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1-10-27(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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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티고지 전투에서 중공군의 공격을 막아냈던 1사단 용사들 모습과 베티고지 전투 상황도 [사진=국가보훈처]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당시 베티고지는 임진강 지류가 남북으로 흐르는 가운데 표고 120~150m의 봉우리 3개로 형성된 국군 1사단 11연대 2대대의 전초진지였다. 대대에서는 중공군의 발악적인 공격을 저지하느라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한국전쟁 막바지인 7월15일은 휴전을 앞두고 중공군이 벌인 막바지 공세인 이른바 7·13공세의 사흘째가 되는 날이었다.

 

7·13공세는 중공군이 휴전을 앞두고 중부전선의 금성 돌출부의 만곡부를 없애기 위해 퍼 붓은 최후의 공세였으나, 이러한 불길은 서부전선 임진강 대안의 고양대 일대와 노리고지를 감제하는 중심부인 베티고지까지 불어 닥쳤다.

 

그동안 베티고지 사수를 위해 대대에서는 계속해서 3개 소대를 축차적으로 투입했으나, 배치된 소대들은 하룻밤만 지나고 나면 중공군의 공격에 반수 이상의 사상자가 발생하여 매번 교대시켜야 했다. 그날도 날이 새기도 전에 새로운 소대를 다시 투입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김만술 소위는 이날 2대대 6중대 2소대장으로 부임하자마자 베티고지 사수임무를 4번째로 부여 받았다. 앞서 방어를 담당하던 7중대 1소대는 그래도 3일 동안 버티었으나, 이어진 적의 공격으로 전투력이 절반 이하로 감소되어 더 이상의 전투력을 발휘할 능력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 때 베티고지는 세 개의 봉우리 중 중앙봉과 동봉은 아군이 장악하고 있었으나, 중앙봉에서 직선거리로 10m도 안되는 서봉은 중공군이 점령하고 있었다.

 

1953년 7월 15일 14:00, 김만술 소위는 아직 얼굴조차 익히지 못한 35명의 소대원들과 함께 베티고지 사수를 위해 중앙봉과 동봉에 투입했다.(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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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철의 전쟁사(128)] 김만술 소위의 신화, 베티고지 전투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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