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2-11-2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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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0년 8월 당시 ‘김성은 부대’의 진동리지구전투 상황도와 2017년 개최된 해병대 진동리 지구전투 기념식에서 참전용사, 백경순 해병대 교육훈련단장 등 전·현직 해병대원과 주민 등 5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동면 지산리에 위치한 해병대 진동리지구전적비 앞에서 추모묵념하는 모습 [사진=해병대]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1950년 6·25 남침전쟁 발발 후 후퇴를 거듭하던 국군과 유엔군이 8월 들어 낙동강 방어선을 구축했고, 남하한 북한군 6사단은 진주-사천-고성을 거쳐 마산을 다음 공격목표로 삼고 예하 6사단 정찰대대는 마산 입구인 진동리까지 진출했다.

 

마산을 못 지키면 낙동강 방어선이 무너질 위기에서 8월1일 서부지구전투사령부로부터 진동리 서방에서 적을 저지 및 섬멸하라는 명령을 받은 ‘김성은 부대’는 다음날 고사리 지서에 지휘소를 설치하고 적정 파악을 위한 정찰을 실시해 2중대를 부현에, 3중대를 고사리 남방 428고지 서측에 배치했다.

 

8월 3일 북한군 정찰대대가 전차를 선두로 진동리를 향해 다가오자 335고지의 7중대와 428고지의 3중대는 맹렬한 화력을 집중해 이들을 격퇴시켰다.

 

진동리에서의 첫번째 전투를 승리로 이끈 김성은 부대는 이후 미 25사단 예하 24연대에 배속돼 마산방어에 투입됐다. 부산 서방 50킬로미터에 위치한 마산은 부산 서측방의 관문으로 마산 방어의 성패는 부산 교두보 확보와 직결되는 전략적인 중요성을 지니고 있었다.

 

미 8군사령부는 적의 주공이 대구 전선에 집중되자 이를 분산시켜 압력을 완화할 목적으로 미 25사단에 역습을 명령했다.

 

이에 김성은 중령이 지휘하는 한국 해병대는 ‘미 24연대는 킨(Kean) 특수임무부대의 예비대로서 서북산 일대를 공격해 진동리-함안 도로를 확보한다’라는 기동계획에 의거 다시 8월5일 15시 30분경 진동리에 도착했다. 이윽고 마산-진동리 가도의 타격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해병 7중대는 적이 진출해 있던 340고지를 공격했다.

 

7중대는 적진 최단거리에 접근해 일제히 수류탄전을 거듭하면서 적진을 돌파, 피아 식별이 어려운 진내전이 전개되는 가운데 과감한 육박전을 감행해 다음날 13시 10분에 전략상 요지인 340고지를 탈환하고 미군에 인계한 다음 진동리로 철수했다.

 

이후8월7일부터 미 육군 25사단을 주축으로 편성된 킨(Kean) 특수임무부대가 방어작전시 공세활동의 일환으로 진주 방향에 대규모 역공격(1950.8.7.~ 8.12.)을 실시하는 동안, 우리 해병대는 서북산 일대의 적을 격퇴하여 진동리와 마산 간보급로에 대한 적 위협을 완전히 제거함으로써 낙동강 방어선을 튼튼히 구축하는데 기여했다.

 

이후 마산에서 다시 미 24사단으로 배속된 김성은 부대는 진해로부터 병력을 보강 받아 재차 진동리로 이동했다. 8월 10일 새벽에 또 해병의 방어진지로 공격을 재개한 적들을 2시간 이상이나 계속된 혈전 끝에 격퇴시키고 날이 밝자 도주하는 적을 계속 추격했다.

 

그리고 다음 날인 11일 아침 8시를 기해 해병대의 공격목표인 서북산 능선일대에 대한 총공격을 개시했다. 포격의 지원 속에 이곳을 완전히 장악해 마산으로 통하는 보급로를 확보한 해병대는 이 지역을 미 25사단에게 인계하고 다음 전투지인 중암리로 이동했다. 중암리 전투에서도 대승한 ‘김성은 부대’는 8월14일 진해로 개선했다.(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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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철의 전쟁사(157)] 누란의 위기에서 국가를 구한 ‘귀신 잡는 해병대’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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