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24(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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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좌측 흥남항에서 피난민 1만4,005명을 승선시켜 ‘가장 많은 사람을 태우고 항해한 배’로 기네스북에 등록된 ‘메러디스 빅토리’호의 갑판을 가득 메운 북한주민들과 당시의 ‘레너드 라루’선장 모습, 우측 1954년 카톨릭 수도자가 되어 바오로 수도원에서 평생을 헌신한 ‘마리너스 라루’수사 [사진=생명의 항해]

 

[시큐리티팩트=유철상 칼럼니스트] 1950년 크리스마스 직전, 함흥 동쪽 흥남부두에는 1백 만 명 가까운 피란민들이 아우성과 통곡으로 천지를 흔들고 있었다. 


그들은 우리 국군과 유엔군이 북한이 진격했을 때 열광적으로 환영했던 자유를 동경하는 사람들이었다. 


마지막 탈출선인 메레디스 빅토리(Meredith Victory)호는 인원 58명과 짐을 실을 수 있는 화물선이었다.


12월 22일 항구엔 혹독한 찬바람이 불고 있었다. 미국 무어 매코맥 선사의 화물선 빅토리호는 함포사격의 엄호를 받으면서 선체를 선창에 댔다. 사방은 황혼에 잠기고 시가는 죽음 앞에 가로놓여 있었다. 


해군 신호등은 37세인 선장 레오나두 P. 라루에게 출발을 위해 엔진을 끄지 말라는 경고를 주었다. 선장은 사실 흥남 항을 떠나도 그만이었다. 


그러나 절망 속에서 이틀이나 추위를 견디며 부두에 앉아 있던 수많은 피란민을 버려둘 수 없었다. 문제는 몇 명을 태우느냐에 있다. 이 배는 겨우 승무원 46명과 승객 12명 58명을 수용할 수 있을 뿐이다.


그보다도 저 많은 군중 속에서 공산정권의 지령을 받은 프락치가 끼어 있지 말라는 법도 없었다. 또 그들의 보따리 속에 무엇이 숨겨져 있는지 일일이 확인할 수도 없는 일이다. 배 바닥에는 3천 드럼의 연료용 기름이 깔려 있다. 성냥 한 개비면 이 배를 불바다로 만들 수도 있었다.


라루 선장은 눈을 감고 기도를 드렸다. “하느님이시여! 저를 도와주소서.” 그는 별안간 용기라도 얻은 듯 일등 항해사에게 명령했다.


“1만 명의 피란민을 태우시오.” 일등항해사는 그 순간 자기의 귀를 의심했다. 정원 58명의 배에 1만 명을 태우라니 그것은 정상적인 사람은 엄두조차 못 낼 일이다. 


“하지만 한 번 해 봅시다. 하늘이 우리를 도울 것입니다.”


노인, 아낙네, 아기, 할아버지, 할머니....... 피란민들은 울부짖으며 꼬리를 몰고 배 위로 밀려들었다. 배는 삽시간에 콩 나물 시루처럼 되었다. 


선장 라루는 피란민의 승선수가 얼마나 되느냐고 물었다. 일등항해사는 1만 2백 명까지 세고는 더 이상 헤아리지 못했다고 대답했다. 


이튿날 새벽 동이 틀 무렵 빅토리호는 움직이기 시작했다. 부산항에 도착한 것은 크리스마스 전날인 24일 오후였다. 그 무렵 1백만 명 이상의 피란민이 몰려있던 부산항은 이들을 맞아들일 곳이 없었다. 


부두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주먹밥을 배위에 올려 주는 것뿐이었다. 선장 라루도 그 일을 거들었다. 피란민들에겐 흥남 출발 이래 첫 요깃거리였다. 빅토리호는 다시 뱃머리를 돌려 미 육군에서 운영하는 거제도의 수용소로 향했다.


12월 26일 피란민들은 거제도 앞바다에서 두 대의 LST에 옮겨 탔다. 한 배에 7천 5백 명씩, 그 수는 1만 5천 명에 달했다. 메러디스 빅토리호가 세운 믿기 어려운 기록은 미국에서 화제가 되었다. 


독자 여러분이 라루 선장이라면 이런 경우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신념이 기적을 낳는다는 의미를 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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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철상 프로필▶ 現시큐리티팩트 칼럼니스트, 군인공제회 대외협력팀장, 육군 군수사령부·훈련소·소말리아·이라크파견부대·9군단 정훈공보참모, 한미연합사령부 공보실장 / 주요저서 : ‘향기로운 삶의 지혜’(2011년, 플래닛 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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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철상의 동서양 전사에서 배우는 교훈] ⑳사명감과 신념으로 기적을 이룬 라루(Leonard P. LaRue)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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