 24시간 동안 개의 목줄같은 역할을 하며 필자를 꼼짝도 못하게 만들었다. 결국 새벽에 출근해서 아침 상황회의 준비로 하루를 시작해 자정이 넘어가는 시각에 퇴근할 때까지 시내의 시위 상황과 경찰 출동 현황을 확인하고 대응하는 것이 추가로 부여된 임무였다. 


그래도 개인 사생활이 보장되지 않고 24시간 대기하며 바쁘게 달리는 직책이었지만 대통령의 근위부대로 자긍심을 심어주는 특이한 카키색 및 고동색 유니폼을 점점 사랑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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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149)] 수방사 장병들이 사랑하고 자긍심을 갖고 있었던 특별한 복장(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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