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2-08-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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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체스터 니미츠 미 해군 제독과 미국의 해군 항공모함과 함선 모습 (사진=연합뉴스)


[시큐리티팩트=유철상 칼럼니스트] 체스터 니미츠 미 해군 제독은 태평양전쟁을 승리로 이끈 미국의 해군의 주역이었다. 


그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수천 척의 함정과 항공기 그리고 수백만 명의 병력을 지휘했는데 이것은 한 명의 지휘관이 담당한 것 가운데 역사상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크고 막강한 군사력이었다.


니미츠는 초급 장교 시절에 함정을 잘못 몰아 진흙 벌에 좌초시킨 일로 인해 군사법정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진주만에 잠수함기지를 건설하였으며 그 뒤에 스스로의 노력으로 해군에서 디젤기관의 일인자가 되었다. 


또한 캘리포니아 대학 버클리 캠퍼스에서 최초로 NROTC(해군 학군단)를 창설했으며, 해군대학에서는 항공모함의 효과적인 호위진형인 원형진을 창안하였다. 


그 뒤 아시아 함대의 함장과 제1전함부대 사령관을 역임한 뒤 진주만 기습 당시에는 해군본부에서 인사문제를 담당하는 항해국장의 자리에 있었다. 


미국 루스벨트 대통령과 해군장관 프랭크 녹스(Frank knox)는 니미츠를 태평양함대 총사령관에 임명했다. 


전쟁 도중 원수로 진급한 니미츠는 종전 후에 해군 참모총장으로 재직하다가 전역했으며, 미국의 유엔 대표로 활동하며 카슈미르 문제를 담당하기도 했다

.

은퇴 이후에도 니미츠에게 대학총장, 산업체나 사업계에서도 높은 급료를 주겠다고 제안해 왔으나 그 제안들을 거절했다.


아들인 체스터 2세는 아버지에게 물었다. “아버지, 왜 안 하시렵니까?” 아버지는 조국을 위해 의무를 다하셨습니다. 이제는 아버지를 위해 무슨 일인가를 하세요. 아버지에게 돈이 필요 없다면 자식들에게 주세요.” 


나중에 아들은 아버지의 생각을 이해할 수 있었다. 몇 년 뒤 그는 아버지 니미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아버지는 이런 마음을 늘 지니고 있었습니다. 자신이 태평양전쟁에서 가족이나 친지들을 잃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해군을 대표하고 있다는 것. 만약에 자신의 가족이나 친지들이 상급자로 모셨던 해군사령관이 해군사령관 이외의 다른 이미지를 갖게 된다면 해군에 대한 감정을 상하게 하지나 않을까하고 염려했던 것입니다”


군인의 명예심이 무엇인가를 보여 주는 니미츠의 삶은 진정 멋있고 위대한 삶이었다. 군에서 책임 있는 위치에 있던 사람은 비록 퇴역 후에도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를 그는 행동으로 우리에게 보여 주었다. 


군에 있을 때의 지위와 명성을 이용하여 일반 사회에서 무엇인가를 얻어 보려는 우리들의 일반적인 관례들을 상기해 볼 때 체스터 니미츠의 삶은 너무나도 부럽고 멋있는 삶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독자 여러분은 한 번의 실수로 좌절한 적은 없습니까? 


전역(퇴역)후에도 군인이었음을 자랑스럽게 생각할 수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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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철상 프로필▶ 現시큐리티팩트 칼럼니스트, 군인공제회 대외협력팀장, 육군 군수사령부·훈련소·소말리아·이라크파견부대·9군단 정훈공보참모, 한미연합사령부 공보실장 / 주요저서 : ‘향기로운 삶의 지혜’(2011년, 플래닛 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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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철상의 동서양 전사에서 배우는 교훈] (21)참군인 미 해군 제독 체스터 니미츠의 명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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