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3-12-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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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대 수방사령관 구창회 장군(육사18기)와 16대 김진선 장군(19기) (사진=연합뉴스)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필자가 수방사령부에 보직되어 근무할 당시의 사령관은 구창회 장군(육사 18기)이었다. 


구 사령관 역시 과거 12.12사건 때에 출동했던 9사단장 노태우 장군의 참모장으로 근무했으며 하나회 출신으로 황금급 핵심 직책이었던 수방사령관직을 거쳐 보안사령관직을 수행한 후 대장으로 진급하였다. 


노태우 대통령에게 수방사 이전 계획을 별도로 보고하고 재가를 받았던 구창회 사령관 후임으로 역시 12.12사건과 긴밀하게 관련되었으며 장군으로 진급하여 7사단장을 마친 김진선(육사 19기) 장군이 1990년 10월에 16대 수방사령관으로 취임하였다. 


김 장군은 과거 동대문운동장에서 3군 사관학교 체육대회가 개최되었을 때 중령이었는데, 당시 대통령도 참관했던 축구 경기에서 특전복 차림으로 운동장에 뛰어들어 육사 선수들에게 불리하게 편파 판정을 한 심판을 이단 옆차기로 차버릴 정도로 승부 근성이 강한 군인이었다. 


특히 김진선 사령관은 12.12사건 때에 중령으로 수경사 상황실장직을 수행하면서 9사단 등 하나회가 주축이 된 군부대 출동을 묵살하고, 당시 수경사령관 장태완 장군에게 보고를 안할 정도로 하나회와 관련된 핵심 인물이었기 때문에 5공화국 시절의 당연한 수순을 밟아 수방사령관으로 보직되었다. 


그는 부임 직후 대통령께 충성하는 것이 군인의 기본자세임을 힘주어 말하며 당시 수방사의 구호였던 ‘충성, 명예, 단결’을 강조했다. 


‘충성’은 전투중에 적에게 포위되어 피탈 위협이 있을 때에 진내사격을 요청하는 것은 아군 포탄에 자신도 죽을 수 있다는 자아본능과 충성심의 교차로에서 당연한 조치이며, ‘명예’는 다수가 인정하는 군인다움이고, ‘단결’은 운동을 통해서 육성될 수 있다고 훈시했다. 


비록 12.12사건시의 행동은 역사의 재평가를 받고 있지만, 3군 사관학교 체육대회에서의 행동이나 부임 후의 첫 강조사항들을 볼 때 저돌적인 근성과 야전 군인다운 순수성을 느낄 수 있었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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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191)] 남태령에서 이어진 수방사령부의 희비(喜悲)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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