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2-11-2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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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순 10.19사건’시 반란군토벌 전투사령관으로 진압군을 지휘했던 송호성 준장(6.25 남침전쟁시 납북됨)과 체포 및 사살된 공비들 확인 장면 [사진=이북도민 스토리/전쟁기념관]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한편 반란군 토벌 전투사령관으로 진압군을 지휘했던 송호성 준장은 해방전에는 중국군에서 기병대대장, 연대장, 사단장 등을 역임했고, 1942년 한국 광복군에 들어가 5지대장을 지냈으며 1948년 8월15일부터 11월20일까지 대한민국 육군총사령관직을 수행했었다.

 

그러나 고령이었던 송 준장은 6.25 남침전쟁 발발 당시에 사령관직을 내려놓고 뒷방 늙은이 취급을 받으며 갓 조직된 청년방위대 고문단장이라는 아무 실권도 없는 자리에 있었다. 

 

그는 곧 서울에 입성한 북한군에게 잡혔고, 그들의 강요에 의해 국군의 북침설을 KBS에서 방송했으며, 이후 북한군이 인천상륙작전으로 인해 패주할 때, 송 장군은 북한으로 납북되었다.

 

그후 북한 정권에 이용만 당하다가 1958년에는 반혁명분자로 규정되어 평안남도 양덕의 수용소에 수감되었고, 1년 뒤인 1959년 70세의 나이로 영욕의 삶을 마감했다.

 

아울러 여순사건에 따른 이승만 정부의 위기감은 군내의 좌파 세력을 색출하고자 하는 숙군사업의 강화로 이어졌고, 그 결과 5% 가량의 장병들이 군을 떠났으며, 이듬해인 1949년에는 '귀신 잡는 해병대'가 창설되었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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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철의 전쟁사(155)] 누란의 위기에서 국가를 구한 ‘귀신 잡는 해병대’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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